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종에게만 세계 헤게모니를 쥐어 주고 다른 인종, 특히 니그로 인종은 백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 만족하거나 모든 것을 정복하려고 행진하기 전에 죽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암묵적인 그러나 명료한 현대 철학을 받아들인다. 이 철학은 바로 아프리카 노예 무역과 19세기의 유럽 확장이 낳은 산물이다.(p232)<니그로> 中 


  W. E. B. 듀보이스 (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 ~ 1963)는 <니그로 The Negro>에서 흑인은 역사와 문화, 능력이 없다는 20세기 초반 미국사회의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면서 인종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인 듀보이스에 의하면 인종주의 편견의 기원은 제국주의 시대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아프리의 베냉 지역에 존재했던 다호메이(Dahomey) 왕국이다. 


[지도] 19세기 다호메이 왕국(출처 : https://www.britannica.com/place/Dahomey-historical-kingdom-Africa)


 흑인에 반하는 현대인의 이른바 '본능적인' 편견은 무엇이라 말인가? (p139)... 우리는 피부색에 대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원인을 신체나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현대 니그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에서 찾아야 한다.(p141) <니그로> 中


  17세기 다호메이왕국의 번영은 노예무역의 활성화와 궤를 같이 한다.  다호메이 왕국은 지리적으로 베냉 협로라는 한계로 인해 국가 발전에 제약을 가지고 있었으나, 같은 시기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1664년까지 후추, 금, 상아가 기니 지역의 주된 무역품으로 다호메이 왕국이 무역에서 소외되었다면, 1672년 이후에는 노예가 새로움 무역품으로 떠오르면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다호메이 왕국의 노예무역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Karl Polanyi, 1908 ~ 1964)의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Dahomey and the Slave Trade: An Analysis of an Archaic Economy >의 내용을 따라가 보자.

 

 다호메이 사회를 커다란 긴장으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건은 경제영역에서 벌어졌으며, 또 그 시작은 외부에서 비롯되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번창하기 시작하자 노예무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것이 다호메이에 바로 인접한 기니 해안을 강타하였던 것이다. 이 시간이 낳은 충격은 아주 독특하였다.(p61)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中


 플랜테이션 농장은 엄청난 이윤을 낳아주었고, 서인도제도는 왕실과 최고위 귀족들의 사적 재산이 되었다. 이제 이를 위해 노예를 조달하는 것은 '절대적 필요'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농장에서 거두어들여야 할 작물의 양은 엄청났으며, 이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노예노동이 꼭 필요했다... 다시 말하자면 국제경제에서의 변화가 큰 물결을 일으켰고, 이 물결이 대서양을 건너서 불과 20마일 길이로 펼쳐진 아프리카의 어느 해안 지역에 몰아닥친 것이다.(p63)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 中


 칼 폴라니는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에서 지리적 어려움과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시작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다호메이 왕국이 노예제도를 통해 축적된 부를 활용하는가를 보여준다. 노예무역과 인신공양으로 악명높은 다호메이 왕국에 다소 우호적인 칼 폴라니의 시각에 대해 비판점도 많지만, 이에 대해서는 책의 리뷰로 넘기 여기서는 간략하게 내용만 취하자. 다시 <니그로>로 돌아가서, 듀보이스는 노예확보를 위한 인간사냥이 가족과 국가의 약화라는 참혹한 결과가 아프리카에 주어졌음을 지적한다.


 18세기 초 강력한 다호메이 왕국이 건설되었고, 지독한 전제 국가가 되어 19세기 초에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비슷한 왕국인 아샨티는 1719년에 정복을 시작해서 노예무역과 함께 발전했다. 이렇듯 서아프리카에서 국가 건설이 도시 경제를 대신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국가는 전쟁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인간 상품을 사고팔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장려했다. 토착 산업은 변화하고 와해되었고 가족의 유대와 정부는 약해졌다.(p154) <니그로> 中


 아프리카 대륙에서 많은 이들이 서인도 제도로 끌려가 사탕수수 농장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칼 마르크스(Karl Marx , 1818 ~ 1883)가 <자본론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에서 설명한 시초축적의 역사적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서인도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모습은 또다른 형태의 인클로저(Enclosure)운동으로도 비춰진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애서 '사탕수수가 사람들을 쫓아낸다' 로.


[그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인(출처 : https://www.africanexponent.com/post/10712-the-bitter-history-of-african-slaves-and-sugar-production)

 

 시초축적의 역사에서는, 자본가 계급의 형성에 지렛대로 기능한 모든 변혁들은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들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농업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것은 전체 과정의 토대를 이룬다.(p981) <자본론 1-(하)> 中


 <자본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럽 자본주의 발전 중 일정 부분은 아프리카 부의 강제이전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강제이주된 이들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의 제도 대신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가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에서 설명한 노예제의 산물로서의 '일부다처제'를 강요받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수탈과 가족제도의 붕괴는 이들을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로 안내한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노예제도가 사회에 끼친 영향 가운데 가장 심각한 상황은 일부다처제의 니그로 가정을 새로운 형태의 일부다처제로 대체한 것이다. 니그로 가정은 이제 보호받지 못하고, 덜 효율적이며, 덜 문명화된 새로운 형태의 일부다처제로 대체되었다.(p187) <니그로> 中

 

 사실상 일부다처제는 명백히 노예제의 산물이었으며, 몇몇 예외적인 지위를 가진 자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일부다처제는 부자와 귀한 신분의 특권이며 주로 여자 노예의 구입을 통해 충원된다. 인민 대중은 일부일처제의 생활을 한다.(p72)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6 -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 > 中


 이외에도 듀보이스는 <니그로>에서 노예제도로부터 시작된 아프리카와 흑인의 수탈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듀보이스의 담담한 서술은 독자들에게 흑인이 무지한 존재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오해인지를 일깨운다.  <니그로>안에 담긴 메세지는 가볍지 않지만, 듀보이스는 무겁게 말하지 않는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하듯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아프리카, 빈곤, 인종 문제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니그로>는 좋은 사회과학 입문서라 생각된다. 


PS. 개인적으로 <니그로>에서 언급된 시초자본 문제와 관련해서, 실비아 페데리치 (Silvia Federici)의 <캘리번과 마녀 Caliban and the Witch>를 떠올리게 된다. 수탈의 대상을 아프리카인이 아닌 여성으로 대치시켜 노예제도 이후의 자본주의 역사를 바라본 것이 <캘리번과 마녀>라 여겨진다. 이는 노동 문제, 인종 문제, 종교 문제, 성 문제 등 많은 문제가 '평등 平等'이라는 주제의 서로 다른  현상(現象 phenomenon)이라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했던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p272)... 노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의 레파토리에서는 마녀사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화와 기독교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으로 인해 식민화된 사회의 신체에 획실히 이식되어 피식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박해를 실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p341) <캘리번과 마녀> 中


 그들은 오늘날 발전의 맨 앞자리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위해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여성 해방, 세계 평화, 민주 정부, 부의 사회화, 인류애를 위하여.(p229) <니그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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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1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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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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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양식, 즉 다시 태어남의 부활양식을 나의 실존의 지평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나의 삶의 지평에 받아들이는 사건, 그 사건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기쁜 소식"이요, 유앙겔리온이다!(p42)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中


 도올 김용옥 교수는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이전 여러 권의 기독교 관련 서적을 낸 바 있다. 이를 먼저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저자는 <기독교 성서의 이해>(2007)를 통해 성서가 정경으로 확립되는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성서 무오설(聖書 無誤說)을 비판하며, <요한복음 강해>(2007)를 통해서 영지주의(Gnosticism)에 대항하는 인간화된 로고스(Logos)의 모습을 밝히는데 중점을 둔다. 공관복음과 관련하여 <마태오 복음>와<루카 복음>에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의  Quelle(Q자료)를 기반으로 <큐복음서>(2008)에서는 예수의 어록(가라사대 문헌)을 다루고 있고,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도마복음>(2010)에서는 어록 자료 중심의 분석을 수행한다. 


 저자는 <큐복음서>와 <도마복음>의 공통된 말씀 자료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저자는 성서 텍스트를 일종의 '무대장치'로 해석한다. 보다 극적인 복음 선포를 위해 성서의 자료들은 가공된 것이 많으며, 이 안에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인간 예수'가 아닌 '메시아 예수' 또는 '십자가 위에 못박힌 예수'의 모습이 사도 바오로에 의해 강조되면서 기독교 교리가 성립되었음을 <도올의 로마서 강해>(2017)에서 설명한다.


 마가복음은 인류사상 최초로 등장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 유니크한 문학장르이다.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선포하는 유앙겔리온의 선포자였다고 한다면, 마가는 예수의 삶을 선포하는 유앙겔리온을 창시했다... 전자가 예수의 십자가사건의 의미를 물었다면, 후자는 예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p73)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中


  이와 같이 정리한 기독교 사상 체계 위에서 저자는 드디어 <마가(마르코) 복음>(2019)에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저자는 <바오로의 편지(바오로 서간)>들 외의 복음서의 원형을 <마가 복음>에서 찾으면서, 이로부터 인간 예수의 모습을 찾아간다. 불트만의 성서신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안병무의 갈릴리 지평에서의 인간 예수를 찾아 최종적으로 우리 삶으로 가져오려는 12년에 걸친 저자의 노력을 우리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복음서의 끝이야말로 원점에서의 새로운 출발이다. 빈 무덤이야말로 1장 1절의 선포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빈 무덤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수님 말씀의 모든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다. 안병무는 예수의 삶이 노자가 말하는 물과도 같다고 말했다. 예수는 물과 같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무화 無化시킴으로써 모든 생명의 구주가 되었다고 했다. 마가의 마지막 빈 무덤이야말로 노자가 말하는 우주적인 "빔", 곧 모든 생명의 근원, 끊임없이 회귀하는 반자도지동 反者道之動의 위대한 생명력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p605)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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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4: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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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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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보충할 목적으로 조선인 약 70만명과 중국인 약 4만명을 일본 본토와 사할린 등지로 강제연행하여 광산 등지에서 혹사시켰기 때문에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 일본은 다수의 조선인 여성과 점령지 여성에게 군 관리하의 위안부생활을 강요했는데 그중에는 강제연행되거나 속임수로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p528) <새로 쓴 일본사> 中


 중국인 포로들은 더욱 형편없는 보상을 받았고, 동남아시아로 끌려간 노무자들의 숫자는 추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험지역에는 '근로보국대'로 징발된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 끔찍한 이야기에다 '위안부'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최근에 추가되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강제로 일했다. 제국군대는 풍기문란을 막고 성병을 줄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관리했다. 위안부의 모집은 보통 인신매매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졌고, 규슈의 궁핍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여성이 차출되었다. 규정상 강제모집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인의 수가 늘어나고 전선이 확대되자 정상적인 공급원에만 의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직업적 매춘부보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지원했거나 강제로 끌려온 여성의 수가 많아졌다.(p972)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일본의 극우주의 역사책들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을 '진출'로 정당화하고,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러한 역사왜곡 안에는 이들이 저지른 참상은 은폐되고, 이러한 사관(史觀)으로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가 집필되는 점은 우려할만한 지점이다. 그렇지만, 강제동원과 정신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은 일본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상을 역사의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역사 안에 포함하는 일본 역사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일본 내에서 이를 부정하고 담지 않는 역사서가 아직은 훨씬 더 많지만. 

 

 백지에 쓴 문장을 소리 내 읽던 그녀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말을 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엄마가, 엄마가 가장 갖고 싶어.(p153)' <한 명> 中


 그녀는 울고 싶은데 울음이 안 나온다. 아귀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목을 늘어뜨려도 눈물 한 방울 안 난다. 자매들이 죽었을 때도, 오빠가 죽었을 때도 그녀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까, 친인척들은 흉을 보았다. 독해서 시집도 안 가고 평생 혼자 살더니만 울지도 않는다고. 그녀는 너무 지독하게 살아서 눈꺼풀을 쥐어뜯어도 눈물이 안 나는가 보다 했다. 평생에 걸쳐서 두고두고 울 걸 소싯적에 다 울어버려서 그런가 보다고.(p36) <한 명> 中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기가 막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피해자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2차 가해였으리라.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한 이들이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희(정의기억연대 전신)이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이들의 공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많은 위안부가 사망했고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문제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국, 중국, 심지어 네덜란드 여성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위안부문제는 국제문제로 비화되었다. 일본정부가 (외양상으로는 비정부기구를 통해) 손해배상과 보상을 위한 기금마련에 나선 것을 보면 희생자들의 불만이 정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p973)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최근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윤미향 이사장과 정의기억연대와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30년 동안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 이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끌려간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 아픈 역사가 반복되었다면, 정의기억연대가 있어 공론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功)을 생각한다면, 정의기억연대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을 이제는 우리가 할 차례라 여겨진다.

 

 남자들은 걸핏하면 국가입네 민족입네 거창하게 얘기하지. 강제로 끌려가서 당한 우리만 죄인이고. 불문곡직하고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야. 우리가 정신대로 끌려갈 때 조선 남자들은 뭘 했는고?(p99)... 왜정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 여자들이 십 수만 명이래. 위안부로 등록한 할머니 이백 몇 십 명을 뺀 수많은 할머니들은 한을 안고 소리 소문 없이 죽거나 외롭게 살아가것제. 그넘들이 끌어다가 쓰고 싶으면 쓰고 아프고 병들면 처분해 버리고... 정말 골병들었다.(p100) <나비의 노래> 中


PS. 이들이 저지른 회계부정이 있다면 엄중하게 판결해야 할 것이다. 다만, 회계부정이 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가족간 취업특혜가 있었다면 KT 채용비리와 비교하고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과 정도를 따져 형평성있는 판결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런 판결이 나올 때까지 뒤늦게나마 정의기억연대 정기 후원을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세 번째 차원은 민주적 담론이다. 진정한 집단적 행위는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만약 시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좋은 생각들이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에게 말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진정한 형태의 자기-정부를 제공할 수 없다. 만일 공공의 담론이 검열 때문에 장애를 받는다면, 또는 각각의 편이 다른 편이 말하는 것을 단지 왜곡하거나 묵살하기 위해서 고함을 치거나 비방하는 시합으로 타락한다면 어떤 집단적 자기-정부도 없고, 어떤 종류의 집단적 사업이라는 것도 없으며 오직 수단만 다른 전쟁으로 간주되는 투표만 있게 된다.(p555) <자유주의적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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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0-05-20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의연에 대한 겨울호랑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0 20: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작은 실수 하나로 정의연의 성과와 노력 전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치활동 정지, 언론/출판/보도/방송의 사전검열, 대학에 대한 휴교조치, '북괴'와 동일한 주장이나 용어사용 및 선동행위 금지 등을주요 내용으로 하는 계엄포고 10호를 발포한 신군부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던 김대중, 김종필 등을 체포하고 김영삼을 가택연금했다. 많은 재야인사들을 체포했으며, 신현확(申鉉碻) 내각을 사퇴시키고 새 내각을 구성했다. 한편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났고, 진압을 위해 파견된 계엄군이 이를 과잉진압하여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가담하고, 무기를 탈취한 '시민군'이 형성되어 약 10일간 광주시 전체가 무정부상태로 되었다가 계엄군이 다시 투입되어 무력으로 시민군을 섬멸한(5.27)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났다.(p310) <고쳐 쓴 한국 현대사> 中


 내일이면 신군부 쿠데타 및 계엄령 확대에 항의하며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그렇지만,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문제들처럼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사건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간략하게 나마 5.18 민주화운동 중 가장 희생이 컸던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내용을 <고쳐 쓴 한국 현대사>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장군은 자신의 쿠데타를 완수하고자 했다. 계엄령 확대를 선포하고 대학을 폐교하고 입법부를 해산하고 모든 종류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5월 17 ~ 18일 야밤에 수천 명의 정치지도자와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신이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이런 비상조치와 함께 전두환은 광주항쟁을 터뜨렸다.(p540)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12.12 군사반란 이후 계엄령 확대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자 신군부는 대응 수위를 높이면서 계엄령을 확대해간다. 이와 함께 신군부는 시위의 강경진압을 위해 공수부대의 훈련(충정훈련)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5월 18일 16:00를 기해 광주에 진입하면서 유혈참극은 시작되었다.


 5월 18일 광주 거리에 약 500명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계엄령 철폐를 요구했다. 약물을 복용했다고 여겨지는 정예 공수부대가 이 도시에 도착하여 학생, 여성, 어린이 가릴 것 없이 길을 막는 사람은 누구든지 무차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한 여학생은 시청광장 근처에서 공수대원의 총검에 가슴이 찔린 채 군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화염방사기로 얼굴이 지워져 버렸다. 5월 21일에 이르러서는 광주지역의 수십만의 시민들이 군인들을 도시에서 몰아냈고 그후 5일간 시민들의 수습대책위원회가 이 도시를 통제했다.(p540)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5월 21일 전남도청 집단 발포 이후 시민군들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 무장을 시작했고, 일부는 아시아자동차에서 장갑차량을 탈취하고 광주시를 장악했다. 이들 광주 시민에 의한 자치는 5월 27일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이전까지 유지되었지만,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하면서, 광주민주항쟁은 처참하게 끝나게 되었다. 


 헬리콥터의 확성시에서 광주시민들에게 5월 27일 새벽에 20사단이 광주시로 진입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경고 방송이 있었다. 새벽 3시 군인들은 사격을 하며 진격하여, 인근지역의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를 내려놓기를 거부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다. 하지만 이 부대들은 군율을 지켰고 신속하게 도시를 장악했다.(p5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 5.18 민주항쟁은 40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논란이 지만원 등이 주장하는 '북한군 개입설'인데, 이러한 근거 없는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시민군들이 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한 행동을 위법행위이며 폭동으로 인식하는 인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국가 내에서 '합법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인 군대(軍隊)가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행위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저항을 우리는 폭동이라고 봐야할 것인가.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어떠한 권리자든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즉 그들이 권리를 주장해야 할지, 적대자에게 저항해야 할지, 혹은 투쟁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권리를 포기해야 할지의 문제다. 여하튼 누구도 이와 같은 결심을 그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 결심이 어떻게 내려지든 두 가지 경우 모두 희생이 따른다. 한 경우는 권리가 평화에, 다른 경우는 평화가 권리에 희생된다. 이러한 관계에서 볼 때 문제는 사람이 처해 있는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참을만한 희생인가 하는 것으로 집중된다.(p28) <권리를 위한 투쟁> 中


 루돌프 폰 예링 (Rudolf von Jhering, 1818 ~ 1892)는 <권리를 위한 투쟁 Der Kampf ums Recht>에서 권리를 침해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제시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불법에 대한 저항은 권리자의 의무'이다.  이를 민주화 운동에 적용해 본다면,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저항은 주권자의 의무가 될 것이다. 평화주의자인 예닝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에 의한 투쟁인 소송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바로 눈 앞에서 착검을 하고 조준사격을 하는 상대를 두고 법적인 투쟁을 말하는 것은 한가로운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광주시민들의 자치 기간 동안 큰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이들의 투쟁이 단순한 폭동이 아님을 반증하기에 충분하다 여겨진다.


 내면의 소리는 그에게 속삭인다. "너는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치 없는 투쟁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명예, 법감정이며 자기존중이기 때문이다."고.(p31)...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인격 자체에 도전하는 비열한 불법에 대해서, 다시 말해서 실행방법에서의 권리의 경시는 물론, 인격모독의 성격을 띰으로써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의무다. 그와 같은 저항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그 저항은 도덕적인 자기보존의 명령이며 사회에 대한 의무다. 왜냐하면 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p32) <권리를 위한 투쟁> 中


 그렇지만, 아직도 5.18 민주화운동에는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너무도 많다.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부터 헬기 기총소사 문제, 미군과의 관련성 문제, 숨겨진 사망자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남아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진행형임을 다시금 느낀다...


  시민 수습대책위원들은 미국대사관에 개입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위컴장군에게는 5월 22일 한국군 20사단을 DMZ의 임무에서 면제하도록 허용하는 일이 맡겨졌을 뿐이다. 미국이 전두환의 부대를 거부하거나 광주시민의 편을 든다면 그것은 19140년대 이후 유례가 없는 내정간섭이었을 것이므로 광주시민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책임은 면할 수 없었고 전선부대 이탈을 허용함으로써 카터의 인권정책은 난자질당한 꼴이었다.(p541)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PS. 1979년 10.26사건과 12.12 군사반란 그리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까지 약 7개월의 역사 속에서 프랑스에서 일어난 1848년 2월 혁명과 루이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 1808 ~ 1873)의 쿠데타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의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 1871)을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프랑스에서의 내전>을 통해 다른 기회에 정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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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5-17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왠지 모를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즐건 휴일 저녁시간 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20-05-17 20: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께서도 일요일 저녁 잘 마무리 하시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세요!^^:)

2020-05-18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재생하고 책을 읽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버린 요즘이다. 오늘도 유튜브 화면을 열자 여느 때처럼 추천 동영상이 여럿 뜬다. 무슨 근거로 내게 이런 자료들을 추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쳐다 본 동영상 하나에 눈을 좀처럼 떼지 못하게 된다. 'UP - Ppuyo ppuyo, 유피 - 뿌요뿌요, MBC Top Music 19970614'. 20년도 더 지난 이 동영상에 마음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처 의식할 사이도 없이 내 손은 동영상을 재생시켰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맛보고 느꼈던 감정을 나 또한 맛보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p89)...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에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p9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1997년 6월 14일 토요일.


 그날은 소속 대대로 배치된 첫 날이었다.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중에 위치한 대대에도 내려 중대로 이동했을 때, 부대의 열악한 환경에 매우 실망했었다. 첩첩산중에 위치한 대대에서도 중대는 뒷편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당시 중대 건물이 신축공사 중이었기에, 중대원들은 부대 내 창고를 막사로 수리해서 임시로 내무반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고문을 떼내어 임시로 만든 출입문, 유리창 대신 비닐로 막은 유리창, 야외에 간이로 설치된 재래식 화장실 등등. 건물 밖에서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섰을 때는 마침 개인 정비 시간이었고, 모두들 내무반과 개인 정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건물이 창고 건물이었기에 통풍은 잘 되지 않아 6월 장마철에 그 안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고참들로 보이는 병장 몇 명은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음악이 바로 MBC <인기가요 50>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UP의 <뿌요뿌요>였다. 그리고, 이어 4시 25분 을 가르키는 벽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의 냄새가 유튜브의 노래에 맞춰 되살아나는 느낌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를 떠올리게 된다.


  유튜브에서 재생되는 오래전 노래와 영상은 나를 23년 전 신임 소위시절의 나로 데려갔고, 이로 인해 당시 내가 느꼈던 모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감정을 느낀다. 오래 전 시간이라 모든 것을 재생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어느 한 때와 지금의 내가 UP의 노래를 통해 연결되는 이 느낌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도 느꼈을까. 잠시나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행복을 맛보면서, 다른 책을 꺼내든다. 과연 화자가 먹은 마들렌 과자는 <뿌요뿌요> 같은 맛이었을까는 물음과 함께.


 나는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무런 논리적인 증거도 대지 못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앞에서 사라지는 그런 명백한 행복감과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이 상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것을 다시 나타나게 하고 싶다.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똑같은 상태가 보이지만 새로운 빛은 없다.(p8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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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6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20-05-16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뿌요뿌요˝를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5-16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모처럼 옛 생각을 해 본 날이었습니다^^:)

책식주의 2020-05-27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마들렌과 뿌요뿌요라니요😍 아련하고도 귀여운 조합이네요💕 저 예전에 알라딘 굿즈로 받은 마들렌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 ˝프루스트 수면양말˝ 갖고 있는데🧦 마들렌 수면양말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면 딱 좋겠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20-05-27 14: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식주의님. 잘 몰랐는데, ˝프루스트 수면양말˝이 있었군요. 굿즈로 나왔으니 예쁘게 나왔을 것 같네요. 멋진 조합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면 양말을 신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 영영 잠들 것 같아 맨발로 읽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