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려면 듣기부터 제대로 배워라
 
[오마이뉴스 양승요 기자] "어디 말 잘하는 비법 좀 없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거의 매년 화술 관련 도서가 올라온다. 사람들의 말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탓이다. 2006년 역시 벽두부터 화술 관련 책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좀 엉뚱한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말 잘하고 싶은 분들에게 '경청'에 대한 책 두 권을 소개하고 싶다. 똑똑한 한국인이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잘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것=내 말 못하는 것?

한국인은 잘 듣지 않는다. 대화가 시험이라면 경청은 문제를 읽는 것인데, 우리는 '답' 생각하느라 건성으로 읽거나 심지어 읽지도 않는 셈이다. 틀린 답이 속출하고, 비효율적인 회의나 답답한 말싸움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듣는 것=내 말 못하고 기다리는 것' '남의 말을 들어주면 손해' '목소리 낮췄다간 모두 잃는다'는 피해의식이 널리 퍼져 있다. 즉 우리는 아직도 '듣는 것=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화가 됐다지만, 주먹이 말로 바뀌었을 뿐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독재 시절의 문화적 관성은 여전히 우리들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0~20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이제는 더 이상 말싸움의 논리로 대화에 임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손석희씨의 사례에서도 보듯, 사회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논리적인 화법이 인정받는 추세가 뚜렷해진 것이다(물론 목소리 높여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2006 21세기북스
<대화의 심리학>, 경청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책

주위 사람들이 화술에 대한 책을 물어올 때마다 필자는 제일 먼저 <대화의 심리학>을 추천한다. 화술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대부분 '말싸움'의 논리에 빠져 있는 반면, 이 책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말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를 분석해 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제대로 듣지 않아서 그렇다.

이 책은 우리의 대화 속에 지뢰처럼 숨겨진 '전제'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가 잘 모르는 내용, 서로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맥락을 무의식 중에 전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의외로 상대를 잘 모른다. 반면 습관적으로 추측하고, 단정하고, 감정을 폭발시킨다. 기다리고, 경청하고, 생각해서 숨은 지뢰를 제거하며 대화를 풀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상대의 감정과 의도에 대한 성급한 단정, 방어본능, 내 기준에 맞아야 진리라는 맹목성 등이 우리가 대화의 도로 위에 파묻는 '지뢰'이다. 이들의 실상과 위력만 알아도 대화가 변할 것이다.

까다로운 대화, 역발상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2006 이아소
두 번째로 <경청의 힘>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인간의 듣기 행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집필했다. <대화의 심리학>을 읽으며 좀 부족하다 싶었던 '경청의 기술'을 비교적 알차게 다뤘다고 판단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인간의 4가지 듣기 성향에 대한 분석이다.

<경청의 힘>은 인간은 대화하는 사람, 대화의 시간 여유, 대화의 내용성, 대화의 실용성 등 네 가지 가운데 한두 가지 요소에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한다. 이 관심사에 따라 듣기 성향이 갈리고, 대화의 스타일과 장단점도 뚜렷하게 구별된다(책 속의 체크리스트로 검사해 본 결과, 필자는 극단적인 시간 중심 성향이었다. 걸핏하면 시계를 보고, 느긋한 대화는 절대 못하는 그런 스타일).

필자의 판단으로는 관계 집착, 시간 중심, 행동 지향, 내용 선호 등 이 책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듣기 성향 테스트는 변별력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자신의 대화 실력 향상은 물론 상대방의 듣기 성향 파악을 통해 보다 유리하게 대화를 풀어가는 데도 실용적으로 보탬이 될 것 같다.

경청이 설득과 화술의 달인을 만든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1) 우리말 듣는 법도 배워? (2) 안 그래도 귀가 아프게 들어! (3) 남의 말 듣다가 내 말은 언제 해?'라고. 하지만 말을 잘하고 싶다면 스스로의 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이어진 안 듣는 문화에 어느덧 우리 자신의 '청력'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경청은 문제를 잘 읽고 심사숙고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분명 잘 듣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을 평가해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대화나 협상, 설득 역시 '말귀 밝은' 사람이 유리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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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식씨 별세로 본 <짱뚱이의 상추쌈 명상>
[오마이뉴스 위창남 기자] 반핵 환경만화가 신영식씨가 식도암으로 투병하다 향년 56세를 일기로 지난 18일 밤 9시경 세상을 떴다. 고인은 1971년 ‘소년한국일보’ 만화 공모전에 당선된 후 1980년대 중반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2004년 6월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은 그는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병원측의 권유를 뿌리치고 인천 강화군에 흙집을 짓고 생활해왔다.
     
     
반핵운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자신이 그토록 혐오한 방사능의 도움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이 환경교육을 위한 만화 자료와 핵 폐기장 반대운동에 앞장서 왔고 대표작으로는 <하나뿐인 지구> <깡통박사 찌노>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8년간 연재한 <짱뚱이 시리즈>가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진희와 2남이 있고 오수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스토리작가 최금락과 만화가 황재모가 고인의 문하생 출신이다.

말기 식도암으로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던 고인이 1년 반 이상 유지했던 것은 땅에서 난 자연 먹거리와 천연 항암성분 덕분이었다고. 고대 아유르베딕 속담에 ‘식사법이 잘못되었다면 약이 소용없고 식사법이 옳다면 약이 필요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건강을 생각해서 유기농으로 키운 채소가 인기인데 새삼 먹거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2006 열림원
평소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부부는 작품도 함께 한다. 부인은 글을 쓰고 남편은 그림을 그린다. 그 중에서도 <짱뚱이의 상추쌈 명상>(열림원)은 동화작가인 부인이 고인이 된 남편과 시골에서 살며 사시사철 먹는 음식들을 어린시절 이야기와 함께 써내려간 요리 에세이다.

이 책은 작가인 오진희, 자신이기도 한 어른이 된 짱뚱이가 어린 시절을 통해 자신의 추억과 새롭게 재회하는 세대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밥상에 올라오는 익숙한 음식들로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가족들 이웃들과의 이야기도 맛나게 풀어냈는데 소소하고 정겨운 추억이 책안에 가득 녹아 있다.

책에 소개되는 풋풋하고 소박한 먹거리들은 ‘조물조물’ ‘자박자박’ 등 정겨운 단어들로 인해 더욱 먹고 싶게 만든다. 봄에는 쑥국, 여름에는 상추쌈, 가을에는 가지버섯 볶음, 겨울에는 팥칼국수, 이렇듯 계절을 대표하는 음식들과 채소와 사람을 자연스레 비교하는 대목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참 부러운 사람이 있다. 상대가 누구든 늘 배려해주고, 조금 어눌한 사람의 말에도 귀기울여주고, 모난 사람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사람, 까다로운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특별히 튀지도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어느 자리에서든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는 부럽다. 채소도 그런 게 있다. 대한민국 모든 쌈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상추, 다른 채소에 비해 특별한 맛이랄 것도 없고 향도 그다지 별나지 않은 상추, 그러나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있으면 제일 먼저 씨 뿌리는 채소가 상추다. - ‘상추쌈 명상’ 중에서-

환경운동가답게 글 곳곳에서 자연 친화적인 저자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 된 사랑은 없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참살이 식단의 전형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과 흙집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아련하다. 책에 그림을 그렸던 고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열정을 바친 환경에 대한 사랑만큼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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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1-2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세계 최초로 말하는 돼지가 있다?! 'hello~'



세계 최초로 말하는 돼지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영국 선지가 보도했다.

선지에 의하면 자신의 돼지가 말을 한다며 한 농장주인의 믿기 어려운 제보가 들어와 직접 사우스 웨일스에 방문하여 돼지를 만나보았다고. 바로 주인공은 '마우스'란 이름을 가진 18개월된 돼지!

돼지 주인인 마이크(43)에 의하면 한달 전쯤 자신의 돼지 우리를 지나가던 중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계속 hello 소리가 들려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자신의 돼지 '마우스'가 계속 자신을 쳐다보며 hello를 연발했다는 것! 이후 이웃 주민들과 언론에 알려져 유명해 지게 되었다는 설명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선지는 말하는 돼지 '마우스'의 말을 자세히 들어본 결과 프랑스 액센트가 강한 hello(allo)를 연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인은 원래 '마우스'를 적당한 기회에 식용을 위해 도살할 계획이었으나 이제는 계획을 수정했다고 한다. 현재 음반 CD에 '마우스'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현지 라디오 방송국 등에 소개되는 등 큰 인기 스타로 부상을 하고 있다.

마우스를 만나 본 돼지 전문가에 의하면 인사말처럼 들리는 목소리는 원래 돼지 성대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아마 유전적으로 이상이 생겨 가능한 것 같다며 신기한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결국 이 돼지는 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도살 위험에서 자신의 생명도 구하고 큰 사랑을 받는 유명 스타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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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1-2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샬롯의 거미줄에 나오는 윌버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악마`는 한때 사람과 친한 장난꾸러기였다


12세기까지 악마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인간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우스꽝스러운 친근한 존재였다”는 흥미로운 이론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악마 : 천년의 역사>(박영률출판사. 2006)의 저자 로메르 뮈샹블레는 ‘중세 말기’에서야 악마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 악마의 이미지는 수도사와 민중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15세기부터는 ‘악마학’이라고 불리는 악마를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정의가 만들어지며 민중이 갖고 있던 신앙도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책은 “1400~1580년 경 사이에 악마학은 차후 세대들과 사회계층의 인식을 바꿔놓으면서 유럽 전형에 화형의 불길을 번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서양역사에 나타난 악마의 개념과 의미를 분석한 책은 악마를 ‘문화적, 역사적 존재’로 탐구했다. 기피와 공포의 대상인 악마를 역사와 시대문화 안에서 끈질기게 탐구한 도발적인 시선은 분명 새롭다.

저자가 말하는 ‘악마학’의 기본틀은 ‘마녀집회’ ‘밤’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는 것’ ‘악마와 직접 교류하는 것’ 이다. 이들은 구체적인 이단 행위의 대표자들로 간주되곤 했다. 마녀집회란 비밀스럽게 조직된 이단 종파의 야간모임을 가리키는데 고발된 귀족들은 자신의 이단적인 책을 사용해 중개자의 역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자료에 따르면 여자들 중 하나는 다른 책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 동료들에게 그 책을 읽어주면서 충고를 하거나 죽음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데 “두 시간만 참으면 진정한 순교자로 죽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단들과 맞서게 된 종교재판관과 교회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점점 더 불안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은 악마 역사의 주요 변화 시기를 ‘1480년대’로 지목한다. 주술에 대한 재판의 수가 절정에 달했고 악마주의에 대한 이론이 교황의 직접적인 지지를 얻게 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교황 이노센트 8세는 1484년에 칙서를 내려 독일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그곳에서 증가하는 마녀들에 대한 추방을 강화하라고 권유했다.

두 명의 도미니크 수도사 인스티토리스와 슈프랭어는 이 문제에 대해 조사를 벌였고 1487년 <주술의 해악>이라는 ‘최초의’ 마녀사냥에 대한 개론서를 썼다. 도서관 통계에 따르면 이 책은 1520년까지 15판이 인쇄됐고 1497년과 1517년 파리에서 2권 1519년 리용에서 1권이 나온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라인강변의 모든 도시들과 뉘른베르크에서 나왔다.

유럽의 대대적인 마녀 사냥은 신성 로마제국에서 1580년 이후부터 폭발했다고 한다. 1540년 초 칼빈과 마찬가지로 루터도 마법사에 대한 사형을 인정했다. 이 시기의 10여년 동안 루터파인 덴마크에서는 50여명이 처형됐고 오스나브뤽의 옛 교구에서는 소송이 벌어졌다. 루터는 악마가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신교의 악마문화가 16세기 말 독일에 넓게 전파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책에 따르면 악마학의 발자취는 1520~1525년 사이에 끊어졌다가 한 세대 후인 신교 세상에서 다시 출현했다. 신도들을 교화하기 위해 루터파 목사가 쉽게 쓴 <악마의 책>이 16세기 중엽 신성로마제국에서 악마학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1580년부터 마녀를 규탄하는 중요한 책들이 쏟아졌고 악마의 이교도들을 몰살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신학자와 판사들은 앞 다투어 자신의 지식을 경쟁했다고 한다.

저자는 악마에 대한 개념이 ‘현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날카로운 분석을 내리고 있다. 악마가 두려움과 불안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구체화 되어야 했고 분명한 확인이 필요 했는데, 악마의 피와 살에 해당 되는 것이 ‘재판’ 이었다. 수많은 마녀사냥, 주술과 관련한 소송들이 봇물 터지 듯 터지고 사형이 집행되며 악마의 존재는 인간에게 보다 구체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역사학자의 시선은 악마의 존재를 시대 비극과 연결짓는다. 사형과 종교다툼이 빈번하던 서양역사에서 악마는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탐구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데 이어 대중문화와 영화라는 분야를 통해 현재의 악마 이미지도 분석했다. 스탠리큐브릭, 히치콕의 영화를 통해 표현된 악마의 환영과 광고, 만화, 책에 등장한 20세기 악마의 모습을 담았다.

아쉬운 점은 ‘번역’에 있다. 번역에 있어 외국어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국어 실력이다. 통일성을 잃은 매끄럽지 못한 번역은 독자의 읽기와 이해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모든 번역자와 편집자는 주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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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의 경계 넘나든 광기의 화가, 카라바조
[오마이뉴스 안소민 기자]
 
▲ 책표지
ⓒ2006 평단
2000년 하순. 저자 김상근은 16세기말 중국 명나라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를 연구하기 위해 로마의 예수회 고문서 보관실에서 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카라바조의 작품을 발견한다. 그로부터 저자는 카라바조의 그림을 직접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카라바조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일까.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16세기 이탈리아의 화단을 주름잡았던 천재화가. 기존 화풍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기법과 독창적인 해석으로 기존 화단에 새 바람을 몰고 왔던 인물.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화폐에 등장할만큼 유명한 예술가로 추앙받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낯선 이름이다.

이 책 <이중성의 살인미학 카라바조>는 16세기 이탈리아 미술계에 한 획을 그었던 카라바조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카라바조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국외에 비해 국내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형편.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국내의 미술학도는 물론이고 미술애호가들에게도 카라바조의 작품세계를 안내하는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이 책은 카라바조의 생애를 크게 무명시절, 카라바조 일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델 몬테 추기경을 만난 시기, 종교화가로 널리 이름을 날리던 시기,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하던 시기로 나뉘었다. 그리고 각각의 시기에 해당되는 작품과 그 태동배경, 작품의 특징을 설명해놓았다.

가장 속된 것에서 성스러움을 찾다

당시의 종교화는 천군천사가 등장하고 예수나 성모마리아와 같은 성서의 주인공들은 무조건 성스럽고 아름답게 표현되는 등 속된 것과는 거리가 먼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들로 표현되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미켈란젤로, 틴토레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카라바조는 단 한번도 그러한 종교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매우 일상적인 풍경들과 평범한 사람들을 성화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달 수도 없는 뒷골목 매춘부, 건달, 협잡꾼들이 성화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당시 종교계가 받은 충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 <푸른과일을 깎고 있는 소년> 카라바조의 초기작품(추정)이다. 짙은 어둠은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테네브리즘 양식의 작품이다.
ⓒ2006 평단


▲ <성모 마리아의 승천>(안니바레 카라치作)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고 있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화풍의 작품. 아래 카라바조의 그림과 비교해보시라
ⓒ2006 평단


▲ <성처녀의 죽음 혹은 영면> 카라바조는 당시 물에 빠져죽은 매춘부의 시체를 이용하여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표현했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으로 인해 거센 항의를 받으며 '종교화가'로서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 카라바조의 작품 중 가장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
ⓒ2006 평단
그러나 속된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승화시킨 카라바조의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카라바조는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저 사람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 했다. 성과 속이 따로 없다는 의미였다. 성안에 속이 있고 속안에 성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성스러움과 속됨을 동시에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카라바조 예술의 위대한 점은 속에서 진정한 성을 발견하고 성을 저 높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우리가 사는 세속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렸다는 데 있다."(348쪽)

▲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첫 번째 판. 로마의 허드레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낡고 초라한 옷차림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가운데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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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마태의 소명> 성 마태의 소명이 교회나 성당과 같은 성스러운 곳이 아닌 로마시내의 평범한 식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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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후기 종교화를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살인, 죽음, 광기가 도처에 깔려있다. 대부분 성서 속의 순교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아무리 순교라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깔린 작품의 분위기는 살벌하고도 괴기한 구석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어떠한 평을 내렸을까.

"카라바조의 종교화속에 깃든 살인미학은 16세기 카톨릭교의 반종교개혁적인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에의 유혹에 흔들리는 교인의 마음을 성서에 등장하는 성자들의 확고한 믿음과 순교의 전례를 통해 각성시키려하고 있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카톨릭 교회가 요구하는 반종교개혁적인 시대정신에 머물러있지 않았다...성서를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344쪽)

죽음 본연의 실체에 접근하다

순교에 직면한 순교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는 의미이다. 괴로워하는 순교자, 찡그리거나 두려움에 떠는 순교자의 모습을 표현했으며 아울러 고난을 당하는 예수의 모습에서도 그의 신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카라바조는 인간으로서의 ‘죽음’ 본연의 실체에 접근했다. 그는 죽음을 종교적으로 미화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 <세례요한의 목을 쟁반에 들고 있는 살로메> 살로메(빨간외투 입은 여자)의 얼굴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카라바조의 고뇌를 담고 있다.
ⓒ2006 평단


▲ <성 제롬> 두 번째 판. 성제롬은 전통적 학자 이미지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메멘토 모리의 은둔 수도자로 재탄생되었다. 오른쪽의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2006 평단
카라바조의 작품이 당시의 종교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만큼 작품제작의 뒷배경이 된 종교, 사회적 분위기를 상세하게 소개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 저자의 노력이 한껏 느껴진다. 저자는 종교개혁이 발생했던 당시의 상황과 이에 맞선 카톨릭 교회와의 갈등 하에 탄생된 카라바조의 종교화들을 섬세하면서도 예리하게 분석하고 해석했다. 여기에는 신학을 전공한 저자의 약력이 한몫했다.

인간 내면에 감춰진 추악함을 드러내다

카라바조의 작품세계는 테네브리즘으로 일괄 요약할 수 있다. 테네브리즘은 명암의 극적인 대비를 특징으로 하는 17세기 양식으로 화면의 태반이 어두운 색조로 표현되고 간접광으로 인해 밝은 색조로 묘사된 형태와 날카롭게 대비되는 것이 특징이다.

카라바조의 거의 모든 작품이 이 테네브리즘으로 표현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테네브리즘은 그가 추구했던 성스러움과 속됨, 죽음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이것이 카라바조의 그림이 지닌 힘이다. 그는 종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대 카톨릭교회가 요구하는 반종교개혁적인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었고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인간의 내면세계를 조망하는 위대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카라바조 종교화에서 볼 수 있는 살인미학은 바로 우리 내면에 감추어져있는 추악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346쪽)

▲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다윗과 골리앗의 두 얼굴에서 자신이 지닌 삶과 죽음의 이중성, 종교가 지닌 폭력성을 동시에 표현하는 '이중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2006 평단


▲ 다윗의 표정 확대사진. 다윗의 슬픈 표정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응징하는 카라바조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2006 평단
책의 분량이나 성격면으로 봤을 때 비전공자가 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150여 점이 넘는 도판과 상세한 해설, 각주, 인용문 등으로 인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6세기 서양사나 종교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또한 저자의 설명이 아닌 독자들이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풍부히 소개되어있어 감상의 묘미를 더해준다.

카라바조, 그는 누구인가?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 부친과 조부를 전염병으로 잃고 고아가 된다. 생계를 위해 13세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 여러 화실을 거쳐가며 근근이 생활하다 25살 되던 해, 삶의 전환점이 될 델 몬테 추기경을 만나 본격적인 종교화가의 길을 걷는다.

델 몬테 추기경의 신임을 얻으며 이탈리아내 가장 유명한 종교화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다. 종교화가로서 부와 명예를 쌓으며 승승장구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광폭하고 난폭스러운 성질로 인해 사회적인 문란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부유한 상류층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다. 1606년 사소한 말다툼끝에 살인을 하고 나폴리로 도주하다. 4년여에 걸친 도피생활 와중에도 작품을 발표하고 여전히 인기높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유지했다.

1610년, 그의 나이 40세에 교황의 사면을 받고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열병을 앓다 영욕(榮辱)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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