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1
박광수 엮음.그림 / 걷는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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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커버에... 11,000원.

종이는 두꺼운 재질이고...

출판사는 '걷는 나무'라...

나무야, 미안해...

 

굳이 이런 시집을 엮었어야 했을까?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시집을 뒤적거리기보다 클릭이 쉽다지만,

시는 손을 움직여서

책향이 나는 글들을 읽는 맛이 좋긴 한데,

이 책을 읽고는 난 많이 아쉽다.

 

특히나 외국 시인들의 시는

번역되고 나면 더이상 시가 아닌 것이어서

격언처럼 들리고 마니까.

 

박광수란 이름값과

아련하게 그리운 제목과

감성팔이하는 책 같아서 불편하다.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 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조은, 동질)

 

이런 시는 광수생각과도 비슷하다.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이고 싶다

 

나로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

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

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복효근, 안개꽃)

 

복효근의 시는 늘 아련하다.

시집은 좀 가볍고,

날씬해야 제격인데,

이 책은 너무 두툼하고 투박하다.

시가 기름져보여 싫증나기 쉽게.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이곳 속 저 꽃

은하수를 건너 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 생 너머 저 생

아득한 한 뼘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권대웅, 아득한 한 뼘)

 

시를 고르고,

시를 들려주는 목소리는 고맙지만,

이 책은... 실망스럽다.

 

시에 대하여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기대가 컸는데,

근데 살까말까 망설이다

도서관에 사 두고 빌려왔는데,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읽어보지도 않고

살까말까 망설였던 내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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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화서 - 2002-2015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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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런 말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독특한 뇌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성복이,

어떻게 하면 저런 표현을 얻게 되는지를 풀어 놓았다.

풀어 놓는 과정 역시... 시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 연꽃은 더러운 물에 살지만 항상 맑고,

화과동시花果同時 꽃과 열매를 동시에 얻는다.

 

화과동시라는 말은,

가르침에 따라 배운다든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얻어진다는 것처럼,

세상의 상식을 깨뜨린다.

꽃과 열매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승보다 제자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은 착오다.

 

제목이 좋다.

무한꽃차례... 잎차례도 멋진 말인데, 화서...도 멋지다.

아래서부터 피는 꽃은 꽃대가 자라면서 무한하게 피게 된단다.

 

성장에 제한이 없는 무한화서는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피는 것이에요.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시는

무한화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니까요.(11)

 

그렇다.

현실의 아픔을 짚어주는 시는 없다.

그러나, 이성복이 짚어줄 때 조금은 따스하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 중)

 

이런 역설이

이 땅의 현실을 잘 보여주니까.

 

 

눈에 띄게 흰 피부에 입술은 피빨강
꼿꼿하게 핀 허리에 새침한 똑단발

못된 걸음으로 또 어디를 가나
누굴 찾는 것 같아 이 외로운 마틸다

 

아이들이 부르는 이런 감각적인 노래는,

머릿속에 전복의 사고를 불러오지 않는다.

 

영화 '롱십'에 나오는 얘기.

황금종을 찾으려고 섬을 파헤치건 사람들이 마침내 포기하고 곡괭이를 내던지자

종소리가 울려 퍼져요.

섬 전체가 종이었던 거지요.

곡괭이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곡괭이의 전혀 다른 기능이 살아나는 거예요.

언어의 시적 사용도 그런 것 아닐까 해요.(21)

 

시의 언어는 일상어와 같지만, 곡괭이로 파서 얻을 수 없는 것.

희한하지만 야릇한 쾌감을 준다.

 

가야금 탈 때 손으로 지그시 눌러주어야 깊고 부드러운 음이 나오지요.

멋진 이미지로 장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지긋함'이에요.(34)

 

오직 힘있는 사람만이 소극적 능력을 가질 수 있어요.(48)

 

뭐든지 의욕이 앞설 때 힘이 들어간다.

테니스나 골프같은 운동도 그렇고, 피아노나 플루트 같은 악기도 그렇다.

힘 빼세요. 라고 말하지만, 그 경지는 초보의 경지가 아닌 것이다.

한 치 앞을 걱정하는 이에게 힘 빼라니, 어불성설이다.

운전도 십 년, 이십 년이 넘어야, 지긋한 경지의 안정이 찾아온다.

 

시는 이미지와 메시지 사이에 있어요.

수레바퀴도 테두리가 돌면 중심축은 나아가지요.(78)

 

메시지를 전달하려 애쓸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찾아내려 애쓰라는 말인 듯.

 

위의 시들은 그래도 이미지가 그려져서 공감이 많이 되네요..
요즘 시들이 거의 외계인 수준이라서 도통 못알아듣는 시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시에 대해 얼마나 연구하겠는지 전혀 고려는 없더란.
시 안팔린다고 시인들이 죽을상하더군요..

 

 

어제 쓴 손택수 시집 리뷰에

누군가가 단 댓글이다.

요즘 시들이 이미지 발굴에도, 메시지 전달에도 무관심한,

징징대는 소리들이란 생각에 공감이다.

 

사랑할 때나 운동할 때처럼

좀 힘든 부분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시예요.(90)

 

결핍이 오히려 추억도 만들고, 의욕도 부추길 때가 있다.

 

악은 무감각이고 어리석음이에요.

시가 아니라면

우리 자신의 악을 무슨 수로 적발할 수 있겠어요.(153)

 

악의 본질은,

욕심에서 나오는 어리석음이고,

무감각과 무관심이다.

시는 그 무관심을 메스로 파헤쳐내는

처절한 장면인 셈.

 

깨달음에 목매지 마세요.

어리석음을 그냥 두고 바라보세요.

절해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시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꾸 시론으로 옮아가는 것인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겠다.

굳이 하드 커버로 하지 않았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은 든다.

3권으로 분철해서

시집처럼 가벼운 것은 아주 맘에 든다.

 

 

 

 

 

 

대체로 한자어를 잘 표기하고 있으나,

159. 전향적 사고를 해야 해요. 가령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낳았다고 해 보세요... 이런 건, 구를 전을 써야 옳다. 轉向的... 앞 전을 쓰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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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9-21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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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도착했다

한전 부산지사 전차기지터 앞

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

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

심하게 앓고 난 뒤의 머릿속처럼

맑게 갠 하늘 아래, 

전차 구경 와서 아주 뿌리를 내렸다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겠지

꽃양산 활짝 펴 든

며느리 따라 구경오신 할아버지도 그랬겠지

나뭇가지에 코일처럼 감기는 햇살,

저 햇살을 따라가면

나무 어딘가에 숨은 전동기가 보일는지 모른다

전차바퀴 기념물 하나만 달랑 남은 전차기지터

레일은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레일을 따라

바퀴를 굴리는 힘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지난밤 내려치던 천둥번개도 쩌릿쩌릿

저 코일을 따라가서 動力을 얻진 않았는지,

한 량 두 량 목련이 떠나간다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

저 꽃전차를 따라가면, 어머니 아버지

신혼 첫밤을 보내신 동래온천이 나온다

 

- 『목련 전차』(창비, 2006)

 

 

시를 읽는 것은,

이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얻는 것이다.

글 속에서 살아 나오는

환한 햇살 속에 뚝 뚝 떨어지는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목련 희뿌연 잎과 함께,

꽃전차가 한전 앞 전차터에서 기적소리라도 울리며 떠나간다.

 

언제나 '보이게끔 얘기해야 해요.

우리의 뇌는 '구체적 이미지'라는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잠들어 버려요.(이성복 시론, 불화하는 말들 중, 67쪽)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면 이얍, 어깨 위로 그 옛날 천둥 기합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피시식

알아서 눈치껏 소리 죽인 기합에는 맥이 빠져있기 마련이다.

한번이라도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제 몸을 끼워맞추고

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본 자들은 알리라

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도끼는 갈고 갈아도 지워지지 않는 목향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흙이 된다(녹슨 도끼의 시, 부분)

 

 

ㅋㅋ

인터넷에서 '도끼 자국'이라는 좀 외설스런 말이 떠오르는 시다.

나이 든다는 것은

웬만한 야한 이야기도

피식 웃어넘기고 말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듦에 대하여, 이런 좀 우습고

나름 진지한 향기를 담은 시를 쓰는 나이라면...

그런데 그는 70년 개띠란다.

 

극점엔 동서남북이 없다

오직 마주한 방향만이 있을 뿐

눈 폭풍 몰아치는 극점이

극점에만 있을까

둘 데 없는 시선이

돋보기 속 빛처럼

골똘해지는 가로수

우듬지 끝

팔랑,

잎 하나 떨어진다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도로변

매미 울음소리도 따갑게 이글거리는 정오

내가 한점으로 가장 단순해진

극점

거기선 네가

지워진 모든 방향이다(극점, 전문)

 

인생에도 극점이 있다면,

그 극한 상황 앞에서는 이것저것 따질 것이 없는 때라면,

글쎄, 잎 하나 떨어지듯,

죽음을 앞둔 시점일까?

그제서야, 이것저것 동서남북 따지지 않고,

내 앞의 네가 유일한 방향이 될 것인가?

 

꽃이 피면 죽는 게 아니라

죽음까지가 꽃이다(대꽃, 부분)

 

인생에서 죽음을 참 대단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죽음까지가 꽃이라고 생각하며 살면, 좀 멋지지 아니할까?

힘겨운 삶의 나날, 한 발 한 발의 걸음걸이를,

그저, 꽃이다... 하고 살라는 말은, 쉽게 나온 말이 아닐 게다.

 

 

수묵은 번진다

너와 나를 이으며,

누군들 수묵의 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만

번짐에는 망설임이 있다

주저함이 있다

네가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경계를 넘어가면서도 수묵은

숫저운 성격, 물과 몸을 섞던

첫마음 그대로 저를 풀어헤치긴 하였으나

이대로 굳어질 순 없지

설렘을 잃어버릴 순 없지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희부연히 가릴 줄 아는,

그로부터 아득함이 생겼다면 어떨까

아주 와서도 여전히 오고 있는 빛깔,

한 몸이 되어서도 까마득

먹향을 품은 그대로 술렁이고 있는

수묵은 번진다 더듬

더듬 몇백년째 네게로

가고 있는 중이다(수묵의 사랑, 전문)

 

숫저운 이들의 사랑은

어찌 보면 싱거운 맹탕같을지 모르지만,

예리한 순간 포착의 달인에게 들키면,

그 번짐과 설렘이 선연히 드러난다.

더듬

더듬 가고 있는 번짐의 숫저움.

좋다.

 

불국사 대웅전 마루는 한여름에 때를 많이 탄다

샌들을 벗고 들어온 사람들

맨발바닥에 묻혀온 티끌들이 나무 바닥에 묻어나선

까뭇한 윤을 내곤 한다.

세상의 먼지들이 모여 빛을 내는 우물마루

이놈의 먼지들, 이놈의 먼지들

보살님은 틈나는 대로 걸레질을 하지만

걸레가 지나간 뒤의 물기를 타고

먼지는 나무 속으로 더 잘 스며든다

때가 타 반질거리는 바닥을 향해 이마를 수그릴 때

양옆으로 열어젖힌 문 너머 하늘빛도 따라 들어와

일렁이는 나뭇결 따라 파문 지는,

불국사 대웅전 마루는 한여름

세상에 떠돌던 먼지들을 품고

가장 높은 바닥이 된다(불국사 대웅전 마루에서, 전문)

 

마루...는 가장 높은 곳이다.

불국사에서도 가장 높은 집,

대웅전의 가장 높은... 마루에는,

티끌들이 얼룽거리며 때가 되지만,

반질거리는 가장 높은 예술이 된다.

 

온갖 뉴스에서,

내가

내 삶 전체가

먼지처럼 부질없게 여겨지는,

참으로 사소함과 초라함에 기운빠지는 날,

먼지도 이렇게 높게 대접받는 시가 있구나 싶어, 위안을 얻는다.

 

차심이라는 말 있지

찻잔을 닦지 않아 물이끼가 끼었나 했더니

차심으로 찻잔을 길들이는 거라 했지

가마 속에서 흙과 유약이 다툴 때 그릇에 잔금이 생겨요

뜨거운 찻물이 금 속을 파고 들어가

그릇 색이 점점 바뀌는 겁니다

차심 박힌 그릇의 금은 병균도 막아주고

그릇을 더 단단하게 조여준다고...

불가마 속의 고통을 다스리는 차심,

그게 차의 마음이라는 말처럼 들렸지

수백년 동안 대를 이은 잔에선

차심만 우려도 차맛이 난다는데

갈라진 너와 나 사이에도 그런 빛깔을 우릴 수 있다면

아픈 금 속으로 찻물을 내리면서

금마저 몸의 일부인 양(차심, 전문)

 

그의 시에서 차츰

생활 주변의 찌든때들이,

갈라져 터진 틈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게 시의 맛이고,

차의 맛이다.

은은하고,

좋다.

 

 

 

 

 

박준이 해설을 붙여 두었는데, 한자가 틀렸다. '외연'은 外延이라고 쓴다.

내포의 반대 개념이다.

 

외연 : <논리> 일정한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의 전 범위. 이를테면 금속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금, 은, 구리, 쇠 따위이고 동물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원숭이, 호랑이, 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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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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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보름/그믐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에 대한 절창은 이미 나도향이 불렀다.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 이자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 이고,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과 같은 달, 이라고 극찬했다.

 

장강명의 그믐달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거든. 그래서 쉽게 볼 수 없지. 해가 뜨기 직전에만 잠깐 볼 수 있어. 낮에는 너무 가느다랗고 빛이 희미해서 볼 수가 없는 존재이다. 있지만 존재를 볼 수가 없는... 이 지점에서 그믐은 기억을 닮았다.

 

 

과거/현재/미래 또는 남자/여자/아주머니

 

그런 농담이 있었다.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면... 남자, 여자, 아줌마...로 나뉜다던. 가끔 아줌마 자리에 군인이 끼기도 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익명으로 등장한다. 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익명으로 소설을 전개하듯, ‘익명성은 현대에 새로운 하나의 범죄 카테고리를 만들 만큼 함축적 의미가 크다. 결국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의 기억이 뒤얽히면서 진실을 밝히는 일은 어려움을 넘어 불가능으로 치닫는다.

 

우주알에 빙의한 남자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세상은 예측 가능한 것이므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조작하여 세상을 착각하게 할 수 있다고 믿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말보다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멈추지 않는다.

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여자. 출판사에서 일하는 여자는 고등학교시절 친구였던 남자를 알아보게 되고, 과거에 매달리며 죽은 아들과 남자 사이를 오고간다. 여자의 현재는 밥벌이의 지겨움으로 대변되는 나날이며, 한 반에 세 명이나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 만큼이나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은 희미하다.

이 소설을 판타지에서 범죄추리물로 장르를 넘나들게 하는 인물은 아주머니이다. 아주머니는 과거에 매여 있으며, 남자의 과거 기억까지 들추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녀에게서 이미 죽어 실명으로 거론되는 이영훈을 빼고 나면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거짓말/기억/진심... 격발

 

각 이야기들은 두 음절로 이루어진 세 단어를 제목으로 전개된다. 다만 끝의 바로 앞에서, ‘너는 누구였어?’로 인하여 길어짐으로써, 목차를 두고 보면 마지막의 바로 앞에서 작은 일탈 또는 파격을 보이고 다시 원위치된다. 마치 획일적인 개미들의 움직임같은 한국이 싫어서한발 내딛으려는 의지처럼...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가 다 밝혀내는 것이 가능할까? 하고 묻기라도 하는 듯, 소설의 스토리는 오리무중 속을 헤매는데, 여자에게 내재된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밖으로 터뜨릴 수 있도록 남자의 마지막 말로 촉발시키는 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남기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다. 시지프스처럼 날마다 밥벌이의 비루함 앞에서 무릎꿇는 '여자'같은 독자에게, 그 진심이 전달되기를 강하게 열망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더.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어. 나의 시간을 살고 싶어. 자유로워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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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69호 - 2015.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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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한 다정다감/ 박성우

 

내 어머니도 '김정자'고 내 장모님도 '김정자'다

내 어머니는 정읍에서 정읍으로 시집간 김정자고

내 장모님은 봉화에서 봉화로 시집간 김정자다

둘 다 산골짝에서 나서 산골짝으로 시집간 김정자다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가 아까운 터에

봉화 김정자와 함께 정읍 김정자한테로 갔다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를 위해

간고등어가 든 도톰한 보자기를 챙겼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를 위해

시금시금 무친 장아찌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정읍 김정자는 봉화 김정자 내외에게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한 방을 내주었으나

봉화 김정자는 정읍 김정자 방으로 건너갔다

혼자 자는 김정자를 위해

혼자 자지 않아도 되는 김정자가

내 장인님을 독숙하게 하고

혼자 자는 김정자 방으로 건너가 나란히 누웠다

 

두 김정자는 잠들지도 않고 긴 밤을 이어갔다

두 김정자는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 소리는

아내과 내가 딸과 함께 자는 방으로도 건너왔다

죽이 잘 맞는 '근당게요'와 '그려이껴'는

다정다한한 얘기를 꺼내며 애먼 내 잠을 가져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이른 아침,

한 김정자는 쌀씻어 솥단지에 안치고

한 김정자는 화덕불에 산나물을 삶고 있다

 

 

책을 뒤적거리면서 읽고 싶은 글을 찾노라니,

읽고 싶은 꼭지를 찾기 힘들다.

삶이 팍팍해 그럴 게다.

그나마, 박성우의 이 시가 참 좋았다.

얼마 전 읽은 백무산의 시도 좋았다.

 

서민의 메르스 사태 소론이 읽을 만 했는데, 결론은 너무도 뻔한 것이어서, 아쉽다.

그가 좀 더 책임있는 자리에 있다면... 그런 아쉬움.

 

신경숙은... 신물나고 시들하며,

세월호는... 혈압만 치솟고 눈물이 앞을 가려 못읽는다.

 

요즘 소설들은... 왜 전망을 가지지 못하는지,

과거와 분리된 현실은 전망을 갖지 못하는 불임이 되는 것인지...

 

시대를 분석하는 글들 역시,

힘이 없어도 너무 없어... 이 두꺼운 책이 참 힘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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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5-09-1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