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빛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5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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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자기 악보의 특정한 악절들 옆에 schwer(슈베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어렵다'는 뜻이다.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44-45쪽)


'슈베어'와 '워라이트(warlight)'는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너새니얼의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발령이 났다. 아직 십 대인 레이철과 너새니얼을 집에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간다고 했다. 대신 보호자로 '나방'이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는데 부모님이 떠난 집에 '나방'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워라이트'는 전쟁 때 도시가 정전된 시간 동안 비상용 차량들을 안내하던 흐릿한 불빛을 의미한다.(105쪽 각주) 독일 폭격기가 영국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트리는 동안 영국은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불빛은 공격 대상이었고 사람들은 불을 꺼야만 했다. 그리고 화약 등을 나르기 위해 밤길을 이용했던 요원들은 아주 희미한 불빛에 의지한 채 달려야 했다. 이는 너새니얼이 자신의 어머니인 로즈의 삶을 추적하는 것과도 비슷했으며 자신의 삶이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나방, 화살, 올리브, 아서, 애그니스의 삶을 추적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는 일, 어머니가 하는 일, 그들이 어디 있는지, 나방이나 화살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말이다. 부모가 곁에 없는 동안 너새니얼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주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그리고 애그니스를 만났다.


스파이를 다룬 소설들은 많다. MI6나 CIA, 모사드, KGB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달랐다. 스파이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안개에 쌓인 듯 모호했으며, 수많은 상처와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그가 온다면 잉글랜드 남자 같을 것이다...

내 죄는 여러 가지야. 


로즈는 돌아온 뒤 저 두 문장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하던 로즈. 이엉장이 막내 아들이나 체스 천재 이야기를 하던 로즈. 팔에 있던 흉터만이 어쩌면 진짜 그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워라이트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가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 안다고 믿지만 어떤 상황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로즈는 레이철과 너새니얼을 구하려 했지만 길은 어긋나 버렸다.


너새니얼은 레이철과 달리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양이를 잊어버렸던 것처럼 자신을 상처주는 일들을 외면했던 걸지도 몰랐다. 나방과 화살과 올리브가 준 관심과 사랑이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너새니엘 앞에 있는 '슈베어'들을 치워줬기 때문일지도. 이제 너새니얼은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자신이 외면한 진실을 깨닫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인지도.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며 선택하고 슈베어를 만나고 후회하고 다시 선택하고... 가지 못한 길은 늘 마음에 남고 '힘든 일'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고 흐릿한 빛 속에서 아름답던 것이 사실은 무거운 과거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만다.

말러는 자기 악보의 특정한 악절들 옆에 schwer(슈베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어렵다‘는 뜻이다.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 P44

그가 온다면 잉글랜드 남자 같을 것이다...
"누가 어머니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만약 내가 알았다면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끔찍한 짓을 하셨기에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내 죄는 여러 가지야."라고.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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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1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이로 사는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닐 듯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식구가 있다면 더...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해야 했던 걸지, 어떤 신념이 있어서 한 걸지... 자기 마음을 잘 모르고 하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희선
 
강변의 조문객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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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홉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 <변신>은 고딕서가에서 출판한 책인 <공포, 집, 여성>에도 실린 이야기이다. <변신>은 돌아온 탕아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과 <나귀 가죽>이나 <카사노바의 귀향>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였다. 탕아와 사악한 난장이의 계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저러나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약혼녀 줄리엣일텐데, 이런 18, 19세기 유럽 상황 너무 화가 났다. 


표제작인 <강변의 조문객>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불이 나서 곧 가라앉을 배에서 클라리스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사랑하는 아버지를 두고 구조배에 올라야 했을까. 한없이 쌓이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그녀는 숲 속에서 외로이 살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네빌은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얻었고, 그녀가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었다. 누구의 간절함 때문일까. 서로의 소식은 결국 서로에게 닿았으니, 짧은 인연이나마 아름답게 갈무리 하기를. 조선시대 때 부모를 여읜 사대부가의 아들이 겹쳐졌는데, 조선시대가 '효'를 중시하였다면 이 이야기의 클라리스는 종교적 사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유프라시아> 역시 안타까웠다. 영국인인 발렌시가 그리스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하기로 한 건 단순히 모험 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그리스 군대를 만나고 대장인 콘스탄틴을 만나 튀르크 군과 싸우면서 전투가 단순히 모험으로 치부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군다나 콘스탄틴이 튀르크 군에게 잃은 여동생인 유프라시아의 이야기는 너무 절망적이었다. 죽음 앞에서 듣는 이야기는 더 엄숙했으며 처절했다. 


<폴란드인의 사랑>은 보다 정치적인 음모가 가득한 이야기였다. 러시아에게 조국을 강탈당한 폴란드인 라디슬라스는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 황녀인 대시코프 황녀를 만났고 황녀의 소개로 이달리에를 만났다. 이달리에는 우연히도 라디슬라스가 구해 준 마리에타의 언니였고, 마리에타를 괴롭히던 남자는 오빠인 조르조였다. 사랑에 빠진 라디슬라스와 이달리에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모와 배신, 모략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순례자들>은 회한에 가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노에 휩싸여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그는 뒤늦게 딸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미 딸의 소식은 들을 수 없게 된 터였다. 그리고 찾아 온 순례자들. 그들의 정체는 그 남자로 하여금 신을 찬양하도록 했다. 모든 은원이 다 해소된 아름다운 결말의 이면에는 참회와 용서가 있었다.


<순례자들>이 회환에 빠진 나이 든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꿈>은 원수 집안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어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앙리 4세가 종교전쟁(위그노 전쟁)을 끝내고 왕위에 올랐을 때, 콩스탕스 가문과 가스파르 가문은 원수가 되고 말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결국 가문에는 콩스탕스와 가스파르만이 남았는데, 콩스탕스는 자신의 연인이 원수라는 사실에 절망하여 수녀가 되기를 원했다. 앙리 4세는 자신의 기사인 가스파르가 콩스탕스와 행복해지길 바랐으므로 그녀를 설득하려 했고, 가스파르 역시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시 속세로 데려오고자 했다. 그리고 '카타리나의 침상'이 모두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소녀> 역시 절망에 빠진 연인이 등장한다.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잃게 된 헨리와 로지나가 어떻게 망망대해에서 배의 길잡이가 되는 탑의 불빛을 만들어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탑과 '보이지 않는 소녀'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화자에 따르면 무조건 사실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악마의 눈>은 <순례자들>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과거의 원한이 드미트리를 '악마의 눈'이라고 불릴만큼 잔혹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딸을 찾지 못한 채 과거의 원한을 곱씹으며 파괴를 일삼는 그에게도 형제 같은 친우가 있었으니 카투스티우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역시 성격이 좋지는 못했으나 결국 그를 딸에게로 이끌었으니 인연이란 참으로 신비롭다고 할밖에.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는 정말 웃픈 이야기이다. 멍청한 조수가 연금술사 스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불사의 약 절반을 삼켜버렸으니 말이다. 스승은 죽기 직전에 한 번 더 그 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끝내 먹지 못했다. 윈지는 그 약이 사랑의 영약인 줄만 알았더랬다. 그래서 사랑하는 버사와 영원할 거라 믿었건만 늙지 않는 육체는 그 사랑마저 빛바래게 했으니... 그래서 그는 불멸할까, 필멸할까.


모든 이야기에는 화자가 있고, 그 화자는 대부분 남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여자의 이야기이며 아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첩된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답게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도는 이야기들도 많다. 종교적 전설이나 설화 등을 적절히 활용했으며 결말이 행복하다고 하여 그 앞에 일어난 슬프고 끔찍한 일들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참회하고 용서한 이에게는 그에 합당한 결말을 주었으니 만족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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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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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단 한 번도 미움받지 않거나 실수하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겐 선인이 될수도 있지만 악인이 될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생각이 깔린 채로 시작한다.


내향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빈승은 어느 날 목소리를 듣게 된다. '미미'는 그에게 복권을 사게 하였는데 그 복권이 당첨 되어 빈승은 가게를 차리게 된다. 마치 꿈에서 조상님이 로또 번호를 불러줬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조현병이 복권도 당첨될 수 있게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로 미지의 존재가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 존재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일지도. 


뱅상 식탁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폐쇄적인 레스토랑이다. 4개의 식탁이 있고, 각 식탁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모든 식탁의 소리는 주방으로 흘러들어간다. 빈승은 손님들이 폐쇄적이라고 믿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녹음한다. 손님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어 식당 입구에서 빈승에게 폰을 맡겨야만 했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여자 손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연인끼리 데이트를 한다 해도 여자가 있고 불륜이라도 여자가 있고 친구끼리 온다면 여자친구들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남자들끼리 폐쇄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는 경우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빈승 역시 마찬가지 의문을 가졌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라면 너무 편파적이고 지엽적인 환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미는 의뢰인이 이 실험을 원하다는 말로 이 실험을 강행했다. 과연 이 실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책을 읽을수록 밀그램의 전기 고문 실험이 떠올랐다. 권위에 복종하는 그 실험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문제를 틀렸을때 전기 고문 버튼을 누르게 한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전기 고문 버튼을 눌렀다. 조금 결은 다를 수 있지만 빈승은 자신을 과대평가해 준 미미가 시켰기에 비이성적인 행동임을 알면서도 그 일을 자행한다. 


각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위선이나 뻔뻔함이나 거짓 같은 추악함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감정적으로 잠식당한 사람이 어떻게 조종당하는지도 볼 수 있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상황에 휩쓸리다가 희생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말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하필 살아남아 제일 득의양양한 사람이 그 사람이라니. 책을 다 읽고 동생에게 이러이러한 사람이 승리하는 내용이라고 했더니 동생이 바로 "난 읽지 않겠어." 란다.


나와 동생들에겐 나름 발작 버튼이니까.


그들 중에 과연 죽어야 할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찌른 사람의 죄의 형량이 죽음이라면 찌르도록 교묘히 유도한 사람의 형량은 얼마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가면을 쓰고 선한척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합리화를 하면 자신이 선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걸까. 


다시금 나는 누구에게 악인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악인은 몇 있는데 그들에게도 나는 악인일까,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악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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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4-0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남자끼리만, 여자끼리만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처음부터 서로서로
그저 가까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성별을 안 끼운다고 말씀하더군요.

꼬마요정 2025-04-07 13:04   좋아요 0 | URL
오 요새는 남자끼리만 가기도 하는군요. 예전엔 남자끼리 영화도 같이 안 보고 레스토랑 같은 데 같이 안 가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늘 귀기울여야겠어요^^
 
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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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스테판 브라이트비저가 이 작품들을 어떻게 훔쳤을까란 생각을 했다. 얼마나 간이 컸으면 전시되어 있는 조각상을,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진열된 유물들을 그렇게 태연하게 가져갈 수 있었을까. 손바닥만한 크기부터 1미터 가까이 되는 석상들까지 브라이트비저는 여자친구인 앤 캐서린과 함께 도둑질 했다.


그렇게 훔친 작품들은 다락방에서 오로지 두 사람만이 즐길 수 있게 전시되었다. 갖고 싶은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고 훔쳐내서 그 예술품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브라이트비저는 진작에 병원에 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는 예술 작품을 사랑한다기보다 갖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훔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예술을 좋아했기에 예술품을 훔친 것이다. 그가 돈을 좋아했다면 돈을 훔쳤을 것이고, 라면을 좋아했으면 라면을 훔쳤겠지. 


누구나 훔치고 싶을만큼 갖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두가 그것을 훔치지 않는다. 훔치는 행위가 구체제에 저항한다거나 자유를 지향한다거나 하는 의미를 가져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러니 무언가를 훔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대리 만족한 후 브라이트비저의 결말을 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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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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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이겼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이야기는 히틀러가 승리한 독일과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금 다행히도 일본은 여전히 패배한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의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일지 생각만 해도 좋을 것 같지 않다.


1964년, 여전히 총통인 히틀러는 75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독일은 극적으로 성사된 미국의 조셉 케네디 대통령이 자신들을 방문할 계획에 맞춰 행사 준비에 들떠 있다. 그 와중에 크사비어 마르크는 하벨 호숫가로 떠밀려온 시신을 조사하게 된다. 하필 그 시신이 나치 고위 간부라는 것이 밝혀지고 마르크는 자신보다 상위 기관인 게슈타포에게 사건을 넘겨야 했다. 하지만 마르크는 사건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인 기자 샬럿과 함께 사건을 추적하며 엄청난 음모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데...


나는 역사를 알기에 처음엔 도저히 추리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런 고위 간부들이 죽어야 했을까, 게슈타포는 무엇을 덮기 위해 움직였을까... 역사를 알기에 바로 맞출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맞추기 어려웠다. 사실 처음부터 단서는 대놓고 주어졌다. 주인공인 마르크가 체제에 순종하지 않게 된 이유와 맞닿아 있었으니.


어떤 사건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수많은 국제 범죄들이 집행자의 명령에 따라 은닉될 때에도 피해자들이나 사건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노력으로 사건을 세상에 알린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증거들이 있어도 부인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전쟁 성노예 문제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문제일테고. 지금도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는 잔혹한 범죄들이 일어나고 부인당한다. 위구르 지역이나 가자 지구 같은 곳에서 말이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을까.

 

이 세계 속 독일인들은 소설 <1984>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간다. 당연히 계급이 있고, 이는 인종으로 정해졌다. '순혈보호법'에 의해 인종 간 성관계는 범죄였고, 동성애나 임신중지 역시 모두 불법이었다. 하지만 간질 등의 질병을 알았거나 유전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불임인증서를 받은 후에야 결혼할 수 있었다. 총통의 생일 때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반체제 인사처럼 여겨졌고, 도청은 당연했으며, 어디에나 감시의 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불합리를 깨닫고 의문을 품으며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1984>가 비록 그렇게 끝났지만 윈스턴이 그러했듯 다른 이들도 체제에 반항할 것이고 점점 그 숫자는 늘어갈 것이다. 어쩌면 권력이 교체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삶은 유한하고 꽃은 피면 시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그 나라를 '나'의 조국이 아닌 '당신들'의 조국으로 보는 이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올해 1월이 따뜻해서 봄이 빨리 올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2월에 엄청난 추위가 닥쳤고 600도의 법칙에 따라 벚꽃은 빨리 피지 않았다. 강추위가 물러나는가 했더니 꽃샘 추위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났다. 그리고 이제 꽃들이 피었다. 봄은 올듯 말듯 더디지만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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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05 0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세상이 오지 않아 다행이네요 그저 소설일 뿐이어서... 독일 사람만 살기 힘들지 않았겠습니다 한국도 별로 안 좋았을 듯하네요 그저 상상일 뿐이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이런 세상이 오지 마란 법은 없겠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지요


희선

꼬마요정 2025-04-07 00:07   좋아요 0 | URL
정말 상상이라서 다행입니다. 히틀러가 승리한 세상이라니 너무 끔찍합니다. 앞으로 이런 세상이 오지 마란 법이 없단 걸 우리는 이번에 확실히 알았잖아요. 정말 정말 이런 세상이 안 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