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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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화의 원흉, 진실의 목탁...

리영희 선생님. 우리 시대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판단한 그놈들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내가 대학 들어가서 읽은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은 좀 관념적인 글이었고, 동녘편집부의 <철학 에세이>는 '이게 뭐 철학이지? 좀 허술한데?' 하는 생각을 들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읽은 선생님의 <전환 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분단을 넘어서>같은 책들은 나의 <절대 데모를 해서는 안 된다>던 무식한 주관을 일거에 무너뜨린 책들이었다.

그분의 역작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베트남 전쟁>일 것이다. 베트남의 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온 것은 과연 무엇인지... 아직도 <국익>을 위해서 이라크에 부대를 파견하는 무지 몽매한 친미 정권이 지배한 어리버리 한국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우린 베트남을 짓밟았고, 베트콩을 쏴죽였다는 '김상사들'의 새카만 얼굴만 보았지 그들의 몸 속에 묻어온 고엽제와 그들이 뿌리고 온 '2세들'의 슬픈 역사는 뒤켠에 감추어 두었던 역사를 배웠다.

푸에블루호 사건이라든지, 유신 시대의 삶을 접하다 보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한국 현대사라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했던 그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의 글로 읽지 못하고 몸이 불편해 져서 임헌영과 대화 형식으로 엮인 글이다 보니 좀 뻣뻣하긴 하지만, 740페이지에 달하는 인생 역정은 나의 피를 들끓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한다.

일제가 물러가고 난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은, 4.19의 호기를 군사 정권의 쿠데타로 놓치게 되고, 1980년의 서울의 봄마저 광주의 피를 부르고 무위로 돌려버렸으며, 6.29의 뜨거웠던 열기도 보수 반동들의 단일화 후보 실패로 식어져 버리고 말았다.

리영희 선생님은 자꾸, 우리 민족의 저열함이 아닌가, 너무 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자위하며 살지 않는가 걱정하시지만, 역사를 읽으시는 분이시니 다른 나라들의 좋은 기회에 비해서 우리 나라는 더 좋은 조건들을 더 악조건으로 만들어 버린 오욕의 역사가 더 안타까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냉전 지대, 21세기 유일한 분단 지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늘 저자세로 고개 수그리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존경할만한 지도자가 없었다기 보다도, 그런 지도자가 될 법한 사람들은 반드시 제거를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숨어서 읽었고, 경찰서 대공과에서는 <해전사> <전환시대의 논리> <민중과 지식인> 같은 책들을 의식화 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시절에 체계적으로 학습하지 못했던 분야를 이제라도 차근차근 읽고 싶은 욕망을 부른 책이다. 그런데, 촛불 시위에는 긍정적이지만 또한 축구판에서도 열정적인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책을 읽기나 하려는지... (요즘 젊은이 걱정하는 걸 보면 나도 늙은이 축으로 가고 있는 모양^^)

장차 외교 무대에 서고 싶다는 작년 우리 반 반장 녀석이 지금 재수하고 있는데, 올해 학교를 잘 가면 이 책 한 권 선물해 줘야겠다. 외교 무대에서 알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이 책엔 무진장 묻혀 있는 것 같으니깐.

숱한 필화를 겪으시고, 5년 전 쓰러지셔서 이제 더 이상의 저술은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부지런히 강연도 하시고 다니실 때, 한 마디라도 더 배우고 싶은 분.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양심이자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의 이야기를 읽은 주말은 가슴 뿌듯하다.

선생님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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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6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선생님 글은 저도 참 좋아했었거든요. 뭔가 다른 지식인들의 글보다 신선한 자료도 많고, 주장보다 증거로 가득차서 늘 우리를 놀라게 하셨던 글이 생각납니다.
선생님께서 건강하시기를 같이 빌어요. ...()...

글샘 2005-10-1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우리 나라엔 귀족도 없고, 존경할 만한 스승도 적은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나 리영희 선생님처럼 꿋꿋한 스승님들께서 남기시는 말씀들을 우리는 회초리처럼 들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부 알리,죽지마 - 이라크 전쟁의 기록
오수연 지음 / 향연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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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I'm sorry. 이 두 마디는 어느 나라 언어에나 등장한다고 하고, 또 이 말들처럼 다른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말도 없다고 한다.

인샬라... 이 말도 마찬가지일게다. 인사이면서도 축복이기도 하고, 여러 상황에 두루 쓰이는 말... 그 뜻은 신이 허락하신다면... 이런 뜻이란다.

기름을 입으로 빨아 넣어서 주유를 하는 남자들, 그 정도로 기름의 축복을 받은 열사의 나라, 이라크.

그 기름의 축복 뒤에 흐르는 강대국의 욕심에 의해 폐허가 되어 버린 나라, 이라크.

그 나라를 취재하러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파견한 오수연이란 작가가 남긴 기록이다.

전쟁을 직접 취재하거나 평화활동을 하지는 못했고, 전쟁중에는 이스라엘에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을 돌아 보았고, 종전 이후 이라크의 파괴상을 보게 되었다.

전쟁은 결국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듣던 바그다드와 오아시스의 이야기들. 그 신비스런 요술 램프가 등장하던 알라딘의 터전도 바로 이곳 아니었던가.

사담 후세인의 폭력적인 독재 세력을 미군이 궤멸시킨 지금, 이제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맞서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전투에서, 1차적인 적을 몰아낸 그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2차적인 적과 대결 구도로 맞서 있는 것이다.

그 폭력과 비참한 현장에서, 우리 나라는, <우리의 국익>이란 증명되지 않은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그 우리의 국익은 결국 가진자들의 이익일 따름이지, 결코 우리 나라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 아님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우리 나라의 이름으로 최고의 지원군을 보냈다. 쪽팔리는 <우리 나라>다.

우리 나라가 '이란'에게 꼭 이겨야만 했을까? 난 어제 축구를 보면서 많이 불안했다.

물론 우리 축구가 남들에게 매번 박살 나는 것이 통쾌한 것도 아니다. 우리 축구가 패스가 잘 연결되고 골도 잘 터지면 보는 재미가 난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성전>을 치르는 듯이 이란이라는 <적군>을 상대로 <총력전>을 벌이는 <군대>처럼 보였다. <전투>에 이기기 위해서는 그 <사령관>이 외국인이어도 상관 없이 말이다. 이란을 <정벌>한 다음 유럽으로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이 스포츠 선수인가, 군인인가...

우리 나라 스포츠 신문의 용어는 너무 <전쟁광적>이다. <이란>호가 <침몰> 내지는 <격추>되고, <대한민국>호는 <승전보>를 알린다.

하필이면 이란이라는 나라와 축구하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미군과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자이툰>인지 <우익툰>인지 하는 군인들을 꾸역꾸역 서역으로 져다 나르는 <대한 민국>이란 피폐한 나라에서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전쟁 이후의 모습들이 기록된 책이다. 군대를 따라다닌 기록이 아니므로 종군 기자라고 할 수는 없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쓰여진 책이다.

세계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남을 이기는 나, 너희 나라를 죽이는 우리 나라를 만들어서는 꿈틀거리는 지구의 용서를 받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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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0-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는 축구일 뿐이죠. ^^ 하지만 스포츠 관련해서 군사용어가 너무 많이 쓰이는 게 저도 불만입니다. 경기하는 것도 이를테면 한일전(戰)이라고 하잖아요. 무슨 전쟁 하나...

글샘 2005-10-1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저도 이란에게 우리가 지는걸 바란 게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이라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마치 축구 보는 것처럼 <이라크전은 이라크전일 뿐>이라고 차가운 것 같아서 쓴 말입니다.

드팀전 2005-10-1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어떤 분은 '우리' 나라라는 말조차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한국' 이라고 대상화시키지요. 거리를 유지하려는 정신이 인상적이었지요.전 그냥 우리나라라고 씁니다만....축구를 전쟁처럼 대하는 언론과 광팬들은 진짜 걱정거립니다.특히 스포츠신문의 타이틀은 오래전부터 군사주의 국가주의적 표현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하지만 모든 축구팬이 그렇게 국가주의와 스포츠를 연결해서 보는 건 아니니 불안을 감추셔도 될 듯합니다.또한 '이라크전'이란 것도 미국에서 만든 이름이죠.영어로 하면 war with iraq...war against iraq..... 그런데 알자지라 방송 같은 경우는 <이라크 침략전쟁>이라고 쓴답니다.영어로는 모르겠습니다.영어가 짧아서....
이란을 이겨야 했지요.결과적으로...후반전에 전술적인 부적응까지 깔끔히 처리했으면 더 좋았을것을..전반전은 좋았는데 후반전은 무지 헤매더군요.보다 졸았습니다.게임메이커의 부재와 공간침투와 패스능력부재등이 눈에 보이더군요.창의성은 당연히 없구요.어쨋거나 평가전이니 문제를 보고 대안을 찾아가겠지요.뽀록 2골에 아드보카트에게 냄비언론과 여론의 힘이 실립니다.한번 이겼다고 광분하는 꼴이 보기 사납지만...꼴사나운 뒤편에 얻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선 아드보카트에 대한 신뢰가 히딩크때 같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겁니다.또한 한국축구를 망친다는 축협도 감독재량권을 확대할 수 밖에 없겠지요.여론이 약과 독이 동시에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글샘 2005-10-1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이 말이 대한 민국보다 더 좋네요. 요즘 대한 민국이란 이름도 워낙 애국심에 휩싸여 버려서리...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 정말 어려운 작업이지요.
축협... 우유를 만드는 그 축협과 발음이 같아서 웃음이 쿡쿡 납니다. ㅋㅋㅋ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인터뷰 특강 시리즈 1
홍세화,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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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시절, 진보란 최루탄 터지는 시가전이었다.

이제 보수 여당이 집권한 시점에서, 민주노동당원들이 국회에 등원하게 된 대한민국에서, 진보란 작지만 확실한 걸음을 걷고 있고 그 범위도 단위 면적이 아주 넓으며 그 가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접근전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진보적으로 바뀐다면, 이제 수십 년 안에 전면전을 기대한다.

그 전면전의 시작은 식민지 시대 부역 문제와, 독재 시대의 처벌로 시작될는지도 모른다.

이십 년 전, 대학 새내기의 필독서는 '철학에세이',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 시대의 논리(리영희)' 같은 책이었다. 이른바, 의식화 서적이었다. 이런 책들은 선배들의 자취방에서 주인집 아저씨의 고발의 눈을 감시해 가며 읽고 토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고등학생들도 논술을 대비해서 책을 읽혀야 한다는데, 이런 책들은 상당히 아이들에게 충격적이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보인다. 대학 새내기라면 반드시 일어야할 과정에 해당하기도 하고, 성인들에게도 이책은 읽힐 법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나라의 현실은 지하철 노조가 파업하면, 불법으로 밀어 붙이기 일쑤고, 병원 노조가 파업하면 우선 욕하기 바쁘다. 우리 사회의 닫힌 시각을 먼저 비판할 줄 모르고 말이다.

박노자, 홍세화, 한홍가가 말하는 우리 역사의 뒤안길은 암울했다.

하종강의 노동법 강의는 사법연수원생들의 90%가 모른다는 근로기준법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세상. 이것은 사람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모래밭에서 뛰어노는 그 해맑은 목소리와 웃음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어린 아이들은 삐져서 우는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학생들이 방과 후, 삼삼 오오 모여서 적성에 맞는 무용이나 활동을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모습보다는 운동장을 가르는 모습에서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노동자들이 불꽃튀는 현장에서 온몸의 땀을 바치며 일하는 모습은 숭고하지 않은가.
삶의 현장이란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가난한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아파트 평수가 사람을 결정하므로 14평 아파트에도 못살거나 달동네 사는 사람은 아름답지 못하다.
학교에서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름답지 않고,
마티즈를 타고 다니면 아름답지 않다.
버스를 타고 피로에 찌들어 퇴근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고,
오천 원짜리 몸뻬 바지와, 새카맣게 그을린 노점상의 모습은 추악한 것이 우리의 미적 감각이다.

이 책은 그런 미적 감각에서 벗어나는 좋은 안내역을 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만이 가진 독특함, 그 역사와 현재.

이 책이 가지는 미학은 깊지는 않지만 우리의 막힌 현재에 대한 변화의 미래의 비전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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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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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씨의 책에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는 제목이 있다. 세느강을 바라보며 조국을 생각하던 택시 운전사에겐 동서를 가르던 강물이 그런 생각을 떠올렸겠지...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90년대 이후, 우리는 진보의 이름으로 퇴보했고, 진보의 이름이 국회에 입성할만큼 진보했다. 그 퇴보한 진보의 자리를 두 눈 형형하게 뜨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B급 좌파라고 일컫는 김규항이 그렇다.

그에겐 세상이 참 못마땅하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어보면 맞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적당하게 자기를 궁글려 버리고, 모난 돌을 갈아 버렸다. 80년대 모난 돌들이던 지식인들이 90년대 정에 맞지도 않고 스스로를 궁글려 버린 데 대해 그는 화가 났다.

자기들이 지닌 지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한국의 지식인들이다. 의사, 약사, 교수들...

나는 요즘 교사들도 전문성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우를 받는 경우의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교사가 얼마나 중노동인지 아느냐고 말하지만, 교사가 정말 중노동인 사람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에 한정된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투자하다보면 정말 피곤하고 힘들다. 아이들은 하나도 형성된 것이 없어서 계속 뭔가를 만들어가야하고 계속 손을 대야 한다. 잠시만 한눈 팔면 아이들은 반드시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엄마들은 이 진리를 알 것이다. 하루만 손 떼어도 삐딱선을 타는 아이들을...

그의 시각은 정확하다. 세상은 여러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지만, 모든 대결은 선과 악이어서 악이 없어지만 선과 조금 선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진 자들의 계급과 못가진 자들의 계급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정확한 구분이다.

유시민이 라운드 티를 입고 국회에 갔을 때, 미친 놈들은 유시민을 미친 놈이라고 했다. 그들은 똑똑하다. 국회의원씩이나 하는 놈들이 무식할 리가 없다. 미친 놈들은 미친 놈들을 알아보는 법이다. 유시민은 넥타이를 매고 갔어야 옳다. 어차피 지식인인 유시민이, 라운드티를 입고 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쌩쑈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진보적 정치인이라면 자기는 혼자라도 버티는 정치를 해야 한다.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점퍼를 입고 등원을 하든 개량 한복을 입고 등원을 하든 미친 놈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 유시민한테는 난리를 떨더니... 같은 편을 알아본 거였다. 그리고 적을 예민한 후각으로 분간한 거였다. 똑똑한 놈들...

김규항은 우리의 삶이 지향해야 할 지점들을 너무도 경쾌하게 잘 짚어주고 있다. 우리가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그는 가르친다. 그 가르침은 무지무지 불편하다. 손톱에 낀 가시가 아니라 심장에 닿은 불꽃처럼 불쾌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수입을 확보하고, 아이들도 밑바닥 인생을 살 확률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맹한 중산층 내지 중층 서민들에게, <너희의 위치를 똑바로 보라. 너 자신을 알라>고 깨우치는 그의 죽비는 매섭지만, 두렵지만, 명쾌하다.

이 시대 진보의 자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책.

개인적으로 갖가지 저널에 돈벌이로 올렸던 잡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넘들을 무지 싫어하는데, 이 책은 일관성있는 그의 시선과 내 비곗덩어리를 헤집어내는 비수의 뜨끔함에 심장이 뛰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 뜨거운 책이었다. 진보의 거취에 늘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김규항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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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2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보괌함으로 갑니당~~~

2005-09-30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10-0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약사가 가진 <전문적 지식>앞에 우린 얼마나 권위가 없는지를 생각하면서 쓴 것이랍니다.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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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이런 것이 뭘 할까? 그저 놀고 먹는 공무원들이 수두룩하게 밥통차고 앉은 데가 아닐까... 했는데, 전에 학생들의 신상 일체의 생활기록부를 전산화한다고 이 기관이 유명해 졌던 적이 있다. 올해는 초딩들 일기 검사가 인권 침해라고 하는 판결을 내어서 신선하기도 했고...

그런 국가기관에서 만화가 10명과 결탁하여 책을 펴냈다. 옛날엔 국가 기관에서 만든 만화는 모조리 반공 만화 일색이었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다.

내로라하는 시사만화가들이어서, 짧은 그림 속에 깊은 생각을 담고 있다.

우리 주변의 차별받는 사람들, 여성이어서, 돈이 없어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여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사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정 사람사는 사회에 대물림 되어야 할 것은 피나 유전자가 아닌,

<사람의 행복>이라는 것을 웅변할 수 있는 책은 드물지 않을까...

성적 소수자들의 고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고민, 고통받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하루 하루의 삶.

인간은, 정말 이상한 동물임에 분명하다. 경쟁과 생존을 위한 투쟁은 어느 세상에서나 있게 마련이지만, 인간처럼 자기보다 조금 약하거나 자기와 좀 다른 존재를 <존재>로 인정하지 못한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취급하면서 나의 <존재>만을 부각시키려 하는 존재다.

박재동의 만화 <그런 건...>은 오래 내 맘을 짠하게 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푸른 하늘을 보고 웃고,
앞날을 꿈꿔보고, (가수? 디자이너?)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하고 장난 치다가,
유리창을 깨도 용서받을 수 있고
싫은 건 싫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건 공부 잘 하는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거야.
공부도 못하면서 왜 당당하게 살고있는 거야, 왜!"

하면서 출석부로 머리를 치는 그 교사는 바로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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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9-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도 못하면서^^
학생 때 기억으로는 데모도 공부 잘하는 애들이 해야 되는 거였죠^^

코마개 2005-09-2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나이 되어서 깨달은 점은 공부 잘해봐야 소용없고, 좋은 대학 가봐야 소용없고, 그저...인생 때깔나게 즐거워서 죽을만큼 즐기는 법을 먼저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공부 못하면 어때...

릴케 현상 2005-09-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건 공부 잘해 본 사람이나 아는 건데^^

글샘 2005-09-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공부를 못해본 사람은 그게 평생 한이 된답니다. 그래서 공부 안 해본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공부하란 소리만 한다잖아요...^^

비로그인 2005-09-2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봤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고요. 슬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