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지막 주문>이란 책을 주문하고 읽게 되었다. 왜인지 몰라도 이 책이 추천마법사에 떴고 '오늘은 보통날하고는 다르다.'는 문장이 끌렸다. 친구의 유골을 뿌리러 가는 친구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궁금했다.
잭의 친구들은 잭이 유언한대로 그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기 위해 함께 했고 그 단 하루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하루에는 그들이 함께 했던 과거가 들어있었다.
정육점 주인인 잭 도즈가 죽은 후, 친구들인 보험회사 직원이이자 행운아인 레이 존슨, 가난한 청과물상인 레니 테이트, 장의사 빅 터커와 잭의 양아들인 빈스는 단골 펍인 '코치 앤 호스(마차와 말)'에 모인다. 그들은 잭의 마지막 주문을 들어주기 위해 마게이트로 향한다.
왜 제목이 마지막 주문일까. 죽음을 앞둔 사람의 부탁은 'order'가 되나보다. 명령에 가까운 주문일테다. 잭은 에이미와 신혼여행을 갔던 마게이트의 잔교에 자신을 뿌려달라 했다. 에이미는 이 여정에 동참하지 않았다. 관계 회복을 꿈꾸던 잭과는 달리 에이미는 이미 그에게서 마음이 떠났다. 한때 둘은 사랑했으나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딸인 준이 태어나고 끝났다. 잭은 준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에이미는 잭이 아닌 준을 선택했다.
레이와 잭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해외에 주둔했던 부대에서 만난 전우다. 잭은 레이를 운이 좋아 '럭키'라고 불렀는데, 레이는 경마로 곧잘 돈을 벌기도 했다. 그래서 잭은 죽기 전 그에게 천달러를 맡겼다. 돈을 불려 에이미에게 주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잭과 레이 둘 외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준이 요양병원에 가고 잭이 단 한번도 딸을 찾지 않는 동안, 에이미를 병원에 데려다 준 건 레이였다. 레이가 가지고 있는 캠핑카는 그들의 밀회 장소가 되었다. 첫사랑이었던 에이미와의 관계는 빈스가 돌아오면서 끝났다. 둘 모두 그들이 꿈꿨던 가족의 모습이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빈스는 전쟁 당시 폭격으로 집이 무너져 집과 부모를 잃었다. 그런 그를 잭과 에이미가 입양했고, 빈스는 늘 자신이 준을 대신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정육점을 잇지 않고 군에 자원해 해외로 파병을 가 버렸다. 레이의 딸인 수지는 외국인과 사랑에 빠져 레이를 떠났고, 레니의 딸 샐리는 레니의 반대로 빈스와 헤어진 뒤 미친놈이랑 결혼했고 남편은 교도소에 있다. 그나마 빅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장례업을 함께 한다.
마게이트로 가는 여정에서 빈스는 갑자기 해군추모비를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행복한 기억이 있는 윅 농장에 가기도 한다. 가는 길에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에 들르기도 한다. 모두 각자가 가진 잭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곳들을 거쳐 마게이트의 잔교에 도착한다.
시간은 무정하게 흐르고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사이든 틀어진 관계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운이 좋은 일이다. 잭은 에이미와 노후를 함께 하고 싶어했으나 죽어버렸고, 빈스가 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할 때 죽어버렸고, 레이가 돈을 몇 배로 불렸을 때 죽어버렸다. 잭 세대의 사람들은 전쟁을 경험하고 무너진 마을을 재건하며 치열하게 살았고, 다음 세대인 빈스 역시 윗세대와는 다른 어려움을 견디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세대를 거치며 사람들은 서로를 기억하며 서로가 남긴 유산을 기리며 그렇게 역사를 쌓아간다.
표지가 무척 도발적이어서 막 끌렸다. 그런데 내용은 도발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탄크레디가 주인공이었다면 좀 더 극적인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19세기 중엽 가리발디가 조각 난 이탈리아를 하나의 공화국으로 통일하기 위해 전쟁 중인 시기에서 시작한다. 시칠리아의 대귀족 가문의 수장인 돈 파브리초 살리나는 변화하는 시대에도 자신의 것을 유지하려면 변해야함을 알았다. 자신을 우아하고 세련된 표범 같은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살리나는 신흥귀족이든 자본가든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을 하이에나라고 생각했다. 고귀하고 품위있는 세대는 자기 세대에서 끝이고 설령 그 권력과 영광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재가 되는 그 순간까지 품격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조카인 탄크레디가 가리발디 군대에 합류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본 살리나는 탄크레디가 미래를 이끌 세대라고 확신하고 그를 놓아준다. 자신의 딸이 아닌 새롭게 부상한 부호인 돈 세다라의 딸 안젤리카와 결혼하는 것도 허락했다.
영광이 빛을 잃고 이젠 지나간 이야기로 회자될지언정 고고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그렇게까지 지키려는 것이었을까. 가문의 고귀함? 권력?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게 될 것인데. 아마 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계급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체제 자체가 변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주인과 하인이라는 위치는 계속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문의 마지막 안식처인 교회마저 넘겨줘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느낌일까 했는데 아예 다른 이야기였고, 결국 몰락해가는 가문의 끝에서 수장인 영주가 담담하지만 우울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극적이지는 않았다. 좀 더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당연히 그러리라는 나의 편견일까.
그리스 신화에서 프시케는 아프로디테가 준 임무를 수행하고 신의 반열에 오른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이후 긴 여정 끝에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다. 프시케나 오디세우스는 아예 다른 인물이지만 어떤 여정을 겪은 후에 무언가를 얻게 된다. <마지막 주문>의 레이 등 친구들과 빈스, <표범>의 살리나는 주어진 여정 끝에 무엇을 얻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