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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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 - 이 모든 것이 현대라는 이름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한국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이라는 말은 곧, 외로움과 불행, 그리고 군중 속의 고독과도 같은 의미로 쓰이듯이, 현대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요즈음.

내가 한창 자라나던 소년 시절에, 한자를 열심히 쓰던 중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글이 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일컬음이었고, 토착화란 것은 독재의 고착화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는 곧 근대화의 기수였고, 근대화는 서구처럼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라다크는 티벳의 작은 지역이다. 늘 즐겁게 웃고 살던 그들, 평화로움이 가득하던 그들의 삶에 '모던'이 들어가면서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평화롭고 즐겁던 공동체가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다.

부탄의 국왕이 말했다. "한 사회의 진정한 지표는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이라고.

우리는 아직도 국민총생산의 신기루를 좇고 있지 않은가. 행복을 저당잡힌 국민총생산은 대부분 미국이 시키는대로 비행기를 사고, 프랑스와 돈을 주고 받으면서 철도도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떼제베를 사들인다. 우리는 국민총생산이 높아서 양주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고, 여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코팅으로 얼굴을 가린다. 외제 화장품을 이용해서... 과연 우리는 행복이란 단어를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가. 우리의 복지의 목표는 행복에 있는 것일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지만, 과연 나는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가.

컴퓨터, 통신, 교통의 발달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벌어 들이고 있지만, 그 남은 시간들이 정말 우리가 잘 살게 되는 데 투자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정말 우리가 '잘 살기(well-being)' 위해서는 '잘사는(rich)' 것 보다는 미래에 투자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늘 병원에 가야 건강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을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 운동하는 사람은 벌써 어딘가가 고장난 사람이란다.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 얼마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가 떠오른다. 우리에게도 불과 얼마 전에만해도 공동체가 있었고, 여인네들의 함박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담스런 웃음과 어머니의 사랑과 뜨거운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결과로, 현대화가 가져다준 선물로 우리는 외로움과 불행, 부정의와 낭비를 감수해야하게 되고 말았다. 연탄가스 냄새 넘쳐나던 우리의 근대화의 과정은, 자동차 천만대 시대를 구가하며, 인간 소외의 시대에서 인간성 말살의 시대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누구도 우리의 초라했던 과거를 바람직한 미래로 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 번쩍거리는 현대식 빌딩들 사이로 숨어버린 과거가 사뭇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우리의 오래된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이제는 '미래'를 준비할 때이다. 녹색 평론처럼 재생용지도 사용하고, 그러면 책도 가벼워서 좋다. 아파트 대신 좁게 이층집도 지을 일이다. 무덤들도 없애고, 납골당을 만들어야 될 거고, 인스턴스 식품도 줄이고 밥으로 돌아갈 일이다.

비록 연극 대본이긴 하지만, 서구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라다크 사람들에게 서구세계에서 살다온 의사의 다음 말은 사뭇 시사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사람들은 돌로 빻은 통밀 빵을 먹지요. 그건 우리의 전통적인 빵과 비슷한데, 거기서는 흰빵보다 훨씬 더 비쌉니다. 그곳 사람들은 집을 우리처럼 천연재료로 짓고 있어요. 콘크리트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옷도 '100퍼센트 천연 섬유'와 '순모'라고 쓰인 상표가 붙은 걸 입는 추세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폴리에스텔 옷을 입고요.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달랐어요. 미국에서 현대적인 것이라고 하면, 전통적인 라다크 것과 비슷한 게 굉장히 많아요.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내게 '당신은 라다크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참 운이 좋군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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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8-3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님의 정교한 리뷰에 책 한권을 읽다가 갑니다. 이거 추천하나는 저여요.안할 수가 없더군요.

하얀마녀 2004-08-3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막연하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써놓으셨네요. ^^

글샘 2004-09-0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정교한 리뷰까지는 아니랍니다. 추천까지도... 읽어주시는 것도 고마운데요. 코멘트가 달리면 기분 좋은 마음이 90%쯤, 서재를 폐쇄하고싶은(아니, 비공개로 하고픈) 마음이 10% 정도랍니다. 사실 쓰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그래도 자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녀님/ 저도 글로 적지 않으면 막연해서 자꾸 적어보는 작업을 하는 거랍니다. 제 작업의 목적을 명료하게 지적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파란여우 2004-09-0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이러실줄 알았어요. 드디어 일을 저질르셨더군요.이주의 리뷰 당선 예상했던 일입니다. 너무 늦게 님의 차례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하 드려요!! 앞으로 더욱 친해져요 우리.^^

글샘 2004-09-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된 줄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님은 알라딘의 파수꾼이신가 봐요.
더욱 친해져요 우리...-.-;;; 남들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알라딘의 인기인 파란여우님의 프로포즈라니... 영광이네요.
요즘 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제가 바빠서 코멘트를 달지는 못하지만, 태풍의 피해 입은 작은 농부님의 아픈 마음과 공근 친구의 아픔을 느끼시는 고운 마음을 잘 배우고 있습니다. 님을 만난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 생각해요.
오늘은 태풍 피해로 맘이 쓰리실테니... 따끈한 브렌드 커피에 양주를 다섯 방울(그러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커피가 더 맛있다는 물리 선생님의 말씀... 근데 물리 선생님이 화학적 변화를 설명한 건 좀 이상하기도 했어요.) 넣어 드세요. 푹 주무시길...

파란여우 2004-09-0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4-09-08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미래' 책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군요...어쩌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미래란 정말 오래된 우리의 옛 전통의 정신을 되살려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삶의 성숙도 마음의 깨달음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글샘님 말대로 내 리뷰를 한번 돌아보는 계기는 되겠군요...글을 못보내드릴지는 몰라도....선생님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마이클 무어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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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 우리 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을 까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국가보안법'으로 무기징역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도 2년 전에 일어난 9.11을 가지고 대통령을 깠다면, '간첩죄'가 성립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뒤, 바로 다음 날 새벽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재판하기까지 시일을 기다릴 수 없었다면, 등산하는 작가를 실족사로 처리하여 의문사 진상 조사위원회에서 수십년간 의혹을 제기하고 있든가...

무엇보다고 그들만의 나라엔 자유가 있다. 부시네 가족처럼 아무나 주먹으로 칠 자유도 있고, 치지 말라고 무어처럼 떠들 수도 있다. 우린 남들 치는 데 조금만 훈수 뒀다가 된통 당했다. 하긴 범죄에서 공범도 형량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주범이나 종범이나 나쁜 놈이긴 마찬가지니까. 우린 결국 칠 자유도 없고, 치지 말라고 떠들 자유도 없는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열 두시간이나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내가 탄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는 순간 감사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즉물적인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고, 죽는다는 것은, 그것도 불시에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비명횡사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엉겨붙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 주변에서 워낙 비행기 사고가 잦은 탓이리라.

그는 이 책을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친 지 십년. 그 때 우리는 동시통역사가 꿈인 많은 학생들을 배출해 냈다.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작열하던 폭탄 세례. 아직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구십 일년에는 아름다움 폭탄빛만 비쳐줄 뿐, 폐허의 모습은 없었다. 십이년 후. 아들 부시가 아무 명분도 없이 폭력을 휘두른 이라크전은 핏빛 폐허에 떠오른 달을 세계로 보내 추악한 모습의 이면을 발가벗긴다.

결국 부시의 기름을 향한 전쟁은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이다. 난 그가 상당히 인도주의적인 사람이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읽고난 지금은 그 역시 미국인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들만의 나라 미국은, 무어가 진정으로 부시보다 미국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이해했기에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1차대전 이후의 윌슨과 민족 자결 주의를 멋모르고 좋아라했던 과거처럼, 미국 안에서 약소국을 위한 발언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순진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나라는 역시 그들만의 나라였던 것이다. 화씨 9/11을 시간이 없어서 못본 나로서는 간만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화씨 9/11을 못 본 분들에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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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8-2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럴까요? 대통령 깟다고 사형시킬까요? ^^ 현재의 미국와 과거의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비교대상의 오류인듯 하네요.그렇다고 미국의 시민자유와 한국의 시민자유가 같은 등급이란 뜻은 아닙니다.팽창하다 터질 것 같은 미국이 아직도 건재하는 것은 미국 시민사회의 두터운 자기철학과 또 수정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권을 시대변화에 맞게 해석하는 시스템의 안정성때문인 듯 합니다. 님의 말씀처럼 그들 나라의 자유는 부럽습니다.(아마 백인 중산층 위주의 자유겠지만)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아직 안봤는데요.영화가 가진 나름대로의 의미는 이해합니다.단 지난번에도 언젠가 이야기했는데...아룬다티 로이의 말처럼 부시에 대한 비판은 너무도 쉽고 편안합니다.마이클 무어가 비판적 백인으로써 할 수 있는 한계가 딱 그정도 가장 편안한 길이었겠지요.그 작업은 자칫 부시나 공화당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어서 거대한 미국의 패권주의의 역사와 억압상을 왜곡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학자들의 시각도 그 지점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고 그들이 메스를 들이대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에서 넘추는 미국인들의 허상을 들어내기 위함이겠지요. 잘 봤습니다.

글샘 2004-09-0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시대가 삼십 년 전의 레드 컴플렉스로 뒤덮인 매카시즘의 피바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극복해야할 첫번째 거미줄인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유는 우리 위의 쇠항아리 위에나 있는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 부자유의 연장선에 아직도 우리의 가녀린 자유는 떨고 있는 게 아닐까요. 사유의 산책에 동참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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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고 난 여러 번 좌절했다. 예전에 난 우리 나라만 이렇게 병신같이 살고 있는줄 알았다.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일제 치하에서 다시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독재에서 독재로 점철해 온 우리 역사를 늘 한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마치 모르고 자랐다가 다 자라서 만난 쌍둥이 형제와 같은 아시아의 나라들을 쳐다볼 때, 동병상련이라든지, 위안이라든지, 네트워크를 통한 위로보담은 어쩜 아시아는 이렇게 바보같은 나라들만 모아 놓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아시아는 너무 넓다. 우리 나라에 희망은 있을까?

난 아직도 1979년 10월 27일 아침 날씨를 기억한다. 부산의 가을 날 치고는 정말 음산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고, 그 아침에 한 독재자의 죽음을 들었다.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마음아픈 국민들은 구일간이나 조기를 달았고, 레퀴엠이란 레퀴엠은 그 때 평생 들을 것을 다 들었다. 지금도 장송곡을 들으면 그 시절 생각이 난다. 열 네살 내 나이에는 내 평생 한 분이었던 독재자의 죽음을 애도하러 구청까지 단체로 가서 분향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 짙던 향냄새여.

우리 나라는 아직도 그 독재자의 독재 개발의 망령을 그리워하여 그 딸을 야당 당수로 올려 놓았고, 다음 대통령 감이라며 부추기는 허황된 망상가들이 가득하고, 그 공주 출신의 천막 당사 옆에 주차된 즐비한 고급 승용차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안정을 희구하는 희한한 나라다.

아시아의 비극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 개발 도상에서 빚어지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어느 나라에나 패러디되어 있었고, 그 비극적 아이러니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에게처럼 결국 가난과 비극의 파국을 맞게 한 것이 아시아의 공통된 역사였다.

간디, 코리와 같은 신문에서 많이 보던 인물들도, 박통의 허상에 다름아니었다.

박통의 새마을 운동을 본받아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분발하고 있다는 말을 못 들어본 이 없으련만, 그 박통의 공주가 다시 대권을 이어받는 끔찍한 상상을 발칙하게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집단이 다시 있을까? 아마 한나라당이 아무리 정치의식 없다손 치더라도, 이회창 카드로 두 번이나 패배하고도 다시 공주 카드를 내밀지는 않을 듯 싶긴 한데, (창, 공주, 그들의 공통점은 정치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현실적 대안이 없다면 악수를 두지 않으란 법 없다.

내가 자라면서 듣고 외우고 불렀던 의식화의 메커니즘.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며...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새 역사를 창조하다.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유신 헌법,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던 때부터,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불러 자유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이런 것들이 계속 떠오르며 아시아의 미래는 매춘과 관광을 빙자한 문화재 유출 외엔 뾰족한 문화도 문명도 자존심도 없는 그들의 비극적 현실을 돌아볼 때, 희망을 말해도 좋을는지 의문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홍세화, 박노자 등의 비판적 시각은 왠지 읽고 나면 오기가 생겼지만, 아시아의 지난한 역사를 읽고 나니 어깨가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아시아여, 아시아여, 동방의 옛 영화여. 인도야, 태국과 미얀마, 캄보디아와 베트남, 말레이 반도 국가들. 필리핀이여, 중국과 한국이여.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아프간의 굶주리고 헐벗은 동족들이여. 정말 꽃으로도 때릴 수 없는 우리의 못남은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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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4-06-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에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바로 읽으셨군요.. 맞아요.. 제가 느꼈던 동질감과 아픔이 바로 이런거였나 봅니다. 그 나라를 읽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 모두 다른 나라들에 대한 느낌이라기 보다, 자신의 아픔을 다시 돌아보아 아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겠지요. 1979년에 나라가 망할 줄 알고 울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말이죠.. 뻔뻔스럽게 돌아온 과거의 사람들도 제 몫을 찾겠죠. 제 리뷰보다 훨씬 좋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드팀전 2004-06-1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중심의 역사가 보편적 역사인것 처럼 교육을 받고 자란 대한민국은 정서적으론 아시아라기보다 미국의 한 구석같습니다.아시아에서도 동북쪽에 한참 쏠려서 과거부터 한중일 삼국의 상호관계만을 마치 아시아 전체의 가치처럼 여기고 있습니다.내재화된 오리엔털리즘이 아시아에서도 스스로 격리시키고 소통불능의 국가인양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 아시아의 나라들은 주변국으로 또는 준주변국으로 세계체제의 거대한 흐름에 묻혀가고 있습니다.한국은 미국의 충실한 똥개로써 이제 준주변국의 신분은 확보한 듯 합니다.준주변국의 특성상 중심국으로 부터의 착취와 주변국으로의 역착취라는 이중적 구조를 행하고 있습니다.아시아 시장의 개척이란 이름,자유의 수호라는 베트남 파병...그럴싸한 명분으로 미국이 행했던 방식의 자본주의식 개방과 개척에만 앞장선 듯 합니다.
미국인 영어강사에 대한 태도와 외국인 공장노동자에 대한 상이한 태도가 보여주듯 우리안의 선긋기와 편협한 타자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은 미국의 똘마니 국가로 아시아에서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통치자가 박근혜든 노무현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글샘 2004-06-16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감사합니다.
한국은 확실한 제3세계 국가입니다. 물론 준주변국이지만, 독점 자본주의의 흐름이 너무도 얕고 천박해서 전혀 밑바탕이 없는 국가이지요.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수출되어도 한국 문화라고 하지 않고 '한류'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본 문화'가 밀려온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한류라는 말을 들으면 오싹합니다. 한 때의 흐름 이상으로 가치 매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 하여.
 
빨간 신호등 -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성찰의 거울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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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온통 빨간 신호등뿐.

중국어로는 신호등을 홍록등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냥 빨갛고 녹색의 등불일 뿐이다. 우리는 그 신호에 따라야 한다는 약속을 갖고 살지만, 사실 차가 거의 없을 때 나는 신호등을 자주 무시한다. 걷거나 운전할 때...

이전의 홍세화의 글들이 기획적이라면, 이 글은 잡문의 일종이다. 칼럼이란 게 그렇지만, 그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참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숨은 암종의 세포들을 발겨내는 몇 년 전의 칼럼들을 보면, 거즈로 살짝 덮어 둬서 잊고 살았던 상처에 날카로운 종잇장이 스친 섬뜩함이 등골을 스친다.
B급 좌파를 읽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역시 김규항보다는 홍세화씨는 한 수준 위다.

세상을 보는 눈도 그렇고, 필력도 그렇고.

산다는 것이 장밋빛 탄탄대로는 아닐지라도, 평온한 꽃길도 있고, 진흙 좀 묻더라도 고요한 시골길 같으면 좋으련만, 아침마다 길은 파헤쳐지고, 까발겨져서 길의 개념을 잃고, 길의 의미를 분산시켜 버린다. 아침마다 대문짝만하게 불거지는 사건, 사건들은 사는 걸 무섭게 한다.

오랜 암종들이 서로 규합하고 조직되어 발생하는 새로운 암종은 면역이 생겨 쉽사리 사그러들 줄 모른다. 숙주가 죽는 길만이 암종의 종말인가.

우리 사회의 암종에 칼날을 들이대기엔 숙주의 면역력이 너무 약하단 느낌으로 온 몸이 써늘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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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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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보보스를 생각하면 보거스의 우스꽝스런 표정이 생각난다. 외모는 두꺼비같지만 자상한 그에 비하면, 보보스는 정 반대의 개념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행세를 하지만, 속으로는 부르조아적인 부류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양반 비슷한 뭐 그런거 말이다. 자기는 부르조아와 다르다고 한다. 부르조아의 삶은 대부분 유전적인 것이라고. 그러나 보보스의 삶은 개성적인 보헤미안 기질이 많단다. 웃기는 짜장이다.

정보 시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엘리트, 좋아하신다. 정보 시대를 지배하는 건, 역시 돈이다. 빌게이츠가 청바지를 입어서 멋진 것이 아니고, 돈이 많아서 멋져 보이는 거다. 옛날엔 귀족들(와스프)이 청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건 상당히 집안과 관계 있기 때문에. 그러나 사회가 변하지 않았는가. 핵가족 시대로. 집안의 배경보다는 돈이 배경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작자의 (책날개를 보라, 그의 얼굴은 보거스보다 코믹하다. 마치 닌자거북이의 한 별종같다) 보-보는 보수-개혁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체를 보면, 보수는 그대로 있고, 개혁의 자리는 없어 졌다. 그 주변 상황이 조금 달라 져서 빛의 파장에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세상이 돈을 물려주고, 그 후손들이 계속 잘 살고, 또는 우연히 큰 돈을 만지게 되고, 돈으로 지위를 얻고, 명성을 날리는 천민 자본주의 국가인 이상, 이런 성공을 위한 야망의 헛된 시나리오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뉴욕 타임즈, 북리뷰, 워싱턴 포스트, 타임 에서 압권이니 지침서니 하고 떠벌이는 것은 자기들을 추켜주는 내용에 반해서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정조임금 사후로 혼란기 100년, 식민시기 50년, 전쟁후 회복기 50년을 억지로 살아내고 있는 나라에는 보보스는 커녕, 보수 친일세력만이 득세하고 있을 뿐이다. 그 보수 친일세력의 권력, 언론 등의 실체를 사회과학적으로 밝인다면, 천민 자본주의, 그것도 식민지 매판 자본의 구조적 결함 투성이인 그것임을, 실상을 볼 일이다. 스스로 보보스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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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보보스라고 착각하는 중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