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에서 굴욕을 당했을까? - 하인리히 4세 vs 그레고리우스 7세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9
이영재.이명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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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자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를 무릎 꿇게 한 교황도 대단하다 싶지만 과연 황제는 무엇 때문에 요즘말로 굴욕이라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했을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그 이후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까지 세계사의 한 부분인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우스 7세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레고리우스 7세의 등장 이전까지 군주나 황제들은 교회의 성직자를 보호함은 물론이거니와 통제하며, 제국 교회 체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또한 직접 고위 성직자들을 임명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권력 하에 둘 수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 7세의 증장이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군주와 황제에게 속해있던 종교권에 정치 영역에서까지 절대적인 힘을 갖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군주나 황제와 같은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했던 프랑스의 클뤼니 수도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혁 운동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되고, 나아가 교황 중심의 그리스도교 공화국 건설을 구상하게 된다.

 

이에 반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아버지인 하인리히 3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어린 황제인 하인리히 3세의 권력이 너무 약해서 고위 성직자들과 귀족 관리자 계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는데 주력한다. 더욱이 주교와 수도원장을 선정하는 것 역시도 원래는 황제의 역할이였지만 힘이 약한 하인리히 4세이다 보니 이 마저도 고위 성직자들과 대 제후들에게 밀려나기 시작한다.

 

바로 이런 때를 노려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회 개혁을 주장하게 되고, 황제의 권한이던 성직자 임명권 마저 교회에 속하게 하려고 한다. 바로 이 일로 인해서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갈등하게 된다.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하인리히 4세와 교회 개혁은 물론 교황권 강화를 외치던 황제와 교황 사이의 폐위와 파문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알려진 대로 추운 겨울날 맨발로 무릎까지 꿇게 되는 것이다. 이에 하인리히 4세는 그레고리우스 7세를 직권 남용과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에 세우는 것이다.

 

 

양측의 엇갈리는 증언에서 우리는 그 당시 황제권과 교황권, 신성로마 제국의 제후들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후대인에게 굴욕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는 하인리히 4세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청구 기각 사유는 보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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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2014-01-2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내용 재미있나요?
 
컨닝 X파일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9
크리스틴 부처 지음, 김영아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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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시험 중에 일어나는 부정행위로써의 컨닝이 아니라 그 시험지를 훔치는 범죄도 일어 나고 있는 현실 앞에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컨닝'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솔직히 특이할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시험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겪고 있거나 아니면 단순히 그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컨닝을 단독으로 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많은 학생들이 연루된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컨닝을 한 학생과 그것을 파헤치려는 학생이 오히려 친구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상황이 그려진다. 표면적으로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당연히 잘못된 행위인 컨닝이 우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오히려 배신자로 그려진다는 상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단순한 컨닝이라는 소재를 좀더 의미있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로렐은 학교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학교의 보일러 실에서 석 달 넘게 잠을 잤다고 주장하는 노숙자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스타가 된다. 그리고 로렐 자신도 <뉴욕타임스> 수준은 안 되지만 제법 근사하게 썼다고 스스로도 자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수학 시험기간에 친구들의 컨닝 모습을 보고선 이것을 기사로 쓰면서 로렐은 학교의 스타에서 한순간 친구들의 배신자가 전락하고 만다. 실제로 학교에서 컨닝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로렐은 그 사실도 특집기사로 실으려고 하지만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고 반대한다.

 

나름 기자라는 자부심이 있고, 부정행위에 대한 특집 기사를 써서 진실을 밝혀야 하는 정의감과 함께 특종에 대한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로렐이기에 이 상황이 고민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사실은 단순한 컨닝이 아닌 잠복과 미행을 통해서 시험 정답지를 몰래 빼내서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판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범인을 잡기 위한 로렐의 노력끝에 자신이 생각했던 인물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게 된다.

 

결국에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로써 끝을 맺는것 같지만 그 결말 뒤에는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너무나 비일비재해서 이제는 시험지를 훔쳐서 팔기까지 하는 상황에 이른 순간에 컨닝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 결말을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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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송나라에서 사대부 사회가 발전했을까? - 악비 vs 송태조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8
양종국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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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를 세운 송 태조는 중국사를 배울때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특히 문인정치로 유명했던 인물인데 바로 이런 점이 누군가로부터 소송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가 처음 들어보는것 같은 남송의 장군 악비로부터 말이다. 악비는 재상 진회가 자신에게 모반의 혐의를 씌워서 39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 갇힌 뒤 살해된 인물이다.

 

실제로 중국 절강성 항주에 악비묘, 악묘라고 불리는 악왕묘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금나라와 싸워서 큰공을 올린 악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사당과 묘원 두 부분으로 나뉜 묘의 묘원부분에 재상 진회와 그의 아내 왕 씨, 만사설, 장준의 철제 조각상이 포승줄에 묶인채 무릎을 꿇고 있다고 한다.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악비를 죽인 진회쪽 조각상에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 침을 뱉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들이 생각하는 악비의 위상을 알듯하다.

 

이런 상황이 모든 민족을 끌어 안으려는 중국의 역사 공정으로 인해서 다시금 악비의 죽음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인을 우대했던 송 태조의 정책은 상대적으로 무인의 위상이 낮았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악비는 자신을 죽인 재상 진회가 아니라 송 태조에게 소송을 걸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문치주의 정치를 시작한 송 태조, 조광윤이기 때문에 말이다.

 

감옥에서 독살 당한 그의 억울함이 3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밝혀지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있기에 송 태조를 고소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문인을 우대하고 무관을 배척한 그에게 책임을 묻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자신과 가족들, 동료들에게 합당한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악비의 소송 청구 내용이다.

 

책은 이 소송에서 중요한 화두인 사대부 사회를 첫째 날 이야기한다. 사대부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사대부란 무엇이며, 사대부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사료와 함께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송 태조가 왜 문인 사대부에게 정치를 맡겼는지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한다. 문치주의 정치와 과거 제도의 좋은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할 부분이기에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온다. 덧붙여 태조가 자신의 즉위 당시의 혼란한 정세에서 외교 정책을 위해서 선택했던 것이 문치주의라는 이야기는 송 태조가 자신만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님을 주장한다. 이상의 양측 변론을 통해서 판결이 내려진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은 악비가 송 태조를 상대로 제기한 권력 남용 죄와 자신이 겪은 불행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중 권력 남용 죄는 기각하고 피해보상 청구는 인정한다." (p.151)

 

법정은 태조가 즉위한 5대 10국의 상황에서 문치주의를 실시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치주의로 인해서 무관들이 소외 받거나 억압을 받았고, 국제 관계에서도 어려움 속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송 태조의 문치주의가 보는 시각에 따라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비춰질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송 태조의 노력 부분도 분명 인정해야 하기에 구너력 남용 죄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1~17권까지의 소송 중에서 원고의 청구 내용이 가장 많이 받아들여졌던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악비의 죽음이 명확하게 억울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 속 인물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이라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재판 과정을 읽는 것이 아니라 원고와 피고를 둘러싼 그 시대의 여러가지 상황들과 그로 인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좋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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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게르만족은 서로마를 멸망시켰을까? - 콘스탄티누스 vs 샤를마뉴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7
최재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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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의 17번째 이야기는 콘스탄티누스 vs 샤를마뉴이다. 학창시절 참 많이 로마제국의 연대기와 왕들을 외웠던 기억이 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속에서 로마가 차지했던 위상이 분명 있었다. 그렇기에 로마 제국의 중흥을 이끈 콘스탄티누스가 게르만족의 샤를마뉴를 상대로 재판을 벌인다는 설정히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경계에 살면서 로마와 경제 교역을 했던 게르만족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통해서 라티족의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게르만족의 왕립을 세웠다. 그리고 바로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샤를마뉴 대제가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억나지만 샤를 마뉴는 생소한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게르만족의 왕국 설립 후 역사의 무대가 지중해권에서 북서유럽권으로 확대되고 유럽 세계가 형성되도록 했고, 유럽에서 최초의 문화 전성기를 만들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콘스탄티누스에 뒤지지 않는 영향력있는 인물이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여지는 사실들에 대해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말한다. 게르만족의 반란과 약탈로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혼란에 빠졌으며, 성장이 아닌 몰락을 당했고, 게르만족과 프랑크 왕족으로 인해서 정통 로마의 맥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게르만족이 '로마'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문화를 계승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인한 로마 멸망의 억울함과 샤를마뉴의 서로마 제국 계승권의 부당성을 알림으로써, 진실과 정의를 세우고 로마 제국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을 뿐입니다." (p.16)

 

이런 이유로 시작된 재판은 그 당시의 로마제국의 쇠퇴하는 상황들과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콘스탄티누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게르만족의 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게르만족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것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마 제국와 게르만족의 관계나 서로마 제국 안에서 게르만족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에 대한 것들도 알수 있다. 그리고 게르만족의 샤를마뉴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기까지의 일들이 셋째 날에서 밝혀진다.

 

양측의 사료의 증거, 증언들을 통해서 결국 판결이 내려진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거와 증언, 변론을 통해서 샤를마뉴의 노력이 인정되는 것이다. 비록 콘스탄티누스의 로마에 대한 충정은 인정되지만 그런 마음이 오히려 자신만의 시각에 빠져서 로마인의 우월성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를 되새겨 보기를 권고한다.

 

똑같은 사실에도 누구의 입장인가에 따라서 그 사실은 천양지차로 비춰지기도 하는것 같다. 콘스탄티누스의 주장과 샤를마뉴의 주장이 그런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좀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억울한 것이 있으면 풀어 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 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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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비는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을까? - 조조 vs 유비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6
박영철 지음, 황기홍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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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6번째 이야기는 조조 vs 유비다. 흔히들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핵심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과연 조조는 무엇때문에 유비를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에 세웠을지 궁금해진다. 모두가 유비의 지도자로서 옳은 인물이라고 말하며, 상대적으로 조조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조의 리더십이나 생애에 대해 조명되면서 더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보통의 영웅기라 하면, 선인이 종국에 가서는 승리하기 마련이지만 삼국지의 경우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조조는 자신이 진정한 영웅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그런 유비보다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 함과 동시에 조조는 자신이 보기에 위왕조야 말로 한나라의 뒤를 이은 정통 왕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황건적의 난으로 한나라가 멸망한 당시 도처에서 영웅이 나타나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자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뤘던 조조와 유비는 각자가 처한 상황부터 현저하게 차이가 났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조조는 자신이야말로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솔직히 삼국지를 읽다가 만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소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둘의 공방에서 파생되는 제갈량의 이야기나 조비가 헌제를 살해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삼국지를 완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책들이 조조와 유비의 상황을 절대적으로 객관화하고 있는 지는 알수 없지만 그들의 상황이나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에서 완전한 원고 승소를 본적은 없다. 다만 일부 승소나 원고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원고들이 재판을 하고자 하는 것은 후손들이 자신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확실히 바로 잡아서 죽은 이후에도 명예를 지키고 싶을 것일 테다. 이 책에서 헌제 시해설을 퍼뜨려서 조비의 명예를 훼손한 피고 유비의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작은 변화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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