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 푸른역사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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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등학교 고전 문학을 배운 이들이라면, 3대 궁중 문학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문학 작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그 궁중 문학 작품들은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 계축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이 그것인데, 그 중 혜경궁 홍씨의 작품은 사도세자가 정신병에 걸려 사사되기까지의 애절한 아내의 마음이 절절히도 그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극에서 이 궁중 문학들을 소재로 다루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책은 '사도세자가 정말 정신병에 걸린 인물이어서 죽음을 맞았는가'에 의심을 갖는다.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은 사도세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노론의 영수였음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효종부터 현종, 숙종의 3종의 혈맥부터 구구절절 당쟁의 역사가 기술된다.


결국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붕당들의 갈등에서 노론의 저항을 받은 사도세자를 영조는 세자의 자리에서 폐하는 것으로 맺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특이한 방법으로... 누가 보아도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서 그저 그렇게 생각해 버리게 된 것이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늙어서 자기 친정을 옹호하기 위해 쓴 거짓으로 가득한 문서라 보아야 할 것이다. 실록의 구석 구석에서 사도 세자는 성군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세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라면 마땅히 일상적인 편견을 불식시키고 역사적인 사료들에 입각해서 역사상의 사실이 과연 어떠하였던지, 실증적 입장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는 너무도 감상적인 것들이 지나치게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악녀 장희빈이 그렇고, 파렴치한 삼촌 수양대군 세조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세사한 내용까진 모르는 역사 속의 어떤 점에선가는 우리가 감상적인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관점이 오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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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11-2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공...님의 리뷰를 읽고 구입하려고 알라딘에 갔더니..절판되었다는...ㅠ.ㅠ

미완성 2004-11-29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님 책 중에 처음 읽은 게 바로 요책이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지요.

권력 앞에 가족 없다, 는 표어가 머리 속을 휙휙 지나가고..젊은 시절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몇 번을 넘긴 끝에 결국 왕위에 오른 정조의 모습이 그려져 눈물이 솟았던 밤이 기억납니다. ^^

글샘 2004-11-2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이런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셔야 해요. ^^

사과님... 힘겨웠던 임금들의 이야기였지요. 저는 울진 않았는데요...

marine 2004-12-0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역사에 관심이 아주 많은데요, 이덕일은 실록을 잘 분석해서 대중을 위해 흥미로운 역사 에세이를 쓰긴 하지만 가끔 보면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중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막 나왔을 때 읽었으니까 벌써 한 8년 됐을까?) 솔직히 이덕일의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의문점을 풀기 위해 한중록까지 읽어 보고 다른 역사서들도 읽어 봤지만, 사도세자에게 문제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5-02-0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나이 들어 회고록 형식으로 쓴 책인데요, 그의 아버지가 사도세자를 죽게한 여당의 우두머리였으니 객관적인 서술이라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강희제 이산의 책 1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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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중화, 세상의 중심으로 느낀단다. 정말 오랜동안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앞으로 이십 년 뒤면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이 나올 정도로 아직도 중국은 힘있는 나라다.

우리가 무식하게, 아직도 사대주의에 휩싸인 시각으로,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문화는 대중화의 혈액 속에 녹아 버렸다고 발언한 것을 숱하게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만주족이 세웠던 청나라의 황제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읽다보면, 소중화에 물든 무식하기 짝이없는 작자들이 지껄인 말들이 마치 근거있는 학설처럼 회자되었단 걸 쉽게 알 수 있다.

청나라의 문화를 꽃피운 기틀을 만든 강희제, 건강과 장수를 바탕으로 청나라의 기둥을 탄탄히 한 황제의 글을 찬찬히 읽어 가노라면, 그가 남긴 이름의 뒤안에는 숱한 회한과 허무가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훌륭한 정치란 백성들로 하여금 편히 쉬게 하는 것이다.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백성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는 것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던 그의 젊은 시절은 개혁적 정치가를 가진 청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서양 선교사와 교황의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주장, 곧, 중국에 선교사를 관할할 파견관을 보내겠다는 협박에,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대상이 저마다 다르듯이 나라마다 발음과 문자도 다르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내세우면서, "자기들만 남아 있기를 원하는 존재는 하늘의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이다. 악마는 인간을 악에 빠뜨리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고 서양인한테 들었다."고 함으로써, 균형잡히고 넓은 시각의 황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황태자 인렁에 대한 사랑과 애증, 파탄지경은 그의 황제 생활의 가장 큰 회한이었고, 그래서일까, 그의 임종시 발표된 상유, 유조는 그림자로서의 황제, 회의하고 나약해진 모습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증오했던 조선의 사가들의 사관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명을 망하게 한 폭동을 진정시키고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진 청의 역사는 만주족의 준비된 통치력으로 일관된 국가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의 시각이 생기듯이, 좁은 시각으로 역사를 본다면, 역사에서 배울 점이 없거나 잘못된 점을 배우기 십상일 것이다. 중화의 황제의 좌대 뒤에 걸린, 정대광명의 의미를 새기며, 이 책에서 그려진 황제의 모습도 서양인 조나선 스펜스(U.K.)의 하나의 시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료가 그대로 실린 부분도 많아 61년을 통치하고, 주접제도의 확립을 통한 황권 강화, 위엄과 권위 그리고 겸허함을 갖춘 노황제의 모습을 접하는 것은 새로운 성찬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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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1-2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학교 도서관에서 집히는 대로 읽는 습성이 있답니다. 읽다가 마는 책도 많고요. 그나마 역사는 뭔가 배울 점이 많은 분야지요. 제 리뷰를 보고 역사 공부를 하신다는 공포스런 댓글은 저를 당황하게 합니다...ㅠㅇㅠ;;;
 
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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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는 참 많은 외국어가 등장했다. 생전 처음 듣는 나라들과 사람들의 이름은 내 경험의 선을 훨씬 넘어섰고, 무식한 나는 늘 세계사에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도 중국 역사는 그나마 만만했는데, 이름이나 지명이 한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청나라만큼은 아니었다. 누르하치 같은 말들은 만주말이어서 낯설게 느꼈던 기억이 나고, 청조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덕망높은 유교 군주 강희제와 화려한 대외원정으로 전 아시아에 청조의 평화를 각인시킨 건륭제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낀 옹정제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다. 강희제의 아들이면서 건륭제의 아버지인 옹정제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 독재 군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바보들은 박정희가 그런 모범적인 독재 군주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박정희가 ‘대한 늬우스’에서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며 벼베기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세뇌시킨 탓이리라 여긴다.

독재에 대한 향수는 민주주의가 늘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없고, 중우정치의 형태로 몽롱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믿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것이 상당히 발전된 정치형태임을 인정하면서도 노무현처럼 힘없는 정치가야말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독재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노무현보다 더 나약한 정치가가 속출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찐-한 맛의 찌개에 익숙해 있었던 건 아닌가. 건강을 위해서 싱거운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죽어봐야 저승을 아나? 조심할 필요가 있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동양의 특별한 독재 정치를 나름대로 성실성으로 밀어붙인 옹정제, 그의 밀정정치는 철저하게 이루어졌지만, 독재자의 양심에 맡기는 밀정정치는 늘 불안하게 마련이다.

이 책은 소설을 읽는 것 이상의 흥분을 자아내는 이상정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옹정제에 대한 애정이 가득 든 글이라 볼 수 있다.

옹정주비유지(雍正硃批諭旨) 112책은 옹정제의 지방 정치에 대한 고심의 결정체다. 그가 지방관들과 끊임없이 문서를 주고 받은 것을 집대성한 훌륭한 보물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나라의 ‘실록’과 비견할 만한 명작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철학은 ‘爲君難 군주가 되는 일, 지극히 어려운 것’, ‘原以一人治天下 천하가 다르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不以天下奉一人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같은 의지의 표명에서 잘 드러난다. 아름다운 전제군주.

田文鏡(톈원징)같은 사람의 투명하고 철저한 세금징수는 옹정제와 뜻을 맞춰 업적을 남겼고, 李衛(리웨이)를 신임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대목에서는 독재자의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오르타이와는 만주족으로서 허심탄회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법률에만 의존해서는 불공평해질 우려가 있고, 법률 초월해야 공평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마치 어느나라 재판소의 관습법 운운하는 대목도 눈의 띈다.

 

과연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독재보다 나은 체제라면, 정말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혈세를 받아먹고 놀고먹는 의원놈들 보고 있으면 혈압이 저절로 올라서 신문을 끊은 지 몇 년인데, 요즘은 인터넷 뉴스가 눈을 괴롭혀서 인터넷도 끊어야 할 판이고... 공화국이라면 공화정을 펼쳐야 하는데, 공민을 위한 정치가 공화국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처한 밑바닥의 슬픔, 아무도 국민을 돌보지 않는 통치는 공화국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 가진자들의 횡포에 간혹 골든벨을 울리는 소녀가 등장하더라도, 개천에서 용 나기는 예부터 힘든 일이어서 그런 속담이 생기기라도 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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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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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익 할아버지는 농부다. 먼젓 번 책도 참 좋았지만, 이번 책도 맘에 든다.

호박이 공짜로 굴러오는지... 공짜로 굴러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그럼 호박은 어떻게 굴러들어올까. 스코트 니어링처럼 지적인 활동가는 아니면서, 농사군으로서의 전우익 할아버지의 삶은 나름대로 명쾌하다.

서권기 문자향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오늘 읽던 고은 선생님의 글에도 있었다. 書卷氣 文字香. 좋은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솟고, 글 구절에도 향기가 있다고... 정말 그렇다. 내 서재 제목도 독서는 인생의 멘토라고 했지만, 힘들 때마다 책에서 힘을 얻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이 글 쓰실 때는 나무에 푹 빠져 계셨다. 환경이 좋다는 곳에서 자란 나무는 단단하기도 향기롭기도 덜하고, 메마른 곳에서 자란 나물수록 나이테가 쫌쫌하고 단단하고 아름답다. 향기도 아주 진하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잘 먹고 잘 사는 아이들이 단단한 맛이 없다. 그러다 보니 멋도 없어 보인다.

루쉰 선생님을 칭찬한 대목도 멋지다. 뒤쪽에 절망이 덕지덕지 붙은 희망의 방패를 들고 밀려오는 절망을 막겠다고 아무도 가담해주지 않으면 혼자라도 하겠다는 자세로 평생을 산 사람이란 비유는 감동적이다. 정말 서권기이고 문자향이다. 루쉰 선생님이 할아버지의 이 글을 못 읽으신 것이 안타깝다.

자연과 멀어지고 인공, 인위 일색으로 사는 것은 발전이 아니다. 자연과 인위의 균형이 깨어져 인공이 판을 치는데 '사람인 변'에 '할위'자 쓰면 거짓위, 속일위 僞자가 된다. 사람이 너무 나선다. 사람이 뭐든지 손을 대려고 한다. 유홍준 교수가 20세기 인간은 문화재에 손 안 대는 것이 가장 보존하는 길이라 했는데...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세월이 만들어주는 빛깔이 있다. 손때처럼. 과정은 조급함보다 느긋함이고, 그 과정은 길 수록 좋고, 과정에서 삶은 이루어지고, 결과에선 삶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인생도 삶도 과정이지 결과로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고3때 열심히 공부했어도 시험을 못 쳐 버리면 재수라는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야 하고, 훌륭한 학창시절에 불명예를 안기지 않던가. 그리고 그 얄팍한 점수 좀 잘 받아서 서울대 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왔던가.

이 촌로가 권정생 할아버지랑 나눈 대화는 나를 밑바닥부터 반성하게 했다. '간신히 겨우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 그래도 줄기는 오색으로 빛나고 잎은 푸르기만 한 나무처럼.'이라는 말. 나는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나. 나는 얼마나 겨우겨우 사는 데 인색했던가. 그걸 혐오한 것은 아닌가. 나는 아이들 앞에서 좀 더 가지라고 강요하며 살고있진 않은가.

요 며칠 알라딘의 시스템이 불안정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그간 세심하게 모아왔던 재산들이 날아가지 않았나 걱정할 만 했다. 컴퓨터에선 언제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한때 허접스럽지만 써왔던 글들을 프린트해 놓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이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겨우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거란 말에 자신을 얻고. 역시 '서권기'이다. (이렇게 좋은 말은 자꾸 써먹어야 내 말이 된다.) 내가 글을 자꾸 적어 보는 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다. 나중에 나중에 아들이 아빠는 뭘 했어요?하고 물을 때 이렇게 읽고 생각했단다 하고 핑계삼아 쓰고 있다. 그리고 순간순간 좋은 생각들이 놓치고 나면 아쉽기도 하고. 내가 적은 글들도 일이 년 뒤에 보면 제법 괜찮은 것들도 있다. 어느 하루 날잡아서 이것들을 싹- 지워버릴 염이 생길지도 모른다. 좀 더 겨우겨우 살게 되면.

불야성의 시대, 말 그대로 밤낮없이 밝은 이 시대가 더욱 캄캄함을 지켜보던 십 년 전의 할아버지 말씀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세월은 흐르지만 역사가 발전하는가. 가끔은 부정적이다. 늙어죽은 나무(고사목)는 향기도 나고 색깔도 변하는데 죽었다고 하는 사람의 판단이 합당한가. 그냥 열심히 일만 하는 것과 배우려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다르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하루 하루 열심히 살고, 늘 배우려는 마음 변치않도록 문자의 힘을 빌려서 나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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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0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우익 선생은 이름이 우익이지만 '좌익' 행동을 많이 하고 사신 분이죠..^^ 이오덕, 권정생, 이런 분들과 교류하면서 소박하고 욕심없이 사시는 노철학가의 책을 글샘님의 리뷰를 통해서 잘 만났습니다.^^

드팀전 2004-11-0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우익 할아버지의 책은 느낌표에 소개되기 전까지 소리소문없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통했지요. 느낌표의 김영희 PD가 인터뷰하러 갔을대 책 표지에 나온것과 똑같이 생긴 할아버지 모습이 무척 반가왔습니다.인재 책은 안만드시고 농사만 지으실려나봐요.

글샘 2004-11-2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익... 새는 한 쪽 날개로만 날 수 없는데요... 할아버지가 이제 책을 쓰신다면, 피눈물이 묻어날까 두렵습니다.
 
한완상의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 당대총서 11
한완상 / 당대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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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하면 민중과 지식인의 저자로 먼저 떠오른다. 그분의 강의는 숱한 예들로 재미있었고, 그분이 교육부장관 할 때는 실망스럽던 기억들.

80년대의 최루탄 냄새로 기억나는 그 이름을 새삼 읽는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개혁이란 과제는 그대로이다.

냉전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제 3의 길을 모색하던 시기에도 우리는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 사이 보수 꼴통들은 타워팰리스를 짓고, 견고한 성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이 시대의 지식은들은 앙가주망(engagement)에 얼마나 당당한가. 게오르규의 25시에 나오는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불의에 대항하는 바로미터로써 지식인이 쓰이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한완상 교수의 삶의 조각조각들이 모인 책인데, 개혁에 대해 적은 부분은 상당부분 동감이 간다. 그러나 잡문들을 너무 한꺼번에 엮은 것은 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 같고, 하드커버로 둘러친 성곽은 그도 이제 개혁을 이야기하는 성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는 개혁을 시대적 소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렵다. 막강한 반개혁세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개혁의 주체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효율성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개혁좌절과 냉전 구조의 관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논지를 편다.

한국에서 근대화의 논리는 효율성을 억제하는 기능으로 작용해오고 있다. 박근혜 공주를 보면 그 논리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대형 승용차가 즐비한 천막 당사의 모습. 그리고 우리는 반개혁, 가해자 세력을 처벌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리고 선안정 후개혁의 논리에 맞서야한다. 경륜과 전문성의 논리 말이다. 언제 우리에게 경륜을 쌓을 기회를 주었나? 미국유학파가 쌓아올린 경륜의 타워팰리스와 신자유주의에 빌붙은 전문성의 성곽에 해자를 파고, 민중들과 강고하게 대치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조선말 동학농민군을 일본군을 시켜 몰살시킨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개혁의 몸통과 날개를 이야기하는 그는, 개혁의 틈바구니에서 개혁이 얼마나 불가능할 정도로 강고한 적에게 저지당하고 있는가를 익히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던 당시만 해도 그는 아직 순수한 학문적, 학자적 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의 몸통은 원칙과 비전에 충실해야하고, 개혁의 날개는 실용적 지식과 화합에 효과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기억한다. 전교조 이수호 위원장과 한완상 교육부장관이 만났던 자리에서 '알고보면 교육부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모른다'고 하던 그 나약하던 거짓말쟁이의 모순을. 책에는 실용적 지식과 화합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무기력한 테크노크라트로 전락한 시대의 비운을.

그는 장,중,단기 개혁의 청사진이 필요하고, 전투를 지휘할 개혁상황실이 필요하고, 몸통과 날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으로서도 이럴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만델라와 같은 비전과 소신과 사랑을 가진 대통령을 기다리기 까지는... 대통령이 그것들을 이뤄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허상일 지도 모른다.

마땅히 변화되어야 할 것들은 온고의 이름으로 보존되어 가며, 변화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은 지신의 이름으로 훼손되어 가는 현실. 냉전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 땅은 냉전근본주의가 판을 치는 동토의 제국이 되어 개혁의 백일몽을 꾸고있는 것인가.

솔직히 별표 넷도 그분에 대한 추억의 향수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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