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게리 폴 나브한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그물코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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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참 더럽다. 모래밭에서 털썩 주저 앉아서 두 손으로 모래를 주무른다. 거긴 산도 생기고 계곡도 생기고, 집터도 있고, 자동차로 쓰는 자갈도 있다.  소나뭇가지는 나무가 되고, 두꺼비집처럼 생긴 터널도 만든다. 그 더러운 손으로 코도 비비고, 머리도 긁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모래밭조차도 보기 힘들다. 자전거를 타거나, 기껏해야 롤러브레이드를 타거나 한다. 집에서 컴퓨터 오락을 하거나 피시방엘 다닌다.

나무에 기어오르고, 진흙탕에서 미꾸라지와 싸우는 원시적 삶의 태도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기르는 방법이다.

숲을 잃고, 들판을 잃은 우리아이들이 빌딩숲에서 배운 감성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여성의 공간으로 꾸며진 곳이 부차적이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남성의 정체성- 무조건 나아가고, 어떤 값이라도 치르며, 모든 경쟁자를 무찌르고, 필요하다면 죽인다. -을 위해 지켜지던 특성들 위에 만들어진 길의 끝에 다다랐다. 우리는 이제 연결 속에서 믿음의 기초-믿음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 존재를 위한 요구 사항이라는 인식-를 찾아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남성적인 것들이 우세하던 세기를 보내고, 여성적인 것들이 필요한 시대를 맞았다. 평화, 우애, 사랑, 존중, 공동체를 보듬어 사는 삶이 그것이다.

자연에서 떨어진 아이들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이 달의 화두라도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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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바람 2004-10-2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교육에 대한 내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성적, 여성적 세계관'에 대한 얘기도 있나 보군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곧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문제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 키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제쳐뒀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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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쯤 전이었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었다. 두 권의 만화로 되어있었는데,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쥐'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라면, 이제 그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된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형상화는 추상의 한계를 극복하는 힘을 가졌다. 이스라엘의 역사나 유태인의 역사, 팔레스타인 전쟁 등을 책으로 읽었을 때 느꼈던 그들의 삶은, 폭동, 희망없음,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과의 대치... 뭐 이런 무미건조한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시종 기분이 께름칙하다. 바로 비오는 날씨와 진흙탕 때문이다. 이런 것을 비평에서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배경의 역할이라고 할까? 그리고 너무도 어린 나이에 죽음, 고문, 수모, 팔을 부러뜨리기(이것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죽음보다, 고문보다...), 그리고 돌을 던지고, 다시 고행의 길로...

우리의 80년대가 희망을 향한 투쟁의 시기였다면, 그들의 삶은 하나에서 열까지 비참하고 희망 없는 투쟁의 현실이다. 리얼리즘이 가지는 힘이란 이런 것이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만화. 죽고, 또 다치고, 총에 맞고, 죽음마저 죽음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비통함, 그리고 침묵과 벽.

통곡의 벽.(누구를 위한 통곡의 벽인가.)

그 벽 앞에서 통곡하다가, 흐느낌마저 잦아지다가, 고개를 든 히잡을 쓴 여인의 눈초리에선 독기가, 복수의 광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후세인만이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킨 멋쟁이라는 말을 읽을 때, 9.11 테러를 보고 환호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의 마음이 바로 김수영의 <풀>이 아니었을까.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조 사코가 취재하는 내내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길 원했듯이, 나도 사실은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음에 안도하고 있다는 걸 난 안다. 그러나, 안사르와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곳에는 영원히 평화가 올 수 없음을. 그러나 언젠가는 결론아닌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음을 예감하며 이 무거운 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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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게 되는 날이 오기를
"전쟁"을 하면서 인류 혹은 민주를 위해서라는 웃기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리뷰를 읽다보니 그 만화를 보던 때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0-0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지적대로 누구를 위한 통곡의 벽일까요...
실상 역사의 진보를 믿긴 믿어야겠단 생각을 꾸역꾸역 하면서 이 책을 읽었어요.
이슬람 문명권에 무지했던 경계가 조금씩 뭉개지는 것도 진보라면 진보랄 수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서도...
어느새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추천!

글샘 2004-10-0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참 무거운 책이었지요. 그이들의 진창같은 삶을 보면서 정말 이런 다큐멘터리를 남기기도 어렵겠구나 했답니다.
내가 없는 이 안님/ 우리나라가 너무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살았지요. 사실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만도 않았는데요.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중국의 학자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데... 분단된 후로 우리는 섬나라 사람들이 되었으니.. 빨리 통일이 되어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질 것 같네요.

sarac 2010-09-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좋은책들 많이 알고갑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점은...리뷰가 거의 대부분 책에대한 내용보다는 책 제목만 말씀해주시고 갑자기 개인적인 생각을 나열하기때문에..책에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아쉽네요
 
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도 내 안의 파시즘이 아닌 '우리 안의 파시즘'이다. 우리 민족은 순수함, 오염되지 않은 것을 영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섞일 기회가 없었으며, 섞이거나 다른 것은 화냥년, 트기(혼혈), 왜놈, 쪽바리, 뗏놈, 코쟁이, 검둥이, 산업연수생으로 멸시해 온 역사를 가져왔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난삽하다. 다양한 주제를 묶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잡다한 주제의 글을 섞어 놓으니 제목이 무색해져 버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머리말과 처음글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와 박노자의 '한국의 군사주의', 김근의 '언어 안의 파시즘', 마지막 문부식의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은 제목과 부합하고, 나머지 글들은 왠지 읽기 어색하다.

나도 386세대이긴 하지만, 파시즘 하면 정말 할 말이 끝도 없다. 우리에게 끝도없이 주입된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의 그것과 그 재생산 구조로서의 학교의 파시즘, 가부장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합리한 부담감, 군대 사회의 연장인 남성들의 음주 문화와 퇴폐적이고 강압적인 한국의 회식문화까지... 어느 하나 파시즘의 짙은 악취를 풍기지 않는 것 없다.

내가 요즘 가장 혐오하는 것이 회식이란 이름으로 빚어지는 연장 근무이다. 핵가족화되는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직장은 대개 무슨무슨 명목으로 회식이 잦다. 이것은 파티의 개념도 아니고, 축제의 개념도 아니다. 실컷 퍼먹고 마시다가 2차 3차 가면서 먼저 간 놈들 욕하고 씹는다. 이런 데 빠지면 뺀돌거린다고 취급하고, 직장에서도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자기들과 다르면 '틀려빠진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무서운 광기의 문화.

어쩌다가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오늘 인터넷 뉴스에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크게 났다.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교사가 중고생의 머리를 훼손하는 것은 이 나라 구석구석 비일비재한 일인데... 그거 뉴스에 다 난다면 아홉시 뉴스는 자정 넘길걸... 우리 학교들은 아침마다 학생부 교사들과 선도부(간부들)의 위압적인 도열을 통과해야 한다. 교사들과 눈을 다정하게 마주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정신나간 놈 아니고는 그러기 쉽지 않다. 학생 지도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파시즘. 교문에서 단속하는 사항은 정말 정신나간 짓거리다. 명찰이 있나, 넥타이는 맸나, 양말은 신었나, 1분도 지각하지 않나, 머리를 염색한 놈은 없나... 난 정말 학생부가 싫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교실에는 여덟 줄로 질서정연하게 줄맞춘 책상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운동장에서 군국주의 냄새 물씬 나는 전체 조회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각종 시상(상 타는 놈은 늘 정해져 있다. 물론 박수만 3년 치는 놈들도 늘 정해져 있다.), 교장선생님 말씀, 교가 제창, 폐회, 그리고 학생부장 말씀, 학년부장 말씀, 욕설이 난무하는 건 예사고(야, 이색기야, 줄 똑바로 안서? 열역학 제2법칙에서 물질의 운동은 엔트로피,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했거늘...) 간혹 비라도 내려서 교실에서 조회를 하면 학교장은 상당히 불쾌해 한다.

권력이 강하다는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라고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단다. 정말 무서운 것은 80년대의 파시즘이 아니다. 그 때는 어정쩡하던 나도 파시즘에 적나라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즈음은 정말 사회 구석구석 레드컴플렉스와 파시즘의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있음을 볼 때 정말 무서운 권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 학교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한겨레 21과 씨네 21을 학교 예산으로 정기구독하려고 했다. 학교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서는 그런 책은 안 된다고 하셔서 현재 옥신각신 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 책들을 읽어 보기라도 했을까? 한겨레라는 말에 레드 바이러스라도 붙어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들의 눈에는 빨간 신호들이 들어온 상태다. 불온 문서를 도서관에 비치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이왕에 구독하던 우리교육도 심의 한다는 소문이다. 정말 아뜩하다. 월간조선을 구입해봐야할까? 어쩐다고 한겨레라는 말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단 말인가.

하긴 얼마 전 보수 꼴통들이 모인 자리에 개량한복을 입고 갔더니(난 보통땐 잘 안 입는데, 그 날은 발표한다고 큰 맘 먹고 추석 다음 날이라 입고 갔는데...) 유명한 대학 교수가 '자네 전교존가?'하고 바로 물었다. 내가 아무 생각없는 듯이, '네' 했더니 상당히 불쾌해했다. 웃기는 짜장도 이 정도면 심하지 않은가.

'수직적인 지배의 아비투스를 수평적인 우애의 아비투스로 대체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는 이 말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지배 담론의 파시즘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평화의 세상을 희구하는 것이 혁명이란 말인게다. 그런데, '아비투스'란 말을 아무 주석도 없이 휘갈겨 쓴 것은 수평적인 우애의 행동일까? 대학 나와서 선생까지 하고 있는 내가 인터넷에서 아비투스(habitus)의 뜻을 찾아 한 시간을 공부한 그 어휘를... 정말 요지경이란 생각 뿐이다.

\ \ \ \ \ \ \ \ \ \ \ \

다음은 네이버 검색에서 찾은 <아비투스>의 설명이다.

.....부르디외는 '객관적인 계급구조와 행위자들의 취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발견해, 구조와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란 개념을 사용한다. ..  이것은 문화가 계급과 지위의 차이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 기제이다. .....

whowho96님의 블로그에서 찾은 <아비투스>의 간단한 설명.

아비투스는 사회적으로 틀지어진 일정한 성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향은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인식, 판단, 행동 양식들의 혼합물이다. 아비투스는 학교교육, 가족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을 통하여 만들어진 사고, 인지, 행동, 그리고 습관의 무의식적 틀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식 및 행위고조 체계'인데, 일상적 삶을 통해 형성되고, 형성된 아비투스는 다시 일상적 생활을 규정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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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0-0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가 아니라 군대죠. 또 다른 군대. ㅜㅜ

드팀전 2004-10-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이 책이 나오고 일상적파시즘에 대한 논쟁이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임지현,문부식을 필두로한 당대비평과 김진석교수의 사회비평 논자들간의 논쟁이었지요.당시 아주 재미있게 이 논의를 지켜봤던 기억이 나는군요.거기에 또 임지현의 조선일보 기고와 관련해서 강준만아저씨의 강단좌파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어쨋거나 한가지 국가주의와 조직우선 사고가 만연하 우리 근대의 모습에 일상적 파시즘 논의는 의미있는 문제 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로드무비 2004-10-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멋져요.
잘 읽고 갑니다.
옛날 당산동에 전교조 사무실이 있었는데
제 여동생도 부산에서 학교 선생이랍니다.^^

글샘 2004-10-1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 맞아요. 군대아닌 군대. 교복에 조회에... 폭언과 폭행까지...
드팀전님/ 파시즘은 논의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거였죠. 블랑카를 바라보는 우리 안의 파시즘. 무섭습니다.
로드무비님/ 전교조도 하나의 파시즘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일하는 유연함이 있어야 파시즘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 - 전3권 - 미국 역사, 미국인, 대통령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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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 때, 미국은 영어를 쓰는 나라였고, 좀 자라서는 미국은 아름다운 이땅 금수 강산을 지켜준 우방이었고, 가끔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라도 방문할라치면 온 나라가 잔칫집 분위기(방송상으로는)로 들썩거린 기억이 난다.

대학생이 되어서 대자보에서 읽은 미국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매판 정권을 조종하는 배후세력이었고, 80년 광주를 승인한 악마였으며, 운디드니에 묻힌 숱한 인디언들의 불공대천의 원수이자, 현대의 저강도 경제 정책으로 세계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신 제국주의 국가의 맹주였다.

이제 소련이 분열되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수정자본주의로 돌아선 지금,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경쟁 상대 없는 망나니이며 그 망나니를 말릴 사람 없는 인류의 웬수 덩어리가 되었다. 저런 놈을 불가사리라 하랴, 고질라라 하랴...

그러나 적을 알아야 내가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미국은 결국 모든 나라의 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미국을 아는 것은 세계를 아는 첫 단추로 아주 중요하다. 이제껏 우리가 알던 미국은 너무 좋고 고마운 엉클 샘이었든지, 아니면 악의 화신인 미제국주의자의 가면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하는 책이다.

그들의 역사를 읽으면, 왜 그들의 현재가 그토록 화려하면서도 추할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이 역사책을 읽으면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끊임없는 대립의 역사 속에서도 지배자가 없던 신대륙에 꽃피운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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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09-2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역사를 사회과학적으로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국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또 다른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현상적인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사회가 가진 동양의 정신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속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재생산의 가능성도 말입니다. 나아가 불교도 이슬람교도 유대교, 인디언의 영적 전통 및 대안세계에 대한 밑그림의 가장 심오한 전통도 미국에서 역수출되는 현상입니다. 사회적 모순이 극화된 곳에 그 모순의 해결가능성도 극대화된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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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어는 9/11 테러가 나던 날 아침 어느 새신랑('새'와 '신(新)'은 의미상 중복이다, 이런 게 생각나는 나도 어지간한 직업병 증후군이다.)에게 일어난 사건을 시작으로 자기 이야기를 썼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새신랑의 아내가 음식이 서툴러서 배탈이 나지 않았다면, 그가 참지 못해 집으로 차를 돌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오지 않았더라면, 그 빌딩의 바로 그 층에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을 텐데... 정말 머리가 핑 돌 일이다. 9/11 테러는 미국인들에게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서준식은 재일동포의 자격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한 사람이다. 제목에서 나오듯이 십팔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했다. 어느 독재자가 지배한 햇수와도 일치하는 그 십팔년은 발음만큼이나 비극적이다.

조정래의 아리랑으로 기억하는데,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유태인은 3년간에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 우리는 식민지 35년간 비슷한 숫자가 죽어갔다. 누가 더 괴로웠을까. 하루이틀 괴로운 것이 나을까, 아니면 몇 년을 두고두고 괴로운 것이 나을까. 이것은 물에 빠져 죽을래, 맞아 죽을래처럼 결말이 죽는 것과는 종류가 다른 의문이다. (일본 관동대지진때 조선인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헤엄쳐서 나오는 이는 때려 죽였다고 한다. 징헌 놈들) 조정래씨의 결론은 우리가 훨씬 오랫동안 괴로웠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1800년 정조 임금이 급사한 후로 우리 역사책에는 역사다운 역사가 한 줄이나 기록되었던가. 흥선대원군의 업적 정도 나올까 말까 했지만 그의 방어는 바가지로 벼락 막는 셈이었으니... 삼정의 문란, 외세의 침입, 식민지 시대, 전쟁, 독재와 내정간섭 시대, 그리고 비틀거리는 문민정부시대. 누구는 박정희가 경제 개발의 은인이라고도 하지만, 그리고 그것은 전혀 빈말이 아님을 알지만,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필리핀의 3년 식민의 대가로 5억 5천만 달러를 받아간 반면, 우리는 35년의 대가로 3억 달러를 받았을 뿐이라는 김종필과 박정희의 단견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병신같은 짓거리다.(수치가 맞는지는 자신없지만, 대략 그렇다고 기억한다.)

미국이 테러로 입은 상처는 별거 아닌 것이다. 찰과상 정도. 아까징끼(요드팅크액) 바르고 나면 낫는 상처 정도다. 이라크에 분풀이하면 낫는 상처다. 우리 역사에 남은 흠집은 생사를 넘나들만큼 중했던 상처가 온 몸에 가득하다. 이 책의 기록도 그 상처의 하나에 속한다.

같은 옥중 작품이라 하더라도, 예전에 읽었던 신영복 님의 글은 연륜과 깊이가 느껴졌고, 박노해의 그것은 비굴과 합리화가 지배한 반면, 황대권의 그것은 생동감과 인생의 지혜가 감동적이었고, 서준식의 이 책은 젊은 피가 곤두박질치는 미칠듯한 번뇌가 너무도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어떤 부분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풋내음이 남기도 하지만, 감옥에서의 사색은 정말 고통과 인내와 비참함으로 점철된 시간들이다. 국방부 시계만큼이나 안가는 시계가 법무부 시계라던가.

그의 '자생력'은 피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삶의 싸움터에서 자기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그만큼 치열했고, 뼈에 새긴 글발들이 아니었던가. 각고(刻苦). 뼈에 새기는 고통으로 적은 서간들이 모여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이루다니.

그가 그 긴 세월 동안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던, 괴테의 한 마디는 두고두고 내 마음을 누르고 있다.

Without haste, without rest.(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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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9-02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멋진 글 하나 읽고 갑니다. ^^

달팽이 2004-09-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의 역사가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서 피의 흔적을 보며 우리는 영혼의 상처를 받습니다. 때로는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하는 역사적 교훈을 아로새기기도 하고요...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이기적 유전자를 스스로 다스리지 아니하고는 어쩔 수 없이 되풀이되는 역사적, 시대적 업의 소용돌이에 말릴 수밖에 없는 일들에 너무나 마음 상처만 받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군요... 괴테의 말 "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고" 담담히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샘 2004-09-0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마녀님/ 과찬이시네요. 늘 글을 써 놓고 나서 하루 지나 읽어보면 내가 좀 불평분자같기도 하고, 스스로 모자랄 뿐인데요. 그래도 용기를 주시니 책 읽기 괴로운 계절이지만, 열심히 읽고 열심히 적어 보렵니다.
달팽이님/ 반갑습니다. 괴테의 말, 정말 좋은 말인데요, 우리 고3 아이들에겐 참 좋은 말이라 들려 주기도 하지만, 서준식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법무부 시계를 이겨내는 참을성이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