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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도 내 안의 파시즘이 아닌 '우리 안의 파시즘'이다. 우리 민족은 순수함, 오염되지 않은 것을 영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섞일 기회가 없었으며, 섞이거나 다른 것은 화냥년, 트기(혼혈), 왜놈, 쪽바리, 뗏놈, 코쟁이, 검둥이, 산업연수생으로 멸시해 온 역사를 가져왔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난삽하다. 다양한 주제를 묶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잡다한 주제의 글을 섞어 놓으니 제목이 무색해져 버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머리말과 처음글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와 박노자의 '한국의 군사주의', 김근의 '언어 안의 파시즘', 마지막 문부식의 '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은 제목과 부합하고, 나머지 글들은 왠지 읽기 어색하다.
나도 386세대이긴 하지만, 파시즘 하면 정말 할 말이 끝도 없다. 우리에게 끝도없이 주입된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의 그것과 그 재생산 구조로서의 학교의 파시즘, 가부장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합리한 부담감, 군대 사회의 연장인 남성들의 음주 문화와 퇴폐적이고 강압적인 한국의 회식문화까지... 어느 하나 파시즘의 짙은 악취를 풍기지 않는 것 없다.
내가 요즘 가장 혐오하는 것이 회식이란 이름으로 빚어지는 연장 근무이다. 핵가족화되는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직장은 대개 무슨무슨 명목으로 회식이 잦다. 이것은 파티의 개념도 아니고, 축제의 개념도 아니다. 실컷 퍼먹고 마시다가 2차 3차 가면서 먼저 간 놈들 욕하고 씹는다. 이런 데 빠지면 뺀돌거린다고 취급하고, 직장에서도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자기들과 다르면 '틀려빠진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무서운 광기의 문화.
어쩌다가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오늘 인터넷 뉴스에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크게 났다.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교사가 중고생의 머리를 훼손하는 것은 이 나라 구석구석 비일비재한 일인데... 그거 뉴스에 다 난다면 아홉시 뉴스는 자정 넘길걸... 우리 학교들은 아침마다 학생부 교사들과 선도부(간부들)의 위압적인 도열을 통과해야 한다. 교사들과 눈을 다정하게 마주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정신나간 놈 아니고는 그러기 쉽지 않다. 학생 지도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파시즘. 교문에서 단속하는 사항은 정말 정신나간 짓거리다. 명찰이 있나, 넥타이는 맸나, 양말은 신었나, 1분도 지각하지 않나, 머리를 염색한 놈은 없나... 난 정말 학생부가 싫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교실에는 여덟 줄로 질서정연하게 줄맞춘 책상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운동장에서 군국주의 냄새 물씬 나는 전체 조회를 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각종 시상(상 타는 놈은 늘 정해져 있다. 물론 박수만 3년 치는 놈들도 늘 정해져 있다.), 교장선생님 말씀, 교가 제창, 폐회, 그리고 학생부장 말씀, 학년부장 말씀, 욕설이 난무하는 건 예사고(야, 이색기야, 줄 똑바로 안서? 열역학 제2법칙에서 물질의 운동은 엔트로피,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했거늘...) 간혹 비라도 내려서 교실에서 조회를 하면 학교장은 상당히 불쾌해 한다.
권력이 강하다는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라고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단다. 정말 무서운 것은 80년대의 파시즘이 아니다. 그 때는 어정쩡하던 나도 파시즘에 적나라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즈음은 정말 사회 구석구석 레드컴플렉스와 파시즘의 바이러스들이 창궐하고 있음을 볼 때 정말 무서운 권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 학교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한겨레 21과 씨네 21을 학교 예산으로 정기구독하려고 했다. 학교에서 가장 높으신 분께서는 그런 책은 안 된다고 하셔서 현재 옥신각신 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 책들을 읽어 보기라도 했을까? 한겨레라는 말에 레드 바이러스라도 붙어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들의 눈에는 빨간 신호들이 들어온 상태다. 불온 문서를 도서관에 비치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이왕에 구독하던 우리교육도 심의 한다는 소문이다. 정말 아뜩하다. 월간조선을 구입해봐야할까? 어쩐다고 한겨레라는 말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단 말인가.
하긴 얼마 전 보수 꼴통들이 모인 자리에 개량한복을 입고 갔더니(난 보통땐 잘 안 입는데, 그 날은 발표한다고 큰 맘 먹고 추석 다음 날이라 입고 갔는데...) 유명한 대학 교수가 '자네 전교존가?'하고 바로 물었다. 내가 아무 생각없는 듯이, '네' 했더니 상당히 불쾌해했다. 웃기는 짜장도 이 정도면 심하지 않은가.
'수직적인 지배의 아비투스를 수평적인 우애의 아비투스로 대체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는 이 말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지배 담론의 파시즘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평화의 세상을 희구하는 것이 혁명이란 말인게다. 그런데, '아비투스'란 말을 아무 주석도 없이 휘갈겨 쓴 것은 수평적인 우애의 행동일까? 대학 나와서 선생까지 하고 있는 내가 인터넷에서 아비투스(habitus)의 뜻을 찾아 한 시간을 공부한 그 어휘를... 정말 요지경이란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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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네이버 검색에서 찾은 <아비투스>의 설명이다.
.....부르디외는 '객관적인 계급구조와 행위자들의 취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발견해, 구조와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란 개념을 사용한다. .. 이것은 문화가 계급과 지위의 차이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 기제이다. .....
whowho96님의 블로그에서 찾은 <아비투스>의 간단한 설명.
아비투스는 사회적으로 틀지어진 일정한 성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향은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인식, 판단, 행동 양식들의 혼합물이다. 아비투스는 학교교육, 가족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을 통하여 만들어진 사고, 인지, 행동, 그리고 습관의 무의식적 틀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식 및 행위고조 체계'인데, 일상적 삶을 통해 형성되고, 형성된 아비투스는 다시 일상적 생활을 규정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