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성일권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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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 제목은  the crisis of Orientalism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위기...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름은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이란 만화를 읽으면서였던가. 아니면 그 전에 어디서 들어봤던가...

그의 역작 오리엔탈리즘을 도서관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기가 어렵다. 있기는 있다는데, 계속 대출중이고... 인기가 좋은 건지, 아님 누가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읽고 싶었던 오리엔탈리즘은 아직 못 읽고, 이 책을 먼저 읽어 버렸다.

9.11 테러 이후로,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하여 대단히 적극적이다. 그가 재생이 불가능한 백혈병에 걸렸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의 새마을 운동과 유사한 이스라엘의 공동생산체제에 대하여 배우면서, 사막을 초원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경외의 염을 주입받은 세대다. 요즘 아이들은 아예 그런 것도 배우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임을 세뇌받은 내 두뇌는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존경의 염을 느꼈을는지도 모르는 그런 멍청한 세대였다. 우리도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기에,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는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새역사를 창조하라고 배웠던 거다.

그런데, 살다 보니깐, 미국이란 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美國가 아니었고, 정말 흉악한 나라였으며, 내가 아는 최근의 모든 전쟁(이라크 전쟁, 십년 전의 걸프전, 이십오년 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동 전쟁, 사십년 전의 베트남 전쟁, 55년 전의 한국 전쟁, 60년 전의 2차 대전)에 교집합으로 참여한 유일한 나라. 바로 그 악의 축이었던 것이다.

그 미국이 만들어준 나라, 이스라엘. 그들에 대해 우리 교과서는 무조건적으로 우방으로 치부했고, 그들과 싸우는 세력은 빨갱이로 여기게 해 주었으리라.

그러나, 진실은 감출 수가 없는 법.

이스라엘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뿌리가 끊어진 나무는 비가 와도 말라 죽고, 줄 끊어진 연은 바람이 불어도 떨어진다는... 언젠가는 뿌리 잘린 나무, 줄 끊어진 연의 신세가 되리라는 생각이...

이스라엘 문제는 여러 모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강점 국가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력한 후원으로 든든하기만 하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지역에 총들고 쳐들어가 국가 세운지 50여 년 된 깡패 나라인 줄은 전혀 모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최장 기간의 난민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 난민은, 힐러리에게 보석이나 바치는 썩어빠진 지도부를 가지고 있으며, 오랜 기간 지속되는 난민 생활에 지쳐 이스라엘의 하급 일꾼으로 일하기 시작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중에, 일부 과격한 단체에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끊임없는 테러를 일삼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시오니즘은 그 부조리를 얼버무리고, 무시하려 하며,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들은 학술적인 논문이라기 보다는, 투쟁의 전선이 형성되어야 할 지점을 짚어 주는 전략집으로 기능할 법한 글들이다.

평화는 누구나 원하는 바이지만, 테러를 통하여 <의義>를 실현하려 하는 의지를 가진 이들을 진정시키고 종국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그 배를 부르게 하고,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무위의 정치가 필요할 때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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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8-1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이 책은,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 책입니다.
어제 영화를 보고 나니까, 친절한 금자씨와 비슷한 나라가 이스라엘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글샘 2005-08-1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천 년 전의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서 남들을 학살하는 현실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는지요... 결자해지라고 맺은 자가 풀어야 하는 법인데...
방학 잘 지내고 계시죠?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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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육학년 아들이 역사를 좋아한다. 글쎄. 역사 과목이 재미있다는 건지, 문제 푸는 게 체질에 맞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는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암기 과목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국사와 세계사는 별로였다. 반도 못 맞춘 적도 있었고... 국사와 세계사는 참 어려웠던 과목인데, 대학 시절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세계사, 한국사를 여러 방면으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시험을 치라면 모르겠지만, 국사를 싫어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내가 살아온 80년대 덕분인지 탓인지 그렇다.

츠바이크의 이 책은 역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 서사의 시대, 80년대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던 선배들에게 난 늘 회의적이었다. 과연 역사가 진보하는 것인지... 역사가 진보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우리가 맡은 피의 냄새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을 증거해 주지는 못했다.

늘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울면서 등교를 하고, 신문의 하단 1단 기사로 늘 작은 시위를 접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나는 그래서 역사 책을 자꾸 읽으려 했던지도 모르겠다. 특히 88년 해금이 되면서 북한의 역사 서술도 출판된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었다. 이적지 배우던 것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던 기억은 나지만, 그것 역시 역사는 한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기술되어 있어서 실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얼마 전, 마이리뷰 당선 이벤트를 할 때, 어느 분이 이 책을 소개해 주셨는데, 이 제목을 보고, 내가 그토록 믿지 못하던 역사의 정체에 대해서 이제 조금이나마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에는 미친 놈과 우연의 점들이 끝도없이 이어지면서 마치 하나의 흐름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단 거다.

나는 늘 좀 삐딱한 편이어서 하나의 교조적인 지침을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캐들어가는 걸 좋아하느냐면, 그것은 또 적성에 안 맞다. 그냥 '저치가 저렇게 떠들어 대도 결국은 모르는 거잖아?'하는 냉소와 독설이 내 주특기라고 할 수 있다. 살아오다 보니 내 성격이 그런 걸 이제 알겠다.

이 책은 재미난 역사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소한 역사적 사건들과 중대한 역사적 분수령들이 어떻게 얽히는 것이며, 개인이란 얼마나 그 사이에서 우연하게 얽혀 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책으로서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한 달이 넘었는데, 중간에 한 이주 이상은 내 손을 떠나 있기도 했고... 이제야 절반 정도를 마저 읽었다.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역사에 대해 나처럼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반가운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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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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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요일에 늦게 일어났더니 열두시가 돼서도 잠이 안 온다. 책을 잡고 있다보면 졸리겠지... 하다가 새벽 세 시가 되어 다 읽고 말았다. 정혜신은 무서운 사람이다.

그의 남자 대 남자는 그 기획 의도가 신선했던 만큼 반향도 좋았던 것 같다. 이제 그 두번째 책으로 사람 대 사람이 나왔다. 여기서 여자는 심은하, 김수현, 박근혜의 세 사람이고 남자가 열 세 사람이다.

결혼 후 세 가족이 처음 여행을 떠날 땐, 참 좋았다. 모든 곳이 처음이었고, 그만큼 갈 곳이 많았다. 역시 유명한 곳은 볼 것도 많고 사진찍기도 좋았다. 요즘은 어디 갈 곳이 별로 없다. 이미 다 가버렸기 때문이다. 사진 찍을 곳도 별로 없고, 새로운 곳이라고 찾아가도 실망하기 쉽다.

역시 첫 경험만한 두번째 경험은 없다고 봐야 할까... 그러나,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정혜신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다. 직업이 정신과 의사라지만, 난 그의 의식을 해부해 보고 싶다. 조목조목 분석은 못하고 그냥 마구 헤집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수십 년간 자료를 모아 글을 쓰시는 김윤식 교수님을 보는 듯 하다.

겉보기에는 <심리 + 평전>이라고 적어 놨지만, 명백히 이 책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담보한 <정치적 성향이 가득한> 책이다. 오히려 독설을 그 모토로 한 딴지일보보다 훨씬 위험한 책이다.

딴지일보나 강준만이 들고 까는 인물들, 굴곡진 현대사의 악당들을 정혜신은 일견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듯하다. 이해하는 듯하다. 아니,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을 거라고 쓴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들은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료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료가 보여주는 이야기... 그건 이미 지나간 역사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객관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책을 안 읽는 사람이거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는 쪽이거나 그럴 것이다. 60년대의 개발정책과 70년대의 노동 탄압, 80년대의 인권 탄압과 미국의 저강도 정책... 국가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가 마구 파헤쳐지는 90년대 이후... 냉전의 종식과 딴판으로 아직도 판치고 있는 이데올로기 색깔 논쟁과 같은 현대사를 살아온 이 치고, 우리 역사를 지나가버린 것으로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모두 어느 쪽으론가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선 곳을 객관적으로 중립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정혜신은 왜 이런 글을 쓰는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쓰는 것이다.

저돌적이지만 무뇌충일수 있는 이명박, 공주가 아니라지만 분명히 공주인 박근혜, 엽기적 사건으로 해프닝을 벌인 정몽준, 새파랗게 젊은 놈이 유교적 꼴통을 자처하는 이인화, 보수 논객을 자처하지만 자기당착에 빠지곤 하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이런 사람들을 들고 파는 이유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엿먹이기 위한 것> 외의 무슨 목적이 있는가.

이창동의 감성, 김근태의 지성과 끈기, 박찬욱의 힘, 심은하와 김민기의 숨은 끼, 문성근의 부드러운 지성, 나훈아의 관리와 김중배의 결단, 싸가지 없기도 하지만 신들린 김수현의 붓, 단아미의 대명사 손석희, 몸으로 글쓰기 대표주자 김훈... 이런 글들은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듯하지만, 그의 편향된 취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예가 아닐까 한다.

그는 분명히 <스타>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 스타이지만, 정혜신에게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나도 살아본 사람으로서, 그의 논조에 많은 부분 동의하고, 감격하지만, 특히 김근태, 김중배 등의 행보는 두고두고 우러를 그것이지만, 나는 그의 글이 재미있다가도 갑자기 징그럽다. 몸을 타고 오르는 개미처럼 소름을 돋치게 한다.

마치 냉전시대 언제나 내 몸을 짓누를 준비가 되어있는 보이지 않는 대립자에 가위눌리던 그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그의 책에 찍힌 <vs>는 약해보이지만,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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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vs 남자 - 정혜신의 심리평전 1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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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매력은 뭘까? 예쁜 얼굴?(아니, 내가 그의 얼굴을 본 적 없으니 사진발?) 아니면, 그의 글이 주는 시원시원함(어떨 때는 지나칠 정도로 이원적인 선악의 구도로 몰아붙이는)? 아니면, 심리학 내지는 정신의학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도? 글을 읽은 느낌은 이 셋이 엉겨붙은 이미지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책 표지에 자기 사진을 홍보 수단으로 쓰는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하자면, '나르시시즘'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단점을 보고 반성하는 스타일이 아닌, '거울아, 거울아~'류의 왕비병 스타일...

그가 남자 전문가라는 말은, 남자들이 전부인 사회 생활에서 주목받는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에 당연할 결과를 놓고, 그가 남자 전문가라서 남자들을 잘 파악한다고 전도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우리 뉴스에서 여성으로서 뉴스거리가 되는 사람은 '박근혜' 정도일 것인데, 박근혜 신드롬은 그녀의 정시적 후광보다는 공주로서의 그녀라고 생각한다. 정혜신은 그라고 하면서, 박근혜는 굳이 <그녀>라고 부른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다음 대선에 박근혜가 나설 가능성을 점치라고 한다면, 나는 0%를 적어내겠다. 딴나라당 사람들이 '한 사람만 빼고 모두 돌대가리라면 몰라도...'

아무튼, 정혜신의 화장빨은 그렇다 치고, 그의 말빨은 상당히 세다. 한 챕터에서 두 남자를 해부하는데, 다양한 자료를 읽었다는 흉내도 내고, 드물게 그들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분석은 사람을 너무 외곬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미친소의 주장대로, 사람은 '그때 그때 다른 존재'인데 말이다.

나는 시사 주간지를 싫어한다. 대학 시절 염증나게 읽었던 대자보의 효과일까? 그렇고 그런 추잡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대-한민국의 큰-한많은 나라 사람들의 한스런 사건들의 고비들마다 불거진 추잡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 인맥을, 그 학연과, 지연을 쳐다보기 싫어서라고 변명삼아 둘러대 보자.

그래서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정혜신의 조건대로 선인과 악인으로, 긍정적 인물과 부정적 인물로, 삶을 소비하는 사람들과 삶을 향유하는 사람들로 조건짓는 과정이 나름대로 신선하게 다가온 감도 있다. 대학 시절 이후, 특히 김영삼의 민자당 창당 이후로 정치에 혐오감을 가졌던 때문에 뉴스 조차도 쳐다보지 않던 십여년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조영남에 대해서만은 나는 개인적인 기호가 별로다. 조영남은 왜 그렇게 오버하는지... 노래할 때, 한번 더를 외칠 때는 그래도 귀여웠다. 자유주의자라면 유시민 정도는 돼야지, '나는 친일파가 될래요'하는 수준의 자유주의자는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 사건하고 비슷한 레벨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갖는 말의 부정적 의미를 알고 있다면, <친일파>라는 말을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승연의 누드가 '자유'인 것은 지지하지만, 위안부 누드는 <정신적 범죄>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김윤식 교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적은 느낌이 많다. 그 분의 저술들을 다 읽은 국문과 교수도 드물텐데, 정신과 의사가 그분에 대해 적어 보는 것은 가십 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전유성, 강준만, 김어준, 유시민, 마광수, 앙드레 김처럼 이 사회의 <마이너 리포트>를 제출한 사람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 준 글들은 글의 내용의 충실도를 떠나서 공감하는 면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한 가지 속성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속단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글이 재미있더라도, 그저 재미로 지나쳐야지, 저자가 이런 글의 매력(세인들의 관심을 끄는)에 매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의 전공에서의 에피소드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깊이있게 천착해 주는 글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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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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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2를 보면 설경구가 멋진 검사로 등장한다. 그의 부장검사는 더 멋지고, 지검장은 정말 멋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허구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우리를 통쾌하게 한다.

진짜 검사는 멋지지 않다. 부장검사는 더 멋지지 않고, 지검장 정도 되면 정말 멋지지 않다. 이런 것들을 법조인 내부에서 한 일탈자의 자백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반가운 책이다.

한 때 법조인의 꿈을 가졌던 나도 "헌법 전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지금으로선 천만 다행이었던 선택이었지만, 고교 시절 헌법을 배우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수업이었던 잊고 있었던 시절을 떠올려 주기도 했다.

열 여덟 시절에 범죄자들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 무섭게 느껴져서 다른 길을 찾을 때는 이미 문과생이었던 나에겐 별로 갈 길이 많지 않았다. 상대를 가는 것은 내 적성에 정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을 반추해 보게도 한 책.

나와 같은 시절에 대학 생활을 해서 글들이 친숙하다.

공공을 다스리면서 공공을 힘겹게 했던 권력층과 법 사이, 그리고 권력층이 되어가는 법조인들 사이, 그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아웃사이더로서 담담하게 서술하는 김두식 같은 학자(?)를 만나 반가웠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이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때는 십여 년을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도 별로 전문성이 없다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가진 내게 동류의식을 갖게도 한다.


<인정한다, 그러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법정신의 차이에서 헌법의 정신을 드러내려고 했다. 헌법의 정신이 가진 숭고함이 현실에서 얼마나 <인정하지만, 그러나> 실현될 수 없는 것인지를 적고 있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이 인권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고, 그 사람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고 했지 않은가.

국가의 이름으로 횡포를 부리고, 권력의 이름으로 세상을 컴컴하게 만들던 과거와, 아직도 세상을 덮고 있는 쇠항아리를 찢으려는 한 비주류 법학자의 이야기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그리고 세상을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가 읽기에 제법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시 공공의 적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 현실에선 그런 똥고집을 가진 검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임을 이 책은 적고 있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일이 많아 찡얼거리던 검사들을 아직도 기억한다면, 그 검사들이 국민을 위해 복종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이기가 십상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세계 법학의 발전 방향을 볼 때,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옳은 것은 옳다고 밝혀진다는 것이고, 도덕의 최소한이 법이라지만, 그 법은 '정답이 없지만' 아는 만큼 힘이 된다는 가벼운 조언이었다.


지금은 평등의 이름으로 여학생들의 <생리 조퇴, 결석>은 출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출산 휴가 기간이 늘어났고, 생리 휴가가 정착되었듯이 당연히 인정될 것이지만, 보수의 후퇴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난 우리 반 여학생들에겐, 어디가 아프다고 하지말고 당당하게 생리중이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걸 악용하는 녀석들도 없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아픈 줄 알고 괜히 걱정하거나 잘못한 것도 없는 아이가 변명하는 것보다는 질병도 아니고 장애도 아닌 당연한 현상을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라는 의도에서였다. 처음엔 아이들도 쑥스러워하곤 했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법이란 이런 것이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금세 적응되는 그런 것.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익한 책이지만, 또한 그 지난한 몸짓을 적고 있는 책이다. 마치 신동엽이 하늘을 보고 싶어하며 적었던 그 시처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 동 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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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02-0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책을 님의 글로 처음 접했던 것 같네요. 느긋함을 더 오래 즐기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