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급격한 세력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의 견제로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 ~ BC 404).  이 전쟁이 시작된 2년차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테네에 역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마 전쟁의 계절이 시작될 때 아테네에서 발생한 역병의 위력에 대한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작전을 중단했을 것이다. 투키티데스는 이 병을 앓았고 그 증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병은 폐렴 흑사병, 홍역, 장티푸스, 그리고 여러 다른 병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지만, 정확하게 들어맞는 병명은 알 수 없다. 기원전 427년에 진정될 때까지, 이 병으로 중장 보병 4,400명, 기병 300명, 하층민 다수가 사망했다. 아테네 주민의 약 3분의 1이 휩쓸려나갔다.(p10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역병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체 주민의 3분의 1이 쓸려나간 이 병으로 인해 아테네는 전쟁 초기 큰 인력손실과 함께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5 ~ BC 429)를 잃어 국정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러한 큰 피해로 인해 아테네인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잃어갔다.


 스파르타의 제1차 침공 이후에는 잠잠하던 평화파가 적과의 타협을 다시 촉구하고 나섰다. 더욱 공격적인 전쟁을 주장하던 자들은 아티카가 입은 큰 손실과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공격이 가져올 빈약한 성과를 지적할 수 있었다. 현재의 지출 수준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포티다이아의 포위는 여전히 예산에서 주된 요소였다. 돈을 절약하고 아테네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큰 승리가 필요했다.(p10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긴 사건은 시칠리아 원정(Battaglia navale in Sicilia, BC 415 ~ BC413)였지만, 이러한 원정의 결정 배경에는 아테네인들의 초조한 심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병 또한 아테네 패배의 주요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자신도 병을 앓았던 투키티데스는 당시 역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평소 건강한 사람들이 별 이유없이 갑자기 감염되었는데, 최초 증상은 머리에 고열이 나고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것이었다. 입안에서는 목구멍과 혀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고, 내쉬는 숨이 부자연스럽고 악취가 났다. 다음에는 재채기가 나며 목이 쉬었다. 얼마 뒤 고통이 가슴으로 내려오며 심한 기기침이 났다. 대부분의 경우 헛구역질과 함께 심한 경련이 일어나는데, 이런 경련은 어떤 사람들은 구역질을 하고 나면 곧 완화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참 뒤에야 완화되었다.(p178)... 이 역병의 증상은 실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p178)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49) 


 당시 아테네의 역병은 원인을 잘 모르는 병이었기에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함께 쓰러져가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지만, 투키티데스는 이 병의 무서운 점을 그 증상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투키티데스는 병으로 인한 고독과 절망과 이로부터 오는 사회적 혼란을 더 치명적인 결과로 해석한다.

 

 이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병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면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과, 사람들이 서로 간호하다 교차 감염되어 양 떼처럼 죽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이 사람들이 죽어간 주된 원인이었다. 사람들이 환자 방문하기를 두려워하면서 환자는 방치된 채 혼자 죽어갔기 때문이다. 돌보는 이가 없어 식구가 모두 죽어간 집도 실제로 비일비재했다.(p17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47 ~ 52)


 절망감과 고독감 속에서 환자들은 죽어갔고, 환자가 아닌 이들은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면서 아테네는 향락에 빠지게 되었다.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테네의 패권은 이미 몰락하고 있었다.


 아테나이는 이 역병 탓에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숨도 재물도 덧없는 것으로 보고 가진 돈을 향락에 재빨리 써버리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목표를 이루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고상해 보이는 목표를 위해 사서 고생을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의 법도 구속력이 없었다... 이렇듯 아테나이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렸으니,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도시 바깥의 영토는 약탈당하고 있었다.(p18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53)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전체 인구의 상당수를 잃었지만, 역사가 투키티데스는 역병의 치명적인 결과를 개인의 건강이 아닌 공동체의 붕괴에서 찾고 있다. 아테네는 이러한 역병으로 인해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퇴했다. 그리고,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이 마비된 현실안에서 우리는 아테네의 혼란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간 질병과 2020년 2월 28일 질병관리본부 기준 사망자 13명의 질병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코로나 19의 실제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지나친 것은 아닐까. 질병의 피해보다는 마스크 착용과 사재기 등으로 인한 불안감이 질병보다 더 크게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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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0-02-29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글에 크게 동감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전염병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냉정하게 각자 해야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즐거운 독서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9 14:07   좋아요 2 | URL
blueyonder님 말씀처럼 이제는 전염병때문에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평안함 속에서 자가치유 능력을 믿고 생활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물론 평소 지병있는 환자들은 건강에 유의해야겠지만요.... blueyonder님께서도 건강한 하루, 행복한 하루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20-03-01 18:37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이런 바이러스 없지 않았을텐데, 앎이 이런 소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앎이 항상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0-02-29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좋은 지적이네요. 지금 읽으면 좋은 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9 14: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이 페이퍼를 나중에 읽었을 때는 별로 공감되지 않는 세상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AgalmA 2020-03-08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는 자비 검사가 400만 원이 넘어가서 염려가 돼도 서민들은 그런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그나마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어서 16~20만원 가량이지만 몇몇 증상자는 그게 부담돼(확진자에겐 환불되지만 비확진자면 다 자비처리되니까) 검사 안 받다보니 병세가 더 깊어졌더군요.
부유한 사람들이 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동관심단지(CID)를 조성해 살고 있듯이 공동체 붕괴는 곳곳에 퍼져 있는데 이 질병 사태는 인종, 계층 갈등도 더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혐오 정서가 현실 공간까지 바꾸는 것도 같고 세상 곳곳이 차단의 장막으로 가득하네요.

겨울호랑이 2020-03-01 14:20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회 문제가 더 잘 드러났음으 느낍니다. 이러한 문제를 잘 의식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지난 금요일 친척 어른 중 한 분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여수에서 3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3일장을 치르면서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과 함께 오랫만에 친지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죽은 이의 중재로 살아있는 이들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장례식임을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번 장례는 불교의식으로 진행된 장례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조금은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가톨릭에서 진행되는 의식에 익숙한 제게 불교 의식은 생소했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빈소에서 ‘연도‘를 바치게 됩니다. 연도는 죽은 이에 대한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내용의 기도로 주로 신자들이 모여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블교에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독송하는데, 스님들과 불자분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가톨릭의 미사는 제사의 의미로 제사장인 사제(신부)의 주관으로 이루어지며, 사제의 참여는 미사와 성사로 한정된 반면, 수행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스님과 불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는 기도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죽은 이의 안식을 청하는 「연도」와 ‘아녹다라삼먁삼보리‘를 추구하는 「금강경」의 독송은 구원의 종교와 깨달음의 종교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여겨집니다.

동시에, 두 종교에 공통된 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관의식에서 「반야심경」의 구절을 외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에서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께 청하는 묵주기도(로사리오 기도)를 떠올려 봅니다. 성모 마리아와 관세음보살께 의지하는 마음은 아기가 무서운 일을 당했을 때 엄마의 치마 뒤로 숨는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자한 엄마에 대한 기대. 이것은 종교를 뛰어넘은 우리 모두의 같은 마음은 이닐까 생각해 봅니다...

3일동안 곁눈으로 불교의식을 지켜봤기에 제 생각은 거칠고 부족함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부족한 부분은 차차 다듬어가야할 부분이라 생각하면서 다음 과제로 넘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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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2-20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 장례를 치르면서 생각했을 수 많은 질문들과 의문이 이 글보다 훨씬 깊은 심연까지 였음을 압니다. 글 너머의 생각과 마음도 전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0 05:11   좋아요 1 | URL
죽음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을 임을 실감하게 장례에 참여할 때마다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장례는 죽은 이의 의식이라기 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필립 아리에스의 말이 계속 떠오르네요...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서점에서 가장 고민할 때는 딸아이 책을 고를 때입니다. 제가 볼 책을 고르는 것은 쉽게 판단이 되지만, 아이가 볼 책은 쉽게 판단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교훈적인 것은 아닌지, 너무 아저씨 취향은 아닌지, 글밥은 적당한지, 여러차례 볼 만한 책인지 등등 여러 모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딸나이의 사전이 눈에 띄었습니다. 적당한 크기, 글밥, 그림과 구성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9살인 지금이 아니면 유통기한이 지날 것 같아 일단 세 권의 책을 사서 집에 가져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아이의 반응은 제 기대와는 달리 ‘그저그런 편‘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 홈런 과제를 풀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아홉 살 사전의 좋은 점은 책의 구성입니다. 책은 느낌과 마음, 소통과 관련한 단어들을 설명하되, 단어들이 사용되는 상황과 예시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다가올 단어의 뜻을 아이들이 자주 경험하는 상황과 함께 설명하기에 그 의미를 실감나게 잘 설명한 책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어른들이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는 어렵듯, 딸 아이 역시 당장 눈이 가는 몇몇 단어를 찾아보는 것 외에 사전에 큰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해 두다가 학습 과제 중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과정이 나왔을 때 꺼내보는 것을 보니, 적절한 때 잘 구입했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봅니다. 아무래도 사전을 「엉덩이 탐정」처럼 읽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어쩌면 「아홉 살 사전」시리즈는 아이들보다는 부모들에게 더 유용한 책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책을 읽으며 요즘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의 지나간 9살의 과거를 돌아보는. 그런 면에서 부모와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느낌, 마음, 함께.

아홉 살의 아이가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과 이로 인해 드는 마음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과정이 담긴 책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고 사이좋게 자라나길 바라면서 페이퍼를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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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5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화랑세기 花郞世記> 필사본이 1989년 세상에 모습을 보인 이래 책의 진위(眞僞) 논란은 진행형이다. <화랑세기 : 신라인의 신라이야기>는 필사본을 진본으로 보는 이종욱 교수가 편역한 책으로 저자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의의를 신라사의 생생한 복원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신라 시대에도 근친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골품제가 엄격하게 지켜진 신라의 최고 귀족들 사이에 근친혼은 신분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치적/사회적 이유에 의한 근친혼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화랑세기>는 오히려 신라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  틀림없다.(p347) <화랑세기><부록1. 화랑세기의 신빙성에 대하여> 中


  <화랑세기> 안의 복잡한 혈연 관계는 소위 오늘날 막장 드라마의 관계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예를 들면 김춘추(金春秋, 604 ~ 661)와 김유신(金庾信, 595 ~ 673)의 동생 문희(文姬)가 결혼해서 낳은 딸인 지소부인(智炤夫人)은 다시 김유신의 둘째 부인이 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여기 더해 미실(美室, 540 ~ 612 ?)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가계도는 독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에 대해 저자는 <화랑세기> 안에 나타난 근친혼(近親婚)을 도덕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행위로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 중 마복자(磨腹子, 하위 계급의 임신한 여성이 상위계급의 남성과 성관계를 하여 태어난 아이)나 진골 정통(眞骨正統)/ 대원 신통(大元神統)과 같이 이해가 안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있다고 해 이 책을 위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은 여성들로 이어져 있으며, 남자도 한 대에 한해서는 그의 어머니의 계통을 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계통을 인통(姻統)이라고 하고 있다. 원래 두 계통은 왕을 비롯해 왕실의 남자들에게 왕비를 비롯한 여자를 공급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두 계통에 따른 정치 세력도 형성되고 나아가 화랑들의 파맥(派脈)도 형성됐다.(p346) <화랑세기><부록1. 화랑세기의 신빙성에 대하여> 中


 마복자 풍습의 경우에는 지금의 도덕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화랑세기> 필사본 부정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화랑의 간부층인 낭도들은 풍월주의 마복자들로 구성되고, 이들이 화랑을 따르는 무리(출처: 위키백과)였다는 사실이 문헌 부정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생각된다. 일례로, 고대 그리스에는 성인 어른과 소년 애인 150쌍 300명으로  구성된  테바이 신성대(Hieros Lokhos)를 살펴보자. 동성애인 앞에서 용맹하게 싸우리라는 믿음으로 구성된 이러한 군대 편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들은 실재했던 부대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마복자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화랑세기>안에 담긴 화랑의 정치적인 모습 또한 우리에게 알려진 화랑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점도 문헌 부정의 근거가 된다. 여기에서 잠시 <삼국사기 三國史記>의 화랑 관련 부분을 살펴보자.


  진흥왕(進興王) 37년 봄에 비로소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처음에 임금과 신하들이 인재를 알아볼 방법이 없는 것을 병통으로 여겨, 사람들로 하여금 무리지어 노닐도록 해서 그 행동거지를 살핀 다음에 천거해 쓰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어여쁜 여자 두 사람을 뽑으니 한 사람은 남모(南毛)요, 또 한 사람은 준정(俊貞)이었다. 무리 3백여 명을 모았는데 두 여자가 미모를 다투어 서로 질투하더니,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그녀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다음, 끌어다가 강물에 던져서 죽였다. 이에 준정은 죽음을 당하였고, 그 무리들도 화목을 잃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 뒤 다시 미모의 남자를 골라 단장하고 꾸며서 화랑(花郞)이라 이름하고 받들게 되었다.(p128)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 제4> 中


 <삼국사기>는 화랑이 원화에서 유래했고, 원화를 대신한 화랑이 국가 인재의 등용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대로 화랑의 무리가 심신 수련 단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화랑세기> 안의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 사이의 다툼을 통해 남모 - 준정의 다툼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인간이 정치적인 동물임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다툼이 화랑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화랑세기>안에 담긴 화랑들과 미실을 비롯한 왕궁사람들은 너무도 인간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때문에, <화랑세기> 앞에서 관념적으로 생각했던 고대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풍습은 낯설지만, 권력과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은 낯설지 않다. 


 또한, <화랑세기>는 우리에게 신라사회의 장점과 한계를 함께 알려준다. 혈연(血緣)으로 맺어진 지배계층이었기에 이들은 7세기 고구려와 백제의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단결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테베의 신성대가 스파르타를 꺾고 그리스 패권을 차지했듯. 그렇지만, 고구려, 백제 영토 통합이후에는 이들의 폐쇄성이 독(毒)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넓어진 영토를 가슴으로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2세기가 흐른 후 다시 후삼국이 분할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고대사회의 폐쇄성이 신라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폐쇄성이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폐쇄성과 관련해서 잠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포용정책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로마인의 '포용'정책이 로마가 제국으로 이어진 계기가 되었음을 밝히고, 이는 <로마인 이야기>를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에 따르면 로마사회는 그렇게 포용적이지도 개방적인 사회도 아니었다.

 

  공화정 시대의 인상적인 평등과 관련해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이 평등이 상당 부분 형식적이었다는 점과 여기에서 매우 특이한 귀족 계층이 생겨났다는, 아니 오히려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p92)... 정부는 여전히 귀족 통치를 유지했는바, 가난한 소농들도 부유한 완전 토지 소유자들과 외형적 차별 없이 대등하게 민회에 참여했지만, 귀족 통치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은 도시의 시장은 커녕 촌의 면장도 되기 어려웠다.(p93) <몸젠의 로마사2> 中


  비시민에게는 로마 시민권 가입이 거의 완전히 막혀 버렸다. 복속된 공동체들이 로마 공동체에 편입되는 옛 절차는, 로마 시민권의 과도한 확대로 인하여 로마 시민권이 너무나 분산되지 않도록, 기원전 350년경에 소멸했고, 때문에 불완전 시민공동체가 설치되었다.(p177)... 귀족들이 평민을 상대로 귀족제의 폐쇄성으로 들어가듯, 시민은 비시민을 상대로 그렇게 했다. 제도의 관대함으로 크게 성장한 평민이 이제 귀족의 경직된 규율로 스스로를 구속하게 된 것이다.(p179) <몸젠의 로마사4> 中


 끊임없이 수혈되는 새로운 피가 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시오노 나나미는 높이 평가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로마제국의 융성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고대 사회에서(사실은 오늘날까지도) 폐쇄성은 일반적인 현상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시 <화랑세기>로 돌아오자. 여기에는 생생한 당대인의 모습과 함께 고대 사회의 폐쇄성이 담겨있다. 책에 묘사된 당대인의 모습은 책의 진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폐쇄 사회의 한계는 진위여부를 떠나 분명하게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사회에 남아있는 골품(骨品)제의 변형틀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필사본 <화랑세기>는 단순한 고문헌 이상의 의미를 갖는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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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보수 패거리가 지금까지 팔아먹고 산 것은 박정희 이미지밖에 없었다. 박근혜까지 나왔을 때는 거의 떨이 수준이다. 떨이가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민 갈 필요 없다.(p22)... 박정희는 1979년에 죽었다. 요즘 정황을 보면 공포영화의 상투적 패턴을 보는 것 같다. 악마는 막판에 다시 한번 되살아난다는 것.(p84)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유신 시대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유신은 간선제 선거를 통해 박정희를 사실상 종신제 대통령으로 뽑게 한 유신 헌법과 이 헌법에 대해 이의를 말하면 잡아 가둘 수 있게 한 9개의 긴급 조치로 이루어졌다. 아무튼 정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시대... 유신 시대의 두 가지 좋은 점.  하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적 판단의 노력이 면제된다. 또하나는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무조건 믿어야 할 사람 한 사람 있다. 유신 시대가 끝나자 그 두 가지 좋은 점이 갑자기 없어졌다. 어버이연합이 난리치는 이유.(p536)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유신 헌법이 민주화 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는 내용을 국정 교과서에 넣으려 했다 한다. 그쪽 사람들은 걸러진 내용을 가지고 왜 시비 삼느냐고 말했다는데, 삭제된 내용이라곤 해도 집필의 기본 정신이 거기 다 들어 있지 않은가.(p530)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황현산(黃鉉産, 1945 ~ 2018)의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는 문학 이야기와 함께 2014년부터 2018년의 정치 상황도 함께 녹아있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짧은 트윗들을 통해 박근혜 정부를 유신체제의 연장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을 알아간다. 우리는 이와 함께 트윗에 기록된 시간을 통해 저자의 글이 어떤 맥락에서 올라온 것인지도 함께 파악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의 글은 구체적 시간과 함께 묶여 있다.


 헌재의 논리 부족은 저들의 불행이 아니라 민주 시민들의 불행이다. 이 논리 빈약한 말이 앞으로 모든 민주적, 진보적 의견에 종북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막무가내, 무논리와의 싸움, 그게 다시 시작되었다.(p65)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돈 퍼주느라고 담뱃값을 올렸다, 어느 택시기사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게 작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몽매하게 만들어서 나라를 망치는 길로 지금 이 정부가 뛰어가고 있다.(p89)... 책 - <금요일엔 돌아오렴>- 을 손에 들기는 했지만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 용기를 숙제로 내주고 갔을 것이다.(p99)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실시간 소통을 특징으로 하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특성이 잘 나타난 글들에서 우리는 저자의 정제되지 않는 생각과 즉각적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교정을 본 책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을 오타도 너그럽게 허용되는 트위터의 글에서 우리는 구술(口述)문화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백낙청 회화록>은 상대적으로 정제된 저자 생각을 전한다. 이러한 면에서 회화록(會話錄)은 상대적으로 문자(文字)문화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1년 중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달지 않고,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하루쯤 있어야 한다. 오늘을 그날로 정하는 것이 옳겠다.(p140)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세월호 이후에 흔히 정부가 있기는 있나, 국가가 있나 하는 질문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좋은 정부가 없고 좋은 국가가 없는 거지 있기는 확실히 있어요, 정부가... 세월호만큼 많은 사실을 생생한 육성과 기록과 화면으로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이걸 바탕으로 더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는 얘긴데, 이게 저절로 안되고 있는 게 아니라 이걸 확실하게 막고 있는 정부가, 뼛속까지 나쁜 정부가 있기 때문에 안되는 겁니다.(p298) <백낙청 회화록7> 中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 남겨진 관련 트윗과 함께 이제는 <백낙청 회화록>으로 넘어가보자. <백낙청 회화록>에도 백낙청(白樂晴, 1938 ~ )의 문학비평과 함께 당대의 시대상이 담겨있다. 이 역시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구술문화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140자의 짧은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하는 트위터와는 달리 보다 체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자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백낙청 선생이 창비를 붙들고 있는 것은 비단 문학 때문에만은 아니리라. 선생의 분단 체제론이 끝을 보지 못했고, 그와 관련해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선생이 창비를 붙들고 있는 한 그에 대해 선생보다 더 잘 생각할 사람이 나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p57)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선생님 쏘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시나요? (백낙청) 페이스 북도 하는데 열심히는 못해요... 말이 너무 흔하면 아무래도 금이 떨어지죠. 그래서 우리가 가만히 있지는 말아야 하고, 그만할 짓은 그만해야 좋을 것 같아요. 엄살도 그만 떨고 쓸데없는 수다도 덜 떨고 그런 것도 필요하지 않나...(p300) <백낙청 회화록7> 中


 <백낙청 회화록>은 1968년부터 2017년까지의 한국현대사의 사건과 문화 등을 담고 있기에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을 배경으로 하는 두 글의 내용을 통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서는 당시 상황의 긴박성을, <백낙청 회화록7>에서는 시대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나경원 의원이 "좌파에게 정권을 내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가 간다. 상대는 좌파고 좌파는 나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만 새누리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이 겨우 돋아나는 것 같으니.(p537)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中


 촛불혁명이 탄핵이라는 1차적 목표를 달성하면서 이제부터는 국회에 맡겨주고 정치인에게 맡겨주십시오,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헌 얘기도 그렇고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제어하느냐 하는 게 촛불혁명의 과제라고 봐요... 탄핵을 가결하느냐 안하느냐는 분명한데 다른 문제들은 복잡해서 판가름하기가 어렵지요. 그렇더라도 광장의 민심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p525) <백낙청 회화록7> 中


 우리는 두 책에 담긴 매체의 특성을 통해 월터.J.옹(Walter J. Ong, 1912 ~ 2003)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Orality and Literacy>의 내용을 연상하게 된다. 트위터의 구술성과 책의 문자성. 이제는 이미지 중심의 인스타그램(instagram),이 SNS의 대표주자이고, 많은 정보가 유튜브(YouTube)를 통해 유통되는 것을 보면 과학기술이 인류의 구술성을 회복시켜주는 면도 보게 된다. 문제는 소통이 주로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와의 단절은 심화되었다는 점이겠지만...


 모든 인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는 구술성과 또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지니고 있지 않는 쓰기라는 기술과의 사이의 상호작용은 마음의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개체발생적으로도 계통발생적으로도 분절된 언어로써 우선적으로 의식을 비추는 것은 구술언어다.(p265)... 쓰기는 분절과 소외를 끌어넣는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한층 고차원적인 통일도 끌어넣는다. 쓰기는 자기 자신이 아는 감각을 강화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한층 의식적인 상호작용을 북돋는 것이다. 쓰기는 의식을 끌어올린다.(p266)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中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백낙청 회화록 7>은 공통적으로 2014년부터 2017년 가까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 지식인의 생각을 걸러지지 않은 언어로 또는 정리된 언어로 만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를 통해 당시의 구체적 사건을 확인하고 자신의 감정도 다시 느낄 수 있고, <백낙청 회화록 7>을 통해 시대를 보다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두 글들을 통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서 우리 의식을 통합하는 수단임을 확인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우선 2013년에는 설혹 우리가 이겼더라도, 정권교체가 됐더라도 새로운 체제를 만들 준비는 안되었었다, 이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문재인씨가 아무리 무능하고 미숙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낫게 했을 거 같아요. 다만 한가지, 그들보다 낫게 한다는 걸 아무도 몰랐을 거에요... 박근혜 대통령을 안 겪었다면 저 진보라는 자들 맡겨놓았더니 또 죽 쑤는구나, 박근혜가 되었어야지, 이런 여론이 퍼져서 오히려 2017년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대승을 하고 더 장기적인 한나라당 내지는 새누리당 정권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p317) <백낙청 회화록7> 中


PS. <백낙청 회화록>에 대해서는 한국현대사와 함께 틈틈히 정리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경험하지 않은 과거보다 사회를 인식할 수 있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4권 이후 부터가 상대적으로 읽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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