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온 종소리는 석양의 모습처럼 아름답습니다.
에밀레- 에밀레-

에밀레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호기심은 과연 전설의 내용이 사실일까 하는 점일 것이다. 정말로 끓는 쇳물에 어린아이를 집어넣어 만들었을까?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도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 전설이 사실일 경우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도대체 인신공양이 종을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뼈에 들어있는 ‘인(燐, P)’ 성분은 합금을 만들 때 합성을 용이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쇠나 청동불상 등에도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뼈에도 함유된 성분인데, 유독 에밀레종만 인신공양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에밀레종의 정식 명칭은 종에 새겨진 대로 성덕대왕신종이다. 성덕대왕은 신라 제 33대 왕이나, 이 사람이 종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 아들인 경덕왕(35대)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종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경덕왕은 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근 20여 년이 지나 결국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36대)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이 탄생하였다.
성덕대왕신종이 무게가 20톤 가까이 나가는 크고 무거운 것이긴 하지만 제조 기간이 20여 년씩이나 걸렸다면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가 거듭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결국 거듭된 실패를 극복하고자 인신공양 같은 극한적인 방법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에밀레종은 그 독특한 소리 때문에 아기공양 전설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이 종은 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긴 것으로 유명하다. 종을 치면 그 은은한 여운이 끊어질 듯 작아지다가 다시 이어지곤 하는 현상이 1분 이상 지속되며, 특히 가슴을 울리는 저음역의 여운은 3분까지도 이어진다. 이렇듯 반복되는 여운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탓하며 우는 소리 같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란 별명이 붙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전설이 신빙성을 가지려면 에밀레종에도 앞서 얘기한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야 할 텐데, 이에 대해서는 그 동안 검사 기관마다 엇갈리는 보고가 발표되곤 하였다.

먼저 1970년대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선 에밀레종에서 한 어린아이의 유체 분량에 해당하는 인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1998년에 포항산업과학원에서 분석했을 때에는 인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에밀레종의 각 부분 열두 군데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극미량원소분석기’로 분석했지만 인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장비는 시료에 0.0000001% 이상 포함된 성분은 모두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에밀레종에 인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전설이 사실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구리가 녹은 물에 사람이 들어가면 비중이 낮아서 위로 뜨기 때문에, 그 유체가 타고 남은 찌꺼기도 다른 불순물 같이 위에 걸러서 없애버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에밀레종 전설의 핵심은 종 자체의 소리와 제조 기법의 신비가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에밀레종의 복제품을 두 번이나 만든 적이 있지만, 에밀레종 원래의 그 신비하고 은은한 여운을 재현하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 페드로에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 하기위해 우리나라가 1976년에 기증한 ‘우정의 종’이 한국식 보신각 건물과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배경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이 종이 에밀레종을 그대로 본 따 만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서울의 종로 보신각에 걸려있는 종 역시 에밀레종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 것이지만, 이 종들은 둘 다 에밀레종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신비한 소리를 전혀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

종소리가 갖는 주파수와 화음 등등 여러 가지 항목을 수치화하여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보면 현재의 보신각종은 채 60점이 안 된다. 하지만 에밀레종은 86점이 넘게 나온다. 이밖에 에밀레종과 마찬가지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상원사 동종은 65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46톤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유명한 중국의 영락대종은 40점 대에 머무를 뿐이라는 것이다.

왜 에밀레종의 소리를 재현하는 일은 어려운가? 현대 과학은 합금의 성분비와 질량, 무게중심 등등 여러 가지 물리적 특성을 정확히 측정하고 계산해낼 수는 있지만 결국 그것을 그대로 복제해 내는 기술을 밝히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에밀레종에 바쳐진 20여 년의 세월과 아기 공양 전설까지 낳게 한 옛날 선인들의 정성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박상준-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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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명경대의 전설



    금강산 명경대의 전설
    염라대왕이 명부로 사람들을 불러들여 살아서 지은 죄를 심판하고 있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극락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한데 염라대왕 앞에 불려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죄는 조금도 짓지 않고 좋은 일만 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염라대왕은 생각다 못해 사람의 한 평생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을 만들었다. 누구든 그 거울 앞에 서기만 하면 사실 여부가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비구니 스님이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님은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염라대왕은 이 해괴한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어이하여 그대는 옷을 입지 않았는고?』 『…….』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염주만 굴릴 뿐 스님은 말이 없었다. 『어찌하여 옷을 벗었느냐 말이다.』 염라대왕이 다시소리를 치자 스님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부끄럽사오나 소승은 평생 게으른 탓으로 몸 가릴 옷 한벌 없이 예까지 왔습니다.』 『게을러서?…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게로구나. 여봐라 판관! 게 있느냐.』 『예-.』 『저 여승에게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 같으니 거울 앞에 나서게 하여 잘 살펴보도록 해라.』 비구니 스님은 시키는 대로 거울 앞에 섰다. 이때 거울 속에서는 세찬 눈보라가 일고 왠 거지 여인의 속살이 드러난 낡은 옷을 걸친 채 강추위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이를 발견한 비구니 스님은 자신의 승복을 벗어 주면서 기운을 차리도록 격려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어떻게 갚아야 좋을는지요.』 여인은 흐느끼며 고마워했다. 이 광경을 본 염라대왕은 기분이 흡족하여 껄껄 웃었다. 『허허 그러면 그렇지. 승려의 몸으로 곡절없이 옷을 벗었을 리가 있겠느냐. 여봐라, 엄동설한에 떠는 걸인에게 자신의 옷마저 벗어준 이 여승은 극락으로 드실 분이니
    비단옷을 내어드리고 풍악을 올려 길을 안내토록 해라.』 『예이-.』 이렇게 해서 발가벗은 비구니 스님은 비단옷을 입고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극락으로 들어갔다.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열두 사자는 지금의 고성인 안창 땅에서 이름난 부자 하나를 염라대왕 앞에 불러왔다. 『네가 그 유명한 안창 땅 부자렷다.』 『그러하옵니다.』 『그래 네 평생 좋은 일은 얼마나 했으며,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상세히 일러보아라.』 『제 평생 죄라고는 털끝 만큼도 지은 일이 없사옵고, 좋은 일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 그래? 그럼 어디 너의 선행을 들어보자.』 『헤헤, 제 인심이 어찌나 후했던지 나라 안 거지들은 모두 제집으로 모였습니다. 그 행렬이 20리도 넘게 줄을 섰다면 대왕님께서도 가히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네 말에 한치 거짓이 없으렷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으로 아뢰겠사옵니까.』 『판관은 이 부자를 거울 앞에 세우고 그 행적을 살피도록 해라.』 순간, 거울 속에서는 걸인 두 사람이
    굳게 닫힌 대문을 마구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못된 부자놈아, 동냥은 못 줄망정 왜 사람을 때리고 문을 잠그느냐?』 『야 이놈아, 동냥을 안 주려면 쪽박이나 내놔라.』 걸인들은 대문을 발길로 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부자는 그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음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느냐. 다음 일을 보여줄 테니 꼼짝 말고 서 있거라.』 염라대왕이 노하여 벽력같이 소리를 치자 판관은 분부대로 부자를 다시 거울 앞에 세웠다. 거울 속에서는 소와 말들이 구슬프게 소리내어 울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저것은 어찌 된 장면이냐?』 『예, 이것은 이 부자가 소와 말을 부려먹을 때만 풀죽을 쑤어 먹이고 놀릴 때는 굶겨 놓은 탓으로 저렇게 슬피 울다가 죽은 것이옵니다.』 염라대왕은 화가 나서 사자들에게 명을 내렸다. 『여봐라, 이놈은 더이상 비춰 볼 것 없이 냉큼 끌어다가 등짝에 지옥 도장을 찍어 떨어뜨려라.』 부자는 뻔뻔스럽게도 억울하다고 발버둥쳤으나 열두 사자들이 달려들어 불이 활활 타는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그 후 염라대왕은 「어떻게 하면 인간들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를 곰곰히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심판을 받고, 평생 한 일이 그대로 비치는 거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궁리 끝에 신하들을 불러놓고 인간세상에다 심판하는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판관들도 사자들도 모두 찬성했다. 『그러면 조선의 명산 금강산에다 심판하는 모양을 바위로 만들어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것이니라.』 이리하여 염라대왕은 금강산 장안사 남쪽에 냇물을 만들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냇물이라 하여 황천강이라 명했다. 그리고는 그 냇물 위에 앞뒤의 모양이 똑같은 거울 모양의 큰 바위를 세웠으니 그 바위가 명경대다.
    그 앞에는 염라대왕봉이 버티고 서있고
    그 옆에는 소머리 모양의 우두봉이 있다. 이는 짐승에게도 죄를 짓지 말라는 뜻에서 세웠으며, 그 좌우로 죄인봉, 판관봉, 사자봉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이 모양이 꼭 심판하는 광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여 누구나 그곳에 가면 마음이 엄숙해진다고 한다. <한국전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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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골의 내력

 


서울에 한 양반이 살았는데 조상이 물려준 재산으로 지낼만 했다. 다만, 아들과 딸을 연년생으로 많이 낳아서 기쁨 보다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식구에 생활비 감당이 갈수록 어려워만 갔기 대문이다. 그래서 일정한 직업이 없이 닥치는대로 일을 맡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 부자집에서 보행을 좀 서달라는 부탁이 왔다. (지금으로 말하면 '특사편지' 전달 역할 이었다. 한 보행만 잘하면 상당한 보수를 받는다) 그는 부자집 편지를 가지고 부산까지 무사히 가서 전해주고 다시 서울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노자를 이끼기 위하여 남의 사랑에서 자고, 얻어 먹으면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날이 저물어서 자고 갈만한 집을 물색하던 중에 덩그렇게 잘 지은 부자집을 발견했다.

'부자집이니 폐도 덜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오십세 전후의 풍채 좋은 선비였다. 찾아 온 뜻을 전하자 기찮아 하는 기색도 없이 맞아주었다. 더구나, 저녁도 주인과 겸상을 해서 잘 대접 받았다. 상을 물린뒤에 무료하기도 하여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이야기며, 가정의 살림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그러다가 자손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래 손님은 몇 남매를 두셨소?"
주인의 물음에 객은 연년생으로 남녀간 그 수를 가끔 잊을 정도라고 하자

"그런 수도 있구려!"
하며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고 주인은 밖엘 한번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면서 뜻밖에 주안상이 나오는게 아닌가?

"자, 변변치 않지만 한 잔 드시면서 이야기 합시다."

술잔이 오고가고 서로 권하면서 양껏 마셨다. 객으로서는 과분한 대접을 받고는 황송해 했다. 그런데 주인은 술잔을 거듭하면서 다소 침울해 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객의 옆에 앉은  뒤에 손을 덮석 잡으면서

"나 손님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
그러고 보니 주인의 눈에는 눈물조차 아른 거렸다.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손님 이 늙은이를 위하여 수고하나 해주셔야 겠소...."
"?"
"날이 밝으면 자연히 알터 이지만 내 이 사랑 누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눈이 미치는 곳까지는 다 내 소유외다. 허나 한가지, 남녀간에 생산을 못해봤소. 소실도 차례로 얻어서 셋이나 되오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병신임에는 틀림없는데... 내 이만큼 잘살으니 다른것은 부러운게 없으나 그만 그 자식이 없는데는 그냥 눈이 뒤집히는 구려. 그래서 지금 심정으로는 남의 씨라도 받아서 내 자식을 두어 봤으면...."
".........."
"노형! 노형은 아들 딸을 그리도 많이 두셨다니 날 위해서 좋은일 좀 해주구려"
"원 이게 무슨 망령의 말씀을...."
손님이 손을 설레설레 내저으니까
"하하, 공연한 사양을... 본부인을 어째달라는 것이 아니고, 작은 것들은 본시 천생들이라 좀 그래도 되겠고, 또 나하고 노형하고만 알면 되는 일이 아니오? 노형 연배에 집 떠난지도 여러날 되니 잘 되었소. 날 위해서 꼭 부탁합시다."

참으로 기이한 부탁이다. 주인이 몹씨 측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객은 그 분위기가 하도 진지해서 얼결에 승낙을 하고 말았다. 이튿날 깨어보니 자기가 입고 있던 헌옷은 치워졌고 새옷 일습이 놓여 있었다. 목욕하고, 새옷 입고, 주객이 마주앉아 아침상을 받았다. 주인따라 대문을 나서보니 조그만 기와집이 세채 나란히 있는데 그 첫째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자가 마루아래 내려서며 반가히 주인영감을 맞아 들인다. 낯선 손이 있어서 더 이상의 거래는 없었고 주객은 사랑에 들고 여자는 이내 술상을 차려 내왔고 주객이 많이 먹은 뒤에 주인은 어디론가 나가서 영영돌아오지 않는다. 손은 혼자 있기가 무료해서 안절부절하는데 조금전 들어올때 본 이집 젊은 주인 여자가 낯을 붉히면서 들어오지 않는가.... 그 이튿날 이다. 조반을 먹고 앉아 있으니 주인영감이 들어왔다.

"참 수고했소. 그럼 다음 집으로 갑시다"
다음 날은 또 다음 집으로... 이리하여 세 집을 모두 다녔다. 이에 서울 손님이 떠나려 하자 주인은 동구밖까지 전송을 나오면서 말고삐를 쥐어주었다. 말 두 필에는 부담짝을 실었는데,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 손님은 개선장군 모양 말 두필을 뒤에 세우고 충청도 어느 아늑한 마을을 떠나 서울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우선 부담짝부터 열어보니 엄청난 귀금속이 있었다. 급하고 아쉬운 것이 너무 많던 차에 요긴히 쓰고, 여러 자식들 성취시켜 그야말로 팔자 좋게 잘 살았다.

그런지 세월은 흘러 20여년, 그의 머리는 반백발이 되었고 증손자까지 보아서 자식들이 헤일 수 없이 많이 불어나 이제는 대가족이 아니라 한 동네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좋은 옷을 입고 말을 탄 세사람이 왔다는 것이다.

"이 댁 주인어른 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뉘들이신지..."
"들어가서 뵙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거 누추해서...."
"원 천만의 말씀을..."

셋은 방에 들어서자 날아갈 듯이 절을 공손히 하고
"아버지! 이제 찾아 뵙게 됨을 용서 하십시요"
"?"
"실은 저희들이 안 것은 꼭 3년전 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러니까 저희들을 길러주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저희 셋을 불러 앉히시고 '난 너희를 키우면서 이제껏 나날이 재미를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분복에 과한 일이다. 내가 죽어 3년상을 치르고 탈상하거든 그 때 너희들은 그 어른을 찾아라'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오 그랬구나. 그 뜻은 잘 알겠다만 그 일은 영원한 비밀로 하기로 굳게 약조된 일인데, 이제 세삼스러히.... 그리고 내가 사는 형편이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 너무 많은데 또 셋이나 더 합친다..... 이거 큰일 인걸..."
"원, 걱정도 많으십니다. 길러주신 아버지께서는 남겨주신 재산이 고스란히 있고 어머니 세분께서도 계시므로 낙향하셔서 사시면 됩니다."

마침내 권유에 못이기고 낙향을 결심했다. 이튿날, 서울 곧곧에서 가마와 말을 구해서 타고, 대가족이 일로 옥천으로 향했다. 자장 십리를 뻗는 대행렬은 유서 깊은 옥천땅을 찾아와 정착했고, 서울 선비는 말년이 마냥 행복하기만 해서 태평하게 여생을 지냈다 한다. 그 뒤로 이 마을을 "삼형제 골"이라고 하다가 이제는 "삼청(현재三靑里)골" 이라 불리워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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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의 신비경


해마다 살이 찌는 신기한 부도가 있다.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서방산 봉서사에 가면 진묵대사 부도가 있는데,
6ㆍ25 이후 해마다 몇cm씩 살이 찐다는 것이 주지 서남수 스님의 증언이다.

비슷한 불가사의로 땀 흘리는 미륵불과 소리 내는 나무들도 있다.
땀 흘리는 미륵불은 충남 논산시 은진면 반야산 관촉사의 미륵불이다.

고려 초에 만들어진 이 은진미륵은 난리가 날 때마다 온몸에서 땀을 흘렸는데
그때 손에 든 쇠꽃의 빛깔도 탁하게 변했다고 한다.

은진미륵이 땀을 흘린 것은
경술국치와 6ㆍ25동란 때로 온몸에서 수십 말이나 되는 땀을 흘렸다고 전한다.


봉서사 진묵대사 부도


관촉사 은진미륵불

소리 내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경기 양평 용문산의 은행나무 공손수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 보석사 입구의 은행나무다.

수령 1,300년인 공손수는 옛날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베려고 톱을 댔더니
그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가 쳤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황소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고 전해온다.

수령 1,100년의 보석사 은행나무도
나라에 큰일이나 극심한 홍수ㆍ가뭄이 날 때 짐승울음 같은 소리를 질렀다고 전해온다.


용문산 은행나무


보석사 은행나무

이 땅의 불가사의와 불가해한 신비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고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도 있다.

마르지 않는 샘은
부산 금정산, 충북 단양 도락산 신선봉, 전남 영암 월출산 구정봉, 서울 북한산 황봉에 있고

얼음골은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등에 있다.


밀양 얼음골


밀양 얼음골


월출산 마르지 않는 샘

또 쌍둥이 출산율이 100년간 38쌍으로 세계 최고인
전남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중촌마을처럼 불가사의한 마을도 있고

숲속에 뱀ㆍ개구리ㆍ개미가 전혀 없는 경남 함양읍 대덕동 상림 같은 곳도 있다.

이처럼 황당무계해 보이지만 전혀 무시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지식과 상식으로 풀이할 수 없는 불가사의는 많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이적을 보이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의 표충비가 지난달 28일(2001.2.28) 또 땀을 흘렸다고 한다.

표충비를 관리하는 홍제사 주지 법마스님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사실이라고 했다.
그날 오전6시부터 정오까지 6되 정도의 땀을 흘렸다는 것이다.

표충비는 영조 때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에 세워졌는데
그동안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전의 기록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동학혁명부터 3ㆍ1 운동과 경술국치, 8ㆍ15 광복과 6ㆍ25 동란, 4ㆍ19 혁명과
5ㆍ16 쿠데타, 10ㆍ26 사태와 12ㆍ12 쿠데타, 그리고 이번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적게는 몇되에서 많게는 여러 말에 이르는 땀을 흘렸다고 전한다.

표충비가 무슨 까닭에 또 진땀을 흘렸는지는 좀더 지나봐야 알 듯하다.

그런데 이처럼 땀 흘리는 불가사의한 비석은 표충비 말고도 또 있다.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거둔 승리의 바다 울돌목이 바라보이는
충무사에 모셔진 명량대첩비도 표충비처럼 나라에 비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숙종 때 건립된 이 비석도 6ㆍ25 와 5ㆍ18 때 검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 황원갑 <한국일보 문화레저팀 부장ㆍ소설가>님의 글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사명대사 표충비


충무사 명량대첩비

사람 땀과 비슷한 표충비 땀

▲표충비 땀은 사람 몸에서 땀이 나는 것처럼 비석 사면에서 퐁퐁 올라온다.
또 그 땀을 맛보면 약간 짠맛이 느껴질 정도로 사람 땀과 흡사한데,
이는 보통 물이 아니라는 증거다.

▲표충비 땀이 습기 등 기후에 의한 자연 현상이라고 한다면,
왜 습기를 가득 머금은 장마철에는 한번도 땀을 흘리지 않았는가.

▲설령 기후에 의한 자연현상으로 땀을 흘린다 쳐도
비석에 깊게 새겨진 글자속으로는 흐르지 않는다.
세로 방향으로 새겨진 한자들 사이, 즉 표면이 매끈한 곳을 골라 흐른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물이란 것은 움푹한 곳으로 흘러드는 것이 상식인데
표충비 땀은 그렇지 않다.

▲표충비를 보호하는 비각 기둥은 물론 바로 10m 떨어진 곳에 크기가 비슷한
홍제사 사적비에서는 같은 조건에서도 전혀 땀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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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가

 

 <원문>



<양주동 역>
 

<현대어 풀이>

오늘 이에 산화를 불러
뿌리온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을 부리옵기에
미를 좌주를 뫼셔라
 

<김완진 역>

 

<현대어 풀이>

오늘 이에 散花 불러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命에 부리워져
彌勒座主 뫼셔 羅立하라.

 

  

[배경설화]

경덕왕 19년 병자 4월 초하루에 두개의 해가 나타나서 10일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치리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단을 조원선에 깨끗이 꾸며 놓고 임금이 창양루에 나가 앉아서 인연이 있는 스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 월명사가 언덕 남쪽 길로 가고 있었다. 임금이 그를 부르라하여 제단을 열고 의식을 시작하게 하니, 월명사가 아뢰기를 저는 다만 화랑의 무리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오직 향가만 알 뿐이고 범패노래는 아직 못합니다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인연있는 스님이 되었으니 향가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월명사는 이 말을 듣고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삼국유사 권 5 월명사 도솔가조>

[해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은 이 노래를 <산화가>가 아니라 <도솔가>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는데, 《삼국유사》에 이두(吏讀)로 된 4구체(四句體)의 원가(原歌)와 한역시(漢譯詩)가 함께 실려 있어, 향가의 해독(解讀)과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로서, 미래 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떨기 꽃을 통하여 미륵불을 모시겠다는 뜻이므로, 전형적인 찬불가(讚佛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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