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한국출판인회의와 성공회가 독서문화를 바꾸고 독서인구를 늘리기 위해 일반인과 독서교육 전문가·교사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중심의 독서교육을 실시하는 ‘독서대학’을 만든다.
잠정적으로 ‘독서대학 르네21’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비작업을 계속해온 출판인회의와 성공회 관계자들은 지난 13일에도 만나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했다.

대학 사무실 및 강의 장소로는 서울 덕수궁 인근 중구 정동 성공회 서울교구 대성당 1층을 중심으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출판인회의 공간도 활용하기로 했으며, 장차 독립적인 대학공간을 따로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교육과정은 2~3년을 중심으로 하되 주제별, 프로그램별로 다양한 중단기 코스들을 활용한다. 방학이나 휴가를 활용하는 1~2주일의 가족단위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여름·겨울 캠프, 지역 독서모임들 네트워킹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를 위해 양쪽은 이날 김한승 사회선교국장을 비롯한 성공회 관계자 5명과 이정원 회장 등 4명의 출판인회의 관계자로 운영진을 구성하고 교무처와 사무처도 조만간 꾸리기로 했다.

김한승 신부는 “사회가 너무 물질주의적으로 치달으면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보수든 진보든 성찰과 소통이 절실해졌다”면서 “성찰할 수 있어야 집단간 소통도 가능하다”는 말로 독서대학의 설립취지를 밝혔다. 김 신부는 이를 위해서는 “독서가 제일”이라며 앞으로 독서대학에서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든 참여해서 성공하기 위한 독서가 아닌 성찰과 소통을 가능케 하는 독서, 강의와 청강이라는 딱딱한 방식보다는 토론식 공부, 지역 책읽기 모임이나 여름 독서캠프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 독서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회와 성공회대학은 노숙자 등 사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한국에서 처음 실시하기도 했다.

들녘 출판사 발행인인 이정원 출판인회의 회장은 독서대학 설립을 “대중적인 인문학 부흥운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학력제한 없이 사회인, 노동자, 직장인 등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대안학교로서의 의미도 갖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교수진을 책 저자와 평론가, 교수 등 관련 전공자들로 짤 것이라고 했다.

운영진의 한 사람인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17일 교수진은 △우수한 도서를 출판한 저자 △기획단계에서 우수한 도서로 뽑힌 예비 저자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소장학자 △독서교육에 관한 방법론을 전파할 수 있는 소장학자 중심으로 짜는 게 좋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씨는 또 학과구성은 동양고전학과, 서양고전학과, 교양독서학과, 독서교육학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인문학 지원은 대학교수나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고 있어 학문적 기득권층만 살찌울 뿐 그 연구성과의 출판계 파급효과가 지극히 제한돼 있다는 점은 큰 문제”라면서 교수진을 소장학자, 기획자 중심으로 구성해 그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함으로써 양서 집필과 좋은 강의, 책 판매 촉진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원 회장은 “구체적인 모집 학생 수와 교수진 규모 등에 관해서는 이달 말께 다시 만나 의논할 것”이라며 운영비용 문제도 “정부나 기업 후원 없이 성공회와 출판인회의가 공동으로 꾸려갈 것이며, 작으면 작은 대로 내실 있게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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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현재 학력위조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신정아씨는 어떻게 불과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동국대 교수가 되고 그 뒤 광주비엔날레 총감독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일대를 나왔다는 거짓 학력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신씨가 교수와 총감독이란 거물로 성장한 것은 일단 큐레이터로서 언론의 인정을 받은 덕분에 가능했다. 1997년 금호미술관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간 20대 젊은 여성이 불과 2~3년 만에 미술계의 주요 큐레이터가 된 것은 언론매체들이 신씨의 의도에 휘둘려 그를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예술 장르와 달리 미술분야는 언론, 특히 신문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동영상보다는 이미지가 주가 되는 미술의 속성상 방송매체보다는 활자매체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미술분야가 대중과 만나는 통로가 사실상 신문뿐인 탓이다. 그래서 미술계는 언론의 보도와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미술계 양대 뉴스메이커인 화랑과 미술관 모두가 마찬가지다.

미술품 거래가 존재 근거인 화랑들은 광고가 불가능한 실정상 신문 보도가 유일한 홍보 창구이다. 특히 화랑들은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주면 작품을 매매할 때 콜렉터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부를 근거가 되기 때문에 기사 게재에 많은 신경을 쓴다. 미술관들도 예전과 달리 전시 평가에 있어 미술계 내부의 미학적 평가 못잖게 대중적 성공도, 관객 동원 숫자 등을 중시하고 있다.

신씨는 이런 미술계의 속성을 꿰뚫고 초기 자기의 모든 성공 전략을 대언론 공략에 ‘올인’했다. 기자들과의 관계를 언론-취재원 이상으로 발전시키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따로 챙겼을 정도였다. 언론사들이 전문성을 크게 따지지 않는 기자 인사방식도 신씨가 기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전시를 검증할 능력이 없는 미술담당 기자들의 경우 일단 신씨의 능력에 크게 의심을 갖지 않고 넘어갔던 것이다.

여기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못잖은 신씨의 이런 탁월한 언론 관리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금호미술관이 신씨의 예일대 학력에 의문을 품고 그를 내보냈지만 신씨는 바로 굴지의 미술관인 성곡미술관으로 옮길 수 있었다. 친한 기자들이 나서서 추천과 부탁을 해줬기 때문이었다. 언론 입맛에 맞는 취재원, 그리고 젊은 스타 여성 필자에 목말라는 언론의 속성도 신씨를 거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조선일보>는 신씨의 큐레이터 경력 2~3년에 불과했던 시절에 이미 신씨에게 칼럼을 부탁해 맡겼고, 상당수 일간지들이 신씨의 글을 실었다. 신씨는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에는 지난 6월까지 칼럼을 썼다. <국민일보>는 신씨가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기사까지 썼다. 이런 지원을 받아 미술계 내부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신씨는 인맥관리에 더욱 신경을 썼다. 최근에는 신씨가 현직 <조선일보> 간부와 <중앙일보> 기자가 포함된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모임 회원이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공들여 기자를 관리했고 또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관계였기 때문에 신씨는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과 한 인터뷰에서 언론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털어놓기도 했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기자들이 신씨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를 쏟아내는데 대해 신씨는 “기자들이 악마 같다”라고까지 표현했다. 전시기획자 이섭씨는 “신씨를 만들어 낸 것도 언론이고, 신씨를 끌어내려 죽이는 것도 언론 같다”고 말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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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에서 발췌 편집)

- 대선 행보를 시작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본격적인 독자 세력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문 후보는 3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창조한국’에 있는 분들을 만나고 했겠느냐”며 ‘제3후보’의 길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달 중순부터 시작될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의 본경선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통합신당의) 곳곳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성이 높게 세워져 있는데 (내가) 대신해줄 것이 뭐 있겠느냐”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창조한국은 지난 2일 출범한 문 후보의 지지자 모임으로 규모는 1500명 가량 된다. 문 후보는 이 모임이 “필요하면 정당을 만드는 기간요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를 돕고 있는 정범구 전 의원도 이 모임이 “신당의 조직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태도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최근 나타난 지지도 상승인 것으로 보인다. 출마선언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2.8%(SBS), 1.9%(한겨레), 1.8%(KBS)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최근 <한겨레> 조사에서는 범여권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3.3%로 6위를 차지했다. 객관적으로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문 후보는 여기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제가 출발할 때 0.1%에서 불과했지만 7~8일 사이에 3%까지 왔다”며 “이 1%는 10%에 해당한다. 지금 지지율을 선행지표로 보면 20~30%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지도 확산에 가속이 붙고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문 후보쪽은 통합신당 의원들의 합류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 “연초부터 지난 4월까지 나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존경하는 어른들과 사랑하는 후배들로부터 ‘대통령 선거에 나가라’는 권유를 끊임없이 받았다. 정치권에서도 숱한 제의가 잇따랐다.”

- 하지만 그는 결국 포기했다. “정치권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나의 과거사들이 터무니없이 왜곡되었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었는데,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도 상식과 신의는 물론 작은 약속조차 지키기 어려운 우리의 현실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사람과 장소에 따라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정치적 융통성이 아니라 ‘연기’처럼 여겨졌다.… 생전 체험하지 못했던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고, 나날이 스트레스라는 말의 위력을 실감해야 했다.” 고뇌 끝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경제학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란 본분- 을 지키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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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에서 발췌 편집)

- 248번째 작품을 연출하는 김 피디는 1962년 한국 최초의 사극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용의 눈물〉, 〈여인천하〉, 〈왕의 여자〉 등을 만들었다. 〈허준〉, 〈상도〉, 〈대장금〉으로 한류 사극을 일으켜 세운 이 피디는 사극 경력 30년에 이른다.

- 시청률 경쟁으로 치면 2001년 〈상도〉(15.4%)와 〈여인천하〉(33.3%) 대결에서 김 피디가, 2003년 〈대장금〉(46.3%)과 〈왕의 여자〉(7.6%)에서 이 피디가 이겨 1승 1패를 주고받았다. 3번째 결전을 앞두고 칼끝을 벼리는 두 연출자를 만났다.

- 그는 이 작품[김재형 피디의 <왕과 나>]에 현대적 감각을 최대한 많이 불어넣었단다. 폐비 윤씨(윤소화) 역의 구혜선, 성종 역의 고주원, 정현왕후 역의 이진 등 신세대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고 바이올린과 국악기를 접목한 퓨전음악을 배경음으로 깔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인물 클로즈업을 반복하는 촬영 방식은 변함없다. “내 사인 같은 것이다. 각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고 시선을 고정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내시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는 평이다. 시청자 유제택씨는 “수염이 나서 탈락하고 우아한 자태를 인정받아 은 12냥에 팔리는 등 자세하게 묘사된 내시 선발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 허준, 이재술, 장금 같은 역사서에서 희미했던 인물에게 구체적인 형상을 불어넣었던 그가 이번에는 역사적으로 생생한 정조대왕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위험을 무릅쓴다. 정조는 단지 ‘콤플렉스 없는 그의 첫번째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한중록〉(1988)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사극에서 이미 묘사했던 왕이다. 그러나 이 피디가 20여권의 책에서 읽어낸 정조는 “인간적으로 완벽하면서도 항상 죽음의 위협에 쫓긴 왕이었다”고 했다. “사흘에 한번씩 암살시도를 당하고 매일 잠자리를 옮기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그려내는 것만 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가 되리라”는 것이다.

-  “〈허준〉에서는 의술, 〈대장금〉에서는 식문화를 그렸다. 〈서동요〉 때 과학기술을 부각해 보려다 시청률이 떨어져서 그만뒀지만, 이번에는 그림 그리는 관청, 도화서가 주무대다. 반응이 좋으면 다음에는 조선시대 화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드라마와 전통문화를 한데 땋아내리는 것이 사극의 재미이자 장점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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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1990년대 이후 겨우 명맥을 이어온 ‘마르크스 경제학’은 더욱 위축되는가?
지난 1989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쳐 온 김수행 교수는 이 학부의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이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경제학부 인사기획위원회 위원 6명은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 둔 김 교수의 후임자 채용 문제를 논의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위원회는 내년 2월 채용하는 김 교수 후임자의 전공을 특정하지 않고 ‘경제학 일반’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대 경제학부는 오는 5일 전체 교수회의를 열어 방침을 최종 논의한다.

이아무개 위원은 이런 결정의 배경에 대해 “신규 채용교수 3분의1은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지 않은 지원자를 뽑아야 하는 규정이 내년 2월 신규채용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서울대 쪽에서 동일 전공 학부 출신으로만 신규 교수 채용을 하지 못하도록 3분의1은 다른 과나 대학 출신으로 뽑도록 하고 있다. 이 위원은 “비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뽑아야 할 경우 선택의 폭이 좁아져 아예 뽑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면서 “가장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가진 교수를 뽑기 위해 전공을 특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김 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배제하기 위한 의도적인 결정”이라며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하면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가 뽑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현재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연구자 9명을 지도하고 있다. 또 학부에서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 학부에는 ‘정치경제학 입문’과 ‘마르크스 경제학’ 등 모두 3개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선택 강의가 있는 데 수강생은 합해서 모두 200여명”이라면서 “다른 주류 경제학 강의에 비해 학생수도 많고 박사과정 연구자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두지 않으려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들은 1980년 초·중반 활발하게 대학 강단에 진출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단 2명만이 정규직 교수로 신규 채용되는 등 이 분야 학맥이 대학 강단에서 끊기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 전공자들의 ‘전향’도 겹치면서 현재 서울대와 연세대, 전남대, 경상대 등 6개 대학만이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채용하고 있다고 경상대 정성진 교수는 밝혔다. 정 교수는 “대학 학부에서 자본주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류와 비주류 등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는 데 우리의 경우 ‘학문적 동종교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수행 교수는“최근 서울대 경제학부가 경제철학(박우희 교수)이나 농업경제학(정영일 교수) 경제통합(김세원 교수) 전공 교수들의 후임으로 모두 계량이나 미시·금융 등 주류 경제학 연구자들을 채용했다”면서 “서울대 경제학부가 신고전학파나 이에 근거한 계량주의 등 주류 경제학에서도 한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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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9-09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sb 2007-09-09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제가 쓴 것도 아닌데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