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행운의 손님. 자, 안으로 들어오셔서 찬찬히 둘러보십시오. 원하시는 과자를 분명히 찾으실 테니까요."  "여기는 <화앙당>, 너의 욕망을 이루어주는 가게지." 

 

 이번 주 도서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4>에서는 라이벌 가게인 화앙당이 등장한다. 손님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조금은 다른 듯한 이 두 가게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게 주인들의 인삿말에 힌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이번 주에는행운과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공부를 못하는 유타가 들른 두 가게에서는 유타의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서로 다른 과자를 소개해주고 있어. 전천당의 과자와 화앙당의 과자. 과연 무엇이 다를까?


 "<족집게 통조림>입지요. 번뜩이는 족집게 과일이 듬뿍 들어 있는 통조림입니다. 이것을 드시면 시험에 나올 문제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족집게처럼 예상 문제만 노려서 공부해 두면 문제없지요. 시험에 안 나올 쓸데없는 공부는 안 해도 되니까 그야말로 손님을 위한 과자가 아니겠습니까?"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4> ,p16


 "흥! 겨우 <족집게 통조림>이야? 뭐, 편리하다고 생각하면 편리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아주 얼치기야. 사기라고. 생각해 봐. 그런 걸 먹는다고 공부할 내용까지 저절로 알 수 있겠어? 어차피 열심히 교과서를 읽고, 이것저것 외워야 할 텐데 귀찮을 것 같지 않아? ... <꾀떡>이야. 꾀를 부리면 부릴수록, 게으름을 피우면 피울수록 시험 점수를 올릴 수 있어. 이걸 먹으면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어. 어때? <족집게 통조림>보다 훨씬 근사하지 않아?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4> ,p21


 아빠는 <족집게 통조림>과 <꾀떡>의 차이는 가게 주인들의 마음에서 오는 것 같아. <족집게 통조림>은 노력하고 싶지만 아직 방법을 모르는 손님을 도와주는 과자야.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해야하는만큼 <족집게 통조림>은 노력하지 않는 아이를 도와줄 수는 없지. 그렇지만, <꾀떡>은 다른 것 같아. 노력과 관계없이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아빠는 이것을 가게주인의 철학이라 생각하는데, 이 점에서 <전천당>과 <화앙당>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 그것은 <화앙당>의 다른 과자에서도 드러나지.   


 "알겠어? <양치 너츠>는 이를 깨끗이 해서 충치를 예방할 뿐이야. 이미 생긴 충치를 낫게 할 수는 없다고. 그렇지만 이 <충치 콩과자>가 있으면 충치가 생겨도 괜찮아. 다른 사람한테 콩과자를 먹여서 옮기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치과에 안 가도 충치를 낫게 할 수있다는 뜻이야. 어때? 대단하지?"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4> ,p126


 이런 점에서 <전천당>이 <화앙당> 과자보다 더 우리의 마음에 좋은 과자라고 생각해. 그래도, <화앙당> 과자에 더 귀가 솔깃할 수 있을거야. 그럴 때는 연의가 좋아하는 <해리 포터>의 덤블도어 교장선생님 말씀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중심에 있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과자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다음에는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AI)문제와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시간이 충분히 흐른 후에... 이번 주도 바쁘게 잘 보냈고, 아빠는 항상 꾸준하게 잘 해내는 연의가 자랑스럽구나. 다음 한 주도 행복하게 잘 보내자!   


 "그게 너와 톰 리들의 큰 차이점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말이다, 해리,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선택이란다." _ J.K. 롤링,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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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원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깜냥이에요. 설마 저를 잊으신 건 아니죠? 저는 지금 온동네편의점에서 지내고 있어요. 우연히 길을 가다가 편의점 앞에 있는 탁자를 봤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주인아주머니도 참 좋은 분 같았고요. 그래서 며칠 동안 지켜보다 용기를 내서 찾아왔어요. 할아버지를 만난 그날처럼요(p88)...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냐고요?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원래 어디로 갈지 미리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않거든요. _ 홍민정, <고양이 해결사 깜냥 5> , p89


 이번 주에는 <전천당>을 잠시 건너뛰고 <고양이해결사 깜냥>으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사람들을 좋아하며 잘 따르는 고양이 깜냥이 이번 편에서는 아주머니를 도와 편의점에서 일한다. 편의점 알바가 된 고양이 깜냥. 이번 편에서는 우리가 24시간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편의점 이야기가 펼쳐진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 편의점. 많은 일을 처리하는 만큼 여러 이야기가 일어난다. 연의는 이 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니? 아빠는 이번 책을 통해서 편의점을 다룬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생각했어.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편의점 알바생이 된 깜냥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은 편의점이라는 가게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된 소설이야. 우리가 읽은 책이 편의점의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면, 아빠가 말한 책은 편의점을 통해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는 점이 조금 달라. 나중에 연의가 컸을 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고양이 해결사 깜냥 5 : 편의점을 환하게 밝혀라>에서 알바생 깜냥이 정말 많은 일을 하지? 편의점에서 우리는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점원의 모습만 항상 보지만, 사실 우리가 이용하지 않는 여러 기능을 편의점은 갖고 있어. 그리고, 편의점의 이런 기능들은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력 덕분에 이용 가능하단다. 편의점 뿐 아니라 우리의 편리한 생활 뒤에는 여러 사람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자. 그런 점에서 아빠는 편의점이란 단순히 물건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보자.


 이것은 좀 더 나중의 이야기인데, '편의점=시장'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중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래의 책들을 보는 것도 좋을 듯 해. 마음이 내킨다면 말이야. 지난 한 주도 바쁘게 잘 보냈는데, 다소 추워진 요즘 건강하게 이번 한 주도 보내도록 하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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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은 그런 ‘이익‘ 추구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모든 정치 이념들이 최소한의 토대적인 공공성에 대해서 동의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즉, 나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계없이, 또는 나의 직접적인 이익이 단기적으로 침해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회 공동체의 정상적인 구성원이라면 동의해야만 하는 합의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_ 폴 슈메이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p29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의 저자 폴 슈메이커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관점 차이를 철학적 가정과 정치적 원리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그는 결론에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  pluralist public philosophy'이라는 진보와 보수의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만, '보수와 진보의 합의점'이라는 결론이 한국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유권자 또는 정치인의 성향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이들은 거칠게나마  '우파=보수=민족주의자', vs '좌파=진보=계급주의자'라는 등식과 구도에 위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위에서 앞서 말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기본 전제와 우리의 현실은 차이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중시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며 미래지향적 성향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자들이 이념을 강조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이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모순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과 다른 세력을 '이념'으로 적대하며 '빨갱이'로 호칭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계급주의'적인 투표를 한다는 점에서 좌파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계층보다 오히려 민족차원의 접근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적인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들이 체감하는 정치 피로감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에도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애국을 외치는 이들이 오히려 외세 의존적인 모순은 한국정치만의 특성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정치의 특질은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원인을 찾는다면 한국만의 체제 '분단체제'로 부터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이며, 분단의 원인이 된 '일제 식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기원이 일제 식민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식민 시대에 기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지금의 혼란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식민시대와 분단 체제의 극복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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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동해안 여행과 서예 전시회를 다녀왔다. 일정 중 경포대에서 본 일출(日出)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검여 유희강 상설전시관의 <관서악부>를 보고 이번 페이퍼에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먼저 일출. 해뜨는 것을 보기 위해 1시간 전에 일어나 밖을 보니 캄캄한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만이 들려온다. 잠시 씻고 나온 사이 어느새 밖은 붉은 색으로 물들면서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만 같다. 예상일출 시간 오전 7시전에 해가 뜰 곳으로 생각되는 지점으로 핸드폰을 들고 기다려본다. 그리고, 바다 저편에서 올라오는 태양. 어둠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서서히 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소리를 켜서 들으시면 더 좋습니다! ^^:)


[사진] 경포대에서의 일출(by 겨울호랑이)



 여러모로 부족한 일반인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이기에 부족함이 많은 사진이지만, 앵글 너머의 현상은 숭고(崇高)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숭고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버크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거대하고 숭고한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경악(astonishment)이다. 경악은 우리 영혼의 모든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하는데, 거기에는 약간의 공포가 수반된다. 이 경우 우리의 마음은 그 대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다른 어떤 대상도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 마음을 사로잡은 그 대상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숭고의 엄청난 힘이 생겨난다. _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p99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1729 ~ 1797)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의 개념을 분리, 분석한다. 버크에게 숭고와 아름다움은 다르다. 아름다움이 빛을 통해 경험의 결과로 우리에게 인식된 것이라면, 숭고는 빛의 부재(不在)다. 버크에 의하면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 여기에서 오는 경외와 공포. 이로부터 오는 이중적인 감정 - 공포와 매혹 - 으로부터 인간은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수평선 너머로부터 빛을 뿜어내면서 장대한 광경을 연출하는 일출은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까,  숭고라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란 물체들의 내부에서 발견되는, 감각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성질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감각적 성질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경험적으로 느끼거가, 우리 안에 사랑의 감정이나 그에 상응하는 감정을 불어일으키는 사물 속에 어떤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_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p180


 빛이 없는 어둠의 상태에서 느껴지는 공포의 감정이 '숭고'라면 해가 떠오르면서 드러나는 형상과 이로부터 받는 느낌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숭고가 인식 가능한 경계 넘은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위대함이라면, 아름다움은 인식할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출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경악과 공포로부터의 해방감이라고 설명되는 것일까? 이러한 설명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기에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할거리로 남겨두어야겠다.


 빛이 숭고의 원인이 되려면 다른 대상들을 보여주는 빛의 원래 기능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빛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단순한 빛만으로는 우리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없다. 강한 인상이 없으면 어떤 사물도 숭고한 느낌을 줄 수 없다. 하지만 태양빛과 같은 경우는 우리 눈에 직접 비치게 되면 감각 기관을 압도해버리며, 그렇게 되면 빛이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_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 p134


  다른 한 편으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354 ~ 430)의 조명설(照明說, the theory of illumination)을 떠올리게 된다. 캄캄한 어둠에서 솟아나는 빛으로부터 점차 구별되는 형상(形狀)들의 모습은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신적 이성(logos)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그의 논리를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지중해 수평선 너머 또는 북아프리카 사막 너머의 일출에서 신적 이성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땅은 저희가 지금 느끼고 만지는 그런 땅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고 틀이 잡히지 않은 심연이었으며 그 위에는 빛이 없었습니다. 달리 말해서 심연 위에 어둠이 있었습니다. 저것은 전적으로 무에 가까웠으니 모든 것이 무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존재는 하고 있어서 형상화될 가능성은 있었습니다(p469)... 보이지 않고 틀이 잡히지 않고, 심연 위로 어둠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보이지 않고 틀이 잡히지 않은 바로 그 땅으로부터, 바로 그 무형성 無形性으로부터, 거의 무에 해당하는 것으로부터 이 모든 것들을 당신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런 사물들로 인해서 이 가변적 세계는 지속하면서도 지속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계에 가변성 可變性 자체가 출현하고, 그 가변성에서 시간이 감지되고 측정되며, 형상들이 달라지고 교체하는 가운데 사물들의 변화로 시간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_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2장, p470


 경포대에서의 일출이 자연이 주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이었다면,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 ~ 1976)의 <관서악부 關西樂府>는 인간의 예술혼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신광수(申光洙, 1712 ~ 1775)의 <관서악부> 108수 전체를 글로 형상화한 작품은 폭이 34m에 이르며 작품을 보는 순간 감상하는 이들을 압도한다. 마치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를 접하는 느낌을 풍기면서도, 작품 안의 글 한자 한 자가 하나의 생명체인 듯 자리잡은 모습은 일출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평양의 모습이 신광수의 감각을 통해 그의 시(詩)로 재현되었다면, 그의 시는 검여의 서(書)로 다시 변환된다. 감각적인 18세기 조선의 풍경이 추상화되고, 다시 새롭게 해석되면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는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예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와 아름다움이 아닐까.


 <관서악부(關西樂府)>에서 '관서'는 평안도 지역을 뜻한다. '악부'는 한문학의 한 갈래이다. 이 작품이 7언 4구 형식의 108수로 이루어져있고 내용이 평안도, 특히 평양의 전모를 형상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서죽지사(關西竹枝詞)' 또는 '평양죽지사(平壤竹枝詞)'가 좀 더 적절한 제목일 것이다(p9)... 중국과 한국의 죽지사에는 낯선 지역의 독특함을 엿보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다. 죽지사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문인이 민가를 윤색한다는 것은 낯선 지방을 문인이 탐색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죽지사는 노래로 쓴 유기(遊記)'라고 할 수 있다. _ 신광수, <관서악부> 해제, p13


 이제 일출과 <관서악부>로 부터 받은 느낌을 정리해보자. 일출이 만들어낸 숭고와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예술혼이 만들어낸 숭고와 아름다움. 이들 모두 '숭고'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지만, 근원은 다르다. 영원(永遠)의 자연과 필멸(必滅)의 인간이 길이 다르듯. 개인적으로는 일출과 <관서악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무한(無限)'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술의 기본 개념 가운데는 너무 단순하고 원시적이어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도 있다. 반면, 아무리 정의를 거슬러 올라가 계속하여도 여전히 같은 꼴의 정의가 계속되어 '끝이 없음'을 생각할 수도 있으며, 또 분석을 거듭하다 보면 더 이상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해져서 논리적으로는 더 이상 분석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말에 도달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같은 경우)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인간의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루는 정의가 비록 영원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정의되지 않은 말을 기초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 유의하면 충분하다. _ 버트런드 러셀, <수리철학의 기초> , p4


 끝도 없는 무한. 그렇지만 무한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무한대와 무한소. 끝도 없이 수가 커지는 것도 무한이지만, 0과 1 사이에도 셀 수 없는 많은 수가 있는 것처럼, 영원의 자연이 주는 감동과 필멸의 인간이 주는 감동은 끝이 없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근원은 다르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관서악부> 서문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평안감사라는 직책의 인물형이고 다른 하나는 평양이라는 공간의 성격이다. 이 둘은 <관서악부>를 교직하는 핵심축으로, 서문에서 신광수 자신이 <관서악부> 성격을 '평안감사가 사계절 행락하는 노래(關西伯四時行樂詞)'와 '서관지(西關志)'로 요약한 바 있다. 이는 곧 이 시의 중심축이 '평안감사'와 '평양'이며, 이것이 '행락'이라는 색채로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광수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평양의 지역적 정보를 최대한 포함시키려 했고 이것은 윤두수의 <평양지>의 내용이 시에 반영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_ 신광수, <관서악부> 해제,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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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3-03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일출 장면은 동영상 촬영본이 있는데 서재에 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파일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같이 나누고 싶네요 ^^:)

2023-03-03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3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3-03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참 멋지네요.

겨울호랑이 2023-03-03 15:41   좋아요 2 | URL
제가 서예를 잘 모르지만, 문외한인 제가 봐도 글씨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직접 보시면 글 이상의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응리라 생각합니다!

페넬로페 2023-03-03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출 사진 넘 좋아요.
숭고함 그 자체입니다.
동해여행과 일출을 이렇게 깊이 있게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3 15:5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참, 지금 막 일출 동영상을 이웃님 조언으로 올렸습니다. 같이 보시면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실 듯 합니다! ^^:)

Falstaff 2023-03-03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이 관훈청정, 관동의 햇무리가 맑고 깨끗하다.... 뭐 이런 뜻인가요? 아휴, 저 글씨 체는 읽기가 쉽지 않아서 말입죠. 1965년 을사년 한가을에 쓴 글씨인 거 같은데.... 제 집에 걸려있는 이백의 시보다 천배, 만배, 십만배 잘 썼네요!!!!

2023-03-03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3-03-03 19: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비밀글 아니어도 괜찮은데요. 전서체 비슷한 글씨를 요즘 누가 알아봅니까요. 저는 그래도 50점 받았잖습니까. ㅋㅋㅋㅋㅋ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무량청정. 청정하기 무량하다, 아휴, 없을 무는 그렇다 쳐도 헤아릴 량 자를 저렇게 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겨울호랑이 2023-03-03 19:17   좋아요 1 | URL
전서뿐 아니라 초서도 해독하기 참 힘든 것 갈아요. 글자를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는 오르기 힘든 것이 서도의 길인듯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3-03 1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장관인 일출과 멋진 페이퍼 글까지 잘 감상했습니다. 특히 서예 감동이에요. 한때는 서예박물관도 가서 전시도 보고 했었는데 한동안은 그러질 못했네요. 필력이 굉장히 힘있고 멋드러집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3 18:40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초보자가 보기에도 다른 힘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바람돌이 2023-03-04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장엄한 일출영상 잘 보았습니다.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 사실 일출을 잘 못봐요. 그래서 늘 일몰만.... ㅎㅎ
자연이 주는 숭고미와 인간의 창작품인 예술의 숭고미를 연결한 글도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04 22:31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자연이 주는 웅장함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기에는 너무도 부족했고, 예술혼을 표현하기에는 제 글그릇이 많이 좁다는 것을 페이퍼 준비하면서 깊이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저녁 되세요! ^^:)
 

 

 말레이반도 끝단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이사의 수마트라섬 사이에 있는 좁고 긴 수역(水域)을 가리키며, 동쪽의 남중국해(태평양)와 서쪽의 안다만해(인도양)을 연결한다. 말라카 해협의 길이는 약 800km, 최대 폭은 300km이며, 최소 폭은 50km다. 연안과 해협 중앙부에서는 해류가 빨라 항해에 주의가 요구된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해상 실크로드 상의 요로였다. 인도양과 남중국해의 계절풍을 이용한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말라카 해협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과 페르시아만까지 이르는 해상교역로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_ 정수일, <해상실크로드 도록> , p182



[사진] Jacques-Nicolas Bellin Map of the Straits of Malacca,(1755), 출처 : https://joyofmuseums.com/museums/asia-museums/singapore-museums/national-museum-of-singapore/jacques-nicolas-bellin-map-of-the-straits-of-malacca/


 파라하나 슈하이미 (Farahana Shuhaimi)의 <말라카 Kesultanan Melayu Melaka>와 로저 크롤리 (Roger Crowley)의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Conquerors: How Portugal Forged the First Global Empire>은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의 말라카 해협 정복이라는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책들이다. 각각 이슬람의 말라카 왕국과 기독교의 포르투갈 왕국을 주제로 하는 이들은. 1511년 포르투갈의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 1453 ~ 1515)에 의한 말라카 함락이라는 교점을 갖는다. 15세기 말라카 왕국의 번영과 포르투갈에 의한 멸망.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포르투갈인들이 나타나기 이전까지 이곳은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말라카>에서 저자는 이슬람의 평화적 전파를 강조하면서, 이에 대해 폭력적인 기독교 진출을 대조시킨다. 이는 말라카 해협의 지리적 특성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말레이 세계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말레이반도는 15세기 초 이슬람의 유입과 함께 멀라까 왕국이 성립하면서 비로소 이 지역의 새로운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_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 p79


 동남아의 이슬람 전파는 주로 말라카로부터 조직된 비폭력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영향력과 무역에 있어서의 물질적 우위는 주변국들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술탄국의 이슬람을 채택하고, 국교(國敎)로 삼도록 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 말라카는 그들의 승리를 종교적 강제 형태로 몰아가지 않는 매우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122/123


 말레이 반도 내륙의 습지는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열대우림의 해충들과 맹수들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라카 해협의 주민들은 어업 외에 삶을 영위할 길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이슬람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제안은 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시골 어촌 마을에서 새로운 경제 허브(hub)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교의 전파가 강제로 이루어졌다면 그 편이 더 이상했으리라. 여기에서도 우리는 정치와 경제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말라카는 전적으로 교역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도시였다. 도시 뒤쪽에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열대림이 우거진 내륙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은 곧 호랑이와 악어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기후는 무더웠고, 습한 열기가 갑옷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활력을 빼앗았다. 항구에는 배가 떼릴 지어 모여 있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34/306


 말라카의 농업은 말레이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활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이익은 말라카 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시 외곽 지역은 늪지대에 있었지만, 말라카의 도시는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도시는 원래 강어귀에 있는 단순한 지역이었으며, 주요 일자리는 말라카강을 따라 전개된 어업밖에 없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12/123


  파라하나 슈하이미의 <말라카>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에 이르는 말라카의 번영을 잘 보여준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서 금, 커피, 육두구, 정향 등의 물품이 거래되며 동으로는 중국, 일본과 서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집트 상인들이 출입하는 항구. 이슬람 경제권으로의 편입은 이들을 해상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말라카로 물산과 화폐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세계적인 물류 중심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말라카는 번영했지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면서 이는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향신료 무역을 위해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인도를 거쳐 말라카에 포르투갈이 손을 뻗치면서 말라카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말라카는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슬람 무역상인들에 대한 이들 상품의 공급은 실제로 유럽인들, 특히 포르투갈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향신료 무역은 포르투갈이 필사적으로 마카오를 차지하려고 했던 첫 번째 이유다. 기독교 복음 전파는 부차적인 이유였을 뿐이다. 그 당시 향신료는 음식의 맛을 좋게 하고,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였다. 아랍상인들의 독점으로 인한 이 카르텔을 깨트리기 위해 서구 무역상들은 불타는 시도로 격랑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55/123


 말라카의 금가루는 미낭카바우(Minangkabau)와 파항에서 생산되었다. 정향은 몰루카(Moluccas)에서 나왔다. 커피, 육두구(nutmeg), 그리고 백단(sandwood)은 각각 보루네오, 반다, 그리고 티모르에서 생산되었다. 그와 같은 무역상품 공급은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의 무역수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말라카는 무역과 방어의 측면에서 모두 전략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한 것이 한 가지 문제였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57/123


 알부케르크는 희망봉을 돌아 동아프리카와 서인도, 동남아시아를 선(線)으로 연결하는 포르투갈 제국을 구상한다. 이는 강력한 대포와 범선을 보유한 인구가 적은 포르투갈이 제국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으며, 말라카 해협의 정복은 아시아와의 무역을 독점을 의미했기에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였다.


 알부케르크는 열정적으로 연설을 했다. 그는 인도양 전반에 걸친 전략적 계획을 간략히 요약해 설명했다. 홍해에서 무슬림 교역을 옥죄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온갖 풍요로운 상품과 교역의 중심지이자 종점"인 말라카는 그 최종 목표와 연관된 중대한 지점이었다. 그곳은 "온갖 향신료, 약품, 그리고 온 세상 부의 원천이다... 또 후추를 캘리컷에서 떠나는 경로보다 더 많이 메카로 보내는 경로이기도 하다." 말라카 점령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베네치아의 목을 조르고, 더 나아가 이슬람교의 전파를 가로막을 수 있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36/306 


 처음부터 알부케르케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 해군 기지의 역하를 하는 한편 대포로 무장한 함선에 의해 바다 쪽에서 방어가 가능한 전략적 거점을 많이 차지함으로써만 인도양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고아와 말라카, 호르무즈가 각각 1510년, 1511년, 1515년에 정복되었고,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의 우위를 확립하는 본거지가 되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70


 이렇게 시작된 말라카-포르투갈의 전쟁은 카를로 M. 치폴라 (Carlo Maria Cipolla, 1922 ~ 2000)가 <대포, 범선, 제국 Guns, Sails and Empires: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Early Phases of European>에서 주장한 서구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대포가 장착된 범선과 이를 활용하는 유기적인 전술의 활용을 통해 알부케르크는 말라카의 중심 다리를 점령하면서 1511년 말라카는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술탄들은 육중한 대포도 필요하였는데, 이를 이용해서 장거리에서 적의 대열을 분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술탄들은 말라카를 위해 그런 대포를 구입하는 데 찬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늦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말라카는 포르투갈의 공격을 버텨내기에는 장비가 덜 갖춰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침입하는 함대들을 파괴할 수 없었고, 적들은 도시가 함락될 때까지 반족해서 방어선을 공략할 수 있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76/123


 유럽의 팽창 과정을 기술할 때 군비에서 유럽의 우월성은 일반적으로 정적인 현상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사실, 15세기 첫 팽창의 물결 이후 유럽의 군비 생산 능력은 질적인 측면에서나 양적인 측면에서나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로 인해 비유럽권의 사람들은 유럽의 팽창에 적절히 대응하기가 극도로 어려웠을 뿐 아니라, 영토 방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게 된다. 특히 대포 제작에서 유럽의 진보는 전함의 건조와 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략과 기술의 주목할 만한 발전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85


 16세기 대부분의 기록들은 말라카의 해군에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약점으로 인해 말라카는 자신의 항구에서 그들의 강력한 자산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일부 기록은 두 명의 해군 제독이 술탄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났을 개연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항 투아 제독이 수립한 공포 요소는 포르투갈인들이 공격하였을 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83/123


 이슬람의 패배는 해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전략에서 주로 기인한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적인 베네치아와 몰타기사단 세력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투르크는 대서양 세력이 거둔 해상 혁명의 함의와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근대가 이미 시작되었얼 때도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인력에 크게 의존했다. 충각으로 들이박고 적선에 올라타 싸우는 구식 전술을 고수했고 전력의 핵심은 언제나 갤리선이었다. _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p121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라카의 점령은 알부케르크에게 절반의 승리만을 가져다 준다. 알부케르크는 '호르무즈-고아-말라카'를 잇는 선의 제국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유럽 대륙 외 지역에 대한 분할에 관한 조약 - 토르데시야스 조약( Tratado de Tordesilhas)의 헛점을 파고든 에스파냐와 이를 위해 기꺼이 조국을 등진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 ~ 1521)의 활약으로 필리핀이 에스파냐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선의 제국이었던 포르투갈에 비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시엔다(Hacienda)를 활용한 플랜테이션 제도를 운영했던 에스파냐는 무역 뿐 아니라 농업양식을 변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아시아 무역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포르투갈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다가 결국 17세기에는 네덜란드에 말라카 영유권을 넘겨주면서 포르투갈 제국은 역사 속으로 퇴장하기에 이른다.


 말라카는 1511년 8월 24일 정오에 함락되었다. 적은 성으로 들어와서 보이는 말레이인들을 모두 살육하였다. 강한 충동으로 그들은 왕궁을 평지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슬람사원을 불태워 버렸고, 묘지에서 모든 묘지석을 뽑아 버렸다. 도시의 이름은 에이 파모사로 바뀌었고, 그 폐허의 잔해는 재건에 사용되었다. _ 파라하나 슈하이미, <말라카> , p86/123


 불행하게도 이런 대담한 확장 정책 - 알부케르크의 제국 건설 정책-은 포르투갈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말라카 공격의 부분적 목적은 극동에서 스페인의 야욕을 근절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목적과는 정반대로, 스페인은 그 사건 덕분에 극동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도와 정보를 얻었다. _ 로저 크롤리,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 p243/306


 포르투갈은 인도 서부 해안에 위치한 고아를 점령해 아시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향료를 안전하게 확보/독점하려면 인도 너머까지 진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목표가 된 곳이 말레이반도의 멀라까였다. 1511년 포르투갈령 고아의 총독인 아폰수 알부케르크(재임 1453~1515)는 군함 19척과 군인 1,400명을 이끌고 멀라까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멀라까를 점령한 포르투갈은 곧 북부 수마뜨라의 아쩨, 그리고 남부 말레이반도의 조호를 상대로, 멀라까해협에 대한 치열한 제해권 경쟁에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국제무역항으로서 포르투갈령 멀라까의 위상은 점차 약화했다. 멀라까는 단지 포르투갈 군인, 상인, 관료, 선교사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마치 이슬람 세계 속에 고립된 섬처럼 되어갔다. _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 p134


 15세기 말라카 왕국의 번영과 쇠퇴를 다룬 이 시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먼저 우리는이슬람의 비폭력 확산과 기독교의 무력 전파를 통해 오늘날 이들 지역의 이슬람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알부케르크는 말라카 전쟁을 십자군전쟁으로 규정지으며 전쟁을 독려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말라카에 거주했던 말레이시아인들에게 이슬람 문화권은 하나의 경제블록(bloc)으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던 이들에게 번영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반면, 십자가를 들고 온 포르투갈인들은 기존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이를 재료 삼아 요새를 건축하고, 제1차 십자군 당시 행해진 예루살렘 학살 때처럼 많은 원주민들을 살해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동남아시아들이 과연 어느 종교를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가는 너무도 명확하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대부분 지역이 서구 열강의 지배아래 있었지만 기독교화하지 못했던 부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이러한 과거와 연관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는 포르투갈이 자본주의 독점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무리하게 말라카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빚어진 엄청난 파괴와 약탈은 포르투갈에게 승자의 저주가 되었고, 결국 제국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과거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소비중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분명 여기에 담겨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말라카 무역의 품목 중 하나이기도 한 <육두구의 저주> 리뷰에서 별도로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라카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 화교와 말레이시아인들의 갈등 문제를 읽을 수 있다. <말라카>의 저자 파라하나 슈하이미는 말라카를 배신한 중국인들이 없었다면, 포르투갈에 의한 점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포르투갈과 손잡은 중국상인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결코 말레이시아인 저자 개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우리에게 동남아시아 또는 아시안(ASIAN)은 낯선 지역이다. 중요하지만 낯선 동남아시아 중 한 지역인 말라카의 역사속에서 우리와 관련된 여러 현대 사회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가 말라카와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말라카 해협은 14세기 후반 마자파히트(Majapahit) 왕국의 판도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래 15세기 초 중국 명나라 정화 선단이 이곳을 다녀왔다. 1511년 포르투갈이 점령한 데 이어 서구 열강들의 각축전끝에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1824년에는 영국이 각각 점령하였다.  _ 정수일, <해상실크로드 도록>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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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2-06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중간에 포함된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사는 저도 사두었는데 제대로 읽지는 못했거든요. 올해 동남아시아사 읽어볼 요량인데 많은 도움이 될 페이퍼네요. 자극 받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6 09:3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동남아시아사와 관련된 책을 찾기가 참 어려운데, 소병국의 동남아시아사는 그런 면에서 큰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벌써 거리의화가님께서 많은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읽고 계신데, 동남아시아사까지 손대신다면 정말 많은 것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실 듯합니다. 거리의 화가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3-02-06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적이 출몰하던 곳, 한때 해상무역의 요충지 이렇게 알고 있었어요
30개의 도시로 보는 세계사에서 간략하게 정리했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3-02-06 10:14   좋아요 1 | URL
아, 30개의 도시로 보는 세계사에서도 말라카가 나오는군요! 그레이스님 덕분에 좋은 책을 한 권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서니데이 2023-03-13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3-13 20:19   좋아요 1 | URL
^^:) 항상 이웃을 배려해주시는 서니데이님 덕분에 꽃샘추위을 잠시 잊네요.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3-03-19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육두구의 저주...말라카....연결 고리 엮어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3-19 08:32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 항상 감사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셨네요.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