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오히라 미쓰요 지음, 다카사토 무쓰루 그림, 김인경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오히라 미쓰요 변호사가 청소년들에게 주는 법률 이야기.

청소년들이 멋도 모르고 충동적으로 이끌리는 가출, 절도, 각성제 복용, 시너 흡입, 원조교제, 날치기 등의 여섯 가지 범죄에 대한 법률 자문이다.

일본의 법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주석을 붙여서 한국의 상황은 어떤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접근하는 것은 좋다.

법률 사무소의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법률을 설명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본의 사례기 때문에 한국의 법률을 설명한 책만은 못하다.

한국의 변호사들은 '솔로몬의 지혜'에 나와서 인기도나 높이지 말고 이런 책을 좀 내 주고, 청소년을 위해서 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하긴, 법은 가진 자들의 99가마 쌀을 지키려고 만든 것이지, 헐벗은 이의 1가마 쌀을 지켜줄 수 없는 것이기 쉬우니 큰 기대는 무리겠다.

사회가 어두워지는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은 어두워진다.
날마다 아르바이트와 가난과 부모의 폭행, 폭언, 희망과 미래 없음 사이에서 좌절하는 아이들이 폭주를 즐기거나, 약물에 빠지고 탈선하는 일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술집과 환락가로 점철된 삐뚤어질대로 삐뚤어진 한국 사회에서, 그 어른들을 보고 아이들이 무얼 배울 수 있겠는가.

김기덕의 영화 사마리아에서처럼, 죄지은 어른들은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죄 짓지 않은 어른들이 비행 청소년을 돌로 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적극적인 시스템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체교육의 길찾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남학생들은 두런두런 떠들다가 혼났고, 여학생들은 쪽지를 돌리다가 걸려 혼났다.

날마다 떠드는 남학생들, 쪽지파 여학생들과의 전쟁이었던 것 같다.

이제 생각하면, 쉬는 시간 10분은 그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짧았고, 새파란 교사는 전혀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졸업한 지 1주일만에 교단에 섰으니, 어찌 권위가 설 수 있었으랴?)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아이들도 많이 변했다. 일반계 아이들은 10분 정도 일찍 수업을 마쳐주면 팍, 엎어져 잠이 들지만, 실업계 아이들은 수업을 일찍 마치면 논다. 전에는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고스톱을 치더니, 요즘엔 좀더 복잡한 게임을 하거나 dmb 폰을 본다.

난 dmb란 글자를 보면, 귀먹은 dumb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미지로 봐서 헤드폰을 끼고 있는 웃는 얼굴로 보이기도 한다. d^^b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브로드캐스팅의 준말이 디엠비란다.

보아가  id : peace B에서 흘러내린 물은 다시 올라갈 수 없단 걸 우린 알고 있다고 노래한 것이 벌써 5년 됐다. 진정 변해버린 세상을 부정할 순 없는 것이다.

이제 수업에서도 매체를 활용할 수밖에 없고, 교육의 내용에 매체의 올바른 이해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용건만 간단히 하던 예전 통화와는 상관없이, 이젠 수시로 보내는 문자와 메신저로 친구와 시공을 뛰어넘는다. 그 비용은 무료다. 곧 무료 통화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흘러내린 물을 되돌릴 생각보다는, 물을 따라 가야 한다.

국어 교과서를 꼭 가르쳐야 한다. 국어는 중요한 과목이다... 이런 신화가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화도 먹히는 시절이 있고, 안 먹히는 시절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의 국어 연구자들이 '매체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같지만, '매체'에 대한 관점과 활동은 서로 다른 면도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메신저를 통한 토론, 디엠비 폰으로 영화 감상하고 비평문 쓰기 같은 활동이 가능해 진 현실까지 반영한다면 이 책은 여전히 진행중인 책으로 보인다.

교육은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기존의 국어 교과서는 <사고>의 폭을 <이해>에 제한한 느낌이 크다. <비판>적 사고, <창조>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교과서는 없을까?

기존의 교과서가 <정전>으로 일컬어지는 중립적 가치를 지닌 문학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고, 창의적이지 않은 평범해서 너무 재미가 없는 설명문들을 간혹 실어 두었기 때문에 죽은 교과서였다면, 이 책에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살아있는> 수업을 발견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중립은 이미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것이라는 말만큼 진실은 없다. 교과서에 수록된 <삼대>의 염상섭은 일제 시대 부유층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록된 것이므로 부르조아적 세계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이나 신문, 방송등의 제재는 비판의 여지가 적다. 비판을 가한다 하더라도 가면을 쓰고 철학적으로 근거를 댄 비판 정도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의 비판은 가차없다. 익명성의 이름으로 즉자적이고 원색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다.

기존의 문화는 고급 문화를 가리키는 상위 가치적 용어로 쓰였지만, 이제 문화라고 하면 대중 문화를 포함하는 저급한 문화도 포괄해야 한다.

'통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의 두뇌는 원래 '파편화'된 사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 언어 교육에 대한 우월감에 빠져있는 대다수의 교사들에게, 블로그와 싸이 홈피, 버디버디 메신저로 무장한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은 끝없이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지식 교육은 당연히 해야하고,
텍스트 이해를 통한 맥락 파악,
의미 평가, 재구성을 통한 비판적 접근에 이르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연관지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국어교사모임의 매체연구부에 박수를 보내며, 지속적인 성과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훌륭한 교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제임스 M. 배너 주니어.해럴드 C. 캐넌 지음, 이창신 옮김 / 풀빛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 앞에 선 지 벌써 17년하고도 반이 넘었다.

학교도 다섯 번째 옮긴 셈이고, 아이들도 숱하게 만났으며, 끝도 없이 많은 수업을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수업에 대해서, 아이들과의 만남에 대해서 결론은 없다.

매 시간 수업은 어렵고, 한 아이 한 아이 만나기는 쉽지 않다.

수업은 준비해 간 자료를 풀어 버리는 일방 통행이 아니기 때문이고, 아이와의 만남도 문화 전달자로서 주고 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엔 항상 다양한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반응한다. 떠들고, 장난치기도 하고, 눈을 피해 즐기는 놈도 있고, 온갖 고민으로 죽을 상을 한 아이도 있다.

한 마디로, 내가 준비해 간 수업을 열렬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는 한 두명에 불과하다. 그 한 두명은 개인적으로 나를 좋아하거나, 나의 수업 방식에 매료되어(어디 가나 이런 비정상적인 1%는 있게 마련이다.ㅋㅋ) 또는 성격 형성이 잘못 되어 무조건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이다.

특히나 이 땅에서 국어 교사를 한다는 것은, 특정한 정체가 없는 일이어서 좋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문법만 가르친다면 딱딱할텐데, 문학도 가르치고, 언어학도 가르친다. 그렇지만, 잡다하게 가르치다 보니 솔직히 전문성이 떨어지긴 한다.

담임으로서, 교과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지극한 즐거움이면서,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담임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얼마나 할 일이 적은지 모른다. 비담임의 가장 큰 홀가분함은 딸린 아이들이 없다는 데 따른 해방감이다. 담임은 일단 담당한 서른 몇 명(내가 처음 담임한 아이들은 56명이었다.)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때문에 상담할 일도 많고, 잡무도 그만큼 늘어 난다.

이 책은, 이런 총체적 난관에 빠진 교사들에게 위로가 되어 준다.
그래, 너만 그런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교사는 이런 다양한 것들에서 곤란을 겪을 수 있어.

안나 카레리나에 '행복한 가정은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이유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수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교사마다, 수업마다 다르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가 다 갖춰져야 하지만, 한 가지만 결핍되어도 불행한 가정이 되어 버리듯이,
성공한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만 결핍되어도 실패한 수업이 되기 쉽다.

교사는 지식만으로, 인격만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 교사는 인격, 마음, 정신과 관련된 자질을 남김없이 동원하여 아이들과 만나게 됨으로써 갖가지 곤란함을 겪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싫증은 열정만큼이나 전염이 강하다.

내가 힘들어 하면 주변의 아이들,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겠는가.

학생의 학습은 <지식은 배우기 힘들고, 더 이상 혼란을 잃으키지 않을 때가 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나중에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길 수 있고, 지식을 얻으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사고 방식을 발견하며, 지식이 없을 때보다 더욱 활기차게 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도와주어야 할 부분이다.

교사의 권위는 인격을 구현한 것이고,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감이 표현된 것이다.
훌륭한 교사/학교와 평범한 교사/ 학교의 차이는 학생의 포부를 얼마나 키워주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가장 무너지기 쉽고 일단 획득하게 되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요소가 교사의 권위라는 것이다.

교사는 도덕적이어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 비판을 받는 교사들은 도덕성에서 무너졌다고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지적했듯이, 교사의 도덕성을 함축하는 말이 <부모처럼>이다. 부모의 특징은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말이다.

수업의 질서도 중요하고, 교사의 상상은 필수적이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훌륭한 가르침 뒤에는 학생을 향한 교사의 포부가 깔려 있다.

교사를 신뢰하는 학생은 자신의 능력도 신뢰하면서 성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교사에게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벗이 되어 주는 책이다.

내가 하고 싶은 하소연을 다 이해해 주고 있으며,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다 포함하고 있다.
특별한 이론적 배경을 내세우고 있진 않지만, 교사여서 겪었던 갖가지 피로함을 위무해 주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내가 교사라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책이다.

교대나 사대에서 교사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 또는 교직에서 어렵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시 삶의 노래
전국국어교사모임 매체연구부 지음 / 나라말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국어교사들의 연구 모임에서 <매체교육>을 주제로 책을 만들었다.

기존의 근엄한 <시>의 영역을 <동요, 민요, 유행가>의 범주까지 외연을 확대하여 학생들에게 활용할 수 있도록 참고 자료를 편 것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들려주어야 할 필요성은 새삼 말할 것도 없는 시대적 요청이지만, 과연 교과서와 수업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선뜻 이렇다할 답이 없다.

교과서는 어떠해야 할까?

시라고 하면, 이육사 윤동주 류의 저항시인 아니면, 김소월 한용운 류의 20년대 시나, 30년대 이후 의식이 바랜 김영랑 청록파 시인들의 시들을 가르쳐온 교육의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교육이라고 하면 의도적으로 어떤 재료를 아이들에게 들이 밀어야 하는데, 중학교 1학년 1학기 첫 단원의 김지하 시는 당최 무슨 의도로 실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절절한 절창으로 기억된 김지하 시인의 피끓는 맥박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시들은 다 버려두고, 거세된 수캐마냥 벚꽃 너도 좋다고 해살거리는 김지하 시를 시라고 실어 둔 건지... 참고서들에는 조화로운 삶의 중요함...을 주제라고 써 두었다마는... 참 실없는 교과서다.

이런 교과서로 시를 가르치다가는 시에 대한 마음을 그리치기 쉽다.
시는 그냥 어렵고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착각하면서 교육을 마칠 수도 있다. 수능에 시를 내는 사람들의 취향도 가지각색이어서 시교육이란 결코 쉽지 않은 분야다.

시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들이밀어야 하는지를 이 책은 가르쳐주고 있다.

결국, 인간의 언어는 리듬과 멜로디를 통해 새로운 맛을 엿볼 수 있는 것이고, 시와 유행가는 여기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교사라면 아이들이 듣는 최신 유행가도 들어 가면서 필요한 요소들을 추출하여 가르칠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저 옛것이 좋다고, 좋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교사는 박물관의 박제처럼, 굽어버린 낙타 등허리를 한 늙은 선생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교사들에게 좋은 지도의 틀을 보여 준다.

아쉬운 점이라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런 학습의 모습들이 과연 아이들의 언어 사용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인지... 아이들의 감수성을 깊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늘 자신감이 없다는 점이다.

국어 교사들이 만든 책인데도, 115쪽의 수면의 한자가 水綿으로 잘못 적힌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그리고 요즘 세대 교사들이 만든 것인지, <광주 출정가>를 몰라서 출전가로 적은 것도 신뢰를 떨어뜨린다.

오랜만에 김준태의 감꽃을 만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감꽃/ 김준태 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을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고전 시가 기아사(寄兒死, 아이의 죽음에 부침)를 만난 것도 고마운 일이다.

九歲七年病   구 년 동안에 칠 년을 병으로 앓다
歸訛爾應安   땅 속으로 떠났으니 차라리 편하리
可憐今夜雪   하얀 눈 퍼붓는 이 밤
離母不知寒   어미를 떠나 춥지는 않은지(여기도 부지를 '불지'로 적은 것도 아쉽다. 젊은이들에게도 한문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적어도 국어 교사가 될 사람이라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승주나무 2006-09-1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제게 절실히 필요한 책이군요. 퍼갈게요^^

2006-09-11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06-09-1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쪼개고 나누는 게 아니라 사과를 베어물듯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김상옥님의 글이 생각나는군요.
국어선생님뿐만 아니라 부모와 아이들도 읽어봐야할 책인 것 같아요.

글샘 2006-09-1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고민과 계획을 제가 들을 주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메일 주소는 shy3042@hanmail.net입니다.^^
몽당연필님... 그래요. 시는 통째로 맛을 음미해야 하는 건데요... 어쩌다 보니 배부른 놈들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지요. 부모님들이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활용하기 위한 책이라 일반인들이 보기엔 값이 좀 비쌉니다. ^^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6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 지음, 강혜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아이가 학교엘 가기 싫어한다면 참 골치아플 것이다. 나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유치원을 보낼 때, 아내가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직장이어서 유치원에 가는 날이나 빠지는 날이 절반씩 될 정도였다.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가고 집에서 뒹구는 날엔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심 걱정도 되었다. "학교엘 가기 싫어하면 어떡하나?"

그런데, 막상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엘 보내고, 야단 칠 때도 "그럴 거면 학교 같은 거 다니지 마!"하고 혼내키기라도 하면, 그날은 안 자려고 한다. 이유는 다음 날 혼자 일어나지 못하면 학교를 못 가니깐, 밤을 새고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럴 때, 휴~~하면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학교엘 안 가면 죽음인 줄 아니깐.

제깐에도 학교라는 제도에서 낙오하는 일은 큰일날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학교는 다녀야 하는 곳일까? 왜 학교엘 가야 하는 것일까?

교육학자가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를 조카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짧고 명확하게 적으려고 한 글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의문 부호를 붙이며 읽었다. 정말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러 가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근대적 인간. 즉, 남의 밑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어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학교는 엄격한 규율을 제시했다. 그 시대에도 물론, 그와는 다르게 귀족 학교에서는 상당한 수준에서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근대적 인간상을 기를 필요가 없어진 지금, 학교는 창의적인 아이들을 기르는 곳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으로 갈수록 학교는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고, 오히려 부정적인 일들을 겪게 되는 사회화 기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요즘 초등학교는 개근상을 주지 않는다. 각종 체험학습을 다니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가정의 보통 아이들은 체험학습(소위 어학 연수 등으로 해외로 나가 놀다 오는 일) 같은 것을 체험할 기회가 별로 없다. 없는 집 아이들은 아직도 근대적 인간상을 기르는 데 학교의 목적이 제시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 책의 저자가 내세우는 이유들에 대해서 나는 수긍할 수 없다. 이 책에 나온 것들은 그야말로 근대적 노동자를 기르는 하류 계층민들의 학교에 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학교에서 지식을 주입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간다.
지식은 인터넷 속에서도 넘쳐나고 충분할 정도다.
학교에서 인성을 지도하기에도 환경이 좋지 않다.
사회가 갈수록 다변화 되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다. 소위 계층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수목적고나 자립형사립고는 이미 가진자들의 아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일반계 고교 아이들도 먹고 사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실업계 아이들은 그야말로 실업 상태의 부모들을 둔 어둠의 자식들인 경우가 많다.
실업계란 이름이 지랄같다고 해서 내년부텀은 이름을 바꾼단다. 전문 고등학교니, 특성화 고등학교니 하고.
그런다고 아이들의 가슴에 지워진 멍에는 풀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하고 확고한 일이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을 학교 이름으로 획정해 버린다.

아직도 두발 단속 규정이 있고, 교복에 알맞는 양말 색과 구두 색과 가방 색깔이 있다.
등교 시간에는 학생 부장이 교문에 서 있고, 사소한 규정 위반이 쌓이면 벌점이 초과되어 징계를 받는다.

학교가 바뀌어야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한데도, 각종 소프트웨어는 그대로다.
아이들은 송두리째 바뀌어 있는데도...

그래도 학교를 가야 하는지... 하르트무트가 2001년데 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심각한 재고의 여지가 없는지 묻고 싶다. 난 이런 책을 써 보고 싶다.


학교엘 안 가도 되나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당연필 2006-07-3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아들도 학교 안 가고 싶다고...노래를 부르는 통에 읽은 책이에요.
공감가는 내용도 있지만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