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리된 평화/존 놀스/문예출판사]전쟁의 와중에서 거짓된 우정의 결말, 끔찍해라.

 

분리된 평화는 미국이 자랑하는 소설가 존 놀스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다니던 무렵의 경험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1942년 여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의 열여섯 소년들의 분노, 폭력, 증오를 담은 변질된 우정을 그리고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우정과 변절의 아픔을 겪으며 보다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한 십대 남자아이들의 우정과 질투, 전쟁 같은 그들만의 리그다.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청소년 필독서다. SAT시험준비 필독서, 고교논술준비 필독서이기도 하다. 윌리엄 포크너상, 로젠탈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1972년에는 영화로, 2004년에는 TV드라마로 나왔다고 한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명문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여섯 소년들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동시에 가장 비참한 이야기다.

 

포레스트와 피니어스는 기숙사 같은 방을 쓰는 절친이다. 피니어스는 매력적인 만능 스포츠맨인데다가 통솔력까지 있기에 누구나 그의 이야기에 압도되어 따른다. 하지만 포레스트는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목적인 모범생이다. 포레스트는 공부에 충실하고 싶지만 늘 피니어스의 강권에 따르고 만다. 피니어스의 변덕과 무질서, 일방적인 규칙 정하기, 스스로의 자존심, 압도적인 포스 때문에 아무런 말을 못 할 뿐이다. 그래서 늘 피니어스에 대한 내부적 불만을 갖고 있고 그의 주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질투심마저 느끼고 있다. 하지만 피니어스는 이런 포레스트의 분노와 질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무작정 분노를 억누르기만 하면 언젠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법이다.

피니어스는 여름 학기 자살클럽을 만들어 비밀 조직을 만들고 또래들을 모은다. 그리고 이 비밀조직에 속하려면 데번 강의 높은 나무줄기 위에서 멋지게 다이빙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운동신경이 발달한 피니어스는 멋지게 다이빙에 멋지게 성공한다. 포레스트는 나무 가지에 올라서면 늘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하지만 피니어스의 위압에 끌려, 자존심 때문에 겨우 다이빙을 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보다도 운동 신경이 좋다는 피니어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면서 부상을 당하고 만다. 그러자 아이들은 사건의 진실을 추궁하게 된다. 포레스트는 자신이 나뭇가지를 흔들었기에 피니어스가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바람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는데......

 

이후 학교는 두려움과 우울함의 장소로 남게 된다. 수직적으로 꽉 짜인 학교 건물들이 주는 위압감, 좁은 창문과 반들반들할 정도로 닦은 목재들마저 전장의 부위기를 풍기는 교정, 그런 전쟁의 연속선 위에 있는 학교 분위기가 암묵적 폭력을 조장하며 아이들의 미래 희망마저 꺼버린다. 전장의 기운은 온 나라를 전염시키는 걸까?

 

그 시절 강가의 나무는 이제 분노에 찬 나무, 폭력에 의한 죽음을 간과한 나무, 진창 같은 하교를 방관한 나무가 되어 그 대가를 치룬 듯 늙고 쪼그라져 있다. 학교 규칙을 위반하던 소년들은 이젠 사라졌다.

 

그때도, 지금까지도, 심지어 보스톤 교외의 빽빽이 들어찬 그의 가족 묘지에 그가 누운 관이 내려지는 걸 지켜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것이 나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장레식에서는 누구도 울지 않는 법이다. (226)

 

 

교사들마저 대부분이 전장으로 가야했던 시절, 학교에 남은 아이 몇몇이 억지로 수업을 들어야 했던 시절, 거짓된 우정과 분리된 평화가 우중충하게 교정을 활보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마치 먹구름 가득한 잿빛 하늘같다.

 

기숙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이기 때문일까? 자신의 존재를 알릴 방법, 자신의 스트레스와 갈등을 해소시킬 방법을 찾지 못해서 일까? 십대들의 죽음 앞에서 무모함과 참담함, 낭패감이 몰려온다.

 

일탈이 주는 묘한 짜릿함에 흥분하는 아이들, 겨울의 암울함과 끝나지 않는 광란의 전쟁이야기, 경쟁과 질투 속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의 영혼, 햇살마저 긴장시키는 잘못된 우정, 음울한 오후의 공기, 쾌락과 사치보다 비애와 고통은 넘쳐나는 이야기다. 전쟁에 휩쓸리며 질투와 분노, 악의로 채워지는 기숙학교의 이야기, 거짓된 우정의 결말, 참담하고 끔찍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샤오홍의 황금시대/추이칭/자음과모음]사랑과 문학으로 자유롭게 살자간 천재 여류작가, 샤오홍

 

평생을 마음가는대로 질주하며 과감하게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한 것처럼, 샤오홍은 작품도 그러했다. 루쉰의 도움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루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낭만적인 색채가 가득한 그녀의 인생이 루쉰과는 또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혼을 담아 글을 썼다. 고난으로 발버둥치는 여성의 생애를 글로 담아내고, 집단의 황폐해진 영혼을 낱낱이 해부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민족 전체의 정신세계를 구원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다. (331)

 

역동의 근현대사를 살다간 중국의 천재 여류작가 샤오홍. 영화 황금시대에서 탕웨이의 연기로 환생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봉건적인 굴레에 맞서 저항해온 신여성이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과 독립적인 삶을 갈구한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다. 일생동안 자유로운 사랑, 스스로 원하는 사랑을 갈망했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그 사랑의 결말은 씁쓸하기만 했던 여자다.

 

 

 

하지만 다행히 이십대 초반에 만난 문학적 스승인 루쉰의 영향으로 잠재된 문학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루쉰과의 만남은 그녀 일생에서 가장 통하는 만남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와 딸 같은 문인의 관계이지만 사상을 이야기하고 문학적 도움을 주던 스승이었으니까. 누구보다도 대화가 잘 통했기에 그녀의 문학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였으리라. 덕분에 그녀는 31세의 짧은 일생동안 무려 100여 편의 작품을 창작해냈다.

 

샤오홍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샤오홍은 1911년 헤이룽장 성 후란 현의 한 마을에서 지주집안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은 장나이징이었다. 생활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직 할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서 자랐고, 할아버지로부터 시를 배웠다. 문학을 좋아했던 엄마의 이른 죽음 이후 그녀는 계모의 무관심 속에 성장했다. 그리고 유일한 사랑의 통로였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갔다.

 

열세 살의 나이에 부모들 끼리 왕언지아와의 혼사를 결정했지만 그녀는 강압적인 결혼을 피하려고 가출을 시도한다. 사실은 집안과의 의절이었다.

 

우리는 평생 그렇게 남의 말만 들으면서 살 수 없어요. 항상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야 해요, 우리 세대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는 가능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세대를 이어 용감하게 일어나 그들에게 저항하기만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58)

 

그녀는 스무 살이 안 된 나이였지만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기를 원했던 자유주의자였다. 부모들이 맺어주는 봉건적인 혼사를 마다하고, 술과 담배, 자유와 반항,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여자가 되어갔다. 이후 그녀가 스스로 찾은 첫 번째 사랑은 유부남인 루쩐쑨이었다. 하지만 루쩐쑨이 떠난 후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만난 두 번째 남자는 그토록 혼사를 거부했던 왕언지아였다.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결혼이 싫었고 관습에 순종하기 싫었던 샤오홍은 왕언지아의 진실한 모습에 끌려 동거를 시작한다.

 

결혼에서의 도피가 결국 결혼 상대자였던 왕언지아와의 동거라니. 때로는 신중한 고민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행동한 그녀는 자신이 운명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언지아는 임신한 그녀를 두고 떠나게 된다.

그 이후에 샤오홍은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밀린 여관비를 해결하고자 샤오홍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보고 찾아온 샤오쥔과의 만남은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샤오쥔은 그녀의 방에 나뒹구는 그림과 글, 그녀의 말투에서 초라한 여인의 반짝이는 영혼과 외모의 훌륭함, 말투의 사랑스러움에 끌리게 된다. 샤오쥔은 샤오홍과의 첫 만남에서 사랑에 빠진 것이다. 서로 성격은 달랐지만 방랑자적인 기질, 자유로운 가치관이 서로 통한 것일까. 샤오쥔을 만나면서 나이징의 어릴 적 이름을 버리고 샤오홍으로 살게 된다. 무엇보다도 신문사에 있었던 샤오쥔의 도움은 샤오홍의 천재적인 문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작가로서의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1933년에는 두 사람의 글을 묶은 합본집인 발섭을 출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남은 이별을 낳는 법인가. 끈끈한 문학 동지였던 두 사람은 사랑과 애증을 반복하게 되면서 결국 헤어지고 만다 6년의  동거기간동안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루쉰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상하이로 옮겨가 루쉰을 만나면서 문학적 가르침을 받으며, 문인들과의 교류,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상하이에서의 루쉰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피는 계기가 된다.

 

당시에 루쉰의 도움을 받은 문학청년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루쉰과 그렇게 가까워지고 루쉰이 강력히 추천할 만한 작품을 쓴 사람은 오로지 샤오홍뿐이었다. (288)

 

애정결핍이 심한 샤오홍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늘 애정을 얻으려고 했다. 루쉰과의 만남은 샤오홍의 정신적 안정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지해줌으로써 문학 인생의 획을 긋게 된다. 사오홍은 이미 후란 강 이야기를 자비로 출판했다. 루쉰은 사비로 사오홍의 생사의 강을 출판해줄 정도로 샤오홍의 문학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샤오쥔과의 이별 후 샤오홍은 동향 후배인 두안무홍량과 사랑에 빠지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처음으로 법적인 부부가 된 것이다. 두안무홍량은 때로는 유약해보이고 때로는 자존심이 강한 그녀를 존중하고 인정해 줄줄 알았기에 그런 그에게 빨려든 것이다. 혈기 왕성하고 남성 우월적이었던 샤오쥔에 질렸던 샤오홍에게 두안무의 부드러움은 그녀에게 위안을 준 것이다. 사사건건 트집 잡았던 샤오쥔에 비해 두안무는 그녀의 재능과 문학성을 높이 사며 그녀를 두둔해주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이 트라우마였을까. 그녀는 두안무의 문학적 지지에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 또한 두안무가 문학계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쓰게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배려와 존중으로 이어진 사랑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공습, 전쟁의 위협은 그녀의 안정적인 삶을 망가뜨린다. 충칭, 산시, 홍콩으로의 피난살이는 그녀의 폐병을 심화시키게 되고…….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그녀는 의사의 오진으로 수술이 잘못되어 결국 3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가 죽기 전에 44일을 함께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 준 마지막 남자는 동생의 친구인 뤄빈지였다. 뤄빈지는 문학을 꿈꾸는 청년이었기에 샤오홍이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뤄빈지의 지지와 위로는 그녀의 마지막 삶의 햇살이었다. 지나온 날들이 파란만장해서일까 많은 시련으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샤오홍에게 뤄빈지는 늘 예쁘다는 말로 설레는 말을 던져 줄 줄 아는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문학적인 존경을 담아 토론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 친구이자 제자였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병실을 지켜줌으로써 마지막 인생의 동반자로 남은 남자가 되었다.

 

 

샤오홍은 세심한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문인이었다. 사색을 즐기면서도 내면의 반항적 기질을 가진 저항주의자였다. 주관이 뚜렷한 자신의 안식처를 스스로 찾아다닌 방랑자였다. 아름다운 결말은 없었지만 늘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였다. 여성 해방의 희망을 안고 스스로 돌파구가 되고자 했던 페미니스트였다. 가부장적인 제도, 구시대의 폐쇄성과 수동성을 단호히 거부한 자유주의자였다.

 

할아버지의 무한대의 사랑, 남자들과의 애증적인 사랑이 그녀의 작품을 빚지 않았을까. 정에 굶주린 모습, 사랑에 굶주린 모습, 무엇보다 문학적 인정에 굶주린 모습에서 그녀의 허기를 보게 된다. 그녀의 삶을 보며 자유, 사랑, 문학적 열정, 뛰어난 재능, 인정 등 모든 것에 굶주린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슬픈 결말을 맞이한 그녀의 짧은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녀의 작품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 탐 철학 소설 14
김경윤 지음 / 탐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가다/김경윤/]개그맨 같은 조선 선비의 흥미진진한 여행기...

 

 

한 편의 여행기를 맛깔나게 읽을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도 행운이다. 그것도 200여 년 전의 여행기를 말이다. 맛깔난 여행기의 주인공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너무나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부끄럽게도 전체적으로 읽기는 처음이다. 물론 오리지날이 아니고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줄이고 각색한 소설 형식이다. 읽을수록 개그콘서트를 보는 느낌이다. 깔깔대고 호호거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박지원이 우울증을 고치려 저잣거리에 나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니, 수다쟁이가 따로 없다.

   

 

 

 

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허생전, 양반전, 열하일기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실학자이자 북학파다. 조선 영·정조 때 선비다. 당시 지배권을 쥔 노론에 속했지만 과거시험에서 그림을 그려내거나 백지를 낼 정도로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탑골 근처에서 백탑파와 함께 이야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그렇게 신분을 뛰어넘는 교류를 즐겼다고 한다.

 

 

 

열하일기는 양반들이 청나라를 배척하던 시기인 정조 4년에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청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문물과 발전상을 담은 여행기다.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과 소소한 일화들까지 담은 일기 같은 견문 기록이다.

 

 

1780(정조 4),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의 만수절(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떠나는 사신단에 낀다. 사신단 281명의 5개월이 넘는 사행 길에는 굶주림과 병, 추위와 죽음이 함께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하지만 박지원의 여행은 내내 여유와 농, 관찰과 깨달음, 친화력과 가르침이 넘친다.

 

-강산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자네는 강산이 먼저라고 생각하는가, 그림이 먼저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강산이 먼저겠지. 그렇다면 그림이 강산처럼 아름답다고 말해야지. 강사니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 비슷한 것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것일 뿐, 진짜는 아닐 테니까.(57)

 

옛날 충신 백이와 숙제가 머물렀다는 고죽사를 방문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던 어떤 이의 말에 웃으며 대꾸하는 장면이다. 그의 농에 길들었는지 마부까지 농을 칠 정도다.

 

나는 지금 만리장성 밖에 홀로 나갔다가 장성 벽돌에 글귀 하나 남기고 오는 길이다. (84)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박지원은 장부의 기개를 펼치며 명문 중의 명문을 남겼다고 한다. 거대한 만리장성 벽에 말이다.

 

몸이 아픈 마부를 위해 자신의 말에 태우고 담요로 둘둘 말아 끈으로 묶은 뒤 몸소 말을 끌고 가는 모습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떠난 인정을 느끼게 한다.

 

당시는 청의 국력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기에 열하의 위상도 북경만큼 컸던 시기다. 청은 그런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 위에서 문화를 꽃피우던 시기였다. 박지원도 그러한 청의 선진 문물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도시마다 시장이 번창하고 도로와 교량이 잘 정비되어 있는 모습, 수레와 선박 이용으로 교통이 원활한 풍경, 벽돌사용으로 건축의 견고함을 더한 지혜, 거름 똥마저 알뜰히 퇴비로 이용하는 모습 등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살기 좋은 조선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곳곳에 드러난다.

 

또한 청나라 각계각층의 인물들, 조선 사행단의 구성원들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다. 자신의 비대한 몸집과 농담 좋아하고 겁 많은 성격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상인, 요술사, 시골훈장, 점쟁이, 승려, 창기, 하녀, 거지, 말몰이꾼, 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를 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등불놀이, 온갖 요술놀이, 조선의 청심환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청나라 사람들, 황제의 피서지가 오랑캐들이 드나드는 변방에 있는 이유, 배움에 대한 이야기, 낙타와 코끼리를 처음 본 소감까지 때론 코믹하게, 때론 깊이 있는 철학으로 담아냈다.

 

 

한양에서 출발해 압록강을 건너고, 요동을 지나 북경까지 가고, 건륭황제가 있는 열하까지의 여정, 다시 거슬러 한양까지 오는 과정들이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관찰하고 느낀 것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해학과 풍자, 중국 견문, 실학사상까지 깔려 있다.

    

참고로 열하(熱河)는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진 하북성 난하의 지류이다. 온천이 많아 겨울에도 강물이 얼지 않는다고 한다. 청의 건륭황제는 이곳에 피서산장이라는 별궁을 거대하게 지었고 매년 휴가를 보내며 각 국의 사신들을 맞기도 했던 곳이다. 머나먼 변경까지 황제를 알현하러 몽고, 티베트, 위구르 등도 다녀갈 정도가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던 거대한 별궁이라고 한다.

 

 

박지원을 포함한 일행은 열하를 방문한 최초의 조선 외교 사절이었다. 박지원은 당시 조선에 알려지지 않았던 청나라의 학계, 문단, 최신 문물에 대한 정보를 열하일기를 통해 소개한 것이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가다>는 탐 출판사에서 나온 탐철학소설시리즈. 방대한 열하일기를 십대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롭게 쓴 소설이다. 그 당시 박지원은 44, 창대는 청소년이었기에 화자를 박지원이 아닌 마부 창대로 바꿔 각색한 소설이다.

 

 

박지원은 조선의 개그 하는 선비다. 열하일기는 흥미진진한 소설 같은 여행기다. 건륭황제 시절의 청의 문물이 훤하게 그려질 정도다. 개그맨 같은 조선 선비의 흥미진진한 여행기,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꽃밥]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다니, 기묘해라.

 

전생을 기억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 슬픈 전생이었다면 이생도 슬프지 않을까? 즐거웠던 전생이라면 이생도 즐겁지 않을까? 전생이나 환생을 믿지 않지만 가끔은 그런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처음에 나오는 꽃밥은 전생을 기억하는 동생의 탄생과 성장, 동생이 살았던 전생의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후미코는 네 살 때부터 전생을 이야기한다. 모든 생활과 생각이 아이 같지 않다. 전생에서 스물한 살에 칼에 맞아 살해된 후미코는 등에 흉터 자국 비슷한 얼룩도 있다.

 

후미코는 매일 전생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전생의 흔적을 찾아 혼자 전철을 타고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결국 후미코와 오빠는 꿈속에서 보았던 전생의 고향으로 찾아가게 된다.

처음 간 히코네지만 후미코는 마치 자신의 동네처럼 돌아다닌다. 그리고 전생에 아빠였던 노인을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건장했던 아빠는 딸의 죽음 이후로 음식을 거부해서 이젠 해골 같은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고 한다. 후미코는 오빠를 통해 전생에서 소꿉놀이하듯 꽃밥을 백발노인에게 전달해주는데.... 그리고 자식 잃은 슬픔에 음식조차도 거부하던 해골 같던 노인은 후미코에게서 딸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신비롭고 기묘한 이야기를 전생을 기억하는 소녀의 눈으로 따뜻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엔 작가가 어릴 적 살았던 오사카의 모습이 깔려 있다. 유령, 미지의 생물,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 등 모두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담았다. 환상 문학의 기법이라는데....

 

전생을 추적하는 소녀 이야기를 담은 꽃밥, 재일 한국인으로 차별받다가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은 정호가 도깨비가 된다는 도까비의 밤’, 외로운 소녀에게 나타난 행운의 생물 이야기를 담은 요정 생물’, 이승에 대한 미련으로 화장터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영혼 이야기를 담은 참 묘한 세상’, 사람을 편안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말을 구사하는 무당의 이야기를 그린 오쿠린바’, 아픈 동생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시로 간 누나와 혼령이 된 동생이야기를 다룬 얼음나비모두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다.

 

 

꽃밥은 슈카와 미나토의 대표작이자 133회 나오키상을 받은 작품이다. 사람의 미묘한 속마음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꽃밥, 도까비의 밤, 요정 생물, 참 묘한 세상, 오쿠린바, 얼음나비 등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을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4-12-0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궁금하네요

봄덕 2014-12-04 10:56   좋아요 0 | URL
주로 아이들의 시선에서 그린 단편소설들이어서 동화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
사카구치 안고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세시]일본 전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

 

 

일본 전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오다 오부나가.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일본의 전국 통일은 늦춰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임진왜란은 발발하지 않았을 테고. 그 당시에 일본 전국이 혼란스러웠다지만 다양한 전술과 무사정신 만큼은 일본 전역에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반면에 조선은 잦은 당파 싸움과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로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지던 시절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시대 일본과 조선의 정치 상황을 비교하게 된다.

 

일본의 3대 영웅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는다고 한다. 이들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 프롤로그에서

 

 

오다 노부나가(1534~1582).

그는 지방의 슈고 다이묘를 모시는 보잘 것 없는 호족 세력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다 가문을 일으킨 오다 노부히데의 아들로 어린 시절엔 바보 소리를 듣던 그였다. 행동이 느리고 용모가 단정치 못했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오다 가문을 잇게 되면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며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된다. 그동안 그는 살기 위해 재능을 숨겨 놓았을까. 마치 조선의 대원군 이하응 같다.

 

그는 오다 가문을 이끌면서 뛰어난 전략적 재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반전의 인물이 된다.

노부나가는 도산이 보낸 노히메를 아내로 얻으면서 더욱 승승장구하게 된다. 도산의 지지로 오와리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노부나가 같은 바보에게 노히메를 주면 자연히 오와리에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 도산은 오히려 노부나가의 힘을 키워줄 뿐이었다. 어쩌면 바보라는 이미지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상대를 방심하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쨌든 노부나가는 마른 체형, 장신이지만 무술을 닦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비범한 솜씨로 주변의 성들을 하나씩 끌어 들이게 된다. 무라모토 성을 시작으로 주변성을 차지해 가는 모습이 신속하고 발 빠른데......

 

평소 성격이 급하고 매우 대담하고 용맹했던 그는 속전속결, 즉일 즉시를 외치면서 민첩하게 주변의 무사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주요 가문들을 복종 시켰다. 아마도 그의 큰 목소리도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예를 좋아하고 결단력이 탁월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보유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으로 작용했으리라.

 

특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민첩해서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총포를 구입하며 신속하게 무기를 근대화 했다. 이후 그는 일본을 통일하고 전국 시대라는 혼란을 끝내겠다는 야심을 발표하기에 이르는데......

 

    

비록 그는 전국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100년 이상 지속된 전쟁을 마무리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일본에서는 노부나가를 가리켜 난세의 영웅, 뛰어난 지략가, 시대를 앞서가는 선견지명을 가진 인물, 결단력 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영웅으로 꼽힌다. 그는 영화, 소설, 경영서, 예술 작품, 만화, 게임 등에서 자주 다루었던 인물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전국시대 역사 인물 1위라고 한다.

 

책을 통해 그가 뛰어난 전략가,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 근대 일본을 연 인물, 발상과 결단력의 대가임을 알 수 있었다. 성격이 급하고 진취적인 점들이 무서운 결단력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위 사람의 조언보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다.

 

이 책은 오다 노부나가의 청년시절을 담았다. 전국시대 일본 통일의 기반을 닦은 무장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야망과 결단력, 추진력, 앞서가는 사고를 지닌 오다 노부나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실존 인물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열다섯 살에 서두르는 자가 지는 법이라며 이야기 하던 소년, 최고의 기습전인 오케하자마 전투, 천하통일을 보지 못했지만 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던 그, 때로는 관대하거나 포용적인 면도 있었던 양면적인 노부나가의 이야기에서 당대의 조선과 일본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