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 2>를 보고 소설 <듄>을 보고 싶었다. <듄 2>까지는 재밌게 읽었던 거 같다. <듄 3>까지 읽다가 말았다. 




 "통계를 말하자면, 나는 적게 잡아 610억 명을 죽이고, 90개 행성을 불모지로 만들고, 500개 행성을 완전히 굴복시켰소. 그리고 40개 중교의 추종자들을 쓸어버리고....." -p157


 폴은 이런 미래를 두려워하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정말 막을 수 없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을 수 없다고 한다해도 그의 선택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알리아는 프레멘들의 얼굴을 훑어보며 그들의 원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현재가 과거를 감춰버렸다. 그들은 모두 쾌락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p285 


 프레멘은 과거에 금욕주의자였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들도 바뀌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다시 그가 휘청거렸다. '챠니. 챠니. 다른 방법이 없었소. 챠니, 내 사랑, 이 죽음이 당신에게 더 빠르고...... 더 편안한 것이었음을 믿어줘요.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당신을 우리에 가둬 노예굴에 넣어두고 전시했을 거요. 그리고 나의 죽음이 당신 탓이라며 당신을 헐뜯었을거야. 이 방법으로...... 이 방법으로 우리는 그들을 파멸시키고 우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거요.' -p348 


 미래를 본다는 것, 다양한 미래를 보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한다는 것. 폴이 참 불쌍하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예를들면 두 후보자 중에 차악에 투표해야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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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세번째 밀란 쿤데라의 책이다. <무의식의 축제>,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보다 좋았다. 



 그러니 인정하시라. 당신을 유배 보내거나 사형할 태세인 이들과 같이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그들과 아주 친해지기가, 그들을 사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p133 


 인간에게 상처입었을 때의 가장 큰 부작용은 모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잊는다는 점이다.



 감시탑의 탐조등, 저녁 무렵 몇 번의 개 짖는 소리, 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어린 중대장. -p179 

 

 문장이 좋았다. 역시 필력이 대단한 작가시다.



 루드비크의 말을 들으며 우리의 감정은 감탄과 반감이 뒤섞였다. 그가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 거슬렸다. 그는 그 시절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과시하고 다니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미래 자체와 어떤 비밀 협약을 맺어 그 이름으로 행동할 위임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우리 신경에 거슬렸던 것은 어쩌면 그가 갑자기 예전에 우리가 알았던 그 청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략)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끌었다. 그의 생각들은 가장 깊숙이 감추어진 우리의 꿈과 만나고 있었다. 그 생각들은 갑자기 우리를 위대한 역사의 차원으로 높이 올려놓고 있었다. -p236~237 


 체제비판적인 내용이 많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출간 후 금서로 정해졌다.


 

 공산당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스탈린이 새로운 예술에 대해서 내린 그 유명한 정의, 즉 민족적 형식 속에 담긴 사회주의적 내용이라는 정의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었다. -p241 


 정권이 만들어낸 예술은 매력적이지 않다. 예술은 개인에게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다. 정권을 찬양한 예술은 그 정권이 허물면 같이 사라진다. 정권을 비판한 예술은 오랜 시간 살아남는다.



 이렇게 민속 노래 가사를 통해 밝혀진 그녀의 모습을 알아보고 나자 마치 내가 이전에 천번은 되풀이되었던 사랑을 그대로 다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득히 먼 옛날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는 것만 같기도 했다. -p247  

 

 문장이 좋았다. 소설 속에서 전통 혼례 장면이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옛날 우리의 전통, '함 사세요.' 가 생각났다. 가족, 친구,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린 축제, 연극 같았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친애하는 족장 어른, 

 이 진실된 구혼자는 왜 이 진실된 아가씨를 신부로 맞이하려 하는지요.

 꽃을 위해서인가요, 열매를 위해서인가요?


 족장은 답했다.


 누구나 달 알지요, 아름답고 찬란하게 꽃은 피어나고 우리를 기쁘게 한다는 것.

 하지만 꽃은 달아나고

 열매가 오지요.

 그러니 우리가 신부를 맞이함은 절대 꽃 때문이 아니라 열매 때문이라오.

 열매는 우리의 양식이니까. -p250 

 

 꽃, 열매의 상징이 좋았다.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원치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궤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p307

 

 꼭 여자 뿐 아니라 설득, 협상의 원칙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했습니다. 그들은 쩨쩨하고 치사한 사람들이 아니죠. 내 엽서를 읽었다면 아마 웃었을 겁니다!" -p325 


 이 구절을 보면서 PC주의가 생각났다. PC주의 신봉자들은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피해자, 보호하고 신경써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아니다, 본인의 불편함, 피해의식을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본인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어리광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어떠한 위대한 운동 앞에서도 조소와 우롱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부식시켜 버리는 녹이기 때문이지요. -p404 


 코스트카라는 인물의 말이다. 저자가 코스트카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위 구절은 저자가 반대하는 의견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p456


 멋지고 공감가는 문장이다.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483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생각할 것도 많고 다양한 상징도 많은 훌륭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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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석희씨의 저널리즘 에세이다. 상세하게 몰랐던 과거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세월호사건, 미투사건, 태블릿 국정논단 등의 이야기와 손석희씨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담겨있다. 손석희씨의 에세이를 계속 보고 싶다. 




 실제로 팩트체크를 하는 외국의 많은 언론사들이 JTBC의 시도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대체 당신네 방송사는 어떻게 겨우 대여섯명의 한 팀이 매일 방송으로 팩트체크를 하느냐는 문의도 많이 들어왔다. -p332


 2020년 1월 28일 마침내 '팩트체크'는 국내에선 최초로, 유일하게 IFCN 인증을 받았다. 프랑스 AFP, 르몽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등이 기존에 인증을 받은 곳이었다. -p339


 책을 읽으면서 손석희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후배들은 힘들었지만 뿌듯했으리라 생각한다. 팩트체크를 시도한 것도 손석희씨의 생각이었다. 매일 팩트체르를 하는 것, 후배들은 일주일에 한 번 하면 안되겠냐고 했지만 손석희씨는 매일 하자고 밀어붙였다.



 6년 가까이 12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화'는 우리의 일상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노래든 모든 문화활동은 우리의 시대를 담아내는 일기와 같은 것이다. -p350 

 

 문화초대석 역시 손석희씨의 기획이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참 열린 마음은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래는 밥 딜런의 노래 가사다.


 선은 그어졌고, 저주는 쏟아지네

 지금은 더딘 누군가는 훗날엔 빨라지리라

 현재는 훗날 과거가 되듯이

 질서는 급속히 사라져가리라

 그리고 지금의 앞선 자는 훗날엔 가장 뒤처지리라

 시대는 변하는 것이니... -p352 


 손석희씨는 <뉴스9>를 처음 맡은 2013년 9월 16일, 그리고 6년 4개월 뒤 2020년 1월 2일 마지막 뉴스의 엔딩곡으로 밥 딜런의 이 노래를 올렸다. 새로운 시대를 열 때도, 퇴장할 때도 좋은 곡이다.



 JTBC의 저널리즘은 이미 일관된 사고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진보'라는 건 이미 공유돼 있지요.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네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였습니다. -p375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의심은 모든 기존의 현상을 향한다.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p376


 '합리적 진보', 과학에서의 '합리적 회의주의' 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합리적 진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석희씨같은 언론인이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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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씨 팟캐스트에서 듣고 읽은 책입니다. 읽은 지 오래 되어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기록을 보니 별점 4.5점을 준 걸로 봐서 재밌게 읽었던 거 같습니다. 제게 물리학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제목에 낚였던 거 같습니다. 사실상 아인슈타인과 괴델은 이 책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낚여서 좋았습니다. 물리학, 수학에 대한 재밌는 책입니다. 


















 브누아 망델브로의 책을 읽고 싶습니다. 이 책 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 책은 절판되어서 중고책 가격이 13만원을 넘어갑니다. 당연히 도서관에도 없습니다. 상당히 아쉽습니다.


 브누아 망델브로의 책이나 그를 다룬 책이나 그의 이론 프랙털을 다룬 책을 보고 싶은데 못 찾겠습니다.



 하지만 끈이론에는 언제나 목소리를 높이는 회의론자들이 있었다. 거의 30년 전에 리처드 파인만은 그것을 물리학의 '미친', '터무니없는', 그리고 '그릇된 방향' 이라고 비난했다. 끈이론 시대가 오기 전에 물리학의 마지막 위대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셸던 글래쇼는 끈이론을 '중세 신학의 새 버전'에 비유했으며, 끈이론가들을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에서 내쫓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p300 


 이후에도 끈이론을 비판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저또한 끈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는 끈이론이 대세였어서 더욱 더 불쾌했습니다. 초창기 그리고 요즘은 물리학에서도 끈이론을 선호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가령 빅뱅 직후, 지금 관찰 가능한 우주의 전체 질량은 원자 하나 크기의 부피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p304

 

 참 물리학은 신기하고 경이롭습니다. 우리 우주가 원자 하나 크기에 압축되어 있었다니. 언제, 어떻게, 왜 압축되었는지 매우 궁금하지만 아직 물리학이 답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영 답할 수 없을지도요. 언젠가 이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까요?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함께 걸을 때>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이 있네요. 이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재밌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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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의 종말>의 작가 토드 로즈의 책이다. 하버드대학 교수 토드 로즈의 개인적인 일화들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평균의 종말>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유의미하고 훌륭한 책. 



 성공적인 인생이란 무엇일까? 여러분은 다음 중 무엇을 정답이라 택할 것인가?


 A: 본인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룰 때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B: 부자가 되고 사회적으로 높은 커리어를 쌓거나 유명인사가 될 때 성공한 것이다. 


 여러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답이라 택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p17


 결과를 보니 응답자 중 97퍼센트는 A가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92퍼센트는 대다수가 B를 답으로 택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엄청난 격차다. 집단착각을 잘 보여준다. 나 역시 그랬다. A가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대다수의 사람의 B를 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A와 B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결과를 자아실현의 차원에서 바라보느냐, 사회적 인정의 차원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착각은 존재한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처럼 A를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는 다른 B를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한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해 파헤친다. 조금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는 느낌보다는 천천히 탐구해가는 느낌이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반응한다. 그 믿음이 사실에 근거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p25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가 생각난다. 유발 하라리가 모든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 주제이다. 우리는 진실에 반응하지 않는다. 집단의 '믿음'에 반응한다. 만약 중세 시대에 마을 사람들이 나를 마녀라고 말한다면, 진실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건 진실이 아니야.' 라면 웃어넘길 수 없다. 



 우리 동료 학생들이 냄새와 맛에 무감각했거나, 아니면 그저 암브로스가 약을 판 것에 홀랑 넘어갔거나, 분명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 박사님이 진실을 말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암브로스가 뭘 알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가 무슨 말을 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의견을 따른다. -p70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무지성이 작동하기도 한다.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에 우리는 반응하고 순응한다. 그것이 우리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면 더더욱.


 위 일화는 재밌는 일화다. 파티에서 암브로스가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최고급 와인이라면 사람들에게 와인을 따라줬다. 암브로스는 부자였다. 이 책의 저자가 느끼기에 그 와인의 맛은 이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맛있다고 했다. 스미스 박사님이 변질된 와인이라는 진단을 내리기 전까지.


 종종 일상에서 나는 이런 일을 목격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수긍하는 것을 본다. 이럴 때 나는 스미스 박사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처럼 의아해 할 뿐이다. 내 생각이 꼭 맞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나중에 혼자 찾아보고 확인하곤 한다.



 가령 한때 널리 성행했던 편도선 절제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결과에 대한 과학적 논거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편도선 절제술은 '전문가의 의학적 소견'이라는 변덕스러운 관점만을 근거로 수입여 년 넘도록 시행되어 왔다. (중략) 결국 편도선 절제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면서 빠른 속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p76 


 아직도 편도선 절제술을 권유하는 의사가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두뇌에는 실제로 개인적 정보를 노출하고자 하는 신경 회로가 자리 잡고 있다. 사생활과 개인적인 정보를 한 조각씩 노출할 때마다 우리의 뇌에서는 보상 기제가 작동하면서 우리의 몸에 순수한 기쁨을 안겨준다. 말하자면 우리는 불안하거나 긴장해서 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는 게 아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속마음을 꺼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이렇듯 개인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경향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데 일정 정도 기여했을 뿐 아니라 우리 인류가 장기적으로 생존해온 것에도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덕분에 페이스북도 튼튼하게 운영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성이 있기에 우리는 보다 수월하게 서로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 경향성은 공유된 지식을 통해 지식을 교환하고 축적하도록 도와주며, 우리가 다른 이를 지도하고, 가르치며,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p79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해도 갔다. 관종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개인적 정보를 노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이 욕망을 잘 활용한 기업이다.



 샥터는 누군가 집단의 의견을 거스를수록 사람들이 그를 덜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의견 일치가 잘 되는 집단일수록 더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견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집단의 구성원들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수록 그 속에서 인기 있는 견해와 다른 관점이 배제될 가능성은 더욱 높다는 것이 샥터의 결론이었다. -p103 

 

 고독한 늑대를 따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저 침묵을 지키며 일이 어떻게 되는지 바라보는 게 정말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있나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지금 내가 말하지 않고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죄라고 해도 소극적인 죄지, 적극적인 공범이 아니잖아요. 무슨 실질적인 해를 끼친다는 거죠?" 

 침묵은 실질적인 해를 끼친다. 그것도 다양한 방면에서 해를 끼친다. 단기적으로 볼 때 침묵의 거짓말은 우리 스스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또한 침묵은 우리가 속한 집단을 새롭고 중요한 정보로부터 차단하여, 어쩌면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부지불식간에 해를 끼치고 있었을지 모르는 기존의 정설을 강화하고 만다.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침묵은 집단 착각을 만들고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마는 것이다. -p134

 

 침묵은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침묵도 죄다. 공범이다.



 그는 그것을 '모방 욕망'이라 불렀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해석하여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고자 한다. -p180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목격하면, 심지어 실은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조차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p181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모방 욕망'을 이야기한 사람은 철학자 르네 지라느 지만 이는 실험으로도 확인되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고, 경제학적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아무튼 '모방 욕망' 역시 우리의 본능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상대적으로 나은 기분을 느끼고자 다른 이들을 끌어내리거나 심지어 상처 입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p189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 역시 우리의 본능이다. 심리학은 참 많은 것을 알려준다.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를 정렬하는 일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조화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헌신할 때,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이들은 집단 착각을 만들고 키워나가는데 기여하지 않는다. 집단 착각에 빠져 있는 다른 사람들이 탈출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조화의 미덕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마디로 진정한 윈윈 게임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다. -p312 

 

 김수현씨가 생각났다. 인간 김수현과 스타 김수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지갑에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주인을 찾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특히 가장 열심인 것은 지갑 안에서 열쇠가 나왔을 때였다. 열쇠는 주인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그러니 더욱 주인을 찾아주려고 애를 쓴 것이다. -p329

 

 연구자들은 실험을 했다. 지갑을 들고 가 이곳저곳의 안내 데스크에 맡겼다. 지갑은 주인에게 돌아갔을까? 지급은 현금이 없는 지갑, 13달러가 든 지갑, 100달러가 든 지갑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금이 없는 지갑이 주인을 찾아갈 확률이 높고 100달러가 든 지갑은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다.


 당신의 어떤 지갑이 주인을 찾아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셨는지? 


 <휴먼 카인드>가 생각났다.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고 나쁘다는 집단착각에 빠져있는 거 같다. 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착하고 정직하다. 



 책이 50p정도 남았다. 오늘 마저 읽고 독서모임 준비해야겠다. 일독을 권해드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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