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을 거부한 호랑이는 어떻게 됐을까
[오마이뉴스 정아은 기자] 옛날 옛날 호랑이와 곰이 살았다.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인간이 되는 것. 호랑이와 곰은 천지신령께 열심히 빌었다. 제발 인간이 되게 해주세요. 천지신령은 답을 내렸다.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100일을 버틴다면 사람이 되게 해주마. 곰은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이 시험을 이겨내어 인간이 되어 단군을 낳았고 후세에 두고두고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참을성 없고 경솔한 호랑이는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 나가고 말았고 이후 다시는 사람들의 뇌리에 떠오르지 못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렇게 잊혀졌던 호랑이다.

 
▲ 제1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수상한 식모들>
ⓒ2006 문학동네
순종과 인내의 미덕을 갖추지 못한 호랑이는 비록 사람이 되어 건국 설화의 중요한 인물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후 사람에게 은근히 스며들어 호랑아낙으로 이어졌다. 이 호랑아낙들은 호랑이의 기를 받아 역사적 순간마다 물밑에서 중요한 작업을 해내며 근근히 맥을 이어갔다.

...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전날, 호랑아낙 여럿이 모두 한양으로 몰려와 궁궐 앞에서 통곡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군졸들이 창을 디밀어 호랑아낙들을 몰아내고 궁녀들이 그 자리에 소금을 한 바가지 뿌렸다.

비단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냄새만 기막히게 맡는 건 아니었다. 한일 합방이 이뤄지기 며칠 전부터 정신이 반쯤 나간 호랑아낙 몇몇은 가슴을 그러쥐고 경복궁 구위를 기어다니며 통곡하였다...


호랑아낙, 그리고 그 계보를 잇는 '수상한 식모들'은 역사의 저변에서 남몰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명성왕후 시해사건 때는 물론이고 연산군 때,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때, 광주민주화 운동 때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배후엔 항상 그들이 있었다.

무당이나 점쟁이 비슷한 존재, 현대에 들어서는 남의 집 가사일을 해주는 사소한 존재로만 여겨졌던 그들이 사실상 조직을 만들어 음모를 꾸미고 '복수'를 시행해 왔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신선하지 않은가.

그러나 줄거리만 들었을 때 상당히 신선하고 놀라운 소설 <수상한 식모들>(박진규, 제1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의 문을 젖히고 본격적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움과 기대는 의구심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결국 지루함과 실망으로 이어진다.

건국설화 속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았지만 이후 누구에게도 회자되지 않고 사라져 버린 호랑이와 부르주아 가정에서 대부분의 가사일을 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와 밀접한 연관을 맺지만 존재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식모'라는 존재를 연결지어 소설의 소재로 삼은 건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엉성한 구성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로 시종일관 이어져 독자들은 책을 덮으면서도 도대체 작가가 얘기하려 했던 바가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뚱뚱한 몸집을 가진 경호는 어느 날 집에서 '수상한 식모들'의 역사가 담긴 메모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추적해 가던 도중 친엄마도 이 식모군단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어느 날 경호는 그의 여자친구인 선재의 도움으로 마지막 '수상한 식모'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가 어린 시절 자신의 귀에 쥐를 집어넣었던 바로 그 식모라는 것을 알고 경악하지만 결국엔 그녀에게 설득당해 '수상한 식모들'의 역사 서술자로서 대필을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상한 식모들의 기나긴 역사와 그들의 숨겨진 비밀들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이 기발한 소재의 소설에서는 비만, 역사, 가진 자와 빈자, 혁명, 소외계급에 대한 다양한 암시와 묘사가 나온다. 가족관계와 성에 대한 고찰도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종류의 소재는 그저 소재로 머물 뿐이다. 이 소재가 소설화되려면 일단 등장인물의 성격으로 용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소재가 소재 자체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면에 반영되어 자연스럽게 분출되어야 매끄러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어느 한 인물도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해 있고, 호랑이와 식모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이 모호하고 인위성이 훤히 보이는 등장인물들 사이로 그저 가능성을 품은 채 둥둥 떠다닐 뿐이다.

거창하게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도(명성황후 시해사건,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등) 소재 자체만 화려할 뿐, 이야기 밖에서 겉도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그런 역사적 사건들과 호랑아낙, 수상한 식모들이 어떻게 개연성 있는 인과관계를 맺었다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이런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이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를 더욱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문학동네는 이 소설에 왜 소설상을 주었을까.

...수상한 식모들은 대부분이 완전범죄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보복의 모습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으니 꼬리를 잡기 힘들다. 그들이 좌지우지하는 건 개인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가정의 분위기를 손에 움켜쥐었다. 식사 때 올리는 음식의 맛, 주인집 식구들과의 애매한 친분관계, 실내에 감도는 맡을 듯 맡아지지 않는 수상한 공기의 촉감.

수상한 식모의 계략하에 이 가정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하지만 최악의 순간이 닥쳐오기 전까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식모를 내쫓는 사람은 없다. 소파의 장식보를 바꾸고 모피를 한 벌 사고 도배를 하고 애완동물을 바꾸지만, 그들은 문제가 식모에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심장에 벌집처럼 구멍이 빵빵 뚫린 것 같은 알코올릭 상태에 이르러서야 현실을 바라보는 판단력이 생긴다. 집주인은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사물이 두 겹으로 겹쳐 보일 때에야 비로소 수상한 식모의 본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인가. 또한 얼마나 예리한 통찰력인가. 식모가 하는 일은 단순한 일 같고 식모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한 가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동네가 상을 준 것은 이 작가의 이러한 통찰력, 그리고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호랑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잡아낼 줄 아는 상상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의 통찰력과 상상력을 보고 그 가능성에 상을 준 것이리라.

그러나 문학상이 과연 가능성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가능성은 지녔지만 매끄러운 이야기를 이루지 못한 작품들은 사실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작품의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이 작품의 참신함과 기발함을 장점으로 꼽았으면서도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 수상자는 먼저 작품을 읽었던 이들의 염려가 한낱 기우였음을 앞으로의 행보에서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 신경숙

... 부디 더 밀도 있는 작품으로 이 우려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주길. - 류보선


찬사 일색인 심사평 말미에 붙인 짧은 우려의 문장은 '주례사 비평'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심사위원들의 최소한의 자기방어막이란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제를 보고 책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문학상'이란 아직도 절대적인 가치에 준하는 무엇으로 각인되어 있다. 내용이 가볍다거나 기존의 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작품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가벼워도 얼마든지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고, 기존의 문법과 달라도 충분히 존재미학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다.

가벼운 것과 산만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참신한 소재를 가졌다고 해서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 부족이 가려지는 것도 아니다. 문학이 사라져간다거나 종이로 된 문자의 소멸을 이야기하기 앞서 문학계 스스로 문학상 선정에 엄정하고 성의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문학상'의 공정성과 권위에 대해 씁쓸하게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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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연구 권위자의 `코파기 예찬론`


오스트리아 폐전문의 프리드리히 비스친거 박사는 2004년 코를 후비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건강하고 행복하며 신체적인 균형을 이룬다고 발표한 바 있다. "손가락은 손수건으로는 닦을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코 속이 청결하게 유지되며 코에서 파낸 것을 먹으면 몸의 면역체계가 강화 된다" "현대의학계는 면역력 강화를 위해 매우 복잡한 수단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코를 후벼 그것을 먹는 행위는 자연적으로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준다"며 코 후비기의 장점을 역설했다.

청결하지 못한 행위로 간주되어 온 코 후비기 예찬론자가 또 있다. 바로 <코파기의 즐거움>(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2005)의 저자 롤랜드 플리켓 (Roland Flicket)이다. 일명 ‘코딱지 연구’ 권위자로 불리는 그는 성 코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코파기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코 풀기에 대한 고찰을 담은 논문 ‘후루룩, 카악, 퇘’를 1989년에 발표했고 현재 모교의 코 고고학과 명예 교수이자 옥스퍼드 코파막파 대학 특별 연구원으로 초빙된 저자의 코딱지 연구의 집결책 <코파기의 즐거움>은 패러디 농담과, 행위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주는 연구과정을 담았다.

이집트, 영국, 르네상스, 소련, 미국 등지를 거쳐 역사적 배경과 일화를 통해 코파기 역사를 살펴보고 코파기의 실제 기술, 예술작품과 시, 노래에 나타난 다양한 코파기 형태를 분석했다.

"모나리자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뭉크의 `절규`속 사람이 그렇게 절규하는 이유는 모두 코파기 때문이다"(본문 중)

뭉크의 ‘절규’가 코파기 때문이라니! 코파기 예찬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우스꽝스러운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코파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취미이자 오락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음지의 습관으로 홀대받아왔다. 그러나 자신의 콧구멍을 단 한 번도 후벼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돌아본다면 코파기를 부정하는 행위는 위선이며 가식이다.

이어 ‘마그나카르타, 귀족들의 콧구멍을 사수하다’ 편에서는 영국 윌리엄 국왕에서부터 시작된 코 파기 탄압을 담는다. 강박적으로 코를 후볐던 존 왕은 귀족들의 코 파기 원리를 수호하는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를 승인했다. 이는 코파기에 대한 일차적 해방이었다. 그러나 일부 평민들은 장미전쟁이 일어난 후에야 귀족들과 동등한 코 파기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인권 신장의 역사를 코 파기 행위와 연관지어 해석한 저자의 재치는 ‘코파기 실제편’으로 이어진다. 꺼내기, 뭉치기, 튕기기 3단계 기본기술과 콧물과 코딱지의 형성과정, 코파기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코피의 출혈과 콧병의 원인이 되는 코파기를 ‘저지’ 당해온 일반인들에게 실전코파기 과정은 유머러스하기 짝이 없다.

역사와 철학, 예술을 넘나드는 독특한 패러디가 주는 재미와 당돌함이 돋보인다. 믿거나 말거나, 따라하거나 말거나, 웃고 즐기는 가운데 이 흥미로운 연구와 자료 읽기는 끝난다. 신체일부분의 행위, 지저분함과 금지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코파기를 소재로 한 책의 부제는 ‘손가락 하나로 만나는 해방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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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1-13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봤던 카툰인데 다시 보니 재미있네요.
독특한 소재의 책들도 참많습니다.
 






[BS 뒷담화]⑨<마법천자문> (주)북이십일 김진철 상무

아이들에게 <마법천자문> 시리즈의 신간을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에 가까웠다.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 “마법천자문 10권 언제 나오나요”라는 질문이 쏟아졌고 급기야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주)북이십일의 교육사업본부인 ‘아울북’은 <마법천자문>10권을 2년간 만들어 내면서 400만부라는 놀라운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 시내 대형서점 아동서적코너에 들러서야 마법천자문의 열기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샘플북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진열돼 있던 마법천자문은 모조리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었다. 어른도 읽기 어려운 한자의 세계에 아이들을 초대한 <마법천자문>. 출판 기획을 맡은 김진철 상무(49)와 함께 신비한 <마법천자문>의 세계를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 출판일을 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김상무) (웃음)그 질문을 받으니까 얼마 전 ‘내가 20살이라면’이라는 잡지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나이 50이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결혼도 늦게 해 지금 첫애가 11살, 둘째애가 9살, 셋째가 6살입니다. 마법천자문은 3년 전에 기획됐는데 마침 우리 아이들 나이 또래가 주 고객층이라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아이들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죠. 바로 눈앞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우리 막내는 5살 후반부터는 마법천자문을 혼자 떼고 있습니다.

출판일은 82년부터 3년, 94년부터 3년, 2002년말부터 올해까지 대략 10년 정도. 중간 중간에는 다른 일도 했습니다. 학생운동으로 옥살이도 해봤고 오퍼, 개인사업, 인터넷 쇼핑몰, 수출, 잡지 일까지 다양하게 경험해봤습니다. 그래도 결국 내가 돌아올 곳은 콘텐츠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자)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출판기획자의 자리에 서게 한거네요.

김상무) 저는 제 일이 출판기획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혹자는 ‘컨텐츠 크리에이터’라고 하던데 아직 그 수준까지 부족하다면 ‘컨텐츠 기획’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싶습니다. 특히 마법천자문을 예로 든다면 만화책을 기획했다기보다는 또다른 종류의 새로운 놀이학습 패턴을 만들었다고 봐주었으면 합니다.

기자) 아울북은 어떤 브랜드입니까.

김상무) 2003년 말 마법천자문을 출간하면서 아울북이 출발했습니다. (주)북이십일의 에듀테인먼트 교육사업부로 지혜를 의미하는 올빼미라는 존재를 이용해 아울북이라는 이름을 지었죠.

기자) 마법천자문의 기획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김상무) 당시 기획팀이 있었습니다. 한자학습만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단순한 뭐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마법한자’라는 컨셉을 찾아냈었죠. 그 후로 모두가 흔들림 없는 자신감으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만화는 첫 작품이었는데 성과가 좋았으니 운도 따라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획 실무를 맡은 기획팀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만화가의 수고 역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많은 고비를 넘겨왔습니다.

기자) 출간시 기대했던 판매부수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김상무) 최소한 5만부를 넘으면 그 다음은 10만부는 되지 않을까라고 추측했습니다. (웃음)사실 우리의 야심은 2~3만부가 아닌 5만부였습니다. 5만부를 넘느냐 못 넘느냐가 베스트셀러 여부를 결정하는데 처음부터 5만부를 기본으로 생각했었죠. 그런데 출간 후 2주간은 하루에 10여부 밖에 나가지 않아 실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한자카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자) 판매부수의 변화조짐은 언제부터였나요

김상무) 직원들이 카드를 들고 초등학교 앞에서 직접 배포했습니다. 샘플북도 함께 배포했구요. 언론사를 통해 특이하고 기발한 컨셉의 학습만화가 있다고 홍보하면서 서서히 판매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0권이 2년에 400만부, 권당 40만부 판매라는 놀라운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기자) 마법천자문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입니까.

김상무) 공부한다는 부담 없이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공부` 하면 지겨움부터 느낍니다. 그러나 마법천자문은 이를 놀이로 풀어 한자에 대한 공포나 불안을 없앴고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한자를 알게 되면 세상을 볼 수 있는 힘도 생깁니다. 또한 엄마들의 소위`귀차니즘`을 해소해주는데 적합한 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주면 스스로 보고 놀면서 한자를 터득하게 됩니다. 다른 공부는 진도관리를 해줘야 하지만 마법천자문은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즉, 학습의 패러다임, 문화를 바꾼 것이죠. 이것이 가장 큰 힘이고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특별한 마케팅 기획 노하우가 있다면.

김상무) 직접 배포한 것도 요인 중 하나겠지만 제품의 메커니즘이 아이들의 기호에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카드도 유행하던 시기였고, 따라서 한자카드 자체가 아이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것이죠. 또한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많은 카드를 배포한 것이 초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주요했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공노하우는 엄마들의 시간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는 점일 것입니다.

기자) 출판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으실텐데..

김상무) (웃음)만화가하고 참 많이 싸웠습니다. 물론 서로 잘 만들자는 뜻이었는데 기다리는 과정이 힘들었던 거죠. 출간일이 늦어지면 독자들이 지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보통의 학습만화보다 어려운 마법의 아이디어, 마법부리기 좋은 단어들을 찾아내는 작업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마법천자문 초기에는 몇몇 학부모들이 20자밖에 안되는데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0자라는 사실에 대해 문제 삼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 학습지 비용 33,000원에 아이들은 16자를 배우게 되는데 그와 비교한다면 이견을 내기란 힘들죠. 아이가 하루 이틀이면 20자를 외우게 되는 기적의 학습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학습만화와 다르기 때문에 한번 작업한 사람이 계속 해야 하는데 성실하게 끝까지 만들어 준 만화가, 그리고 책을 사랑해 주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새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김상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사고능력입니다. 이를 키워 줄 수 있는 작품, 아이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고 학습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아울북은 학습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영역을 통해 증명해 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은 규모도 작고 시작에 불과하나 계획한 것들을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이뤄나갈 생각입니다.

나이 오십이 되서야 무언가 이뤘다고 생각하는 김진철 상무의 겸손함이 있었기에 <마법천자문>은 아이들의 눈높이까지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즐거움을 줄 마법을 꿈꿨다.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컨셉을 발굴해낸 아이디어와 기획력은 국내 학습만화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마법천자문>이 아이들에게 준 즐거움과 학습효과를 능가할 아울북의 `또 다른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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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1-13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5년쯤 생활하다보니 한자도 거이 다 잊어버리더라구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가장 고귀한 질병, `탐서광증` 걸린 사람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 규모가 2만3600여권에 시가 2천만달러(원화 약 200억원)에 이른다면 얘기가 다르다.

1980년대 스티븐 캐리 블룸버그(58)는 20년동안 워싱턴DC, 미국내 45개 주를 포함 캐나다의 2개주의 도서관 268곳을 순회하며 훔친 희귀본으로 개인소장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블룸버그 컬렉션`.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에 따르면 이 기상천외의 `장물` 실어나르기 위해 운송회사에서 19톤-12미터짜리 견인트레일러를 빌렸고 연이은 길이가 1000미터가 넘는 철제책장에 보관해야 했다고.

그는 "그의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그 물건이 얼마나 엄청난 차마 짐작하지 못했다"며 "포장용 종이 상자가 872개였고 그걸 다 끄집어내는 데만 모두 17명이 동원돼 꼬박 이틀 작업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책은 일종의 지식보관소이며 그 안의 지식과 예술은 당연히 누군가와 공유돼야 한다"

처음 책을 훔칠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블룸버그는 80권이 넘어서자 나름대로 책도둑으로서의 철학을 마련하면서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넉넉한 품안에 일부러 만든 주머니 속에 책을 숨겨나오던 블룸버그는 엘리베이터와 트럭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고 훔친 신분증으로 대학 조교수를 사칭하면서 `북 컬렉션`의 꿈을 이루어갔다. 하지만 그의 20년 절도행각은 FBI의 수사망에 걸렸고 결국 `블룸버그 컬렉션`은 해체됐다.

감옥에 들어간 블룸버그는 함께 수감된 마피아 두목이 "왜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닌 책을 훔쳤느냐"고 묻자 "나는 팔기 위해 책을 손에 넣은 게 결코 아니라 다만 책을 갖고 있을 생각이었다"고 대답했다. 마피아 두목은 그를 진짜 `미친 놈`으로 여겼다는 후문.

20세기 최고의 책도둑이라 불리는 블룸버그의 행각은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젠틀 매드니스>(뜨인돌. 2006)에 자세히 담겨 있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가장 고귀한 질병, 탐서광증(耽書狂症)에 일찌감치 푹 젖어버린 사람`이라고 한 표현을 빌려 `책에 미친 젊잖은 사람`들의 역사적 흔적을 더듬는다.

5년간에 걸친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1부에서는 고대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도서 수집의 역사를, 2부에서는 1980년대의 도서수집 현상을 주요 인물별로 소개하며, 3부에서는 방대한 관련 인명 사전을 실었다.

저자인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는 책 서문을 통해 "시대를 통틀어 다양하게 나타났던 이례적이고 열성적인 수집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역사, 문학, 문화 전반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보전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 사로잡힌 영혼들의 열정과 헌신이야말로 이야기의 주제"라고 덧붙였다.

1100여쪽이 넘는 이 역작은 출판평론가 표정훈, 소설가 김연수, 출판기획자이자 번역가인 박중서 등 `책에 미친 세 사람`이 3년만에 번역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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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자연은 어떤 존재일까. 서양 중심의 사유가 시작된 이래, 특히 근대 이후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각종 기술에 의해 인간의 이기는 감춰진 채 자연을 사람에 의해 정복이 가능한 대상, 혹은 인공을 초월한 힘으로 여겨왔다.

프랑스의 동물 사진작가 부부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담은 포토에세이집 <지구걷기>는 이러한 통념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이 책에 담겨있는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남극까지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이다.

이 책의 저자 롤랑 세트르와 쥘리아 세트르 부부가 바라본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공동체는 관조의 대상도 정복의 대상도 아니다. 그곳에 생명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운명인 셈이다. 왜 필자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저자들에게만큼은 '지구'가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프랑스의 알포르 국립수의학교를 졸업한 이들 부부가 선택한 삶이 바로 그 운명이다. 그들이 선택한 삶은 동물병원의 수의사 대신 동물 사진작가였다. 이러한 삶을 선택한 것은 우연히 참가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물보존 프로그램 때문이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수의학을 전공한 우리는 동물병원을 차리고서 가끔 바캉스를 이용해 여행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동물보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카메라를 들고서 자연을 취재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야생과 함께할 수 있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이들의 삶이 더욱 특별한 것은 이 험난한 삶의 여정을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첫째 아이 아리안느와 둘째 아이 코랑탱이 세 살 되던 해, 그리고 막내 마오가 생후 4개월 되던 때부터 이들은 자연 탐험에 합류했다고 한다.

<지구걷기>는 이러한 탐험의 결과로 맺어진 일종의 '가족 앨범'이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마다가스카르 남극대륙 북아메리카 유럽 등의 대륙과 섬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만난 다양한 생명체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한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이 단순한 기행집이나 사진첩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들이 생명체와 함께 했던 경험에 바탕을 둔다. 이들이 만난 생명체의 이야기는 차를 타고 움직이며 멀리 떨어져있는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사파리식의 여행담이 아니다. 직접 다양한 생명체를 피부로 접촉하고 함께 진흙을 묻혀가며 뒹굴었던 경험의 기록들이다.

책장을 넘기며 시선은 저자들의 세 자녀들에게 주목된다. 대부분 사진의 포커스가 그들에게 맞춰져있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처럼 행복한 유년기를 경험한 이들도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그 특별한 경험을 엿들어보자.

▲ <지구걷기> 겉표지
ⓒ2005 작가정신
아리안느가 달라고 떼쓰는 우유병은 자기 것이 아니라 원숭이 것이다. 물론 절대로 같이 쓰는 우유병은 아니다. 어린 비비원숭이는 리타의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 공동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아리안느는 별 문제없이 비비원숭이들과 친해졌지만, 그 무리의 일원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후에 만나게 될 원숭이들은 아리안느를 또다른 원숭이로, 그들의 친구로 받아들였다. (38쪽)

과연 이 아이들에게 '피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이 피박이 적어도 이 아이들에게 만큼은 더 이상 '나'와 '타자'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아니라 서로 접촉하는 통로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지구걷기>는 이 세 아이들의 행복한 유년기의 기록인 셈이다.

결국 긴 시간의 여행을 통해 그들이 얻은 교훈은 자연이 인공을 초월했으며 결국은 그 자체인 상생의 공간이라는 점이 아니었을까.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프리카에서 남극에 이르는 긴 여정의 기록인 <지구걷기>는 생명감 넘치는 아름다운 사진으로만 본다면 아주 귀중한 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이 책이 제작된 의도가 가족 앨범 성격의 포토에세이집이라고는 하나 다양한 대륙과 섬에서 만난 생명체의 기록인 만큼 각 지역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으면 더욱 알찬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혹 개정판을 발간하게 될 때 이러한 정보가 포함된다면 충실한 독자가 <지구걷기>를 읽어나가며 지도를 찾아보는 수고로움은 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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