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솔거의 죽음 한빛문고 11
조정래 지음, 이우범 그림 / 다림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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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세 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어떤 솔거의 죽음...은 우화 형식의 단편이어서 아이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다.

시대적 배경은 왕조 국가를 상상하면 되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인형극'으로 가면 시대적 배경을 좀 설명해 줄 필요가 있지 싶다.

인형극은 첫부분에 삼천원을 벌어서 의기양양한 꼬마가 나온다.

그 꼬마가 삼천원을 벌게된 것에는 배경이 있는데, 사립학교 추첨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들러리를 서기 위해 갔는데 추첨을 잘 해서 수당으로 받은 돈인 것이다.

꼬마는 씁쓸한 기분 같은 것보다는 돈을 번 데 으쓱하는 기분이지만,

아이를 빌려준 엄마의 심사는 복잡했을 게다.

가진자의 들러리로 꼭두가기 놀음에 나선 인형극을 통해 시대의 어두운 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 메아리, 메아리...는 반드시 작품해설이 필요한 소설이다.

사리원에서 포목점을 해서 제법 살림이 괜찮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도 형을 일본에 유학시켜 검사를 만들려 한다.

해방 운동을 하던 형은 징병에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오지만,

소련의 진격과 함께 형은 공산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소외받은 형과 가족들은 배를 구해 남하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형은 남한에서 다시 빨갱이로 낙인찍혀 감옥 생활을 하다가

제2국민병이 되어 생사를 다투다 자신을 구해준 처녀를 데려와 결혼을 한다.

징병이 되어 전쟁터에 나간 형은 살아오지 못하고

소식이 끊긴 채 세월만 흘러, 형수는 딸 인희를 낳아서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는 소설이다

 

해방 정국의 남북의 현실과 해방 후, 전쟁 시기 등에 대한 이해,

특히 '제2국민병'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소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날은 춥지요.

급식은 제대로 안 되지요.

사람 수는 갈수록 늘어나죠.

결국 질서가 깾면서 도망자가 생기고,

배가 고프니까 약탈을 하게 되고,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참 기가 막힌 일이었어요.(154)

 

자국민을 버리고 달아났던 정부가

서울 수복 후 한 일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설 인력의 보급이었다.

그래서 현역 징집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제2국민병을 모집하였으나

그들에 대한 지원이 없어 자력갱생하지 못한 자들은 얼어죽고 굶어 죽는 일이 허다하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것이 국가인가... 한숨이 나오는 사건이었다.

한국 전쟁에서 보도연맹 사건과 제2국민병 사건은 아직도 쉬쉬하는 분위기라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적다.

 

자기 정부의 비리는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밝히고 캐내어야 할 일이지만, 독재 정부가 이어지다 보니 어둠에서 나올 틈이 없을 뿐.

 

뒷부분의 작품 해설을

어린이 눈에 맞춘 수준을 기대했다가,

어른들도 이해하기 힘들 수준의 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

 

해설은 적어도

아동문학가가 친절하게 적어두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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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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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 동영상을 보고

눈물이 핑 돈다면,

그 순간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것,

그것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닐까?

 

낭만의 시대 이후,

'사랑'이라는 이름은 '청춘 남녀의 그것'으로 범위를 한정하게 되면서,

이 책과 같은 고뇌가 소설화 된다.

바야흐로 '로망'의 시대인 셈.

 

그러나 플라톤 시대의 '사랑'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시민'들 사이의 '진실된 마음' 같은 것에 가까운 개념이었고,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내 '사랑' 인걸요~ 같은 노래 가사는, 자본에 얽매인 연애 개념에 불과하다.

 

사랑을 단어로 잡으려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사랑은 저 아이들 머릿속에서 '거짓말'을 소거한 이후 떠오르는 그 마음.

그런 진실한 것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공지영의 사랑에 대한 천착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그가 여러 번 결혼하고 헤어진 것 역시 그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그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온 용감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착한 여자'로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그에게도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다른 개념이리라.

 

그이의 이 작품은,

전혀 다른 개념을 한 단어에 모아 쓰는,

그것도 그 스펙트럼이 유사함이나 인접성보다는,

거의 상징에 가까운,

자식에 대한 사랑, 이성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동음이의어를 한 범주에 넣고

올바른 것을 고르라는 숙제처럼

불가해보이는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랑은 하느님에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하느님의 성분 함량 퍼센티지야 다 다르지만

모든 사랑에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돈이, 술이, 마약이 하느님인 줄 아는 거지요.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시골 아가씨 같은 거래요.

영원한 것, 행복한 것, 사랑받는다는 느낌 같은 거를 찾는...(180)

 

강물을 건너는 데

젊은 과부가 강을 못 건너 곤란해 하자,

노스님이 과부를 업어 건네주었단다.

절에 다 와서,

동자승이 노스님께 물었단다.

스님이 여자를 업어도 되냐고... 계율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스님 왈, 나는 아까 강가에 과부를 건네주고 두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왔느냐... 하더란다.

 

정말 사랑하면, 이유를 찾거나, 영원의 이름에 기대지 않는다.

불안할 때, 영원을 약속하고, 인과의 원칙을 고수하도록 옭아맨다.

 

시대에 따라 사랑의 모습은

다른 삶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한국 전쟁과 미국, 수도원과 젊은 여자를 뒤섞는 이유도 그런 것이리라.

시대적 배경에 따라 삶만으로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곁에서 지켜주어도 허깨비같은 헛헛함에 좌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은 가시지 않아요.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371)

 

하느님의 사랑이, 완벽한 사랑이,

한 순간도 놓지 않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지 않을까?

 

차가운 바닥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마음의 고통과 억압에 불안해하고 있을 자식에 대한

그리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먹을 때마다 목울대가 울컥, 하는 그런 마음이라면,

잠시도 가시지 않는 마음이라면,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군대에 아이를 보내 놓고 하루도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부모들처럼...

 

수도원 기행... 처럼,

종교적 영성이 가득한 책과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형상화하는 인물들이 좀 더 한국 사회에 밀착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 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도가니'가

도식적이지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문제제기가 한국적인 것이어서였을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의 이야기를 형상화한다면,

하느님의 이야기를

사랑의 이야기를 더 깊이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한다.

 

어떤 이유든 사랑은 아프고, 그래서 하느님도 늘 아프세요.

하느님은 사랑하니까요.

난 노을을 보면, 그게 상처난 하느님의 섬세한 마음인 거 같아서 덩달아 마음이 아파요.(119)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든 소설이기도 하면서,

그들을 통해 가슴 깊이 아픔을 다독거리는 위안을 얻게도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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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2
이재무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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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의 시상은 일상에 널부러진 것들이다.

방바닥의 먼지나 청소기, 걸레라든지,

길바닥에서 만난 얼굴이거나

자신의 걷는 일조차 시상에 얽히고

그렇게 채집된 소재는 시집에 실리고, 결국 시집보낸다.

 

누수처럼 느릿느릿

걷고있는 노인의 몸에서

가닥가닥 풀린 길들

시나브로 흘러나오고 있다

 

대관절 저 구부정한,

마른 장작같은 몸피 속에는

얼마나 많은, 젖은 길들

엇꼬여 쟁여 있는 것일까

 

여생이란 무엇인가

몸 안에 똬리 튼 길들

하나, 하나 어르고 달래

밖으로 흘려보내는 일 아닌가(여생 전문)

 

이렇게 만난 노인의 낯도 시가 된다.

 

아내는 비정규직인 나의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나는 나를 떠먹는다, 부분)

 

외박하고 돌아온 날로부터

찬바람 도는 아내와 냉전의 사흘 보내고 나서

맞는 일요일 아침

식구들 몰래 일어나 미역국을 끓인다(미역국을 끓이다, 부분)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시는 채집된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나는 들키지 않게 져주는 것이야말

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의 셔틀

콕이 네트를 넘어 널리 멀리 퍼져나가면 그것처럼 큰 사랑

은 없겠지요?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마는.(배드민턴과 사랑, 부분)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면서 들키지 않게 져주는 사랑.

배드민턴을 치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니 질 수밖에 없는 듯~ ^^

 

여름 한철 반짝 살다 가는,

겉은 단호해도 속은 물러 터져

아무 때 아무에게나 싼값으로 너무 쉽게 먹히지만

끝끝내 소화 안 되는

단단한 씨앗들 배 안에 한가득 품고 있는,

참으로 질긴 생명의 여름 성녀들(참외들, 부분)

 

그의 '시인의 말'을 읽노라면, 그가 길어올린 소재들의 면면을 이해할 수 있다.

 

시는 내 생활의 기록이다.

내 시편들은 생활 속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나는 굳이 신기하거나 생경한 것에서 시를 구하지 않는다.

생활에서 구한 대상들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뿐이다.(시인의 말 중)

 

그렇지만

말이 시가 되려면 머릿속에서 의미가 엮여야 한다.

그 과정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는 실패의 기록이다.

비록 그것이 희망을 노래할지라도

절망을 통과하지 않을 때는 깊은 울림으로 오지 않는다(130)

 

머릿속에서 절망과 실패가 헝클어진 실타래를 이룬 가시나무처럼 빽빽하다가도,

실마리 하나를 쏘옥 잡아 뽑으면

줄줄이 사탕 모양으로 그 실패들이 기록의 대상이 된다.

깊은 울림은 헝클어짐이 정돈될 때 독자에게 내리는 축복이다.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전문)

 

이 서시는

그의 시론이다.

슬픔은 위로되지 않는다.

우리반 아이가 겪는 생리통의 지긋지긋함도 견디어 내는 시간이 필요하듯,

슬픔은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슬픔의 절망과 실패에서

눈물만 흘리고 만다면 삶은 깨트려질 수 있다.

 

두 손 모으고

고개 조아리며

겸손하고 경건하게

지혜를 얻는 일.

 

이것이 그의 시론인 셈.

 

 

 

72. 사체로 끼니를 챙겨 먹고/ 인간들은 조금 더 죽음을 연장한다... 여기서는 '연기'한다가 맞지 않나 싶다. 연장을 쓰고 싶다면, '삶을 연장한다'고 해야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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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눈
장석남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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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의 시를 읽는 일은 '앓는 일'이다.

왠지 그의 화자는 시름겨워 보이고,

금세 맘이 젖어들어 같이 앓는 심사가 된다.

 

바다 소리 새까만

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

책상 위에 풀어 놓고

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

기울어진 자리도 괴곤 했다

잠 아니 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

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

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

궁금해하노라면,

 

구름 지나는 그림자에

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매인

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

낮달처럼

저나 나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돌멩이들)

 

인간보다 수십 만년 더 닳아져 온 동그란 돌멩이들.

돌멩이들의 연원을 곰곰 되새기는 화자는

몇몇의 돌멩이들을 보면서 조금 서럽다.

저나 나나

외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허나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말도 있듯,

그 '사이'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삶의 숙제지,

'사이'를 아쉬워하거나 없애려드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그저 '외따로' 있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됐다.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가 갔구나 가을은

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

갔구나

 

국화꽃 무늬로 언

첫 살얼음

 

또한 그러한 삶들

있거늘

 

눈썹달이거나 혹은

그 뒤에 숨긴 내

어여쁜 애인들이거나

 

모든

너나 나나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살다가 가는 것들

있거늘(국화꽃 그늘을 빌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눈썹달만 봐도 가슴에 살얼음 애리는 추억도 있고,

그 뒤에 숨긴 어여쁜 애인도 젖은 눈으로 우러르는 심사도 있다.

그런게 살다가 가는 것들의 의미다.

 

진정 그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누구인지, 그 이치를

먼 훗날 깨우치는 날이 오면은

나도 그때에는

아버지가 되어도 좋았을 건세

마음에 눌러둔 여인네의, 하느님의, 온갖 부처의

애인이 되어도 좋았을 건데(팔뚝의 머리카락 자국 그대로 - 아이, 부분)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난 팔뚝엔

머리카락 자국이 남았다.

고요한 마음에 내내 맺혔다 스러지는 한 사람...

마음에 눌러둔 그 때를 돌아보는 그의 마음결이

서걱일 듯 싶다.

 

그의 시는 그의 언어가 지은 집이다.

 

최종적으로는 막연해져서

그냥 인간의 가슴과 꼭 같은 집을 짓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것도 사랑의 소굴로서의 가슴과 같은 집,

더더욱 내 가슴과 꼭 닮은 집.

그것은 아주 작아서 숨기 좋은 집이다. 그러나 밝은 집.(112)

 

누구에게나 가슴에는 사랑의 소굴 하나쯤 키우고 산다.

그곳은 아주 작아 숨기 좋은 집이고, 환하고 밝은 집이다.

 

이이의 시는 그런 작은 집을 옮긴 것이다.

그러니 하염없이 젖은 눈으로 망연할 따름이다.

거기는 손도 무엇도 닿기 어려운

가슴 속의 소굴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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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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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에필로그, 207)

 

광주, 사태의 시작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시작되었고,

작금의 국가 파탄 사태의 시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시작되었다.

 

한때, '광주 민주화 항쟁' 같은 명명이 된 적도 있으나, 용산이나  광주는 아직도 '사태'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지 말하지 못하고, 알리지 않는다.

 

이 책은 한창훈의 '꽃의 나라'에 비하면 형상화에 그닥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길고긴 에필로그가 보여주듯,

한강이란 작가가 매달린 '광주의 뒷모습'에 대한 천착의 결과인 <증언 문학>임을 감안해야 한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213)

 

이런 말이 이 소설의 창작 배경을 보여준다.

 

박정희의 딸이 '정치 없는 통치'를 한 지 2년이 넘었다.

그동안 '공약'은 모두 폐기되었고, 20%를 '지지도'라고 떠들며(아니, 60% 이상이 반대하면 탄핵해야지, 그게 지지인가?)

친일파나 공안파들이 정관계의 요직에 스물스물 벌레처럼 득시글거린다.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 '르포'다.

르포 사이사이에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빗대어 '증언'이 나오니까...

 

오월이면 봄이어야 하는데

거리는 십일월 어느날처럼 춥고 황량했다.

무섭도록 고요했다.(204)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외출.

서울 거리느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평론을 쓰는 한 선배는 나에게 왜 소설집을 보내주지 않느냐며 웃으면서 항의했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205)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천안함, 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세월호, 의 눈물은 아직도 줄줄 흐른다.

 

믿을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이성복이 시 '그날'에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다.

 

소년은 영혼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내려다 본다.

켜켜이 쌓인 자신의 시신을,

군인의 병장기에 도륙된 소녀의 시신을...

 

그리고, 세상은 다시 병들었다.

양심의 금속성이, 쟁그랑 소리를 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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