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게 길을 묻다
이덕일 지음 / 이학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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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역사는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며 살아 같다.

그렇지만, 내 경험으론, 전혀 아니올시오다.
그 판단 기준은 단 하나.
역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수업 시간의 상당수(주당 34시간의 수업 중 5시간 정도)를 할애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한국에서 역사 교육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숫자의 암기에 불과하다.

숫자로는 결코 현재의 상황을 판단할 수도,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딴나라당에서 지네들 당보에 왕의 남자와 대통령을 패러디한 풍자가 실렸단다.
딴나라당 당보답지 않게 신선한 해석이라 놀라웠다.
역사란 그렇게 현재의 판단에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런데, 연산군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게 뭐가 있는가? 딴나라당 애들이 연산군 좀 아나?
그냥 폭군으로만 알고 있는 거 아냐?

어머니의 상실로 인한 분노.
그리고 연산군에 대한 모욕으로 가득한 연산군일기라는 신빙성 없는 사료에 근거해서 악취미 삼아 연산군을 저질 사극의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를 답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왕의 남자'란 영화에선 물론 상상이지만, 연산군은 멋진 남자 아니었던가.

김정일에 대해서 아는 거 없으면서도 <기쁨조>같은 저질 삼류 언어로 우리는 그에 대해서 아는 체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시각 교정을 위한 이덕일씨의 생각들이 조금은 체계없이 적힌 글들이다.
전체적으로 클 틀이 없으며, 과거사와 현대사를 아울러, 한국사를 조명하고 있다.

일관성있게 저자가 비판하는 점은,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의 맹아가 된 이병도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의 과거를 평화성과 아울러 강인성, 정체성... 이라고 한 식민 사관.
그래 한국은 제자리걸음인 정체성의 국가라는 것이다.
그 식민 사학이 지금의 국사 교과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 주된 비판이다.
국사 교과서와 국어 교과서가 1종인 이런 독재국가는 전 세계에 별로 없을 것이다.
오이씨디 나라 중에서 아마 유일하지 않을까? 이런 닫힌 나라 말이다.

단종과 세조의 문제, 훈구파 대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불쌍한 단종과 개혁적 세조, 썩어빠진 훈구파... 역사 책에서 그렇게 다루는데, 세조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인기가 많은 여러 이야기들에 대한 비판도 있고,
현대사에서 나라를 망쳐먹는 수법이 역사 속에 가득했던 것도 지적했다.

조선은 결코 부패로 가득한 나라는 아니었다.
틈만 나면, 부패를 소금으로 문질러 소독하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났지만,
그 썩은 부위를 덮어둔 것은 빛과 소금이 아닌, 축축한 땀내 배인 썩은 보자기였다.

고려의 권문 세족이 60-7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끝에, 한국 외환 위기를 예언했던 스티브 마빈이란 사람의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지금 모든 문제는 70명 정도의 지도층 인사 때문에 시작된 겁니다. 재벌 그룹 총수 50명, 잘못된 정책 결정을 내린 재경부 고위 관리 10명 정도, 한국은행 등 관계자 10명 등. 나머지 한국민들은 잘못이 없어요. 그동안 정부와 재벌은 고임금과 국제 경쟁력 상실, 과소비만 얘기해 왔는데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예요.

이렇게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잘못을 교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덕일씨의 국사 교육 상실, 부재에 대한 개탄에 대해 일부 동감하지만,
중,고, 대 시절에 국사를 배웠던 사람으로서 한국사 교과서를 제발 확 뜯어 고쳤으면 한다.
상,하권의 4/5에 해당하는 5000-100년 전 이야기는 간략하게 하고,
나머지 100년의 현대사, 그것도 사건, 이름, 연도순으로 하지 말고,
주제를 가진 역사 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

국수주의적 용어인 국사, 국어도 세계 속에서의 한국사, 한국어로 고치고, 세계인에 걸맞게, 한국 역사에서도 멋진 입법, 사법, 행정적 제도들이 가득했음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역사라면 지긋지긋한 암기 과목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역사 과목만큼은 그야말로 주관식 시험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무슨 사건이 일어났던가 보다는 그 사건은 내게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p.s. 150쪽의 '십팔자 도참'의 한자가 틀린 것이 하나 있다. 十八子 도참이 되어야 이씨가 왕족이 될 것을 十八字 도참이 되어 의미를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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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7색 - 일곱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곱 개의 세상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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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승호의 최근 인터뷰집이다.
수록된 인물은 박노자, 이우일, 유시민, 진중권, 하종강, 김규항, 노회찬의 일곱 명이다.

모두 내로라 하는 논객들이어서 기대가 컸던 책이고, 다른 책들과 겹치는 부분도 일정정도 있지만, 역시 기대에 맞게 멋진 책이 나왔다.

박노자는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유약한 체질을 비판하고 나선다.
그렇다. 한국에선 자유주의자들이 좀 뻔뻔스럽게 당당하지 못한 듯하다.
군대 문제도 역시 건드리고 있다. 한국 사회와 정치의 좌표를 박노자를 통해 잡을 수 있다.
아이도 남이라고 하는 사고는 신선했다. 가르치는 거라곤, 개미를 밟지 마라... ㅋㅋㅋ
초인적인 성실성으로 연구를 하는 박노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만화가 이우일은 그야말로 아나키스타일까?
어딘가 얽매이는 것을 질색으로 여긴다.
소수취향들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하는 그는, 남들이 쓰는 소수자라는 말도 잘 안쓰는 독특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만화 세계는 좀 독특한 데가 있다.
이우일에게서 배울 점, 균형감각.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잡으면서 내가 가고 싶은 갈로 갈수 있느냐를 생각한다.
전교조 사업을 하면서 늘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유시민은 움직이는 정치를 읽는 사람으로 보인다.
정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움직이는 것인 바, 運운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겠다.
지승호는 유시민을 좀 편애하는 것 같다.
(아, 이 리뷰를 쓰다 보니, 지씨가 알라딘에서 알짱거리는 모습을 본 게 생각나지만, 될대로 되라지...)

하종강.
노동 운동의 산 증인이다.
노동자는 善이고 노동 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는 주관을 견지하고 있는 멋쟁이.
하종강이 교사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자기도 죽도록 공부해서 교사가 하고 싶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곰곰 생각해 본다.
그들이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그 <교사직>에 내가 종사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를...

김규항.
그는 A급 좌파다.
우리당 같은 존재더러 줄을 똑바로 서라고 늘 경고한다.
하긴, 우리당은 쪽수는 많아서 줄이 삐뚤어져 있는데, 누가 보나 오른쪽이구만, 지들은 왼쪽에 있다고 착각한다. 이라크 파병이나 노동 문제를 보면, 걔들은 분명 오른쪽이다.

진중권과 노회찬을 읽으면서는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졌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당의 어설픈 정치 행태와 정치에 대한 염증이,
박공주나 명바기의 대권 행보에 도움을 줄까 걱정도 되었는데,
그들의 생각을 읽고 나니 조금 안심은 된다.
한국 국민이 아직 무식하지만, 그렇게 완죤 무식은 아니라는 데 나도 공감하고 기대를 건다.
그렇지만, 나는 축구에 목숨 거는 한국 방송을 볼 때, 한국 국민이 과연 똑똑할 수 있을까? 아직 의심이 남아 있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던 나를 일깨운다.
교사가 정치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다거나,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과 <형식>의 모든 것은 정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그 증거로, 대한민국 교사는 행정부 공무원 신분이란 것.
그리고 정치적 중립이란 웃기는 짜장같은 소리는 니들이나 지껄이란 생각.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중립이란 비겁한 굴종에 다름 아니기 때문.

철저한 당파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물론 수업 시간에 정치적인 이슈를 가르치는 것이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먹혀드는 시대는 지났지만,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신자유주의 물결에 허우적거리게 되는 현실에, <밝게 보는 눈>을 갖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훌륭한 교사가 되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지승호 씨의 다른 책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 책에선 유난히 철자법에 어긋난 부분이 많다.
출판의 관례상, 교정을 보는 이가 촉박한 시일을 이기지 못하고 대충 보아 넘겼거나, 아니면 교정 보다가 술마시고 졸았거나 했을 것이다.
교정 보는 이가 엉망으로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지승호씨에게 좀 아쉬움이 남는다.
일차적으로 인터뷰어가 맞춤법에 맞게 적어 주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오자가 남진 않았으리라.
혹시나, 지승호씨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맞춤법 공부를 조금은 해 주면 고맙겠다.

맞춤법이란 <형식>에 어긋나는 글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 지면,
훌륭한 글의 <내용>에 흠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맞춤법에 어긋나는 쪽과 내용을 간추려 둔다.
51쪽 탈아입구론의 한자는 <탈아입毆론>이 아니라 <탈아입歐론>이 맞다.
167쪽 투기적 수요의 <재물>은 <제물>이 맞는 듯 하다.
185쪽 <고욕>이죠는 <고역 苦役>을 뜻하는 듯하다.
292쪽 하는 일을 <개량화>하다는 <계량화>가 맞다.
316쪽 70을 가리키는 수사는 <이른>이 아니라 <일흔>이 맞다.
323쪽 어린이 안전 캠페인을 <벌리고> 싶다는 <벌이고>가 맞다. 벌리는 것은 틈을 넓히는 게다.
359쪽 부담을 <줄새라>는 <줄세라>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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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1-2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마음이 순간 상쾌, 유쾌, 통쾌해졌어요.
아~ 글샘님의 리뷰를 보면 자꾸만 책이 사고 싶어져요. 궁그만 건 님께선 이 많은 책들을 도대체 어느 짬에 읽으시며, 또 다 사서 보시는 건지... 궁금~
당근 이 책도 보고싶어지네요. 어쩌나.. 책임지셈!

코마개 2006-01-2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선생님도 저처럼 책보다가 오탈자 보면 못견디시는 군요.저도 하나 하나 다 체크 해서는 첫 페이지에 목록을 만드는데...한번은 어떤 책이 넘 빈번하게 한 단어를 계속 틀려서 출판사에 정정하라고 메일을 보냈더랍니다. 그런데 제가 메일에 출판년도를 200*년이라고 써야 하는데 19**이라고 썼지 뭡니까. 그랬더니 오자 정정에 관한 답변은 없고 출판년도 틀렸다는 답메일을 보냈더군요. 이런 *같은 경우가....
그에 비해서 리영희 교수의 '대화'는 메일을 보내니 담당자는 물론 리영희 교수님도 고맙다는 깍듯한 메일을 보냈더군요.

깍두기 2006-01-2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밑줄 쳐가면서 읽었는데
저 오탈자를 하나도 발견 못하다니(다른 거 발견한 거 좀 있지만) 책을 대충 본 것이로군요. 글샘님 대단하세요.
지승호님 이 글 읽으시면 뜨끔하시겠다^^

글샘 2006-01-25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어떤 점에서 유쾌, 통쾌, 상쾌해 지셨는지 궁금하군요. ㅎㅎㅎ 궁금하실 일도 많으시네요. 책 읽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답니다. 틈틈이... 그리고 책은 별로 안 사는 편이에요. 남구도서관에서 이주일에 3권 빌리고, 학교도서관에서 틈나는대로 빌려 보고... 알라딘에선 간혹, 너무 읽고 싶어 미치겠는데 못 빌릴 때...(아, 이 책은 그런 책 중의 하나랍니다. 돈주고 산 책 ㅋㅋㅋ. 틈나면 꼭 읽어 보세요.)
강쥐님... 저는 오탈자 상당히 잘 견디는 편인데, 이 책에선 우연히 몇 가지 필기를 한 셈입니다. 리영희 선생님 메일을 받다니... 저도 대화를 다시 읽고 오탈자를...ㅋㅋ
깍둑님... 밑줄 치면서 읽으셨으니 그렇지요... ㅋㅋ 내용에 몰두해서 보시다 보니 그렇겠네요... 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제 석사 논문이 맞춤법에 대한 거였거든요. 맞춤법은 필요없다!는 도발적인 논문... 근데 내용이 영 허술하긴 했지만요.ㅠㅠ 뜨끔하시더래도, 제 진심을 적었습니다.

해콩 2006-01-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논문 읽고 싶어지는걸요. 요즘 들어 영 맞춤법에 자신이 없어서리...ㅋㅋ
그리고 이 책 글샘샘 리뷰 읽고 바로 주문했다는...ㅠㅠ

시비돌이 2006-01-2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좀 쪽팔리는군요. 사실 전문적인 글쓰기 공부를 하지를 않아서 맞춤법이 좀 약합니다. 근데 정확하게 쓴다는 것이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그런 지적 받으면 '전문가의 오류 아니냐?', '본질을 봐라'하고 오히려 뻔뻔하게 굴고 있습니다. ㅋㅋ
해콩님/ 주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의 측근으로서 대신 인사말을 전하겠습니다.

글샘 2006-01-25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제 논문은요... 맞춤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맞춤법이란 <법>이 전혀 효율성이 없다는 거였답니다. 맞춤법은 국어에 대한 애정을 갖고 <사전>을 옆에 두고 생활화한다면 친근해 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 코멘트를 본다면 작가가 좋아하겠네요. ㅋㅋㅋ
시비돌이님... 어렵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한글 맞춤법, 이거 존재 이유가 없고, 너무 어려워!> 이렇게 논문을 썼겠습니까? 제 논문을 한글 학회가서 발표했더니 보수 꼴통들이 애국적 견지에서 저를 바퀴벌레 보듯이 보더군요.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한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은 좀 못배운 사람들이나 비전문적인 글에서 용인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인터넷에선 무슨 얄궂은 표현을 써도 인정 되333. 정식으로 <책>의 형태를 띤 출판물이라면 어느 정도는 한글 맞춤법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자의 측근으로서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자께선 좀 뜨끔하시겠지요?ㅋㅋㅋ)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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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우루과이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에서 활동을 한다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이다.

처음에 빌려올 때는 학교 문제에 대한 비판 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학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세상은 온통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완전히 거꾸로된 학교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논조는 너무도 정확하고 신랄해서, 알맹이가 없을 것 처럼 보이기 쉽지만,
같이 어울린 예화들은 정말 진실이기를 믿기 싫은 그것들이었다.

세계는 온통 거짓 투성이이며, 가식으로 가득찬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실, 행복, 노력, 발전의 세계관은 온통 허구로 가득한 것이며,
실제 세계는 거짓, 불행, 세습, 퇴보의 세상이란 것이다.

이 책은 정말 금서로 묶어두고 싶은 책이다.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까발려서 알고 나면, 세상 살 맛이 전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내일 당장 떨려나서 먹고 살기 어려운 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
세계화의 제국주의 질서라는 것을 알고 나면, 세계화라는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을 성 싶다.

백인 지상주의를 일격에 박살내는 책.
흑인들과 인디언들이 열등한 이유(76쪽)와, 가난해서 바보가 아니라 바보여서 가난하다고 가르치는 세상의 학교... 제3세계 인간들은 일회용 인간들에 불과한 것은 너무도 적나라해서 오히려 비참하다.

마약퇴치 전쟁으로 사망한 수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자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는 현실에서, 현실 정치의 역설적 비극을 밝힌다.

정치가는 이렇게 말해야 한단다. "여러분, 도둑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남을 잘 비꼬는 냉소적인 사람이라야 하는데,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배신자도 되어야 합니다.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노동은 멕시코에서 가격이 매달 하락하는 유일한 상품이다. 영악한 자는 바보 덕분에 살고, 바보는 자신이 일해서 산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실은, 일하는 자는 돈벌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도둑질을 법의 이름이나 황제의 이름으로 저지른다고 해서 죄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죄는 그대로 남는다. 작가가 이렇게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다.

자유주의 세계에서 노동자들은 자기가 종일 일해서 번 돈을 일주일 모아야, 그 티쪼가리를 하나 살 수 있다는 노동의 비극적 역설에서 나는 이 책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싶었다.(192쪽-193쪽)

석유회사와 원자력 회사처럼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살상하는 주범들, 건물을 우루루 무너지게 짓고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 작자들이 지구촌 구석구석 통치하며 산다는 데, 나는 어쩌면 위안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안전 불감증의 나라,
지하철에서 불이나면 수백명이 죽고, 교통사고로 연간 가장 많은 사람이 죽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사는 것이, 결코 가장 비극적인 삶이 아님을 위안으로 삼고 뿌득뿌득 살라고 이런 책을 읽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진실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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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곰브리치 세계사 1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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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창시절, 내게 국사와 세계사는 지옥과 같은 과목이었다.
그 숱한 이름들과 연표들은 내 머리를 완전히 절망의 나락으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조차도 모르던 아이가 세계사 책을 접했을 때의 암담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난 세계사를 잘 하는 아이가 신기했다.
결국 난 국어 교사가 되어 아직도 우리 역사나 뒤적거릴 뿐이지만,
세계사 잘하던 녀석은 공무원으로 지금 스위스 취리히에 가 있다.

대학 시절 이후로 세계사를 많이 읽었지만, 이 책은 아이들의 눈에 맞춘 간추린 느낌이다.

사건들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왜 다투었는지를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세계사 책은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포에니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한니발은 누구고, 카르타고는 어떤 나란지, 스키피오는 누군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지만, 벌써 잊어버린 이름들이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힌다면, 세계사를 어렵게만은 생각하지 않을 듯 하다.

국사 선생님들이 편찬한 세계사 이야기를 얼핏 살펴보았지만, 아이들에게 그닥 부담 없는 책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국사와 세계사에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많은 이름들은,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서 익숙해 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리라.

런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길>이라 하지 않았나.
세계사와 친구하는 길은 좋은 책과 함께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들과 같이 읽으려고 작정하고 있다. 이 책을 며칠 만에 읽어 주면 고맙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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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krksmsrlf2 2006-01-0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기에는 몹시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책을 권장하고 싶네요.
'꿈이 있다면 세상은 네 편이다'
너무 어려운 책 말고 청소년에게 딱 맞는 책이에요....
공부에 대해 강요하지 마시고요.
너무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받더군요

글샘 2006-01-03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너무 해도 스트레스지만, 안하는 것도 스트레스입니다.
적절한 책을 제공해 주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진주 2006-01-0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도면 크게 공부한다는 느낌은 안 들겠죠.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을 만한 책이었어요^^

글샘 2006-01-0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요. 이 책은 제목은 좀 무시무시하지만 내용이 참 말랑말랑하더라구요.
70년 전에 쓰여져서, 유태인들에게 조금은 편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해바라기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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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호밀밭 님의 인터뷰에 응했더니 이런 책을 보내 주셨다.
절반 가량은 유태인의 기억이고 나머지 절반은 심포지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태인들을, 아니 인류를 향해 들이댄 독일인들의 범죄는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누가 그들을 용서하고 아니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유태인들이 독일인들을 용서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그들의 총끝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이 잘못한 것은 무언인가.
2000년 전 조상의 땅에 살고 있던 죄?

폭력주의 국가라는 애니미즘에 빠져있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요즘 오랜만에 토론이 무성하다.
그 토론은 극우주의자들의 발호를 예고하는 것일까?

황우석이라는 명백한 죄인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저항하는 '황사모'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무엇이 그를 용서하게 만드는가?

사학법 개정에 그토록 저항하는 '종교계와 사학 재단'의 정체는 뭘까?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 등, 과거의 사법 폭력에 대한 명예 회복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과연 누가 폭력을 저지른 자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국가인권위에서 판결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논의를
무지막지한 논리없는 논리로,
극우의 파시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이 <토론 없는 문화>는 언제 진실로 용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잠자리에서 읽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각을 그들이 좀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사건을, 누구를 용서한다고 한들,
우리 이제 용서하자고 한들,
역사의 심판을 올바로 받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용서>라는 말을 함부로 쓸 일이 아니다.

달라이 라마는 그 험악한 인생 역정을 거치면서 용서를 말한다.
과연 티벳이 폭력배 중화인민공화국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용서는 누가 할 수 있는 것인지...

용서에 대해 그저 주관적인 판단이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책.
중학생 수준이면 읽을 수 있을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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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2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샘이 교무회의에서
"유태인들은 그때 히틀러가 다 죽였어야 한다"는 발언을 해서 매우 분노한 적이 있는데
이제 그 말이 좀 이해가 갈려구 한다니까요. 물론 그러면 안되지만.
하여간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요.
왜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건지......

글샘 2005-12-3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정신병자들이 관리자 하던 시절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