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 패거리가 지금까지 팔아먹고 산 것은 박정희 이미지밖에 없었다. 박근혜까지 나왔을 때는 거의 떨이 수준이다. 떨이가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민 갈 필요 없다.(p22)... 박정희는 1979년에 죽었다. 요즘 정황을 보면 공포영화의 상투적 패턴을 보는 것 같다. 악마는 막판에 다시 한번 되살아난다는 것.(p84)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유신 시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유신은 간선제 선거를 통해 박정희를 사실상 종신제 대통령으로 뽑게 한 유신 헌법과 이 헌법에 대해 이의를 말하면 잡아 가둘 수 있게 한 9개의 긴급 조치로 이루어졌다. 아무튼 정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시대... 유신 시대의 두 가지 좋은 점.  하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적 판단의 노력이 면제된다. 또하나는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무조건 믿어야 할 사람 한 사람 있다. 유신 시대가 끝나자 그 두 가지 좋은 점이 갑자기 없어졌다. 어버이연합이 난리치는 이유.(p536)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유신 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내용을 국정 교과서에 넣으려 했다 한다. 그쪽 사람들은 걸러진 내용을 가지고 왜 시비 삼느냐고 말했다는데, 삭제된 내용이라곤 해도 집필의 기본 정신이 거기 다 들어 있지 않은가.(p530)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황현산(黃鉉産, 1945 ~ 2018)의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는 문학 이야기와 함께 2014년부터 2018년의 정치 상황도 함께 녹아있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짧은 트윗들을 통해 박근혜 정부를 유신체제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을 알아간다. 우리는 이와 함께 트윗에 기록된 시간을 통해 저자의 글이 어떤 맥락에서 올라온 것인지도 함께 파악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의 글은 구체적 시간과 함께 묶여 있다.


 헌재의 논리 부족은 저들의 불행이 아니라 민주 시민들의 불행이다. 이 논리 빈약한 말이 앞으로 모든 민주적, 진보적 의견에 종북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막무가내, 무논리와의 싸움, 그게 다시 시작되었다.(p65)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돈 퍼주느라고 담뱃값을 올렸다, 어느 택시기사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게 작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몽매하게 만들어서 나라를 망치는 길로 지금 이 정부가 뛰어가고 있다.(p89)... 책 - <금요일엔 돌아오렴>- 을 손에 들기는 했지만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 용기를 숙제로 내주고 갔을 것이다.(p99)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실시간 소통을 특징으로 하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특성이 잘 나타난 글들에서 우리는 저자의 정제되지 않는 생각과 즉각적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교정을 본 책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을 오타도 너그럽게 허용되는 트위터의 글에서 우리는 구술(口述)문화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백낙청 회화록>은 상대적으로 정제된 저자 생각을 전한다. 이러한 면에서 회화록(會話錄)은 상대적으로 문자(文字)문화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1년 중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달지 않고,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하루쯤 있어야 한다. 오늘을 그날로 정하는 것이 옳겠다.(p140)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세월호 이후에 흔히 정부가 있기는 있나, 국가가 있나 하는 질문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좋은 정부가 없고 좋은 국가가 없는 거지 있기는 확실히 있어요, 정부가... 세월호만큼 많은 사실을 생생한 육성과 기록과 화면으로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이걸 바탕으로 더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는 얘긴데, 이게 저절로 안되고 있는 게 아니라 이걸 확실하게 막고 있는 정부가, 뼛속까지 나쁜 정부가 있기 때문에 안되는 겁니다.(p298) <백낙청 회화록7> 中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 남겨진 관련 트윗과 함께 이제는 <백낙청 회화록>으로 넘어가보자. <백낙청 회화록>에도 백낙청(白樂晴, 1938 ~ )의 문학비평과 함께 당대의 시대상이 담겨있다. 이 역시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구술문화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140자의 짧은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하는 트위터와는 달리 보다 체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자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백낙청 선생이 창비를 붙들고 있는 것은 비단 문학 때문에만은 아니리라. 선생의 분단 체제론이 끝을 보지 못했고, 그와 관련해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선생이 창비를 붙들고 있는 한 그에 대해 선생보다 더 잘 생각할 사람이 나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p57)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선생님 쏘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시나요? (백낙청) 페이스 북도 하는데 열심히는 못해요... 말이 너무 흔하면 아무래도 금이 떨어지죠. 그래서 우리가 가만히 있지는 말아야 하고, 그만할 짓은 그만해야 좋을 것 같아요. 엄살도 그만 떨고 쓸데없는 수다도 덜 떨고 그런 것도 필요하지 않나...(p300) <백낙청 회화록7> 中


 <백낙청 회화록>은 1968년부터 2017년까지의 한국현대사의 사건과 문화 등을 담고 있기에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을 배경으로 하는 두 글의 내용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서는 당시 상황의 긴박성을, <백낙청 회화록7>에서는 시대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나경원 의원이 "좌파에게 정권을 내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가 간다. 상대는 좌파고 좌파는 나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만 새누리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이 겨우 돋아나는 것 같으니.(p537)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촛불혁명이 탄핵이라는 1차적 목표를 달성하면서 이제부터는 국회에 맡겨주고 정치인에게 맡겨주십시오,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헌 얘기도 그렇고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제어하느냐 하는 게 촛불혁명의 과제라고 봐요... 탄핵을 가결하느냐 안하느냐는 분명한데 다른 문제들은 복잡해서 판가름하기가 어렵지요. 그렇더라도 광장의 민심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p525) <백낙청 회화록7> 中


 우리는 두 책에 담긴 매체의 특성을 통해 월터.J.옹(Walter J. Ong, 1912 ~ 2003)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Orality and Literacy>의 내용을 연상하게 된다. 트위터의 구술성과 책의 문자성. 이제는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SNS의 대표주자이고, 많은 정보가 유튜브(YouTube)를 통해 유통되는 것을 보면 과학기술이 인류의 구술성을 회복시켜주는 면도 보게 된다. 문제는 소통이 주로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와의 단절은 심화되었다는 점이겠지만...


 모든 인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는 구술성과 또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고 있지 않는 쓰기라는 기술과의 사이의 상호작용은 마음의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개체발생적으로도 계통발생적으로도 분절된 언어로써 우선적으로 의식을 비추는 것은 구술언어다.(p265)... 쓰기는 분절과 소외를 끌어넣는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층 고차원적인 통일도 끌어넣는다. 쓰기는 자기 자신이 아는 감각을 강화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한층 의식적인 상호작용을 북돋는 것이다. 쓰기는 의식을 끌어올린다.(p266)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中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백낙청 회화록 7>은 공통적으로 2014년부터 2017년 가까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 지식인의 생각을 걸러지지 않은 언어로 또는 정리된 언어로 만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통해 당시의 구체적 사건을 확인하고 자신의 감정도 다시 느낄 수 있고, <백낙청 회화록 7>을 통해 시대를 보다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두 글들을 통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서 우리 의식을 통합하는 수단임을 확인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우선 2013년에는 설혹 우리가 이겼더라도, 정권교체가 됐더라도 새로운 체제를 만들 준비는 안되었었다, 이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문재인씨가 아무리 무능하고 미숙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낫게 했을 거 같아요. 다만 한가지, 그들보다 낫게 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을 거에요... 박근혜 대통령을 안 겪었다면 저 진보라는 자들 맡겨놓았더니 또 죽 쑤는구나, 박근혜가 되었어야지, 이런 여론이 퍼져서 오히려 2017년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대승을 하고 더 장기적인 한나라당 내지는 새누리당 정권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p317) <백낙청 회화록7> 中


PS. <백낙청 회화록>에 대해서는 한국현대사와 함께 틈틈히 정리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하지 않은 과거보다 사회를 인식할 수 있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4권 이후 부터가 상대적으로 읽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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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우주 - 비틀린 5차원 시공간과 여분 차원의 비밀을 찾아서 사이언스 클래식 11
리사 랜들 지음, 김연중.이민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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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칭 세계에서 우리가 아는 입자들은 모두 초대칭 변환에 의해 상호 교환될 수 있는 '초대칭짝(superpartner)'을 갖는다. 초대칭 변환을 통해 페르미온은 보손 짝으로, 보손은 페르미온 짝으로 변환될 수 있다... 초대칭성 이론에서 페르미온은 모두 보손 짝으로 변환될 수 있고, 보손은 페르미온 짝으로 변환될 수 있다. 입자들의 이러한 성질을 이론적으로 기술한 것이 초대칭성이다.(p386) <숨겨진 우주> 中


 양자 역학적 효과로 인해 질량이 작은 힉스 입자는 존재하기 힘들지만 힉스 입자가 무거우면 표준 모형이 붕괴된다. 여분 차원 이론이 존재하기까지 초대칭성은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다.(p408) <숨겨진 우주> 中


 리사 랜들(Lisa Randall, 1962 ~ )의 <숨겨진 우주 Warped Passages: Unraveling the Mysteries of the Universe's Hidden Dimensions>는 초대칭성을 포함한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 가진 한계를 말한다. 현실에서는 (여러 이유로) 깨진 상태로 존재하는 초대칭성은 현실적으로 입증되기 어렵기에, 저자는 <숨겨진 우주>에서 대신 '여분 차원'을 도입한다.


 끈 이론 모형 중 하나에서 약력 막과 중력 막이라는 2개의 막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유한한 크기를 갖는 다섯 번째 차원의 경계를 이룬다. 벌크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막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시공간을 비튼다... 이 모형에서 다섯 번째 차원은 크지는 않지만 심하게 비틀려 있다. 중력의 세기는 물체가 다섯 번째 차원 어디에 있는가에 강하게 의존한다.(p601) <숨겨진 우주> 中


 우리 모형에서는 다섯 번째 차원의 한쪽 끝에 1개의 막이 있다. 이는 20장에서 내가 기술했던 2개의 막과 마찬가지로 반사성이 뛰어나다. 막에 충돌한 물체는 다시 튕겨지기 때문에 이 막에 충돌해도 에너지 손실은 없다.(p617)... 중력이 국소화되어 있는 경우 질량이 없는 KK 입자가 국소화된 중력자다. 이 KK 입자는 중력 막 가까이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p631) <숨겨진 우주> 中


[그림] 숨겨진 우주(출처 : https://sciencebooks.tistory.com/588)


 <숨겨진 우주>의 모델에는 1개의 막(brane)이 등장한다. 차원을 구별하는 이 막 근처에는 중력자가 확률밀도함수(Probability Density Function)에 따라 밀집된 형태로 존재한다. 확률밀도함수의 모형은 결코 꼬리의 끝이 x축과 만나지 않기 때문에 중력자 역시 거리가 멀어질수록 밀도가 낮아지지만 결코 0이 되지는 않는다.


 국소화된 중력(localized gravity)은 전체 5차원 우주를 마치 4차원 중력의 작용을 받는 것처럼 행동하게 한다... 여러분은 이제 여분 차원이 작게 말려 있거나 시공간이 휘어 있거나 중력이 작은 역에 몰려 있어서 차원이 무한히 커도 보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차원들이 압축되어 있든 아니면 국소화되어 있든 시공간은 어느 곳에서나 4차원으로 보인다.(p641)... 다섯 번째 차원 어디에 있든 4차원 중력의 영향은 피할 수 없다는 RS2 모형의 결론이 답이다. 중력은 모든 곳서 4차원처럼 보이는데, 이는 중력자의 확률 함수가 실제로 0이 되지 않고 무한히 계속되기 때문이다.(p642) <숨겨진 우주> 中


 <숨겨진 우주>에서는 5차원이 말려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여기에 11차원의 M이론고 10차원의 초끈이론을 통합시키는 가정임을 고려해본다면, 이를 통해 <숨겨진 우주>가 의도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M이론과 초끈이론이 주장하는 10차원, 11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되, 이를 우리가 체험하는 4차원(3개 공간차원 + 1개 시간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11차원 중 하나의 차원이 아주 작은 원처럼 말려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원형으로 말려 있는 차원을 감싸고 있는 2 막은 끈처럼 보일 것이다. 원래는 11차원 이론이 끈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한 차원이 말려 있다면 11차원 초중력 이론이 끈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된다. 말려 있는 차원은 멀리서 그리고 낮은 에너지에서 보면 항상 원래 차원보다 낮아 보이고 그런 차원을 포함하고 있는 이론은 그 차원의 수가 하나 낮아 보인다.(p471)... 낮은 에너지에서 10차원 끈 이론은 11차원 초중력이론과 쌍대성을 이룬다. 10차원 이론의 막은 11차원 이론의 입자에 대응된다.(p474) <숨겨진 우주> 中


 <숨겨진 우주>에서는 이와 같이 말려져 있는 5차원의 공간에서 중력자들이 중력막 근처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5차원의 힘이 어떻게 우리의 4차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중력은 한 막에 갇혀 있지 않다. 막이 존재하더라도 중력은 막에서나 막을 벗어난 곳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점이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로지 중력이라는 수단뿐이지만, 어쨌든 막 세계가 벌크와 상호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은 벌크로 뻗어 나가고 또 모든 것은 중력으로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막 세계는 여분 차원과 연결된다. 막 세계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막 세계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더 큰 전체의 한 부분이다. 벌크에는 중력 이외의 다른 입자나 힘이 존재할 수 있다... 요약하면 막은 힘과 입자를 가두고 있는 차원이 낮은 표면이며, 그보다 높은 차원을 가진 공간의 경계이다.(p102) <숨겨진 우주> 中 


 <숨겨진 우주>에서  중력(gravity)은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이다. 차원과 차원은 중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중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로부터 차원을 연결할 정도로 큰 힘인 중력이 왜 우리에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가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중력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이 4차원으로 보인다는 것뿐이다. 우주의 다른 영역도 모두 4차원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일일 것이다.(p643)... 내가 국소적으로 국소화된 중력이 마음에 든 것은 그것이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는 대상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한에서만 우주가 4차원이라고 말하며 우주 전체가 4차원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p650) <숨겨진 우주> 中


 저자는 <숨겨진 우주>에서 5차원의 힘 중력에 대한 가정을 바탕으로 우주의 차원을 한 단계 늘려간다. 랜들은 우주가 5차원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경험하는 4차원보다 높은 차원인 5차원이 존재할 수 있다면, 5차원과 한 단계 높은 6차원 역시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우리는 차원을 10차원이나 11차원에 이를때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 <숨겨진 우주>는 M이론의 귀납적 증명(induction)인 셈이다.


 <숨겨진 우주>는 독자들을 위해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M이론, 초끈이론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렇지만, 많은 대중교양 과학서에 중복되는 위의 내용은 이번 리뷰에서는 옮기지 않았지만,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 2005년에 출간되어 이제는 고전이 된 <숨겨진 우주>는 차원 확장에 대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광자 하나와 같은 충분히 단순한 양자 역학적 계가 있다면 그 에너지는 플랑크 상수 h와 진동수의 곱이 될 것이다. 그 경우 우리가 에너지를 측정하는 시간 간격과 에너지 오차의 곱은 항상 h보다 크다. 원하는 만큼 에너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그와 맞물려서 훨씬 더 오랫동안 측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도한 불확정성 원리다.(p219) <숨겨진 우주> 中


 힉스(Higgs) 메커니즘이 없다면 기본 입자는 모두 질량이 없어야 한다. 질량을 가진 입자를 설명해야 하는 표준 모형에 힉스 메커니즘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 표준 모형은 아마도 고에너지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예측을 내놓게 될 것이다. 입자들은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입자의 에너지가 커져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p311) <숨겨진 우주> 中


 PS. 처음에는 goddamn particle 였다가 후에 The God Particle로 초대칭 신분상승을 한 힉스(Higgs)입자에 대해서는 조만간 정리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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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들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p287)...  대중성 질병들은 반드시 대규모의 조밀한 인구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구 집단은 약 10000년 전에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에 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가속화되었다.(p299) <총, 균, 쇠> 中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37 ~ )의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가축 사육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신석기 혁명으로 형성된 도시 발달은 이들 질병을 전염성 질병을 가져왔음을 밝힌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자면, 문명(文明 cultivation)은 질병(疾病 disease)을 발전시킨 것으로, 이들을 동반자 관계로 해석된다. 현대인의 많은 질병이 스트레스성 질환이라는 사실은 이와 같은 관계를 뒷받침하지만, 동시에 문명과 질병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관계이기도 하다. 한스 지거리스트(Henry Sigerist, 1891 ~ 1957)는 <문명과 질병 Civilization and Disease>은 경쟁관계에서 이들을 조명한다.


 의학은 농업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더 안전하게 만들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계속 살펴보았듯이, 의학의 역사는 문명 전체의 발전과정을 반영한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질병에 맞서 싸우는 힘이 점점 더 커지고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투쟁에서 의학은 가장 주된 무기였다.(p373) <문명과 질병> 中


  <문명과 질병>에서 인류는 문명의 고도화를 통해 개체의 생명을 연장하고 사회를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질병은 퇴치해야할 적이다. 지거리스트는 본문에서 특히 사회과학으로서 의학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대해 강조한다. 지거리스트가 바라보는 의학의 목적은 개체 치료가 아닌 사회 치료다.


 의학의 목표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사회의 의미 있는 일꾼으로 되돌려주는 것, 또는 질병이 환자를 덮쳤을 때 재정비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의학의 임무는 환자의 신체적인 회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병이 나기 전에 누리던 사회적인 위치에 복귀하거나 필요하다면 새로운 자리를 찾을 때까지 계속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의학이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인 이유다.(p134) <문명과 질병> 中


 지거리트는 <문명과 질병>에서 역사 속에 나타난 치명적인 질병인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등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나타난 질병보다 이러한 질병이 등장하게 되는 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한다. 여러 질병에 취약한 계층을 줄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방의학이며, 궁극적으로 의학이 지향해야할 방향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건강상태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다. 빈곤은 인류에 대한 저주다... 처방은 명백하다. 서방의 몇몇 부유한 국가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또 어떤 계층이 다른 계층들을 희생시키며 번영을 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적어도 사회생활의 기본과정과 생산, 분배, 소비 등에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그리고 과학적 방침에 따라 전 세계적 규모로 사회생활을 계획한다면, 지구촌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건강상태는 교육수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무지 역시 질병의 중요한 원인이다.(p384) <문명과 질병> 中


 질병으로 환자는 노동력을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빼앗기며 그에 따라 경제적인 재앙이 생기므로 환자와 그 가족들은 전적으로 사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질병은 예방할 수 있고 또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방과 치료에는 돈이 든다. 사회는 의사, 공중보건 담당자, 치과의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들의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한다.(p128) <문명과 질병> 中


 사회적 차원에서 예방의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부의 불평등 문제, 교육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역량이 집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질병에 취약한 계층이 점차 사라진다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와 같은 대규모 전염성 질환에 대한 걱정도 한층 줄어들 것이고, 질병의 사회적 비용 또한 감소될 것이다.


  2020년 2월 1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국내 확진 환자가 12명으로 늘은 현 시점에서 사회 불안은 한층 커진 듯하다. 실시간 중계방송 하듯 피해상황을 보도하는 언론과 이를 정쟁거리로 만들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언행이 12명의 확진자를 가져온 질병보다 더 크게 사회를 흔드는 현실은 병을 고치는 왕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 <기적을 행하는 왕 Les Rois thaumaturges>을 연상시킨다. . 결핵성 경부 임파선염(scrofule)인 연주창을 치료하는 왕의 기적을 분석한 마르크 블로크(Mark Bloch, 1886 ~ 1944)의 글 안에서 우리는 극한 현실에 담긴 인간의 신념을 확인하게 된다. 연주창이 아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에 담긴 누군가의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있다면 그 신앙은 무엇일까.


 왕의 기적은 무엇보다도 최고의 정치권력을 나타내는 어떤 관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p67)... 연주창은 왕의 병으로 불리는데, 그것은 왕이 손대면 병을 줄 수도 있고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p69)... 무서운 질병이 왕들의 손과 접촉하고 나면 치료된 것처럼 보이거나 때때로 정말로 치료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 신성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기적에 대한 신앙을 만든 것은 거기에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대를 거듭해 증언이 축적되었고 점점 증가했으며 사람들은 경험에 근거해서 말했으므로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존엄하신 분의 손가락과 접촉했음에도 병이 지속되는 경우는 꽤 많았을 텐데,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빨리 잊어버렸다. 이렇듯 왕의 기적에 대한 신앙에는 집단적 오류의 결과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p475) <기적을 행하는 왕> 中


 사실, 이러한 의도와 무관하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큰 희생없이 이번 위기가 넘어가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도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과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과 (아직은 결정되지 않은)피해자를 남기고 마찬가지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다른 변종 바이러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떨며 지내야 할까.


 아니면, 우리는 종편 방송의 수많은 건강관련 프로그램과 몸에 좋은 식품 소개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닫고, 질병에 취약한 계층을 줄여 사회 체질을 강화시켜 진정한 사회 공동체 차원의 예방의학 정책을 실시할 수 있을까. 질병을 통해 문명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질병은 문명의 동반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질병의 치료에서 인간의 심리가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문명과 질병>의 한 대목을 옮기며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오늘날 우리는 암시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알고 있고 의식적으로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암시와 자기 암시가 특정 질병의 어떤 증상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념이나 종교적 열정에 의한 긴장이 치료에 가장 적합한 마음의 상태를 만든다.(p232)... 근대적 경험은 신경증뿐만 아니라 특정한 기질적 질병도 암시나 다른 종류의 심리치료에 의해 완전히 낫지는 않아도 현저히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p234) <문명과 질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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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p418)... 사람의 길을 키우는 길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 碩果不食의 교훈입니다.(p423) <담론> 中


 <담론 談論>에는 신영복 교수의 전작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의 많은 내용과 함께 사상의 지향점이 잘 나타난다. 20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겨낸 저자의 이야기가 강의 곳곳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강의>는 잘 어울리는 세트임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노자(老子) 철학의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작은 소득이었다. 먼저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자. 강신주는 노자의 사상 안에서 제국주의 帝國主義 모습을 발견하고 자본주의 수탈구조를 합리화는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노자 철학에 등장하는 많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천하(天下)'이다. '천하'는 글자 그대로 '하늘 아래'를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전국(戰國)의 혼란과 무질서를 '하늘 아래'라는 생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강력한 파시즘으로 무장한 국가의 무력으로는 전국(戰國)을 통일할 수 있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통일된 제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p284)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中


  노자의 해법은 피통치자가 '제국'안에 들어오면 사랑의 원리로, '제국' 바깥에 남으려고 한다면 폭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의 '제국' 논리가 역사상 존재했던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제국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점은 '제국'이 결코 '국가'와 독립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노자 철학의 진정한 고유성을 그가 '제국'으로까지 이어질 '국가'의 작동원리를 발견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p285)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강신주의 해석에 따르면, 노자의 '무위 無爲'도 '위 爲'를 위한 방편으로 전락할 것이며, 자연(自然)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국가의 모습에 다름이니게 된다. 때문에, 상당히 혁신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신영복의 <담론>과 <강의>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한다.


 노자에 따르면 국가란 하나의 교환 체계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기구다. 그러나 문제는 노자가 국가를 자명하게 주어진 전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p285)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노자 老子>는 민초의 정치학입니다. 민초들의 심지 心志를 약하게 하고 그 복골 腹骨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노자> 3장의 예를 들어 <노자>가 제왕학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민 民을 생산노동에 적합한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의 생산적 토대를 튼튼하게 하고, 기층 민중의 삶을 안정적 구조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뜼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61장을 예로 들어 정치란 먼저 주는 것이고, 나라를 취하는 국취 國取가 목적인 듯 반론하고 있지만 61장의 핵심은 평화론입니다. 대국자하류 大國者下流 천하지교 天下之交. 노자가 이야기하는 대국은 바다입니다(p136)... <노자>가 제왕학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결정적 부분이 바로 물의 철학입니다. 비단 물의 철학뿐만 아니라 <노자>의 핵심 사상인 무위가 바로 반전사상 反戰思想입니다.(p137) <담론> 中


 <노자> 텍스트로만 한정해 보자면,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시야를 좀더 넓혀 다른 고전인 <주역 周易>과 <맹자 孟子>의 내용까지 함께 높고 생각하게 된다. 하늘이 아래, 땅이 위쪽에 놓인 지천태(地天泰) 괘는 마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은 가지고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덜어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천태가 매우 좋은 괘인 이유는 덜어주는 모습이 자연(自然)스러운 길(道)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천태 地天泰 괘는 매우 좋은 괘로 읽힙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괘와 상괘의 관계 때문입니다. 곤 坤 괘가 위에 있고 건 乾괘가 아래에 있습니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좋은 괘로 읽힙니다. 땅의 기운은 내려오고, 하늘의 기운은 올라갑니다.(p67) <담론> 中

 

 如有不嗜殺人者, 則天下之民皆引領而望之矣. 誠如是也, 民歸之, 由水之就下, 沛然誰能禦之.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길게 빼고서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 사람에게 따라가는 것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줄기차게 흘러가는 기세를 누가 능히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맹자정의 孟子正義  양혜왕상 梁惠王上 6장 六章>(p47)


 만약, <노자>를 읽은 군주가 크게 깨달음을 얻어 도(道)를 따라 간다면, 그 길의 결과로 많은 백성을 얻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만약, 군주가 인위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가능할 지라도 바다(大國에 이를 때까지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를 행하다 보니, 바다로 나아갔을 뿐,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도를 행했다고 본다면 원인과 결과가 바뀐 해석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노자>에서 자본주의 수탈구조 대신 반전(反戰)사상을 찾아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생각된다. 여기에서 잠시 '수탈-재분배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자.


 수탈과 재분배라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유지되는 한, 그것이 전자본주의 경제체제든 혹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든 아니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제체제든 간에, 국가가 그 어떤 생산양식 혹은 생산력이라도 자신의 교환 논리로 선택하고 편입시킨다고 보아야 한다.(p288)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국가에 대해 부정적인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논리는 국가를 약탈-재분배 구조로 파악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의 사상에 기반한다. 국가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부정적인 인식은 '국가' '자본'의 문제를 인류 공동의 문제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칼 폴라니의 결점은 재분배가 약탈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약탈-재분배라는 '교환양식'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p62) <세계공화국으로> 中


 인류는 지금 긴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인 전쟁,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는 분리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국가와 자본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국가와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대로 파국의 길을 걷고 말 것입니다. 이것들은 일국(一國) 단위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글로벌한 비(非)국가조직이나 네트워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제 국가의 방해와 만나기 때문입니다.(p225) <세계공화국으로> 中


 이에 반해,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의 견해는 다르다. 축적된 부(富)가 가져오는 불평등한 소득 분배를 해결하기 위해, 피게티는 세계공화국 수준에서 이루어질 글로벌 자본세와 함께 사회적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를 자본의 편에 서있다고 규정한 고진과 국가를 자본 개혁의 주체로 바라본 피게티. 같은 진단, 다른 치료를 제시한 두 석학의 이야기에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국가(國家)를 어떻게 규정해야할 것인가. 이 문제를 깊게 보려면 근대 국가 이전 선사시대까지 나가야할 수도 있기에 일단은 멈추도록 하자.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 세금은 끝없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고 세계적인 자본집중의 우려스러운 동학을 통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p617) <21세기 자본> 中


 반 反시장주의와 반 反 국가주의 모두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내달리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동시에 현대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세 및 소득이전제도의 지속적인 개혁과 현대화가 이뤄져야 한다.(p564)... 의료와 교육에 대한 정부지출(국민소득의 10~15퍼센트)과 대체소득 및 이전지출(국민소득의 10~15퍼센트 또는 20퍼센트)을 전부 합하면 국가의 총 사회적 지출은 (대체로) 국민소득의 25~35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다시 말해 지난 세기에 이뤄진 재정국가의 성장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국가'의 건설을 반영하는 것이다.(p570) <21세기 자본> 中


 다시 <노자>로 돌아와서, <노자>와 관련한 강신주의 해석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발견한다는면에서 참신성은 있었지만, 춘추(春秋), 전국(戰國)시대가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던 시대이며 늙은 부모를 산에 버리던 시대임을 생각해보자. 끔찍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과 시대 안에서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수탈구조를 생각한다는 해석은 분명 무리하다 여겨진다. <노자>의 정치사상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p141)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담론>과 <강의 : 나의 고전독법>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했으니, 책 내용 중 하나인 <주역>의 내용 중 인상깊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하자.


 '위 位'는 효 爻의 자리입니다. 효를 읽을 때에는 먼저 그 자기를 읽습니다. 그러나 <주역 周易> 독법에 있어서 양효는 어디에 있든 늘 양효로서 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효가 양효의 '자리(位)'에 있어야 양효의 운동을 합니다. 효가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을 득위 得位했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실위 失位했다고 합니다. 양효, 음효라는 효 자체의 존재성보다는 효가 처해 있는 자리와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관계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p63) <담론> 中


  양효가 양효의 자리에 있어야 득위한다는 말은 길(吉)하다와 통할 것이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야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공부를 안 한 학생이 시험을 잘 칠 수 있을 것인가를 주역점을 쳐서 물었을 때 '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주역점의 결과는 점을 치는 상대 기준으로 길(吉) 흉(凶)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편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결과를 말해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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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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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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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언급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 關係論 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 存在論 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p23)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신영복(申榮福, 1941 ~ 2016)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는 서양철학을 존재론으로, 동양철학을 관계론으로 규정한다. 존재론에서 개별 존재가 기본단위로 이로부터 확장을 추구한다면, 관계론에서는 기본단위가 망(網)이 된다. 마치 물리학에서 기본 단위를 '점'으로 보는 사상과 '끈 string'으로 보는 사상(초끈이론)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기초단위의 설정부터 두 사상은 다르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 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증식 自己增殖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p23)...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 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p24)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저자는 이러한 두 세계의 차이로부터 우리가 동(同)에서 화(和)로 나가야함을 강조한다. 존재론의 자기 증식적 성향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가치관의 변환을 촉구한다. 저자에게 고전은 단순한 옛글이 아닌 현실 문제의 해결방안을 촉구하는 현실의 목소리다. 다만, 우리가 고전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당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평가에 저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동 同은 이를테면 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흡수와 합병의 논리입니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근대사회의 일관된 논리이며 존재론의 논리이자 강철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동 同의 논리를 화 和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p46)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p141)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의 입장에서 고전을 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자본집중화로 인한 빈부격차와 인간소외, 신자유주의문제로 바라보는 저자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통해 현대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死活的 공세 攻勢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 역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자본 축적 과정의 전형적 형태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와 존재론적 운동 형태를 지양하지 않는 한 다른 경로가 없기 때문이지요.(p33)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로 설명하고 이를 상품의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가치가 본질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상품은 한마디로 말해서 팔리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감성이 상품미학에 포섭된다는 것은 의상과 언어가 지배하는 문화적 상황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지요.(p197)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中


 생각해보면,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처음을 분업(分業)을 통한 효율적인 생산을 말한 것으로 시작하면서 근대 경제학은 생산 중심의 경제학으로 변모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같은 저자의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이 동감(同感)으로 부터 시작됨을 생각해본다면, 애덤 스미스의 경제철학에도 생산 이전에 교환이 중심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신영복 교수의 동양고전에 대한 성찰은 생산에서 교환 중심의 경제학으로, 근대 경제학의 시작을 <도덕감정론>으로 생각하는 학자의 현실 인식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영복의 인식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의 사상과도 통한다. 


 자본은 자기증식을 할 수 없을 때, 자본이기를 멈춘다. 따라서 언젠가 이윤율이 일반적으로 저하되는 시점에 자본주의는 끝난다. 그때 비자본제경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그 충격을 흡수하고 탈자본주의화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 명확한 것은 생산 과정에 대한 과도한 중시와 유통과정의 경시가 자본의 축적과정에 대응한 대항운동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정하는 데에는 좀 더 근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서 보는 시점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p413) <세계사의 구조>中


 저자는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존재론-관계론'의 문제를 경제학에 대한 인식으로 끌어갔지만, 저자와 배경지식이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문명(文明, culture)를 바라보는 아널드 J.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CH,1889 ~ 1975)와 정수일(鄭守一, 1934 ~ )의 입장 차이는 존재론과 관계론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를 정리해보자. 결론은 두 종류의 관계, 즉 동일한 사회 내부의 부분사회(커뮤니티) 간의 관계와 서로 다른 사회 간의 관계는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p44)...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연구의 단위는 민족국가도 아니요 정반대인 인류도 아니며, 다만 우리가 사회라고 이름 붙인 어떤 종류의 인간 집단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p49) <역사의 연구 Study of History 1> 中


 씰크로드학의 핵심은 씰크로드를 통한 문명의 교류상을 밝혀내는 것이다. 문명의 교류, 이것은 씰크로드학의 전편에 깔려 있는 밑그림이며 전장(全章)을 관류하는 물줄기다. 그래서 씰크로드학은 일종의 문명교류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명이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한 결과물의 총체로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으로 대별된다. 문명의 생명은 이러한 결과물에 대한 공유(共有)다.(p18) <씰크로드학> 中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는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긴 해설도 접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바라보고 미래의 길(道)을 확인하는 자세라 생각된다. 그리고,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인문독서 입문서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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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1-25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은 관계론이 아닌 존재론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차이 인정은 영원히 차이를 좁히지 못하여 존재를 고착화 한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존재론자들의 숨은 의도에 관계론자들이 여전히 많이 속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아무튼 새해 첫날부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즐건 설 명절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20-01-25 14:54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존재론과 관계론의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 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연휴 되세요!^^:)

초딩 2020-01-25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0-01-25 14:55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설연휴에 복 많이 받으세요!^^:)

하나의책장 2020-01-26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0-01-26 11: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나의책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한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