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2학년 온책읽기 4번째. 입이 똥꼬에게...

특이한 제목의 「입이 똥꼬에게」는 여러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입, 눈, 코, 똥꼬 등 몸의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에 대해 알려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우리 몸에 필요하지 않은 기관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냄새나는 똥꼬까지도.

아이들은 참 똥을 좋아한다. 똥 얘기만 나와도 코를 틀어쥐지만, 항상 웃음을 보여준다. 「입이 똥꼬에게」는 똥꼬 이야기를 통해 이런 아이들의 마음에 맞게 편안하게 다가간다.

내용에는「배꼽이 없어요!」처럼 몸의 일부가 없어져 벌어지는 소동이 포함되지만, 별다른 신체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배꼽과는 달리 큰 난리가 난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각과 소화에게 각 기관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런 면에서 책은 아이들에게 개체로서 신체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과 함께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역할, 직업에 대한 사고를 확장시켜준다.

이런 면에서「입이 똥꼬에게」는 아이즐 인체 팝업북 시리즈와 같이 인체를 설명하는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현재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 어렵지만, 꼭 이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직접 만져가면서 그림으로 이해하는 책이라면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어려서 부모가 읽어주거나, 읽지 않았던 글 내용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것은 부차적 성과로 여겨진다.

이처럼 인체 백과사전을 통해 지각과정과 호흡과정에 대한 지식도 함께 읽히면서, 음식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을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활동에 대한 공부까지 한다면 「입이 똥꼬에게」의 주제 전반을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금 욕심을 내서 DK 인체 시리즈도 꺼내놓지만, 일단 그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이미 아이에게는 차고 넘칠만한 양이니까...

그림만 보던 인체팝업북의 글도 시간이 흘러 읽은 것처럼, 언젠가 관심있으면 보겠지... 마지막으로 책이 부모에게 전하는 메세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부모들 아이들의 꿈을 존중해줄 것을 넌지시 요청한다. 아이들이 커서 입이 될 지, 손이 될 지, 아니면 똥꼬가 될 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무엇이 되기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선택을 받아들여달라는 요청은 숨겨진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내용은 정리되었으니 아이와 함께 나눔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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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1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똥뿐만 아니라 방귀도 좋아한답니다. 누가 방귀 끼면 막 웃지요.

겨울호랑이 2020-09-21 16:16   좋아요 0 | URL
^^:) 그렇습니다. 왜 지저분한 것만 좋아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견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나라의 전통적인 사회 규범으로서의 예(禮), 즉 '주례(周禮)'의 권위가 크게 약화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서 중앙집권적인 법(法)이 제정되고 규범이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지식인들은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고 새로운 질서를 경계하는 보수적인 입장과 옛날의 제도를 부정하고 혁신하려는 진보적인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바로 '유학 지식인들', 즉 유가(儒家)들이었다면, 후자는 바로 '관료 지식인들', 즉 법가(法家)들이었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7


 강신주의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는 공자(孔子, BC 551 ? ~ BC 479 ?)에서 시작된 유교(儒敎)가 맹자(孟子, BC 372 ? ~ BC 289 ?)와 주희(朱熹, 130 ~ 1200)에 의해 시대의 도전을 이겨내고 새롭게 변모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유학의 본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주(周)나라가 쇠약해지는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 ~ BC 403)에 공자는 예(禮)와 인(仁) 그리고 서(恕)를 통해 전통으로의 복귀를 강조한다. 전통적인 행위 규범인 '예'와 이를 내면으로 받아들인 '인'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서'는 공자 철학을 대표하는 핵심어이며, <논어 論語>는 이를 잘 담고 있는 책이다.


안정되고 질서 잡힌 사회는 피통치자들이 '도덕적 수치심(恥)'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공자는 이를 위해 먼저 주례를 잘 지켜야한다고 통치자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한비자와 공자의 정치철학, 즉 '법에 의한 통치[法治]'와 '예에 의한 통치[禮治'는 타율적 복종인가 아니면 자율적 복종인가 하는 차이점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38

 공자와 안연의 대화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자신을 이겨서 예를 회복한다'는 이 말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여 예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의 모습을 공자는 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한 사람이란 '예를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41


 공자의 자기 반성은 주체가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예에 의해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냈을 때, 그것은 예에 맞지 않는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서(恕)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에게 내면화된 예의 명령에 따라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57


 그렇지만,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 ~ BC 221)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게 된다. 진(晋)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뉘어지고, 제(齊)나라 주인이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바뀌면서 시작된 철기문명의 전국시대에서 공자의 사상은 위협받는다. 당시를 대표하는 사상가는 양주(楊朱, BC 440 ? ~ BC 360 ?)와 묵자(墨子, BC 480 ~ BC 390)로 이들에 의해 국가, 가족의 질서는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맹자는 새롭게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응전해간다.


 맹자에 따르면 양주의 철학은 '자신만을 위하기[爲我]' 때문에 군신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한편 묵자의 철학은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하기[兼愛]' 때문에 부자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가족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69


 

맹자에 의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주체의 의식적인 생각이나 현실적인 경험에서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측은지심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여기서 맹자는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측은지심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결론 내린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75

 

 맹자가 도입한 '본성'이라는 개념은 유교 사상 체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공자의 '예'가 거울과 같은 본보기였다면, 맹자의 '예'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무게 중심은 예에서 인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공자와 맹자의 사상 차이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떠올리게 된다. 공자의 '예'에서 깨닫고도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는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떠올리고, 맹자의 '예'에 단번에 깨닫고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연상한다면 다소 무리한 연관일 수도 있겠지만.


 공자는 교육을 통해 주례(周禮)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것을 권고했다. 모든 사람이 서(恕)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맹자에게 있어서 예는 결코 외부에 존재하는 학습 대상이 아니었으며 우리 마음의 본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예라는 덕목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유학의 이론을 내재화하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22


 공자에게서는 인보다는 예가 근본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맹자는 예보다 인을 더 중요시한다. 이는 그의 정치 이상이 인한 정치[仁政]로 표현된다는 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예를 맹자는 본성이 실현되어 나오는 네 가지 마음 중 세 번째 마음 정도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맹자에게 있어 예란 예의범절이라는 외적 형식을 학습해서 내면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불현듯이 출현하는 사양지심과 관련된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78


 이러한 맹자 사상과 공자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맹자의 사상이 본성이라는 혁신을 이루었지만, 지나친 낙관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가한다. 예를 본성으로 내면화했지만, 이것으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우며, 오히려 순자(荀子, BC 298 ? ~ BC 238 ?) 철학에서 체계적인 논리와 함께 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공자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음도 지적한다.


 순자는 '본성[本性]의 영역'과 '인위[僞]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본성의 영역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인위의 영역은 우리의 의지와 실천에 의해 변경 가능한 영역을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예를 사단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성의 영역 안에 포함시킨 것과는 달리, 순자는 그것을 인위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순자는 성악설을 통해 예를 외재성이라는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00


  또한, 외래 사상인 불교(佛敎)사상에 대항하는 유학의 또다른 모습인 성리학 사상을 소개하면서 본성의 문제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가도 이(理), 기(氣)의 개념과 함께 설명된다. 이처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온 유학의 모습과 주요 사상가들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로부터 독자들에게 유학이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끊임없이 변화해온 물과 같은 학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송대의 신유학이나 시유학을 체계화한 주희 철학이 후대에 성리학[性理學]이라고 불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들 모두 인간 내면의 잠재성으로서의 '성[性]'과 인간 외부에 있는 사태들의 법칙으로서의 '이치[理]'가 같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즉리[性卽理], 즉 '우리의 본성과 외부 사태의 이치가 같다'는 명제는 주희 철학 체계의 핵심테마가 된다.(p111)... 주희의 발상 중 핵심은 인간에게만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게도 그들만의 본성이 있다는 주장에 있다.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16 

 이와 함께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 걸기>, <정약용 & 최한기 : 실학에 길을 묻다>,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는 지식인 마을에서 관련성이 높은 책이기에 더불어 읽는다면 체계적인 동양철학 줄기를 잡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논어>와 관련하여 깊이 읽고 싶다면,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이토 진사이의 <논어고의>를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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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9-17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한창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있는데, 오고쇼 씨도 천하를 삼킨
다음에는 무력으로 지배할 수 없다며
논어와 맹자 타령을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주자학이 지배 계급의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7 11:54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종교 또는 사상이 국가와 결탁하게 되면 초기의 뜻보다는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는 현상을 예외없이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가 사상이나 종교를 처음 일으켰던 선각자들의 뜻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반추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5년에 워런 버핏이 한 말이 옳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치 투자를 실천해 온  35년 동안 나는 그것의 어떤 트렌드도 보지 못했다. 고집스러운 인간의 특성은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길 좋아하는 듯하다." 정말로 성공적인 장기 투자는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성장의 함정을 피하고 신뢰할 만한 기업을 고수하는 것이 과거 투자자들에게 커다란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이 미래 투자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_ 제러미 시겔, <투자의 미래>, p373


 제러미 시겔 (Jeremy J. Siegel, 1945 ~ )은 <투자의 미래 The Future for Investors>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성장주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자신이 잘 아는 종목에 투자할 것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피터 린치(Peter Lynch, 1944 ~ )의 투자 방식을, 꾸준한 성장 동력을 가진 종목을 추천하는 측면에서는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 ~ `)의 투자 방식을 연상시키지만, 저자는 앞 선 두 인물보다 시장의 거시지표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는 가치투자의 또다른 전형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투자의 미래>에서 성장주를 피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자자들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할 수 있는 성장의 측면, 일병 성장의 함정을 이해해야 한다. 성장의 함정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혁신을 주도하고 경제 확장을 선도하는 기업과 산업에 너무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든다. 인기 주식의 매수, 새로운 기술의 추구,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국가에 투자하는 등의 끊임없는 성장에 대한 추구는 투자자들에게 결국 저수익을 가져다주게 되어 있다. 실제로 최고의 투자 성과를 기록한 많은 투자는 규모가 축소되는 산업과 저성장 국가에서 나타났다. _ 제러미 시겔, <투자의 미래>, p18


 이는 성장주에 대한 투자가 주주 이익의 극대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분석에서 성장주는 'Star' 단계에 놓인다. 아직 시장이 성장기에 있기때문에 안정적인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생하는 많은 비용은 사회적 기여는 높일 수 있겠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만은 않다. 반면, 가치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영역인 'Cash Cow' 단계에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자는 이 영역에 위치한 기업으로의 투자를 권유한다. 자세한 내용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1931 ~ )의  <마케팅 관리론 Marketing Management>을 참고하도록 하자. 


 성장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산을 이와 같은 기업에 투자하도록 유혹하는 올가미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조차도 투자자들에게 거의 최선의 투자처는 되지 못한다. 시장 수익률보다 더 나은 수익을 추구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맹목적으로 좇는 기술적 혁신은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실망감을 안겨 주는 동시에 경제 성장을 촉발시키는 양날의 칼로 이해할 수 있다.(p20)... 성장의 혜택은 개인 투자자들이 아닌 혁신가, 설립자, 프로젝트를 지원한 벤처 자본가, 해당 주식을 파는 투자 은행, 저가에 주식을 매입한 소비자 등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_ 제러미 시겔, <투자의 미래>, p21


 우리를 놀라게 하는 점은 잘 알려진 소비자 브랜드 산업과 제약 회사가 1957년 초창기 S&P 500 인덱스에 편입된 이래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는 20개 기업 목록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기업들은 폭넓은 인지도와 소비자 신뢰를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과거 반세기 동안 엄청난 정치, 경제적 환경 변화에서 생존과 번영을 이룩해 왔으며, 국제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나는 이들 기업들의 성공 신화를 '도전과 쟁취'라고 부르고 싶다. _ 제러미 시겔, <투자의 미래>, p62

 

 기업투자에 있어서(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이 되는 분석이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에 근거한 NPV(순현재가치 Net Present Value)라고 본다면 높은 성장률은 현재 할인률을 낮춰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많은 투자 권유자들은 이 점을 강조하여 성장가치를 강조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러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의 이익이 손상받을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CORONA 19로 실물시장은 얼어붙었지만, 금융시장은 뜨거운 상황 속에서 특히 제약 주식과 2차 전지 주식, 5G 관련주식들이 성장주로 각광받고 있는 시점이다. 마치 2000년대 초반 IT 호황을 연상시키는 현재 분위기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당시에는 IT기업에 투자 하지 않았던 워렌 버핏도 최근까지 중국 전기자동차회사 BYD에 투자했던 것을 보면 과거와는 다른 것도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제나 경기 사이클이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에는 '이번엔과거와 다르다'는 말이 유행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판단 내리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내린 투자 판단의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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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을 다루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반으로 갈라놔도 뿌리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위를 모두 잘라낸 나무의 둥치는 다시 온전한 나무로 자라기 위한 시도를 매년 하고 또 한다... 전체가 하나로 기능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모듈로 만들어져서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무는 전체를 모두 벗어던진 후 대체할 수 있고, 몇 백 년에 걸쳐 나무들은 평생 그 일을 되풀이해왔다. 결국 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 너무 값비싸질 때 죽는다. _ 호프 자런, <랩 걸>, p216


 호프 자런(Hope Jahren, 1969 ~ )의 <랩 걸 Lab Girl>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삶을 다룬 에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공인 식물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과학계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여성으로 느끼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여러 관점을 담고 있으면서도 책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작가가 주제의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랩 걸>안에는 어떤 모습이 담겨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함께 읽을 책들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먼저, 교양 과학서로서의 <랩 걸>은 우리에게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동물과 다른 생명체로서 식물을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당연하게도 동물과는 달리 식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식물을 진화가 덜 된 생명체로 단정짓지만, 저자는 다르다. 저자는 동물과 다른 식물의 '다름'을 말한다. 동물들은 움직임(動)을 통해 공간(Space)을 살아가지만, 식물들은 정(靜)적으로 시간(Time)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실험을 위해 우리는 식물과 동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즉, 식물 조직의 대부분이 대체 가능하고 융통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필요하면 뿌리가 줄기가 되고, 그 반대 현상도 일어난다. 하나의 배아를 조각 내도 같은 식물을 여럿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것들은 유전자 청사진이 완전히 동일하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54


 <랩 걸>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다름'은 다음 주제와도 연결되지만, 그 전에 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짚고 넘어가자. <랩 걸>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차이부터 시작해 식물의 특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만, 글자로만 설명되어 독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을 <DK 식물 대백과 사전>에 나오는 상세한 사진과 설명을 통해 보완한다면,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다가온다.


 눈 속에서 사는 식물들에게 겨울은 여행이다.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특히 긴 여행이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54


[사진] <DK 식물 대백과 사전> 中

 

 히아신스와 대부분의 밑뿌리 식물들은 계절적으로 건기가 있는 지역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 봄이 지나면 긴 여름 가뭄이 찾아온다. 수축근은 온도가 더 서늘하고, 건조에 덜 취약한 땅속으로 알뿌리를 더 깊이 끌어당긴다. 봄에 꽃이 피는 알뿌리는 여름 동안 건조하게 유지되면서 뿌리가 완전히 쪼그라들기도 한다. 겨울 우기가 찾아오면 다시 뿌리가 자라고 식물은 이듬해 봄에 꽃 피을 준비를 마친다.  _ DK <식물> 편집위원회, <DK 식물 대백과 사전>, p37


  다른 한 편으로 <랩 걸>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곳곳에는 과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 과학자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어려움이 담겼다. 식물과의 차이를 인정해야 연구가 가능한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계 주류와의 갈등이 담긴 내용은 일종의 모순상황이다. 그리고, 저자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로잘리드 플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0 ~ 1958). DNA 발견에 거의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은폐된 그녀의 삶은 과학자 집단의 폐쇄성과 모순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는 잊혀진 과학자 프랭클린의 삶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려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연장선상에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모두 받은 유명한 마리 퀴리(Maria Sklodowska-Curie, 1867 ~  1934)와 영국 중심의 물리학계의 중심 뉴턴(Sir Isaac Newton, 1643 ~ 1727)의 물리학의 종말을 고한 독일계 유태인 출신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 평전도 비주류 과학자들의 어려움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가볍게 읽고자 한다면, 지식인 마을의 <퀴리 & 마이트너 :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나가오카 & 유카와 : 아시아에서 과학하기>가 관련 주제를 생각하기에 좋을 책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듯했다. 남자 등료들보다 두 배는 더 능동적이고 전략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박사학위 3년차부터 교수 자리에 지원했고, 빠른 속도로 성정하는 주립대학인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채용 제의를 받았다. _ 호프 자런, <랩 걸>, p68


 내 사무실과 종잇장처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휴게실에서 매일 아침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내 성적 취향이나 어릴 때 겪었을지 모르는 트라우마에 관해 벌어지는 토론을 듣게 되는 영광을 누린 결과, 나는 여자 교수들과 과에서 일하는 여성 비서들은 학계의 천적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_ 호프 자런, <랩 걸>, p105


  마지막으로 <랩 걸>안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연구를 분리시키지 않는기에, 독자들은 <랩 걸> 안의 과학이 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지식이 아닌 우리 삶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책이 주는 이러한 다양한 매력이 <랩 걸>이 인기를 끌게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랩 걸>안의 여러 모습을 정리하다보니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 ~ 1996)이 떠오르게 된다. 과학을 통해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인류 평화를 말하던 과학자이자 작가. 비록 전달하는 메세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과학이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담긴 학문이라는 것을 알려준 칼 세이건 처럼 호프 자런도 <랩 걸>을 통해 과학과 사람을 함께 보여주려 했음을 정리하면서 깨닫게 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여러 내용을 알차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랩 걸>은 미니 쿠퍼와 같은 느낌의 책이라 평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 준 것이 과학이었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8


 현재의 모든 설정을 고려하면, 우주는 영원히 확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양계와 그 너머 곳곳의 여러 세계들에 안전하게 흩어져 있을 우리의 먼 후손들은, 그들이 공유한 유산, 그들의 고향 행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우주를 통틀어 다른 생물은 몰라도 인류만은 지구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식으로 한 가족이 될 것이다. _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p423


 상호 불신의 망령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케 하여, 모든 국가를 죽음을 향해 서둘러 행진케 할 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짓거리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초래될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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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9-14 0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고 정성 가득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미니 쿠퍼 느낌이라고 비유해놓은신 것이 재미있어요.

겨울호랑이 2020-09-14 07:23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nine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페크pek0501 2020-09-14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랩 걸, 4백쪽이 넘네요. 그만큼 풍성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이 리뷰를 읽으니 알 수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4 12:44   좋아요 0 | URL
네. 400 페이지 정도 되지만, 어렵지 않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라 생각 됩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

비연 2020-11-04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겨울호랑이님 글을 이제야 봤네요. 저와 비슷한 느낌이신 듯.

겨울호랑이 2020-11-04 17:12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랩 걸」안의 여러 이야기 속에서 비연님도 저와 같은 인상을 받으셨다니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비연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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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의 협동 형태를 바꾸었다. 예컨대, 쟁기를 사용하면서 성별 분업이 강화됐다. 쟁기를 사용하는 노동은 임신했거나 아이를 기르는 여성에게는 벅찬 중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상설적인 관개 시설을 건축하고 보수하려면 수십 가구나 수백 가구의 협동이 필요했다. 이것은 직접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을 감독하는 사람의 분업을 부추겼다. 먹을 것을 저장하게 되면서 저장한 음식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잉여가 생겨나자 처음으로 일부 사람들이 농사에서 해방돼 수공업, 전쟁 준비, 아니면 한 지역의 생산물을 다른 지역의 생산물과 교환하는 일 등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p48)... 잉여를 창출한 생산방식의 도입과 계급 분화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매우 비옥한 토양이 있는 지역들에서 출현한 최초의 농경 사회는 계급 분화를 수반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경 사회가 확대되면서 이들을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하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사회 관계를 재편해야 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56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의 <민중의 세계사 A People's Story of the World>는 지배계층 중심의 정치, 경제사라는 기존의 관점 대신 인류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주인공은 되지 못했던 이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다소 생소한 관점에 선 저자는 책에서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의 산물인 문명(文明)의 어두운 측면에 집중한다. 이 어두운 측면으로부터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계급 분화, 상근 관료와 무장 집단에 기반을 둔 영구적 국가 기구의 확립, 여성의 종속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요소들 대부분은 여전히 출현하지 않았다. 그런 요소들은 고든 차일드가 '도시혁명'이라고 부른 변화, 즉 사람들의 생계방식에 일어난 두 번째 중대한 변화가 '신석기 혁명'에 바탕을 두고 일어난 다음에 출현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5


 저자는 수렵 - 채집 문화에서 농경 문화로의 이행이 반드시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음을 말한다. 농경 사회로 인해 사회는 안정화될 수 있었지만, 잉여 산출물로 인해 빚어지는 부작용은 다른 종류의 불안을 가져왔고, 이는 강력한 권력 기관이 출현의 배경이 된다. 강력한 권력 기관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의 분화를 가져왔으며, 민중은 피지배계급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민중의 세계사>에서 고대와 중세에 걸쳐 민중들의 경제 기여에 비해 자신의 권익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빵과 서커스 제공에 만족해야 했던 고대 로마 시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중세 후반에 나타난 농민들의 적극적인 반항이 사회 변혁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못한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제국은 안정을 찾았을지 모르지만 사회의 밑바탕에 있는 주요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의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압도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두었다. "경제에서 무역과 제조업은 매우 한정된 구실만 했다... 기본 산업은 농업이었고, 제국 주민의 압도 다수는 농민이었으며, 상층 계급의 부는 주로 지대에서 나왔다." 농업 생산에서 나온 수익은 무역과 공업의 20배에 달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125


 (유럽 봉건 사회에서) 농민 봉기는 사회를 뒤흔들었지만 농민은 문맹인데다가 시골 곳곳에 흩어져서 각자의 촌락과 토지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회 재편 강령을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아직 경제가 충분하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혼란스럽게나마 그런 강령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급은 아직 형성되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런 계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망한 씨앗이었지만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던 위기를 끝낼 수 있는 계급은 아직 아니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213


 그것은 변혁의 주체가 될 중핵(中核)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 그 방법을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중핵 계층이 싹트기까지는 아직 수백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8세기 유럽에서 근대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부르주아 bourgeois'로 대표되는 계층의 역할이 컸던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 혁명이 실패했음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20세기는 단지 공포의 세기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살펴봤듯이, 그것은 공포의 주범들에 맞서 노동 계급이 이끈 거대한 반란들이 아래로부터 분출해 나온 세기이기도 했다.(p775)... 거대한 사회 갈등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미리 알 수는 없다. 그 결말은 단지 한 계급의 객관적 발전 수준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거대해진 '보편적' 노동 계급 중에서 싸우는 방법을 이해하고 동료들에게도 그 방법을 납득시킬 수 있는 중핵이 얼마만큼 존재하느냐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역사가 보여 주듯, 그런 반체제 세력들은 오직 체제의 모든 측면에 맞서 싸울 태세가 돼 있는 혁명적 조직이라는 결정체로 응고되어야만 진정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784


  이러한 저자의 '중핵'의 역할에 대한 근거를 우리는 18세기 인도의 마라타족 반란과  19세기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동양에서의 실패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반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혁명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고 동양의 두 제국은 유럽 제국주의의 제물로 전락하면서, 저자 주장의 논거가 된다.


 (마라타족의 반란)에서 농민들의 반감은 곧 반란군의 전투력이었다. 그러나 반란의 지도부는 보통 자민다르나 지방의 다른 착취 계급에서 나왔는데, 그들은 잉여의 더 큰 부분을 무굴 제국의 지배 계급이 가져가는 것이 불만이었다... 상인과 장인은 반란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굴 제국 지배자들의 사치품 시장에 의존했고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도시 계급들이 농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 준 지역 시장들의 연결망이 없었다. 낡은 사회는 위기에 빠졌지만, '부르주아지'는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 투쟁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결국 사회는 진보할 수 없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303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부가 이상을 포기하는 과정은 과거에 중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들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광대한 지역에 흩어진 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무지한 농민들은 운동의 지도부와 그 군대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응집력이 강한 세력이 아니었다. 또한 태평천국 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든 사람을 위한 풍요"라는 이상을 구현하기에는 물질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이에 대한 손쉬운 대응은 전통적 지배 방식과 그에 수반되는 전통적 특권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뿐이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65


 그렇다고 해도, 근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변화가 민중들을 역사의 주체로 바로 끌어올린 것은 아니었다. 유럽과 북미에서 민중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자들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억압받는 계층으로 존재하게 된다.  <민중의 세계사>에서 민중은 고대의 억압받는 노예에서, 중세의 억압받는 농민, 근대의 억압받는 노동자로.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에서는 3S로 억압받는 소비자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저자는 비관하지 않는다.


 도시의 종교개혁은 독일 남부와 스위스의 도시들을 휩쓸었다. 이들은 여러 세대 동안 지방 의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 형식적인 민주적 구조가 갖추어진 곳에서도 그랬다. 많은 과두 지배자는 나름대로  교회에 불만이 있었고 지방 제후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사회, 종교 질서와 수없이 많은 연계를 맺고 있기도 했다... 대체로 그들은 커다란 격변을 겪지 않고서도 자신들이 도시의 종교 생활을 더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고 교회 기금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점진적 변화를 추구했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251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부르주아 점령군이었기 때문에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토지를 몰수한 뒤 해방된 노예들에게 재분배함으로써 그들이 옛 주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다수 흑인들은 과거의 노예 수유주들 밑에서 소작농이 되거나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과거에는 억압받는 노예 계급이었다가 이제는 억압받는 농민, 노동자 계급이 된 것이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455


 저자 크리스 하먼은 책의 결론부에서 과거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민중들의 각성과 움직임을 강조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역사 속에서 중핵들이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음을 밝힌다. 이러한 움직임이 역사 속에서 1215년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의해 영국에서 왕권에 귀족들에게 넘어가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 계급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의식은 확장되었고, 그 기반은 넓혀져 왔음을 <민중의 세계사>는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계속될 때 과거 신석기 혁명과 도시 혁명 이전의 평등 사회로 우리는 회귀(回歸)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사회 계급들은 결코 서로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다. 상층 계급의 정서는 중간 계급의 정서에 영향을 주며, 중간 계급의 정서는 하층 계급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유럽 지배 계급들의 의지는 수많은 방식으로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의 일부에게 전염됐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521


 21세기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된 오늘날의 노동 계급에게도 그런 결정체가 끊임없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필요는 오직 사람들이 그 과업에 몸소 뛰어들어야만 충족될 수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_ 크리스 하먼, <민중의 세계사>, p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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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9-1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중의 세계사를 보다 간소화 한 책을 찾는다면 아마 ‘좌파세계사‘겠죠.

겨울호랑이 2020-09-10 19:42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역시 NamGiKim님 이시네요.

NamGiKim 2020-09-10 19:49   좋아요 1 | URL
그책도 분량은 많은 편이지만 중간중간 사진과 그림이 많이 있어 읽기 수월했죠.^^

겨울호랑이 2020-09-10 20:0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대중적으로 민중의 역사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좋은 「The Left」, 「미국 민중사」 , 「민중의 세계사」입문서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