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2008년 사극의 시계는 앞으로 당겨질까? 193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전설적인 마피아 보스 제이슨 리(이장손·사진) 일대기를 담은 <자이언트>, 가수 이난영(사진)을 그린 <목포의 눈물>,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를 다룬 <비운의 이방자 여사> 등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줄줄이 제작을 앞두고 있다.

이는 사극 열풍이 우리 시대 가까운 역사로까지 확대됐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전 같으면 20세기를 그린 시대물은 대부분 시대 배경만 빌어 쓰는 허구적인 드라마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사극과 구분됐다. 그런데 2008년 예정작 가운데 <단군> <일지매> <홍길동>은 고대와 중세를 배경으로 허구와 상상력을 강조하는 반면에 20세기 실존 인물을 다룬 드라마들은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역사극에 가깝다.

<다모> <주몽>의 정형수 작가가 집필하는 <자이언트>는 100여년 전 미국 뒷골목을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해 미국 쪽 작가진이 합류할 예정이다. 가수 이난영의 굴곡진 인생사와 주변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목포의 눈물>은 이선희 작가가 여러 해 동안 연대기와 관련 자료들을 취재해온 결과물이다. 이 작가는 해방 전후 가요사와 문화적 분위기를 꼼꼼히 고증한 데다가 이난영씨의 유족들을 통해 인간 이난영의 캐릭터를 되살리는 작업을 거쳤다.

작가들이 ‘20세기 역사극’에 도전하는 이유는 압제와 전쟁의 시대 자체가 어떤 작가의 상상력보다 극적이기 때문이다. 또 채 잊혀지지 않은 20세기 초반 인물들의 영화와 부침은 실감나는 역사극의 재료라는 것이다. 이선희 작가는 “일제시대와 전쟁, 만주·일본·한반도를 활동 무대로 했던 한 스타의 사랑과 욕망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동경과 공감을 얻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방자 여사 일대기를 준비하는 정하연 작가는 “격렬하고 자극적인 사극이 유행하는 경향이지만, 가까운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인물의 이야기는 굳이 허구적인 재구성이나 자극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며 “극화를 배격하고 사실에 충실한 사극의 원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20세기 역사극’은 퓨전, 판타지 사극이 방치했던 사료와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돌리고, 퇴행하는 사극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에스비에스 구본근 드라마 국장은 “요즘 사극은 영웅과 승리를 지향하는 경향인데 암울한 시기를 재현한 역사물이 과연 대중성이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제작과 편성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드라마 <서울 1945>를 둘러싼 논란처럼 근현대사에 따르는 이념 시비와 유족들의 이의제기는 제작진들의 사전검열을 부추긴다. 현실과의 긴장관계는 ‘20세기 역사극’의 자산이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사진한국방송,목포문화원제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처: 한겨레)

온라인 유료 콘텐츠의 성공적 모델이었던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달부터 무료 서비스로 돌아섰다. 또 일본에선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포털에 대항해 공동 뉴스사이트를 만들기로 1일 합의했다. 미국과 일본 신문업계의 온라인 전략 변화가 관심을 끈다.

■ 미국의 온라인 전략=뉴욕타임스는 그동안 온라인 콘텐츠의 이원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어느 언론에서나 다 볼 수 있는 기사는 무료로,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폴 크루그먼 등 유명 칼럼니스트의 ‘킬러 콘텐츠’는 온라인상에서 유료로 제공했다. 온라인 구독료는 월 7.95달러, 연간 49.95달러로, 가입자가 꽤 됐다.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판은 연간 99달러로 뉴욕타임스의 2배를 받았다. 그럼에도 평판이 좋았다. 따라서 월스트리트저널의 콘텐츠 유료화 전략은 굳건해보였다. 그러던 월스트리트저널이 갑작스레 무료화로 선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런 방침은 새로운 인수자 루퍼트 머독의 뜻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무료화 선회는 유료 콘텐츠 수익보다는 광고시장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웹사이트 출입에 장벽을 없애면 방문자와 광고효과는 일단 늘어나기 쉽다.

또 이들도 한국 신문들처럼 포털과의 경쟁에 내몰렸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부분적 제휴를 하는 야후·구글 등 포털이 아웃링크 방식으로 뉴스를 제공하는 마당에 정보의 집적성과 편의성에서 뒤질 수밖에 없고, 뉴스 접근방식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더는 유료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 일본 신문의 공동대응=아사히(공인 발행부수 800만부), 요미우리(1천만부), 니혼게이자이(300만부)는 내년초 세 신문의 사설·일반 기사·해설을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공동사이트 설립 등 인터넷 분야의 제휴방침을 밝혔다. 3사는 산간벽지 등 배달망의 유지가 어려운 지역에선, 판매와 배달을 3사가 협력하고, 재해 때 신문 발행을 서로 돕는 계획도 발표했다. 3사의 업무 제휴는 종이신문 시장으로 침투해 온 포털을 견제하기 위한 공동전선 구축이다. 아사히의 아키야마 고타로 사장은 “야후와 구글 등이 내보내는 뉴스의 대다수는 신문사의 취재에 의한 것”이라며 “신문사의 역할과 영향력을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휴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 사이트의 인터넷 접속은 무료로 할 방침이다. 그러나 요약기사만을 올린다. 자세한 기사는 종이 신문을 통해 보도록 독자를 유인할 계획이다. 

신문 강국인 일본에서 그것도 경쟁 관계의 유수 신문들이 업무 제휴에 나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올 초에 니혼게이자이 등 전국지와 지역신문 52개사가 참여해 만든〈47뉴스〉라는 인터넷 동맹이 포털과의 경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3사 전략의 귀추가 주목된다.

■ 국내 시장 시사점은=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도 미국·일본처럼 온라인 전략을 강화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눈여겨볼 것을 제안했다. “뉴욕타임스는 아카이브와 브랜드 가치가 높은 신문이다. 웹 2.0 모델을 채택해 개방형으로 접근하고 있다. 우리도 웹 환경은 오픈 경영으로 하되 제휴를 통한 다자간 수익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웹 2.0 시대에 맞춰 많은 사람들의 정보 공유와 소통을 바탕으로 배너광고뿐 아니라 저작권 보호 측면의 디비사업인 뉴스코리아나 뉴스뱅크, 그리고 기사의 신디케이션 등으로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현숙 기자, 도쿄/김도형 특파원 hyunsm@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처: 한겨레, KISTI 과학칼럼 발췌)

〈별순검〉을 부활시킨 건 결국 팬들이었다. 팬들의 이어진 요구에 문화방송 계열의 엠비시드라마넷이 자체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년 전부터 기획에 들어가 드디어 첫 작품을 내놓았다. 류승룡·박효주·온주완·안내상·김무열 등 출연배우는 이전과 달라졌지만, 연출자와 작가 등 제작진은 대부분 그대로다. 팬들 사이에선 배우 교체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시사회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시사회에서 공개된 1화는 기존의 〈별순검〉이 가졌던 매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지금 봐도 무릎을 칠 법한 개화기 과학수사대의 체계적인 수사기법이 곳곳에서 빛난다. 또 시청자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를 만끽하도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극 전개는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다. 매 화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짓는 형식 또한 무게와 부담을 줄인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가볍기만 한 건 아니다. 〈별순검〉의 진짜 주인공은 수사대원들이 아니라 사건에 얽힌 민초들이다. 사건의 비밀과 함께 하나하나 드러나는 민초들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 자체로 커다란 재미와 감동을 준다. 신분 해방을 외치며 길에서 담배 시위를 벌였던 백정들, 지금의 연예계처럼 계약금에 따라 기방을 옮겼다는 기생, 갑오개혁 이후 극심한 격변의 중심에 있었던 중인, 보부상 등 다양한 계층의 애환 섞인 얘기들이 에피소드마다 녹아들어 적잖은 무게감을 더한다.

반응이 좋으면 시즌 2, 시즌 3 등 시즌제로 이어갈 거라 한다. 문화방송 지상파에 정규편성하는 방안도 타진중이다. 일반적으로 지상파에 방송된 뒤 케이블방송을 타는 일반적인 드라마 공식을 〈별순검〉이 뒤집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

조선시대판 CSI - 영화 '혈의누'의 과학수사관 
 
고립된 외딴 섬 ‘동화도’에서 일어난 참혹한 연쇄살인사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조선시대 수사관 원규(차승원), 과연 그는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을까? 이는 영화 ‘혈의 누’의 예고편의 한 장면.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과학적인 수사 모습은 현대 범죄 수사 못지않았다. 또한 외화 시리즈인 ‘CSI(Crime Scene Investigation)’가 인기를 끄는 것도 꼼꼼한 증거수집 및 추리 과정이 첨단 과학기술과 어우러진 덕분이다.

그렇다면 과연 옛날에 과학수사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영화 ‘혈의누’에서도 잘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상당히 과학적인 이론에 근거를 둔 수사 기법들이 활용되었으며 법의학서에도 나와 있었다.  

조선시대에 법의학서로 유용하게 읽힌 것은 ‘무원록(無寃綠)’이라는 책으로서 원래는 중국 원나라 때 왕여(王與)라는 사람이 지은 것인데, 15세기 초 세종이 우리 실정에 맞게 다듬고 주석을 달게 해서 새롭게 신주무원록(新註無寃綠)으로 고쳐서 냈다. 그리고 18세기 말에는 영조가 이를 또 보완하여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으로 내놓은 바 있다. 원제인 ‘무원록’이란 ‘원이 없도록 한다’, 즉 죽은 자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도록 한다는 뜻이다.

당시의 검시 제도는 오늘날처럼 부검은 아니었다. 유교적 윤리의식 때문에 시신에 칼을 대어 해부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던 것이다. 그 대신 최소한 두 번, 또는 세 번까지도 각각 다른 사람이 검시를 반복하도록 해서 가능한 한 공정성을 기하도록 했다. 일반적인 검시 방법은 이랬다. 부검을 하지 않는 대신 시신의 상태나 주변 정황을 꼼꼼히 살핀다. 예를 들어 얼굴색도 진한 붉음, 검붉음, 누렇게 붉음, 시퍼렇게 붉음, 창백하게 붉음, 연하게 붉음 등 여러 가지 경우로 나누어 기록했는데, 만약 목이 졸려 죽은 자라면 정맥만 막히므로 피가 머리 쪽으로 몰려 얼굴색이 검붉게 된다. 이 경우 설령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타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정말로 목을 매달았다면 정맥과 동맥이 모두 막혀서 얼굴에 검붉은 울혈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검시 기술이 색깔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범인들이 살해 흔적을 위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령 흉기로 구타해 살해한 뒤 푸르거나 붉은 색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범인들은 꼭두서니 풀을 식초에 담갔다가 상처에 발라 상흔을 제거했다. 이에 대해 조선의 법의학서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흔이 의심스러우면 사또는 반드시 감초즙으로 해당 부위를 닦도록 하라. 진짜 상처가 있었다면 즉시 나타날 것이다.’ 이는 경험으로 알게 된 산과 알칼리의 중화 반응을 활용한 것이다.

독극물 검사법도 있었다. 유황이나 비소 등은 은과 반응하여 검은 막을 형성하는데, 바로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은비녀를 죽은 자의 구강과 식도에 밀어 넣은 뒤 색이 변하는지 관찰하여 독살인지 아닌지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도 잘 판단이 안 될 때에는 밥 한 숟가락을 죽은 자의 입이나 식도에 넣어 두고 종이로 봉해두기도 했다. 나중에 밥을 꺼내어 닭에게 먹여봐서 죽으면 이 역시 독사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물에서 발견된 시신이 정말 익사한 것인지 알아보는 방법도 있었다. 만일 입과 코에서 하얀 물거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죽은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익사한 사람은 급하게 호흡을 하려다가 물을 들이마시게 되는데 이때 기관지에 남아있던 공기와 점액이 물과 섞여 자잘한 흰 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남자가 익사하면 엎드린 자세가 되고 여자는 드러눕는 모양이 된다고도 했지만,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다. 남자의 양기는 얼굴에 모이고 여자의 음기는 등에 모인다고 본 것인데, 실제로는 남녀 모두 엎드린 상태가 된다고 한다. 머리와 사지 부분이 몸통보다 비중이 커서 아래쪽으로 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불에 탄 시신의 경우 현대 법의학과 마찬가지로 입과 코 안에 재나 그을음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재가 있다면 불에 타 죽은 것이고, 없다면 그 전에 죽은 것이다. 불이 났을 당시에 살아 있었다면 숨을 쉬면서 재도 들이마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잘 살피면 시신이 불에 타 죽었는지, 아니면 이미 살해당한 상태에서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위장되었는지도 판별해 낼 수 있었다.

그밖에도 조선시대의 법의학 지식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정확한 지식들도 적지 않았다. 친자감별법이나 처녀성의 판단법 등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경우도 있으며, 사람이 이빨로 물면 독이 스며든다고 본 것도 2차 감염 현상과 혼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원록의 내용들엔 당시의 과학을 총동원해서 엄정하게 범죄를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집약되어 있다. 비록 현대의 과학수사 기법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뒤떨어졌을지 몰라도 그 정신만은 지금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은 것이다. (글: 박상준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처: 한겨레에서 일부 발췌)
 
- 지은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정통적인 견해”인 이 프리드먼식 처방을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이 시작된 1960년대 초에 그대로 수용했더라면 “도요타는 기껏해야 구미 자동차회사의 하위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거나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 단언한다. 일본도 칠레·아르헨티나·남아공과 소득수준이 비슷한 3류 산업국가로 남아 그때까지 주요 수출품이던 견직물의 원료가 되는 뽕나무(누에의 먹이)를 누가 차지할 것인지 싸우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삼성이나 한국도 마찬가지.

- 세계가 평평하다거니 평평해야 한다거니 하는 것도 헛소리다. 지은이는 “경기장을 평평하게 해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그래야 ‘선진국’들처럼 될 수 있다는 설교는 “역사적 위선”에 무지하거나 그것을 감추는 사악한 짓이다. 오히려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왜냐? 평평한 경기장에서 하는 축구게임은 브라질 국가대표팀과 열한 살짜리 딸아이 친구들이 짠 팀이 맞붙는 것과 같고, 권투로는 중량급의 무하마드 알리가 경량급의 로베르토 듀란과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급수가 전혀 다른 팀들을 동일한 룰 속에서 싸우게 한다고 해서 그 게임이 공정한가? “자유시장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대답은 한마디로 “없다”다. 게임이 조금이라도 더 공정해지려면 약자에겐 국가보호와 보조금, 구제조처 같은 어드벤티지를 주는 핸디캡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말하자면 경기장을 약자가 골을 좀더 잘 넣을 수 있도록 강자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경기장은 그나마 평평하지도 않고 오히려 약자 쪽으로 기울어 있기 십상이다.

- 1841년 당시 ‘게으르고 도둑질 잘하던’ 후진국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며,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다른 나라들한테는 자유무역을 권장하는 영국을 질타했다.

- 이는 마치 여섯 살 난 아이를 하루빨리 직업 전선에 내보내는 것이 뛰어난 적응력을 지닌 강자로 키우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거나 같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나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뇌전문의나 핵물리학자 할 테니 너희는 구두닦이, 행상이나 해라는 얘기다.

- 지은이의 주장이 보편성과 설득력을 얻는 것은 강자들의 그런 주장이 허구이며 실상은 그와 정반대라는 사실을 역사적 전거를 들어 낱낱이, 구체적으로 폭로해내는 그의 놀라운 공부 내공 덕이다. 그는 영국·미국·일본·독일·프랑스·스위스 등 이른바 성공한 나라들이 얼마나 높은 관세 장벽을 쌓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상표를 도용하고 짝퉁을 만들고, 기술자를 훔쳐내고, 민영화를 거부하고 국가가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했는지를 구체적 사실로 입증한다. 강자들은 그래 놓고 자신들을 모방하려는 후발주자들에겐 “절대 안 돼!”를 외친다.

-  “사악한 삼총사”, 곧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과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대변자들이다. 1997년 한국의 ‘아이엠에프 사태’ 때의 처방전이야말로 강자들의 위선과 사악이 그대로 드러난 전형적인 사건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때 개방론자들이 대세를 장악한 한국은 아직도 그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 지은이는 경제발전에 걸맞은 인종이나 문화 유전자가 따로 있다거나, 공기업은 나쁘고 민영화는 좋다, 외국인 투자 규제는 악이고 자유화가 선이다, 제조업은 한물 갔다, 자본에 국적은 없다는 따위의 신자유주의 공식은 “틀렸다”고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심지어 지적재산 해적질이나 인플레나 부정부패도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힘세진 한국, 선진국 횡포 말려야”
지은이와 함께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의 아홉 번째 저서. 엮은 책(편서) 8권이 따로 있다. 첫 책 〈산업정책의 정치경제학〉(1994)을 비롯한 9권의 저서 가운데 〈쾌도 …〉(정승일 교수와 공저)와 〈개혁 …〉 두 권을 빼고는 모두 영어서적이다. “주류 경제학과 서구 사회의 위선을 공격한 것이어서 좀 걱정했으나 지금까지 반응은 의외로 괜찮았다.”

- 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주류 경제학 및 서구 비판에 동기가 됐을 법한 계기라도 있었느냐고 물었다. “처음 동아시아 산업정책을 연구할 때 굉장히 억울하다고 할까, 그런 심정이었다. 서구는 동아시아 개발독재가 자유시장경제였냐 아니냐로 한창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기본적인 사실들을 너무 잘못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잘못은 대충 넘어가면서 약자들의 잘못은 부풀리고, 말하자면 자기들 마음대로 소설을 쓰고 있는 게 너무 많았다.”

- 그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시장의 역동성을 중시한다. 개인소득이 연간 7천~8천달러 정도는 돼야 환경이나 생태도 생각할 수준이 된다며 빈국들이 그때까진 성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무역·시장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시장주의엔 단호히 반대한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누구도 편히 살 수 없으며 “부자들에게도 오히려 감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출처: 한겨레)
 
소비자기본법이 시행된 뒤 집단분쟁조정 첫번째 대상으로 선정된 충북 청원군 아파트의 새시 시공 분쟁과 관련해 사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결정이 나왔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10일 충북 청원군 오창면 소재 ㅇ아파트 주민 235명이 새시 시공업체인 선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요구에 대해 사업자의 계약내용 위반 사실이 인정된다며 새시 공사대금의 일부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배상금액은 공사대금의 8~10%이다.

집단분쟁조정제도는 개정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50명 이상의 소비자가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봤을 때 지자체나 소비자원, 소비자단체 등이 같은 피해 소비자 50명 이상을 모아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제도다.

ㅇ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2004년 4월 선우가 새시 설치 계약을 체결한 뒤 시공 과정에서 새시의 강도를 보완하는 중요한 부품인 보강빔을 설치하지 않았다며 재시공 또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사업자인 선우가 보강빔을 설치한다는 시공계약 내용을 위반했고, 소비자가 시공품질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한 표준계약서를 교부하지 않고 임의의 계약서를 사용했으며, 자재누락으로 부당이득을 취득한 점 등을 감안하면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날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 ‘남양i 좋은집아파트’ 주민 57명이 신청한 집단분쟁조정사건에 대해서도 조정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2호 대상에 오른 업체는 남양건설로, 분양계약서에서 약속한 독서실, 헬스장 등 주민 공동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며 소비자들이 시설 설치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