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 푸른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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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보면... 무릎꿇은 교사, 소리지르는 학부모, 고발하는 학생, 교원평가를 지지함... 교사가 개혁의 대상인 것처럼 본질이 흐려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의 핵심에는 <무지막지한 교육정책>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변해가는데, 그들을 맞는 교사들이 변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교사들의 역량에 달린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교육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어서, 교육 관료들이 우선 읽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가 교육 관료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교육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 것이 바람직할는지, 현행 교육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이 책만큼 조곤조곤 적고 있는 책은 드물다. 김진경씨의 성격대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쓰고 있다.

교과서라는 마법의 돌에 얽매이고(2009년 8차 개정에선 국어도 검인정으로 바꾸겠다는데, 8차는 누구 맘대로 바꾸겠단 건지...) 아이들을 난쟁이로 만드는 작은 통, 학교에 대해서도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이들은 마니아 속성을 드러내면서 왕따를 시키고, 디지털 유목민으로 거듭나는데, 우리 교육은 아직도 근대 교육에 머물고 있다. 사회가 이 메커니즘에 같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 교육에 대한 철저한 반성만이 희망이다.

경쟁, 줄세우기, 잘 살아 보세의 근대적 교육은 양적 팽창과 질적 저하를 예견했고, 신분 상승의 외줄 사다리는 추락에 대한 중산층의 불안감과 맞물려 <과외>와 <사교육>의 왕국을 양산했다.

이에 내몰린 검투사같은 아이들은 오로지 경쟁에 승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 비극... 이런 아이들에게 마니아로서의 속성은 성공에 방해가 될 뿐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찾아주어야 한다.
교사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 혼자 아이들을 이해하는 교사가 된다면,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처럼 개인적 패배만이 돌아올 뿐. 힘을 모아 문제 제기를 하고, 조금씩이라도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교육을 바꾸는 것이 나의, 교사들의 할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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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5-3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추천 누르고 갑니다.

글샘 2006-05-3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세상을 찾아줘야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할지가 막막하군요.
 
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파멜라 심스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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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선물로 주는 책.

스승의 날, 주변에 아는 선생님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 준다면 좋겠다. 교사의 소명 의식을 일깨워서 아름다운 교단을 힘들다고만 여기지 않고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다.

스승의 날 무렵이면, 교사들은 죄인이 된다.
선정적인 언론의 고발을 곧이곧대로 듣자면, 스승이란 말도 정말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교사이면서 교사의 속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학생들과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교직을 택했다는 것.
가난한 가정 형편에 떼밀려 무료로 다니는 사범대학을 선택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과 감동적인 만남을 맺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초보 교사> 시절의 따스한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직이 주는 고지식한 이미지에 물들고, 선배 교사들의 한탄에 껍질이 굳어지고,
아이들의 무기력에 같이 지쳐버리고, 세상의 백안시에 오기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은 지금 연금을 계산하면서 계산기를 두들기는 노교사들도 젊은 시절 아이들을 위해 무심히 베풀었던 온정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광기에 젖었던 군사 문화의 교육>을 비판하면서 교사 퇴출과 교사 평가를 말한다. 지난 교육에 숱한 폐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교육이 이루어 온 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교육>에 희망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남을 이기려는 경쟁심만을 부추기는 교육이 일어나는 학교 현장, 학원에서는 경쟁을 부각시키지만, 학교에서는 인간들이 사는 공간임을 말한다. 그러자니 학원의 목소리가 현실에 부합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옳지 않음을 모두들 알지 않는가?

이 책은 교육 과정에 따라 수업을 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교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교사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한 면만이 아닌, 다면적 접근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교육계에서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5차원 전면 교육과도 맥락이 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아래서 모두 평등하게 위대한 소우주인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부처인 존재들을 가르치는 데는 '사교육'도 '과외'도 필요 없다. 초심을 간직한 교사들과 스스로 발전하려는 학생들로 충분한 것이다.

조금 막연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희망을 주는 책이다.
어둡다고, 희망까지 버려서야 되겠는가.

한국의 교육이 어둡다고만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우리'가 빛이 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용기를 주는 책이다. 밑줄을 따로 치기 싫어서 아래 적어 둔다. 아름다운 말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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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우리가 학생들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지닌 잠재력의 작은 일부를 볼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생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대하지만, 틀릴 때도 많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교과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만드는 순간 구식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것은 영원히 그들을 따라다니는 문제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배려하고 감성적으로 후원하는 관계를 학생들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뭘 가르치든 소용이 없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좋은 교사’와 ‘위대한 교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좋은 교사는 학생들에게 읽고, 쓰고,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는 학생의 마음과 몸, 그리고 영혼과도 관계를 맺는다. 위대한 교사는 학생을 섣불리 단정짓지 않고, 자기가 보살피는 모든 학생들을 공평하게 배려할 줄 안다.


학생에게 등급을 매기는 대신, 학생들에게 성적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제시해야 해. 노력하는 아이에게 나쁜 점수라고 벌을 주거나  창피를 주지 말고, 하고 있는 공부를 더 잘 할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다.

일단 학교를 떠났는데, 자신의 발전을 평가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자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공부의 목적을 세워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할수록, 학생들을 수동적인 학생에서 능동적인 학생으로,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과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학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다.

교사의 생각은 습관적이기도 할뿐더러 효과도 없다. 학생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목표와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면, 다시 말해 자신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권한을 그들에게 부여하면, 그들에게 운명이라는 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이런 깨우침은 <자존심>을 키우는 데 요긴하다.

“어느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해서 고귀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진정한 고귀함은 과거의 너 자신보다 더 우월해지는 데 있다.”


교사들이 교실에 있어야 했던 까닭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지 연금을 기다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교사의 희망은 학생들이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이루도록 도와 주는 것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랬다. 학생들에게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데 필요한 안정감을 주는,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를 돌보아 주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실패란,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일 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 노력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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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5-1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의 날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꽃도 노래도 편지도 금지했습니다. 그냥 아무런 날이 아닌 것처럼 하루를 보내자고 아이들과 약속하고 알림장에도 써 줬습니다.
빨리 스승의 날이 없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스승의 날을 보고 교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 한편으론 아이들이 있어 우리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감사해야겠지요._()_

석란1 2006-05-1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선물 풍속도가 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

글샘 2006-05-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스승의 은혜... 노래가 좀 구시대적이긴 하죠. 아이들의 편지나 선물도 구태의연하고요. 스승의 날 되면 학교 욕하는 기사 실리는 관행도 여전하지요. 아이들과 학교에서 지지고 볶는 건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전두환 시절, 아무 생각없이 만든 스승의 날이 역시 아무 생각없이 변질되고 만 현장입니다.
석란1님... 스승의 날 감동적인 선물도 있습니다. 정말 가난한 아이가 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300원짜리 불티나 라이터 하나를 연습장에 부랴부랴 포장해서 준 선물은 영원히 잊지 못할 선물입니다. 스승의 날 선물하는 이상한 관행은 없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도토리의 집 7
야마모토 오사무 글 그림, 김은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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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니까 하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의 해답은 없다.

방금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작년 우리반 특수학급 아이가 내 자리에 와서 한참을 중얼거리다 갔다.
그 녀석은 뇌병변(뇌성마비)이어서 말이 어눌하고, 목소리가 잘 조절되지 않는다.

떠들어댄 내용인즉, 작년 3월부터 한식조리 기능사 필기 시험을 쳤는데, 7전8기로 이번에 겨우 합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2년 안에 실기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한단다. 그래서 어제 내가 싸이월드에서 쓰는 도토리 30개짜리 스킨을 하나 선물해 줬더니 고맙다고 인사차 교무실에 들렀던 것.

그런데, 마침 그 옆자리에 복사하러 오셨던 올해 담임 선생님이, 특별한 일 없으면 교무실에 자꾸 들락거리지 마라면서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신다. 물론 그 선생님이라고 그 아이가 미워서 그러시진 않는다는 걸 안다. 그 녀석은 뻑하면 교무실에 와서 쉬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독특한 행동 양식이니깐. 그것은 교정해 주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교정을 위해 선생님들과 잠시 떠드는 것이 낙인 아이를 쫓아보내는 일은 자칫하면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 답이 없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3급 지체 장애를 가진 녀석이 공장에 취직할 길은 없다.
그래서 녀석에게 어울리는 요리 자격을 준비하고 있는 거다.
누나 셋에 기대가 큰 막둥이라, 응석도 심하지만, 센스도 있는 편이다. 마음이 아프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이 사회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존중받으며,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지가 되고 격려가 되는 책이, 이 책이다.

정이 오가는 마을 - 도토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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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6-05-1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제 보관함에 담겨 있는 책...읽고 싶지만 임신 중이라 마음 아파질까봐 왠지 읽기 꺼려지는 책...내년엔 읽을 수 있겠지요.

글샘 2006-05-1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맞아요. 눈물을 울컥 자아내는 대목이 한두 번이 아니죠.
예쁜 아기 건강하게 기르시고, 낳으시길...
 
도토리의 집 6
야마모토 오사무 글 그림, 김은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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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에서는 도토리의 집을 만들려고 집을 구하는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시설이나 쓰레기 소각장 같은 것을 만들면 땅값 내린다고 반대가 심하다지만,
일본에서도 장애인 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어렵기만 했다.
누구도 집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병 상련이라고, 같은 장애를 가진 어떤 분이 다리를 놓아 드디어 <도토리의 집>을 만들게 된다.

어린 나이에 목숨의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아이들도...
나이를 먹어 몸집만 커진 아이같은 어른들도...
이 세상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엔 너무도 세상이 각박하다.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 삶이란 말이 있다.
그건, 살아있는 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죽음 앞에서, 삶을 택한 카와다 이사장의 이야기는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죽음만도 못한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개똥 밭에 굴러 다니는 도토리 신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멸시와 비웃음의 개똥 밭에 환영받지 못하는 도토리 신세로...

작년, 어떤 교사가 특수 학급 아이는 특수 학교로 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그 부모가 흥분했던 적이 있다.
그 아이는 그 가정에서는 전혀 특수하지 않았지만, 그 교사의 눈에는 병신으로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 교사가 자격없는 교사라고 볼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멸시하는지... 다만 말하고 있지 않을 뿐.

그들에게 왜 <도토리의 집>이 필요했던지... 이제 실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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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 5
야마모토 오사무 글 그림, 김은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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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서는 모즈 공동작업장이란 곳이 나온다.

작지만 월급도 받고, 개근을 하면 개근상도 주는 곳.

산업 사회에서 기계처럼 붙박혀 일하는 공장에서는 <개근>이란 것이 큰 미덕이었다.
요즘처럼 창의적인 일이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개근> 보다는 <집중>해서 일하기가 더 중요하지만.
그래선지 요즘은 개근상을 아예 주지도 않는다.

장애인들에게 개근이란 정말 힘든 일이다.
수시로 아프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아파서 개근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작업장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직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의무가 아닐까?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부터 <장애>를 가르치고 부대껴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는 사회,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 않은가...
당사자나 가족에게 고통을 미루기만 해서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수 없다.

아, 멀기만 한 한국의 현실이... 일본을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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