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길상문연화루 - 중 길상문연화루 2
텅핑 지음, 허유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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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편에서 이연화는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교완만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가서 둘의 인연을 매듭 지었다. 안 그래도 내력이 바닥나고 있던 이연화였으나, 자신이 사랑했고 상처를 줬던 여인을 위해 양주만으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다. 모든 것을 용서한 연화였기에 그는 더 이상 이상이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교완만은 과거의 인연을 매듭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쓸쓸함과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늦은 오후 햇살이 비치는 연화루 속 이연화의 모습은 뭔가 해탈한 것 같기도 하지만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난장강(무덤을 따로 만들지 못한 시신들을 매장하는 공동묘지)에 길상문연화루가 나타났다. 소원진의 난장강에 있는 '구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해결될 때가 온 것이다. 예전 금원맹의 '황천부(특히 황천진경)'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 구멍에서 일어난 일은 추악한 죄의 대가였다. 다른 사람으로 살아오며 멸시 당한 세월 역시 죄를 지은 대가였을테지. 그리고 속세에 미련이 없는 이연화에게 '관음수루'가 그러했듯 '황천진경' 역시 무의미했다. 


향산수객 옥루춘은 전편에 나왔던 금만당의 절친이었고, 둘째 가는 부자쯤 되는 이였다. 그런 그가 단풍을 보자며 여택으로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모인 이들 역시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는 이들로 모용요, 시문절, 관산횡, 동방호, 이두보 였다. 이두보는 이름만 봐도 시를 잘 지을 것 같았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그런데 이 중에 이연화도 끼어 있었으니, 그가 이상이였을 때는 빛나는 태양 같았다면 이연화일 때는 은은한 달빛 같은가 보다. 해가 사라지고 난 뒤 어둠이 깔리면 달이 세상을 지배한다. 해가 있을 때는 모르나 해가 사라지고 나면 달빛의 고마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게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는 여전히 잊히지 못하고 있었다. 옥루춘의 연회는 다음 날 옥루춘이 토막 난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건 현장으로 바뀐다. 


이런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주인공이 사건을 따라다니는 건지 사건이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하고 싶다. "이연화 씨, 코난이세요?" 


옥루춘은 죽일 놈이었고, 원한 맺힌 이들은 그를 응징했다. 하지만 죄는 죄이니, 죄 지은 자들을 백천원으로 보내고, 여인들은 여택을 도관(도교사당)으로 개조한 뒤 그 곳에서 회개하는 것으로 벌을 대신하였다.


사건은 끊이지 않아, 이번에는 강호 최고의 미남자라고 이름 난 위청수가 살해된 뒤 가죽이 벗겨져 그 가죽에 수가 놓인 채 발견되었다. 열흘 전, 강절 지역의 대부호 기춘란의 딸 기여옥과 혼인했는데,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신부가 발견한 것은 수 놓인 인피 조각이었다. 방다병이 기춘란과 인연이 있어 이연화는 이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전운비와 만나고, 또 하나의 인연이 매듭을 짓는다. 이상이와의 결투에서 져서 머리를 빗지 못하게 된 전운비는 이제 머리를 묶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시원한 일인가. 


인피 가죽 사건은 역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지 보여주었다. 전처를 죽여야만 호화롭게 살 수 있었던 그는 결국 죄값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등장하는 각려초와 금원맹. 이연화는 한 발 한 발 그들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백천원의 188개 감옥 중 제5감옥이 습격당해서 마두 5명이 탈출했다. 그리하여 불피백석은 방다병, 이연화, 전운비에게 막부산 감옥이 습격당한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청했다. 막부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청죽산에 들어섰을 무렵, 그들은 기이한 집을 발견한다. 그 전에 이 곳에는 이상이가 여인들을 반하게 한 결투가 있었다. 이 곳 청죽산 아래 무미하(撫眉河)에서 이상이와 화초 기르는 걸 좋아하는 동방청총이 결투를 벌였었다. 이상이가 동방청총이 기른 매화꽃이 열 일곱 송이 이상 달린 매화 가지를 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는데, 동방청총이 거절했고, 두 사람은 매화동산에서 결투를 벌였고, 동방청총은 크게 패했다. 이상이는 매화 가지를 꺾어서 가 버렸고, 동방청총은 매화 동산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교완만이 매화를 좋아했고, 사고문에는 여협이 열일곱 명 있었다고.  


그런 사연을 품은 이 곳에 이상한 집이 있었고, 안개독을 피해 그들은 집 안에 있는 지하통로로 도망친다. 그리고 땅 밑에서 강호의 수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 부형양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곳에 용왕관이 있다고 속아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각려초의 화피요공(각려초가 연마한 내공심법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수법. 깊이 연마할수록 외모가 아름다워지지만 더 잔인하고 살인을 즐기게 됨)은 실로 놀라웠다. 이 화피요공에 넘어가지 않은 이가 딱 두 사람이었으니, 바로 이상이와 적비성이었다. 


결국 이연화 덕에 각려초의 이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나, 이미 이연화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할 수도 있음을 말이다.


국화산은 뛰어난 비경을 지녔으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곳을 무당파 제자인 육검지가 지나가다 이연화를 만났다.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름을 묻는 육검지에게 연화가 "이.... 그게..." 이러는 걸 육검지가 이극애로 알아들으면서 말이다. 이 곳엔 해골이 가득한 호수와 손님은 없고 핏자국이 가득한데다 이상한 기관들이 있는 객잔이 있었다. 이 마을의 촌장은 의뭉스러웠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상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논도 밭도 없고, 과일 나무도 없고, 광물도 없고 오로지 국화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일까?


괴질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는 건 끔찍하다. 곤륜파의 금유도는 치료가 가능할까? 곤륜파나 무당파를 피하겠다는 방다병의 다짐이 허튼소리만은 아닌 것 같았다.


채화루는 방다병 집안의 객잔이다. 그 곳에 묵게 된 이연화와 방다병은 또 하나의 사건을 마주한다. 도철 금비녀에 얽힌 사연과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던 서북염왕 여양금과 그가 쓰던 박악검, 구경선경(남쪽 멀리 있는 대희국의 고산에 있는 왕릉)의 지도, 여양금의 하녀 경아와 노주대협 유항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등장한 문경. 상이태검 이상이의 검 중 하나가 소사,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문경이었다.


구경선경에 '약몽'이라는 검이 있는데, 무지갯빛 검광이 태양을 뚫고 그림자가 백 리에 뻗치며, 한 번 휘두르면 온 산하가 긴 꿈에 빠지고 강물도 붉게 변하다고 한다. 그 검을 휘두르면 휘황한 검광이 허공에서 춤을 추는데 그 광경이 그렇게나 황홀하고 아름답다고... 훗날 그 검이 부러지자 수정을 이어붙여 다른 검을 만들었는데, 그 검이 바로 문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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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리커버 특별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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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을 떠오르게 하는 책들이 있다. 어릴 때 겪었던 일들, 잊지 못할 강렬한 경험들, 그저 그런 일상인데도 잊히지 않는 그런 일들 말이다. 이 책 역시 그런 책들 중 하나이면서, 유독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듯 해서 마음이 심난했다.


전쟁은 삶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많은 것들을 바꾼다. 어쩌면 '존재' 자체에 회의를 들게 할지도 모른다. 불안과 죽음과 상실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방법을 찾을테고, 여기 두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통에 할머니에게 맡겨져 선악 판단의 기준이나 삶의 방식 같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던 아이들... 그들은 둘이었기에, 서로에게 의지해서 어린 시절을 살아냈다. 이 아이들은 삶이 투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너희들은 왜 진작 날 도와주지 않았니?"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덩치 큰 세 녀석이 덤비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니?"

"네 물통을 놈들 대가리에 던져버리든지, 손톱으로 얼굴을 온통 할퀴어놓든지, 불알을 발로 걷어차든지, 그도 저도 안 되면, 고함을 치고, 울부짖기라도 해야지. 아니면 아예 달아났다가 나중에 다시 오든가."   (p.67)


누가 때리면 더하게 갚아줘야 하고, 누가 도와주면 그만큼은 돌려줘야 하는 기준을 가지고, 남이 뭘 하든 참견하지 않으며 가족마저 거리낌없이 이용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이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의 전쟁 동안 살아남았다.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었고, 루카스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타인의 증거>는 루카스의 이야기이다. 그저 살아남기만 했을 뿐 외로움과 괴로움이 점철된 영혼을 어찌할 수 없었던 두 아이들 중 한 아이. 루카스는 이 곳에서 형제가 아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페테르를 만나고, 클라라를 만나고, 야스민과 마티아스를 만나 상처를 주고 받고 위안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말이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이고, 불행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으며, 살아있다 해서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내밀지 못한 손은 내밀지 못한 게 아니라 내밀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변할 수 없었던 것은 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나만 상처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고, 모두가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스쳐 지나가고 남은 것은 그들이 쓴 노트-원고 뿐이다.


<50년간의 고독>에 앞서 클라우스는 돌아왔다. 하지만 클라우스를 클라우스라고 확인해 줄 공식적인 서류는 없다. 한 몸 같았던 형제 루카스는 이제 없다. 한 곳에 남았던 루카스는 떠났던 클라우스를 확인해 주지 못했다. 이웃들은 이미 죽었거나 떠났거나 클라우스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루카스는 누구이고, 클라우스는 누구인가. 정말 루카스가 남았고, 클라우스가 떠난 것이었을까? 하나였던 둘이, 둘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차갑고 습하고 잔인했다. 


진정한 '나'는 누구이며 어디 있는 걸까?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나'를 모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나'는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알고자 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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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07-28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얼마전에 읽었어요. 그때의 여운이 다시 또 올라오네요ㅎㅎ

꼬마요정 2023-07-28 23:24   좋아요 1 | URL
이 책 좀 충격이었어요 ㅎㅎ 작년에 읽었는데, 그 때 마음이 너무 싱숭생숭해서 리뷰를 못 쓰다가 얼마 전에 다시 꺼내보고 이제야 쓰게 되었네요. 작가가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23-07-28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꽤 오래 전에 읽었는데… 그 때 작가가 여자인 줄 몰랐어요. 최근에 보통의 책읽기 읽다가 저자가 여자인 걸 알았는데.. 성별이 중요한 거 아니지만 작가가 나중에 습득한 언어로 썼다는 게 알고 완전 놀랐습니다. 그때 읽었을 때 전 묘한 반감이 있었는데(아마 반전이 저에게는 역효과였던 것으로 어렴풋히 기억나요)2차 습득 언어로 이런 작품을 썼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니 이 작품을 다시 읽고 재해석 하고 싶더라고요!

꼬마요정 2023-07-28 23:28   좋아요 0 | URL
정말 놀라웠어요. 저는 <문맹>을 먼저 읽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읽고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 어린시절도 떠오르고...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한국어로도 못 쓰는데 그녀는 심지어 2차 습득 언어로 이렇게 쓰다니.. 어쩌면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글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고통을 글로 승화시키는 건 정말 멋지기도 하지만 아프기도 하네요...
 
[eBook] 길상문연화루 - 상 길상문연화루 1
텅핑 지음, 허유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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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층자리 목조 누각으로, 전체가 나무이며, 화려하고 정교한 연꽃과 구름 문양이 사방에 조각되어 있는 길상문연화루. 수레에 얹어 이동할 수 있는 '집'인데, 요즘식으로 말하면 캠핑카 정도가 되겠다.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집의 주인은 바로 죽은 사람 둘을 살렸다고 신의로 이름 난 이연화였으며, 그의 이력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스승이 누구인지, 무공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나이는 몇 인지 아는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는 6년 전에 나타나 결투에서 중상을 입고 죽은 호수궁경 시문절을 되살렸고, 절벽에서 추락해 전신이 골절되어 죽은 철소대협 하란철을 살려냈다. 이 두 가지 일로 인해 그는 강호의 전설이 되었다.


작은 마을인 병산진에 이 '길상문연화루'가 나타나자, 학행표행의 우두머리인 정운학은 이연화를 찾아왔다. '푸른 창의 살인귀'의 시작이었다. 무공도 모르고 몸도 약한 이연화는 소면객잔에서 있었던 일을 듣게 된다. 학행표행이 운송하던 궤짝 안에서 무림 옥성 성주의 딸인 옥추상의 시체가 나왔고, 그로 인해 화가 난 옥성 성주인 옥목람이 옥추상의 호위 무사들에게 모조리 자결을 명했으며 궤짝을 운송하던 학행표행 사람들을 죄다 죽여버리라고 했다고 한다. 정운학은 영문도 모르고 벌어진 일 때문에 일단 살고자 이연화를 찾아 온 것이다.


이 일은 삐쩍 마른 서생 같은 대공자 방다병과 함께 해결하게 된다. 옥성으로 간 그들은 옥추상을 살리러 왔다고 하면서 함께 조사를 시작하는데... 가족이라는 말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지 참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이연화는 더더욱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은 그의 바람은 달리 말이다. 


십 년 전 상이태검 이상이는 사고문을 세웠고, 천하에 이름을 날렸으며, 사교인 금원맹 맹주 적비성과의 결전에서 실종되고 말았는데, 이후 사고문은 해체되었으나 사고문이 설치한 형당인 '불피백석'(백천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기한불, 운피구, 백강순(백아), 석수로 이루어진 이 조직은 강호의 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십 년 전 금원맹을 소탕하면서 적들을 가둔 감옥이 무려 188개나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인 '일품분'은 전대 황제인 희성제의 황릉으로 비밀을 간직한 곳이었다. 무림에서 이름을 떨치던 사람들이 상체는 바짝 마르고 하체는 퉁퉁 부은 시체로 발견되자 관과 백천원이 함께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역시 이연화는 특유의 기민함으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와해되었다 생각했던 금원맹은 끈질겼고, 사건들은 각각인 듯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파사보가 나타났다. 파사보는 미종보법 가운데 으뜸으로 사고문 문주 이상이만이 구사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파사보가 아닌 것을... 


세 번째 사건은 혼례복 살인 사건으로, 이 사건에서 이연화는 곱고 화려한 혼례복을 입어보게 된다. 채련장이라는 장원에는 연꽃들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곳이었는데, 삼십 년 동안 세 명의 부인들이 죽어나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혼례복을 입고 죽었는데, 그 죽음이 참으로 기이하였다. 그리고 우리 이연화는 또 멋지게 이 사건을 해결한다. 연꽃은 아름다우나 그 꽃을 보는 이들은 모두 제각각이라 억울하게 죽은 이만 불쌍하여라...


네 번째 이야기는 보도사와 관련 있는 사건이다. 보도사 주지 스님인 무료 스님은 이연화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연화가 사고문 문주 이상이였다는 사실도, 이상이의 삼경이 상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조만간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무료 스님은 이연화를 설득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불이 나고, 백천원과 보도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하통로에는 기름에 튀겨진 사체가 발견되고, 이연화와 불피백석이라는 인연들이 만나게 된다. 


십 년 전 벽차지독은 너무나 참혹했고, 사고문 사형제들은 함정에 빠졌고, 이상이는 홀로 악전고투 끝에 실종되었다.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인연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끊임없이 비질을 하는 이연화는 공력이 흩어져 더 이상 진력으로 먼지를 떨어내지 못하고, 오는 비를 그저 맞아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고, 금원맹의 배의 잔해로 만든 길상문연화루는 그저 그 날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연인이었던 교완만의 결혼은 이상이의 인연을 하나 더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우스개소리처럼 하는 "내 아내는 재가했어"란 말은 사실 허튼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연화가 하는 수많은 허튼소리들은 정말 허튼소리 같지만  사실 늘 진실한 말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과연 이연화는 미치기 전에 벽차지독을 해독하고 공력을 되찾아 이상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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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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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약속은 믿을 수 있는가?


여우는 영물이다. 삼족오가 그렇듯 여우 중에 구미호 역시 장수하며 상서로운 존재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주 불길하고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보면 여우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몇 편 있는데, 가장 긍정적인 모습은 원광 법사를 도왔던 여우 이야기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로는 비형랑이나 백제 멸망 때 좌평의 책상 위에 올라간 여우 이야기 등이 있다. 어쩌면 여우 특히 구미호는 여우의 특기인 둔갑술과 가공할 능력 때문에 두렵고 믿지 못할 존재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봉신연의>에 나오는 달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된 것이 더 큰 이유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역사 속 문헌에 여우각시담 같은 이야기류는 거의 없다. <천년 묵은 여우와 팔백이>가 있기는 한데 그 이야기는 <지네각시>와 유사하여 지네가 여우로 변형된 것이 아닌가 싶고, <금강산의 괴호>는 여우각시가 아니라 천상계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제압할 수 없는 강력한 여우 산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남자를 사랑하여 금기를 주고 그 남자와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인간이 되길 원한다는 구미호 이야기는 20세기 드라마 이야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 이야기 역시 그 이야기에 바탕을 두지만 보다 더 범접하기 힘든 여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버스를 탔고, 말을 걸고 싶은 여자를 만났고, 여전히 말을 걸지 못하다가 그녀에게 간택 당한다. 왜 그는 살 수 있었을까? 그녀는 왜 그를 살렸을까? 그건 사랑이었다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를 위해 100% 자신을 다 던질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수줍게 청혼하고, 저도 모르게 상견례를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할머니를 만났다. 


이 이야기의 진짜는 할머니와 지은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 혹은 '나'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다. 조상신과 구미호의 대결이라고나 할까. 앞서 이야기 한 <금강산의 괴호>에서 여우 산신은 지상에 있는 신들이 이길 수 있는 신이 아니었다. 그러니 조상신, 저승신인들 구미호를 이길 수 있을까. 구미호의 천적은 삼족구로 다리가 셋 달린 개다. 할머니는 삼족구를 불러들여 구미호를 제거하고자 한다. 할머니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내 눈에 할머니가 가부장제로 보이는 건 착각인걸까.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사랑일 것이다. 오랜 시간 인간 세상을 거니는 구미호가 굳이 굳이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이가 당신이라서, 같이 있어서 행복해서, 당신을 사랑해서...


'그'이자 '나'인 최기준은 그녀와의 모든 약속을 저버렸다. 못 믿을 것이 인간의 약속이라, 자신의 전부를 다 준다는 말도,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모두 잊어버렸다. 인간에게 삼도천을 지나고 기억을 지워주는 차 따위를 마셔도 기억해 낼 수 있는 세기의 사랑 같은 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은 나약하고 수명이 짧고, 미련이 넘쳐나니까. 사랑의 도피를 생각하다가도 유교 사상 중 효 앞에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 자신을 구하기도 벅찬데 다른 사람까지 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기준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지은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기준에게 지은은 삶을 구원해 준 구원자이기도 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면 될텐데 애초에 그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그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잡을 수 있을까. 존재의 다름조차 사랑스러운 그녀를, 자신이 잊어버린 그녀를... 그런데, 구미호는 왜 기준을 선택한 걸까. 그래서 사랑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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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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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창 논란이 된 사건이 있다. 한 대형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가 철근을 빼 먹어서 무너져 내린 것. 그런 까닭으로 그 건설사는 '순살자이', '뼈 없는 아파트' 등의 조롱을 들어야 했고, 소비자인 우리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년인가 재작년에도 짓고 있던 아파트가 무너져 현대건설 측에서 철거하고 다시 짓는다고 했다. 수십 층에 달하면서 수천 세대의 사람들이 살아야 할 곳이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지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닌가.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정도 답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는 '도덕적 해이'나 '책임 회피', '무사안일주의', '비겁한 변명으로 점철된 자기합리화' 등이 이야기 곳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관리자로 나오는 소장은 야비하기 그지없게도, 다른 사람의 생계를 손에 쥐고 그들을 휘두른다. 자기 주머니에 한 푼이라도 더 넣기 위해 작업반장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가장 약한 고리인 이들을 착취한다. 작업반장들 역시 어쩔 수 없이 휘둘리고, 소장 밑에 있는 한 대리도, 작업 기사인 현경도, 베테랑인 목 씨 아저씨도, 갈 데 없이 몰려버린 선길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의 공사현장에 얽힌 이들은 수없이 많다. 관공서 뿐만 아니라, 수주 받은 건설사, 하청 받은 업체들, 인력공급업체들, 현장마다 딸린 함바집들 등등 말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무사안일주의와 책임회피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이렇게 얽힌 이들이 어떤 때는 익명성을 띄고, 어떤 때는 단체성을 띄면서 각자 져야 할 책임에서 등을 돌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등은 따뜻하면 좋겠고, 자신의 일에 책임은 지기 싫은 그런 마음들 말이다. 


관료제의 단점이 극대화 되어 감독을 해야 할 기관이 불법에 눈을 감고, 사고가 나면 그제서야 책임 지울 곳을 찾아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사리에 맞는 일일까. 얽혀버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명도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것은 개인의 도덕성의 문제만일까.


어느 새 우리 삶 깊숙이 자리잡은 빌어먹을 그 '돈'이, 입고 먹고 살고 행복하려고 버는 그 '돈'이 우리의 삶을 도리어 구속하고 양심의 소리 앞에 귀 먹게 만들었다. 가진 자든 덜 가진 자든, 관리자든 비관리자든 만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돈' 그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얻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돈 앞에 인간성을 내려놓다가도 단 한 명이라도 돈을 내려놓기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관리자라고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기에 여기 나오는 소장 역시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소장이 오기 전 일을 맡았던 회사는 잘못을 인정했다가 파산했다. 어떤 현장이든 수칙을 잘 지킨다하더라도 사고가 날 수 있고,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수 한 번에 다시 일어설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소장이 잘 했다는 것도, 사고가 난 현장이 잘못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괴물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제도나 환경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느냐, 사적인 복수를 하느냐, 보다 나은 현장을 만드느냐를 개개인의 도덕성이나 인격에만 맡길 수는 없으니까. 우리 사회가 성인군자를 키우는 곳은 아니니까. 그렇게 키우고 싶다고 키워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현경의 선택에 그나마 속이 풀렸으나,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현경이 끝까지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선길의 아내는 어떤 선택을 할까? 소장은 살면서 후회하지 않을까? 목 씨 아저씨는 다음 번에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사회 경험이 없던 한 대리는 이제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을까? 소장은 관리자의 자질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볼까?


인간은 경험에서 배우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경험들이 보다 인간적이고 상식에 맞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새벽이 깊어 갈수록 선길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날이 밝는 것, 무엇이 있는지 모를 시커먼 산에 다시 빛이 비치고 사람들이 와서 사무실에도 다시 전등이 켜지고 식당에 밥짓는 김이 솟아 창문 없는 방 같은 이 밤에서 벗어나는 것. 하지만 그럴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어둠은 가뭇없이 짙어 가기만 했다. - P32

목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냐. 자기를 중심에 놓는 거지. 나한테 이로운 걸 하는 건 남도 그럴 수 있다는 거지만, 날 중심에 놓는 건 남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거거든. 그건 다른 소리야."
현경의 얼굴에서 옅은 웃음기가 사라졌다. 목 씨의 말이 턱 걸리는 느낌이었다. 별것 아닌 별일은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길을 마주칠 때마다 머뭇거리거나 피한 것이라고, 께름칙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사람들이나 상황에 탓하고 미루려 하기나 했다고. 별것 아닌 일도 못한, 별것 아닌 자신을 감추고 잊어버리려. 현경은 조금 전 은연 중에 자기를 변호하려고 했던 것까지 포함해, 자신이 아주 작고 하찮은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싫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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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6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순살치킨을 안 좋아합니다…..(응?)

꼬마요정 2023-07-16 18:30   좋아요 1 | URL
통닭은 뼈닭이 맛있긴 하죠. 전 날개를 좋아합니다 ㅎㅎ 순살은 편해서 가끔 먹어요. 순살치킨은 죄가 없어요!!!!

미미 2023-07-16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하주차장은 물이 새서 백숙자이라고 하더군요.
철근을 빼먹어도 너무 빼먹어서 인명피해없이 걸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층간소음도 그렇고 국토교통부가 원흉인데 장관부터가....어휴

꼬마요정 2023-07-16 18:32   좋아요 1 | URL
아이고 백숙자이… 진짜 입주한 뒤에 사고 났으면 어쩔 뻔 했어요ㅠㅠ 주차장, 층간소음 등등 돈이 얼만데 제값을 못할까요. 국토교통부 정신 차려야죠ㅜㅜ 정신.. 차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