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엑스칼리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더 왕 전설은 많이 이야기 되지만, 또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다. 켈트 신화에 기원을 둔 이 이야기는 기독교와 만나 많은 부분들이 고쳐지고 덧입혀지고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재미있고 새롭다. 무수히 많은 영웅들이 원탁의 기사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모험담에 울고 웃다가 결국 모든 것이 바래져 먼지가 된다 할지라도, 아발론에 머물고 있는 아더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도 아니고 북유럽 신화도 아닌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남아 있는 켈트 신화가 어째서 지금도 영향력 있게 이야기 되는 것일까. 모계 사회, 궁정식 사랑, 성배를 찾는 모험... 그 옛날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그 운명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운명은 만들어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EMK에서 야심차게 내 놓은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아더의 이야기이고,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하면 아더가 진정한 왕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더 길게 이야기하자면, 브리튼의 패권을 둘러싼 켈트족과 색슨족의 전쟁과 드루이드교가 새로운 신앙인 그리스도교에 편입되는 과정을, 각각의 인물들이 사랑, 우정, 복수라는 방식으로 엮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더 왕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데다 아더 왕 전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랜슬럿인 까닭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그 랜슬럿 역을 맡았기에, 내가 이 극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고약한 스케쥴을 소화해가며 <엑스칼리버>를 보러 다니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케르눈노스를 상징하는 듯한 멀린이 갓 태어난 아더를 치켜들며 시작한다. 켈트 신화에서 숫사슴의 뿔은 죽음과 재생을 뜻하는데, 어찌 보면 '탄생' 혹은 '부활'을 나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열된 켈트 족을 통일하고 그들이 누린 영광을 부활시킬 왕의 탄생을 관객들에게 알리며 시간은 18년 후로 넘어간다.
(출처:이지훈인스타그램)
이제 18세가 되는 욱하는 성격을 지닌 아더는 마을 청년들과 검술 훈련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런 아더를 랜슬럿과 엑터 경이 달랜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리더 역할을 하는 랜슬럿은 귀여운 동생 같은 아더를 돌보는데, 사실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닌 인물로 모두의 중심에 있지만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고독한 늑대, 외로운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다.
열 여덟이라는 숫자는 이제 운명을 받아들일 때라는 뜻이기도 한 모양인지, 멀린이 나타난다. 멀린은 아더에게 그가 왕이었던 우더 펜드라곤의 아들이며, 이제 침략해 온 색슨족에 대항할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슴 속 분노의 정체를 알 길 없었던 아더는 그제야 자신이 왜 그런 분노를 갖고 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자랐는지 알게 되었다. 멀린은 분열된 영국을 통일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한 의도로 '검 뽑기'를 기획한다. 커다란 바위 위에 천 년 동안 꽂혀있던 엑스칼리버. 진짜 천 년동안 꽂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검에 전해져 오는 전설과 그 검을 뽑는 사람만이 중요할 뿐. 아더를 위한 검이었으니, 아더는 그 검을 뽑고 사람들은 그가 신이 정해 준 왕이라 믿고 환호한다. 랜슬럿은 그저 어린 동생으로 여기던 아더가 검을 뽑자 묘한 시기심과 질투, 당혹감에 굳어버리지만 왕의 아들, 엑스칼리버를 뽑았다는 명분에 기꺼이 아더 앞에 무릎 꿇고 그가 왕임을 인정해준다. 랜슬럿의 인정은 정말 중요했는데, 그가 무릎을 꿇자 모두가 아더를 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천 년동안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는 소식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사는 기네비어가 자신들의 왕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한다. 그녀를 먼저 본 건 랜슬럿이지만, 기네비어는 랜슬럿을 지나친다. 기네비어는 운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영웅보다는 함께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 왕을 기다리며 검을 뽑은 사람이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말하고, 아더는 그런 그녀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멀린은 마치 아버지처럼 웃으며 그녀가 너의 신부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는 사이, 동쪽 해안에 상륙한 색슨족 대장인 울프스탄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하며 모르가나가 있는 수녀원을 파괴한다. '나는 왕의 딸이야!'라고 외치는 모르가나(여기서 모르가나는 우더 펜드라곤의 딸로 나온다)에게 수녀원장은 '니 아버지는 죽었어. 넌 누구의 딸도 아니야!'라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모르가나는 순식간에 아비 없는 자식이... 좀 씁쓸했다. 극 내내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이 맞붙는데, 드루이드교든 오딘이든 다들 좀 미개하게 그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여튼 모르가나는 왕의 딸임을 밝히고, 왕의 성으로 색슨족을 안내하는 조건으로 포로가 되어 수녀원을 빠져나온다. 드디어 사랑하는 연인 멀린을 찾으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더와 랜슬럿은 기네비어와 마을 여자들이 전투 훈련하는 곳을 훔쳐보다 딱 걸리는데, 랜슬럿이 능글맞게 여자들이 과연 남자들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라고 하다가 기네비어한테 된통 혼난다. 난 이 때가 참 좋았다. 기네비어와 랜슬럿이 봉술 대련하는 장면 말이다. 마치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랜슬럿은 여자한테 졌다고 화내지도 않고, 바닥이 미끄럽다고 능청을 떨지만 기네비어를 인정해준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보고 싶어하는 여자들 데리고 칼 빌려서 우루루 맥주 마시러 가 버리는데, 일부러 자리 피해주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혼자 책임 지는 것도.
둘만 남은 아더와 기네비어는 분위기 좋았는데, 정찰 나온 색슨족 병사들이 이 둘을 덮치고, 검이 없는 아더는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고, 뒤늦게 달려 온 랜슬럿과 기네비어와 함께 색슨족을 물리치지만 아더는 의식을 잃고 만다. 칼을 기꺼이 빌려준 것은 아더인데, 랜슬럿은 아더가 다치는 바람에 혼자 욕 먹고, 좋아하는 술도 끊고, 오로지 기사로서의 삶만을 살기로 맹세한다.
아더의 전언을 들고 색슨족에게 돌아 간 울프스탄의 아들은 아더 펜드라곤이라는 이름을 던져 준다. 울프스탄 옆에 있던 모르가나 펜드라곤은 큰 충격에 빠진다. 자신이 어째서 수녀원에 버려졌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분노에 사로잡힌 모르가나는 아비의 죄를 부르는데, 그 분노와 원망, 차마 버리지 못한 사랑, 슬픔, 배신감 등이 뒤섞여 온 무대를 덮치는 듯 했다. 멀린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던 행복한 때, 아버지를 원망하며 수도원에 갇힌 채 멀린의 생사도, 바깥 세상의 어떤 소식도 알지 못한 채 괴로워하던 때, 지독한 절망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 때를 떠올리며 용을 깨우는 주술을 행한다. 아비가 지은 죄 때문에 모르가나의 인생이 무너진 것이다. 심지어 믿고 사랑하는 멀린이 이 일을 주도했으니 그 배신감이란...
이제 캐멀롯은 색슨족을 막기 위해 진지를 구축한다고 바쁜 와중에, 의식을 되찾고 기네비어와 연인이 된 아더가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아더를 둘러싸고 그의 회복을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모르가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용을 놓아주며 그 혼란을 틈타 도망친 모르가나는 캐멀롯에 나타나고, 잠재적 왕위 계승자이자 아더의 대척점에 있는 모르가나를 사랑하기에 그녀를 감췄던 멀린은 그녀가 나타나자 어떻게든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 애쓴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누나를 보는 아더는 누나의 존재가 너무나 반가웠다. 일단 자신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을테고, 같은 아픔을 공유한 누나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르가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는데, 옆에 있는 랜슬럿은 진짜 관찰자였다.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칼에 손을 얹고 유심히 보며 모르가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치러지는 대관식... 아더는 저 높은 곳에서 드루이드교 사제한테서 관을 받고, 원탁의 기사들은 아래에서 검으로 맹세하고. 아니, 대관식을 꼭 해야했을까. 엑스칼리버 뽑고, 왕 되고, 원탁에 모여 기사들과 맹세하면 되는 것을 굳이 대관식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관을 씌워주는 건 드루이드교 사제인 멀린이다. 모두를 위한 왕이 되겠는가. 하지만 이 극에서 왕이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하는 자가 아니던가. 원탁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아니던가. 물론 원탁이 예수 그리스도가 열 두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눴던 식탁이고, 열 두명의 기사가 열 두제자를 상징하긴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군림하는 분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마치 십자군을 보는 듯한 옷도 그닥 와 닿지 않았다. 아더는 마치 나폴레옹 같았고. 여튼 아더는 그렇게 왕이 되었다.
(출처:텐아시아)
2막은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결혼식 무대는 정말 화려하고 예뻤다. 하얀색에 금빛이 뿌려진 옷은 아더와 기네비어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가면을 쓴 듯, 둘을 보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짓는 랜슬럿이 짠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술을 권해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아더를 지키던 그는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기네비어에게 혼자가 편하다며 미소를 보낸다. 원하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와 있어도 혼자 있는 것이니까. 아더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면서 자연스레 기네비어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을테고, 그런 마음은 품어선 안 되기에 랜슬럿은 더 깊은 침묵으로 마음을 숨기고자 한다. 진실한 사랑은 원한 적도 없다는 그 체념과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갈망하는 마음... 하지만 모르가나는 그 마음을 눈치채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운명은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고.
엑터 경이 죽고, 색슨족 짓이라고 여긴 아더는 잠재된 용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흑화한 아더는 모르가나를 제외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를 뿜으며 용의 불길이 커져가도록 내버려두고, 멀린은 그런 아더의 분노를 잠재우려 애쓴다.
색슨족은 쳐들어오고 자연스럽게 랜슬럿이 중심이 되지만, 역시 왕은 아더니까 그 명분은 어쩔 수 없었다. 중앙에 있던 그를 밀쳐내고 중앙에 서는 아더와 밀려나'주'는 랜슬럿, 그리고 어릴 때처럼 싸워보지만 결국 '져야만'했다. 1막 처음 아더와 랜슬럿이 대결할 때는 랜슬럿이 검을 쳐 냈는데, 여기서는 같은 초식(?)인데 일부러 쳐 내지 않고 왼쪽팔을 내줬다. 랜슬럿... 너무 짠하다.
솔직히 아더가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건 맞는데, 그런 폭력적인 아버지가 아닌 엑터 경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지 않았는가. 그 옆에는 엑터 경의 아들 케이도 있고, 엑터 경이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구해준 랜슬럿도 있었다. 모두가 아더를 지켰는데, 그리고 엑터 경은 모두의 아버지였는데 어째서 그렇게 혼자 괴로워하는걸까. 엑터 경이 죽자 랜슬럿은 크게 슬퍼하지만 바로 분노조절 실패한 아더 때문에 제대로 슬퍼하지조차 못했다. 아마 뒤에서 혼자 슬퍼했겠지...
아더가 모두를 멀리하는 사이, 급격하게 가까워진 기네비어와 랜슬럿. 사실 기네비어가 랜슬럿에게 반하는 장면 하나쯤 혹은 둘이 같이 부르는 넘버 하나쯤은 넣었으면 했다. 랜슬럿은 기네비어를 미친듯이 사랑하는데, 기네비어가 그 마음을 드러내기에는 장치가 좀 부족하다고나 할까. 계속 아더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는데, 어차피 먼저 맹세를 깨버린 건 아더야... 여기서 가장 행복하게 자란 사람은 어쩌면 아더 너 혼자일지도 몰라.
모르가나는 계속해서 복수의 덫을 놓고 아더의 파멸을 기대하는 한편, 멀린에 대한 미련도 놓지 못한 채 멀린의 사랑과 지식을 갈구한다. 그러고보면 켈트 신화가 모계 신화라 그런지, 이 극에서도 운명을 만들어가는 건 기네비어와 모르가나이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건 아더와 멀린이다. 특별히 랜슬럿은 가부장제와 기독교 때문에 튕겨나간 캐릭터라 그런지 좀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색슨족은 코 앞까지 왔고, 랜슬럿은 사라졌다. 기네비어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도, 말할 수도, 단념할 수도, 가질 수도 없어 혼자 헤매고 헤매다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곳까지 와 버린다. 혼자 외로워하고, 혼자 슬퍼하고, 혼자 아파하고, 혼자... 절규한다. 살아있다면 맹세를 저 버리게 될 것 같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데, 마침 기네비어가 구해준다. 랜슬럿! 그녀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은 이성을 날아가게 하고, 꺼져 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렸다. 그것은 칠흑같은 어둠 속 작은 불꽃이며,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애절하게 바라보다 격하게 끌어안는데 내 가슴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저 뒤에서 모르가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아더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버림받게 되었다. 자신이 멀린을 잃은 것처럼, 자신의 전부였던. 이게 바로 끝은 정말 클라이막스였다. 점점 고조되는 감정들이 뒤엉켜 선택을 요구했다. 벨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랜슬럿은 신께 용서를 구하고, 여전히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려고 한다. 죽음의 칼날이 내리치더라도 달게. 너의 분노가 그것으로 사라진다면... 하지만 아더는 분노 조절에 성공한다. 무릎 꿇은 랜슬럿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을까.
모르가나는 결국 절반의 승리만을 얻었다. 하지만 멀린의 사랑을 온전히 가졌으니 그것만큼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실, 좀 허무하긴 했다. 멀린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모르가나가 아더를 죽이려고 하고, 그런 모르가나에게 기네비어가 활을 쏘고, 그 활을 멀린이 대신 맞으면 되지 않을까. 생 갈랑 버전을 이렇게 비틀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더 희생적이고, 더 극적인 결말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여튼 모르가나와 멀린은 서로를 품에 안고 안개 뒤 그들만의 세계로 가 버렸다. 물론 원래 멀린은 비비안의 성에 갇혀 있고, 모르가나는 아발론의 군주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 울프스탄의 공격은 실로 막강했고 아더는 고군분투하는데, 저기 나타난 랜슬럿. 맹세를 지키기 위해 달려 온 그는 비록 아더의 군대는 아니지만 아더를 지키는 형이었다. 아더를 베기 위한 검을 쳐 내고, 울프스탄의 검에 베인 그는 두 번째 날아든 검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이 내겐 끝이었다. 수치 속에 사느니 여기서 죽을게란 말은 랜슬럿의 삶을 너무 아프게 말한 거라 눈물이 났다.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결국 죽음이 반가웠던 삶. 그 삶 속에 잠깐씩 머물렀던 행복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기를.
랜슬럿이 나가면서 기네비어가 등장한다. 둘은 끝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녀라니. 전투 훈련은 왜 했냐고. 그러니까 결말을 바꿔야 한다고.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 알겠다고. 기네비어가 나중에 신에게 귀의해서 구원받는 것도 안다고. 하지만, 여기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운명은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는 기네비어가 종교에 귀의하다니... 차라리 떠나지. 랜슬럿은 울프스탄으로부터 아더를 구하고, 기네비어는 모르가나로부터 아더를 구하고 떠나면 되지 않냐고. 왜 죽이고 수녀 만들고 그러냐고. 아더의 비극성에 희생당한 캐릭터가 되어 버려 안타까웠다.
결국 아더는 처음 칼을 뽑은 그 곳으로 되돌아간다. 처음보다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에, 우리네 삶이 담긴 듯해 울컥 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지치고 힘들고,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 다 잃어버리고... 그래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끝이 어떻든 끝까지 살아내었으니 훌륭한 것이라고.
전체적으로 무대가 정말 좋았다. 숲을 구현한 것이나 스크린 영상 등은 멋있었고, 전투씬에 많은 수의 앙상블이 나오니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정말 켈트 신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안개 낀 푸르름도 좋았다. 고대 영국은 이런 신비로운 분위기였을 것 같았다. 게다가 두 개의 층으로 대비하여 연출한 것도 괜찮았고, 무대를 깊고 넓게 쓰는 것도 좋았다. 물론 세종문화회관이 워낙 넓어 급하게 뛰어다녀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넘버들도 뭔가 켈틱하고 좋은데 좀 강해서 귀가 피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배우님들 연기랑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봤다. 재연 때는 조금 고쳐서 올라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