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쉬, 내가 너에게 숨겨진 사실을 말해주리라. 신들의 비밀을 네게 말해주리라! 너도 분명히 알고 있는 슈루파크라는 도시가 유프라테스 강둑에 있었지. 정말로 오래된 도시였고, 그곳에서 신들이 살고 있었다네. 위대한 신들이 사람에게 홍수로 벌을 주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그들의 아버지 아누가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지. 용감한 엘릴은 그들의 고문관이었으며, 닌우르타는 그들의 의전관이었고, 엔누기는 그들의 운화감독관이었는데, 지혜의 왕자 에아가 그들과 함께 맹세했네." _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p293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 서사시 Epic of Gilgamesh>에는 대홍수(大洪水)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노아의 홍수'의 원전으로도 널리 알려진 <길가메쉬 서사시>이지만, 사실 세계 여러 지역에는 서로 다른 전승의 대홍수 신화가 전해진다. <길가메쉬 서사시>가 수메르 문명에 전승되는 이야기라면, 중국 문명에는 우왕(禹王) 이야기가 있다. 이들 지역의 대홍수 신화를 문명(文明)사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관개 농업과 중앙권력이 핵심어가 될 듯하다. 수로(水路)를 활용한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구 밀집과 이 과정에서 탄생한 거대 권력(종교적, 정치적)에의 복종이 이들 신화 안에 담긴 메세지는 아닐까.

 

 초기 수메르 도시국가들의 핵심 경제활동은 관개와 농업이었다. 도시국가들마다 수백 명의 농부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신들의 이름으로 소유하거나 임대하거나 물려받은 광대한 땅에서 일했다... 관개시설과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격렬하고 예측하기 힘든 홍수는 도처에서 맞닥뜨리는 가공할 위험이었다. 메소포타피아 신화에 나타나는 반쯤 신적인 왕의 지위와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은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켜서 인간세계가 모두 파괴되고 물에 덮인 카오스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데서 비롯했다. 이 지역의 홍수 신화는 유일하게 사전 경고를 받은 가문이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_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p59


 전통적으로 중국 황허 문명의 선조는 우왕(禹王)으로 알려져 있다. '치수(治水) 기술자'인 우왕은 역사 기록 이전 시대에 황허 강 유역 거준민들을 괴롭히던 홍수를 잘 다스린 공로로 권력을 잡았다. "물을 다스려서 대수로 속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서" 이 세상을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에 대한 답례로 부족 연합은 그에게 지휘권을 양도했다... 치수는 인간의 수기(修己)와 자연 질서와의 관계의 올바른 원칙에 대한 철학적 논쟁의 틀이 되었다. _스티븐 솔로몬, <물의 세계사>, p128


 다만, 이들 신화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노여움으로 발생한 대홍수를 피하지만, <산해경> 속에서는 적극적으로 둑을 쌓아 막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이 아닐까. 이를 소극적 대처에서 적극적 대처로의 전환, 문명화(文明化)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권력층을 제사장 계층으로, 황하 문명의 권력층을 기술관료 계층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먼 옛날 우트 - 나트슈팀이 슈루파그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을 때, 인구를 줄이려고 애쓰던 신들은 지구에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엔키 신은 그 계획을 인류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갈대집 벽에 대고 말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계획을 폭로했다. "갈대집아, 갈대집아! 벽아, 벽아! 잘 들어라. 갈대집아! 귀를 기울여라. 벽아."...  지시는 그대로 실행되었다. 우트 - 나피슈팀의 방주는 둘레가 엄청나고, 내부가 6층으로 되어 있는 정육면체였다. 마침맞게 배가 완성되어 우트 - 나피슈팀의 일가친척과 모든 생물의 씨가 배에 실렸다.... 바다도 고요해지고, 호수도 잔잔해졌다. 인간은 모두 진흙으로 돌아갔다. _<초창기 문명의 서사시 : 메소포타피아 신화>, p88

 

 그때 갑자기 기주의 동도(東都)에서 큰 물난리가 나서 곤이 쌓았던 둑이 대부분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하여 넘쳐난 물 탓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요임금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애통해하며 순에게 말했다. "짐이 직접 순수를 해야 할 일이나 나이가 들어 위험하니 어쩔 수가 없소. 지금 그대에게 명하노니 대사농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고, 정말로 곤이 처리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천재지변에 의한 것인지를 명백하게 밝히도록 힘쓰시오."(p396)... 요임금 때 홍수가 하늘까지 차고 넘쳤다. 곤은 요임금의 식양(파종하지 않아도 저절로 곡물과 채소, 과일이 자라나는 흙)을 훔쳐 둑을 쌓아 홍수를 막고 요임금의 명을 듣지 않았다. 훗날 우가 요임금의 명을 받들어 최종적으로 영토를 구주로 나누고는 물난리를 가라앉혔다._예태일/전발평, <산해경>, p428


  자연재해를 신에 의탁하거나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막으려는 노력은 중앙집권 고대왕국으로 성장한 문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 문명에서도 이러한 대홍수 신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당시의 재난이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구적 재난 속에서 많은 이가 희생당한 사건들은 인류 문명에 치명상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은 약 2억 5천만년 전 페름기 - 트라이아스 기 사이의 대량절멸(Permian?Triassic extinction event)을 떠올리게 된다. 


 에콰도르의 안데스 지역에 사는 카나리족 인디오들에 따르면, 마법의 산이 개입한 덕분에 인류가 절멸을 면했다고 한다. 대홍수가 땅을 휩쓸자 두 형제는 서둘러 식량을 모아 저지대를 탈출하여 우아카이난 산봉우리로 피난했다... 물이 올라오면 우아카이난 산이 그보다 더 높아져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p34)... 페루의 해안평야와 칠레 북부에 사는 치무족 인디오들의 신화에서는 한 줌밖에 안 되는 남녀가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은 가축을 데리고 식량을 짊어지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산꼭대기 바로 밑에 있는 춥고 눅눅한 동굴 속에 숨었다. _토니 앨런 외, <사라진 황금왕국 : 잉카 신화>, p36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種)의 80 ~ 95%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페름기 말의 대멸종. 마이클 J. 벤턴 (Micheal J. Benton)의 <대멸종 When Life Nearly Died: The Greatest Mass Extinction of All Time>에서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시베리아 트랩 분출 설을 채택한다. 이 설(說)에 따르면시베리아 트랩 분출과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가져온 지구온난화가 이 참상의 직적접인 원인이 된다. 이산화탄소 증가와 지구온난화. 오늘날 우리 문명에서 사용되는 화석 연료의 부정적 효과와 페름기 말 대멸종의 원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한층 심각하게 다가온다.

 

 폴 위그널은 중심이 되는 위기를 시베리아 트랩 분출인 것으로 보았다. 세계적인 파괴현상은 시베리아 트랩 분출 동안에 발생한 각기 다른 기체들 때문이었다. 분출이 지속된 전체 기간 동안 이 기체들은 산발적으로 대기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수없이 분출이 거듭되면서, 물리적 세계와 생명 사이의 모든 정상적인 상호작용이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참담한 사태로 이어졌을 것이다. 시베리아 트랩 분출 때 뿜어져 나온 네 가지 기체가 주범일 것이다. 이산화탄소 증가효과는 장기간에 걸쳐서 미쳤다. 곧,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서 곧바로 지구온난화와 무산소화로 이어졌고, 이것이 수십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 매번 분출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유입되었을 테고, 결국 어떤 정상적인 되먹임 체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기체수화물의 배출은 그 참상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이산화황도 배출되었다._마이클 J. 벤턴, <대멸종>, p384


 2020년 여름. 유난히 계속되는 여름 장마철로 8월 무더위도 거의 경험하지 않고 입추(入秋)를 맞이했지만, 대신 심각한 물난리를 겪고 있다. 며칠 사이 수백 mm씩 기록되는 폭우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내리면서 저절로 과거 대홍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홍수의 역사 속에서도 인류 문명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렇지만,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빚어진 기후변화로부터 대홍수가 시작된다면, 우리 역시 페름기 말의 대멸종과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페름기 말 대멸종 이후에도 살아남은 종들은 꾸준히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트리아스 기 이후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들이 계속 번성했다는 사실을 통해 기후변화가 발생해서 현세 이후 대멸종이 일어나도 지구상에 다른 생명체가 다시 번성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인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가이아(Gaia)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차별하지 않을까.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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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08-09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후 변화 기후 변화 말만 들었지 정작 한반도에서 이렇게 직격탄을 맞고 보니 무섭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이런 집중호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의 핵심은 자동차, 비행기 매연보다도 거의 대부분은 가축 , 특히 소의 방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육식을 줄이는 것이 기후 변화를 지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겨울호랑이 2020-08-09 22:4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몇 년 전 겨울에 영하 십 도 아래의 추운 날이 며칠씩 이어지거나, 봄/가을이 짧아지는 변화를 직접 체감할 정도로 변화된 것을 보면, 환경오염이 주범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곰곰발님 말씀처럼 우리 생활의 변화, 그 중에서도 식습관의 변화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70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육식으로 살아간다면, 균형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울 지경이니 말입니다...

나와같다면 2020-08-10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사회에 대한 촉수가 예민하신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글에서는 예민함과 섬세함 그리고 타자에 대한 sympathy 그리고 더 좋은 공동체에 대한 깊은 믿음이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8-11 06:45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딸아이가 있어서인지,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주고 싶고, 부족하나마 그쪽으로 힘을 보태는 것이 제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모자란 글이 나와같다면님께 그처럼 다가갔다면 참 다행입니다. 오늘 하루 잘 마무리 지으세요!
 

며칠 전 딸아이가 방학을 맞아 수수께끼 책을 찾길래 점심시간 즈음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 가로수길점에 들렀습니다. 서점에는 마침 예쁜공주 시리즈로 수수께끼 책 뿐 아니라 의성어 & 의태어, 한자, 속담 등의 책이 있어 한꺼번에 장만했습니다. 여러 권의 책선물을 마련하고 나름 좋아할 아이의 모습을 그리던 중 때마침 문자가 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기 책을 샀다는 말에 좋아서일까요. 빨리 들어오라는 딸아이 말에 웃음이 났지만, 오늘은 회사일이 있어 아쉽게도 늦게 들어가야 합니다... ㅜㅜ 회사일을 마무리하고 들어가니 선물이 좋아서일까요. 보자마자 아빠 손을 잡아끌고 편지와 안마쿠폰을 전해 줍니다^^:) 덕분에 야근의 피로를 바로 씻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에서 나오는 말처럼 작은 말 하나가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아이의 편지를 통해 실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한동안 기쁘게(?) 야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자신을 돌아봅니다.

오늘 딸아이가 제게 보여준 관심과 사랑을 저는 평소에 보여줬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학교생활을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숙제 하는 아이에게 저는 얼마나 격려의 말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부족한 제 자신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밤은 기쁘면서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이 일방의 교육이 아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커간다는 사실도 더불어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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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07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행복할 때인 것 같아요. 아버지로서.
맘껏 즐기세요.
아이들은 빨리 커 버린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07 17:51   좋아요 0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지금 함께하는 이 시간에 미련이 없도록 보내려 합니다.^^:)
 

 

 <한국 주거의 사회사>, <한국 주거의 미시사>, <한국 주거의 공간사> 총 3권의 책으로 구성된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근대 이후 양식 변화를 조망한 책이다. 여러 명의 저자 중 유일하게 모든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저자 전남일 교수는 책의 구성을 [그림]과 같이 설명한다.



                   [그림]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구조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최근 법률 개정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들춰보게 된다. 역사(歷史)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부동산 문제, 그 중에서도 아파트 문제의 기원은 무엇일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세 권의 책을 통해 아파트 문제의 기원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아파트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욕구의 대상, 도시 생활의 총아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부터이다.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과 간소함은 단연 중산층 핵가족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특징으로 다가왔다.... 고급재료와 시설/설비로 호화롭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는 서구식 생활을 갈망하고 주거를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고 싶은 중산층의 욕구를 잘 반영했다.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46


 오늘날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만큼 많은 아파트가 전국에 지어졌지만, 처음부터 아파트가 인기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당시 서구식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에게 아파트는 낯선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모델 하우스'라는 새로운 판촉전략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드라마와 CF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모델하우스는 70년대 중산층에게 새로운 워너비(wanna be)가 되었다. 마치 80년대 후반 my car 열풍으로 인한 자가용이 폭발적 증가가 되었던 사실을 연상시키는 마케팅의 성공은 아파트 수요를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파트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는 마케팅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몇몇 사람들은 단독주택과는 달리 동일 지역에 같은 형태로 많은 양이 동시에 공급되는 아파트의 시장성에 주목하게 된다. 기존의 단독주택이 수공업 제품이라면 아파트는 공장제 제품이었고, 공산품으로서 아파트의 특성에 주목하면서 아파트는 이제 재테크 수단으로 용도가 변경된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아파트 사재기로 돈을 벌었다는 부유층 복부인들의 이야기가 연일 대중매체를 장식하면서부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갑절로 불어나는 아파트 가격은 아직 막대기 하나 꽂지 않은 황량한 벌판으로 사람들을 유혹했고 복덕방에는 웃돈을 주고 청약 통장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들에게 아파트는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었다.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48


 아파트가 단순한 거주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자, 수요량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시장은 균형을 잃어버렸다. 아파트에 대한 높은 수용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건설회사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 이들은 70년대 개발 시대를 맞아 서울 등 대도시에 많은 양의 아파트를 공급하여 해외의 중동건설 붐과 함께 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기서 뜻하지 않은 정부의 개입이 일어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주택 시장은 공공 또는 민간 주도의 아파트, 집장수 집, 건축가가 설계한 일부 고급 주택, 무허가 주택 등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이러한 상황의 저변에는 모두들 집만 지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서울의 아파트 분양 신청률은 40 ~ 70 대 1에 이르는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아파트 가격은 날이 갈수록 급등했다._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p259


 당시는 주택복권을 발행할 정도로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절실하던 시기였기에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결과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성냥갑의 건물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 한국 대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향'에 대한 선호도 영향을 미친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되자 1977년 정부는 주택청약제도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를 본격 시행했다.(p260)... 분양가 규제는 투기 조장 외에도 여러 부작용을 초래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작용은 도시가 획일화된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_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p261

 

 1970년대 중반, 같은 판상형 주거동이면서도 폐쇄적인 클러스터를 이루는 ㅁ자형 배치의 잠실아파트단지가 처음으로 계획되었지만 남향선호라는 거주자들의 요구에 밀려 더는 발전된 형식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무미건조하고 획일적인 주거동과 남향배치는 한 단지 안에서, 한 지역에서, 그리고 지역을 넘어서 반복/재생산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절정을 이루었다.(p274)...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상황에서는 상품의 물량이 많을수록, 그리고 대규모일수록 큰 이윤이 남는다는 '규모의 경제논리'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단지계획뿐만 아니라 주거동 계획과 평면계획도 법적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용적률을 달성해야 한다는 경제적 목표에 의해 좌우되었다._전남일, <한국 주거의 공간사>, p275


 또한, 주변 건물과 구별되는 고층 건물과 단지 내 생활권을 조성하는 아파트 단지의 특성은 아파트 단지와 주변 지역을 단절시켜, 아파트에 사는 새로운 부르주아(bourgeoisie)라는 계급을 탄생시켰다. 같은 지역에서도 춘추(春秋)시대의 국인(國人)과 야인(野人)이 구별되듯 아파트 단지는 지역민을 갈라놓았고, 같은 생활권역에서 비슷한 생활수준을 가졌다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동질감은 특히 아파트 매매 시 가격을 단합하여 자산가치를 지킬 때 잘 나타난다.


 마포아파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로 등장한 이후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계획원리를 지배한 것은 근린주구론(Neighbourhood Unit)이다. 하나의 단지는 독립 생활 환경으로서 그 안에서의 완벽한 편리함을 추구했고, 이렇게 출발한 개념은 '단지 내 편리한 생활'이라는 아파트 생활의 대명사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아파트단지는 외부로부터는 폐쇄적인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단절된 공간구조를 더욱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한편으로 중산층 선민의식이라는 아파트 거주자의 사회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었다._전남일, <한국 주거의 공간사>, p273


 수천 년에 걸친 한국 주거의 역사에서 최근 나타난 아파트의 역사는 극히 짧다. 그렇지만, 이전에 나타난 주택들이 대체로 실용성, 안전성 등 주거 목적이 강조되었다면, 상품 가치가 강조된 아파트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아파트 문제는 '아파트 = 재산'이라는 인식으로 재산 또는 신분상승이라는 수직적 욕망과 좋은 거주 환경 확보라는 수평적 욕망이 융합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부동산 문제의 근원을 찾아보면서 해결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 주거의 사회사, 미시사, 공간사의 세부 측면은 아파트라는 주제와는 별도로 리뷰에서 살표보도록 하고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성장기 였던 1970년대에는 전세 끼고 집(아파트)을 넓혀 가는 것이 보편적인 재테크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주택이 남아도는 저출산-고령화시대에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여의도 시범아파트 24평에 살다가 80년인가에 신반포 35평 새 아파트로 이사 갔어요. 한 4년 살다가 개포동 우성아파트로 이사했고요. 47평인가? 저는 거기 살 때 결혼해서 분가해서 살았어요. 어머니는 그곳에서 한 7 ~ 8년 살다가 분당 신도시에 입주할 때쯤 개포동 아파트 팔고 60평 아파트를 사셨죠. 지금은 한 3년 전에 수지 80평 아파트를 사서 저희 식구랑 함께 살고 계셔요. 돌이켜 보면 바로 아파트 갈아타기였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재산도 많이 불리셨을걸요?_ 전남일, 양세화, 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 p152


 과거 강남 개발이 거의 완료되던 80년대 말에 지금의 법조단지로 조성된 부지에는 꽃동네가 있었지만, 이들은 강제철거를 당한 후 멀리 떠나야 했다. 이처럼 철거민들의 눈물과 한(恨)위에 세워진 서초동 법조단지. 오늘날 법원과 검찰청이 위치한 이 곳을 바라보면서 '민(民)위에 군림하는 법가(法家)'라는 현실은 어쩌면 태생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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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3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3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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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증식과정에서는 총자본의 일부만이 기여하지만, 노동과정에서는 총자본이 소재적으로 참가한다... 잉여가치가 총투하자본의 산물이라고 여겨질 때, 잉여가치는 이윤이라는 전환된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정한 가치액이 자본인 것은 그것이 이윤을 얻기 위하여 투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품가치 = 비용가격 + 이윤으로 전환된다. 이리하여 우리가 여기에서 처음 대면하는 이윤은 잉여가치와 동일한 것인데, 다만 그것의 신비화된 형태일 따름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42 


 <자본론 3 :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conomie>부터는 이윤(利潤, profit)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가 <자본론> 1권과 2권을 통해 잉여가치가 가변자본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면, 3권에서는 잉여가치의 실현은 상품의 형태로, 총자본에 대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오해는 가변자본을 실현시키는 수단인 생산수단의 소유가 자본가에게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잉여가치'라는 본질(本質)대신 '이윤'이라는 현상(現象)만을 보게 된다. 


 자본의 가변부분만이 잉여가치를 창조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다른 부분들이 투하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불변자본을 투하함으로써만 노동을 착취할 수 있으며 가변자본을 투하함으로써만 불변자본을 가치증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은 동일하다. 이런 관념은, 그의 이윤의 현실적 크기가 가변자본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총자본에 비례하며, 따라서 잉여가치율이 아니라 이윤율에 의하면 규정되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49 


 잉여가치는 투하자본 중 가치증식과정에 들어가는 부분에 대한 증가분일 뿐 아니라 이 과정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증가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잉여가치는 소비된 자본에 대한 가치증가분일 뿐 아니라 생산에 투하된 모든 자본에 대한 가치증가분이기도 하다... 자본가에게 명백하게 된 것은, 이 가치증가분은 자기가 자기의 자본으로 수행하는 생산활동에서 생긴다는 것, 따라서 자본 그것에서 생긴다는 것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40


 마르크스는 이와 같이 '이윤'이라는 현상에 '잉여가치'라는 본질이 가려졌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이러한 은폐된 비밀은 주체의 변용(變容)도 가져온다. 자본가가 이윤실현의 주체가 되면서 이윤추구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들을 구체적으로 자본의 회전시간을 짧게하고, 노동투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불변자본의 투하량 증가)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업간, 산업간 경쟁(競爭)이 추가되면서 이윤은 평균이윤으로 수렴한다.


 이율윤(s/C=s/(c+v), 총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은 잉여가치율(s/v,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과 숫자상으로 다르지만, 잉여가치와 이윤은 사실상 동일한 것이고 숫자상으로도 동등하다 할지라도, 이윤은 역시 잉여가치가 전환된 형태며 잉여가치의 원천과 그 존재를 둘러싼 비밀이 은폐되고 모호하게 된 형태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56


 회전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 유휴자본은 자본 전체에 비하여 더욱 적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정들이 불변이라면 취득되는 잉여가치는 그만큼 더욱 커진다는 것 등이다.(p86)...  근대적 산업체계에서 고정자본을 증대시켜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은 노동일을 점점 더 연장하게 된 것이다.(p96)... 고정자본 사용의 절약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노동조건들이 대규모로 사용되는 것의 결과다. 노동조건들의 대규모 사용은 기계학과 화학의 발견들이 상품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서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며 언제나 필수조건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127


 마르크스는 개별 기업이 얻는 이윤은 사회적 평균이윤으로 수렴한다고 보았다.(이윤이 평균이윤으로 전환) 동종(同種)산업 내에서는 동일한 생산방식의 채용을 통해서, 이종(異種)산업에서는 사회의 부동자금(은행, 주식시장)의 이동을 통해서 평균이윤율이 형성하게 된다. 같은 산업 내에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초과이윤 발생 시 다른 기업들도 이를 차용하면서 이 기술은 보편화되면서 모든 기업의 이윤은 평균이윤율로 동일하게 된다. 반면, 다른 산업 내에서는 이윤율이 높은 산업이 있다면, 유휴자본은 새로 기업을 만들어 시장에 진입한다. 새로운 경쟁 기업의 출현으로 인해 생산량은 증가하고, 이윤율은 낮아지면서 이 역시 평균이윤율로 수렴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의 오해와 착각(자본은 이윤을 만들어낸다)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이윤율은 모든 생산분야에서 동일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윤율은 자본의 평균구성이 지배하는 평균적 생산분야들의 이윤율로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모든 다른 생산분야들의 이윤총액은 잉여가치의 총액과 동등하지 않을 수 없고, 사회적 총생산물의 생산가격의 합계는 가치의 합계와 동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p214)... 잉여가치가 이윤으로 분배되는 것은, 각각의 특정 생산분야에서 창조되는 잉여가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분야에 투하되어 있는 자본량에 비례하는 것이며, 따라서 동일한 크기의 자본은 그 구성이 어떻든 사회적 총자본이 생산한 잉여가치 총량에서 동등한 몫을 받는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215 


 자본은 이윤율이 낮은 분야를 떠나 이윤율이 더 높은 분야로 옮겨간다. 이윤율이 여기에서는 낮아지고 저기에서는 높아지는 것에 대응하여, 자본이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써 - 자본이 서로 다른 생산분야들 사이에 분배됨으로써 - 수요와 공급 사이의 비율이 변동하여 결국 서로 다른 생산분야들에서 평균이윤이 동일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가치가 생산가격으로 전환된다. 어느 주어진 국민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높으면 높을수록, 즉 그 나라의 상태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더욱 더 적합함에 따라, 자본은 이런 균등화를 더욱 더 넓게 실현하게 된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242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이윤을 더 크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자본의 집중화가 가속화된다.  그렇지만, 이윤의 본질은 잉여가치이고, 잉여가치는 가변자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는 결과적으로 이윤율의 하락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 그 자체다.


 불변자본에 비하여 따라서 또 총자본에 비하여 가변자본이 점점 더 감소한다는 것은, 사회적 총자본의 평균 유기적 구성이 점점 더 고도화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이것은 또한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이 점점 더 발달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한데, 이 점은 기계와 고정자본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동일한 수의 노동자들이 동일한 시간에 일반적으로 더 많은 원료와 보조재료를 생산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265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 따라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의 발달에 따라 동일한 양의 노동력을 운동시키고 동일한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큰 총자본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p276)...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하면 할수록 동일한 수의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큰 자본량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자본주의적 기초 위에서는 필연적으로 영구적인 외관상의 과잉노동인구를 만들어낸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278


 반면, 이윤율은 상승하는 경향도 보이는데, 이는 노동절약적인 기계의 도입을 통해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이윤율의 하락 경향은 상쇄된다. 하락하는 경향과 상쇄되는 요인들.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 내의 상충되는 요인들은 결과물로 과잉잉구와 과잉자본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이러한 내적 모순은 결국 공황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잉여가치량은 잉여가치율과 노동자의 수를 곱한 것과 같지만, 잉여가치율은 결코 총자본에 대해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가변자본에 대해서만 계산된다. 그런데 자본가치의 크기가 주어져 있다면, 이윤율의 상승 또는 하락은 잉여가치량의 증대 또는 감소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p293)... 이윤율은, 노동자가 덜 착취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투하자본에 비해 더 적은 노동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저하한다...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이윤량은 투하자본의 크기가 증대함에 따라 증가하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집적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생산조건들이 자본의 대규모 사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307


 요컨대 과잉생산이라는 명백한 현상에 대한 반론들은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제한들은 생산 일반에 대한 제한들이 아니며, 따라서 또한 이 특수한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제한들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은, 이 생산양식이 생산력을 절대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 생산력의 발전은 이 생산양식의 특수한 생산조건과 끊임없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322


 산업자본의 이윤율과 관련한 설명이 끝난 후, 마르크스는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개별 기업이 이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생산 뿐 아니라 유통까지 담당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를 개별 기업이 담당하게 될 경우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이를 전담하는 자본(상업자본)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업자본은 이윤의 일정 부분(투입비용에 사회적 평균이윤 몫만큼)을 받으면서 역할을 수행한다.


 상품자본으로서 자본의 존재와, 자본이 유통영역(시장)에서 상품자본으로서 겪는 탈바꿈은 산업자본의 재생산과정, 따라서 그 총생산과정의 한 단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자본은 유통자본의 기능에서는 생산자본의 기능과 구별된다. 유통자본과 생산자본은 동일한 자본이 두 개로 분리된 다른 존재형태들이다. 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338


 상업자본이 산업자본보다 높은 평균이윤을 얻는다면 산업자본의 일부는 상업자본으로 전환할 것이고, 더 낮은평균이윤을 얻는다면 그 반대과정이 일어날 것이다. 상업자본보다 쉽게 그 기능과 용도를 변경시킬 수 있는 자본종류는 없다. 상업자본은 스스로는 어떤 잉여가치도 생산하지 않으므로, 평균이윤의 형태로 상업자본에게 돌아가는 잉여가치는 생산자본 전체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의 일부라는 것은 명백하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355


 상업자본의 경우에는 평균이윤율은 하나의 주어진 크기다. 상업자본은 이윤 또는 잉여가치의 창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총자본 중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산업자본이 생산하는 이윤량에서 자기의 배당을 끌어내기 때문에, 상업자본은 일반적 이윤율의 형성에 참가한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389


 산업이 발달은 대자본이 출현을 요구하게 되며, 신용의 형태로 산업자본에게 자금이 주어지고, 이른바 '이자낳는 자본'이 등장하게 된다. 화폐 소유자에게 이자(李子, interest)의 형태로 귀속되는 이러한 자본의 형태는 신용제도를 창조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자본이 현실적으로 운동하는 자본으로서  존재하는 곳은 유통과정이 아니라 오직 생산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자낳는 자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른데, 바로 이것이 이자낳는 자본의 특수성을 이루고 있다. 화폐를 이자낳는 자본으로서 가치증식시키려는 화폐소유자는 그 화폐를 타인에게 넘겨주고 그것을 유통에 투입하며 그것을 자본으로서 상품화한다. 그 화폐는 자기를 넘겨주는 사람에 대해서 자본일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처음부터 자본으로서 넘겨지게 된다. 다시 말해 그 가치는 소유자로부터 일정한 기간만 떠나는 것이며 오직 일시적으로 소유자의 점유로부터 기능자본가의 점유로 옮겨가는 것인데, 따라서 그 가치는 지불되어 버리는 것도 아니고 판매되어 버리는 것도 아니며 대부될 뿐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437


 자본은 지금 사물이지만 사물로서 자본이다. 화폐는 지금 사랑에 몸부림치는 사물이다. 화폐가 대부되자마자 또는 재생산과정에 투하되자마자, 화폐가 잠을 자든 안자든 집에 있든 여행을 하든 낮이든, 밤이든 화폐에는 이자가 생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501 


 이자낳는 자본의 속성에서 생산될 수 있는 모든 부는 자본에 속하며, 자본이 지금까지 수취한 모든 것은 자본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식욕에 대한 하나의 할부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잉여노동은 자본 자체의 내재적인 법칙에 따라 자본에 속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분명히 몰록[Moloch, 사람의 목숨을 희생으로 요구하는 신]이다.(p506)... 이자낳는 자본에서는 자본물신의 관념이 완성되고 있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508 


 이자낳는 자본의 관심은 이윤이 아니다. 화폐의 가격으로 지불되는 이자가 상업자본가들의 관심이 된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는 생산단계와 유통단계의 분화로 인해 자본이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으로 나뉘어졌고, 결과적으로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 걸음 나아가, 상업자본의 융성은 (이윤이 고정된 상태에서)산업자본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자본론 3-(상)>까지 논의된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본론 3-(하)>에서 계속 마르크스의 주장을 이어서 들어보도록 하자. To be continued.....


 이자낳는 자본은 상품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범주이지만, 특수한 종류의 상품으로 되며, 이자는 이것의 가격인데, 이 가격은 보통 상품의 시장가격과 마찬가지로 그때그때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확정된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끊임없이 변동하지만 주어진 어느 순간에는, 상품의 그때그때의 시장가격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균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화폐자본가는 이 상품을 공급하고, 기능자본가는 그것을 구매하며 그것에 대한 수요를 형성한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이자율을 확정하는 이런 과정은 일반적 이윤율을 낳는 균등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467


 이자율도 '화폐의 가격'으로서 규칙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화폐 형태로 있는 자본 그것이 상품으로서 제공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것의 가격의 확정은 다른 모든 상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의 시장가격의 확정이기 때문이며, 이리하여 이자율은 항상 일반적 이자율로서, 얼마의 화폐형태로 있는 자본의 화폐에 대해 얼마로서, 양적으로 규정된 것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윤율은 동일한 분야 안에서도, 상품의 시장가격이 동일하더라도 개별자본들이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조건들이 다름에 따라 변동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별자본의 이윤율은 상품의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격과 비용가격 사이의 차액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470

  <자본론 3-(상)>에서 논의되는 모든 문제들은 '잉여가치'와 '이윤'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노동에서 가치가 생산된다는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 Theories of Labour Value)에 근거하여 생산수단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 소유가 되면서, 잉여가치라는 본질이 이윤이라는 실체에 가리워졌음을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이로인해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자본가는 자신에게 귀속되는 이윤만을 생각하는 일종의 주인 -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발생함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안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인식론도 발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는 것으로 넘기자... 


 모든 문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부터 생긴다. 즉 상품들이 단순히 상품으로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생산물로서 교환되며, 자본은 잉여가치 총량에서 각각의 크기에 비례해 일정한 몫을 - 동일한 크기의 자본에게는 동일한 분배 몫을 -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_ 마르크스, <자본론 3 - 상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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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마지막 날. 이번 달을 돌아보면 유난히 '성(性)' 관련 이슈가 뜨거웠던 한 달이었다. 월초에 고(故)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과 성추행 고소건으로 전국민에게 충격을 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월말에 외교관과 군인에 의한 성범죄가 문제가 된 것을 보면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대한민국을 뒤흔들만큼 크게 보도된 것에 반하여, 후자는 거의 언론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차이는 있다. 그렇지만, 보도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가볍게 넘길 사안들이 아니다.


 1. 성범죄 외교관 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55549.html


 2. 정보사 군인 기사 : https://newstapa.org/article/bzBVH  


 사태의 위중함을 놓고 본다면, 외교관의 범죄는 뉴질랜드와의 외교문제로까지 악화될 우려가 있는 중대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외교부의 대처는 평온하기만 하다. 해당 외교관은 문제가 되자 뉴질랜드에서 벗어나 현재 필리핀 총영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외교부의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보사 군인의 경우는 자신이 보호해야할 대상인 북한이탈주민을 성폭행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결코 가벼운 건이 아니다. 과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경찰서에서 성폭행한 전례를 떠올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이번 사안을 통해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 1948 ~ )의 <흑인페미니즘 사상 Black Feminist Thought>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비판사회이론으로서 흑인페미니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초국가적, 탈식민지 맥락에서, 카리브 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흑인 주도의 국민국가나 아시아에서 새로이 형성된 국민국가의 여성들은 종족, 시민권, 종교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와 씨름하는 중이다. 유럽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나라 출신의 여성들이 유럽의 국민국가에 이주함에 따라 유럽은 점차 다문화적인 사회가 되고 있지만, 이 여성이주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경험하고 있다.(Yuval-Davis 1997). 이러한 다양한 집단의 여성이 표현하는 사회이론은 그들만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회이론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종족, 민족, 종교가 서로 복잡하게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의 내부에서 여성들 자신의 체험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즉 미국 흑인여성의 비판사회이론 역시 이와 유사한 권력관계를 반영한다._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페미니즘 사상>,p35


  저자는 과거 식민지 주민들의 유럽 이주가 불러온 여러 문제들 중 특히 여성들이 겪는 위와 같은 어려움속에서 미국 내 흑인 여성의 문제를 함께 발견한다. '흑인' 이라는 억압받는 계급 내에서도, 더 억압받는 계층인 흑인 여성의 문제를 다룬 이 책의 내용은 2017년 현재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3만명을 넘어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남북화해의 시대를 채 맞기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재발방지를 위해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나 진상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듣기 힘들다.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쩌면 이렇게 선택적인 것인가?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철저하게 조사되어야 하고, 법에 따라 엄중하게 판결되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마치 실내조명처럼 선택적으로 사안이 보도되고, 여론몰이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이 언론이라는 조명에 따라 좌우되는 것 또한 경계한다. 조명계획이 아닌 여론조작은 누구의 삶을 쾌적하고 매력적으로 하는 것인가...

 

 조명계획이란 조명 기구를 이용해 빛과 그림자를 조절하여 공간을 더욱 쾌적하고 매력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_ 안자이 테쓰,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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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07-31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론몰이는 정말 저열한 방법이죠... 요새 뉴스에서 많이 보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7-31 16:2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여론이 진실보도가 아닌 프로파간다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