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 김대유의 생활지도 딜레마
김대유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제목만 본다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억울한 대접을 받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 붙인 제목이다.

내용을 읽어 보면, 생활 지도 차원에서 아이들과 교사들이 겪는 <딜레마>에 대해서 다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교실 안에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러면서 문자를 날리고, 쪽지를 보내고, 수화를 나누고, 바디랭귀지에 익숙한 아이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흡연이 질이 난 아이들, 공부 시간에도 핑계를 대고 보건실로 대피하거나 담을 넘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가하는 아이들, 심하게는 약한 고리를 골라 왕따를 시키거나 이지메를 행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아이들, 가난이란 불만을 도둑질을 통해 엠피3, 시디피, 참고서, 심할 경우엔 비싼 책가방, 운동화(20만원 짜리도 있다.)도 장물로 처리한다. 교사들에게 수시로 거짓말을 둘러대고, 아이들의 세계에만 통용되는 진실이 학교에는 왜곡되어, 결국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생활 지도는 가장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가장 복잡하다. 일반 사회의 범죄와는 달리, 죄질이 아주 경미한 다툼에서부터, 조직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사건이 터지고 나면, 이미 학생이나 교사 양편 모두 상처를 입은 후라는 것이다.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예방 주사로 모두 막을 수 있는 병은 병이 아니다.

몇 년 전 전국에 창궐하던 <가출>이란 전염병은 요즘은 사라져 간다. 아이들이 집 나가서 사서 고생하는 일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리고 꼴통일수록 휴대폰은 필수품이 되어, 쉽게 노출되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이 멀리 가서 짜장면 배달하며 집을 벗어날 정도로 강인하지 못한 것 같다. 여학생들은 어른들은 만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나머지 시간은 피시방 같은 데서 오천원만 내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찜질방에서 잘 수도 있고... 남학생은 동네 아이들 협박해서 몇 만원은 쉽게 뜯어낸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용돈이 전혀 없이 교통 카드만 들고 다니는 아니는 없다고 하니깐.

요즘 새로운 전염병은 <교실에서 꼴통짓 하기 - 곧 학교붕괴로 이어지는>와 <약자 괴롭히기> 정도가 아닐까. 아이들이 도망갈 곳이 있어서 집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님을 알아 채야 한다.

오히려 학교에서 내쫓은 아이들을 <적응 교육>이란 해괴한 미명하에 학교로 들여 보낸 후,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혀 권위가 없어졌다. 언제든지 복학하고 전학가면 그만이지 퇴학당하는 것이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아이들은 상실하고 만 것이다.

빵집에서 미팅을 하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생활지도 팀에 걸리면 정학을 맞던 시대는 심했다 하더라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도 별로 죄책감을 못 느끼는 도덕 의식은 요즘 아이들의 새로운 병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오락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다가도 휴대폰을 압수 당하면 당연히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잘못한 측면도 분명 있다. 학교가 <정의적 집단>이던 시대에서 <계약 집단>인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인 현재, 언론에서 교사들의 폭력을 과잉보도했으며, 교육청에 가서 심하게 오버하면 돈도 나오게 시대는 바뀌었다. 교사는 촌지나 노리는 파렴치한으로 알려 지고, 학생들의 가혹한 왕따나 이지메는 감도 잡지 못한채 교사가 폭행하는 장면이 공공연하게 인터넷에 유포된다. 이렇게 학교의 권위가 일방적으로 무너진 것은 <그들>이, 권력을 쥐고 시스템을 쥐고 흔드는 그들이 잘못한 측면도 있다. 무조건 <열린 수업>을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열린 공간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무조건 <보충 폐지>를 하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몰려 갈 곳이 없고, 결국 학원만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는 없다. 이해찬이를 단두대에 올린다한들 교육계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반 아이들이, 내가 수업하는 그 먹빛 눈망울을 한 열일곱 머시매들이 배울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학생 생활지도에서 <딜레마>는 언제나 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 딜레마는 어디에나 누구에나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법적인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롯이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교사인 것이다. '교사가 딜레마에 빠져들지 않도록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가 이 책의 결론이다.

그렇지만, 교사는 신이 아니다. 사범 대학에서도, 1정 연수에서도, 기타 어떤 연수에서도, 생활 지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나도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해 봤고, 원격 연수로 학생 생활 지도와 상담에 대한 연수를 120 시간이 넘게 받아 보았다. 그렇지만, 결론은 전혀 없다. 이론은 실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늘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관찰할 것. 그리고 즉흥적으로 관심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머리를 굴려서 아이들의 머리 위에 올라 앉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할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관계, 아이들의 흥미, 미래의 진로, 적절한 처치의 사례(최적의 처방전을 내리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다.)에 대한 탐구와 적용, 시행 착오...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교사(poor teacher)가 되어 지식의 빈곤, 철학의 부재, 소신 없는 가치관, 불의를 보면 잘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교사, 잡무 처리에만 빠삭한 유능한 교사로 나이들어가는 <나>의 책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의 처방보다 훌륭한 교사의 한 마디 처방이 훨씬 특효약일 수도 있는 공간이 학교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문제아로 웬수같이 여기기 보다는 교사들이 상담 심리 시간에 배웠던 기법들을 활용하여 갈등 요인을 줄이려는 노력들을 힘겹지만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를 황폐화시킨 <그들>은 이미 없어졌으므로, 책임질 사람은 <나> 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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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06-0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이런 고민이 사실은 본질적인 고민이지요. 그런데 우린 외부에서 들어온 잡념으로 더 고민하니 학교가 바로설 리 없죠. 맞습니다. 우울해요.
 
이런 선생이 아이를 망친다 - 내일을여는교육 15
가나모리 우라코 / 내일을여는책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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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십년 전에 출간되어 벌써 절판되어 버린 책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런 책들은 책을 만나는 일이 우연하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는 데 대해 어느 교사도 저항하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다. 또 새로 전근온 학교는 아직도 교사가 교실에 불쑥 들어가서 아이들 머리 검사를 하고 가위와 바리깡으로 뒷머리를 흉하게 파먹는다. 칠십년대엔 면도칼로 밀었던 데 비하면 인간적인가?

일본의 상담심리학자가 학교에서 부정적인 교사들의 언행때문에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사례를 담담히 적고 있는 책이다. 상담의 과정과 결과이므로 객관적이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내겐 참 주관적인 인상을 남겼다.

우리 나라에선 교사가 학생을 망친다는 기사를 쓴다면 <교육계 죽이기>라고 저항할는지 모른다.

대학 입시 광풍으로 매년 많은 수의 고등학생(심한 경우 초등도)이 목숨을 끊고,
가끔가다 미친 교사들이 촌지 수수로 물의를 빚으며,
아직도 학교에선 교사의 폭력이 횡행하며,
국가가 형식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조장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으며,
보충수업, 자율학습의 미명하에 학생들의 일조권은 제한당하고,
수업에서 소외된 학생들의 비행으로 학교는 붕괴에까지 이른다.

일본의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상을 본다면 참으로 잘 따라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일본의 교육과정을 견학하고 온 나로서는 정말 심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대학 입시 문제가 심각하고, 일류대를 지향하지만, 우리나라의 서울대처럼 무기력한 대학은 아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학급당 학생 수가 많지만(우리 나라보다 많다) 영어, 수학처럼 단계형에서는 더 많은 교사가 투입되며, 특활이나 특기적성에도 많은 강사가 투입된다.

가진 것 없는 우리 나라에서 순응적 테크노라트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교육에서 발생한 갖가지 문제점들(비리, 폭력, 입시 위주 일변도)은 아직도 상존하면서, 제도적인 변용만 몇 가지 부린 것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 한 데 문제가 있겠지만, 교육부, 그들만 과연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 듯 하다.

학생들을 단체적으로 교육하는 현장에서 관료적인 교육 관료(지들끼리는 교육전문직이란 미명을 쓰지만, 장학관과 장학사, 교장, 교감 들은 내가 보기엔 별로 전문직이 아니다.)들과 퇴폐적인 갖가지 부조리한 시스템의 중간에서 학생들을 비교적 성공하는(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있는 그 애 보다 더 - 서태지, 교육 이데아) 미꾸라지 속의 용들을 만들어 보려는 <교육 행태>로 우리는, 아니 나는 연꽃같고 우주같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는가.

한창 신체적으로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발달이 따르지 못하는 <덩치는 나보다 크지만 생각은 얼라같은 아이들>에게 재생산 시스템의 한 <나사 조립공>으로서 기능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정 정도의 불량품 인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어제 토요일 마지막 시간, 영어 시간에 우리 반 꼴통 두 놈이 도망을 갔다. 입학한 지 한 달 반 만에 결석도 2,3번 했고, 자다가 늦게 온 적도 요즘 몇 번씩 있는 녀석들. 학생부에서 흡연으로 지도하려 해도 뺀질거리고 도망다니는 녀석들. 화가 났다.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 나머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죽도록 패줄까? 아님 부모를 부를까? 말로는 안 먹힐텐데...

... 하던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 풀렸다. 어차피 그 연꽃들에게 해결책은 없다. 토요일 마지막 시간,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듣고 있기 싫었을 것이고, 깐깐한 영어 선생이 만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녀석들의 집에는 녀석들을 지도할 부모는 없다. 가정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한 녀석은 작년에도 다른 학교를 자퇴한 경력이 있다. 이 학교를 관두는 건 아주 쉬운 문제다. 이제, 복학생 꼴통들을 감싸안는 <쎈스> 정도는 담임이 가지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신 건 아닐까? 이 책이 도서관에서 눈 빛내며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느 정도 권위적일 필요는 있다. 우리 나라처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떠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데 대해 학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교사의 권위가 수업의 질을 보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권위만으론 학생들이 입는 상처를 다독거려줄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걸 쇠뚜껑으로 덮어 놓고, 그걸 철항아리로 덮어 놓고, 그걸 하늘로 알고 살아왔다.

다른 반보다 출석률이 높으면, 다른 반보다 공부를 잘 하면, 다른 반보다 입시 성적이 좋으면 난 훌륭한 교사였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나를 채찍질하는 책, 역시 책은 진정한 우리 인생의 <멘토>이다.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이렇게 서늘하게 다가온 아침.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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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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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촘스키는 미국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책이 발행된 2001년 봄에 쓴 것이라서 70-80년대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에 행한 미군의 지원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글들이다. 글도 있고, 대담 자료도 있다.

교육이란 사회의 계급 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고, 언론이 뒷받침하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쇼>라는 것이 촘스키의 시각이다.

20:80의 구조가 10:90의 구조로 변해가는 것은 우리 나라의 현실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중산층이 줄어드는 구조. 원래 재산을 가진 상류층 외에는 자신의 힘으로 중산층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 계급의 변동이 갈수록 불가능해지는 자본주의의 후기 구조로 우리 사회도 고착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촘스키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이들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구사할 수 없는 용어가 있다. "잔돈은 됐어요."하는 말. 어떻게 잔돈이 됐다는 말인가. 자연스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계층과, 그 잔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계층으로 변하는 세계를 그렇지 않다고 말한들 세상을 속일 수는 없는 것.

공교육이니 평준화니 하는 것이 몽땅 거짓이고 허위임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예전에는 지엔피가 너무나도 낮았던 예전에, 국민의 구십 프로가 농사를 짓던 그 시절에는 우골탑을 쌓아 대학을 보내고, 대학에서 고시라도 패스하면 신분 상승의 고속 엘레베이터를 타고 중산층으로 안락하게 골인하던 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가진 자들만의 과외와, 가진 자들만의 특수 학교들로 가득한 한국의 교육에서, 평준화라는 것은 허울 좋은 거짓말에 불과한 것일지도...

눈앞에 뻔하게 드러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 우리에게 노동 삼권이 있다고 거짓으로 행하는 교육. 우리 나라에는 각종 자유가 있다고 하는 교육, 그러나... 그러나... 노동 삼권은 핏빛 시위로 점철된 역사고, 각종 자유는 <의무>에 짓밟힌 사회였음을 감추는 교육. 그래서 국민을 의사 결정에 참여시키기 보다는 방관자의 역할에 묶어 두는 상의 하달식 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거짓말로서의 교육>이 공고화되는 방식이라고 촘스키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거짓을 가르치지만, 체제에 순응하여 체제의 밑바닥 인생을 재생산할 뿐인 썩어빠진 교육을 늘상 개혁해 주기 바라는 어리석은 중생들은 오늘도 자기 자식을 학원에 보내고, 자기 자식만은 썩어빠진 의사놈이나 판사 놈이라도 되길 바라는, 그게 불가능한지도 모르는 한심한 중생들에게, 교육의 가면을 드러내 보이기엔 좀 까다로운 책이지만, 촘스키같은 삐딱선이 석학으로 인정받는 사회인 미국은 그래도 기회가 열린 사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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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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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21세기를 맞은 우리 나라의 대차대조표다.

이십대의 태반은 백수고, 사십오세에 정년을 맞고, 오십육세에도 돈을 벌고 있으면 도둑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은 우리의 경제 지도가 얼마나 암울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3D 직종에는 종사하지 않으려 한다고 힐책하기도 한다. 모두가 불만만 가득하고 해결책은 없다. 싸가지가 없어서 슬픈 것은 그래서 결국은 이태백이다.

그들이 왜 싸가지가 없게 됐는지... 삶의 철학도 없고, 깊이 생각하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직업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초중고대학교 생활을 통해 경쟁, 경쟁, 오로지 경쟁을 통한 출세만을 주입받아온 것이 싸가지의 원인이 된 것이고, 칠십년대 조국 근대화의 기수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면서 내 자식만은 풍족하게... 하는 모토로 살아온 것이 싸가지 없는 젊은이들을 양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어린 어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니면 군대를 다녀 와서도 아직 명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된 우리들은 먹고 살아야 하므로, 그 절대 명제 앞에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고, 도망을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은 여유가 생긴 이 어린 어른들이 방황하는 것은 일견 행복해 보이고, 좀 부럽기도 하다. 고민없이 직업을 갖고, 무작정 달려왔던 내 20대를 돌아볼 때... 그 때 내가 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지 못했던지... 아내와 더 드라이브를 즐기지 못했던지... 그 젊은 나이에 책을 많이 읽고,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지... 왜 세계 여행을 꿈꾸지 못했으며, 왜 일본어 하나 제대로 익혀두지 못했던지...

보통의 상담이 '위로'투라면, 이 상담은 상당히 혁신적이다. <명료화와 직면>이 이 상담의 주요 재료다. 문제점을 직접 대면하게 하고, 명료하게 해 줘서 '오늘, 지금'할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작가는 상당한 사랑을 담고 있고 철학적으로도 사려 깊은 분이다. 그의 넓은 생각에서 깨우침을 얻는 젊음들이 '저 좀 따끔하게 혼내 주세요'하는 메시지를 끝도 없이 던지고, 그분의 꾸짖음을 받고, <카타르시스>의 후련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느 상담책보다도 진지한 인생 상담의 지침이 담겨 있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 애정이라는 속을 듬뿍 담음 샌드위치같은 상담책이다. 그의 상담 홈페이지에서 옮긴 글들이라니 더 현실감이 느껴진다.

그의 비수처럼 날카롭고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생생한 '할'을 몇 마디 옮겨 본다. 읽고 읽어 아이들에게 나도 날카롭고 따스한 카운슬러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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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모두 다 해치우는 자, 이것이 진정으로 자기 꿈을 실현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꿈이 가장 추해질 때는 현실 도피용으로 도용할 때입니다.


실천과 인내와 도전 없이 자신감만 있는 것을 <과대 망상>이라 한다.


자존심은 자신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사용하라.


20대가 왜 그렇게 취직하기 어려운가? 사람들은 불경기라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20대들은 정확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확실하게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겁은 많아서 실패는 무진장 두려워하고, 무엇이든 보상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않으며, 눈은 높아서 자기가 하는 일도 주변의 현실도 모두 못마땅하고, 시시껄렁하고, 옛날 사람들처럼 고생고생하면서 자수성가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 돈을 벌 수 있을까만 궁리합니다. 가장 혈기왕성해야 할 20대가 그런 식이니까 사회가 무기력해지고 경제가 침체되어 불경기가 오는 것입니다.


남탓, 시대탓, 환경 탓하는 것 만큼 구제 불능의 바보는 없다.


당신들, 정말, 왜들, 그렇게도 경험으로 진리를 찾기를 두려워 한답니까?


진정한 돈의 노예는 돈 없이는 살 수 없으면서 돈은 벌 줄 모르는 사람.


어떤 대가도 두려워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안정된 직장’입니다.


대학이 후진 것은 멋진 대학생이 없기 때문, 당신이 바로 멋져야 할 바로 그 대학생. 답답한 현실, 피하지 않고 내가 바꾼다.


발전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사람은, 자존심이 상했을 때 스스로 자기 편을 들어서 상황을 합리화해 버리는 사람. 내 잘못이 아니야, 사회가 잘못됐어, 환경이 불공평했어...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입니다. 오늘, 당연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무시당한 당신을 인정하고, 그 수치를 결코 잊지 말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그 날까지 줄기찬 노력을 하는 당신으로 변화하십시오.


정말 가난한 것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최선의 노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잊지 않는 것’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됐어요”란 말은 적어도 마흔이나 일흔 살쯤에 하는 것. 그 이전에 그런 말하면 엄살. 젊음에는 어떤 한계도 없다.


열심히 꿈꾸라. 단, 그 꿈이 희망이라면 당신은 건강하고 진보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고, 그 꿈이 몽상이라면 당신은 현실 부적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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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02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었어요. 동감입니당~~
 
배움의 도 -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를 위한 노자의 도덕경
파멜라 메츠 지음, 이현주 옮김 / 민들레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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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멜라 메츠의 <노자에서 뽑아낸 배움의 도>라고 이름붙일 만 하다.
서양인들도 노자 도덕경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 책도 꽤나 잘 썼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주제, 또는 처음과 끝을 한 자로 줄이면, <도>다. 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붙일 수도 없는 그것은 <도>이면서 <도>가 아니다.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오온이 모두 <공>이라 함과 유사하다고 이해했는데, 엉뚱한 생각인지 나는 모르겠다.

세상을 살면서 알게 모르게 배우게 되는 <질서>, <도덕>, <윤리> 등의 시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를 깨우치는 것도 <도>이다. 이 책은 학교, 배움의 장에 적용되는 <도> 이야기니깐, 나같이 맨날 애들하고 아웅다웅 싸우는 질 낮은 교사에게 적합한 책이면서, 노자 자체가 상당히 비유나 격언에 능통한 텍스트라서 나처럼 수준 낮은 교사에겐 적합하지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탁상 달력의 그림과 함께 이 책의 글귀들이 일부분 인용되어 있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 많아 페이퍼에 기록해 두었더랬는데, 아무래도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용기를 내서 알라딘에서 구입했다. 책 안에 끼워진 <민들레> 출판사 안내문에 보면, 이 책은 양장본(8천원), 문고본(6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깝다. 이천원을 아낄 수 있었는데... 하긴 내가 언제 이천원 아낀 인간인가. 몇 만원도 휘리릭 써 치우던 낭비쟁이가 이천원에 쪼잔하게 아까워 하다니... 그렇지만, 지금도 아깝다. 육천원 짜리가 있는 줄 알았다면 그걸로 샀을걸... 이 책을 누구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천원이 아까워서 말이다.

이 책은 혼자 읽기 좀 아쉽다. 누군가 맘 맞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곰곰 생각하며 읽도록 선물하고 싶다. 이왕이면 양장본이 좋지 않겠는가... 그거, 그럴듯한 생각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어둡고, 억압적이고, 수용적이지 못하고, 자율적이지 않은> 학교에서 벗어나 <학생을 위한 밝고 열린 사고의 학교>로 사고를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억압, 패배, 눈치, 줄서기, 반칙, 배반, 패거리 짓기..... 등>을 배울 것이 아니라, 학교가 <놀이처럼 경이감을 간직하며 영감을 받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머리를 둥~ 울리는 울림이 있다. 우리 반 애들, 아니, 당장 우리 아들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후자라기 보다는 전자가 아닐까? 빨리 눈치를 긁어서 나보다 약한 녀석을 찾아 패거리를 짓고, 적당히 줄서고 반칙도 구렁이 담넘기듯 하는 눈치와 비굴함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공간이 학교 아닐까? 용감하고, 회의적인 인간은 우울증 걸려 뛰어내리기 딱 맞는 공간이 바로 거기 아닐까? 저 덕목들을 나열하고, 이런 공간은 어디인지 퀴즈로 낸다면, 많은 이들이 지옥이라고 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교사는 반드시 비웃는다는 <도>의 길은 짧아 보이고, 약해 보이고, 불평등해 보이고, 어두워 보이고, 뒤처져 보이는, 그래서 부적절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바로 그런 길이라는 데서 나의 <욕심>을 보며 새삼 어리석음을 깨닫고, 반성한다.

내가 슬기로운 교사는 되지 못할지라도, <학생들이 모두 탁월하다>는 것을 늘 깨닫도록 노력해야하고,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학문하는 자리에서는 날마다 보태지고, 배움의 도 안에서는 날마다 덜어진다."는 말을 잊지 말자. 내가 추구하던 것도 학문하는 공간이 아니라, 배움의 도를 익히는 공간이 아니었던가. 출세의 야망을 불사르는 교사가 되어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하게 날마다 보태며 살아서는 행복한 아이들과는 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늘 비우고 덜어내는 가난한 교사가 비로소 만족한 교사가 될 것임을, 깨닫자. 이것은 <다투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뛰어난 교사들은 열려있는 하늘과 같아 학생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단다. 어리석게 사랑받기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늘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하늘을 우러러 존경할 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마침 환경이 다른 새 학교에서 새 아이들을 만나는 내게 새로운 교사가 될 길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반가운 책이었다. 교사라면 몇 번 곱씹어가며 읽어볼 만 하다. 그리고 얇지만, 내용은 독자가 채워야할 몫이니,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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