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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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손아람/자음과모음]서울대 운동권을 배경으로 한 젊은 청춘들의 잃어버린 시간들

 

간혹 지나간 푸른 청춘의 시절을 잊고 산다. 간혹 성적에 저당 잡힌 학생의 때를 잃어버린 듯 억울해 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게 어디 한둘인가. 때론 잃어버려야 얻는 게 있는 법이다. 때론 비워내야 채워지는 게 있는 법이 듯.

사노라면 누구나 사회체제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저 묻혀 사는 게, 남들에 묻어가는 게 점점 편해진다. 그래도 생각과 행동이 가장 자유로운 때가 푸른 스무 살이 아닐까.

 

저자의 이십대인 잃어버린 10년의 이야기로 판을 펼쳐놓은 이야기엔 154편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스무 살, 그 새파란 나이에 한 번쯤 경험했을 이야기가 접점을 이루는 일화들이다.

 

 

 

 

저자인 손아람은 1980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미학과 학생인 주인공 박태의를 통해 1997년에서 2007년의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의 뜨거웠던 자취를 투영하고 있다. 그가 잃어버린 10년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기에 공감 되거나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건들이다. 저자가 미학과 출신이어서 일까, 대화 속에 떠다니는 언어의 유희를 낚는 즐거움도 있다.

 

살다가 보면 이자가 붙기도 하고 부채가 늘기도 한다. 대단한 이자가 붙기도 하고 엄청난 부채가 붙기도 한다. 학생에게 성적은 부채 일까. 자신을 위해 투자해주는 부모나 사회에 대해 갚아야 할 최소한의 채무의식이 있다면 그건 부채일 것이다. 그러니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표는 그런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마지노선일 것이다.

 

이야기는 군대에 가지 않았던 서울대 공대생 진우의 청첩장을 받았지만 결혼해서 살면서 어쩌다 보니 결혼식 날짜를 넘기게 되었고, 불현 듯 태의가 옛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태의는 철학연구학회라는 서클을 통해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알게 된다. 서클에는 어릴 적 미국에서 살았다는 예쁘면서도 터프해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미쥬 선배, 술을 마시면 자작시를 안주 삼는 현승 선배, 공대생이지만 주체사상 등 철학에 관심 있어 하던 진우, 한 때 미쥬 선배의 남자 친구이기도 했던, 부조리한 세력에 체 게바라적인 조리 있는 폭력을 숭배했던 대석 형, 도지사 아버지를 둔 경수 등이 있다.

 

이들은 인문학적 논쟁을 하다가 잠깐 주체사상의 정서적 호소력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이야기 하다가 상대적인 약자들 편에 서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수업도 듣지 않으면서 시험을 치르는 대석 형은 특유의 궤변으로 성적을 받아내기도 한다. 상대적 약자들 편에 서겠다며 농활을 떠나고, 가진 자의 횡포에 맞서 약자들 편에서 데모하기도 한다.

 

때로는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느라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들은 원칙대로 F를 주려는 교수에게 D⁻를 달라고 농성하기도 한다. 전공 필수 수업에서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는 학생에게 D⁻를 줄 수 없다는 교수를 상대로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 이건 정당하지 않다. 불의를 위해 싸운다는 학생들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불의를 보게 된다. 모순의 양면성은 언제나 함께하는 걸까.

 

 

D⁻를 주세요, 교수님!

싫어.

 

어쨌든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시위대를 조용히 제압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완력보다 강한 원칙의 힘, 기본적인 양심의 힘을 보게 된다. 정의를 위해 시위농성을 한다면, 출석은 수업에 대한 학생의 최소한 예의인데......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며 새해 선물로 전원 A⁺을 날렸던 띄엄띄엄 철학의 지존인 강정환 교수, 성추행의 전력이 있지만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이 되기도 하는 안민 교수, 학생 시위 전력이 있었다는 소문만 무성한 학교의 전설인 미친 사람,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떠돌이 개, 교정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등도 추억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데모, 화염병, 경찰특공대, 대공분 실, 월드컵, 공장의 파업농성, 해고 노동자 농성, 미군 궤도 차량에 치인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황우석 교수 사태, 이명박 대통령 당선, 서울대 출신의 현직 연예인인 이적, UN의 김정훈, 김태희가 대중예술의 경험이 없는 교수의 대중예술론을 들으러 오는 아니러니 등 154편의 이야기에는 우리 모두의 청춘의 역사가 들어 있다.

 

 

 

 

개인사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는 법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시대 역사가 되는 법이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게 어디 한둘인가. 잃어버려야 얻는 게 있다. 하지만 누구나 푸른 청춘 시절의 뜨거웠던 시공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법이다. 잊고 싶지 않는 법이다.

 

살다보니 세상의 부조리에 점점 무신경해지고, 세상의 불의를 돌아볼 틈이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약자의 편에 서려했던 열혈 청춘의 시절은 있었다. 그런 잊지 말아야 할 뜨거웠던 이십대에 대한 오마주다. 이십대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의 다큐를 보는 것 같다.

지금도 우리의 삶은 디 마이너스의 언저리에 불안하게 놓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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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시절엔 철학이란 말이 낯설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 공학과가 생겨나고 철학이란 학문이 사라지는듯 하다가 다시 찾는걸보면 결코 버릴수있는 학문이 아닌거 같아요ㅋ저두 읽어보고 싶네요ㅋ

봄덕 2015-01-26 15:41   좋아요 0 | URL
전 시대적 아픔도 공감하지만 언어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더라고요~^ㅎㅎ
 
사계 나츠코 사계 시리즈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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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나츠코]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의 4인 4색 청춘 이야기~

 

성격이나 기질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성격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 취향 등이 다르기에 경험하는 것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츠키 히로유키의 소설 『사계 나츠코』를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들 네 자매의 각기 다른 삶을 보며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작은 아씨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제각각의 길을 걸어가는 4인 4색 청춘 이야기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살기도 했던 작가의 고향은 기타큐슈 후쿠오카다

.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후쿠오카의 고미네 집안의 네 자매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이름을 딴 하루코, 나츠코, 아키코, 후유코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기에 사는 곳이나 살아가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첫째인 하루코는 지역 유지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동생이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시어머니로부터 이혼을 강요받고 있다. 둘째인 나츠코는 자유분방하고 당차지만 다소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기도 한 스물두 살의 직장여성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나츠코는 늘 선머슴 같은 옷차림에 짧은 머리를 하고 작은 트럭을 몰고 음료수 배달을 한다. 셋째인 아키코는 도쿄에서 의대를 다니면서 분쟁에 뛰어들기도 하는 운동권 여대생이다. 넷째인 후유코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문학을 좋아하고 감수성 많은 십대 소녀다

 

어느 날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여동생 후유코를 찾아가게 되면서 나츠코는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다. 이동극단의 연극을 보고 싶다는 후유코와 함께 극단을 찾아가다가 도쿄 주간지 카메라맨 나카가키 노보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노보루의 느닷없는 모델 제안을 받게 된다.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당찬 성격임을 알고 당신처럼 야성적인 여자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말에 충동적으로 누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먼저 제의하게 된다.

 

나츠코는 삼년 동안 사귄 다츠오의 청혼을 거부하고 뭔가 새로운 경험을 위해 노보루를 만나러 도쿄로 가던 중에 기차에서 유명한 노시인 가네코 테이세이를 만나게 된다. 노시인은 나츠코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를 한다. 이후 나츠코는 자신의 풍성한 가슴과 얼굴의 흉터, 담배 피는 습관 등 매사에 더욱 자신감을 갖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나츠코는 변덕스럽고 엉뚱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성격이지만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자 더욱 애쓰게 된다.

 

도쿄에 도착한 나츠코는 노보루와 사진을 찍으면서 여자 친구 케이를 알게 된다. 이후 후쿠오카의 직장을 그만두고 도쿄에서 직장을 구하려다 케이와 더욱 친해진다. 케이와 함께 다니면서 점점 다른 유형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된다. 호텔 수영장에서 선탠을 하다가 중년의 배우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유명 영화감독의 특별 드라마 누드 대역이 되기도 한다. 이후 매니저인 케이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영화잡지, 여성지의 취재요청도 쇄도하게 된다. 케이와 나츠코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미국 할리우드로 가기로 결정한다.

 

자신이 내키는 대로 살고, 스스로 체득해 나가는 니츠코의 삶이 아슬아슬할 정도다. 누구보다 독립심이 강한 나츠코이기에 적극적으로 살아가면서 무엇이든 해내는 모습에서 씩씩한 청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제각각의 길을 걸어가는 4인 4색 네 청춘 이야기다. 네 자매의 각기 다른 삶을 그리고 있는 『사계』 연작 중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에 거침없는 도전하다가 점점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나츠코는 진취적으로 진화 중이다. 앞으로 그녀가 만나게 될 세상의 넓이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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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탐정은 연애 금지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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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탐정은 연애금지/박하익]jtbc 드라마 원작 소설, 유쾌한 추리소설~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늘 학교와 관련된 귀신이야기가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말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기묘한 학교 전설은 비 오는 날이면 주 메뉴가 되어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 같다. 그 오싹한 기분, 그 섬뜩한 기운에 진짜 귀신이 나타난 것 같아 기이한 비명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여고 시절 학생 탐정단이 있다면 아마 신나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학생들의 고민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가 적시에 그 고민을 해결하는 탐정단,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많은 학생들이 제각각의 고민을 갖고 있기에 학생 탐정단의 존재는 의미 있을 것 같은데.

 

jtbc 드라마 원작 소설 『선암여고 탐정단 탐정은 연애금지』는 무거운 탐정소설이기 보다는 여고생들의 해프닝을 담은 유쾌한 추리소설이다. 선암여고 탐정단을 중심으로 한 교육의 현실에 맞서는 여고생들만의 깜찍한 해법을 담은 소설이다. ‘선암학사의 여학생 귀신’, ‘걸 그룹사건’, ‘사라진 책가방 사건’ 등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선암학사의 여학생 귀신 사건이다.

선암여고 탐정단 멤버는 미도를 대장으로 2학년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타를 꿈꾸는 예희, 커트 머리 성윤, 초등학생 시절부터 왕따였던 하재, 천재적인 수학자를 쌍둥이 오빠로 둔 채율은 평상시에 학생들에 대한 자료를 모은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수사에 착수하라는 탐정단 지침에 따라 4명의 탐정 소녀는 전교 36학급을 9학급씩 분담하며 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 촉을 발휘해 정보를 모아두어야 결정적인 시기에 통찰력을 발휘한다나.

어쨌든 탐정 소녀들은 늘 주변과 학교, 선생님, 학생들에 대한 유심한 관찰로 분주한 학기 초를 보낸다. 신학기는 중요한 시점이다. 변화하는 교우관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니까.

 

선암여고의 기숙사인 선암학사에는 우등생만 들어간다. 학사는 1학년 때부터 성적에 따라 노골적으로 성골, 진골, 6두품으로 나뉜 계급 사회다.

탐정단 멤버인 채율은 전교 1~2등을 다투기에 선암학사에 들어가 있다. 주로 1등을 하는 나나의 질투어린 관심을 받고 있다.

 

어느 날, 채율은 학사 열람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창문 밖에 나타난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을 보게 된다. 일명 학사 귀신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 탐정단은 정의감을 가지고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들게 된다.

왕따로 시달리던 하재는 오컬트, 카발리즘, 마법에 관심을 가지면서 과거를 보는 능력이 있다며 카발리스트 킴으로 변신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도움을 주는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탐정단의 활약으로 학사 귀신은 엄격한 학사 규칙을 위반하고 외출했던 자들의 소행임이 밝혀진다. 몰래 사다리를 타고 학사 발코니에 오르려다 긴 머리가 얼굴을 가리는 바람에 일어난 해프닝이라는데……. 카발리스트 킴인 하재의 과거를 보는 능력도 탐정단의 빅 데이터 덕분이라는 것이 들통 나게 된다. 이후 탐정단은 성골들의 저격을 잠재우며 학교와 선암 학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게 되는데…….

 

 

성적이 최고라는 가치에 휘둘리는 아이들, 성적으로 계급사회를 만드는 하교 분위기에 대한 저항,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들의 초상이 학사 귀신, 피로 쓴 글씨, 귀신 머리카락, 괴짜 집단인 탐정단 등으로 그려져 있다.

 

학내 치안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학생 탐정단 이야기, 성적이 만들어 낸 계급사회, 10대 연예인들의 괴로움, 정글 같은 경쟁 사회인 학교 시체 사건 등 무거운 이야기가 경쾌하고 재치 있게 그려져 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학생 탐정단이기에 더욱 끌린다.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끼리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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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1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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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열림원] 탐험소설의 대가 쥘 베른의 소설을 만나다~

 

 

유년기에 읽은 동화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다는 건 새삼스럽지만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추억의 동화는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하는 설렘을 선물하니까. 지금도 기억이 뚜렷한 『해저 2만리』『15소년 표류기』『80일간의 세계일주』등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은 추억의 책이다. 그 모든 책들의 작가가 쥘 베른 이란 건 독서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유년기의 책들은 책 제목과 신나게 읽었던 느낌만 남아 있으니까.

 

쥘 베른은 1828년 프랑스 항구 도시 낭트에서 태어나 늘 바다 너머를 동경했다고 한다. 열한 살 때 사촌 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산호 목걸이를 선물하려고 인도 행 무역선에 몰래 탔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에게 “앞으로는 꿈속에서만 여행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과 모험여행을 꿈꾸었다니, 놀라운 작가다.

그는 20대엔 극작가를 지망했고, 34살에 쓴 『기구를 타고 5주간』이 그 이듬해 출판되면서 큰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1년에 1편 이상의 경이로운 여행기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의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905년 죽을 때까지 무려 8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썼다니, 대단한 작가다. 40년의 작가 생활 동안 매년 2편의 명작을 발표한 셈이다.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의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귀족인 글레나번 경과 그의 아내 헬레나의 최신형 요트인 덩컨 호에서 시작한다.

이 부부는 덩컨 호를 타고 가다가 무서운 귀상어 종류인 망치상어를 잡게 된다. 상어의 탐욕을 확인하고자 가른 배의 내장에서 유리병을 발견하게 된다. 그 병 속에는 3개 국어로 된 세 개의 지워진 문서가 있었고 글자를 맞춰 해독한 결과 그랜트 선장이 보내온 구조신호라는 것이다. 그랜트 선장 일행은 ‘브리타니아’ 호를 타고 가다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대륙에 상륙하려다가 인디언들에게 붙잡힐 위험에 빠졌고, 이후 위도 37도 11분에서 이 문서를 바다에 던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조사 결과, 그랜트 선장이 스코틀랜드의 식민지를 세우기 위해 위험한 항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의감에 찬 글레나번 경은 구조에 대한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글레나번 부부는 그랜트 선장 일행이 조국으로 돌아오도록 돕기로 한다. 이들 부부는 글레나번 경이 낸 광고를 보고 찾아온 그랜트 선장의 아들과 딸과 함께 원정대를 꾸려 모험을 떠난다. 배를 잘못 알고 승선한 매력적인 수다쟁이 지리학자 자크 파가넬과 함께 말이다.

 

이들은 남위 37도에 맞춰 남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게 되는데…….

안데스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지진으로 죽을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동물들의 뼈다귀 무더기들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붉은 늑대들의 위협, 신기루, 노아의 홍수 같은 홍수로 인한 대 범람으로 인한 표류를 경험하기도 하고, 험준한 타팔케 산맥, 탄틸 산맥 등을 넘으면서 파타고니아 인디언 탈카베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탈카베를 통해 선장으로 추정되는 유럽인의 행적을 알게 되지만 험한 탐험 끝에 얻은 결론은 문서 해석을 잘못했다는데…….

 

 

문서를 잘못 해독하는 바람에 방향을 잘못 잡았기에 그랜트 선장이 없는 곳에서 그랜트 선장을 찾는 해프닝을 벌였다니. 하지만 이들은 그랜트 선장을 구조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지리학자인 자크 파가넬의 활약으로 알게 된 그랜트 선장이 떠났다는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해 다시 긴 모험여행을 떠나게 된다.

 

직선을 그린 남아메리카 대륙 횡단은 이렇게 끝났다. 산도 강도 여행자들의 꿋꿋한 행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악의와 싸울 필요는 없었지만, 자연은 종종 그들에게 맹위를 떨쳐 그들의 고결한 용기를 인내력의 한계까지 시험했다. (348쪽)

 

웅장하고 장대한 자연에의 도전하는 여행, 식물과 동물의 생태를 체험하고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는 탐험 여행이기에 긴장감이 제대로다. 신대륙을 향한 탐험에 대한 대담한 용기와 열정, 끝없는 모험심,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야기들에 스릴과 전율이 일 정도다.

 

이 책은 열림원의 쥘베른 걸작선 11번째 이야기다.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은 총 3권으로 이뤄진 해양모험소설이다. 프랑스 SF소설의 거장인 쥘 베른의 소설을 만나서 행복하다. 신비한 여정으로 가득한 그의 소설들, 모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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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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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에는 아슬아슬하고 쫄깃쫄깃한 스릴이…….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 아이가 없는 이혼남, 꼼꼼한 남자와 덜렁대는 여자, 두 사람의 대비가 너무나 선명하다. 유유상종이라는 원리에 따른다면, 두 사람은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 상반되는 것에 끌리기도 하니까. 또한 막다른 곳에 서면 누군가의 손이 반가운 법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던져주면 고마운 법이다.

 

제목에서 함축하는 결말을 생각하며 싱겁다고 생각했다. 조조 모예스의 이전 작품인 『미 비포 유』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더욱 밋밋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반전을 아는 작가다. 독자들의 마음을 읽고 들었다 놨다 할 줄 아는 작가다.

 

싱글맘인 제스는 제멋대로이고 충동적이지만 사랑이 풍부한 여자다. 낮에는 가사도우미로,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지만 늘 경제적으로 어렵다. 전남편에게서 경제적인 도움 없이 두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십대시절에 만난 남편과의 사이에 딸 탠지를 키우는데다 전 남편이 10대에 잠시 사귄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니키를 따뜻하게 거둬들이지만 그에게서 2년 동안 육아비를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아빠의 구실도 못하는 전남편이지만 제스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아들 니키는 늘 학교에서 괴짜라고 놀림을 받거나 아이들에게 맞고 다니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늘 모든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침묵의 아이다. 딸 탠지는 수학에 천재성을 보이는 순한 아이다.

 

어느 날 명문 사립학교에서 탠지의 재능을 알아보고 장학금을 줄 테니 입학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더라도 경제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제스는 워낙 비싼 학비를 감당하려니 버겁기만 하다. 일생일대의 기회이기에 궁리를 하던 중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막대한 우승상금만 받을 수 있다면 학비를 보충할 수 있다는 말에 모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한편, 젊고 유능한 에드는 여자관계에는 미숙하지만 컴퓨터에는 소질이 있는 능력남이다. 그는 자신이 세운 소프트웨어 회사를 팔아 엄청난 부자가 된다. 하지만 대학 시절 잠시 좋아했던 여자 디나 루이스의 사악한 꼬임에 빠져 그녀를 도우려다 그동안 모은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갈 처지가 된다. 새 소프트웨어 스팩스 출시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그 정보가 그녀의 오빠에게 흘러들었고 내부자거래 혐의, 국가 기밀 누설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정직이 되면서 당분간 조용히 숨어 있으라는 종용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스네 마을 근처 리조트에 머물던 에드는 자신의 리조트에서 청소를 하던 제스네 가족이 사고를 당해 딱한 처지인 것을 알고 얼떨결에 돕게 된다. 그리고 탠지의 올림피아드 시험을 위해 스코틀랜드까지 동행하게 된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가족이기에 서로 경계를 하다가도 아이들로 인해 가까워지게 된다. 남에게 관심도 없던 에드는 빨리 달리면 멀미 한다는 탠지를 위해 시골길을 저속으로 가기도 하고, 피셔 형제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는 니키를 도와 피셔 형제의 페이스북을 해킹하도록 돕고, 블로그를 통해 자신과 뜻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도록 니키를 격려한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가족이지만 여행 도중에 서로 도우면서 제스와 에드는 점점 가까워진다.

 

당신은 내가 지금껏 만나온 사람 중에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도무지 자기 처지를 한탄하는 법이 없어요. 장애물이 막아서면 그냥 타고 넘어요. (285쪽)

 

난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에드. 당신하고든 누구하고든요. 내 삶에는 그런 ‘하나 더하기 하나의 관계’ 같은 게 들어갈 공간이 없어요. (294쪽)

 

하지만 세상일엔 오르막길도 있고 굴곡도 있는 법이다. 탠지의 시험 실패, 전남편의 무책임한 행동들, 예전에 에드의 차에서 발견한 돈 문제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둘의 관계는 꼬이게 되는데…….

 

사랑이 풍부한 여자와 사랑에 늘 실패하는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기본으로 빈부격차, 가족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 전임제 엄마가 아닌 시간제 엄마의 애로사항,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만남 등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원 플러스 원은 투가 아니라 인피니티, 무한대가 될 수 있다. 따뜻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가족의 형성이기에 낯설지만 설렘이 있다. 제목에서 해피엔딩을 암시하기에 다소 싱겁다는 예상을 무지막지하게 깬다. 해피엔딩을 위한 과정들이 아슬아슬하고 쫄깃쫄깃하고 스릴 있다.

 

깐깐하고 부유한 매력적인 능력남과 무능력 하지만 열심이고 털털한 여자의 조합, 아무래도 조조 모예스가 좋아하는 설정 같다. 전작도 그러하기에...... 다음 편에는 또 어떤 남녀의 조합이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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