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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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나라] 살아남아야 이기는 정글 같은 타짜의 세계

 

정글 같은 세상이기에 버텨야 한다. 이긴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것이 밀림의 룰이다. 그러니 아무리 신의 한수, 도박의 천재라도 살아남아야 이기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타짜의 세계에 최후의 승자가 되는 비법은 이기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수의 세계에서도 적자생존은 기본 원칙이다.

 

 

도박 천재였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재휘는 어렸을 때부터 포커 게임의 수를 읽을 줄 아는 도박 천재였다. 하지만 도박판을 다니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보다는 강원 랜드의 정식 직원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 해서 아버지와 형 동생 하던 사이인 용팔을 아버지로 모시고 소시민으로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들의 삶에 끼어든 선영은 도박판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재휘에게서 게임을 배우게 된다.

 

오랜 훈련 끝에 신의 한 수로 태어난 선영은 재휘와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부나방처럼 야수의 세계인 강 회장의 하우스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야수의 손아귀에 잡히게 되고 사랑하는 재휘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된다. 백전노장 용팔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 그녀는 밀항을 하고 전신성형을 해서 다시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그리고 야수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재휘를 구하고자 다시 도박 정글 속으로 뛰어든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이지만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타짜들의 세계는 거액의 돈 앞에서 룰과 의리는 쓰레기처럼 구겨지는 세계인가. 컴퓨터처럼 확률을 분석하며 수를 읽을 줄 아는 두뇌 게임,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할 때 동공이 커지듯 상대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 패를 읽는다는 도박사의 심리전, 온갖 현란한 포커 기술들이 긴박감 속에 펼쳐진다.

 

거액의 현금이 주는 맛은 비릿하지만 달콤한 유혹의 맛이고 치명적이다. 사랑과 욕망, 돈과 힘 앞에 무기력한 천재 도박사들의 말로, 살아남아야 이기는 정글 같은 타짜의 세계가 끔찍하지만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인터파크 주최 K-오서어워드공모전에서 5차 최종후보작으로 당선된 김나영의 야수의 나라를 읽으면서 야수의 세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포커니 카드니 하는 게임에 관심이 없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빨려들 수 있었다. 잘 짜인 소설의 매력도 있었지만 도박판의 잔혹한 생존의 룰이 세상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도 수를 읽어야 하는 세상, 뛰는 놈 위를 날아야 하는 세상, 살아남아야 이기는 정글 같은 야수의 나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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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 -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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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조정우/세시] 임진왜란의 참회 기록을 소설로~

 

서애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전쟁 기록물인 <징비록>의 인기가 몹시 거세다. 소설 징비록, 드라마 징비록, 완역본 징비록 등으로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은 <징비록>이다. 400여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비슷한 상황 같아서 말이다.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지금의 정치권, 당쟁의 소용돌이에 민심을 외면하는 지금의 정치권과 임진왜란 시절의 지배세력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작가의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은 역시 소설 읽는 맛을 더한다. 이전에 읽은 이재운의 소설 징비록에는 작가의 선대 할아버지였고 호종일기를 쓴 승지 이효원과 징비록을 쓴 류성룡의 대면으로 시작했다. 이번에 조정우 작가의 소설 징비록은 봉화대를 관리하던 봉수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다른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색다른 묘미였다.

 

소설은 임진년(1592) 413일 새벽, 아미산 응봉 봉화대의 봉수군이 봉화를 올리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봉화의 개수는 전쟁이 시작된 후 가장 아쉬운 부분이 아니었을까.

봉수군은 새벽안개를 뚫고 보이는 절영도 앞바다의 왜선의 수적인 압도감에 놀란다. 전시 수준의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봉수군의 책임자인 오장은 새까맣게 몰린 배를 보고서도 겨우 2개의 봉화를 올리는데 그친다. 지난 밤 자리를 이탈한 상황이었기에 직무 유기에 대한 추궁이 두려웠던 것이다. 제대로 된 봉화를 올리지 못한 책임은 이후 조정의 전략과 전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왜군을 겨우 1만 이하로 보게 했으니 대대적인 전쟁이 아니라 소소한 노략질 정도로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이후엔 봉화의 수를 늘리지만 그 때는 늦어도 너무 늦은 뒤였다. 처음부터 봉화만 제대로 5개를 올렸더라면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자꾸 가정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전쟁에 대처하는 이들의 서로 다른 자세가 슬프고 분통 터지면서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함께 죽기 살기로 싸우자는 송상현과 도망 갈 빌미를 대는 이각의 전쟁에 대처하는 자세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어이가 없을 정도다 왜장의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 ‘는 팻말에 대응한 송상현의 싸우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는 문장은 보면 볼수록 명장의 충정과 패기, 필력까지 느껴진다. 모든 대장들이 이와 같았다면 어땠을까.

 

책에서는 의병들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일화는 그대로 각각의 위인전을 보는 것 같았다. 의병들은 관군들이나 관리들의 무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내놓으며 선조들이 물려준 땅을 지키고자 했다. 고향의 지리적 이점을 잘 살리면서 매복과 공격, 퇴각을 거듭하며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렇게 전공을 세운 무명의 의병들이 없었다면 조선의 앞날은 더욱 어둡지 않았을까. 이 땅을 지키고자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 게릴라전을 펼친 의병들은 시민군의 모범이었다.

 

조선 팔도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경남 의령의 홍의 장군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장면, 의병장 고경명의 활약, 천하장사 의병 대장 김덕령의 괴력과 충정, 김천일, 이원일 등의 의병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은 대목이었다. 이들의 지략과 용맹, 물러서지 않는 담대함, 백성과 관군의 지원까지 모으는 능력, 통쾌한 승전보까지 읽으면서 흥미진진한 시대극을 보는 듯 했다.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던 신립 장군이 천혜의 요새인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에서 기마전을 준비하다가 전사한 이야기에서는 그의 전술 없음에 안타까웠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자 항복하고 순왜가 된 조선군인들의 이야기에서는 답답함과 분노가 일기도 했다. 말을 타고 왜장을 무찌르거나 왜적을 물리치며 첫 승전보를 올렸던 조선의 조자룡인 정기룡의 쾌거에서는 박진감에 속이 다 후련할 정도였다. 해전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 진주 목사 김시민의 활약, 왜장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야기가 많아서 색다른 소설 징비록이었다.

 

당시 토요토시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리라는 소문이 퍼져있던 상황이었지만 너무도 무사 안일한 태도를 보였던 선조와 조정, 일본의 분위기를 감지하러 보낸 김성일의 무책임한 보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러 명에 망명하겠다던 선조의 이기주의 근성, 명의 눈치만 살폈지 세계 정세에는 무지했던 권력자들 등은 분명 실망스런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십여 년 전, 율곡 이이가 십 만 대군 양병설을 주장할 때, ‘나라가 태평할 때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고 반대했던 류성룡의 뒤늦은 후회를 보며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가의 부재가 조선의 전란으로 몰아넣었음을 생각한다. 김성일의 거짓 보고를 알고서도 같은 동인이라는 점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한 류성룡을 보며 무모한 당파싸움이 국난을 초래한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소모적인 당쟁으로 국고를 낭비하거나 국난을 초래하진 않는지, 징비의 시선으로 지금의 정치가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적극 추천이다.

  

<소설 징비록>은 역사 소설을 주로 쓰고 있는 조정우 작가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장옥정>, <기황후>, <이순신 불멸의 신화>에 이어 네 번째로 만난 그의 소설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기에 역사 소설을 꾸준히 읽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역사 소설이 더 많이 나와야 독자들이 우리 역사를 좀 더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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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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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한 발칙한 상상, 황당하지만 웃픈 이야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제목만 놓고 보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뒤죽박죽이 된 혼동과 반란의 세상이다.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기존 가설이 뒤집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라니, 호랑이를 잡아먹은 타조처럼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소설이지 않은가. 황당하게 읽다가 발칙한 상상력에 웃다가 가족 관계에 슬프다가 작가의 유머 코드에 푸 하하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페이소스 가득한 그럴 듯한 이야기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무는 발칙해서 유머 가득한 이야기다.

 

 

  

소설은 허름한 아파트에서 지저분하고 무기력하게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이 붙인 전단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단지의 내용은 일당 5만원에 성공 보수까지 준다는 밑도 끝도 없는 내용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아 달라며, 매일 불광천에 가서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오리 사진을 찍어오면 일당을 주겠다고 한다. 게다가 그 오리를 산 채로 가져오는 날엔 성공보수까지 준다고 한다. 오리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온 일꾼은 장르 작가인 남자와 주식으로 돈을 날린 실업자 여자, 노인의 손자라는 꼬마였다.

장르작가인 남자는 통잔 잔고와 지갑 잔고를 합쳐 4,264원이 고작이었기에 당장 밥벌이를 위해 오리 사진을 찍지만 힘없는 노인을 상대로 사기 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화가 난다. 남자보다 먼저 온 여자도 실업자 신세이기에 오리 사진을 찍고 있지만 노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노인의 손자인 꼬마도 엄마 아빠 몰래 학원을 빠져 가면서 하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이런 미친 짓 대신에 행복한 일상을 찾기를 원한다.

돈이, 돈이 아니라 그냥 숫자인 것만 같고, 숫자라면 내 마음대로 큰 숫자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세상에 가장 큰 숫자는 없잖아요.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돈도 실물이고 진짜인데 그걸 잊어버린 거였죠. 병에 걸린 거였어요. 현실과 망상,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끔찍한 병.(71)

 

어쨌든 프리랜서 작가인 34세 남자의 재정능력은 생존불능에 이르렀기에 노인의 명령대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불광천의 오리들을 찍기 시작한다. 아무리 근접 촬영을 해도 노인은 그 놈의 오리가 아니라며 더 수고를 하라고 한다. 매번 찍어도 그 놈이 그놈 같은 오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노인은 매 번 아니라고 한다. 급기야 따로 살고 있는 아들, 손자, 남자와 여자는 힘을 합쳐 가짜 호순이와 호순이를 잡아먹은 가짜 오리를 찾아 노인에게 데려가게 된다. 진짜가 아닌 가짜 호순이, 가짜 오리이지만 노인은 묵묵히 받아들이며 생활을 바꾸기 시작한다.

 

수많은 오리들 중에서 고양이를 잡아먹은 놈 하나를 콕 집어내는 일은 도전이고 투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진짜 속에서 가짜를 찾아내는 일은 도전이고 투쟁일 수밖에 없다. 도전이고 투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또한 모험일 수밖에 없다. (148)

 

부모의 재산을 가지고 사업으로 탕진한 아들, 그런 아들과 따로 살며 호순이에게 의지했던 노인, 길고양이 호순이의 죽음, 증권회사 구조조정으로 실직한데다 주식으로 그동안 모은 돈까지 날린 여자, 장르소설을 쓰고 있지만 마음은 늘 본격문학을 지향한다는 빈털터리 작가, 명석한 두뇌회전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는 얄밉도록 당돌한 꼬마 등이 벌이는 황당 시추에이션이다. 여자의 조언에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남자, 자신의 현실을 거부하고 싶어 모든 게 전부 진짜이거나 모든 게 가짜였으면 좋겠다는 여자, 미친 짓거리에 돈을 탕진한다는 아들, 자신의 재산을 탕진했다고 나무라는 노인, 재기발랄한 손자의 이야기가 슬프면서도 웃기고, 황당하면서도 발칙하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노인, 그 노인에 고용된 젊은 남녀, 할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가짜 오리와 가짜 호순이를 제안하는 손자와 아들, 가짜에 홀려 있는 노인을 가짜의 가짜로 다시 홀려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이들의 합동작전이 결국 일말의 희망을 던져준다. 가짜 호순이와 가짜 오리임을 알면서도 노인은 그런 작전을 받아들이고 삶에 생기를 찾아가기에 말이다.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이다. 때로는 진짜와 가짜를 분명할수록,  때로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불분명할수록 좋은 세상이다. 그런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한이야기를 읽다 보면, 황당하지만 재미 있어서 웃게 되고, 가슴 아프지만 희망적인 유머 코드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분명 의심스런 이야기이고, 당연히 엉터리 같은 이야기이지만 가짜를 통해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거짓을 통해 치료가 된다면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하얀 거짓말 처럼, 위약효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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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작가의 옮김 1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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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화상]프랑스 작가 르베의 자신의 내면과 외면에 대한 고백소설

 

자화상이란 자기 얼굴을 스스로 그린 초상화다. 화가치고 자화상을 그리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고 작가치고 자신의 외면이나 내면을 적어보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자화상을 잘 그리려면 우선 자신의 모습을 잘 관찰해야 한다. 전체적인 비율과 위치, 크기와 색상, 가느다란 주름과 작은 점까지도 세밀하게 포착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마주하고 세세하게 그리다보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할 것이고 잘못 알고, 있던 자신의 모습에 새롭기도 할 것이고,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자신의 모습에 안타깝기도 할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진작가인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궁금했다고 할까. 잘 못 그리는 그림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세밀한 모습을 그린다는 게 자신과의 대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불을 끄기 전 반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나는 오후보다 아침과 저녁에 더 많이 읽는다. 나는 독서를 위해 안경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30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읽는다. 나는 5분 후에 정말 읽기 시작한다. 나는 신발이나 바지를 착용하지 않고 더 잘 읽는다. (37)

 

매일 독서를 하면서도 독서 습관에 대해 적어본 적이 없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못다 본 책을 펼쳐서 읽는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읽기에 잠자기 전엔 TV시청으로 마무리하는 편이다. 밤에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안경은 늘 쓰는 것이고 눈과 책과의 적정 간격인 30센티미터는 나도 기본적으로 지킨다. 어디에서나 책을 들고 다니기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독서를 한다. 대개 허리는 쫙 펴고 읽는 편이다. 때로는 엎드려서 읽기도 하고 때로는 걸어 다니면서 읽기도 한다. 때로는 차 안에서 조용히 읽기도 하고 때로는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읽기도 한다. 책의 표지를 보고 책의 매력을 느껴 독서를 하기도 하고, 무심코 펼친 책을 읽는 도중에 재미를 느껴 빨려 들기도 한다. 매일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읽고 싶은 목록이 빽빽해지곤 한다. 몰랐던 출판사, 몰랐던 작가, 몰랐던 블로그의 세계가 독서를 하면서 점점 영토 확장이 되고 있다.

 

솔직담백하게 자신을 그려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인간은 늘 단점은 숨기고 싶고 장점은 부각시키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리기에 말이지. 아무리 객관적으로 그린다고 해도 자꾸만 주관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자화상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그릴 수 있다니. 자화상을 그리려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얼마나 많아야 가능한 걸까.

 

 

르베가 2002년 미국 여행 중에 쓴 자화상에는 자신의 우울한 면과 재미있는 면, 무심한 성격과 적극적인 성격, 인간관계와 가족관계, 취향과 성향, 습관과 고민 관이 태연하게 그려져 있다. 다양한 자신의 모습, 때로는 이율배반적인 성격과 모순적인 사고까지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르베의 자신의 내면과 외면에 대한 고백적인 소설이다. 문단 구분도 없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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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1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덕님두 안경을 쓰시는군요^~^
책의 적정간격이 인상적이였어요
제가 요즘 시력때문에 애를 먹고 있거든요

잘 안보인다구 가까이 읽다보니 시력이 급 격히 떨어져서 저녁에 책 읽기도 힘들고 컴퓨터나 휴대폰 들여다보면 눈이 아파서 거의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좀 우울ㅠㅜ
저두 봄덕님 처럼 적정간격 유지하는 습관 들여야겠어요^~^

봄덕 2015-03-11 13:56   좋아요 0 | URL
예전엔 안경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몸의 한 부분 같은 안경이죠. 눈 건강, 눈 관리는 저도 어렵지만 늘 눈 운동으로 관리하고 있답니다.^^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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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전집 2. 아르센 뤼팽과 헐록 숌즈]프랑스 천재 도둑과 영국 명탐정의 세기의 대결..

 

프랑스가 자랑하는 추리문학의 거장에 모리스 르블랑이 있다면 영국이 자랑하는 추리문학의 거장에는 아서 코난 도일이 있을 것이다. 둘 다 멋진 캐릭터이지만 아쉽게도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에서만 홈즈가 등장한다. 모리스 르블랑은 영국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에게 셜록 홈즈 캐릭터 사용을 허락 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하자 셜록 홈즈는 헐록 숌즈, 왓슨은 윌슨으로 바꿔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켰다고 한다.

 

 

아르센 뤼팽 전집의 2권에서는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괴도 신사 뤼팽과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인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물론 셜록 홈즈는 헐록 숌즈라는 우스꽝스런 이름으로 개명을 해서 말이다. 이른바 프랑스 도둑과 영국 탐정의 세기적인 대결이다. 작가가 프랑스인이라는 점에서 헐록 숌즈에겐 우호적이진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뤼팽의 짜릿하고 통쾌한 승리를 다루고 있으니까. 사실 그 정도는 예상한 바이지만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아니라 모리스 르블랑 식의 헐록 숌즈의 창조라는 점이 아쉬울 다름이다. 어쨌든 세기의 국제적인 대결답게 기발하고 환산적인 함정과 트릭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 책에서는 금발 여인, 유대식 등잔등 두 편의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금발 여인의 이야기가 좀 더 매혹적이다.

고물상에서 마호가니 책상을 발견한 베르사유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제르부아는 딸 쉬잔의 생일선물로 골동품 책상을 구입한다. 고물상에서는 고상한 차림의 젊은 신사가 그 책상의 값을 두세 배로 줄 테니 자신에게 넘기라고 한다. 평소 한 성질 하는 제르부아는 제 성질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팔 생각이 없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집으로 돌아온 제르부아는 책상을 손질하며 만족해한다. 하지만 제르부아의 집에 둔 그 책상이 감쪽같이 도난당하게 된다.

 

그 와중에 복권에 당첨되지만 그 복권을 도둑맞은 책상에 둔 것을 알고 절망한다. 제르부아는 복권을 주관하던 부동산 은행에 수상한 자의 복권 당첨금 지불 정지를 요청하는 전보를 보내고 같은 시간 부동산 은행에는 복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뤼팽의 전보가 도착하게 된다.

복권의 주인을 놓고 뤼팽도 법체계를 존중한다며 이례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한다. 명확한 증거를 가진 뤼팽과 증거물을 도난당한 제르부아의 대결에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면서 파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반반씩 나누자는 뤼팽의 제안에 제르누아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선전포고를 하지만 이내 딸의 납치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더구나 딸을 납치했다는 금발 여인에 대한 증거들이 있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뤼팽의 제안에 굴복한 제르부아는 복권 당첨금을 수령해서 반반씩 나누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전에 프랑스 왕관에 있었던 푸른 다이아몬드 분실 사태를 맞게 된다. 귀중한 푸른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서 영국 명탐정 헐록 숌즈에게 부탁하게 된다.

 

 

형사와 탐정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대범하게 유유자적하기도 한다. 뤼팽은 천재 건축가의 기질을 발휘하며 감쪽같이 함정을 파놓기도 하지만 잡히기도 하는데......금발 여인과 뤼팽의 로맨스, 변신과 변장을 거듭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뤼팽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비록 도적질이고 사기 행각이지만 부자들과 공권력을 조롱하는 뤼팽, 그의 뛰어난 기지와 탁월한 신체 능력, 지치지 않는 보석에 대한 호기심, 예술 감각과 유머까지 겸비한 뤼팽, 더구나 프랑스를 사랑하고 예술과 귀중품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뤼팽, 더구나 왕족의 핏줄을 받아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까지 지닌 괴도 뤼팽의 이야기다. 예측불허, 상상불가의 이야기들이 긴장감을 주고 섬세하고 매력적인 문체는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쳐 읽게 만든다. 착한 가격이라는 점도 끌리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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