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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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계속 '자기 앞의 생'이 생각났다.

 

열 살 꼬마 모모(모하메드)가 살고 있는 7층짜리 아파트와

모모를 길러주는 창녀출신 유모 로라 아줌마.

갑자기 알게 되는 어머니의 죽음과 살인자 아버지.

그리고 열 살의 비밀...

인간은 사랑없이 살아갈 수가 없다... 사랑해야 한다...는 소설.

결핍이란 결핍은 조건이 모두 갖춰진 삶의 비애를 읽게되는 책으로 기억나는데,

'자기 앞의 생'의 원제목이 '여생(남은 인생)'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열 살이나 열 네 살의 앞에 남은 인생이란...

생각하기도 싫지 않을까?

 

천명관의 장편들이 가진 유머와 풍자의 힘을 기대하고 읽은

이 단편집에서는,

유머보다는 삶의 비애, 욕망을 가질 수조차 없는 자의 앞에 놓인 '생'의 기나긴 여로...

이런 것들을 그려내고 있어 가슴이 무거웠다.

 

칠면조를 얻고, 사람을 치고, 트럭을 훔쳐 정처없이 달리는 사람의 마음(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이나,

혼자 사는 여자가 자살하려는 아이를 잡다가 팔이 부러져 불면의 밤을 보내는 마음(파충류의 밤)이나...

그 여생이 얼마나 폭폭할지는 불문가지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잎이 말라가고 있는 포도나무.

제때 가지를 쳐주지 않아 지지대를 타고 아무렇게나 뻗어나간 포도 넝쿨은

언제나 불운과 저주를 달고 다니는 마녀의 긴 손가락처럼

삐죽삐죽 그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133)

 

'전원교향곡'의 이런 묘사는,

주인공의 귀농이 얼마나 희망없는 것일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상관물이다.

 

에덴을 찾아 지옥과도 같은 도시를 떠났으나

정작 그들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파리지옥의 끈끈이 속이었다.(138)

 

에덴과 지옥, 귀농과 파리, 그리고 끈끈이...

이런 단어들만으로도 그 삶이 비친다.

 

'핑크'라는 작품은 상상의 극한을 달린다.

 

오래전 그의 아내가 그랬듯이.(180)

 

대리운전 기사 시점의 이 마지막 문장은,

호러물로 전개되던 소설의 정점을 쾅! 찍는다.

 

제가 어른인데요, 군대도 다녀왔는데...(216)

 

폐병 걸린 할아버지의 손자가 내세우는 자기 증명은 참 초라하다.

그렇지만, 1년 전에 들은 시한부  6개월의 부조리를 생각하며 조손은 작게 웃는다.

서울의 변두리 우이동의 봄은 그렇게 지나간다.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로든 가야 했다.(127)

 

이런 구절은 '자기 앞의 생'의 어디다 쿡 집어 넣어도 어울릴 법하다.

아, 자기 앞에 펼쳐진 생이 즐겁게 또는 희망적으로 비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모모'가 될 수 있다.

 

이 소설은 천명관이 한국의 모모들에게 들려주는 '자기 앞의 생' 이야기들이다.

 

 

 

37. 김유정의 동백꽃의 오마주, '동백꽃'과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의 구절들이 오버랩되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김유정의 그 꽃은 남도의 붉은 꽃이 아니라 강원도의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어서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냄새'로 세상이 온통 노랗게 되는 내용이고, 이 책의 동백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여서 알싸한 냄새와는 거리가 있지 싶다. 암튼, 점순이 이야기가 나오니 재미는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가 '동백꽃'인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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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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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은,

한 인물의 삶을 평가하며 쓰는 전기이다.

그런데 그 말미에서 안도현은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썼다.

결국, 평가가 불가하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땅에서는,

가장 사랑받지만 그의 말년은 북녘에서 힘겹게 산 듯 싶고,

90년대 이후 그의 시가 널리 애송되고 있지만,

그와의 사랑을 이야기한 자야 여사의 길상사 이야기만큼이나 고뇌투성이였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해리포터 같은 화자가 환상 속에서 펼치는 사랑 노래다.

그리하여 그는 '흰 바람벽이 있어' 거기에 마치 환등기로 재생하듯,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냉리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259)

 

모닥불 타는 속에 '몽둥발이가 된 역사'를 뒤척이던 시인 백석.

그가 네 번이나 결혼했던 사실 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모던뽀이'의 외모는 순탄치 못한 사랑을 몸으로 기록하였으며,

분단과 이념의 깃발 아래서 갈등하는 삶을 읽고난 뒤끝은 입맛이 쓰다.

 

육신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는

삶은 모두 살아내야 하는 과제인 것이지,

어찌하여 살아지는 명령이기만 하지는 않은 것이다.

 

새삼 백석이 더 애처롭게 느껴지고,

그의 시편들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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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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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거리가 멀어서 팟빵의 빨간 책방 같은 방송을 듣고 다닌다.

거기서 김중혁이란 작가가 친숙한데,

웃기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하다.

 

소설집은 뭐랄까... 평범하다.

하루키 이후에 음악에 대하여 소설에 많이 쓰는 경향들이 있는 듯 싶은데,

그렇다고 하루키 식의 판타지는 또 별로 없다.

박민규의 판타지가 귀엽다면,

김중혁의 판타지는 발랄하달까.

 

회사원 같은 일에 염증을 느낀 투가 가득하기도 하고,

회의 시간에도 짱구를 굴려 소설을 기획할 인물 같기도 하다.

 

'멍청한 유비쿼터스'란 작품이 괜찮았다.

스토리를 이렇게 짜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 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99)

 

좀 무겁기도 한 주제를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서 다룬다.

 

지구가 둥근 이상, 모든 곳이 세상의 끝(100)

 

이런 아이디어도 신선하다.

이 사람, 시를 써도 그럴듯 하겠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단단히 어긋나 있었지만

나는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명색이 오차 측량원인 주제에...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일까?

원인이 없는 결과도 있지 않을까?(87)

 

이런 생각은 멋있다.

인과관계란 인간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것일 수도...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낭비'라고 중얼거렸다.(152)

 

컴퓨터 하는 사람들은 타자기가 종이를 낭비한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웃기는 소리.

종이를 버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낭비입니까,

아니면 컴퓨터처럼 종이를 아끼면서 생각을 지우는 게 낭비입니까.(177)

 

'낭비 사회'란 말이 있을 정도로,

소비를 넘어 낭비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당장 필요한 '니즈'를 넘어 '원츠'를 유발해야 산업이 되는 시대니,

낭비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만도 없다.

 

언제나 열심인 것과 성공한다는 것 사이에는 뭔가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다른 것이 숨어있는 것 같다.

그걸 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인생이라는 사람도 있다.(264)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는 <사백 미터 마라톤>에서 말한다.

 

- 그래, 씨바, 존나 달려보는 거야.(223)

- 그래, 존나 달려보는 거야, 썅.(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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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시인의 몸감성사전 시인의 감성사전
권혁웅 지음, 이연미 그림 / 난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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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몸 감성사전...이란 제목으로

몸의 각 부분과 관련된 어휘들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채집해 둔 책이다.

 

시의 감성을 찾아내기 위해 늘 모든 사물들을 구분해 두고

곰곰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모습이 투철해 보인다.

 

토템적 분류 체계를 검토하면

중요한 것은 형식일 뿐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레비 스트로스) 30

 

'이항대립의 손가락'이란 항목의 설명이다.

양손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대립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이라는 말, 참 짠하다.

 

장자에 나온 '조3모4'는 멍청한 원숭이에 대한 비유라기보다는

중요한 것은 형식이라는 말이지 싶다.

 

마음은 늘 비포장이었다.

왜 그리 불퉁거려야만 했을까.(먼지의 길)

 

비포장도로에서 찾는 마음의 불퉁거림.

 

옮긴이의 말을 믿지 말아요.

소문은 무성한 거랍니다.(닫힌 책)

 

이정서의 이방인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김화영으로도 충분히 감동이었다지만,

이정서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받아들여지는 풍토였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까뮈에게서 온 편지...도 읽고 싶다.

 

천리마가 늘 있지만 백락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듯,

사랑할 만한 사람은 늘 있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 책에서 주변의 사람들을 훑는 눈.

시인의 눈은 언제나 감시중이다.

 

전속력으로 그대를 떠나는 것 중에,

사랑 다음으로 빠른 게 바로 재채기의 속도다.

 

이런 과학적 지식 사이에서

사랑의 허망함을 덧붙이는 꼼꼼함이라니...

 

명함은 잔존사념이다.

한 사물에 묻어있는 주인의 관념 -

네모반듯한 기억이 그의 일생을 명료하게 요약했으나

정작 나는 요점을 모른다.

 

명함이 그 사람의 얼마만큼을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을까.

잔존사념, 좀 서걱거리지만 충분히 명함과 친밀할 법한 어휘다.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정끝별)

 

밀물이다.

둘은 물때가 맞았다.

배 대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참 다행이다.

사는 일, 그렇게 하루하루가 다행이어야 하는 노릇.

 

쓰리고 덴 상처 다음엔 물의 집이 생기죠

당신의 눈물을 동그랗게 모아둔

바로 그 집 말입니다.(물집)

 

언어는 늘 있지만

시인의 말을 항상 만나는 것은 아니다.

 

시가 풍부한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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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71호 - 2016.봄 - 창간 50주년 기념호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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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패악을 저지르는 걸 보고도 어찌하지 못할 때

몰상식과 물대포와 뻔뻔함과

국산 매카시즘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다시 청년이 된다
누구든 그러지 않으랴

가슴이 뛰고 펄펄 끓는 동안은

모두들 다시 청년이리라

칭다오 제7중학교 이층 외벽에 걸려 있는 교훈처럼

구진 상선 치미 하는 동안은

우리도 청춘이다(192, 도종환, 청년, 부분)

 

기뻐서가 아니라

좌절스러워서 다시 화가 끓는 청춘, 슬픈 청춘.

진선미...

진리를 구하기 위해 선을 숭상함으로써 미에 이르는...

구진상선치미라...

 

이런 시대에 사는 것 자체가 죄인데

나라 없던 시절의 친일행적이나

독립투쟁이 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게 마련이라고...

이 땅의 친일 친독재 세력에게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개똥이 개똥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이 절망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정희성,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중)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느냐며

이런 나라 사람 아닌 것처럼 겨울 팽목항에 갔더니

 

울음은 모래처럼 목이 쉬어 갈앉고

울기 좋은 자리만 남아서

 

바다는 시퍼렇고 시퍼렇게 언 바다에서

갈매기들이 애들처럼 울고 있었네

 

울다 지친 슬픔은 그만 돌아가자고

집에 가 밥먹자고 제 이름을 부르다가

 

죽음도 죽음에 대하여 영문을 모르는데

바다가 뭘 알겠느냐며 치맛자락에 코를 풀고

 

다시는 오지 말자고 어디 울 데가 없어

이 추운 팽목까지 왔겠느냐며

 

찢어진 만장들은 실밥만 남아서 서로 몸을 묶고는

파도에 뼈를 씻고 있네

 

그래도 남은 슬픔은 나라도 의자도 없이

종일 서서 바다만 바라보네(이상국, 슬픔을 찾아서)

 

굳이 슬픔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매일이 슬픔이다.

 

1966년 내가 태어나던 해 겨울 창비 창간호가 부록으로

다시 추억팔이를 하며 붙어있다.

 

창간호에 이호철의 '고여있는 바닥 -어느 이발소에서'를 보면,

마치 고골의 '외투'나 '검찰관'을 보는 느낌이다.

거만하고 고압적인 인물 군상들과

그 주변의 힘없는 나약한 서민들의 대비가 시니컬하다.

 

오십년이 넘었으나,

아픔은 심화되고 더 커졌다.

 

싸르트르의 글 '현대의 상황과 지성'의 마지막 구절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참여문학은 결코 '참여' 때문에 문학 그 자체를 망각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목적은 집단을 위하여 적합한 문학을 마련함으로써

집단에 봉사함과 아울러 문학을 위하여 새로운 피를 넣어줌으로써 문학에 봉사하는데 있다는 것을.(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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