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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지가 무지 매력적이다.
품격있는 그린 톤에 스탠드 불빛이 매력적이다.
근데... 저 의자에 앉아서 책읽기엔 좀 불편하지 않을까?
그리고... 왼손잡이라면 몰라도... 전등은 책의 왼쪽에서 비추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디자이너는... 책벌레가 아닌 모양이다. ㅋ
책벌레였다면... 책상 위에 쌓아 둔 책들을 적어도 책등 정도는 보여주는 위트를 발휘했을 터인데...
이 책의 지은이는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 방법으로 독서를 택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길이 들어있긴 했지만,
살면서 책을 손에서 놓아버리기 쉽다.
한국 사회는 초등학교에서 독서 지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독서는 여가 활동으로 자리잡는 일조차 드물다.
공부는 조선시대 과거처럼 정형화된 또하나의 작업인 셈이고,
독서를 통한 이해, 분석, 비판, 종합의 과정을 평가하지 않으므로, 독서는 가치를 상실하고 표류한다.
'책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처이다... 표지에 적힌 이 말은 이 책을 대표하지 못하는 구절이다.
그 구절은 35쪽에 가서야 변명처럼 덧붙는 말이 나온다. 아쉽다.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평론가 시릴 코널리가 말했단다.
책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는 말만 잘라놓고 보면, 부정적인 반면,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고 나열하면,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속표지에 적힌 카프카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는 구절이나,
'책은 정원이고 과수원이며, 저장고, 파티, 여행을 함께하는 동료이며, 카운슬러, 여러 명의 카운슬러가 되어준다.'를 요약해서 적어줬더라면 더 나을 뻔 했다.
이 책의 제목도 좋지만, 원 제목도 멋지다.
톨스토이와 퍼플 체어...
퍼플은 레드-바이올렛... 붉은 기가 도는 보랏빛을 일컫는 말이다.
톨스토이를 읽는 시간, 그리고 퍼플 체어는 소파까지는 아니더라도... 붉은 보랏빛이 도는 쿠션이 놓인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번뇌하던 지은이는 이렇게 독서의 변을 남긴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라는 무자비한 물음에 대하여,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책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독서 도중에서 만나는 책들이 무지 반가운 것들도 있었는데,
특히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들...
칼럼 매캔은 어렸을 때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방문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나가 햄버거를 사주었는데,
역시 아일랜드 인이던 웨이트리스는 어린 소년이 런던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뺨을 어루만지고는 아이스크림 선디를 사 주었다.
그는 그 웨이트리스를 평생 기억했다.
그녀가 보인 친절함과 동정심의 순간 같은 것들이 바로 매캔으로 하여금
저 위대한 소설을 쓰도록 이끈 우연들의 연쇄관계였다.
그런 순간들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계속 유지되어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세상이 친절하고 용서하는 곳일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피어나게 한다.
그런 순간들이 아름다움이다.
이런 글을 읽고 나니깐,
이 책이 더욱 사랑스러워지게 된다.
Let the great earth spin.이란 제목이 '위대한 지구를 돌려라'라고 어색하게 번역된 거만 빼면...
책의 뒤편에서(84) '이 괴상한 세계는 계속 굴러간다'는 시구절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저 책의 제목으로 비슷하지 싶다.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에 나온다는 한 구절...
이 책은 완벽하고 진실한 심장에서부터의 소통이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낡은 보랏빛 의자에 기댔다.(83)
이런 구절을 읽노라면... 낡은 보랏빛 의자가 없는 표지가 더 아쉽다.
나도 아내가 갓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처형을 잃는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어려서... 세상을 몰라서...
아내에게 전적으로 애도의 기간을 주어야 한단 것을 몰랐다.
더 힘든 상황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지난 그 시간이 미안하다.
이 작가는 그런 점에서 행운아다.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작가의 독서가 의미를 깊게 한다.
엄마, 난 평소에 너무 빡빡한 일정에다 통제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지만
이 한 해 동안에는 그런 생활로부터 2만 마일 아랫쪽에 떨어져 있어요.
언니 덕분이에요.
난 물 밑에 있고, 내가 읽는 책의 저자들과 헤엄치고 있고,
그들의 말을 산소처럼 빨아들이고 있는데, 언니도 거기 있어요.
책 속의 삶들이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어요.
새 생명 말이에요.
그래서 언니를 어떻게 하면 살아있게 할지 배우도록 도와줘요.(113)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삶이 갑자기 강렬해졌다.
페르 페테트손의 <시베리아로>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데,
주인공의 말이 기억할 만 하다.
나는 스물셋인데, 내게 있는 것은 나머지뿐이다.(121)
오빠를 잃은 여자 아이의 그 말이,
저자는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는 거다.
독서는 그런 것이다. 자신의 삶과 독자의 삶이 교감하는 것.
그 교감 속에서 영혼의 키가 한 뼘은 자라는 그런 것.
작가나 페테르손이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는다면,
눈물을 흘리면서 공감하지 않으려나?
모란이 지고 나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에즈라 파운드 역시 상실을 이야기한다.
남는다. 그 외는 하잘것없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로부터 탈취되지 않을 것이다.(122)
남는 자는 하잘것없이 느껴질 수 있으나,
좌절하고 포기하지만은 않는다.
슬프지만 찬란할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이 탈취되지 않을 것임을 믿고,
내가 남는 것은 나머지 뿐일지라도,
임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않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난 사랑에 빠졌어요.
굉장한 책과 사랑에 빠졌어요.
이런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데,
얘, 이 책 읽어봐~
하는 친구가 한 명 이상 있다는 것만도 행운이다.
365일 빠지지 않고 애도의 하나로 책을 읽는 사람.
없는 시간을 쪼개고 나눠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
책만으로 살 순 없다.
그러나, 책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생을 끝내는 걸까?
이렇게 죽어간 언니를 애도하기에 성공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다.
무더위에 지쳐갈 때면, 그는 추리소설을 읽는다.
추리소설을 읽고 싶은 허기를 자꾸만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질서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물론 좋은 추리물에서 지혜의 불꽃도 발견하지만,
내가 정말 찾는 것은 해결이니 말이다.
나는 우주의 질서 이상의 것을 원한다.
가끔은 의미가 거의 없는 세계에서,
추리물은 삶의 변형과 전환을 수용하고,
그것들을 결국은 의미가 있는 플롯으로 진행할 수 있다.
어떤 의문이 해결된다.
거기서 얻는 만족감은 엄청나다.(243)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는 많지만,
이렇게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적실하게 표현한 사람은 드물다.
문제의 속시원한 해결, 거기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
마치 입맛에 꼭 맞는 짙은 담배를 만나 깊이 들이마쉰 뒤의 만족감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암튼, 여름철엔 추리소설 같은 장르 소설의 계절이다.
그는 살인사건을 해결했지만,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그리하여 셀프는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그 결말이 부당하다고 불만을 품고 괴로워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 더 적절한 결말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일임을 깨달았다."
<셀프의 살해>라는 슐링크의 소설에서 짚어낸 한 대목이다.
작가의 독서체험 기록은 상당히 깊은 사색을 묻어나게 한다.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올 여름, 무더위에 지치지만은 않고 힘을 내려고 파이팅을 외치는 맘을 먹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경이감 속에서 살고,
열정과 염려의 순환 속에서 타오른다.(시인 캐럴린 키저,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