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군국주의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을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전쟁을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로만 보았다. 그렇지만 전쟁은 의심할 바 없이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p7)... 전쟁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즉 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을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쟁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시키기도 했다. 사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했다. 왜냐하면, 모든 자본주의와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조건들이 처음으로 전쟁에서 충족되었기 때문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13/147


  과연 전쟁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인가?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 ~ 1941)는 <전쟁과 자본주의 Krieg Und Kapitalismus>에서 이 질문에 대해 집중하면서, 전쟁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입증한다. 이를 위해 베르너는 1) 자본주의 성장에는 근대 국가가 필요하며, 2) 근대 국가는 무력(武力)의 산물이었고, 3) 무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효율적인 시장이 필요했으며, 4) 그 결과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전쟁과 전쟁 준비는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는 것이 주된 논지다.


  국가 형성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독특한 발전을 위한 전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국가는 특별히 증명할 필요는 없지만 전적으로 무기의 산물이다. 근대 국가의 겉모습, 즉 국경선도 그 내부 구성 못지 않게 무기의 산물이다. 행정과 재정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전쟁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곧바로 발전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13/147


 내가 언제나 무엇보다도 먼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근대 군대가 1) 재산 형성자로서, 2) 성향 형성자로서, 3) (특히) 시장 형성자로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발전을 얼마나 촉진시켰는가이다.(p15)... 근대 군대는 상비군이며 국가 군대이다. 이미 언제나 존재한 두 가지 경향, 즉 제후를 유일한 지휘관으로 여기는 것과 그에게 지속적으로 군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계속해서 효과를 거뒤 마침내는 보편타당한 원칙이 되었다. 이 두 원칙의 승리는 외견상으로는 말하자면, 상징적으로는 국가 상비군의 식량 조달과 장비를 위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거나 제공하는 것에서 표현된다... 세 가지 계기, 즉 자금 조달, 지속성 및 국가에 의한 관리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21/147


  좀바르트에 의하면, 전쟁은 국가의 군수품 수요와 민간의 군수품 및 물자 공급 모두를 자극하게 되고, 생산과 유통 혁신을 가져왔다. 막대한 무기 수요는 무기 생산 시스템의 변화를 자극해 분업(分業)을 통한 생산 방식이 나타났고, 피복과 선박에 대한 수요는 경공업과 중공업 등 산업 전반에 경기호황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의 푸거가와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금융재벌이 등장하면서 금융업의 발달도 함께 나타났다는 것이 좀바르트의 분석이다.  

 

커지는 무기 수요를 완전히 또 제때에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은 경제 생활의 형성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p60)... 다음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소총 산업이 그 당시에 이미 매뉴팩처 단계를 넘어 공장 방식으로 조직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아담 스미스가 미숙한 핀 산업 대신에 이 선진 산업에 입각해서 노동 조직 관념을 얻었다면, 그는 이미 그 당시에 사회의 대기업에서 노동 성과 상승의 이유를 올바르게 인식했을 것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64/147


 증대되는 무기 수요는 경제 생활의 형성에 큰 작용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진행 과정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p67)... 군대의 피복은 우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즉 필요한 물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가능성은 도외시하기 때문에, 피복과 피복 재료에 대한 매우 많은 수요는 이제 시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p98)... 나는 결론으로서 조선(造船)과 자본주의라는 두 현상 간에, 넓은 의미에서는 전쟁과 자본주의 간에 존재하는 연관을 지적하고 싶다. 이 연관은 아마도 그 군사 활동의 전체적인 거대한 작용을 보여줄 것이다. 제철 공업이 특히 무기 수요에 의해 그리고 조선이 전함 수요에 의해 한층 더 높은 형태로 번형되었다면, 따라서 제철 공업과 조선이 결국 전쟁이 낳은 아이들이라면, 전쟁은 이로 인해 다시 파괴자가 되었다. 즉, 유럽 삼림의 파괴자가 되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전쟁과 자본주의>, p124/147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총포와 무장된 범선, 숙련된 선원들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침략해 들어가면서 이전 시대까지 유럽 열위(劣位)를 한 번에 뒤집는다. 치폴라(Carlo M. Cipolla, 1922 ~ 2000)는 그의 저작 <대포, 범선, 제국 Guns, Sails and Empires: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Early Phases of European Expansion 1400~1700>에서 이렇게 생산된 무력을 바탕으로 유럽 우위를 설명하지만, 이언 모리스(Ian Morris, 1960 ~ )는 조금 관점을 달리한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Why The West Rules - For Now>에서 그는 서양의 압도적인 무력도 중요했지만, 보다 근원을 '에너지 활용 능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조금은 다른 해석이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서구에서의 고전 역학에 기반한 물리학의 발전과 발전이 가져온 교통혁명은 소수의 유럽인이 세계를 틀어쥐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5세기 말 유럽 팽창의 역사에서 지중해 세계의 공헌은 기술적이라기보다 재정적 · 상업적인 것이었다. 14, 15세기에 대서양 유럽이 개발한, 대포로 무장한 배는 유럽의 영웅담을 가능케 한 발명품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선원이 전례 없이 막대한 양의 물리적 에너지를 이동과 파괴를 위해 제어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경제적인 고안물이었다. 어느 순간 유럽이 극적으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비결은 모두 거기에 있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66


 마운틴은 배와 항구를 날려 버리는 것은 서양의 지배를 설명하는 가장 인접한 원인, 서양의 장점이 길게 열거된 사슬의 마지막 고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의 공장들이 포탄과 뛰어난 대포, 원거리 항해가 가능한 전함을 생산해낼 수 있고, 영국 정부가 지구 반대편에서 수행되는 원정을 기획하고 자금을 대며 지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인이 어느 누구보다도 에너지 대사슬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뿐 아니라 매우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자신들의 위력을 전 세계에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정리될 수 있다.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p104/472


 교통 혁명의 전체적인 효과는 일련의 부수적 효과와 연결된 직접적인 운송 개선에서 생겼다. 그러한 부수적 효과의 하나는 철도 역사의 건축에 따른 도시 경관의 개조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경제적 공간의 창출이다. 따라서 철도와 해운의 역사는 단순한 교통의 역사를 뛰어넘는다.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이주의 성장과 변화다. 이는 몇몇 지역에서 발흥한 산업자본주의와 새로운 변경의 개척 같은 다른 자극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한 세계사의 한 과정이었다._ 세바스찬 콘라드 외 1,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750~1870>, p553/713


 이언 모리스는 최근의 서양의 우위가 단순한 무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Science Technology)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에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다. 서구의 에너지 활용이 다각화 된 것은 좀바르트가 지적했듯 대형 선박 건조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원 고갈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가 <엔트로피 Entropy: A New World View>에서 지적했듯, 서유럽의 문명사가 거칠게 표현해서 자연파괴의 역사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현대 서양의 우위는 과학기술의 승리가 아닌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 덧붙이자면, 치폴라 역시 <시계와 문명 Clocks and Culture: 1300-1700>에서 과학 혁명에 대해 말하기에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로 넘기는 것으로 하자.


 다시 좀바르트로 돌아가서, 우리는 전작 <사치와 자본주의>와 <전쟁과 자본주의>를 통해 유럽 사회의 사치품 수요와 군수품 수요가 자본주의의 탄생에 기여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 일상생활의 구조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1> 에서 기술, 화폐, 도시화 등 다른 요인들과 함께 역사의 하부 지층으로 보다 잘 설명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본주의 태동기에 사치와 전쟁이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좀바르트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일종의 소규모 "군사 케인스 주의" - 군사비 지출이 그 지출을 부담하는 국가 시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리고, 그럼으로써 조세 수입을 늘리고 새로운 군사비 지출을 지불할 능력을 상승시키는 관행 - 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후 모든 군사 케인스주의와 마찬가지로, 다른 관할권역으로의 영구적인 유효수요 누출  때문에, 또 비용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는 군사비 지출의 기타 재분배 효과들이 이런 목적을 위한 자본가 계층의 조세 납부 의지를 꺾었기 때문에, 군사비 지출의 "자기 팽창"은 엄격하게 제한된다._ 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 p91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 ~ 2009),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 ~ 2019)이 분석했고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가 전망했듯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은 무력 사용에 의해 경쟁자들을 제압하기보다는 체제 내 안정과 안정 속에서의 번영을 추구하며 제국주의 노선을 수정했고, 그 마저도 제국주의가 효율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자 식민지 독립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오일쇼크 전까지.


 전쟁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국민의 열정에 부채질 하는 일을 용이하게 해주는 요인으로는 전쟁의 경제적 원인, 즉 인구의 압력과 시장 확보를 위한 경쟁적 투쟁을 들 수 있다.(p459)... 만일 여러 나라들이 그들의 국내정책에 의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국 상품을 타국에 강매하거나 이웃나라의 매출을 격퇴시켜야 할 절박할 동기는, 그것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대금을 지불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역수지가 자국(自國)에 대해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국제수지(國際收支)의 균형을 뒤집으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할 동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_존 메이나드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p460


  이로부터 우리는 좀바르트가 두 저서 <사치와 자본주의>, <전쟁과 자본주의>를 통해 사치와 전쟁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봤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좀바르트 이론이 자본주의의 변화상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자본주의 태동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음도 알게 된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근검, 절약하는 청빈하고 신앙심 깊은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물질과 영토 등에 욕심을 내던 이들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좀바르트의 이론은 절대체제로서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눈돌릴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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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7-18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자본주의 발달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한 표 겁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18 17:55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대체로 전쟁 수행에 많은 비용이 소모되며, 전후 복구에 따른 유효 수요 증가 등을 고려했을 때 대체로 인접국가의 전쟁 관련 기업들을 특수를 누린다고 여겨집니다만, 범위를 넓혀 본다면 전쟁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 집단도 있느니만큼 경우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7-18 17:59   좋아요 1 | URL
평등은 태초 이후 그리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처럼 전쟁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 집단은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맘에 들지 않지만 서글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1-07-18 18:03   좋아요 1 | URL
네... 특히 자본주의 자체가 불평등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보니 더욱 그런 면이 어둡게 느껴집니다...

scott 2021-08-06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합니다
항상 많이 배우고 갑니다 ^ㅅ^

mini74 2021-08-06 15:47   좋아요 2 | URL
저도요. 좀 어렵지만 항상 감탄하며 읽어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8-06 16:12   좋아요 2 | URL
scott님, mini님 감사합니다. 이웃분들로부터 저 역시 많이 배우고, 더운 날에도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삳드립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초딩 2021-08-06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8-06 19:02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

이하라 2021-08-06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8-06 19:08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올림픽 관련한 논쟁에 관한 이하라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화합을 목표로 하는 올림픽이 이념 성토의 장이 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독서괭 2021-08-0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8-06 19:09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8-06 19:1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항상 감사합니다. ^^:)
 

 '용아, 나는 죽어도 무당은 안 될 기다. 용이가 다른 각시 얻어서 살아도 나는 무당 안 될 기다.'  계집애는 해죽이 웃었다. 아니 고달프게 웃었다. 신이 오르면 넉살 좋게 목을 뽑고 초혼가에 자지러지며, 천대에 대항하여 사내같이 굵게 놀던 월선네하고는 달리 말이 없고 또 말재주라고는 없던 월선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러서는 힘껏 제 마음을 표시한 셈이다.(p494)... 물방앗간 옆에 쌓아올려 놓은 보릿대에 기대서서 월선이는 남의 얘기처럼 말했다. '아무 데 가믄 우떻노.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매는 한탄하지마는.' 남의 말같이 하는데 월선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용이하고 살 수 없다면 애꾸눈이건 절름발이건 월선에게는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따라가든지 그는 제 집 없는 뜨내기의 신세인 것이다._박경리, <토지 1>, p496/530


 이번 주 <토지 1>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월선과 용이의 사랑 이야기다.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상민과 천민의 신분 차이는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고 각자 자신들의 가정을 꾸렸다. 스무 살 연상의 봇짐장수와 결혼한 월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동으로 돌아왔지만, 용이의 본처인 강청댁의 핍박에 간도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떠난 월선을 찾던 용이의 기억에 담긴 지난 시간의 기억은 월선의 아픈 마음을 짐작케 한다.


 이후 월선은 간도에서 돌아오지만, 이번에는 용이의 아이를 가진 임이네의 등쌀에 힘든 나날들을 보내다 서희를 따라 떠나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용이의 아들 홍이를 아들처럼 돌보다 결국 암(癌)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월선. 의도치 않은 선행학습(?)으로 이들 사랑의 결말을 알아 버리고 나니 월선의 죽음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선(禪)문답 같은 이들의 대화에는 끊어질 듯 이어온 이들의 사랑이 짙게 배여 있다. 사랑의 붉은 실이 있다면, 용이와 월선의 손을 이어주지 않았을까. 홍연(紅緣). 




 마루에 올라선 용이는 털모자를 벗어던졌다. 솜을 두어 누덕누덕 기운 반두루마기도 벗어 던진다. 그러는 동안 말 한마디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임자."...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_박경리, <토지 8>, p292/504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죽음 앞의 인간 L'homme Devant la Mort>에서 '타인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아리에스는 자신의 죽음이 '두려움'이었다면, 다른 사람과의 이별은 육체적인 이별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죽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죄(악)과의 이별이었기에, 새로운 구원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타인의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용이와 월선의 헤어짐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아리에스가 말한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르다. 용이와 월선은 그들의 고된 삶을 긍정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면, 아리에스의 '타인의 죽음'은 현실 부정을 통한 아름다움의 승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러한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차차 정리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토지1> 속의 용이와 월선의 가슴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다가올 아내와의 헤어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나에게 다가올 저 순간에 나는 과연 망설임없이 한(恨)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용이와 월선의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죽음은 오히려, 그때까지 억압되어 있던 비장감(파토스)을 불러일으켰다. 예전에는 과도한 감정 표출(혹은 지나친 무관심)에 대응하기 위한 방패막이로써 간주되던 침실에서의 의례 혹은 애도의 의식들이 본연의 의례성을 상실하게 되고, 유족들의 고통이 자발적으로 표출되는 장으로 개조된다. 그런데 이들이 비통해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고인과의 육체적인 이별이었다. 이제부터 죽음은 슬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고인과의 육체적인 이별이었다. 이제부터 죽음은 슬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순간으로서의 찬양의 대상이 된다. 죽음은 아름다움이었다._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p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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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17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은 끝까지 구구절절 마음 아리게 해용~ 겨울호랑이님의 독서챌린지를 격하게 응원합니당!!😊

겨울호랑이 2021-07-17 12:32   좋아요 2 | URL
둘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아요....ㅜㅜ 붕붕툐툐님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이지만 건강하게 보내세요!

samadhi(眞我) 2021-07-17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겨울호랑이님이 발췌해 놓으니 시처럼 읽히네요.

겨울호랑이 2021-07-17 23: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amadhi님. 작품 속에서 애잔하게 진행된 이들의 사랑은 독자들의 시간 속에서는 얼음 조각처럼 페이지 페이지를 장식하며 끊임없이 감정을 불러 오는 것 같습니다. ^^:)

samadhi(眞我) 2021-07-17 23:55   좋아요 1 | URL
다시 읽어보면 그 전엔 찾을 수 없었던 재미와 맛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21권을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네요. 안 그래도 읽을 책 많은데 욕심 내지 않을랍니다. 겨울호랑이님이 올려주시는 것으로 대리만족 하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7 23:57   좋아요 1 | URL
^^:) 읽어야할 책이 많은데 시간은 정말 부족한 것 같아요. 좋은 작품도 선뜻 다시 읽기가 어렵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성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 간 투쟁의 중심성의 한 결과이다. 프랑스 혁명은 이 투쟁에서 프랑스의 임박한 패배감에 뒤이어 그리고 그것의 한 결과로 일어났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헤게모니 투쟁에서 패배했던 바로 그 나라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이 미쳤던 바와 같은 영향을 세계체제에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승리의 물결을 뒤집어 엎으리라고 기대했던 프랑스 혁명은 반대로 지속적인 영국의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데에 결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지경학적(地經學的) 패배 때문에, 프랑스 혁명가들은 실제로 그들의 장기적인 이데올로기적 목표들을 달성했다. _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3>, p145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2019)은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에서 프랑스 혁명의 의의를 영국과의 헤게모니(hegemony) 투쟁에서의 패배에서 찾는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 1754 ~ 1763), 인도에서의 플라시 전투(The Battle of Plassey, 1757) 그리고 후대 아프리카에서의 파쇼다 사건(Fashoda Incident, 1899)에서 보듯 세계 전역에서 프랑스는 영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었고, 나폴레옹 제국의 붕괴 이후에는 신생 강국 프로이센(Prussia)으로부터 2인자의 위치도 위협받는 처지에 몰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쥘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는 <미슐레의 민중 Le Peuple>에서 프랑스의 새로운 희망을 민중으로부터 발견한다.


 하나의 민중 ! 하나의 조국 ! 하나의 프랑스 ! 결코 두 개의 국가가 되지 말기를 기원하노라. 단결이 없으면 우리는 파멸한다. 어찌 이것을 보지 못하는가? 모든 조건의, 모든 계급의, 모든 당의 프랑스인들이여, 한 가지만 기억하라. 당신들에게 이 지상엔 단 하나의 확실한 친구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프랑스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8/144


  민중에 대한 나의 오랜 연구 기간을 통틀어 언제나 나에게 충격을 주어왔던 그들의 중요하고 가장 현저한 특징은 결핍의 무질서와 비참한 악덕 속에서도 풍요로운 감정과 선한 심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네. 그런데 부유한 계층에게서는 그것을 거의 찾을 수 없었지. 게다가 누구라도 이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네.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기에 누가 고아들을 입양했는지 아는가? 가난한 사람들이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2/144


 <미슐레의 민중>은 '프랑스 민중'과 국가 '프랑스'를 연결시킨다. 그는 헤게모니 전쟁에서 패배하고 1848년 혁명전야의 혼란 속의 프랑스 정세를 프랑스 민중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산업화 시대 속에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쇠락해가는 프랑스의 모습에 다름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이겨내는 민중들의 모습에는 분명 미래 프랑스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육체적 허약함과 정신적 무능,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무능의 감정이다. 기계의 모든 움직임에 맞추면서 기계 앞에서 허약해진 이 사람은 공장주는 물론, 부지불식간에 그의 일감을 잃게 만들어 그의 빵을 빼앗아갈 수 있는 천 가지의 원인들에게도 종속하게 된다... 이들의 악행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극도로 육체에 의존하게 되어 본능적인 삶을 요구하게 되며 그것은 육체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어 결국 무능한 정신과 공허한 영혼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31/144


 이런 희망의 싹을 민중들은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들의 모습은 절망적이었다. 드러난 부정적인 면 대신 드러나지 않은 긍정적인 면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미슐레는 현재 세대가 아닌 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에게 주목하고, 이들에게 신념을 심어줄 것을 주문한다.


 프랑스가 다시 신념을 갖고 그 미래를 염원하기 위해서는 그 과거로 되돌아가 본연의 천재성에 천착해야 한다. 그 일을 진지하게 마음으로부터 하려 한다면 이 연구를 통해 확립된 전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로부터 미래가, 즉 프랑스의 사명이 당신에게 흘러나오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온전한 빛 속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당신은 믿을 것이고 믿는 것을 사랑할 것이다. 신념은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15/144


 구체적으로 미슐레는 본문에서 공립학교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신념을 불어넣어 줄 것을 주장한다. 민중들이 국립학교에서 국가에 대해 배우고, 자신의 신념을 세울 때 비로소 프랑스는 과거 프랑스 혁명 시대의 영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미슐레의 민중>을 관통하는 주제다. 


 어린이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조국의 영향을 미칠 기관이란 학교로서 언젠가 세워질 위대한 국립학교이다. 나는 진정으로 모두가 공유하는 학교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모든 계급의 모든 어린이들이 1~2년 동안 나란히 함께 앉아서 어떤 특정 교과를 배우기 이전에 프랑스에 대해서만 배우는 곳이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17/144


 이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대단히 강력한 것 두 가지를 갖고 있다. 프랑스는 원칙과 전설을 동시에 갖고 있다. 즉 가장 원대하고 가장 인간적인 관념과 동시에 가장 많이 따르는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세에 은총이라는 교리 속에 묻혀 있던 이 원칙, 이 관념을 인간의 언어로는 형제애라고 부른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109/144


 <미슐레의 민중>은 이처럼 변화된 프랑스의 힘을 공립교육과 우정(박애)으로부터 찾지만, 사실 이들 모두는 프랑스 대혁명의 유산이다.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 1743~1794)가 제안한 공교육에 관한 개혁안, 프랑스 대혁명의 주요 이념인 '박애'를 생각해 본다면, 결국 미슐레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통한 자본시대 극복을 강조했음을 알게 된다. 

 

 "Liberte, Egalite, Fraternite ou La Mort." '자유, 평등, 박애, 그것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이 과격한 문구가 프랑스의 국가적 이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개념이다. 애초에 인간 사회는 평등하지 않으며 누구나 배타적 자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데, 이 두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융합시킬 제3의 개념이 박애로 알려진 'Fraternite'인 셈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7> <자유, 평등, 그리고 능력주의>, p5


 평등과 자유의 고결한 친구들이여, 여러분의 힘을 한데 모아, 공권력으로부터 이성의 빛을 퍼뜨릴 수 있는 교육을 얻어내도록 하라. 그럴 생각이 없다면, 여러분이 기울인 고귀한 노력의 모든 결실이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라.(p61)... 공권력은 자신의 첫 교육이 맺은 열매를 우연 속에 방기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자상한 권위의 보살핌에 이어 이제 성인들에게는 공권력의 도움이 주어질 것이며, 그러한 도움은 성인의 독립적인 이성이 열렬히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리라. _ 콩도르세, <콩도르세, 공교육에 관한 다섯 논문>, p144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다수 민중을 '목적'이 아닌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 파악한 점,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인류의 차원으로 확장시키지 못하고 프랑스만의 사상으로 한정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미슐레의 주장은 시대퇴행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폴레옹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그의 글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무모한 돌격 전술을 감행한 프랑스 지휘관들의 무모함을 떠올린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여기에 최근 폐지가 예정된 프랑스 엘리트층의 산실이었던 국립행정학교(ENA)와 관련된 프랑스 사회의 논쟁은 그가 강조한 공립학교 교육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게 된다. 


 [관련기사]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738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한계가 명확해 보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빛을 어벤져스(Avengers)가 아닌 평범한 대중들로부터 찾으려 했다는 점만은 분명 그가 평가받을만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미슐레의 민중>이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중심으로 민중을 인식했다면, 산업국가 영국의 민중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들의 삶은 칼 마르크스 <자본 1>과도 연계된 부분인만큼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은 삶을 비추고 삶에 끌릴 뿐 고립에 의해서는 소멸한다. 삶이 자신과 다른 삶과 섞이고 다른 존재와 연계될 때 그것은 더 큰 힘과 행복과 풍요속에 존재하게 된다.(p53)... 단순한 사람들은 삶에 공감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훌륭한 재능을 갖게 된다. 그것은 최소한의 흔적만으로도 그들은 삶을 충분히 직시하고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_ 쥘 미슐레, <미슐레의 민중>, p8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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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7-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역사학자 카가 쓴 <새로운 사회>라는 책에서 프랑스 혁명이 없었으면 지금 세상이 더 좋아졌을거란 문장을 보고 충격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유는 책 끝에 얘기해 준다고 하는데 넘 기대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16 21:04   좋아요 1 | URL
저도 말씀을 듣고 보니 매우 기대가 되어 책을 담아 갑니다.미끼용 멘트가 아닌 의미 있는 통찰이 담겨있었으면 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07-16 21:17   좋아요 1 | URL
다른 사람도 아닌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대학자 카인데 미끼는 아닐거라 믿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6 21:28   좋아요 1 | URL
전체는 아니겠습니다만, 대체로 영국과 프랑스 역사 학자들은 대체로 상대국의 역사 평가에 박한 듯 합니다. 혹시 카의 평가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물론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있는지 알겠지만요.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그럼 어머니는 언제 와?" "......." "몇 밤 자면 와?" "......" "몇 밤 자면 오느냐고 내가 물었단 말이야?" 무릎을 꼬집다가 서희는 주먹을 쥐고 봉순네 가슴을 쥐어박는다._박경리, <토지 1>, p72/410 


 알라딘 이웃님 소개로 알게된 토지 독서챌린지. 운좋게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이번 주부터 매주 리뷰를 올리는 과제가 주어졌다. <토지>를 읽어야할 책으로 생각했지만, 분량이 만만치 않아 독서 일정에서 계속 밀리다보니 마음 한 켠에 부담이 되던 중 좋은 기회가 내게 다가왔다.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첫 과제를 시작한다...


  <토지 1>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서희의 어머니 별당아씨가 김 환(구천)과 함께 멀리 떠나면서 어머니를 잃게 된 서희의 모습이다. 졸지에 엄마를 잃게 된 딸아이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절로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1896 ~ 1934)가 말하듯 갑작스러운 엄마의 빈 자리는 서희에게 메울수 없는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성인은 유아기에서 모든 상황의 중심이다. 따라서 성인의 단순한 접근이나 멀어짐이 바로 어린이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급격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인이 없으면 유아는 무력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외부 세상에 대한 유아의 능동성은 마비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매우 제한되고 억제되는 듯이 보인다. 성인이 있으면 어린이의 능동성에게는 타인을 통한 가장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길이 열린다. 바로 이것이 유아에게 다른 사람이 언제나 모든 상황의 심리적 중심이 되는 이유다._ L. S. 비고츠키, <연령과 위기> , p218 

 물론, 서희에게 아빠 최치수가 있었고, 할머니 윤씨 부인도 있어 고아는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치수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아빠는 못되었다. 냉정하고 싸늘한 아빠 최치수의 모습은 어린 서희에게 곁을 내주기 어려운 존재였다. 아빠인 치수의 마음은 아마도 달랐겠지만.


 갈기갈기 갈라진 여러 개의 쇠가 서로 부딪칠 때 나는 것 같은 목소리는 여전히 음산했다. 그는 서희의 공포심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없는 싸늘하고 비정한 눈이 서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희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만 하면 당장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질 것처럼 애처롭게 그를 마주 본 채 고개를 저었다. 치수는 웃었다. 그 웃음은 도리어 서희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_박경리, <토지 1>, p44/410


 아빠와 엄마의 역할은 다르다. 물론, 아빠가 엄마처럼 또는 엄마가 아빠처럼 자식을 양육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혼자서 엄마, 아빠 두 몫을 하는 것은 분명 버거운 일이다. 특히 유교 질서가 뿌리 깊은 전통사회에서 '엄한 아버지' 상을 유지해야 했던 아버지 치수는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딸 서희에게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크게 나가지 못했던 치수의 한계로 서희의 마음 한 켠에는 채울 수 없는 빈 자리가 남아있었다. 물론, 치수 나름대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 1902 ~ 1994)가 말하듯 치수는 아버지는 딸을 훈련시키는 아버지로서 역할에 충실했을 테지만, 아마도 서희에게는 '아버지가 준 상처' 또한 자리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장차 자신의 아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갈등을 피하기 위해 욕구와 자극을 제거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든 개인(부모)들은 스스로 유년기의 갈등들을 잘 이겨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p378)... "아동이 부모의 초자아를 동일시하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이 초자아가 시대적 이상이라는 말로 집단적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초자아가 하나의 제도가 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데, 이는 크고 성난 성인과 작고 버릇없는 아이라는 상대적을 내면적으로 영속시키기 때문이다. _에릭 H.에릭슨, <유년기와 사회> , p379


 <토지> 작품에서 치수는 딸 서희에게 차가운 아버지로 나오지만, 다행히(?) 늙었을 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는다. 너무도 이른 시기에 세상을 떠나 버리기에, 치수 - 서희의 관계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 1938 ~ 2018)의 걱정과는 달리 회복불가능할만큼 손상받지 않는 것이 그나마 이른 죽음에 대한 보상이라고 봐야할까. 


 부모도 자녀를 괴롭힐 수 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의 이런 성향을 금새 파악하고 학습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나빠질 것이다. 부모의 억압적 행동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부모 - 자녀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불가능할 만큼 훼손될 수 있다.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에 다정하게 대하라. 그러면 아이도 당신이 늙었을 때에 당신에게 잘 할 것이다.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p486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 졸지에 집안 마님이 하인과 눈이 맞아 도망가버렸다는 상황에서, 남겨진 서희 할머니 윤씨 부인과 아버지 최치수, 그리고 간난할매와 봉순네 등 집안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머니 별당아씨와 구천의 빈자리를 메우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서희는 그들의 바람처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작품에서 표현된다.


 집단성이 취약하거나 부재한 상황에서는 분화가 동화를 압도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다양한 방면에서 찾고 가족 내에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확보한다... 가족의 빈틈 채우기가 구성원 각자의 재능과 관심에 잘 맞고 이를 북돋울 만하다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가족 내 빈틈 채우기와 역할 배정이 성격에 영속적인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p472


 요즘 서희는 엄마 데려오라 하면서 패악을 부리지는 않았다. 차츰 엄마의 일은 뭔지 모르나 불가한 것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꼬투리 잡아 울부짖었고 누구든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싶을 때 그는 겉돌려 가며 방금 길상에게 한 것처럼 더듬어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_박경리, <토지 1>, p214/410


 훗날 조준구에게 평산리 재산을 다 빼앗기고, 간도로 건너갈 수 밖에 없었던 서희. 2부에서 그려지는 서희의 모습은 냉정하고 자존심 높은 치수의 모습 그대로다. 그토록 공포스러워 했던 아버지를 어느새 닮고 있던 서희.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폭력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라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서희 또한 무서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것은 아닌지. <토지 1> 초반에서 서희의 아픔과 함께 서희에게 물려준 치수의 유산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된다...


 조언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존감이란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만일 부모가 자기 이미지 형성을 잘 돕는다면 자녀는 적절한 자존감을 지닌 인간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녀는 결국 실패로 향하는 편도행 티켓을 쥐게 될 것이다.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p481


ps. 다른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드라마 <토지>의 최서희는 역시 최수지라는 생각을 한다...


[사진] 드라마 '토지' 의 서희(최수지) [출처 :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5021500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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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10 2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토지 독서 챌린지 시작 하셨네요 전 N년째 9권에서 멈춰서 올해 완독을 목표로 했는데 다른 책들이 눈이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7-11 07:16   좋아요 3 | URL
저도 독서계획을 세워도 도중에 빠지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아서요... ㅜㅜ 끌려가게 될 지 끌고 나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완주를 했으면 더할 나위 없을 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1-07-10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언제적 화면일까요?
저도 이 드라마 생각나요!
저는 토지 읽다가 박경리 작가님이 서문에 썼던 작가의 고통이 뭔지 알것 같아서 숨이 막혔었어요.
그 질기고 처절한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시대의 아픔을 당신 스스로가 겪었으니 끄집어 낼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했어요!
김약국의 딸들은 토지의 전초전 같은 느낌이 들었구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7:17   좋아요 3 | URL
정말 오래된 드라마지요 ^^:) <토지>를 읽을수록 인물 하나하나에 성격에 성격을 드러내는 언행을 적절하게 배분한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됩니다. <김약국의 딸들>은 <토지>를 읽을 후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samadhi(眞我) 2021-07-10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1권을 다 읽은 제가 참 놀라웠지만(?) 저는 재미없었습니다. 15년 전에 읽었기에 가능했고 지금이라면 읽다가 접었을 거예요. 조정래 대하소설이 제게는 더 잘 맞았거든요. 그 오랜 세월 암투병 해가면서 투지로 글을 써낸 작가가 존경스럽지만.

겨울호랑이님이 이제 막 읽기 시작하시는데 이런 얘기하는게 무례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취향이 다른 거겠지요. 우리 시누이도, 대학 후배도 이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고 하니까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9:51   좋아요 3 | URL
아니에요. 저도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만, 박경리 작가의 세계와는 또다른 맛이 있음을 느낍니다. <토지> 전반부와 시대적 배경을 같이 하는 <아리랑>의 경우 특히 인물들의 전형성이 강한 것이 조정래 작가의 매력이라 느껴집니다. 덕분에 작품을 역사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가령, 송수익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의병-독립군으로 이어지는 ‘선(善)‘에 해당하는 반면, 양치성 같은 경우에는 ‘악(惡)‘역으로 볼 수 밖에 없는 듯해요. 반면, <토지>의 서희는 주인공이면서도 집안 원수를 갚기 위해 친일(親日)마저도 거리낌없니 하는 인물로, 악역인 조준구는 그 악행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감각, 현실인식은 최치수보다 앞서 있는 모습 등을 보면 분명 읽는 맛이 다른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에 대한 선호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samadhi님께서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듯 합니다.^^:)

samadhi(眞我) 2021-07-11 09:22   좋아요 2 | URL
저는 겨울호랑이님과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박경리가 그려내는 인물이 전형성이 강해서 재미가 없고 조정래가 그려내는 인물이 역동성이 강해 독자를 쥐락펴락했다고요.(하마터면 딱 이렇게 댓글 달 뻔했는데)

조정래 작품은 훨씬 전에 읽었고 토지는 그 뒤에 읽었는데요. 워낙 오래되기도 하고 제가 어려서 인식이 낮기도 했을 겁니다- 지금이라고 더 나을 것도 없지만 ㅋㅋ

지금 읽고 있는 겨울호랑이님 말씀 듣고 보니 ˝되차!(과연)˝ 하게 됩니다. 겨울호랑이님 균형감각이 남다르다고 보거든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9:38   좋아요 2 | URL
samadhi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는 또 새롭게 생각하게 되네요. 말씀하신 부분에 유념해서 읽다보면 작품을 그만큼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필력 좋은 대가들의 실력으로 우리 역사의 아픈 부분을 생각하고,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큰 축복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작품을 보는 여러 의견도 함께 배워간다면 더풍성해질 듯 합니다. samadhi님 작품에 대해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딸기홀릭 2021-07-11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작년 10월에 시작했는데 이제 4권 들어가요
겨울호랑이님의 주간리뷰 보면 저도 자극이 될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1-07-11 07:24   좋아요 3 | URL
딸기홀릭님 감사합니다. 매주 과제가 부여되었으니, 학기를 마치는 심정으로 잘 해보겠습니다^^:)

thkang1001 2021-07-11 05: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토지 독서 챌린지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1 14:14   좋아요 3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끝까지 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ini74 2021-07-11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초딩들이 토지를 읽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만화 토지 청소년 토지 ㅠㅠ. 굳이 그렇게 읽어야 하나 싶고.ㅠㅠ저 드라마 아빠랑 매번 봤는데 ㅎㅎ 서희 연기가 안습이라 슬펐던. 그래서 조연들 연기가 더 빛났지요. 겨울호랑이님 파이팅 !!

겨울호랑이 2021-07-11 11:28   좋아요 2 | URL
저도 막상 읽으려하니 방대한 양에 눌려 시작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진도를 체크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하드캐리(?)해 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mini74님 감사합니다!^^:)
 


 사치산업과 자본주의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 또 사치수요의 증대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지녔는가는, 우리가 오랜 수공업의 틀 속에서 나타났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분화된 사치산업을 검토할 때야 비로소 완전하게 평가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자본주의에 속하게 된 수공업의 분야가 언제나 사치수요를 위한 생산 활동을 행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기회에 획득할 수 있는 경제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95/243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 ~ 1941)의 <사치와 자본주의 Luxus und Kapitalismus>는 '사치'가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에 매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엄밀하게는 '사랑' 보다는 '애정'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 싶다.)


 사치란 남녀 간의 사랑(특히 비합법적인 사랑)과 관련이 있는 육욕적인 소비 행위이며, 이러한 감각적인 소비 풍조가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서구 사회에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236/243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 산업생산의 조직에 대해서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매우 많은 경우(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에 문을 열어준 것은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는 수공업으로 철저히 둘러싸여 있던 도시에 진입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47/243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서구사회에 만연했던 '애인'을 갖는 풍조 속에서 애인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는 유효수요가 있었고, 이러한 유효수요가 때마침 인클로저(Enclosure Movement) 등으로 도시 근처에 밀집된 수공업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베르너의 주장에 대해 여러 문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살펴보려 한다.


 좀바르트는 먼저 거대한 궁정(宮廷)과 이를 둘러싼 귀족 사회에 대해 말한다. 프랑스에서 발달한 궁정사회의 중심은 왕과 그 주변의 연인들이었다. 전제권력을 지닌 왕은 자신의 향락욕구와 함꼐 애인(愛人)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침이 없었고, 이러한 풍조는 곧 궁정을 둘러싼 귀족들에게로 퍼져 나간다. 바로크(Baroque)를 탄생시킨 절대권력.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 1870 ~1940)의 <풍속의 역사 Illustrierte Sittengeschichte vom Mittelalter bis zur Gegenwart>는 이같은 절대권력과 주변 귀족에 의해 방탕함(그리고 사치)이 퍼져 나가는 상황이 잘 표현된다.


 궁정을 맨 처음 만든 이는 프랑수아 1세이다. 그는 여성을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함으로써 궁정을 만들었다... 프랑수아 1세는 교활한 전제정치에 매혹적인 황홀함을 곁들여서 궁정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프랑스의 모든 활력과 세속적인 세계가 왕을 중심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여자와 함께 음모, 정사, 그리고 사치가 발생하였다.(p10)... 이 세계를 언뜻 들여다보면 그 세계 전체가 여성의 지배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동시대의 사람들도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1/243


 나는 앞에서 궁정은 언제나 지배계급의 일반적인 방탕이 모범이라고 썼다. 우리는 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절대군주는 거의 모든 권력을 수중에 넣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향락욕구 역시 가장 대담하게 채울 수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지배계급, 곧 귀족이나 부호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하는 계급에서는 변함없이 지저분한 방탕이 만연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했다._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3 : 色의 시대>, p273 

그렇다면, 이들의 방탕함이 지배계급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1897 ~ 1990)의 <궁정사회 Die ho"fische Gesellschaft>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 ~ 1929)이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말한 '과시적 소비'는 품위유지비였으며, 이를 위해서 지출되어야 하는 금액이었다. 물론, 이러한 금액의 과다가 이른바 '혁명의 시대'를 가져오게 되지만, 이와는 별개로 '자본의 시대'의 씨앗으로도 해석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렇지만, 궁정사회만으로는 사치가 자본주의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사치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사회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확산되었다. 


 수입보다 지출을 적게 하고 가능하면 현재의 소비를 수입수준에 맞추고, 앞으로 소득이 더 높아질 것을 바라면서 절약한 차액을 의무적으로 재투자하라는 직업시민의 사회윤리가 존재한다. 이러한 직업시민적인 행동규범은 특권소비의 규범과 다르다. 이처럼 다른 윤리, 즉 지위에 기준을 맞춘 소비(status consumption ethod)의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오로지 한 가문이 기존에 누려온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사회적 체면을 높이며 사회적으로 성공하는가의 여부는, 가계운영비/소비/지출에서 무엇보다도 그 가문이 소유하거나 추구하는 사회적 서열과 지위 및 특권에 좌우된다. 자신의 서열에 걸맞게 등장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존경을 상실한다._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궁정사회>, p154


 좀바르트는 <사치와 자본주의>에서 르네상스 말기부터 화폐경제, 도시의 활성화에 주목한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기존 지주 계층과는 다른 형태의 재력가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이 새롭게 귀족 계층에 편입되면서 궁정 사회는 도시 사회로 확대된다. 이는 부르주아(bourgeois) 귀족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바로크에서 로코코(Rococo)로 문화예술양식에서의 변화도 이 시기에 일어난다.

 

 특히 1600년에서 1800년에 이르는 200년 동안 옛 귀족과 새로운 화폐 재산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되었다. 이 계층은 내적으로는 새로운 부를 대표하였지만, 외적으로는 아직도 봉건적인 생활양식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벼락부자들 중 대부분이 귀족 신분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뜻한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8/243 


 근대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크고 일반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막대한 재산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능력 이외에는 자신을 눈에 띄게 할 만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벼락부자들, 즉 이러한 졸부들이 자신의 물질적이고 배금주의적인 세계관을 오래되고 고귀한 가문들에게 전하였으며, 또 그로 인해서 그들이 사치생활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갔다는 사실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10/243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자신의 권력 충만의 중요한 조건으로서 늘 염두에 두고 면밀하게 감시했던 귀족과 시민사회의 각 최상층 사이의 사회적 장벽이 영국에서는 모호하고 느슨했다. 부유한 시민 출신의 영국의 대토지 소유주를 일컫는 특수계층인 젠트리(Gentry)는 특권 형성에 개입했고, 일반적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지위의 경쟁관계의 압력을 받았으며, 지위의 소비에서 그 무렵의 주도층인 귀족가문 못지 않게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영국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파멸한 무수한 가문이 있었다._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궁정사회>, p156



 그리고, 상류에서 하류로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말 그대로 이 시기는 '색 色의 시대'가 되버렸다. 남녀 누구나 공공연하게 정부(情婦)를 두고 있었던 시대에 애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치품의 수요는 급작스럽게 팽창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와 계급의 주변부, 예컨대 경제관계로 그들과 얽혀 있는 계급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무절제한 방탕이 자행되었다.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봉건주의의 침략을 받은 도시의 풍기를 비교해보면, 추악함은 언제나 상류층에서부터 가장 낮은 서민층으로까지 마침내 흘러가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다._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3 : 色의 시대>, p279


 또한, 사치품에 대한 강력한 유효수요(有效需要)는 도시에 밀집된 수공업자들을 자극하게 되었다. 화폐를 기반으로 큰 시장이었던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주로 외상거래로 이뤄지는 사치품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는 점을 좀바르트는 지적한다.


  대도시들도 기본적인 의미에서는 소비도시였다. 대 大소비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군주, 성직자, 고관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중요한 집단이 추가되었다. 즉 대자본가가 그들이었다.(p36)... 국민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 수입의 상당액이 도시에서, 특히 대도시에서 소비된다면, 사치 문제는 대도시 문제와 결합한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51/243


 사치품을 거래하는 상인은 다른 사정이 똑같다고 가정한다면 언제나 많은 자본을 수중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상품의] 회전이 (외상 제도 때문에) 느렸기 때문이다... 판로의 공간적인 확대, '해외시장', '수출'이 자본주의적인 조직을 '필요'로 하였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뛰어난 연구가이며 진실로 생산적인 사상가인 칼 뷔허 Karl Bucher의 이론에서 강력한 버팀목을 찾았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수공업은 고객의 주문에 의한 생산이며 자본주의는 익명의 고객 집단을 위한 생산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수공업이 국지적인 판매라면, 자본주의는 초 超 국지적인 판매라는 것이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47/243 


 이러한 유럽 사회 내부의 움직임과 함께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가 열리면서 해외에서도 사치품(또는 원재료)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를 가공하는 제조업과 거래하는 금융업이 함께 일어난 것이 유럽의 외부 상황이라 할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 세계적으로 소비자 사회가 시작되었다. 앞선 몇백 년 동안에도 대륙간 교역을 통해 이국적인 물품들이 유통되었지만, 동양의 사치품이 일상용품으로 바뀌고 군주나 귀족뿐만 아니라 사회 중간층 가구도 입수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에 와서 이루어진 일이다.... 대륙 간 교역으로 거래된 물건은 개인의 생활 방식과 공중 영역에서의 자기표현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유럽 사회 전역에서 널리 입수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자극성 식품은 커피와 차였다._ 세바스찬 콘라드 외,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 1750 ~ 1870>, p543/713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여성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설탕이 매우 빠르게 애용되는 기호품이 되었으며, 또 설탕이 있었기 때문에 코코아, 커피, 차 등의 자극제가 유럽에서 매우 신속하게 널리 애용되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품목의 무역, 유럽 식민지에서의 코코아, 커피, 설탕의 생산, 그리고 유럽 안에서의 코코아의 가공과 원당 原糖의 정제는 자본주의 발전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28/243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가 유명한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말한 근면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도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사치가 자본주의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생소할 수 있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일리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사치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는 좀바르트 주장은 받아들이도록 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가보자. 전쟁은 어떻게 자본주의 를 발전시켰는가. 다음 주제는 <전쟁과 자본주의> 다...






나는 <근대 자본주의> 중 재산 형성을 다룬 장에서 귀족의 궁핍화가 시민계급 대금업자를 부자로 만든 원천이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봉건 재산이 부르주아 재산으로 전환되는 이러한 과정이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10/243

사람들은 사치가 당시에 발생 중에 있는 경제형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인 경제형태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따라서 경제적인 ‘진보‘의 지지자들은 모두 또한 사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그들은 기껏해야 지나친 사치소비가 자본 형성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하였을 뿐,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자본의 재생산과 축적을 확실하게 해주는 검소한 사람들은 이미 충분하게 있다는 확신으로 자신을 위로하였다._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p14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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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7-09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애/방탕-> 사치 -> 자본주의라니. 흥미롭네요. <유한계급론>은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ㅜㅜ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9 16:51   좋아요 3 | URL
좀바르트의 관점은 자본주의를 신성시하는 기존의 관점과 궤를 달리하기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베버보다 잘 짚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독서괭님 금요일 저녁 즐겁게 보내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1-07-09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유물론보다 관념론을 더 믿는 편이지만,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는 넘 ‘구라’가 심한 것 같습니다. ㅋㅋ 넘 마르크스를 의식해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성어린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09 22:13   좋아요 1 | URL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베버의 사상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서 그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새삼 학문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4단계로 고요한 금요일 밤 평안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