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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시절
강소영 지음 / 담다 / 2025년 6월
평점 :
가족은 가장 가깝기에 소중한 줄 모르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그리고 소중하기에 두서없이 뱉어내는 감정들을 받아주고 도닥여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같이 분노하지만 또 어떤 때는 속에서는 천불이 올라오는데도 겉으로는 다정하게 위로하곤 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이겠지.
올해 상반기는 막내동생에게 그닥 좋지 않았다. 나와 둘째는 울 막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인 줄 몰랐더랬다. 인생에서 시련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 아이는 그 시련 앞에서 맥을 못췄다. 쉴새없이 오는 전화와 카톡을 받아주며 그렇게 버텼다. 지금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 다행히 많이 좋아졌는데, 정말 오랜만에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더랬다. 힘들었지만,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나는 받아주겠지. 내 동생이니까.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그들도 내가 힘들 땐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사랑하는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성실하고 우직하게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와 다정하고 야무지게 가족을 건사한 어머니는 처음부터 부부가 아니었고 부모가 아니었다. 완전 남으로 살아가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호사스럽게 살 수는 없어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알뜰하게 번 돈을 잘 투자해 아파트로 이사한 그들 앞에는 빛나는 미래만 있을 줄 알았더랬다. 세상은 결코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만 하던 아버지 갑천 씨에게 선고된 병명은 평생을 갑천 씨와 오붓하게 가정을 꾸려오던 어머니 혜옥 씨와 남매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절망은 그 자체로 슬픔이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함께 절망을 견뎌 낸 가족은 그리움을 안고 또 다른 인연을 맺으며 서로를 잊지 않고 사랑을 전한다. 소영 씨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흔히들 부모님의 희생으로 자식이 큰다고 하지만 갑천 씨와 혜옥 씨는 희생을 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자녀들에게 전했던 거였다. 서로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들의 삶을 사랑하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혜옥 씨의 딸과 아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또 자신들의 꿈을 향해 달려갔다. 때론 싸우고 때론 다정하게 그렇게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밀려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사랑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그저 좋기만 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상대의 단점조차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가족이기 때문에 단점조차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곤 한다. 그러면서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가족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 더 견고한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사랑이 슬픔이 되던 순간을 마주한 소영 씨는 이제 치유가 되었을까. 슬픔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를 돌아본다. 사랑이라는 시절이 온전히 기억되기를, 아프지만 웃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