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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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햄릿>을 만났다. <햄릿>은 너무나 유명해서 오히려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로 유명한 햄릿. 우유부단의 대명사 햄릿. 책을 보기 전에는 햄릿이 유약한 캐릭터인 줄 알았다. 책을 보니 햄릿이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만 다르게 본 것일까? 내가 제대로 본 거라면 이런 오해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네이버에 햄릿, 우유부단으로 검색해보니 역시나 햄릿이 우유부단하지 않다는 글들이 대다수다.


 햄릿이 어떤 캐릭터인지 내가 느낀 바들을 이야기해보겠다. 일단 햄릿은 30세의 나이다. 덴마크의 왕자이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검술 솜씨가 훌륭하다. 왕국 내에서 최고의 솜씨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다.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천하제일의 검사? 영 아다리가 맞지 않는다. 햄릿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당당하고 기개가 있다. 때론 다정하고 친절하며,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거침없다. 독설을 아끼지 않는다. 하는 언행을 보면 결코 하남자 스타일이 아니다. 상남자 스타일이다. 그의 아버지 역시 훌륭한 국왕이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햄릿은 그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햄릿이 사랑하는 오필리아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결코 수줍어하거나 소심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여자들이 보기에 눈쌀이 찡그러질 정도로 막말하고 막 대한다. 이런 햄릿이 어떻게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버지의 복수를 서두르지 않고 저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때문에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가진 거 같는데 이는 명백한 오해라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햄릿은 우유부단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신중하고 철저한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한다. 자신이 복수해야할 대상은 자신의 삼촌이며 한 나라의 왕이다. 당연히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섣불리 행동하다 오히려 자신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리고 명분 또한 중요한다. 햄릿이 삼촌이 아버지의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버지의 유령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복수의 증거로서 부족하다. 때문에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연극을 삼촌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살핀다. 삼촌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햄릿은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일부러 미친 척을 한다. 이런 것들은 결코 우유부단한 모습이 아니다. 신중하고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모습들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도 원문은 .'To be, or not to be.' 이다. 내가 본 믿음사에서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로 번역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문장만 들었을 때는 햄릿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라는 인식만 있었다. 하지만 <햄릿>이라는 작품을 보니 햄릿은 결코 자신의 죽음과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과 삶 어떤 것이 더 고귀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인물이었다. 전체에서 부분만 떼어서 확대하니 우유부단한 모습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책으로는 <오셀로>, <맥베스>를 봤다. <오셀로>는 괜찮았다. <맥베스>는 영 별로였다. <맥베스>를 보고 희곡은 나랑 잘 안맞나 생각했는데 <햄릿>을 보니 그건 아니었다. <햄릿>이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이유가 있었다. <햄릿>은 재밌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고 초반부터 몰입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햄릿이 처하는 상황은 굉장히 빡센! 상황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고 삼촌과 어머니가 두 달 만에 결혼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삼촌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복수해야 할 대상인 삼촌은 한 나라의 왕이다.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도 클 것이고, 복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삼촌의 살인 사실은 유령인 아버지에게 들은 사실이니 증거로서 불충분하다. 이런 상황을 햄릿이 어떻게 해쳐나가는지, 나라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와중에 로맨스도 첨가 되어 있고 햄릿이 음모에 빠지고 복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각본도 확실히 훌륭하다. 

 

 

 이 책의 마지막 해설을 보니 <햄릿>이 완전한 셰익스피어의 창작물은 아니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과거에 있었고 셰익스피어가 이를 각색하고 햄릿이란 영원불멸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이다. 연극의 일부였던 <햄릿>의 인기는 그 당시에 상당했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 <햄릿> 연극 볼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봐서 아쉽다. 다음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재밌게 본 작품이다. 다음 작품으로 <리어 왕>을 볼 계획인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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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1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23-12-05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라디오🐱 님 2023년 서재의 달인 선정되셔서 제가 기뻐요^^ 항상 좋은 책과 영화를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해 수고 많으셨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12-05 10:17   좋아요 0 | URL
나와같다면님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기쁜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서재의 달인을 위해 열심히 읽고 써야겠네요ㅎㅎㅎ

서니데이 2023-12-05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라디오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23-12-06 17:2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 <비밀의 숲>. 하루키의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도 너무 좋다. 




 

















 하루키가 추천한 책이다. 피츠제럴드의 <다시 찾아온 바빌론>, 희한하게 종이책은 없고 e북과 오디오북만 있다. 오디오북 한 번 도전해볼까나.



 




 











 역시 하루키가 추천한 책.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이다. 700p가 넘는다. 꼭 읽고 싶은 책인데, 두께가 만만찮다. 1, 2 권으로 나눠졌던 게 절판되고 합본으로 출간되었다.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작업을 할 때도 매사가 술술 순조롭게 진행되면, 어찌 된 일인지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다. 어쩐지 안절부절못하고 근질근질해진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몸이 긴장해서(물론 나도 칭찬받으면 기쁘지만), 그만 엉뚱한 말을 주절거리고는, 자기혐오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형세가 반대로 되면, 나는 생기가 넘치게 되는 것 같다. '좋아, 이제 오르막길이다!' 하고 생각하면 절로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면서(이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서서히 기어를 저속으로 넣는다. 나 스스로도 이상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장거리를 좋아하고, 그것도 오르막길을 좋아하다니. 하지만 성격이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거잖아요. -p116-117 


 장거리를 좋아하고, 그것도 오르막길을 좋아한다니. 정말 하루키는 변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왠지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거 같다. 



 



  













 커트 보니것의 <몽키 하우스에 오신 걸을 환영합니다>에는 사전에 대한 아주 유쾌한 문장이 있다고 한다. 그게 뭔지는 설명을 안해줬다. 커트 보니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을 봐야겠다. <비밀의 숲>에는 <원숭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되어 있어서 못 찾을 뻔 했다.



 아래는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때를 이야기한 글이다. 하루키는 이 이야기를 여러 번 이야기했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이 버전이 가장 좋은 거 같다.


 그리고 이것은 전에도 어딘가에서 쓴 적이 있는데, 내가 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어느 하루'가 있다. 스물아홉의 4월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그때의 일을 아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햇살과 바람의 상태와 주위에서 들리던 소리 같은 것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해낼 수 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돌연 무엇인가가 반짝 하고 아주 작고 눈부시게 빛났고, 그래서 나는 '그래, 이제부터 소설을 쓰자.' 하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소설을 쓸 수 있다.' 고 인식했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계기라든가 근거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단지 오만함이 있었다.

 그로부터 대략 1년 후, 내가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이 문예지의 신인상을 수상해서, 나는 그럭저럭 작가로 불리게 되었지만, 나 자신의 의식 속에서 나는 바로 그날에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이미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느낌은 실로 열렬한 사랑에 빠진 것과 원리적으로 똑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등줄기가 찌르르한 느낌은 열렬한 운명적 사랑 외에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다, 그것은 너무나도 좋은 느낌이었다. -p224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하루키가 학창시절에 읽었다는 책이다. 

































 하루키는 여행길에 <체홉 전집>을 챙겨 간다고 한다.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한 권을 챙겨간다고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체호프 단편선>을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야겠다.



 















 <뉴요커>지의 어느 편집자가 강추했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 그리고 명편집자로 알려진 맥스웰 퍼킨스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좋은 책은 많다. 부지런히 읽자. 요즘 소설이 땡기진 않지만. 



 나는 클래식 콘서트에 가서도 '그저 그런 연주로군.' 하는 생각이 들면, 거의 앙코르를 듣지 않고 그대로 나와버린다. 대단한 연주도 아닌데 '상투적으로' 박수를 치면서 앙코르를 요구하는 건, 그 연주자를 망치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에 살 때 자주 콘서트에 가곤 했는데, 설령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연주라 하더라도, 내용이 별 볼일 없으면 관객은 곡이 연주되고 있는 도중에 가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 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나조차 "대단하군!" 하고 감탄했다. -p349


 하루키의 프로의식과 장인정신을 볼 수 있는 글이었다. 일본은 상투적으로 영화의 엔딩 자막을 끝까지 본다고 하는데 요즘도 그러진 않겠지?



 즐겁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소설과는 또 다른 가볍고 여유있는 맛. 잠시 한 숨 돌리고 쉬어가기 좋은 책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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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08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가 소설속에서 언급하는 것들은 찾아 읽으려고 하는데,

토마스 만의 <마의산> 이건 잘 못읽겄더라구요 ㅋㅋㅋ

<다시 찾은 바빌론>은 아마 피츠제럴드 단편집 종이책 속에 포함되어 있을겁니다 ㅋ 기억이 가물가물...

하루키 덕분에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 이름을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
<해변의 카프카> 보시면 나쓰메 소세키 책도 나옵니다. <갱부> 였던거 같은데 ㅋ

소세키도 추천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11-08 12:46   좋아요 1 | URL
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다시 찾은 바빌론> 찾아서 봐야겠네요ㅎ

소세키도 <마음> 읽어봤는데 괜찮았어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기대에 비해서는 좀 별로였어요ㅠㅋ

<갱부> 기억해놔야겠네요ㅎ
 




 평점 8.8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마크 라이런스, 오스틴 스토웰, 에이미 라이언

 장르 드라마, 스릴러



 간혹 영화를 보고 싶은데 어떤 영화를 봐야할지 모를 때가 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평점과 소재에 낚여서 재미없는 영화를 선택했다가는 시간도 낭비하고 기분까지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보고 싶은 영화를 메모해놓는다. 영화를 보고 싶을 때 그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고른다. 사실 메모해 놓은 영화들을 거의 보지 않는다. 알라딘에 읽고 싶은 책을 저장해놓고 안 보는 것처럼. 하지만 메모해 놓은 것 중에 꼭 보고 싶은 영화도 있다. <스파이 브릿지>가 그랬다. 


 최근에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갔었다. 옆에서 영화를 보는 데 자꾸만 눈이 갔다. 굉장히 재밌어 보였다. 나중에 저 영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영화가 <스파이 브릿지> 였다. 잠깐 곁눈질로 봐도 몰입감이 있고 재밌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다. 주인공은 톰 행크스. 마크 라이런스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뭐, 이정도면 게임 끝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흥행도 성공했다.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무기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오른 1957년을 배경으로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실제로 극 중 대사들 중 실제 발언가 똑같은 대사들이 많다고 한다. 소련의 스파이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인물들이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장의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웰메이드 영화. 역시 좋은 영화는 많다. 내가 아직 모를 뿐. 




 평점 10 : 말이 필요없는 인생 최고의 영화. 

 평점 9.5: 9.5점 이상부터 인생영화. 걸작명작

 평점 9 : 환상적. 주위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 수작

 평점 8 : 재밌고 괜찮은 영화. 보길 잘한 영화. 

 평점 7 : 나쁘진 않은 영화. 안 봤어도 무방한 영화. 범작

 평점 6 :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 6점 이하부터 시간이 아까운 영화. 

 평점 5 : 영화를 다 보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한 영화. 

 평점 4~1 : 4점 이하부터는 보는 걸 말리고 싶은 영화. 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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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읽은 양자물리학 책 중에 최고였다. 깊이가 있고 양자역학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을 소개해주고 해석해준다. 책을 다 읽고보니 저자가 양자물리학에서 세계적인 과학자였고 2022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므로 일상과 고전물리학 속의 우연은 겉보기 우연이다.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그것을 '주관적' 우연이라고 표현했다. 그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순전히 우연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오직 우리의 일시적인 무지에, 즉 주관적인 무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사건에는 잘 정의된 원인이 있다. -p55



 겉보기 우연, 주관적 우연 이란 표현이 참 직관적이고 멋진 표현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우연은 실제로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해외에서 아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우연이라 표현하지만 원인을 따져보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만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우연은 객관적인 우연이다. 원인이 없다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있고 대부분의 과학자가 그것이 자연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일생 동안 우연이 양자물리학에서 하는 역할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의 유명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숨은 변수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에서의 우연을 객관적 우연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주관적 우연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이 점을 이 책의 말미에서 정보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것은 5천 년 전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던 세금징수관이 했을 법한 말이다. 그 지역은 오늘날의 이라크 지방으로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 문명의 요람이 된 곳이다. 인류는 그곳에서 최초로, 최소한 입증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최초로, 오늘날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는 형태로 수를 사용했다. 도시들로 이루어진 조직화된 국가가 등장하면서 수를 사용하는 일은 필수가 되었다. -p173 

 

 위 글은 독서모임에서 수학과 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수와 사칙연산을 이해하는 동물들도 있는 것을 볼 때, 진화적으로도 수와 수학을 이해하게끔 뇌가 발달한 거 같다. 수의 개념 역시 자연의 본질이고 생존에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자연법칙들은 실재와 정보를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p274


 "정보는 우주의 근원 재료이다." -p275


 "실재와 정보는 동일하다." -p290 

 

 저자는 양자물리학을 정보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보여준다. 어렵긴 하지만 설득력이 있다.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떠오른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란 우리의 우주가 실은 컴퓨터가 구현해낸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0과 1로만 이루어진 정보의 세계는 양자물리학과 유사한 점이 분명 있다. 실재와 정보가 동일하고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원리적으로 우주를 시뮬레이션으로 구성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양자물리학에 관심 있으이 많으신 분들께 강추드리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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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11-06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 어렵다고 하던데 고양이라디오 님 대단하십니다. 노벨상 수상자들 책 한 번씩 올라오면 관심이 가는데 문제는 어렵다는 거죠. ㅋㅋ 아인슈타인이 코펜하겐 해석으로 닐 보어랑 논쟁한 것도 다 이 우연 때문이죠? 어려워요 어려워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3-11-07 10:15   좋아요 1 | URL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어서 그냥 대충 어렴풋이 아는 정도입니다. 느낌적인 느낌만ㅎㅎ

네, 다 우연 때문입니다ㅎㅎ
 
















 내가 왜 <사랑의 기술>에 헛소리가 많다고 했는지 예를 들어(본문을 발췌하여) 설명해보겠다.  


 남녀라는 양극성은 대인 관계에서 창조의 기초이기도 하다. 이점은 생물학적으로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어린아이 탄생의 기초라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그러나 순수하게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남녀 사이의 사랑을 통해 남녀는 각기 재탄생하는 것이다. (동성애적 일탈은 이 양극화된 결합의 성취에 실패한 것이고 따라서 동성애자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분리, 곧 이러한 실패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사랑할 줄 모르는 이성애자에게도 공통된다.) -p53


 위는 잘못된 전제로 말미암아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분리되어 있고 합일을 원한다고 전제한다. 인간은 각기 생물학적으로 다른 성의 결합을 추구한다고 전제하고 동성애는 이러한 결합이 달성될 수 없기에 실패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예 하나로 이 책의 전부와 그의 철학의 전부를 비판,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헛소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여덜 살 반부터 열 살 이전의 대부분의 아동들에게는 문제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랑받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문제이다. 이 연령까지의 아동은 아직 사랑할 줄 모른다. 사랑받는 경우 기쁘고 즐겁게 반응할 뿐이다. -p61 

 

 나는 이런 문장, 주장들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여덜 살 반부터 열 살 이전의 대부분은 아동들은 사랑할 줄 모를까? 그 근거는? 나는 그의 주장이 틀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나이 때의 아이들도 부모를, 친구를, 자연을, 동물을 사랑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의 글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주장은 있는데 근거는 없다. 그래서 그의 말은 신뢰를 잃는다. 에리히 프롬에게 아이들이 있었을까? 그가 얼마나 아이들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했는지 궁금하다. 


 

 신앙을 가지려면, '용기', 곧 위험을 무릎쓰는 능력, 고통과 실망조차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필요하다. 생활의 일차적 조건으로서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는 자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 격리와 소유를 자신의 안전책으로 삼는 방어 기구에 칩거하는 자는 누구든 자기 자신을 죄수로 만들게 된다. 사랑받고 사랑하려면 용기, 곧 어떤 가치를 궁극적 관심으로 판단하는 - 그리고 이러한 가치로 도약하고 이러한 가치에 모든 것을 거는 - 용기가 필요하다. -p169  


 이 책에도 좋은 글들이 있다. 위 글은 좋았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이 유명하다. 그런데 <사랑의 기술>과 비슷할까봐 읽어보기가 겁난다. 당분간 에리히 프롬은 잃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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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11-05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때는 맞아도 지금은 아닌 것’이 있겠네요. 읽으려면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겠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11-06 12:13   좋아요 1 | URL
그 때는 맞는듯 보였던 것이 아는 게 많아지니 틀린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