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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세트 - 전5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이 책은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이다. 이렇게 긴 소설일 줄 몰랐다. 그런데, 읽다가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쓴다.
시대가 ‘레미제라블’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레미제라블’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이며, 1862년 출간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위고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초중등학생들에겐 ‘장발장’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왜 150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레미제라블이 이슈가 되는가?
단지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의 흥행 때문인가?
나는 레미제라블이 거론되는 이유를 현상보다는 본질에서 찾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현상이면에 숨어있는 본질을 읽어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시대변화의 원동력을 찾고,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시대정신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언론에는 고독사, 빈곤계층, 청년실업, 경제민주화, 비정규직문제, 자살급증, 피로사회 등이 자주 거론된다. 실로 힐링(치유)이 필요한 시점이라 말할 수 있다.하지만 이제 힐링이란 말자체가 혹은 위로라는 말자체가 더 이상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지 못하는 시점에 까지 이르렀다 본다.
레미제라블이란 소설의 배경도 1815년부터 1832년이 주를 이룬다. 당시는 프랑스대혁명(1789년) 이후 프랑스 사회변화를 시민들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겪어 내던 시기이다. 나폴레옹의 워털루전투 패배와 오스트리아의 빈체제(메테르니히체제)의 시작이 출발점이고, 1830년 7월혁명 이후 등장한 7월왕정에 저항하며 공화정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이야기가 종결점이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국민의 빈곤과 빵 없는 노동자’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형태만 다를 뿐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7월왕정시대는 유산계급만을 위한 제한선거와 메테르니히가 주도하는 복고주의, 그리고 각국에 전파되었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탄압의 시대였다.
한마디로 비참한 시대였다.
19세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레미제라블은 21세기의 우리나라 사람들과 감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즉 공명(共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학과 예술이 당대 사람들과 공명해야 눈길을 받는 것처럼 레미제라블도 오늘날의 우리와 함께 울고 있기에 이슈로 부상한 것이다. 19세기 초 프랑스를 바라보는 눈은 동시에 현재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동일한 것이다. 즉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주변을 둘러보자. 취업을 못하고 아파하는 젊은이들,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50, 60대의 고달픈 생활고, 대기업의 횡포에 고통 받는 중소자영업자들, 자식들의 도움을 바랄 수 없는 고독한 노년층, 대형마트 주변의 초토화된 골목상인들, 가난이 갈라놓은 사람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빅토르위고는 소설 속에서 무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무지를 있게 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비참한 사람들의 무지를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무지는 무엇인가? 같은 세상을 바라보아도 진보의 눈과 보수의 눈으로 혹은 중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한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대의 무지는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서만 세상을 보고 반대편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절대’란 말은 쓸모가 그리 크지 않다. 더욱이 사람 일에 절대란 말은 너무도 극단적이다. 좌가 되었던, 우가 되었던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 즉 그들의 주장을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과 귀와 지식이 필요하다.
시대의 무지는 과거처럼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글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무지는 자신만의 생각에 갇힌 좁은 식견을 말한다. 진보던 보수던 간에 서로 자신의 주장과 함께 상대의 주장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시대정신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레미제라블’은 시대의 무지를 벗어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 민중의 노래 소리는 좌에서도 울리고, 우에서도 울린다. 어느 한쪽에서만 울리는 민중의 노래 소리가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소리는 좌에서 울렸는가? 우에서 울렸는가? 마리우스를 구한 장발장은 좌인가? 우인가?
모두와 함께한 자리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 발장의 모습은 숭고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뮤지컬과 영화에서 울러퍼지는 민중의 노래 소리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듯하다.
2013.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