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의 사이 - 우리들사이시리즈 3
하임 기너트 지음 / 종로서적 / 198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교직에 들어 오기 전부터 시작해서 한 다섯 번은 읽은 듯 싶다. 엊그제 우연히 책을 치우다 눈에 띄어서 다시 읽게 된 책.

경력이 쌓일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이렇게 경력이 많은데도, 아이들을 떠들게 하다니... 교실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다니...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맨날 잔소리를 퍼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이 교사는 잔소리를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좀 착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내뱉는 말들 중에 도낏날이 선, 비수가 된, 못을 박는 말들을 제어할 수 있기때문이다.

비꼬는 말.
욕하는 말.
공격적인 말.
판단해 버리는 말.

이런 것들은 아이들의 싹을 자른다.

문제는... 나는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날마다 비꼬고, 욕하고, 공격하고, 판단해 버린다.

참을성 없게도...

새해가 한 달 남았다. 난 새해라든가, 뭐, 이런 것들을 제일 싫어한다.
그렇지만, 새해 소망이 있다면, 조금 더 착해진 선생이 되는 일이다.
착한 선생은 아이들의 싹수를 싹둑 자르진 않을테니 말이다.

이 책을 교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고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아무데나 뒤적거린다면 조금 더 착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신 교사라면, 반드시 오늘 밤에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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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1-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임 기너트, 저는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교직 시간에 아무런 실감없이 억지로 읽어서요. 오히려 글샘님 글에 안도하고 기운얻고 갑니다. 새해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글샘 2006-01-0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임 기너트의 -사이 시리즈를 참 좋아합니다.
착해지는 느낌이거든요. ^^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방학을 맞아 전 직원이 여행을 떠났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버스 안이 조용해서 좋다.
전엔 버스 안에서 음주와 노래방 모드가 혼재해서 관광버스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던 데 비하면...

여간해서 잠이 오지 않아서 비상용 책을 펴 들었다.
표지를 보고, 오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용기 같은 걸 떠올렸던 것 같은데,
책을 펴들고는 공감하는 대목에 진도가 빨라졌다.

이 책을 중간 정도 읽고는 눈이 피곤해서 좀 쉬었는데,
그 이후는 별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몇 가지 안 되지만, 교직에 몸 담은지 이십 년에서 몇 년 빠지는 나로선,
동감할 부분이 정말 많았다.

내가 초보 교사이던 시절,
아이들이 떠들고, 말을 안 듣고,
수업을 잘 듣는 것 같지 않고,
내 말은 아이들에게 감동적으로 날아가지 않을 때,
교실에 들어가기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에 비유됨이 적절함에 동감했다.

그런데, 십년도 훨씬 넘은 지금,
내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킬 줄 아는 기술은 익혔지만,
아이들에게 내 수업이 정확히 먹혀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하단 생각이다.

아이들이 나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되었고,
나도 아이, 수업, 우리의 관계, 그리고 나 같은 것들에게 여전히 공포를 느끼고 있다.
변한 것이라면, 아이들은 나를 멀게 생각한다는 것.
내가 초보 시절, 경력 많은 선생님들의 앞에선 고분고분하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좀 부끄럽다.

그래서 그랬던가 보다.
초보때 아이들을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지금 십여 년 전보담은 국어란 교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수업 기술도 훨씬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테크닉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했고,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그 아름답던 시절을 추억하게 해 준 책이다.

가르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맞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늘 자괴감을 갖게 되는데,
문제는 내 앞에 선 그 무능력한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 앞에서 <무기력>을 느끼는 <나 자신>이다.

이제 다시 방학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교사들이 방학이면 완전히 학교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방학이 없다면 교사들의 퇴직 신청이 얼마나 많이 늘어날 것인지를...
방학을 통해서 녹이 낀 자신을 닦아 내려고 연수원 강의실은 얼마나 후끈 달아 오르는지를...
집에서만 보낸 방학보다 연수원에서 보낸 방학이 훨씬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다음 주부터 2주간 <중등학교 전문 상담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1년간 실업계 아이들의 무식함을 탓했던 나 자신을 닦는 기회가 되도록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남은 방학 동안은 교지를 만들러 다녀야 한다.

별로 보는 사람도 없는 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기가 귀찮긴 하지만,
내 이름이 뒤에 조그맣게 찍히는 책에, 맞춤법 오자 투성이인 책을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다.
교지는 아주 얇게 만들 계획이다.
예산은 많지만, 많이 남길 계획이다. 돈이 아까워서.
내 돈은 아니지만, 그것이 모두 혈세가 아닌가 말이다.
솔직히 교지 나눠주고 나면, 버리는 것이 절반 이상이다.
조선일보 욕할 것이 아니다. 내년엔 우리 학교에서 먼저 교지 없애기를 해 보고, 결과가 좋으면, 널리 힘을 모아볼까 생각 중이다.
고등학교 하나에서 드는 돈이 500-1000만원이다. 부산만 해도 고등학교가 1300여개니깐 연간 수십 억의 돈이 교지란 책으로 낭비된단 생각을 하면, 아깝기 그지없다.

이 책을 <지친 교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방학을 통해, 우리 교사가 얻어야 할 것은,
해외 여행을 통한 견문도, 많은 공부를 통한 지식도 아닌,
또 다음 학기를 버텨낼 <용기>이고,
나 자신 가치로운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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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가지고 있어요. 이번 방학 때 꼭 읽을게요.
저도 가르칠 용기가 필요한 시점 같군요^^

글샘 2006-01-03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어 보세요. 다 읽으실 필욘 없을 것 같고, 앞의 두세 챕터 정도...
거짓의 사람들처럼 뒷부분은 재미없는 곳도 있더라구요.

글샘 2006-06-1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9쪽
나는 나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교수방법,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때 스승의 힘은 교수방법과 인품이 일치할 때 가장 강력하게 발휘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교사로서의 내 성품을 알아내어 그것을 교수방법과 일치시키려는 길고 긴 과정에 들어섰다.

59쪽
Jane Tompkins'고통받는 사람들의 교육학'에서..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서 고백한다. 자신이 학생들이 알아야 하고 알고 싶어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세가지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첫째,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똑똑한 교사인지를 보여주는 것,
둘째,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지식이 많은지는 보여 주는 것,
세째, 학생들에게 내가 얼마나 수업준비를 충실히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나는 이처럼 교실에서 세가지 연기를 해 왔는데, 그 진정한 목적은 .. 학생들이 나를 훌륭하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체성과 성실성을 추구할 때 내가 발견하는 것이 언제나 자랑스럽고 환히 빛나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자아의식을 형성한 만남들을기억하여 찾아 낸 정신적 발견은 때때로 당황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생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 당황의 대가에 상관없이 나는 내 안에서 작용하는 여러가지 힘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힘들이 나의 교직활동을 부지불식간에 파괴하도록 놔두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훌륭한교사가 된다.

플로리다 맥스웰은 80대 중반에..
"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이 되고 싶으면 과거의 인생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됩니다. 과거에 당신이 존재했던 방식과 당신이 했던 일을 진정으로 당신의 것으로 인정한다면 당신의 현실 인식은 한결 치열해 질 것입니다."

60쪽
의무감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거기에는 긴장과 폭력이 따르게 된다.. Frederic Buechner프레데릭 뷔흐너 의 직업에 대한 정의.." 직업은 당신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서로 만나는 장소이다."

---------
심쌤이 읽으시다가 메신저로 날려 주신 좋은 구절들.^^
 
아이를 절대로 탓하지 마라 - 초등 편
아케하시 다이지 지음, 김경인 옮김 / 프리미엄북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오늘 낮에도 상담에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이 책도 내용은 비슷하다.
그런데, 그 책엔 별점을 두 개 줬고, 이 책엔 다섯 개를 줬다.

이 책은 초중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일단은 어렵거나 지겹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콕콕 찌른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초등편이고, 노란색 표지의 사춘기편도 나왔다는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일본의 아케하시 다이지란 정신과 의사가 쓴 글인데, 초등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해서 아이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따스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 부모도 있겠지만,
이 책은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와 상담하는 새로운 눈을 띄워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장점은 상담에 문외한이라도 쉽게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책의 단점은 마찬가지로 조금 관심을 두고 이런 책들을 읽은 분들껜 부족하단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부 안 해본 아이들에게 '핵심', '요점', '급소'란 말이 먹혀 들듯이 이 책도 아이들의 상담에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분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자기 평가가 낮아질 수 있는 조건을 가정, 학교, 사회문화적 측면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는 것도 글을 쉽게 따라가게 한다.

밑줄 좍 긋고 싶은 부분을 몇 군데 적어 둔다.

-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자 한다면 당일이나 늦어도 그 다음날이어야... 포인트를 놓치지 말자.

- 야단을 쳐도 되는 아이(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 태평한 아이)가 있고, 야단을 쳐서는 안 되는 아이(소심한 성격, 고집 불통)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야단치지 말고 사정을 들어주어야...

- 가정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가정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가 문제다. 부모가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는 것이 참된 가정 교육

- 제멋대로이고 잘못된 아이는 '제멋대로 하는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제멋대로 행동해도 좋았을 시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 과보호란 결코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이야기를 들어줄 때는, 자신이 말하는 시간보다 상대방이 말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의 조건(상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여기에 상담의 성패가 달렸다.)

-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하면, 자기 평가를 높일 수 있다. 비행청소년일수록... 더...

-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때, 절대 부모님을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고를 위로해야 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리 어른을 구하는 길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희망을 억지로 떠다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부모가 해야할 일은 스무살 전의 자녀들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기질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가진 그대로, 그가 표현하고 싶은 그대로를 존중해서
여러 가지 분야가 모여 전체를 이룬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데 있다.
부모의 희망과는 다른 희망을 표시했다 하더라도
부모는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찬성하고 반대하고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있다.
찬성해주면 자식은 용기를 얻을 것이며, 반대한다면 위축될 것이다.(로렌스 굴드)

교사는 마음으로 아이를 조각하는 교실 안의 피그말리온이다.
진정한 조각가는 돌부터 탓하지 않는다.
그 어떤 돌이든 돌을 접하는 그 순간 그 돌이 자기의 손과 끌을 거쳐
하나의 위대한 작품으로 변모할 그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이
바로 조각이 무엇인지를 아는 예술가인 것이다.(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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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우리 집에 속 썩이는 아이가 있는데요
안향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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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없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다.
문제 없는 어른도 하나도 없을 것이다.

불교의 네 가지 고통의 첫 번째는 생(生)인데, 이것은 태어나는 것이라기 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 사는 것,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홀로 살아가지 않고, 더군다나 부모와 자식의 사이에서는 끈적한 유대감을 필수로 한다.
그렇지만 사회,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가족 관계는 상당히 뒤틀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 공부'를 외친다.
예전 부모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먹고 살기 급급해서 애들은 형제들끼리, 친구들끼리 그저 자라는 건 줄 알았다.
90년대 이후, 80년대의 호황을 타고 경제 성장이 이뤄지자 자기 자식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많이 쏟게 되었고, 부모의 과잉보호가 사회 문제가 되게 되었다.
형제도 적은 아이들은 드디어 '신경정신과적' 환자로 분류되게 된 것이다.

70년대 모든 학생들도 환자였다. 애국주의적 환자, 군국주의적 환자, 반일감정과잉적 환자, 그리고 가장 심한 레드 컴플렉스 환자...
그렇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못사는 나라였기 때문에 나의 가정 환경 같은 것은 불평의 소지가 없었다.
농촌에서는 도시로 나오면 저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먹고 살 수는 있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아이들은 부모의 과잉 기대와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살에 이르기까지 하는 둥,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가는 듯 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충분히 학부모들에게 어필할 만 한 것이다.
부모의 한을 자녀를 통해 풀려고 하는 현실,
자녀와의 스킨십의 중요성...
그런데, 글들이 지나치게 짤막짤막하고, 무얼 전달하려는 것인지 초점맞추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저자의 약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충분한 상담 경험을 가지지 못한 저자가 자기 주변의 막연한 이야기들을 주워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의학은 더이상 전문가들만의 학문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정신과적 상담에 접근할 수 있는 글들이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나왔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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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얌순이들의 보고서 청소년 리포트 4
안재희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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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가르친 아이 중에 과학고에 다니다 일반계로 전학온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미용실엘 갔는데 어느 학교 다니†v서 '부산과학고' 다닌다고 했더니
'주간이냐, 야간이냐?'고 물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했다.

000 컴퓨터 과학고, 00 디지털 고교, && 정보 과학고... 이런 학교들이 숱하게 있다 보니, 그 미용실 아가씨는 부산과학고를 그런 실업계 고교로 혼동했던 모양이다.

상고, 공고들이 더이상 존재 의미를 잃어 가면서, 허울만 '과학, 정보'로 바뀌었다.
교사도 그대로고, 교육 과정도 그대로인데, 학교 이름이나 학과 이름만 희한하게 바뀌었다.
이건 명백한 눈속임이고, 과대 과장 광고임에 분명하다.

태풍의 눈에 들면, 잠잠한 지역이 있단다.
실업계 고교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교육의 질은 떨어지지만, 분명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곳임에도 교육은 없다.

이 책의 가치는 실업계 고교의 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분석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대부분의 이런 책을 낼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실업계를 알지 못한다.
그것도 30년 전의 산업 사회에 맞춰서 생긴 실업계 고교가,
그 투자 효과를 다 얻고 이젠 시들해져 버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재정적 투자를 요구하는 공룡처럼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할 때가 많다.

일반계 고등학교엔 시설이랄 것이 별로 없다.
그저 교실에 형광등이나 부지런히 갈아 주고, 여름에 에어컨, 겨울에 히터나 잘 때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실업계 고교엔 시설이 많다.
공고의 경우에는 학과 별로 실습 동이 있고, 수천만원대 기기들이 수두룩하다.
상고(요즘엔 정보고로 많이 탈바꿈했지만)의 경우에는 고액의 기기들은 적지만, 최신 기종의 컴퓨터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실업계 고교는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이 책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집어내고 있다.
고교의 교육과정과 교사의 구성이 학생들과 사회의 요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얌순이들이란 용어는 연구를 위해 저자가 만든 용어다.
공부를 잘 하면서 얌전하게 생활하는데, 취업을 준비하지 않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실업계에 들어오면 열패감에 젖어든다는 것을 모르는 학부모나 중학생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일반계 커트라인 안에 드는 아이들은 수백 명 중에서 몇 되지 않는다.
일단의 패배감에 젖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물론 '여기서 잘 해서 대학을 가야지'하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다.

그렇지만, 학교 전체가 도와주지 않는다.
교육과정 자체가 실과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교사 요인에선, 실과 교사는 70년대 풍 그대로 강압적인 실세가 많다. 연령대는 거진 50대 이후다. 실과 교사는 이동이 별로 없거나 이동하더라도 서로 아주 잘 알아서 사립학교나 다름없는 분위기다. 70년대처럼 생활검열을 하고 소지품 검사를 한다.
일반 교과에는 잠깐 머물다 가는 뜨내기 의식을 가진 교사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하긴 하지만, 의욕적으로 뭘 해볼 염은 낼 수 없다. 그저 몸이나 건강하게 돌보고, 월급이나 타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신규 여교사가 많다는 것도 하나의 한계가 될 수 있다.
학생 요인이 제일 심하다. 학습 장애 수준의 학생들이 수두룩하고, 파괴된 가정에서 사랑없이 자란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교사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적인 아이들도 많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얌전한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일반계 아이들보다 이 아이들이 진학률도 더 높다. 80%를 상회한다.

실업계 고교는 더이상 '실업 교육'을 원하지 않는 중간 단계의 교육기관이 된 지 오래다.

이 책이 갖는 한계는, 실업 교육의 대안 내지는 개선 방향의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식 자체가 '보고서'로 명확하게 한계를 긋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실업계 학교에도 적응하고, 사회에도 적응하려는 '얌순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기는 했지만,
현재의 실업 교육의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한계가 너무도 명확하다.

지각, 조퇴, 결석 등으로 '개기거나',
수업 시간에 무관심하고 엎어져 자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모습을 띠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흡연, 절도, 폭행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외부에서 음주, 절도, 폭행, 패싸움, 원조교제, 임신 등의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감싸안을 수준이 못되면서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아이들을 고스란히 받아 대책없이 내굴리는 교육의 무풍지대가 한국의 실업계 교육이다.

내일까지 중학교 3학년들의 원서 접수가 실시되고 있다.
이미 거의 접수를 마쳐 가는데, 78% 정도에서 마무리 될 듯 하단다.
이 아이들이 가지는 행동 특성에 맞도록 학교를 리모델링하기엔 너무도 공룡처럼 거대하다.

한국은 이미 가고 있는 기차는 멈출 수 없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한 나라 아니던가.
세계적 쪽팔림을 감수하고 있는 <새만금>이 그렇고,
이미 실패임이 실시 전부터 예고된 <제 7차 교육과정>이 그렇고,
돈만 퍼붓고 교육은 이뤄지지 못하는 <실업계 교육>이 그렇다.

미래가 없는 학교에서 현재의 아이들과 부대끼는 하루하루는 날마다 힘들고, 조금은 서글프고, 매일 어깨가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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