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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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이 방송에서 15분간 소개해주는 시간이 있다하는데...

그 이야기 들 중 23편의 '사랑'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여느 리뷰집과는 다른 것이,

아무래도 방송에서 활자가 없는 상태로 전달하는 '입말'의 그것이어서,

분량도 일정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된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리뷰집을 읽고 나서 그 책을 - 그것도 이미 읽었던 책을 절절하게 읽고 싶어지는 일은 드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읽지도 못한 책은 마구 읽고 싶어졌고,

이미 읽었던 책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나 '녹턴',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크'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 만화'

오에 겐자부로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책들은 꼭 읽어보고 싶어졌고,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브론테, 폭풍의 언덕

쿤데라, 불멸

 

같은 책들은 이미 읽었지만, 다시 읽고 싶어졌다.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좋은 쪽으로 불멸하는 책도 있을 수 있고,

나쁜 기억으로 불멸하는 책도 있을 수 있는데,

이 책은 좋은 쪽으로 불멸하는 책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득 표현한 책이다.

 

나이 들었어도,

여전히 주먹을 내지르며, 어깨를 비비며, 입을 맞추며~

살아가는 역동하는 불멸의 작품들을 만나게 하는 가이드가 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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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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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일이 때때로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쓰린 마음에 소금이 뿌려져 그야말로 소금밭이 되는 일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움큼의 투명한 소금이야말로 가혹한 비바람과 격렬한 태양 아래서 마술적으로 응결된 것, 아니 단련된 것.

사각형의 책들을 순례하면서, 나는 사는 일을 경쾌하게 긍정하는 연습을 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질문을 거듭 던졌다. _<저자의 말> 중에서

소금.

박지원은 '민옹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보았소?"

"보았지. 달이 하현이 되어 조수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그 땅을 갈아 염전을 만들어 염분이 많은 흙을 굽는데,

알갱이가 굵은 것은 수정염이 되고

가는 것은 소금이 된다네.

온갖 음식 맛을 내는 데에 소금 없이 되겠는가?"

 

인간들은 왜 그렇게 얄팍하게도 '맛있는' 기름진 음식을 찾아 나서는가?

진실로 '맛'을 내는 데는 소금만 한 것이 없거늘.

그 소금의 생성 과정과, 소금의 용처를 생각한다면,

세계 미각으로 치는 푸아그라, 캐비어, 송로버섯을 우선 꼽는 세태에 망치를 휘두를 노릇이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들에서 나는 서늘한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책의 소용은 그런 것이다.

책을 들척이다보면, 마음이 안심된다.

그 속에서 서늘한 정신을 만나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들 미쳐서 남을 추월하고, 더 높이 오르려 다툼질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축구가 야구가 다투고, 온갖 서바이벌로 다투고,

일박이일이 다투고, 시청률이 다툰다.

그 뜨거움 속에 사실은, 돈이 놓여 있다.

돈의 <매트릭스> 안에서 다들 정신줄 놓고 있다.

책의 서늘한 그늘 안에 들어서면, 정신을 조금 가다듬게 된다.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도 꽤 좋다.

 

삶은 아파하되 오래 견디는 것이며,

결핍이 오히려 희망의 꽃핀 자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아닐까요.

당신의 고뇌가 더욱 향기로워지기를...

아, 벌써 가을이 목젖까지 차오른 것 같군요.(37)

 

좀 오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십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는 문학이지만, 문학이란 사물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은 아니다.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새'에게는 저만치 피어있는 꽃을 통해,

삶의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

 

팍팍한 삶에서 뻐근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은 존엄한 것임에 틀림없다.(53)

 

소설 속에서 누구나 무언가를 길어 올리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 책이 올해 다시 출간된 것은, 좀 의외다.

이 책에서 다룬 책들이 별로 새책 냄새가 풍기지 않고, 흥미롭지도 않은 것들이 많아서다.

그렇지만, 읽어가노라면, 세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문제를 잘 짚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좌절에 대하여, 후일담 문학에 대하여,

시와 소설에 대하여, 번역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 사람의 이야기는 참 일관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공감을 많이 하게 된다.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간다.

인간은 빵이 산처럼 쌓였어도 죽음을 생각한다.(77)

 

삶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눈물이 내려가도 숟가락은 올라가는 법.

산 사람은 살아야지, 끙~ 하면서 또 하루 사는 것.

 

사랑 안에서 우리가 기적적으로 이타적일 수 있는 것은,

명랑한 낮의 이성이 성숙한 밤의 포옹 앞에서 무력해 지기 때문.

그때, 사랑하는 '나'는 없다. '당신'이 있을 뿐.(83)

 

작가의 글들은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을 가졌다.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돌아보기도 싫어할 맛도 나지만,

한번 입맛을 들인 사람들은 환장을 하는 홍어 삼합의 맛처럼 감칠맛이 독특하다.

 

'총각 딱지 떼기'로 일관하는 '동정 없는 세상'을 '탈 근대적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비평적 사기일 수밖에 없다.(112)

 

참 돌직구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성장소설을 통한 성장'보다는,

자기들의 이야기에 열광할 따름인 것을....

영화도 비평가가 저질이라 까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던가.

영화 감독들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싫어한다지 않는가. ㅋㅋ

 

이문열과 복거일의 웃기는 짜장 이야기는 워낙 자주 등장하여 식상할 지경인데,

아무튼, 한국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평론가도 드물다.

 

시인의 마음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자기 바깥의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고 아파하며

기어이 큰 목소리로 꺼이꺼이 함께 어는 연민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을까,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몰라도...(126)

 

정호승에 와서도 '달콤하고 미끈한 당위적 사랑'이라고 비꼰다.

 

잘 만들어진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뼈아픈 고통은 아니다.

미끈한 잠언들은 고통을 휘발시킨다.

만들어진 시는 그래서 일급이 될 수 없다.(148)

 

정호승의 시를 이렇게 잘 표현한 구절을 만나긴 쉽지 않다.

 

십년도 더 전에 유행했던 '느낌표' 책에 대한 비평도 신랄하다.

이미 물건너간 시절이지만, 그렇게라도 대중적 독서 붐을 일으킨 일은 나름 신선했다.

역시 한두가지의 프로그램은 '시스템의 불구'를 극복할 수 없는 법이기는 하다.

 

불면의 밤은 실존을 밝히는 등불이다.(195)

 

이런 말을 만드는 걸 보면, 좀 잘난 체하는 구석이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ㅋㅋ

그렇지만, 후일담 같은 것을 분석하는 그의 눈은 매섭다.

 

흔히 오해되듯 90년대는 80년대의 결여형으로서의 후일담의 시대가 아니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소수자(약자겠지, 민중은 항상 다수였으니)로서의 민중의 존재와 함께,

새로운 일군의 소수자들 - 동성애자, 홈리스, 여성, 자발적 무위도식자, 반제도적 청소년들, 이주 노동자 등- 이

광범위하게 출현한 시기이다.

또는 이 시기는 이념적으로는 민중적인 것과 수구적인 것의 대립에,

신좌파와 신자유주의 대립이 더해져 사회적 갈등이 복수적으로 심화된 시기이기도 하다.(226)

 

그렇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로 뒤덮어버린 '문학 없음'의 현상을 그는 냉철하게 바라본다.

그가 지적한 '소수자들' 사이에는 '가정 파괴'로 인한 '집으로' 세대의 학교폭력도 들어가고,

컴퓨터에 몰입하는 히키코모리도 해당하고,

386이라던 80년대 사람들...이란 의식 역시 그렇다.

 

그런 시기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했고,

또한 이명박, 박근혜를 양산했다.

 

번역문학에 대한 비평도 날이 서 있다.

 

번역문학은 기원의 측면에서 보자면 외국 문학이라 할 수 있으나,

한국의 문학장에서 차별없이 유통,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의 적극적인 검토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대학 바깥에서 '비평가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 구축도 적극적으로 강구될 필요가 있다.

대학이란 제도의 보수성은 비평이 집중해야 마땅할 '전복성'을 약화시킨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가는 대학이라는 시스템에 직,간접적으로 포섭되어있다.

혁명적이면서도 전복적인 비평이 출현하지 못하는 것은

탈제도적 비평을 불가능케 하는 열악한 생존 조건의 영향이 크다.(237)

 

요즘 '새움'판 '이방인' 번역을 두고 논란이 많다.

이명원의 논점으로 보자면, 이정서의 번역은 '전복적인 비평'의 일종으로 보아야 하지만,

제도권 내의 비평가들로서는 용납하지 못할 도전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 역시 그 출판사 책이다.

 

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말도 안 되는 학살이 일어났던 시대에서 이제 35년 정도 떨어졌다.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 되었고 개혁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인간 해방, 민중 해방'의 측면에서 보자면 '구속'이 지나치게 많다.

이명원의 비평은 '해방'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들이다.

부디,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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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년전에 나왔던 책이 왜 갑자기 재출간을 하게되었는지 저도 좀 궁금했어요.

책 제목만큼 확 와닿는 구절이 별로 없어서 저도 별 네개였는데 ㅎㅎ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 한 인문학자의 섭치 정탐기
장유승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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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에 서점에 가면 그렇게 행복했다.

4월이면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 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연련히 꿈도 설워라 여울여울 붉었네'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를 노래했고,

5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광주의 추억 속에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처럼

오월의 노래 속에서 아카시아 짙은 내음새에 묻은 최루탄 내음으로 봄을 지냈다.

 

비루한 삶을 안고 책방에 가면,

새책에 박힌 문자들의 세례로 내 마음은 황홀했다.

그 책들도 이제 쓰레기 분리배출때 내놓는 애물단지들이 되었지만...

 

일제 강점기 출판 시장 이전의 고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 책들의 가치는 글쎄, 작가의 말대로 쓰레기 수준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내음새가 가득 담겨있다.

종이로 보면 쓰레기지만, 문자속을 들여다보는 필자의 마음이 향기롭다.

오랜만에 책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을 만났다.

문자향 서권기라고나 할까...

쓰레기같은 책들에 대한 변명이지만,

가히 그 고서들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용맹스러울지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책사랑과 공부의 깊이, 넓이가 넉넉하고 향그럽다.

 

섭치(여러 물건 중 변변하지 아니하고 너절한 것)라고 부를 책들.

이 책들은 너덜너덜하게 튿어진 것들 천지고,

멋대로 안팎을 뒤집에 쓰고, 배접을 하고 했다.

그러나, 그 문자향을 지울 수는 없다.

문자향 서권기는 향수처럼 '자동사'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은은히 그 향을 '타동사'로 찾을 수 있어야 감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경지를 보여주어 흐뭇하다.

 

'백미고사'라는 고사성어집에서 '반듯한 사람 조광봉은 옥계척이라 불렀다'는 구절을 이야기하면서,

 

자는 곧고 딱딱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직한 남자는 답답한 면이 있고, 애교가 많은 여자는 쉽게 토라지는 법입니다.

믿음직하면서 답답하지 않은 남자나 애교만 많고 토라지지 않는 여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조광봉은 그렇지 않았나봅니다.

옥은 단단하면서도 질감과 빛깔이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희귀한 성품의 소유자이니 사전에 실렸겠지요.(27)

 

이야기를 풀어놓는 품이 예사롭지 않다.

뭉글뭉글 의뭉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펼치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잇닿도록 한다.

쓰레기 같은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야기가 찰지고 맛나다.

 

평화로운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됩니다.

'국문과 졸업하고서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준다거나

'손 없는 날에 일손이 없으면 차 없는 날은 커피가 없겠군' 하고 빈정대서도 안 됩니다.(37)

 

옥룡자 답산가..에서 '손 없는 날' 이야기로 튀었다가 이사 이야기가 나온 부분인데,

스스로 '손재수'를 재물 손해보는 운...으로 잘못알았다 사전 찾아본 이야기가 나온다.

'손'이라는 것은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따라다녀서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임을 사전에서 배웠음을 실토한다.

잘난 체 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일품이다.

 

드라마의 결말은 대체로 시청자의 기대를 따르는 법입니다.

드라마 전개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나간다는 낌새가 있으면

인터넷 드라마 게시판이 애원과 원망으로 가득차지요.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는 드라마는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않으려 하는 법입니다.

우리 고전소설의 결말이 비슷비슷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209)

 

고전 소설을 이야기하면서도 쉽게 현실 속의 이야기로 접근하니

낡은 책의 먼지 냄새가 좀 덜 느껴진다.


인문학은 취업을 시켜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른 길'을 알려준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과 사회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인문학의 최전선에 선 대학생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무기이고,

그들을 최전선으로 내보내는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264)

 

인문학 도서들이 팔리고, '힐링'이 대세라곤 하지만,

인문 대학들은 망가지거나 바꾸는 것이 보통이다.

인문학 중에서도 가장 고루해 보이는 한문학, 고전문학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인문학의 힘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지만,

인문학이 어떤 태도로 삶을 지탱하는 것일지를... 이 책 전체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그가 소개하는 책들의 틈속에 담긴 한자들에도,

그 휘갈겨진 초서에서조차도 다사로운 애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득도한 도사가 아닙니다.

학생과 똑같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인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란 정답이 없는 학문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가르치는 사람도 답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문학 교육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하고,

배우는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일깨워줄 뿐입니다.

인문학 강의에서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277)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논어, 맹자 등의 많은 책들이 다 '대화'로 이루어진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인문학의 위상까지 다룬다.

그렇다.

강신주가 장거리에 철학을 들고 나와 팔고 있으면,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정답을 원한다. '상담'은 원래 상담원이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내담자가 자기 문제를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상담원이고,

삶에 정답이란 애초에 있지 않다.

강신주가 '선생' 자리를 박차고 다상담을 그만둔 이유도 같은 것이겠다.

 

책 안에 적은 낙서 구절도 재미있는 살필거리다.

 

아내를 얻는데 중매가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娶妻莫恨無媒人

책 속에 옥같은 용모의 여인이 있으니...            書中女有顔如玉 (294)

 

고문진보에 실린 권학가라고 한다.

서경의 하은주 3대에 대한 풀이도 읽을만 하다.

 

이상사회는 완전한 사회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상사회는 꿈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하,은,주 삼대가 이상사회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 시대가 완벽했던 사회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사회의 꿈을 잃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삼대의 역사는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그 짧은 꿈같은 시절로 회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궈졌습니다.

이상사회를 향한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

그것이 현실적인 이상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301)

 

인문학이 필요함을 이렇게 강조하는 일도 쉽지 않다.

사서 삼경이라는 고루해 보이는 책들 안에서, 이런 뜻을 읽어 낸다면, 그야말로 온고이지신...이 아니랴.

쓰레기같은 '옛것'들에서 청출어람의 혁명을 얻는 것이 인문학의 정신이 아니랴.

 

필자도 한때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라도 몇 번 실패를 겪고 보면

자기도 이 세상에 넘쳐나는 평범한 존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

저 방구석에 쌓여있는 쓰레기 고서처럼,

필자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에필로그)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는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곡이 등장한다.

인생은... 글쎄. 빠른 박자로 진행될 때도 있고, 평범한 속도로 흐를 때도 있다.

회전목마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심하게 보면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들,

그것들도 애정담긴 눈으로 보면 반짝반짝 빛내며 손길을 기다리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 손길에서 향기와 기운이 생동하게 되는 것이라면,

필자의 문자향 서권기의 작업은 이만하면 성공이다.

 

꼼꼼히 살피진 않았지만, 한자도 틀린 곳이 거의 없다.

요즘 이렇게 편집 상태가 좋은 책 만나기 쉽지 않다.

이런 사람도 있어 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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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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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사적인' 독서리뷰집이다.

'사적인'이라고 하면, 개인에게 귀속되는~ 정도의 의미인 듯 하지만,

실비아 크리스텔의 찌르르한 영화 '개인 교수'처럼, 'private'인 사적인 '욕망'을 지칭하는 용어로 겹쳐 쓰인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제법 '야한' 고전들을 읽어 준다.

그 고전들은 왜 '야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도 '힘 power'이 있는가.

 

'보바리 부인'이나 '채털리 부인' 그리고 '주홍글씨'처럼

부정한 여인을 그린 소설,

인간 무리 륜(倫) 안에 넣어 두지 말았으면(不) 하는 '욕망'이 강조되던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조망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을 '불륜'으로 이름짓는 것은 욕망의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러움을 가두는 '인위'에 해당한다.

그것을 억압하는 힘은 'force'겠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 '욕망'은 아주 중요한데,

로쟈는 이렇게 정리한다.

 

문제는 욕망이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폭군이라는 거다.

이 욕망과 욕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욕구는 생리적 요구로서 만족에 도달할 수 있지만, 욕망은 정신적 요구로서 어떤 경우에도 만족에 도달할 수 없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것은 욕구이지만, 즐기기 위해 진귀한 음식을 먹는 것은 욕망이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욕구이지만, 사치를 위해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은 욕망이다.(43)

 

책의 전체를 꿰뚫는 핵심 개념이 좀 허술하다.

우선, 욕망은 '정신적 요구'만은 아니다.

특히 자본의 시대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하게 되며,

욕구 역시 매슬로우의 사회적 욕구처럼 추상적인 것도 있을 수 있다.

 

욕망을 이렇게 욕구와 도식적으로 나눠 놓고는 삶의 패턴을 분석하기에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마음은,

결핍된 것에 대한 이루기 힘든 갈망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진귀한 음식'이나 '화려한 옷'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욕망은 세상을 바꾼다.

음식이나 옷 따위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라캉의 '욕망' 이론을 끌어 들였더라면 차라리 좀더 명징해지지 않았으려나 싶다.

 

보바리 부인의 가치는 플로베르가 의도하였든 아니었든,

그 사회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내었다는 면에서 강조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적 관점도 고려할만하지 않을까?

 

보바리 부인에 비해 '채털리 부인'은 훨씬 적나라하다.

 

이렇듯 로렌스가 생각한 진정한 삶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조화로운 결합 관계에 놓인 삶입니다.

서로에게 맞는 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관계에 대한 예찬을 담은 소설이 바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입니다.(125)

 

이런 부분도 조금 아쉽다.

신분을 뛰어넘은 두 연인이 빗속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는 장면이

그저 외설적으로 재미를 주려고 쓰여진 것이라면, 고전의 반열에 들 수도 없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신분'이나 '여성'이라는 질곡이 얼마나 인간을 초라하게 하는지,

그런 사회를 풍자하고 비틀려는 의도가 강한 소설이다.

조화로운 사랑은 이미 '신분'의 차이에서 파탄이 났고,

성적으로 끌린다고 하여 '서로에게 맞는 짝'일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강한 임팩트이므로...

 

어떤 옷을 입든

이 비좁은 지상의 삶에서

나는 여전히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부족해도 참아라, 부족해도 참아라... 이것이 영원한 노래다.(198)

 

괴테의 '파우스트'의 문제제기다.

인간은 세상을 좀 편하게 바라볼 만 한 나이가 되면,

마음 속 열정이 끓어넘치던 시기가 지날 때쯤, 즉 불혹의 경지가 되면, 이미 늙고 만다.

남자의 거시기가 여자를 봐도 '혹'하지 않는 나이가 늙은 나이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파우스트는 '지식욕, 성욕, 권력욕'에 대한 치열한 추구에 대한 보고서이다.

지식욕, 성욕, 권력욕은 '남성적'인 '포스'가 넘치는 단어들이다.

경쟁적이고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들... 남자들은 경쟁시키면 끝도 없이 싸운다.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이야기는, 남성적인 '포스'만으로 다투는 세계의 부정적 요소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여성적인 것은, 경쟁하지 않고도, 비교하지 않고도 행복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 있는 '파워'로서의 힘을 의미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젊은 시절, 불끈 솟구치는 '비아그라'의 포스가 사그러든 노년.

여성적 에너지가 남성의 에너지를 능가하는 나이. 포스는 줄어들어도 '파워'는 넉넉해지지나 않을까?

 

파우스트가 보여준 '욕망'은 '상상의 힘'으로서의 욕망이다.

근대로 이행되는 시기의 욕망이 '지식, 성, 권력'에 대한 지향이라면,

자본의 시대로 넘어와서는 모든 욕망은 '자본'과 귀결된다.

자본은 한방에 '포스'도 '파워'도 장악해버리는 <남성적> 도구, <늙지 않는> 도구가 탄생한 것이다.

자본의 시대 이후, 어쩌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희망은 시궁창에 버려진 개념일는지도 모르겠다.

 

돈 후안으로 더 알려진 '돈 구안'을 로쟈는

'어른 아이'라고 부른다.

어른 아이의 특징은 대개 불같은 상상력을 갖고 있고,

상징계의 법이나 질서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것(247)이란다.

 

돈 구안이 '개념을 탑재하지 않은' 채로,

'영혼없는 사랑의 어휘'를 구사하는 것은,

세상이란 매트릭스에서 정해 둔 '윤리'라는 금을 '폴짝' 뛰어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세상은 온통 '욕망'의 도가니란 걸 느낀다.

다만, 자본의 시대 이후에는 그 '욕망'이 철저히 '자본'에 예속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

 

욕망을 다룬 소설을 이렇게 읽어주는 일도 재미있지만,

욕망의 근원, 욕망의 모습을 '상담'을 통해 풀어주는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가 드뎌 '힐링캠프'까지 접수하는,

그런 시대임을 읽어 본다면,

왜 강신주가 '힐링'이란 말은 사기다~라고 했는지

시대가 바뀌면서 '욕망'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많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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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독서 - 감성좌파 목수정의 길들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세상 읽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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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ㅋ~

요즘 아이들조차도~ 마법이나 매직~이라고 말하는 걸 제목으로 삼았다.

물론, 한자로는 '경계를 넘는' 뜻을 적었으나,

누구든, 제목에서 멘스트루에이션을 떠올린 것이다.

 

나는 여성으로서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경계 밖에서 바라본, 한국의 상황... 이런 의미도 담겨 있다.

 

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간 한 젊은이가 프랑스라는 자유 도시에서 살면서,

갑갑하고 이상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늘 떠올리면서,

자기가 읽어온 책들을 반추한다.

 

반추위는 4개란다.

처음 위에서 점점 다음 위를 향해 지나갈수록, 흡수되는 것이 많을 것이다.

독서 역시 그러하다.

몇 번 읽는 것이, 또는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는 것이,

훨씬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길들지 않은...

철들지 않은...

이런 말들을 붙이는데,

이런 사회적 금기를 넘기가 쉽지 않다.

그가 살아온 80년대말, 그리고 외국 생활이 길들고 철드는 사고를 해체했을 것이다.

한국의 학교, 군대, 가정 문화는 길들고 철드는 인간을 양성한다.

그래서 똑똑한 아이들은 '애 늙은이'라며 칭찬인지 한탄인지를 뱉게 된다.

 

이사도라 던컨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짜릿하다.

그의 삶과 죽음 모두가...

 

결혼제도가 노예제도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성의 해방과 여자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를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을 결심.

그리고 온갖 비난과 저주에도 불구하고 그 결심을 지켜나갔다.(57)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따위의 구절을 들먹일 필요 없다.

역사 속에서 이런 여성들의 삶이 나머지 여성들을 햇볕 쪽으로 조금 내몰 수 있었던 거다.

 

전혜린을 찾아 독일로 간 그는

뮌헨에서 발견한 건, 자본의 자유의 반대말이란 사실.(157)

이라고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유를 잃고 고독해 하는 이라면,

자본의 매트릭스, 그 종교적 환상을 벗어나는 일에 골몰해야 하리라.

 

그이의 독서기는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의미를 발견한다면 이런 정도다.

 

어찌 보면, 책읽기는 나에게 질문들과 만나는 과정이었다.

난 언제나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에게 끌렸고, 질문들을 찾아다녔다.(192)

 

책 속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다만, 삶의 고난을 어떻게 문제제기할 것인지,

잘 묻는 이들의 질문을 우리도 배워서 고민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러면, 유일한 내 인생에서 '세계-내-존재'로서의 내 삶의 고난을

어떻게 풀어나가지, 정답은 아니어도, 해답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좋은 책은 짜릿하다.

 

좋은 책은,

첫줄에서부터 마치 저자가 작정하고 나에게 들려주려고 준비한 얘기가 펼쳐지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195)

 

그렇다. 저자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그 숱한 '나'들은 저자에게 매혹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마법이다.

저자가 쓴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질문과 답일 따름이다.

내 삶의 답은 전혀 다를 수도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삶에서 '유비 추리'는 유사한 답을 낼 수도 있지만, 전혀 생뚱맞은 답을 내기도 하니 말이다.

 

김어준이, 법륜 스님이, 강신주가 '이혼하세요' 하는 말을 듣고,

냉큼 이혼하고 나서, 다음엔 어떻게 하나요? 이럴 바보들에게 책은 어쩌면 독이다.

삶은 개인에게 유일하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는 역사를 '사실'로 믿는 자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할 책이다.

역사는 '진실'을 가리고 저자에게 맘에 드는 '사실'로 쓸 수도 있음을...

 

계급적 이해는 언제나 국익이라는 모든 것을 감싸는 베일 뒤에 가려져 왔다.

한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전쟁을 결정하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결정의 결과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고 할 때, 과연 국익이라는 게 존재할까?(297)

 

이 책에는,

대학생 정도가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고등학생까지의 무가치한 책들만 읽다가,

이제 가치를 정립해 나가야 할 시기,

이런 뜨거운 책들은 자칫 가슴에 평생 남을 화인을 남길지도 모르지만,

다시 냉혹한 시대가 돌아오고 있으니, 뜨거운 책을 권하는 이런 구태의연한 책이,

다시 뜨거워지지나 않을까... 두렵다.

 

 

 

 

209. 공산당 선언의 첫구절...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거닐고 있다 - 공산당이라는 유령이...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259. 김대중이 조사 弔死를 읽는 것조차 가로막았다... 조사는 조문하는 말이니... 弔辭 가 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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