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 2 서울 시 2
하상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의 문제를 말하는 게

나의 문제인 걸 몰랐네

 

돌직구를 던지려거든

제구력부터 갖춰주길

 

남 이야기하기 참 쉽다.

그리고 상황을 전달하면 속풀이도 된다.

직장인이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어찌 살랴..

하지만, 그게 문제일 수도 있다.

제구력을 갖추지 못한 돌직구는

상해를 입힐지도...

 

출근 시간은 어기면 욕먹고

퇴근 시간은 지키면 욕먹고

 

OECD 국가 중 복지가 최하위라는 통계는 웃긴다.

왜 그 나라들에서 조사를 하나?

그보다 못한 나라보다 못할 것이 뻔한 것을...

언론의 자유도 없으니, 복지가 더 엉망이 될 것이 명약관화한데,

복지는 가난하고 게으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거라고 미친넘이 주절댔단다.

'육아 시간' 찾아 먹으면, 민폐녀가 된단다.

 

임신직원 단축근무?.. 현실은 '민폐녀'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생각하는 것은 달라도

생각하는 맘은 같기를

 

이 사람은 말장난 같은데 그 속에서 짠한 재미를 불러온다.

삶이란 그렇게 재미와 짠함이 뒤섞인 시간들인걸...

 

뭘해도

예쁘대

 

뭐든지

예쁘대

(옷가게 언니)

 

뭘 해도 이쁜 사람이 있다.

뭐든지 예쁜 사람이 있다.

또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에 부채질을 솔솔 하고, 옷가게 언니라니... ㅋ

 

내면을

모르면

외면을

하더라

 

이런 말도 재미있다.

 

언어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삶이 무거운 것을 못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거움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하는 것이다.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자갈밭 막 굴러온 개털 인생처럼

다소 고독하게 가래침 돋워

입도 개운합지 '에이 시브럴-'

쓸만한 말들이야 줄을 섰지만

그래도 그중 인간미가 있기로는

나직하게 피리부는 '에이 시브럴-'

(존재의 초월이랄까 무슨 대해방 비슷한 게 거기 좀 있다니깐)

얼토당토 않은 '에이 시브럴-' (에이 시브럴, 부분)

 

작년 2월에 월급 50만원 받았다.

올해는 어쩌면... 못받고, 3월까지 내야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시브럴-

 

이 시집을 읽으면서 킬킬거리고,

주억거리다 눈물도 핑 돌고...

그러면서도 당나귀를 기다렸다.

김사인의 곁에서 비비적거리는 어린 당나귀가 등장하기를...

그런데... 당나귀는 '시인의 말'에서야 등장했다.

 

어린 당나귀가 있고 나는 그 곁에 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고집 세고 욕심 많은 이놈과 있게 되었나요.

곁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서로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요.

언젠가 그를 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몹시도 슬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곁에 있다는 것에 오늘 나는 이토록 사무쳐 있습니다.

독한 술을 들이켜고 한숨 잘 잤으면 싶습니다.

아침이면 어디로 떠나고 없기를 바랍니다. 어미에게 갔건 바람이 났건.

그러나 아마 그런 기특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어느날 갑자기 새날이 오리라고 바라지 않습니다.

가는 데까지 배밀이로 나아갈 뿐입니다.

지렁이처럼.

욕될 것도 자랑일 것도 더이상 없습니다.

내게도 당나귀에게도.

모과나무 너머 파란 하늘이 고요하고 귀합니다.

숨을 조용히 쉽니다.

손발의 힘도 빼고 가만히 있습니다.(157, 시인의 말)

 

시집 읽으며 욕도 하고, 그이의 말을 조곤히 듣노라니... 분이 가라앉는다.

 

네 개의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길을(달팽이, 부분)

 

우리는 생로병사의 구조가 순환할수록 단정으로 아름다움의 슬픈 깊이를 더해가는

희귀한 현대 시집을 한 권 얻었다.(뒤표지, 김정환의 발문)

 

이 시집은 '죽음'에 다가서는 슬픔과 서러움을 품고 있으나,

그 슬픔은 초혼의 번개표 찌르르한 가슴 찌름은 없고,

봉분마냥 둥글게 등뼈 궁글리고 엎드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먹는다는 것, 부분)

 

재미있는 시다.

음탕하다고 스스로 킥킥거리면서,

사실은 사랑의 본질을 정확히 바라본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은 정확히 '먹는다는 것'과 중의적으로 겹친다는 것도...

 

 

  그냥 그 곁에만 있으믄 배고 안 고프고, 몇날을 나도 힘도

안 들고 잠도 안 오고 팔다리도 개쁜허요. 그저좋아 자꾸

콧노래가 난다요. 숟가락 건네주다 손만 한번 닿아도 온몸이

다 짜르르허요.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주고 싶고,

양말도 한번 더 빨아 놓고 싶고, 흐트러진 뒷머리칼 몇 올도

바로 해주고 싶어 애가 씌인다요. 거기가 고개를 숙이고만

가도, 뭔 일이 있는가 가슴이 철렁허요. 좀 웃는가 싶으면

세상이 봄날같이 환해져라우. 그길로 그만 죽어도 좋을 것

같어져라우. 남드 모르게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절도 함시러.

이렇게 곁에서 한 세월 지났으믄 혀라우. (보살, 전문)

 

이 보살님은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고,

애인의 마음이기도 하고, 그야말로 해탈한 세상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을 킥킥대며 음탕하게 바라본 '먹는다는 것'이나,

그야말로 오롯한 순정 그자체인 사랑인 '보살'이나,

나투신 모습은 다를지라도... 본질은 하나인 듯.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자리에 오래 서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 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저녁볕 기우는 초겨울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좌탈, 전문)

 

읽으면서 스콧 니어링의 삶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행을 읽으면서, 짧게 감탄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부끄러웠다.

 

능소화빛 하늘

모랫길은 금빛

 

흔들흔들

거품을 흘리며

늙은 낙타는

집을 찾아가고

 

따라 흔들리며

어린 압둘은 눈을 빛낸다.

작은 손으로

저무는 모래산을 가리킨다.

 

아빠, 나는 저 산을 올라가보고 싶어요.

저 산도요

 

오냐,

오냐,

(총을 메고 아빠는...) (성 베두인, 전문)

 

차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압도하는

마지막 행의 '총'

슬프다.

 

좋지 가을볕은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하지.

가을볕은 차

젊은 나이에 혼자된 재종숙모 같지.

허전하고 한가하지.(가을날, 부분)

 

그이의 이번 시집은 많은 생각들이 엉클어져 있다.

가을볕이 깔깔하게 말린 뽀뿌링 호청처럼 산뜻한 시도 있고,

죽음 앞에서 경건하게 고개숙이게 하는 시도 있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 여러 방향에서 각도를 맞출 수 있게

시인의 마음각이 여러 층을 드러낸다.

 

읽노라면...

끄덕이다 분노하고,

서러워 눈물짓다 피식 웃기도 하고,

마지못해 도리지 하기도,

좌절 앞에서 손을 잡기도,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당나귀처럼...

그것도 어린 당나귀처럼...

고집스럽게

또 이 삶을 건너가야 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지도 모른다.

읽노라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5-01-2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시브럴......험한 욕인데 왠지 프랑스어 느낌도 나네요.
연말정산 에잇~~~~ 시.....럴

글샘 2015-01-22 23:26   좋아요 1 | URL
불어 씩이나... 떠올리시다니요. ㅋ
연말정산은... 갈수록 태산입니다. ^^ 정말 욕나오네요.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이 야하다고? 좋은 생각이나 샘터, 탈무드 같은 책인데...(허지웅)

 

뭐가 그 책들 같냐면... 페이지 수가 아마 그렇지 싶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그 본류를 관통하지 못하고,

토막토막 짠한 인간사를 담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면 그럴지 모르겠다.

 

세상 일이라는 게 참 별 볼 일 없는 농담 한줌이라는 걸,

별 볼일 없는 무대 위의 별 볼 일 없는 만담가가 내뱉은 그저 그런 콩트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주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는다.(17)

 

그건 그러하다.

삶이라는 거, 세상이라는 게 참 시시껄렁 시답잖은 거야...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걸 깨닫게 해주고자, 이런 책을 쓰고,

그것도 심지어 하드 커버에... 종이도 무지 두껍다.

나무에게 많이 미안해 하지 않을까?

 

연애든 섹스든 결국 신라면 같은 겁니다.

신라면 맛이 변한 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어찌됐든 요는 사람에게 한결같은 감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34)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관계가 변하는 건 늘 너 때문이다.

내가 라면이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징징대기 전에

스스로 라면처럼 굴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48)

 

어찌됐든 스스로를 저열한 자라 선언할지언정 언제나 솔직했다.

그렇다 갑수씨는 내가 만나본 모든 치들 가운데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모순되고 일그러진 세상의 풍경 앞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 것만큼이나,

윤리를 내세워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았다.

더러움 안에 뛰어들어 함께 몸을 더럽히며 즐거워했다.

그것은 유연함이 아니라 강직함이었다.

때로는 위악처럼 보일 정도로 과감한 것이었다.(129)

 

소설인 듯 소설아닌 듯한 책을 읽노라면... 스스로 이 책을 왜 쓰고 있는지를 골똘히 궁구하는 작가가 보인다.

인간은 참 찌질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찌질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치열함은 더 찌질하다.

작가는 스스로 그 찌질함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면서, 그것을 강직함이라고, 과감함이라고 밝힌다.

 

작가의 '사정'이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데, 독자에게 감동으로 어필하기보다,

그렇게 읽어 달라고 '사정'하는 듯도 보인다.

 

우리가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 보았자

인생에 대해 뭘알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은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되지요.(167)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볼모로 상대를 겁박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남의 신념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아니면오직 저뿐이라며 세상만사를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과거만이 오직 숭고하고 고단했다는 자신감으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만의 진심에 취해 남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조금은 덜 까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171, 에필로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전집'은 사랑하지만 '선집'은 별로로 친다.

'전집'은 이미 작고한 이의 모든 작품을 가치있는 유산으로 여긴다는 관점이 서린 '예찬'의 마음이 담긴 오마주라면,

'선집'은 상업적으로 팔기 위하여 대중적인 작품들을 골라 가려 실었다는 관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그리운 부석사 중, 111)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137)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풍경 달다, 140)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수선화에게 중, 141)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폐사지처럼 산다 중, 225)

 

눈이 깊어지면서 좀 현실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1부의 '서울의 예수'와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꺼움은

언어 속으로 헤설프게 풀어져 들어가 형상이 약해진다.

 

그동안 나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사치를 부려왔다

내 뒷모습에 가끔 함박눈이 내리고

세한도의 소나무가 서있고

그 소나무에 흰 눈꽃이 피기를 기다려왔으나

내 뒷모습에도 그믐달같은 슬픈 얼굴이 있었다.(뒷모습 중, 227)

 

나이가 드는 만큼,

체온은 식게 마련이다.

서늘함을 느끼는 만큼,

세상을 향한 뜨거움도 눅게 마련.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눈부처 전문)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으나 이런 시처럼,

삶의 지향을 오롯이 드러내는 시들이 그의 작품들을 어루만진다.

 

시를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결국, 상업적인 책-선집-인 셈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륵은 대숲으로 들어섰다.

바람이 잠들어 숲은 고요했다.

새들이 가지를 떠날 때 빛은 흔들렸고,

새들이 가지에 머물 때 빛은 깊고 편안했다.

우륵은 숲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오동나무 널판에서 이슬이 스러지고 있었다.

널판은 비와 이슬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말라갔다.

이슬은 널판을 미끄러져 내리다가 나뭇결을 따라 맺혀 있었다.

우륵은 망치로 널판을 두들겼다.

가장자리로부터 가운데 쪽으로 두들겼고,

나뭇결을 따라서 두들겼다.

나무의 안쪽에서 소리는 젖어 있었다.

소리는 재료에 들러붙어서, 재료를 뚫고 나오지 못했다.

소리는 재료의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92-92)

 

김훈의 문체는 담백하고 화사한 건조체이다.

그는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묘사하면서 상황을 보여주고,

몇몇 단어들의 대조를 통하여 속내를 드러낸다.

이 책은 '소리'를 언어로 잡아내려는 노래인데,

그 속에는 삶의 소리보다는 죽음의 소리가 더 흔하게 겹쳐진다.

전쟁터의 죽음도, 임금의 죽음과 순장자들의 죽음도... 모두 소리로 승화된다.

 

우륵의 가야금이 내는 소리를

나무의 안쪽으로부터 살려내는 솜씨가 김훈답다.

 

방 안의 울음소리는 가팔랐고 마당의 울음소리는 느렸다.

방 안의 울음이 잦아들면 마당의 울음이 일어섰다.(100)

 

임금의 죽음이 울리는 울음도, 이렇게 묘사되면서 현장감이 살아난다.

 

야로는 온도의 오묘함을 생각했다.

불의 온도는 몸을 찌르고,

물의 온도는 몸에 스몄다.

장적이 타는 열기가 쇠를 녹이고 물을 덥혔다.

불이 세상을 녹이고 날을 세우고,

날을 또 무너뜨려, 불이 세상을 가지런히 하는 것인가...

불과 물과 쇠의 틈바구니에서 야로의 피로는 깊고 황홀했다.(117)

 

대장장이 야로의 경험을 통하여

불과 물과 쇠의 이야기를 적었다.

경험은 어떤 세상이든 한 세상을 가지런히 하는 역할을 한다.

 

굵은 더덕뿌리가 우러난 술은 몸속에서 낮게 깔리면서 퍼졌다.

깊은 산 바위틈에서 가뭄을 견디어낸 더덕 뿌리는 오히려 물의 성정이 깊어서,

술은 크게 굽이치는 강과 같았다.

술이 사람의 몸을 찌르지 않고 먼곳을 돌아서 다가왔는데,

유역이 넓어서 깊고 느리게 스몄고, 그 취기는 들뜨지 않았다.

여자들의 비릿하고 물컹거리는 속살을 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속살들은 늘 깊이를 알 수 없이 모호했고 정처없이 보였다.

야로는 몸속에서 크게 굽이치고 낮게 깔리는 더덕술의 흐름과 무게를 좋아했다.(122)

 

더덕과 물과 강과 술과... 여자...

비교가 될성싶지 않은 것들이 얽혀서 깊이와 무게를 그린다.

그 언어의 결이 깊다.

 

소리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다.

마르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

소리는 덧없다.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소리의 본래 그러함이다. (153)

 

악기란 소리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소리는 숨소리를 따라 길게 울리기도 하고,

현의 울림에 따라 인간의 손을 떠나기도 하고,

쇠가죽이나 징의 울림이 길게 길게 여운을 남기며 조금씩조금씩 스러진다.

 

소리는 널판의 빈 통 속을 돌면서 흐르다가 밖으로 퍼져나왔다.

통이 소리를 누르지 않았고,

소리가 통 속을 돌면서 퍼졌다.

우륵의 눈에, 소리는 통 속의 나뭇결을 따라서 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 소리는 나무의 소리이기는 하지만, 빈 것을 지나온 소리였다.

빈 통이 단단한 나무의 소리를 펴서 둥글게 돌려내고 있었다.

-- 니문아, 봐라, 비어야 울리는구나. 소리란 본래 빈 것이다.

비어있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있는 것이다.(217)

 

이 구절을 읽으면,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떠오른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던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들이 모두 무언가를 결핍한 것으로 등장하다가,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서 허수아비가 뇌를 원했지만 지혜로웠음을, 양철나무꾼은 심장을 원했지만 다정다감함을,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원했지만 친구를 위해 용감한 행동을 보여주었음을 알려 주는 스토리이듯,

인간이 없음이라고 느끼는 거기서 있음을 깨닫도록 하는 일깨움이 '소리'이기도 하다.

 

악기와 소리는 인간 사는 세상의 당파와는 무관하다.

가야의 악사들이 신라로 넘어가 살게 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요즘 세상 혼란한 정치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니문아, 이제 신라 왕 앞에서 춤을 추고 소리를 내야 하는 모양이다.

죽은 가야 왕의 무덤에서 춤을 추는 것과 산 신라 왕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다르겠느냐?

아마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소리는 스스로 울리는 것입니다.

이제 신라가 가야를 토멸한다 해도 그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냐?

소리는 왕의 것이 아니니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287)

 

김훈이 '소리'에 집중한 것도 이런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

소리는 스스로 울리는 것이고,

소리는 어떤 국가나 단체에 소속된 것이 아니듯,

인간의 삶 역시 스스로 태어나 살게되는 것이고,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듯...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우리 편'의 이익을 위하여 '너희들'을 억압하는 법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인간의 삶은 '우리 편'과 '너희들' 어느 쪽에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강요다 2014-12-2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작가님의 문체 정말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