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 (반양장) 비행청소년 4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풀빛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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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수학 난제 해결에 일생을 바친 수학자의 삶…….

 

학창시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아무리 복잡하고 꼬인 문제라도 하나의 해답이 명쾌하게 나온다는 사실에 신기하기까지 했다. 특히 기하학 문제에 꽤나 설레며 풀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 만약 이런 난제들을 접했다면, 내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난 이 난제를 붙잡고 늘어졌을 것 같다.

 

수학의 난제 중 하나인 ‘골드바흐의 추측’ 과 관련된 수학소설을 만나다니. 수학과 동화, 수학과 문학이 만난 책을 찾아 헤맨 적이 있기에 무척 반가운 소설이다.

 

어릴 적부터 수학에 천재적 소질을 가졌던 삼촌 페트로스 파파크리스토스는 20대에 대학 교수의 길을 걸었던 수학계의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다. 가족들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첫사랑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한 삶이었다. 아버지로부터는 직접적으로 쓸모없는 인간 실패한 인생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동생들마저 공개적으로 비웃기도 했다.

 

주인공은 페트로스 삼촌에 대한 비난의 근거를 찾으려고 하다가 되레 삼촌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삼촌과 가까이 할수록 온 가족이 반대하는 수학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결국 결혼도 하지 않은 페트로스 삼촌의 죽음 이후 주인공은 삼촌의 유산과 유품인 수학책들을 물려받게 된다. 그 중에는 1742년 수학자 골드바흐가 쓴 편지를 담은 <오페라 옴니아> 제17권도 있고.

 

인생에서 반드시 이룰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삼촌이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평생을 바쳤던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삼촌의 일생을 실패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 도전하지 않으면 해결은 꿈도 꿀 수가 없는 일인데…….  그동안 수학적 난제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하나둘 씩 풀리고 있기에 언젠가는 ‘골드바흐의 추측’도 해결되지 않을까.

 

참고로, ‘골드바흐의 추측‘이란 골드바흐가 말한 첫 번째 명제이다. 이 명제는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4=2+2, 6=3+3, 8=3+5, 20=3+17 등 명제는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해내지 못한 명제다. 중국의 첸 징런은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하나의 소수와 두 개의 인수를 갖는 합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소설에서는 첫 번째 명제를 다루고 있다.

‘골드바흐의 추측’ 두 번째 명제는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다. 이 명제는 1937년 러시아의 정수론자 이반 비노그라도프가 증명을 해냈다.

 

1998년에 슈퍼컴퓨터로 400조까지는 이 추측이 참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어느 누구도 골드바흐의 추측이 어긋나는 짝수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드바흐의 추측이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다. 수학에서는 아무리 예가 많은 명제일지라도 증명할 수 없으면 참된 명제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소수의 문제가 수의 구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15쪽)

 

저자는 그리스 태생의 작가인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다. 그는 어릴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열다섯 살에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고, 프랑스 고등학문연구원에서 응용수학 석사학위를 받은 수학자이자 작가, 연극과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선정되기도 한 책이다.

 

오랜만에 만난 수학소설이기에 너무나 반가웠다. 마치 수학의 난제를 이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천재 수학자와 역시 난제를 이용해 사건을 추리해가는 천재 물리학자의 막상막하의 대결을 다룬 추리소설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던 때와 흡사한 즐거움이다.

 

평소 수학 난제를 다룬 소설은 추리소설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단서를 잡아 범인을 추리해서 밝혀내는 과정들이 수학적 증명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수학적 난제에 평생을 바치는 어느 수학자의 삶을 소설로 다룬 이야기는 처음이다. 수학 난제 해결에 일생을 바친 어느 수학자의 삶을 보는 듯 매력적인 소설이다. 어디에선가 수학 난제를 붙들고 고민하고 있을 수학자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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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 모독 Insult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79
조세희 지음, 손석주 옮김, 전승희.니키 밴 노이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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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조세희/아시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후의 이야기들~

 

현실주의적 전망이 닫혀 있는 시대에 신화적 전망을 찾아 고통스럽게, 그러나 사랑 속에서 변혁의 전망을 추구하고자 한 연작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48)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기억되는 소설가 조세희의 작품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다. 모독

모독아주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연작처럼 난장이 후일담이 전개되어 있다. 이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완결되었지만 작가는 난장이 이야기를 더 하고팠나 보다. ‘난쏘공의 주연이었던 난장이의 딸 영희가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이다.

 

 

영희는 해수욕장 방갈로가 딸린 횟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난장이와 그의 큰아들이 죽은 이후 그녀의 가족들과 예전 공장 동료들은 모두 흩어져 산다. 가끔 회보<친구들 소식>을 통해 근황을 전해들을 뿐이다.

 

영희는 <아무도 나를 위해 울지 말라>는 노래를 걸어놓고 바닷가로 나선다.

이전에 방갈로에는 묶었던 남자와 여자가 즐겨 부르던 노래다. 여자는 남자에게 아무도 나를 위해 울지 마라를 불러달라며 늘 애원했고, 영희는 이들의 노래를 엿듣곤 했던 곡이다. 영희는 자신의 처지를 이 노래에 견주었을까? 비록 오늘의 삶이 초라하다고 해도 남들의 값싼 동정은 사양하고 싶었나 보다.

 

 

한편, 주인은 산에는 지금 사람이 몰려들었다며 주말에 몰려올 사람들을 대비해 미리 불놀이용 나무를 준비하라고 한다. 해질녘에 방갈로에는 남자와 여자가 찾아 들었고, 경우도 찾아왔다.

느닷없이 찾아온 경우는 무인도로 가는 게 좋겠다며 신문에서 본 남태평양의 무인도에서 이상향을 꿈꾸던 젊은이들을 얘기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윤리적 문제와 무책임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게 된다.

 

어른들이 하는 일은 정말 참고 볼 수가 없어. 계획을 문제 삼지는 않겠어. 계획의 끝까지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의 계획이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건 우스워. 어른들이 밑의 사람들을 억눌러놓지 않고, 또 남이나 무엇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니? 공장에서는 어땠어? 어디서나 어른들은 핑계 댈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디? (34)

 

경우는 부친이 남긴 거액의 유산을 가지고 무인도에서 이상향을 건설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영희는 현실이 절박할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극히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일해요. 그래서 그렇게 않은 사람을 이해하려면 힘이 들어요. (36)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해서 폭풍우라도 쳤으면 좋겠다던 주방장의 넋두리가 효과를 발한 것일까? 그날 밤, 엄청난 파도가 몰아닥치며 방갈로 남자는 죽게 되고…….

 

경우와 영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괴리는 평행선일까? 서로 접점이 없는 걸까?

최근의 땅콩회항사건도 가진 자의 횡포다. 세월이 흘러도 전혀 좁혀질 줄 모르는 이런 거리감엔 왠지 기시감마저 든다. 갑과 을, 부자와 빈자,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이 좁혀질 날이 올까? 영원히 불가능한 이야기일까?

 

조세희의 모독아주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그 울림은 깊고 길다. ‘난쏘공으로 잘 알려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초점인물인 영희의 후일담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난쏘공’, 다시 읽고 싶다. 이젠 이해가 쉬우려나. 예전엔 어렵게만 느껴지던 소설이었는데......

 

이 책 조세희의 모독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시리즈 79번째다. 영역은 손석주다.

 

작가인 조세희는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서라벌 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왔다. 경희대 재학 중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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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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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연금술사]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보고 싶은 시기를 별로 생각한 적이 없다. 되돌려지지도 않는 인생이기도 하지만 지금이 만족스러운데...... 만약 아무 기억도 없는 젖먹이시절로 돌아간다면, 모두의 사랑이 가득한 유아기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거 실패 투성이의 삶을 살았다면 이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의 기억을 잊고 싶어 할까? 만약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면,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롭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26세의 청년 이반 오소킨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가진 채 새롭게 살고 싶어 한다. 그의 과거는 실패와 후회로 가득하니까.

학창시절, 그는 우연한 장난과 실수로 사감과 교감에게 낙인찍히면서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심장마비로 어머니를 잃은 후, 숙부의 강압으로 대학교 대신 군사학교를 다니게 되고, 군사 학교마저 퇴학을 당하게 된다. 숙모의 유산을 받았지만 룰렛으로 유산을 한방에 날리기도 하고, 친구의 여동생인 지나이다를 좋아하지만 친구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되는 거라곤 없는 인생이기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다 마법사를 찾게 된다.

 

오소킨은 마법사에게 12년 전 아직 학생이었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청한다. 사소한 모든 기억, 경험들, 지식까지도 기억하면서 12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법사는 오소킨이 원하는 대로 보내줄 수가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다른 결과를 얻진 못할 거라고 장담한다.

 

당연히 나는 몰랐어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일이 다가올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명확히 안다면, 누가 그런 일들을 저지르겠어요? (31)

 

오소킨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기에, 설마 또 그런 실수를 저지르겠느냐며 확신에 차 있다.

 

그때는 언제나 알고 있었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알 수 없는 원인들의 결과와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를 수가 있지만,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초래할 수 있는 모든 결과는 항상 아는 법이야. (31~32)

 

그때는 미처 몰랐다는 오소킨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마법사의 이야기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마법사는 오소킨의 소원대로 모든 기억을 지닌 채 12년 전으로 되돌려 보낸다.

 

다시 14살 소년이 된 오소킨은 모든 기억을 가지며 다시 학창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첫날부터 오소킨은 기숙사에서 베개를 던지다가 독일인 기숙사 사감에게 걸린다. 벌을 받는 중에 친구의 코뼈를 다치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결국 교감에게 훈계를 듣고, 외출 금지까지 내려진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기억들이 가득하지만 생활은 예전과 똑같이 되풀이 된다. 낙제를 받게 되면서 공부도 포기하게 된다.

 

모든 일이 하나씩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하려고 온 것은 아닌데. 앞으로 닥칠 어머니의 심장마비도 걱정하고, 어머니의 장례식을 기억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슬플 뿐이다.

친구의 여동생 지나이다와의 사랑도 짝사랑에 머물게 되고 다시 홀로 지내다가 자살을 시도한 뒤에 마법사를 찾게 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와 똑같은 완벽한 재생일 뿐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똑같아서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전 재생이다.

 

기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시간여행은 무의미할까?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시간을 돌린다 해도, 세상이 바뀐다 해도 실패는 반복되거나 더 악화될 뿐이라는 마법사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과거의 기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인생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게 하려면, 가치 있는 배움을 얻으려면 자기희생을 거쳐야한다는 마법사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노력과 희생이 없는 삶에서 달라지거나 얻는 것은 없을 테니까.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면,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족쇄이자 덫일 뿐이다.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말이다.

인간은 행동하기 전에 늘 추측과 예상을 한다. 원인과 결과도 생각한다. 이렇게 행동하면서 저렇게 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은연중에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삶의 결과도 알고 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 지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저자인 페테르 우스펜스키는 모스크바 출신의 영적 교사다. 수학자와 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인생의 진리를 찾던 중에 영적 스승인 구르지예프를 만나면서 나는 누구이며, 왜 이곳에 있는가?’를 아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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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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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권여선/자음과모음]고통과 상실의 시절, 이런 시절도 있었네~

 

그들의 고통, 이를테면 어떤 커다란 반죽덩어리 같은 고통에서 부드러운 물풀 같은 손이 슬그머니 내 목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자기와 비슷하지만 자그만 어떤 것, 그러니까 자기의 새끼 비슷한 고통을 살그머니 끄집어낸다. 세상에, 도대체 언제 이런 게 내 속에 들어앉아 있었던가. (334)

 

뭐든 다 빼앗아가는 세상이야. 그래도 살다보면 살아져!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며 매 한가지야. 그러니 숙명처럼 받아들여!

이 책은 그렇게 외치던 시절, 사람이 어느 순간 토우가 되고 집이 순식간에 무덤이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어리가 우뚝 솟아 있는 삼악산. 삼악산 남쪽에는 삼악동이 있다. 삼악동은 개천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좁은 골목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형상이 마치 거대한 다족류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기에 삼악동보다 삼벌레고개로 더 유명하다.

 

삼벌레고개의 아랫동네에는 제집 사는 부유층이 살고, 윗동네는 제집 사는 이가 드물 정도로 전세나 월세를 사는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아랫동네 아이들은 불량 냉차 사먹는 것도 부모의 눈치를 볼 정도로 온갖 보호 아래 있지만, 윗동네 아이들은 모험과 범죄의 경계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삼벌레고개 중턱에는 제집 사는 사람과 전세자 등 다양한 부류가 사는 소시민들의 공간이다. 이 곳에는 4통 통장인 박가의 구멍가게가 있고, 난쟁이 식모를 싼 값에 부리는 우물집 순분 네도 있다. 우물집에는 하꼬방 같은 방들이 있어 네 가구에 모두 열세 명이 세 들어 산다. 순분의 큰 아들인 금철은 매번 모험적이고 일탈을 즐기는 개구쟁이다. 둘째 아들인 은철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어느 날 우물집에 안덕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다. 새댁이라는 아내와 영, 원 자매와 함께 말이다.

일곱 살 동갑내기인 원과 은철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스파이놀이를 한다. 기껏해야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거나 어른들의 잡담을 엿듣는 정도지만 둘은 열심히 사소한 정보들을 캐고 다닌다. 스파이의 생명은 정보력이니까.

 

한편 장난기와 모험심이 많은 금철은 늘 일탈을 즐긴다. 그러다 넓이의 모험에 도전하게 된다. 넓이의 모험이란 개천을 건너뛰는 것이다. 금철은 개천의 폭이 다르기에 등급을 매겨 뛰다가 난이도를 높인다. 그리고 동생 은철이를 옆구리에 끼고 뛰다가 동생을 개천에 빠뜨리게 된다. 결국 큰 부상을 당한 은철은 목발 인생이 되고 만다.

 

한편 원의 아버지 덕규는 어느 날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끌려 간 뒤 고문당한 흔적을 가진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남편이 정보부에 끌려가서 결국 시체로 돌아온 것을 본 새댁은 점점 정신을 놓아버린다.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순분도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린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332)

 

 

토우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 형상을 흙으로 만든 것이다. 주로 주술적인 기원이나 상징적인 장식으로 사용했으며 무덤에서 많이 발견되는 유물이다.

 

은행놀이와 구슬 꿰기 등을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져버린 동네, 어른들의 뒷담화가 무성하던 계모임도 끝나버린 동네, 사우디집, 뚜벅이 할배, 괴상한 씨, 곰딴지학자, 통장님댁, 보험여자, 임보살, 난쟁이식모 등 인간 군상들이 점점 사라져버린 동네는 이미 무덤 같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고통과 상실의 상징으로 남은 토우의 집 이야기에 그저 묵직한 먹먹함이 있을 뿐이다.

 

반공 시대가 남긴 이야기에 가장의 죽음과 가족들의 고통이 유물처럼 남아 있다. 억울한 희생으로 산자가 토우가 되어버린 흔적들이 있다. 반공 사상이 철저할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을 당한 가족들은 지금 그 아픔을 치유했을까. 사람이 토우가 되고, 집이 무덤이 된 동네가 지금은 활력을 찾았을까. 살다 보면 살아지는 걸까.

 

저자는 권여선이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지만 흡인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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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꿈결 클래식 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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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괴테/꿈결]24세에 4주간에 걸쳐 쓴 괴테의 첫 소설이라니!

 

나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써서 내 놓은 것은 모두가 하나의 커다란 고백의 파편들인 뿐이다. - 괴테

 

여성 편력이 대단했던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청소년을 위한 꿈결 클래식의 야심작이라는 데미안, 햄릿에 이어 이번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만났다. 이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여고 시절 만났던 작품이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는 제목은 일역본으로 소개된 최초의 책의 오류를 벗어나 원래의 단어 의미를 살린 제목이라고 한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괴테가 24살의 젊은 나이에 4주간에 걸쳐 쓴 첫 소설이다. 이 소설은 괴테가 1772년 베츨리에 소재한 독일제국 고등법원에서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중에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무도회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향한 사랑과 실연, 그 이후 만난 16세의 어린 연인 막시밀리안과의 사랑과 실연, 누구보다 우애가 두터웠던 누이동생 코르넬리아의 결혼, 유부녀와의 실연에 상처를 받아 비극적 권총 자살을 한 옛 동료 예루잘렘, 이 모든 경험들은 이십대 초반의 젊은 괴테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괴테는 이러한 마음의 고통, 영혼의 고뇌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젊은 베르터의 고뇌을 썼다고 한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출판 후 유럽은 베르터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는 베르터가 즐겨 입던 노란 조끼에 푸른색 연미복을 유행시킬 정도였고, 베르터처럼 자신의 사랑의 순정을 지키고자 젊은이들의 자살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폴레옹도 전장에서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되풀이해 읽었을 정도라고 한다.

 

법학을 공부하던 베르터는 어머니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고향을 찾게 된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던 중에 무도회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런 로테를 만나게 된다. 이미 로테에겐 약혼자 알베르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로테를 향한 베르터의 연정은 멈출 줄을 모른다.

첫눈에 반한 천사같이 완벽한 그녀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총명한데다 소박하고 단호한 그녀, 더구나 너그럽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녀, 게다가 생기와 활력까지 넘치는 그녀는 베르터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설명할 재간이 부족할 정도로 완벽한 그녀라니! 베르터의 혼을 쏙 빼놓았다는 괴테의 표현들이 너무나 매혹적이라서 내 영혼을 사로잡는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얼마나 황홀했는지! 그 생기발랄한 입술과 활기차고 싱그러운 뺨이 얼마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리고 그녀의 뜻 깊은 이야기에 정신을 쏟느라 정작 그녀의 말을 흘려들은 것이 몇 번이었는지! (42~43)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란 늘 설렘 가득한 법이지만 동시에 온갖 상상과 착각이 지나치는 법이다. 착각도 지나치면 우스운데......

 

나를 사랑한다니!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이후로 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른다네. 자네는 이런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람이니 이렇게 말해도 괜찮겠지.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숭배하게 되었는지 모른다네! (70)

 

하지만 임자 있는 사랑이나 삼각관계는 언제나 불행한 결말, 고통스런 결말을 잉태하는 법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절망감을 안고 잠시 피하고자 공사의 비서가 되어 로테를 떠나게 된다.

 

세상만사의 모든 일은 엎친 데 덮치는 법일까? 베르터는 업무적 관습과 인습에 반항하다가 파면이 되고 이후 사교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내가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권총을 좀 빌려줄 수 있겠나? 그럼 잘 있게!(228)

 

자신의 사랑을 외면하고 결국 약혼자와 결혼한 로테, 그녀를 영영 떠나야만 하는 슬픔, 자신의 순정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와 절연하고자 베르터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것도 로테의 약혼자에게서 빌린 권총으로 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언제나 애달픈 법이다.

자신의 사랑을 이해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가졌을 절망감, 매력적인 괴테의 문체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책이다. 괴테 자신의 경험과 당시 젊은이들의 사랑과 실연, 사회적 부조리, 생활 풍습들이 담긴 아름다운 문장에 그저 빨려들게 된다.

24세에 4주간에 걸쳐 쓴 괴테의 첫 소설이라니,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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