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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말들 - 이 땅 위의 모든 읽기에 관하여 ㅣ 문장 시리즈
박총 지음 / 유유 / 2017년 12월
평점 :
잔치에는 무릇 술과 기름진 안주들이 가득해야 맛이다.
그렇게 한 잔 술을 친구와 함께 부딪고 나서,
꿀~꺽 마신 다음, 간단한 안주로 입맛을 다시고,
주거니, 받거니, 수작을 나누는 일이 향연의 기본이다.
'독서'와 '책'은 불가분의 관계다.
'책'이라는 사물을 만든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특이한 짓이라면,
'책 읽기'라는 행동은 호모 사피엔스의 별난 행동이다.
인류라는 종의 문화를 이끌어낸 것이 문자문화를 기반으로 한 책과 독서란 것엔 별 이견이 없을 것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 자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융합을 가속화하여
기존 산업 사회 이전의 '책'과 '읽기'의 의미는 갈수록 퇴색되는 듯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끝없이 책사랑은 반복적으로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서,
책과 책읽기가 나누는 향연의 안줏거리는 떨어질 날이 없는 것이다.
문학애호가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의식적이든 아니든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다.(231)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키냐르, 197)
그렇게 정체성을 치유받는 행위다.
책 속에서 찾는 길 중의 하나는 다른 인생과 자기 인생의 교점에서 느껴지는
동병상련의 연고에 있다.
사람들이 끝없이 만나 술잔을 주고받는 이유 역시,
마시면 취하는 것에는 장사가 없음을 확인하는 뜻에 있듯...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장 루슬로, 177)
잘 마시는 사람들은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잔을 부딪치고 제 분수에 맞게 마실 따름이다.
주류 불문, 남녀 불문, 청탁 불문, 원근 불문, 안주 불문...
그리고 상대가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제 속도로 마실 뿐...
책읽기보다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이지요.(보르헤스, 101)
대작 역시 가장 좋은 향연은,
늘 마시는 친구와 다시 마시는 일이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마시거나,
수많은 사람이 떠들썩하게 모여 마시는 일은, 의미없다.
나무 밑동에서 살아있는 부분은
지름의 1/10 정도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나머지 부분은 무위와 적막의 나락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주지 않으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김훈, 91)
작가는 '독서네!' 라고 했지만,
나는 '철학이네!'란 생각이 든다.
책은 사람의 철학을 만들고, 넓힌다.
읽는 사람보다 인터넷이 많이 알지만,
읽는 사람만이 촛불 들고 그 추운 날 거리에서 견딜 줄 안다.
기억한다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65)
지난 수 년, 세월호는 금기어였다.
아직도 세월호는 진행형이다.
기억하려면 쓰고 읽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간은 파멸되어야 할 종에 불과할 것이다.
고전은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탈로 칼비노, 73)
돈키호테를 다 읽은 사람은 희귀하지만,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고전이란 어설프게 읽은 책이고, 진의를 파악하기 힘든 책이고,
시대를 넘어서도 술맛나게 하는 희대의 명주인 셈이다.
명주는 한번 마셔서는 모른다.
입에 짝 맞을 때까지, 생각만해도 그 맛이 핑~그르르 떠오르듯 하는 느낌을 주어야 비로소 명주다.
독서는 무용하다.
그러나 그래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43)
위험한 자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자라 한다.
십자군의 성서나 유신 시대의 교과서가 그럴 것이다.
성서나 국정교과서는 유용하다. 그만큼 억압으로 작용한다.
술은 무용하다.
술은 나누는 일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만,
그래서 인간을 편하게 해방시킨다.
책 이야기가 충분히 풍부하다.
잘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