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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1월
평점 :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인상깊게 읽었더랬다. 황모과 작가는 그 이야기를 오마주하여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썼다고 했다. 한 아이의 희생으로 번영하는 세상에서 그런 세상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오멜라스를 떠난다. 오메라시는 오키나와의 남쪽 끄트머리 어딘가라고 한다. 도쿄에 만화를 그리기 위해 온 '나'는 무뚝뚝한 옆집 할머니에게 아들이 오메라시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완강하게 거부하는데 왜 그럴까...
'나'는 일본어에도 익숙해져 오메라시를 검색했다. 오키나와가 아닌 다른 곳도 찾을 수 있었는데, 오키나와의 오메라시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이 오메라시는 괴담의 장소였다. 터널을 메우고 그 위에 거대한 도시를 세웠는데, 그 터널에 사람이 남아 있었고 그 사람이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사를 끝내버린 뒤 밤마다 터널에서 사람 비명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오메라시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했다. 오메라 신사도 가고 동물원의 라쿤 소리와 비명 소리를 비교한 영상도 올렸다. 할머니가 살던 오메라시에도 학살의 역사가 있었다. 히메유리 학도대 사건으로 평범한 여중생 200명이 종군 간호사로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종전 직전 격전지에서 해산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폭격과 자살 집단 종용으로 모두 죽었다. 오메라시 터널에 갇힌 사람과 집단 학살을 당한 오메라시 여중생들은 슬픈 역사로 서로에게 맞닿아 있고, 할머니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 내에서 이방인이 된 할머니와 피폭 3세인 '나'가 함께 안고 있는 학살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 와 원폭의 피해자가 된 외할아버지는 피폭이 됐음에도 히로시마를 복구하는 데 동원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 식민지인들의 피해는 모른 척 한다.
<시대지체자와 시대 공백>은 왜곡된 역사가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을 그리고 있다. 사실 그들은 시대지체자가 아니라 시대를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이 아닐까. <순애보 준코, 산업위안부 김순자> 역시 왜곡된 역사를 현실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속아서 일본으로 끌려 간 이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 선택해서 매춘한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식으로 기억을 조작하는 이들은 전범 기업 미쓰마루 탄광 기업의 자회사인 아소후토 연구소였다. 피해자들의 기억을 왜곡하여 순애보 준코를 만들어 버린 그들의 후안무치함에 치가 떨렸다.
<타고나 시절>과 <나의 새로운 바다로>는 아이 한 사람을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스스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게 된 인류는 이제 스스로 성장해야만 했고, 죽은 딸의 뇌를 로봇 벨루가에게 이식한 엄마는 '벨카'를 벨루가들 공동체로 독립시켜줘야만 했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를 자라게 하고, 아이의 독립은 엄마의 사랑을 빛나게 했다.
<스위트 솔티>는 모두가 난민이 되어버린 세상을 그리는 듯 했다. 엄마의 나라 '바다의 거품'에서는 글을 읽고 쓸 줄 알거나 안경을 쓰면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다. 빙하는 녹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다. 난민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다시 만나지곤 했다. '달콤짭쪼름한' 무티하라는 어디서는 스스로 이방인이 되었고 어딘가에서는 토착민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빙하는 모두 녹았고, 인류는 모두 난민이 되었다. 부산에서 그들은 희망을 찾아 우주로 떠날 수 있을까.
<브라이덜 하이스쿨>은 처음엔 마그리드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의 한국판 같은 이야기에 주인공이 빙의된 줄 알았다. 하지만 수빈은 수면형에 처해졌다 노파 가죽을 뒤집어 쓴 채 허드렛일을 하는 형벌을 받은 거였다. 여자들은 요조숙녀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고, 브라이덜 하이스쿨을 졸업하려면 남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일부다처제에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은 어릴 때 호르몬 조절기를 몸에 삽입한 채 남성의 욕구에 순응하는 존재로 키워졌다. 그곳에서 수빈은 '이야기'로 그녀들을 각성시켰다. 무시무시한 디스토피아가 아닐 수 없었다.
<여행이 다시 찾아옵니다>는 팬데믹 시대에 여행을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여행을 다니는 로봇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면 앞으로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면, 그래서 더 이상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된다면 이런 서비스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찾아오는 세상, 이 세상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