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1970~80년대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가 수사한 일부 재일동포 간첩 사건이 조작됐거나 조작됐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위원장 이해동)는 12일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조작 의혹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직접 조사한 4개 간첩 사건 가운데 77년 김정사 사건은 간첩행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고, 81년과 86년 각각 발표된 이헌치, 김양기 사건은 조작 개연성이 높다”며 “81년 김태홍 사건만 실제 간첩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정사 사건은 서울대에 유학중이던 재일동포 김씨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간부 겸 대남공작지도원인 임계성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혐의로 보안사에 체포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과거사위는 “김씨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한 정황이 뚜렷한데다, 유일한 증거인 영사증명서도 재일 중앙정보부 요원이 법적 공문서 형식을 가장해 보내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고무·찬양은 있었지만, 간첩행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헌치·김양기씨는 재일 공작지도원의 지령으로 국내에 침투해 국가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7년형을 선고받았다. 과거사위는 “이씨는 보안사에 불법구금된 뒤 1심 선고 때까지 4개월 이상 가족도 만나지 못했고, 김씨는 보안부대 지하조사실에 43일간 불법구금됐다”며 “불법체포와 구금, 고문 등 강압에 의해 조작됐을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이들 사건에서 당시 안기부가 피의자에 대한 불법연행과 불법구금, 불법도청, 망원 활용 등을 일상적으로 자행했다”며 “피의자들이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안사가 조사를 하고 마치 안기부가 사건을 조사해 송치한 것처럼 안기부 수사관의 명의를 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이종수 사건등 보안사가 수사한 12개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기록 등 관련 서류를 통한 조사를 했지만 간첩조작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로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항쟁’, ‘10.27 법난’ 등 과거사위의 8개 진상규명 사건 조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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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지난 대선에서 처음 도입된 국민경선제는 이번 대선에서 훨씬 보폭을 넓혔다. 한나라당도 제한적으로나마 도입했고, 원조격인 대통합민주신당은 모바일 투표까지 했다. 민주노동당도 대의원 60% 이상이 국민경선제 도입을 지지했으나 가결선인 3분의 2를 넘지 못해 시행하지는 못했다.

현실 정치에서 국민경선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개혁적 정치행위로 지지받는 듯하다. 이처럼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제도는 민주주의를 한단계 끌어올릴 것인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대답은 ‘아니오!’다. 그는 박찬표 목포대 정치미디어학과 교수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와 함께 쓴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에서 정진민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이 주창해 온 원내정당론과 국민경선제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이 제도는 후보자 중심주의를 강화하면서 정당과 의회 기능을 줄일뿐더러 하층과 사회적 약자의 정치참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논지다.

정 교수 등은 원내정당론을 통해 정당들이 소수 기간당원의 뜻에 따라 움직이면서 지지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뒤, 이런 괴리를 메우자면 정당이 원외정당적 성격에서 벗어나 의원들의 자율성과 정책역량 강화를 중시하는 원내정당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원 관리 등 정당의 원외조직 관장 사항을 제외한 정책 개발, 입법 등 나머지 정당 업무들은 정당의 원내조직에서 주도적으로 다루도록 하자는 것이다. 후보 경선에 일반 유권자를 참여시키는 국민경선제도 같은 맥락에서 지지한다.

최 교수는 정 교수 등의 이런 견해가 보수적 엘리트 지배구조에 파열음을 낼 가능성, 곧 ‘좌로부터의 접촉 감염’을 차단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달리 말하면, 이념 과잉을 우려하는 중산층 편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정당 조직을 통해 그들의 권익을 정치과정에 투입하려는 집단적 행위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갈등과 경쟁, 이념적 분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제어하려 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편향적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정치학자 로위 등의 연구 결과를 따, 미국 정당의 개방형 예비경선제는 노동자와 하급 중산층, 저학력 유권자, 소수 인종을 포함한 비엘리트층의 정치 참여를 위축시키고 중산층 엘리트들의 참여를 촉진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지적했다. 정당 기간조직의 역할이 약화되고 대중매체와 선거자금 동원력이 중요해지면서 주요 정당들의 조직 구조는 ‘후보자 중심-자본 집약적 정당’으로 변모해 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미국에서 예비경선제 지지자도 꾸준히 줄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위를 국민으로부터 직접 도출하면서 그 힘은 꾸준히 늘려 왔으나 그에 비례해 정당과 의회 역할이 줄어들면서 대의제 민주주의 성격은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어 현재 한국 정당의 성격을 포괄정당으로 이해하는 ‘원내정당론자’들의 관점에 맞서 이익갈등에 기반한 대중정당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고도로 산업화되면서 사회경제적 구조, 유권자들의 가치정향 등에서 탈산업사회 및 정보사회의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어 정당들이 이익 갈등에 기반한 대중정당이 아니라 포괄정당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고 노동 소외가 확대됨으로써 대중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견해다.
민주화에도 한국의 정당체제는 노동자를 비롯해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회집단들을 대표하면서 그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한 적이 없기에, 이들의 참여가 대폭 확대되고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넓어지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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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후보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울고 웃는다. 민심을 반영한 성적표이기도 하지만, 조사 결과가 다시 민심에 영향을 준다. 여론조사 수치를 인용해, “정동영이 20%를 돌파했다”, “이회창이 15%로 3등이라더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언론도 이런 수치를 별 고민없이 보도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수치가 정확히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론조사 수치를 읽을 때는 몇 가지 조심할 대목이 있다.
첫째, 질문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조사기관에 따라 제각각 지지도, 적합도, 투표 의향 등을 묻는다.

예를 들어, <리서치 플러스>는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1차 질문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좀 더 나은 사람을 고른다면’이라고 2차 질문을 한다. ‘적합도’를 묻는 것이다.
<한국리서치>는 ‘내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고 묻는다. 2차 질문은 ‘그럼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은 누구냐’다. ‘투표 의향’과 ‘호감도’를 묻는 방식이다. 열거하는 후보들의 명단도 순서가 다르다.

따라서 결과가 당연히 다르게 나온다. ‘가’ 회사의 결과가 50%였는데, 1주일 뒤에 ‘나’회사는 40%가 나왔다고 해서, 지지율이 10%포인트 떨어졌다고 하면 안된다. 비교하려면 같은 회사의 조사 결과를 가지고 해야 한다.

둘째, 같은 조사기관에서 같은 방식으로 조사를 해도 조사 결과가 일정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조사 결과가 ‘튀는’ 수가 있다. 특히 ‘무응답’ 관리가 어렵다고 한다.

최근 한 회사에서는 무응답이 전에 비해 너무 적은 비율로 나오자, 혹시 조사원들이 바뀌었는지, 설문에 문제가 없었는지 사후 점검을 했다. 그러나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 조사에서는 무응답이 적은 대신,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후보의 지지율이 모두 높게 나왔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읽을 때, 무응답 비율을 먼저 살펴보기도 한다.

셋째, 오차범위를 꼭 확인해야 한다.
전수조사가 아닌한 여론조사에서 오차는 불가피하다. 여론조사 기사에는 보통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등 ‘오차한계’가 반드시 붙는다. 신뢰도 95%를 목표로 할 때, 위 아래로 3.1%포인트씩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오차범위에서는, 30%를 얻은 후보가 25%를 얻은 후보를 앞섰다고 할 수 없다. 오차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 지금 쏟아지고 있는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률이 너무 낮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보통 10%~15% 수준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서구에서는 응답률이 30% 이하면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고 국내 여론조사를 비판한 적이 있다. 여론조사 회사 사람들도 “그런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언론사와 ‘헐값’으로 계약을 하다보니 단기간에 조사를 마쳐야 하고 당연히 응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표본 추출을 전화번호부에서 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휴대전화, 인터넷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았다.

그밖에, 자동응답장치(ARS)를 이용한 조사는 전화면접과 많이 다르다. 기계가 하는 것이라 응답률과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함부로 인용할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는 매우 유용한 ‘도구’일 뿐이지, ‘만능’은 아니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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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시청자 주권 시대’를 내건 시민방송 <알티브이>(RTV)가 개국 다섯 돌을 맞았다. 주류 방송과 맞서 대안방송과 대안문화를 지향한 시민참여 방송으로서의 5년의 성과와 과제를 살펴본다.

■ 5년의 성과=지난 5년간 시민사회와 미디어운동 전문집단이 프로그램 제작자로 널리 참여했다. 그 결과 <노동자, 노동자> <이주 노동자 세상> <나는 장애인이다>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긴 프로그램이 편성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사회적 소외계층에 매체 접근을 쉽게 해 참여와 소통을 적극 실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안문화 측면에서도 나름의 기여가 꼽힌다. <영화 날개를 달다>라는 프로그램은 주류 방송들이 할 수 없는 국내외의 독립영화를 꾸준히 소개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넓혀가고 있다.

<무한 자유 지대>는 시민참여가 가장 활발한 공모 프로그램이다. 공식적 심의 없이 영상콘텐츠를 선착순으로 받는다. 물론 특정 기업을 홍보하거나 폭력적·선정적인 것은 제외한다.
김천직 알티브이 편성팀장은 “과거에는 공모 양이 모자라 방송을 채우기가 어려웠다면 요즘은 신청 건수가 3배까지 급증했다”며 “하루에 들어오는 건수가 두세 편, 한달이면 50편 안팎이 된다”고 밝혔다. 양이 많아지면서 논란이 되었던 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알티브이는 촬영장비와 기자재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시민제작지원센터(CNC)를 운영한다. 그럼에도 지역별 신청 건수를 비교하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부산지역이 가장 많다. 프로그램의 주제와 장르도 생활과 문화 관련 공연 행사 등 아직까지 단순 촬영물이 많다.

알티브이는 전국 대상의 퍼블릭액세스 전문 채널로 출발했다. 미국·남미·유럽 등에서 퍼블릭액세스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그에 견줘 알티브이는 개국 당시부터 전국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송출되었다. 일부 케이블방송으로도 시청권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케이블에서 고가의 묶음에 끼워져 있기 때문에 인지도가 떨어져, 시민과 함께하는 방송이 되기에는 아직 산 넘어 산이다.

또 알티브이는 2년 전 <한겨레>와 함께 제작한 <한겨레 인사이드 현장>과 <조선일보>가 만든 <조선 갈아만든 이슈>라는 프로그램으로 기존 매체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시민참여 방송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논란에 휘말려 일부 시민단체와 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파문을 통해 알티브이는 기존 언론매체와 거리를 둔다는 편성 원칙을 다졌다.

■ 앞으로 과제는?=알티브이의 가장 큰 숙제는 재원 확보와 법적 위상 강화이다. 현재 시민방송 재단은 방송발전기금으로 연 15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 돈은 방송 채택료와 운영성 경비로 그동안 쓰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방송위원회가 방송 채택료로 기금 전액을 쓸 것을 요구해 알티브이는 자립적 재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알티브이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에 보류되었던 공익 채널로 선정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김영철 상임 부이사장은 “시청자 참여 분야의 공익 채널로 선정되면 전국의 케이블 에스오(SO)에 의무 송출된다”며 이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전국방송이 되어 케이블 사업자로부터 수신료를 받을 수 있어 재원 확보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밝혔다. 안건은 새달 2일 방송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있다.

알티브이가 방송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재정적 자구책 마련뿐 아니라 존재 자체도 모르는 시청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지도를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 프로그램 내용과 소재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금녀 상명대 교수는 “시민들이 미디어교육센터 등을 통해 교육을 받다 보니 제작한 영상물이 획일화되어 간다”며 교육 프로그램부터 다양성의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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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재야 세력이었지만, 이후 기존 제도권 정당에 가입하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정치인들의 최근 근황을 잘 소개하고 있는 기사입니다.

- 한 가지 못마땅한 점이라면, '운동권 출신 (제도권) 정치인'이라 총칭해놓고, 실제로는 주류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글쎄요.. 성한용 기자는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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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성한용 칼럼)

김근태 의원이 대선 출마를 포기한 것은 6월12일이었다. 그와 가까운 몇 의원이 만류했다. ‘세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김 의원은 불출마를 강행했다. 그 뒤 ‘지티(김근태)계’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인영 이기우 의원 등은 국민경선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다른 후보 캠프로 간 사람도 있었다.

지난 10월1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후보자 지명대회의 주인공은 정동영 후보였다. 이인영 의원이 대회를 진행했다. 후보 기자회견 사회는 이기우 의원이 맡았다. 그날 저녁 두 의원과 ‘지티계’ 당직자, 보좌관들은 장충체육관 앞 족발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분위기가 침울했다. 누군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김근태는 경선에 나서지도 못했다. 운동권 출신인 이해찬과 손학규는 저 꼴이 됐다.”

70~80년대에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통칭하여 ‘운동권’이다. 운동권들 중 일부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합법적인 공간, 주로 야당으로 들어가 안에서 싸우겠다는 명분이었다.

1988년 ‘평민연’(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1991년 ‘신민련’(이우정 신계륜 박우섭), ‘민연’(이부영 유인태 제정구), 1995년 ‘통일시대 국민회의’(김근태 심재권 천정배) 등이 제도권 정당으로 들어갔다. 여야가 바뀐 뒤 2000년·2004년 총선에서는 80년대 학생회장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임종석·김영춘·오영식·우상호·송영길·최재성 의원 등이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지금,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좌절감과 낭패감에 시달리고 있다. 선거에서 져 정권을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권은 여기저기서 ‘죄인’ 취급을 당한다.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독재와 싸웠다.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는 국가를 끌고 가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이목희 의원·54)

“2005년 대연정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연정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바람에 민주당이 살아났고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국민들은 더 나은 사회경제적 구조를 대안으로 요구했다. 단순한 생활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안이했다.”(이인영 의원·43)

“가치는 사라졌다. 비전은 창출하지 못했다. 세력만 남았다. 국민들은 우리를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본다. 그게 현실이다.”(조현우 국회의장정무수석·45)

운동권 출신들은 역사적 책무를 다한 것일까? 그들에게 더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

임채정 국회의장(66)은 요즘 주변 사람들과 많은 토론을 한다. 대략의 결론은 “비전을 찾아야 한다. 진보적 가치를 중심에 둔 새로운 성장담론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원식 의원(50)은 이렇게 말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바닥을 살피면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은 물로 이어진다. 지금은 몸을 낮춰야 할 때다. 자기를 버리고 시대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장기다. 희망을 접어선 안된다.”

하긴 해답은 언제나 치열한 고민 속에서 나온다. 그들이 과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성한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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