49 이제야 너는 연옥에 다다랐으니

저어기 빙 둘러막은 벼랑을 보라.

저기 벌어진 듯한 들머리를 보라...


73 우리는 가까이 가서 한군데에 다다르니

먼저 보던 자리처럼 벽이

쩍 벌어진 듯 틈이 있는데, 거기


76 문 하나가 있어 그 아래엔 그리로

통하는 서로 색이 다른 세 층계와 아직껏 

한마디 말도 없는 문지기를 보았노라.


94 그리로 우리가 갔는데, 그 첫 층계의 

한 대리석은 어찌나 닦여져서 맑던지

그 안에 내가 있는 양 나를 바라보았노라.


97 어두운 자줏빛보다 진하게 물들여진 둘째 층은

껄끄럽고 구워진 돌로 되었는데 

가로 세로 금이 간 것이고, 


100 위에 얹힌 셋째 층은 활활 타는

반암 班岩인 양 핏줄에서 용솟음치는 피와 같이 보이더라... _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연옥편> (제9곡)  


[그림] Dante's Purgatory(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ederest/dantes-purgatory/)


 이승과 저승에서의 창조 체계의 연관을 단테 이상으로 잘 표현한 이는 없었다. 지옥을 벗어나 중간적이고 일시적인 세계, 즉 지상에 이르며, 거기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연옥산의 정상에 지상 낙원이 있다. 지상 낙원은 더 이상 세상 어딘가 잊혀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념적 차원, 즉 연옥에서의 정화를 마치고 천국에서의 영화(榮化)에 들어가기 전의 무오(無汚)의 차원에 위치한다._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 p636


 자크 르 고프 (Jacques Le Goff, 1924 ~ 2014)는 <연옥의 탄생 La Naissance du purgatoire> 에서 중세에 등장한 교리적으로는 스콜라 철학으로, 문학적으로는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에 의해 완성된 '연옥'의 역사를 보여준다. 비록 성경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중세 가톨릭 철학에서 '연옥'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심판 전과 심판 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음을 알게 된다.


  연옥 체계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선, 연옥이 생겨남으로 인해 죽음 이전의 기간이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물론 이전부터도 죄인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경고와 늦기 전에 지옥을 면할 준비를 하라는 권고를 받아오긴 했지만, 그처럼 중한 저주를 면하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이었고 추문스러운 생활을 하거나 과도한 죄악을 저질러서도 안 되며 죄를 지었다며 가능한 속히 모범적인 참회를 해야 할 것이었다.(p558)... 연옥 체계가 가져온 두번째 결과는 그것이 산 자들과 죽은 자들간의 관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누구에게 구원을 청하러 나타나는가? 우선은 그들의 혈육지친이고, 그 다음이 배우자로서, 특히 13세기에는 연옥에 있는 망자들의 과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_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 p560


 오늘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평화방송(CPBC)을 듣고 있던 중, 묵주(로사리오)기도가 흘러나왔다. 기도문은 듣던 중 유난히 "구원송"의 한 구절이 걸린다.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해당 구절은 오랜 기간 '연옥 영혼을 돌보시되'로 번역되어 사용되다가, 약 10년 전부터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정확하지는 않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기도문을 음미하고 그 뜻을 새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신앙심이 부족한 나와 같은 이들은 습관적으로 기도문을 외우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자꾸 생각나게 된다. 해당 기도문의 영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Fatima Prayer] "O my Jesus, forgive us our sins.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Lead all souls to heaven,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Thy mercy."


 라틴어 원문도 있지만, 라틴어는 잘 모르기에 영어 구문을 들여다 보고 생각을 해본다. 한국어와 영어 기도문을 1:1로 대응시키면,  (A)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 forgive us our sins, (B)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C)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 Lead all souls to heaven (D)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Thy mercy 로 연결시킬 수 있겠다. 


 (C)와 (D)의 번역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용이 길어질 듯 하니여기서는 일단 넘기고, 내용상의 연결로만 생각해보자. 기도문에서 (C)와 (D)의 연결을 '돌보시며'가 아닌 '돌보시되'로 할 경우에는 (D)가 (C)에 종속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반면, 영어 원문에서는 (D)가 (A), (B), (C) 전체와 관련을 맺기에 구 번역에서 내용상의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정리해보자면, 영어 원문에서는 (A), (B), C) 중에 (D)가 especially로 연결되는 반면, 이전 번역에서는 (A), (B), (C)가 대등하게 나열되고 (D)는 (C)에 종속되는 의미로 느껴져 기도문이 수정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연옥과 기도문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종교가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부분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럴 경우에는 이번 페이퍼를 그냥 구문론과 서양 문화의 한 부분 - 연옥 - 을 잠시 생각하는 수준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연옥은 그 모든 지옥적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천국 쪾으로 훨씬 더 가까이 쏠려 있다. 그러므로 카톨릭 기독교의 저승 신앙의 원동력은, 연옥의 영혼들이 <신곡>에 나오는 것과 같은 환희에 찬 지진음을 내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그 중단 없는 행렬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 이 천국의 열망일 것이다._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 p68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edman 2021-07-04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때마침 단테의 신곡을 읽고 있었는데, 겨울 호랑님 덕분에 좋은 정보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4 18:58   좋아요 2 | URL
작은 나눔이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김민우님 남은 일요일 저녁 행복한 시간 되세요! ^^:)
 

성차에 관한 최소한 한 가지 해석은, 정체성의 범주가 단일해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바로 모든 정체성 안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젠더 트러블」은 최소한 두 가지 종류의 다른 도전과 마주해애 했다. 이제 나는 이런 문제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 후속 작업에서는 그게 시작되기를 바란다._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p335

전작「젠더 트러블」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성차‘를 양성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기를 거부하고, 젠더가 사회적 규범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안티고네의 주장」에서 헤겔, 라캉의 해석과는 또다른 궤를 통해 보다 실체화시켰다면, 「젠더 허물기」에서는 교황청과의 논쟁등을 통해 보다 정치철학적 면모를 보인다.

「젠더 허물기」에서 언급된 철학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미셸 푸코다. 그의 세계가 「말과 사물」에서 「성의 역사」로 이어졌다면, 버틀러는 「성의 역사」에서 드러난 문제를 「젠더 허물기」를 통해 정치적 해결점을 찾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본문 중에 제시된 버틀러의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에피스테메(episteme)에서 보다 행동화된 주장으로 실체화되는 일련의 과정이 스스로 젠더의 규범화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느낌을 받는다...

누가 또 무엇이 실제이자 진실로 간주되는지의 문제는 분명 지식의 문제이다. 그러나 푸코가 밝히듯, 그것은 또한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리‘와 ‘실재‘를 갖고 있거나 보유한다는 것은 사회 세계에서 대단히 강력한 특권이자, 권력이 마치 자신은 존재론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방편이다... 지식과 권력은 결국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은 함께 세계에 대한 사유를 하기 위한 미묘하고 분명한 일단의 기준을 설정하는 일을 한다._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p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홉스봄이 분석하는 20세기,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열정적이다. 그 태도는 홉스봄이 선호하는 다른 화제를 꺼내며 개입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롤링스톤스와 동시대에 살지 않았다면, 그들이 1960년대 중반 지핀 열기에 동참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명예의 전당 제일 위에 인민전선과 스페인 내전이 자리한다. 홉스봄은 스페인 내전을 언급하며, "이 내전이 자유주의자들과 좌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진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합친 성향에 가까웠고, 이는 그의 20세기 분석 전반에 잘 배어있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5> - 홉스봄, 역사 조작에 맞서다(上) - , p32


 

지난달과 이번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기사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CH, 1917 ~ 2012)의 <극단의 시대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ld, 1914-1991>를 다룬 세르주 알리미(프랑스어판 발행인)의 서문이다. <시대 The Age>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대한 서문 을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거칠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20세기 마지막을 승리로 끝낸 자본주의의 승리가 사실은 불완전한 승리였다는 홉스봄의 중심에는 '소련'이 자리한다. 홉스봄은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도널드 서순(Donald Sassoon, 1946 ~ )이 <불안한 승리 The Anxious Triumph: A Global History of Capitalism 1860-1914> 속에서 자본주의 승리의 원인을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마침 깊은 인연있는 두 역사가가 '자본주의의 승리와 위기'에 대한 다른 분석을 비교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 되리라 여겨진다. 사실,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순의 <유럽문화사>와 <사회주의 100년>,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까지 한꺼번에 정리해야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 ~ 2019)까지 들어오면 판이 너무 커지겠지만, 충분히 판을 키울 가치가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만간 순차적으로 정리하기로 하자.


 "소련이 없었다면 서방 세계는 아마 자유주의나 의회 정치 대신 다양한 독재와 파시즘의 아류로 이뤄졌을 것이다. 이는 기이한 20세기가 지닌 역설 중 하나다. 10월 혁명의 결과 중 가장 여파가 오래 간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세계를 전복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어난 10월 혁명이 오히려 적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소련은 전시에도, 종전 후 평화의 시기에도, 상대국에게 공포감을 줌으로써 개혁을 촉구했다." ...  그런데, 정말 자본주의는 끝나가는가? 모든 것이 경쟁과 이윤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시장경제 사회를 전 세계 국민이 지지한다면, "소련식 유토피아의 대척점에 있는 반유토피아 또한 완전한 실패작이었다"라고 결론 내린 홉스봄이 과연 옳은 것일까?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홉스봄, 역사 조작에 맞서다(下) - , p42

 

여기에 더해 이번 호에서는 이탈리아 정치문제가 다뤄졌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으로 대표되는 극우정당의 움직임에 대해 다뤄진 이번 기사에서는 이탈리아 남북문제가 언급된다.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가 지적한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마피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때문에 이번달 이탈리아 기사는 그람시의 저작과 기사들을 연결해서 읽으면 좋을 듯 싶다. 물론, 영화 <대부 The Godfather>도 시간이 되면 함께 보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1990년대 초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사는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 건설 시도의 역사다. 이 역사는 실패로 기록된다. 우파를 지지한 사회적 동맹은 시작부터 분열됐다. 한편에서는 이탈리아 북부의 중소기업들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찬성하며 유럽 통합 과정에 동참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주로 중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서민층과 빈곤층이 EU의 조약들이 강요한 긴축정책으로 고통받았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유럽연합과 화해한 이탈리아 극우의 본심은? - , p25


 

모든 것은 통일 이탈리아의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하면서 매우 민간한 사안인 '남부 문제'가 대두됐다. 낙후된 남부지역이 통일 이탈리아 내에서 다른 지역보다 뒤처지게 된 것이다.(p29)... 경제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한 남이탈리아에서 '지주', 지배계층은 반란과 농민폭동으로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당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자연스럽게 여러 무장 결사단체의 연합체인 마피아와 손을 잡았다. 가리발디 장군은 농민들에게 토지분배를 약속했는데, 마피아는 대지주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며 토지개혁을 무산시켰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이탈리아 마피아의 존재 이유 - , p30


  더 나아가 경제 민주주의, 정치적 평등에 대해서도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서구 여러나라들은 주35시간에서 나아가 주 28시간 근무를 논의하고 있는 현 시점에, 우리나라는 주52시간 근무를 확대시행이 이르다는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국격에 맞는 대우를 받을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노동시간 감축은 노동비용 상승, 생산성 하락, 노동가치 폄하 등 부작용을 동반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때 겪었던 혼란과 실패 경험은 트라우마와 분열을 남겼다. 그리고 우파와 경연진들은 노동시간 감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 19팬더믹은, 미흡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줬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의 피해를 예방하려면, 최대한 다수가 수혜를 누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 28시간 근무제를 논의하면, 노동의 조직과 분배를 새로운 관점에서 생산하고 생산 의존도를 낮추며 성장우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덜 일하고, 덜 오염시키기 -, p11


 마지막으로, 최근 이뤄진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간 휴전 협정과 15년간 장기 집권을 끝낸 네타냐후 총리 실각을 보면서, <유대 국가>를 통해 헤르츨(Theodor Herzl, 1860 ~ 1904)이 제안한 탄압받는 유대인들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와 구현된 시오니즘 국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당초 헤르츨은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평등한 사회를 생각했지만, 그의 구상과는 달리 자본가들은 희생하려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국가이며, 유럽 출신의 아슈케나짐(Aschkenasim) 주도의 불평등 국가가 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시오니즘을 만약 헤르츨이 본다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보다 넓을 세계를 보고,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임을 느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헤르츨은 동화정책이 해결책이 아닌 위협이며, 유대인을 물리적으로 말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과 학살이 그 직접적인 사례였다. 유럽 사회에 통합되려는 의지는, 종교와의 분리와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해 보였다. 또한 유럽 통합주의 전략은 반유대주의가 확산해 유대인들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헤르츨은 유대인이 중심이 돼 안전하게 살아갈 정치적 집합체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즉 유대인 국가의 건설이었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막을 수 없는 좌파 시온주의의 쇠락 - , p98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수십 년에 걸쳐, 세속주의와 유대 노동자 간의 연대라는 원칙으로 건설한 노동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서구 자본주의에 완전히 통합돼 신생 디지털 기술 기업들의 '황금의 땅'이 됐다.(p99)...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민족'은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다양한 유대인 집단(아슈케나짐, 팔라샤, 미즈라힘, 스파라드, 러시아어권 유대인 등)이 국가의 주요 요직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민족 갈등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_<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6> - 막을 수 없는 좌파 시온주의의 쇠락 - , p100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1-06-20 2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책 소개와 함께 언제나 겨울호랑이님의 명품페이퍼에 감동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6-20 22:06   좋아요 5 | URL
에고 아닙니다. 저는 이미 있는 좋은 책들 중 극히 일부만 알고 있고, 아는 것만 페이퍼에 옮긴 걸요. 항상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

mini74 2021-06-20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읽고 고민하셨다는거.*^^* 좋은 책 소개글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6-20 22:25   좋아요 4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웃분들로부터 배워가는데, 부족하지만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mini74님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7-07 15: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올려주신 책들 몇권 땡튜 ^.~

겨울호랑이 2021-07-07 16: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07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7 16: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1-07-07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7 16:3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좋은 하루 되세요! ^^:)

mini74 2021-07-07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되실줄 알았습니다 당근! ㅎㅎ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7 16:4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mini74님 좋은 하루 되세요! ^^:)

초딩 2021-07-07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07-08 05:25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이하라 2021-07-08 0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8 10:07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모나리자 2021-07-08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1-07-08 10:25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독서괭 2021-07-08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8 12:47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아나르키아 anarchia(지배자 없음)"라는 말은 5세기 중반에 쓰임새가 확인되나 "아나키즘"이라는 말처럼 더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다.(p16)... 무질서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노모스 Nomos가 지켜지지 않는 상태를 "불법 상태"와 "무법 상태"로 생각했다. 이 둘은 단지 단지 폴리스의 질서라는 표본이 있었으며, 또한 개념적으로 이들이 단지 뚜렷하거나 그렇지 않게 구별될 수 있었던 그러한 시대에서부터 나왔다. 이러한 나쁜 상태는 모든 가능한 비참한 상태, 특히 전제정치의 온상으로 간주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21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5번째 주제는 아나키, 아나키즘, 아나키스트(Anarchie, Anarchismus, Anarchist)다. 호메로스(homeros, BC 8C ? ~ ?)로까지 기원을 찾아갈 수 있는 '아나키즘'은 '법률(Nomos)'의 상대어로서 역사속에 자리한다. 다만, 이 단어가 담는 두 가지 의미는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아나키를 '불법 不法'인 상태로 규정할 때, 이것은 다른 형태의 악(惡)이 된다. 폭정(暴政)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아나키는 민주정이 낳은 최악의 결과로 인식되어 왔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군주정, 귀족정, 국가가 필요하다는 논지를 낳았다.


 마키아벨리 Machiavellis는 <로마사 논고 Discorsi>에서 정치체제 이론의 틀 내에서 '아나키'를 최초로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군주제는 쉽게 전제정이 되며 귀족정은 과두제가, 민주정은 쉽게 아나키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키아벨리에게서 민주정이 아나키를 만든다는 표현이 명확하게 발견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27


 18세기에는 아나키 개념이 폭정과 새롭게 연결되었다. '폭정 Despotie'이 '폭정적 despotic' 및 '포악한 despotical'과 함께 이미 홉스를 통해서 당시 정치적 논의에 도입되었으며, 아나키 개념의 수용은 나중에야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관에서 순환 모형의 새로운 변형이 제시되었다. 아나키는 폭정/압제정을 만들고, 폭정/압제정은 아나키를 생성한다. 이와 함께 아나키와 폭정은 서로 비교되고 평가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34 


  아나키가 갖는 두 번째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강조된 것은 18세기 이후 시점이다. 이로부터 '아나키'는 '폭정'과 '불법'이 아닌 '무법 無法'이라는 개념으로 구체적으로 '혁명'과 '자유'와 결합되면서, 아나키에 보다 긍정적 이미지가 부여되었다. 


  빌레펠트 Bielefeld는 다음과 같이 아나키를 정의한 문구를 제시한다. "우리는 '국가'가 어떤 '지도자'도 갖지 못하며 각자가 '법'을 무시하면서 자신만의 환상을 따라 살고 따라서 무질서와 혼란이 판치는 상태를 아나키라 부른다. 우리는 이로부터 이것이 정부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악덕이며, 이러한 상태가 국가의 파멸보다도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임을 즉시 이해하게 된다. '폭정' 내지 '압제정'과의 결합과 분리를 통하여 '아나키'의 연관 영역이 확장됨과 아울러 독자적인 지배 형태 이론으로부터의 최종적인 분리를 통하여서 이들 두 개념은 역사적/사회적 차원으로 보다 강력하게 들어오게 된다... '폭정'과 '아나키'는 자유, 질서, 법과 대립되는 특징적 상태였다. 비록 개별적으로 차별화가 시도되더라도 여전히 이 두 개념은 있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표현이었다. '아나키'와 '폭정'의 연관은 나중에서야 해소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37


 다른 개념어와 마찬가지로, 아나키 역시 프랑스 대혁명(French Revolution, 1789) 이후 이전의 부정적 의미를 쇄신한다. 혁명이 가져온 무질서, 혼돈의 상태는 단순한 카오스(chaos)가 아닌 코스모스(cosmos)를 내재한 가능태(可能態)이며, (거칠게 표현해서) 음(陰)에서 양(陽)이 나오듯, 아나키에서 자유로 나간다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새롭게 부여된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겠지만, 19세기 지식인들에게 혁명은 새로운 세계의 태극(太極)상태로 인식되었을까도 생각해 본다.


 19세기 초반에 사회적 차별화와 아나키 개념의 역동화라는 특징 속에서 의미의 확산은 의미의 분극화와 변화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사상적 특징과 표현 방식이 바뀌었다... 민주정은 아나키를 낳는다는 표현은 새로운 뉘앙스를 풍기게 되었다. 아나키는 무엇보다도 "무질서 desordre", "혁명 revolution", "봉기 insurrrection"라는 맥락에서 존재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54


 헤스는 한편으로는 확실히 프루동을 넘어서서 모든 권위와 계급을 지양하는 것으로서 아나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의 긍정적 위치로서 아나키를 찾아냈다.(p98)... 헤스는 프랑스혁명으로 절대적-역사적 새로운 시작이 제시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역사에 대조적으로 "새로운 역사"가 등장하게 된다. "개인은 다시금 자신과 함께 시작하고, 그 역사는 기원 1년에 시작하고, 급속하게 이동하면서 정신의 도약 위에서 추상적 자유의 아나키로부터 노예제를 거쳐서 최후의 순간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마침내는 실제적 자유에 도달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5 :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P99


 개념사 사전은 우리에게 '아나키'안에 담겨진 두 의미 '불법'과 '무법'의 의미 확장 역사를 보여준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와 질서 이전의 태고의 상태. 어느 쪽을 더 크게 보는가에 따라 이 단어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다가올 수 있는 단어임을 실감한다. 개념사 사전과 관련한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나키의 두 번째 의미로부터 떠오르는 책이 있어 옮겨본다.


 최소 국가는 우리를 불가침 不可侵의 개인들로 취급한다. 즉 우리는 이 국가 안에서 도구나 수단이나 자원으로 타인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도 이용될 수 없다. 최소 국가는 우리를 존엄성을 가진 개인적 권리들의 소유자인 인격으로 취급한다. 우리의 권리들을 존중함으로써 우리를 존중하는 최소 국가는, 우리에게 허락하여, 개인적으로나 또는 우리가 선택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삶을 선택하고 우리의 목표와 스스로가 바라는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하게 허락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실현 과정에서 우리와 동일한 존엄성을 지닌 다른 개인들의 자발적인 협동의 도움을 받는다._로버트 노직,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p408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 ~ 2002)의 <아나키에서 유토피아 Anarchy, STate, and Utopia>가 그것인데 이 책으로부터 우리는 '국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소환되면, 자연스럽게 소환되어야 할 책이 존 롤스(John Rawls, 1921 ~ 2002)의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다. 마침 요즘 정치인 누군가에 의해 '공정'이 이슈가 되고 있느니만큼, 시의적절한 내용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정대로라면. 아나키와 관련하여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The Art Of Not Being Governed: An Anarchist History Of Upland Southeast Asia>을 함께 정리한다면, 아나키즘에 대해 근원적으로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ps. 책 한 권을 읽으면 다음에 읽어야 할 책 2권 이상이 나오니, 다단계도 아니고 독서의 끝이 없어 보인다. 잘린 머리에서 머리 2개가 나온다는 괴물 휘드라와 싸운 헤라클레스의 심정이 이러할까. 헤라클레스가 휘드라의 머리를 불로 지져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듯, 밝은 지혜의 힘으로 읽어야 할 책을 줄이는 것이 이 승산없는 싸움을 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러자면, 지혜를 구해야 되는데, 얘는 또 어떻게 찾아야 할런지... 지혜를 찾을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두 번째 고역으로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한테 레르나의 휘드라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헤라클레스는 불타는 장작을 던져 휘드라가 밖으로 나오게 한 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휘드라의 머리들을 쳐서 떨어뜨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머리 하나가 떨어져나가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머리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올라오스는 가까이 있는 숲 자락에 불을 놓아 불타는 장작으로 휘드라 머리들의 뿌리들을 태움으로써 다시 자라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헤라클레스는 다시 자라나는 머리들을 제압한 뒤 불사의 머리를 베어 그것을 레르나를 지나 엘라이우스(Elaious)로 가는 길가에 묻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다._아폴로도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 Bibliotheke by Apollodoros>, <헤라클레스와 그의 자손들> 5장 2, p13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1-06-20 1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휘드라와 같은 책 다단계… 잘 맞는 비유 같네요. 그래도 겨울호랑이님은 열심히 머리를 베어내고 계시네요^^

겨울호랑이 2021-06-20 22:1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님. 휘드라의 머리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가 나오는 듯하지만, 그저 놓지 않고 가다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
 

 

일본은 뽕나무를 심고, 그것으로 누에를 치고, 누에고치에서 생사를 뽑는 일까지만 조선에서 했다. 질 좋은 원료를 값싸게 확보한 그들은 일본에서 비단을 짜가지고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군산항에서 주로 쌀을 실어내는 것처럼 목포항에 집결시켜 실어가는 목화도 이익 많이 남기는 장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총독부에서는 뽕나무 심기와 목화씨 뿌리기를 해가 갈수록 더 다그치고 있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203/247


 조정래(趙廷來, 1943 ~ )의 <아리랑 5>에서는 본격적인 일제의 식민수탈이 그려진다. 군산이 쌀 수출항이었다면, 목포는 목화(면화) 수출항이었다. 쌀은 노동자들의 식량으로, 목화는 제조원재료로서 식민본국의 산업화를 뒷받침했다. 스벤 베커트 (Sven Beckert)이 <면화의 제국 The empire of cotton>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면화는 제국시대에 글로벌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었으며, 이로부터 일본은 착실히 서구제국의 길을 따라갔음을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규모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진 유럽 면산업의 기반을 잡아준 것은 바로 제국의 팽창, 노예제, 토지 약탈로 요약되는 전쟁자본주의였다. 전쟁자본주의 덕분에 유럽의 면산업은 역동적인 시장을 얻었고, 기술력과 필수 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자본주의는 자본 형성에도 중요한 추진 장치가 되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4



  전쟁자본주의는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가를 수 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유럽인들의 역량에 의지했다. '내부'는 모국의 법과 제도와 관습을 포괄했고, 국가가 부과한 질서의 지배를 받았다. 반대로 '외부'를 특징지은 것은 제국의 지배, 방대한 지역의 수탈, 원주민 학살, 자원 약탈, 노예화, 그리고 멀리 떨어진 국가의 효율적인 감시를 벗어난 민간 자본가들의 방대한 토지 지배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5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으로 막대한 양의 토지를 강탈한 것은 제국주의 일본에게 막대한 농경지의 확보와 함께 저임금 노동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자본주의는 1910년대 착실히 성장하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경제 호황을 맞이했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금을 주어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작업을 감시하며 그들이 기술과 열정을 쏟게 하는 동안 새로운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벗어난 노동자들의 가정과 거주 지역에서 고용주의 권한은 훨씬 더 멀어졌다.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규율을 시행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조건이 끔찍했기 때문이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07


 군산과 목포에 지어진 근대식 항만, 신의주에 부설된 철도 등 SOC 설비가 제국의 '내부-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였고, 이를 통해 수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리랑 5>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는 이로부터 '근대화'의 징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일본-조선'의 관계가 제국주의 '본국-식민지' 관계의 전형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식민 지배 기간 이루어진 조선의 발전이 '의도치 않은 낙수 효과'인지 아닌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단순 증가율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 같은 기간의 일본과 조선 경제를 비교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양국간에 이루어진 수출입 품목, 조건, 경제 성장률 비교 등 다방면에 걸친 분석을 통해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누가 가져갔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여겨진다. 이는 전문적인 내용이 죌 것이니만큼 깊은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살펴 보도록 하자. 


 신의주야말로 이름 그대로 일본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낸 '새로운 의주'였다. 경의선 종착역을 땅 넓은 압록강변에 만들면서 그들이 지어 붙인 이름이 '신의주'였다. 그러니 역 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왜색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p88/247)...  별로 볼품이 없었던 군산은 일본세상이 되면서 개명도시로 바뀌더니 느닷없이 부로 승격했고, 어느새 부윤자리가 12개의 부 중에서 세 번째로 좋은 벼슬자리로 꼽히고 있었다. 그건 순전히 일본으로 실려나가는 쌀이 만들어낸 힘이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90/247 


 한편, <아리랑 5>에서는 오랜 기간 중심도시였던 전주, 의주 등을 대신하여 군산, 신의주, 목포 등 이른바 신도시들이 일제 시대에 새롭게 떠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러한 변화로 새롭게 떠오르는 이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고, 이들이 자신들에게 부와 권력을 안겨주는 새로운 조국 일본을 따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일'이 옳은 길이라고 말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발로 때문일까.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라 여겨진다...


 양치성이 그 가위눌리는 충격 속에서 느낀 것은 조선사람이라는 창피스러움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건 곧 일본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흠모로 이어졌다. 일본사람들이 왜 조선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얕잡아보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_조정래, <아리랑 5>, p81/2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