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민중은 이제 자신들의 불행이 대부분 토지의 사유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해 '토지는 신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행의 원인은 특정한 사람들이 많은 땅을 소유하는 데 있다. 그들은 땅을 잘 경작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해마다 땅값이 올라가서 굳이 경작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땅이 너무 좁아서 그 자연의 은혜를 거의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하며 가는 곳마다 임금을 떨어뜨리고 있고, 그것이 그들이 불행한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_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p762


 톨스토이(Leo Tolstoy, 1828 ~ 1910)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1>는 매일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주제들과 여러 격언들을 소개하는 명상록이다. 일주일마다 조금은 긴 '이레 째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매일 읽기에는 조금 긴 글이나 단편소설들이 소개되고 있어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글로 읽는 중이다. 이번 주에는 마침 부동산과 관련한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 ~ 1897)의 내용을 정리한 글이 있어 옮겨보고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토지가 주는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누리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을 위해서 지금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그것을 빼앗아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할 필요는 없다. 지금 땅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대로 가지게 하라.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하던 대로 땅을 가지고, 다만 그 땅에 대해 1년에 얼마의 토지세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결정되면 땅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땅을 이용해 일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땅에서 토지세를 벌 수 없으므로 이내 그 땅을 포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땅을 활용해 일할 사람이 그것을 인수하게 될 것이다... 땅에서 걷히는 돈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 수입은 모든 다른 세금과 공물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_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p763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흩어져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 몰려와 임금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품의 가격도 공장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것이고, 상품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도 없어지므로 생활용품의 가격도 당연히 싸지게 된다.._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p764 - 에스 디 니콜라예프 구술, 헨리 조지 기록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Progress & Poverty>를 잘 요약 정리한 글 속에서, 최근 강화된 부동산 규제책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날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는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와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삶이 빈곤해진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부동산 문제가 어제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 사실을 알려주면서, 최근에 시행된 부동산에 대한 중과세(重課稅) 정책은 톨스토이와 헨리 조지의 오랜 주장을 따르고 있음도 알게 된다. 오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토지소유자들의 반발 때문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토지소유자들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행위가 '자유'를 침해한 것이며, '평등'을 강조한 것이기에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더해 다수당에 의한 '의회독재'도 명분에 더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정책의 실행이 사유재산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형식상 하자와 내용상 하자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지세법은 지정판매소에서 파는 인지를 아메리카에서 사용하는 모든 서류, 영업감찰, 고지서, 신문, 연감, 카드 등에 첨부하도록 규정한 것이었다. 이 법령은 과연 합법적이었을까? 식민지 대표들은 영국 국민의 경우 과세를 하려면 그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중세기 의회는 '대표권이 없는 곳에 과세는 없다'는 주장에서 탄생했다. 사실 18세기의 영국인은 '의회의 승인 없이는 과세가 있을 수 없다'는 말에 만족하고 있었다. 영국의 일반인에게 고루 투표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 지역에서 선출한 의원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대표권을 행사했는데, 식민지 주민들은 그마저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론적으로 반대할 수 있었다. _앙드레 모루아, <미국사>, p159


 과거 미국 독립전쟁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세금(稅金) 때문이었다. 영국 본토에서 식민지 주민에게 부과한 세금이 '대표권 없는 곳에 세금 없다'는 원칙에 위배되었고, 자신이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의회에서 부과된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 식민지 주민들의 의견이었다. 이에 반해, 법에서 정한 결격사유가 있는 이들을 제외한 주권자가 참여한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표권을 보장해 주었다 할 것이고, 이렇게 선출된 대표들이 사안이 결정되었다면 일단 형식적 하자는 없어 보인다. 다만, 모든 것을 다수결로 결정할 경우 지속적으로 의사결정에 배제되는 개인이나 집단이 있을 수 있으니 추가적으로 고민할 부분이 생긴다. 내용적으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충돌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로널드 드워킨(Ronald Myles Dworkin, 1931 ~ 2013)의 주장을 인용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평등은 자유를 전제하지 않고는 정의될 수 없으며 자유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정책들에 의해서 향상될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이 양립할 수 있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분리되어 있는 덕목이 아니라 하나의 이상의 다른 측면들이기 때문이다._ 로널드 드워킨, <자유주의적 평등>, p31 - 해제 中 - 


 로널드 드워킨은 자유와 평등은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라, 이상의 서로 다른 측면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공동체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시민들에 의한 시민 공화주의(civil republicanism)를 지향하는데, 이는 자유의 기반 위에서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 <자유주의적 평등>에서는 사유 재산의 체계를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사유 재산 체계는 자원의 평등한 분배와 함께 자신이 누리는 자유를 (입장 바꿔서) 다른 사람이 같이 누린다고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정의롭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드워킨은 진정한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은 평등주의로 간주되는 배려와 자유주의로 간주되는 배려의 교차지점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두 가지 배려를 결합시키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유 재산의 체계는 국민에게 그들의 자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부과되는 진정한 비용에 의해서 판단된 평등한 자원을 보장할 때 그들을 평등한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참된 비용은 가능한 자유의 하나의 관행(norm)을 인정함으로써, 만일 문제되는 자원들이 다른 사람들의 것이었을 경우 그것들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했을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측정되어야 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기회비용은 야누스 같은 이념이다. 그것은 한 얼굴로는 평등을 향해 있고, 다른 얼굴로는 자유를 향해 있으며, 두 덕목들을 융합한다. _ 로널드 드워킨, <자유주의적 평등>, p31 - 해제 中 - 


 다소 거칠게 드워킨의 이론을 현재 부동산 문제에 적용보면 어떨까. 만약, 지금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처지가 바뀐다고 가정해보자. 이제는 세입자가 된 집주인들이 지금의 부동산 규제책을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면, 이 제도는 공동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임이 입증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로 판별해도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물론, 이론을 현실에 적용할 때에는 위와 같이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세대 내'가 아닌 '세대 간'으로 관점을 넓힌다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코로나 19로 묻혀진 부동한 문제지만, 읽을 거리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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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28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래에서 두 번째 문단~~ . 만약 집주인과 세입자가 바뀐다면~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네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어느 쪽도 더 불리하지 않다면 그거야말로 최상인 거죠.
톨스토이가 제기한 문제가 지금의 부동산 문제가 무관하지 않음을 확인하며 그래서 불멸의 고전이란 말이 있는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정리를 잘해 주셔서 꼼꼼히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8-28 13:01   좋아요 0 | URL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고 이를 자신의 작품 안에 부어 넣어 불멸의 작품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미켈란젤로처럼 돌을 깎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나게 하거나요. 그 사상이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페크님 말씀처럼, 불멸의 고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중 한 명이겠구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님, 더운 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20-08-28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헨리 조지 이론과 주장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재 많은 국가, 소위 말하는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도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개인 견해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8-28 13:04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많은 선진국에서 받아들이고 보편화된 제도인데, 뒤늦은 출발을 한 우리는 지금도 과도기를 겪고 있네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쉽지만, 이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는데는 물리적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래도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되겠지요? 저 역시 그렇게 바라봅니다. ^^:) 무더운 여름날 건강하게 보내세요!

AgalmA 2020-09-01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유주의가 개인주의로 강화되면서 ‘권리‘를 더 강조해나간 게 지금과 같은 여러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거겠죠. 나누고 합리적으로 이것저것 규제하자고 하면 할수록 개인의 자유로울 권리 침해라는 불평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게 됐죠.
세계 각지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마스크 쓰기‘ 거부 운동만 봐도^^;;;
요즘 ‘자유주의‘를 생각하면 그 반대쌍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완강한 편견으로 움직이는 ‘보수주의‘(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보수주의)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20-09-01 22:3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과 공동체를 별개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동운명체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오랜 주제이면서도 해결이 어려운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연속선상에서 유전자와 개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면, 지나친 환원주의일까요?^^:)
 

 포이보스 아폴론은 헥토르를 싸움터에 나가도록 격려하며

 그에게 다시 용기를 불어넣고 지금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있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한편, 아카이오이족에게는 무기력한

 패주를 불러일으켜 그들이 도로 돌아서도록 만들것이오.

 그들이 달아나다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가 많이 달린

 함선들 사이로 쏟아져 들어가도록 말이오.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그의 전우 파트로클로스를 일으켜 세울 것이고 파트로클로스는 

 내 아들인 고귀한 사르페돈을 포함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죽인 뒤

 일리오스 앞에서 영광스런 헥토르의 창에 죽게 될 것이오. 그러면 또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그 때문에 화가 나서 헥토르를 죽일 것이오._호메로스, <일리아스>, 15권 59 ~ 68

 

 호메로스(Homeros, BC 8세기 ? )의 <일리아스 Ilias>를 처음 읽게 된다면 먼저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10년간 이뤄진 '트로이 전쟁' 중 불과 며칠을 다루고 있기에 많은 이야기들이 빠져 있다는 사실과 해부학 강의를 연상시키는 전투의 잔혹한 묘사는 의외로 다가온다. 또한, 거창한 수식어를 잔뜩 달고 등장한 이름도 낯선 이들이 한 칼에 쓰러지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전투의 혼란스로운 상황은 작품 내내 지속된다. 때문에 독자들은 23권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 전까지 전장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버려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강재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는 전투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독자를 꺼내준다.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처럼.


 이제 파트로클로스의 출정과 사르페돈의 죽음, 그리고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뒤이은 아킬레우스의 출정, 헥토르의 죽음과, 아마도 목마 계략에 의한 일리오스의 함락이 모두 언급되었다. 제우스는 이렇게 해서, 테티스가 청하고 자기가 약속한 것을 이루리라고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아킬레우스의 소망을 이루리라고. 하지만 파트로클로스가 죽는 것은 아킬레우스가 바랐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한 가지 미래의 중요한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으니, 바로 아킬레우스 자신의 죽음이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362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_호메로스, <일리아스>, 1권 1 ~ 5 


 아킬레우스가 어머니에게 탄원하는 첫 마디는, 이 작품에서 풀어야 하는 아킬레우스의  문제 중 하나와 연관되어 있다. "어머니, 당신은 나를 단명하도록 낳아 주셨으니"(1:352). 이 작품은 인간들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74


 널리 알려진 대로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이후 그는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접고 복수를 맹세한다. 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복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알고 있다. 복수는 그에게 불멸의 명성과 죽음을 함께 가져다 준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불멸의 명성을 선택한다. 


[그림] Achilles and Patroclus(출처 : 위키백과)


 그녀(테티스)에게 준족 아킬레우스가 크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어요! 전우가 죽는데도 도와주지 못했으니 말예요.(98 ~ 99)

 불화는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사라지기를!

 그리고 현명한 사람도 화나게 하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분노란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107 ~ 114)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명성을 

 얻고 싶어요._호메로스, <일리아스>, 18권 120 ~ 122 


 아킬레우스는 자기가 진작 나서서 다른 동료들을 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는 이제 불화와 노여움을 저주한다. 아가멤논이 자기를 노엽게 했지만, 이제는 그 노여움을 흘려 버리고 감정을 억제하겠다 한다. 그는 헥토르를 향해 나아갈 것이고 죽음은 신들이 원하는 아무 때에나 받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은 죽음을 받겠다, 하지만 그 전에 훌륭한 명성을 얻고야 말겠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432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당당하게 불멸의 명성을 선택한다. 필멸의 인간이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歷史)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기에 아킬레우스의 선택을 나쁘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일리아스>의 시대로부터 얼마지나지도 않은 <오뒷세이아 Odysseia>의 시대에 이르면 벌써 그가 열망한 불멸의 명성이, 필멸의 명성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가치란 있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모든 고난과 유혹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오뒷세이아>의 내용은 불멸의 가치에 대한 무상함을 말하는 듯하다.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여, 아카이오이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자여!(478)

 어느 누구도 예전 그대처럼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대의 살아생전 우리들 아르고스인들은 그대를 신처럼

 추앙했고, 지금은 그대가 여기 사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그대는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_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1권 482 ~ 486


 오뒷세우스의 말은 약간 위로의 색깔을 띠고 있다... 사실 이 대목은 <일리아스>의 이상에 맞서는 새로운 이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저승의 왕이라도 살아 있는 가난한 집 머슴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영원한 명성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던 <일리아스>의 전사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각이다.(p339)... 손상된 명예 앞에서, 부당하게 주어진 운명 앞에서 화산처럼 폭발하던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이제, 이렇게 온건하고 인간적이고 스케일 작은 생활인들이 되었다._ 강대진,<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 p340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지체 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뒷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_호메로스, <오뒷세이아>, 11권 487 ~ 491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 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며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 ~ 1941)가 <율리시스 Ulysses>를 통해 불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일리아스> 시대로의 회귀라 여겨지지만... 읽다가 낙오할 것 같은 <율리시스>에 대한 리뷰는 정리가 되면 올리겠지만, 현재까지는 답이 없어 보인다... 


 다시 <일리아스>의 시대로 돌아가자. 아킬레우스는 불멸의 명성을 선택하고 헥토르를 죽인다. 이어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모욕하고,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도 치뤘기에 그는 신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이룬 듯하다. 그렇지만,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정한 완성은 아킬레우스의 불멸의 완성과 함께 찾아오는 죽음까지 실현되어야 한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노래되지 않고 끝나는데, 이는  시인이 불멸의 명성을 추구했던 젊은 영웅을 애도했기 때문일까. 결국, 신의 아들인 그도 운명을 알았지만, 자신이 운명의 저울에 올라갈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해가 중천에 이르자 제우스가 양군의 운명을 저울에 달고, 희랍군의 운명이 땅에 처진다. 우리로서는 무거운 쪽이 이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땅은 죽음의 방향이기 때문에 땅으로 처지면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232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시인은 아킬레우스를 한 단계 성장시킨다. 바로 <일리아스> 24권에서 아킬레우스는 아들을 잃은 프리아모스 왕을 동정하는 모습을 통해서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킬레우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파트로클로스와 바꿀 수 없었기에, 헥토르를 잃은 프리아모스의 슬픔에 공감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마침내 고귀한 아킬레우스는 실컷 울어

 울고 싶은 욕망이 그의 마음과 사지에서 떠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노인의 흰 머리와 흰 수염을 불쌍히 여겨

 그를 향해 이렇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아아, 불쌍하신 분! 그대는 마음속으로 많은 불행을 참았소이다...(513 ~ 518)...

 아무리 괴롭더라도

 우리의 슬픔은 마음속에 누워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싸늘한 통곡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신들은 비참한 인간들의 운명을 정해놓으셨소.

 괴로워하며 살아가도록 말이오. 하나 그분들 자신은 슬픔을 모르지요._ 호메로스, <일리아스>, 24권 522 ~ 526


 모처럼 <일리아스>를 읽으며, '분노'라는 감정에서 일어나, '이성'에 의한 명예추구, 이후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한 신과 같은 젊은 전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평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다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느낀다는 점에서 '죽음'이라는 주제가 결코 쉽지 않은 주제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여기에 더해 그가 '죽음'과 바꾸려 했던 '불멸의 명성'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과거 최고의 가치가 '불멸의 명성'이라면,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돈 money'가 될까.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불멸의 가치로 보이는 '돈'. 우리는 과연 그 진정한 가치를 얼마나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을까. 우리는 별 생각없이 이를 열망하다가 아킬레우스처럼 후회하는 것은 아닐런지.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 ~ 1918)은 <돈의 철학 Philosophie des Geldes>에서 돈의 운동성에서 그 가치를 찾는데, 이는 부동산(不動産)의 자산가치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한국경제 현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미 페이퍼가 충분히 길어졌다...

 

세계의 절대적인 운동 성격을 돈보다 더 명백하게 보여주는 상징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의 의미는 곧바로 줘버린다는 사실에 있다. 고정되는 순간 돈은 돈으로서의 특별한 가치아 의미를 잃어버린다. 돈이 상황에 따라 정지된 상태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그것이 곧 다시 운동하리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돈은 운동하지 않는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운동의 담지자 바로 그 자체다.(p909)... 돈은 그 내용상 가장 영속적인 것으로서, 세계의 다른 모든 내용들 사이에서 무차별점 및 균형적으로 존재한다. 돈의 이념적 의미는 법칙의 이념적 의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들에 척도를 제공하지만 스스로는 이 사물들에 의해서만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_게오르그 짐멜, <돈의 철학>, 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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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0-08-27 1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BC제작 <트로이>를 보니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모두 흑인이고 동성애 관계라 새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율리시스는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하네요. 전 엄두가 안나서^^

겨울호랑이 2020-08-27 12:00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BBC의 <트로이>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영화계에 불고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를 생각한다면 기계적인 설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현대적 해석이라는 면에서는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율리시스는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ㅜㅜ 여러 차례 읽으면서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최대한 발견하는 것. 이 정도에 의의를 가지려 합니다... 완전히 독해하려고 접근한다면 스트레스만 받고 중도에 포기할 것 같아서요...

AgalmA 2020-08-27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술 분야 다 좋아라 하지만 오페라는 즐기지 않는데요^^; 과장된 몸짓과 노래들에 너무 손발이 오그라들고 몸이 쭈삣거려서;;
그리스 신화 고전들도 그놈의 코러스 서사시 방식 때문에 읽기 고역입니다ㅜㅜ; 글이 시끄러워ㅜㅋㅜ);;;
러셀도 서양철학사에서 그 시대의 발화에 맞춰 서술하고 있다며 당부하는 카톨릭 철학 부분 정말 지루했어요ㅎㅎ;
겨울호랑이 님은 이런 고전을 묵묵히 읽어내시니 참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7 14:24   좋아요 2 | URL
저도 사실은 그리스 비극을 무슨 재미로 읽나 싶습니다.ㅋ 제가 생각했을 때 독서취향이 좀 다를 뿐 대단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자신을 잘 아니 사실일 겁니다. 다른 분들보다 딱딱한 책을 더 많이 읽기는 하지만, AgalmA님처럼 시, 전시회, 공연 등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다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조금은 다른 것이 있어야 쟁쟁한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남지 않겠어요?ㅋㅋ 그래서, ‘존경‘은 조금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갱지 2020-08-29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아가멤논이 너무 뻔뻔하고 열받게 굴어서, 결말이 뻔한 걸 읽으면서 승질냈던 기억만 남아있어요- 쿠쿠

겨울호랑이 2020-08-29 09:32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일리아스>에서 트로이 목마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그냥 중도에 끝나서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리아스> 2부가 있는 줄 알았어요.. ㅜㅜ
 

 시진핑이 그린 '뉴 실크로드'란 중국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각각 러시아와 이란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육로와 해상수송로,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극지방 항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로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땅과 바다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라는 방향성만은 확실하다... 창립 당시 57개국에 불과했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의 회원국 수는 오늘날 102개국으로 확대됐으며, 중국 자본이 약 1/3에 달하긴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자본도 총 20%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뉴 실크로드 전략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이는 실상 중국의 순수한 대외사업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


 이병한은 <유라시아 견문>에서 21세기를 유라시아의 세기이며, 유럽과 아시아의 협력의 시대로 예상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이 시진핑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이며, New Silk Road라 불린다.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는 이를 통해 유라시아 각국들이 새롭게 문명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달리 흘러간다.


 책임대국'을 표방하는 중국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20세기형 '강대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무력에 의존하여 패도를 행사하는 패권국이 아니라, '왕도의 근대화'를 도모한다. 20세기의 대장정이 21세기의 일대일로와 접속하는 연결고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1>, p407


 문제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순수하게 이웃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대일로를 위해 우선적으로 중국은 항만 등 대규모 설비투자를 위해 자금을 대출해 주었고, 각국은 이를 활용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중국 자금의 사용이 위안화의 결제 비중을 높이는데 활용되고, 인프라 구축이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통해 자금을 활용하면서 유휴설비 문제도 해결하고, 구축된 인프라의 이용권을 획득하지만, 정작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이용한 회원국들은 과거 중국이 서구 열강에게 당한 '99년의 조차권'을 강요받는 실정에서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인프라 개발을 우선시 하는 것은 중국 개발 모델 자체가 인프라 구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 농촌 지역의 낙후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택한 인프라 중심 개발 모델은 주변국 및 수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뉴 실크로드 전략의 중상주의 측면은 명백하다. 중국의 대형 기업들에게 즉각적인 판로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설, 토목, 철강 분야의 기업들은 심각한 공급과잉에 처해 있었다... 또한 새로운 통로가 마련되면 중국은 그만큼 안정적인 수출입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4


 중국이 가는 길은 '가시밭길'에 가깝다. 부패문제는 물론 분별없는 차관에 대한 비판도 거세고, 사업계획 역시 무모할 정도로 방대할 뿐 아니라 수익성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혜국인 개도국을 부채의 덫에 빠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2018년 스리랑카는 못 갚은 빚 대신 중국의 다국적 기업 자오상쥐 그룹에 무려 '99년 임차'로 항만 운영권을 내주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중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럽연합의 구조조정 및 긴축정책 상황을 이용해 그리스 피레우스 항을 접수한다. 스페인 발렌시아와 빌바오 항만 컨테이너 기지도 상황은 비슷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8>, 흔들리는 '뉴 실크로드 전략', p14


 이러한 현실을 생각한다면, <유라시아 견문>에서 말하는 '책임대국 중국'은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 설사 중국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해 많은 투자가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것은 '21세기 패권국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이웃 국가들에게 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물론,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의 싹이 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재편될 것이고, 새로운 중심국이 떠오를 것이고, 중국이 이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변화의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운 가운데 변화에 대한 과도한 낙관 또는 비관을 우리 모두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는 21세기 유라시아로 가더라도, 단기적으로는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시세와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말기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며, 미국적 세계화의 끝물이다. 그러나 탈근대도 아니요, 반세계화도 아니다. 구미적 근대에서 지구적 근대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적 세계화에서 세계적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화와 세계적 세계화의 최전선에 유라시아가 자리한다. 구 舊 제국들은 귀환하고, 옛 문명들은 복원된다. 동서고금이 사통팔달 회통한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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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2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을 대륙이라 부르는 그들의 국민의식은 경제가 발전하고 여유가 생기면 나아질 것같습니다. 그들의 마음대로 정치가 좀 바뀐다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려 언제 강제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항상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6 11:05   좋아요 2 | URL
중국의 정치체제 문제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 여겨집니다. 소수민족자치구를 포함한 현재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체제로 가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개인의 자유가 통제받기에 시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겠지요... ‘대국‘과 ‘개인의 자유‘ 라는 상충된 가치에서 중국 인민들의 선택이 중요하겠지요...

페크pek0501 2020-08-26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일본의 아베가 물러나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정세도 변화할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있고 없음에 따라 역사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겨울호랑이 2020-08-26 19:05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역사를 이루는 힘은 시민, 민중, 다중으로 불리는 이들로부터 나오지만, 이러한 힘의 방향을 정하는 키 역할을 하는 것은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도도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에서 지도자의 중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1937 ~ ) 작가를 매우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모은 그의 작품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특히 <로마인 이야기>는 작품이 나오는 매 해마다 화제가 되는 인기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동양인의 관점에서 서양역사를 다룬 신선함 때문이 아닐까. 동양문명권에 속하는 일본인이 오랜 이탈리아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역사서는 사실감과 공감을 같이 주며 높은 인기를 끌었으리라. 시기적으로는 IMF 금융위기를 맞고 있던 시기에 나온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의 내용은 우리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도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을 접한 것은 1998년이었는데, 금방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에 매료되어 서점에 책 주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내게는 거의  잊혀진 작가가 되버렸지만 언젠가 그의 작품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밀린 과제를 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정리해본다.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 세계는 두 남자가 중심에 자리한다.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 ~ 1507)와 율리우스 카이사르(Imperator Julius Caesar, BC 100 ~ BC 44)가 그들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설 야망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작품 세계의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초기 주로 르네상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쓴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르네상스의 여인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이 이 시기에 씌여진 대표작이며, 이들 작품은 '체사레 보르지아'와 연결되는 구도를 갖는다. <신의 대리인> 의 4인 중 알렉산데르 6세는 체사레의 아버지이며, 율리우스 2세는 체사레를 몰락시킨 장본인이다. <르네상스의 여인들>에서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체사레의 여동생이며,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체사레와 직접 대립하다 포로가 된 비운의 인물이다. 

 

 마키아벨리는 귀족세계에서 보자면 독립적인 인물이지만, 체사레의 언행을 기록하는 일종의 복음사가 역할을 작품에서 담당한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한 시대의 천재도 지나가는 인물에 불과하다. 이같이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세계에서 중심은 '체사레 보르자'이며, 시대정신은 '인간해방' 이 아닌 '이탈리아 통일'로 표현된다. 짧은 시기를 불태우고 사라진 젊은 야심가에 대해 <군주론>에서 내린 체사레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는 분명하고 냉정하지만, 작가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애도 행렬에 동참시킨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의 서두에서 우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기둥 카이사르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머리말에는 체사레의 보검과 군기에 새겨진 'Aut Caesar, Aut Nihil' (카이사르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냐)라는 문구가 소개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다음 시선이 향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시오노 나나미는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성공한 야심가'에게 헌정한다. 전체 15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 속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직접 할당된 분량은 낱권으로도 두꺼운 2권에 해당한다. 로마 1,000년의 역사에서 한 개인에게 이만한 분량이 할당된 것은 <삼국사기>에서 김유신이 차지하는 위상에 견줄만하다.


 개인적으로 <로마인 이야기>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은 포에니 전쟁을 다룬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평전이라 할 <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상)>과 <로마인 이야기 5: 율리우스 카이사르(하)>라 여겨진다. 재미와는 별도로 유익한 책을 고르자면,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 생각된다. 이 작품은 시오노 나나미의 상상력이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되어 건조하게 씌여진 작품들이지만, 그 덕분에 역사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라 여겨진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품 전체의 구성은 Pre- Caesar, Post- Caesar라고 할 정도로 카이사르의 존재는 분기점이 된다. 작가는 초기 로마인들이 융성할 수 있었던 원인을 주위 다른 민족들의 장점을 흡수하는 융통성과 로마의 실용성에서 찾는다. '로마인 정신'으로 표현되는 로마인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서술은 상대적으로 정복당한 민족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피해를 보는 민족이 그리스 민족이다. 이런 관점을 알고 나면, 나중에 나올 <그리스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대충 짐작된다. 이는 다시 뒤에서 다루도록 하자.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이지만, 시리즈의 절정은 5권 카이사르편에서 일찍 끝난다.그래서, 작품이 6편이후로는 늘어지는 감을 받게 된다. 카이사르 시대를 지났지만, 작가는 이 천재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고 그를 자주 소환한다.  '카이사르라면 그러지 않았을테지만, ~', '카이스라의 의도와는 달리 ~ ' 라는 식으로 소환되는 카이사르는 후세 황제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한 작가의 감정에 따라 후세 황제들의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위험이 눈에 거슬리지만, 이는 뒤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약과다. <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이후 본격 등장한 그리스도교는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에서는 로마의 정신을 파괴한 '제국의 악(惡)'이다.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이민족 게르만 민족은 오히려 로마의 정신을 받아들인 개종자로 그려진다는 점이 작가가 바라보는 로마사의 독특함이라 생각된다.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결국 로마를 멸망시킨 장본인은 '그리스도교'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두 인물인 체사레 보르자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들 사이에는 중세(中世) 1,000년의 시간이 놓여져 있다. 작가는 이 기간을 여백으로 두지 않고 작품으로 메운다. 이 시기를 다룬 작품으로는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전쟁 3부작>이 있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싫어하는 교회사를 굳이언급하지 않고,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마련하지만, 덕분에 이 부분의 역사서는 주로 전쟁사에 머무르는 한계가 느껴진다. 다만,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예외다.  


  크게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작품둘이지만, 개인적으로 주목할 작품은 초기에 씌여진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 여겨진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작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났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로마인 이야기>에 비하면 대중에게 큰 인지도가 없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세계관의 다른 축이라는 면에서 가지는 의미는 각별한 작품이다.


 작가는 동지중해 해양 제국으로 융성 이후 상업으로, 다시 19세기 이후에는 관광을 통해 서서히 쇠락해간 베네치아 1,500년 역사를 그려낸다. 이 작품에는 대략적으로 훈 족의 침입을 피해 바닷가에서 형성된 어촌 도시 베네치아가 상업으로 커나가고, 제4차 십자군을 통해 동지중해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과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 속에서 키프로스, 크레타를 잃고 무너지는 역사를 담고 있다. 이후 베네치아는 수공업과 관광을 발전시키며 다른 의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다 나폴레용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작은(?) 도시 국가 베네치아의 역사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개인적으로 작가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한때 동아시아를 제패한 일본제국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일본 정치관료들의 내각책임제를 통해 이루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베네치아 제국의 꿈이 무너졌을 때, 작가는 미국에 의해 대동아공영권이 무너져 내렸던 제2차 세계대전 패전순간을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이후 베네치아가 내륙의 수공업과 관광으로 부흥했다는 사실을 통해 식민지를 잃은 일본 제국의 갈길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작품 속에 표현된 작가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생각에 다른 근거가 된다. 작가는 작품 안에서 외륜(外輪)과 내륜(內輪)으로 표현되는 베네치아의 귀족정을 이상체제로 그린다. 불과 수백 명의 귀족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이 되는 체제에서 오늘날 일본 내각책임제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체사레 보르자, 우아한 냉혹>, <로마인 이야기>에 나타난 1인 천제에 의한 제국을 이상체제로 생각하는 작가지만, 이러한 체제가 어려울 경우 플랜 B로 귀족정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전후 일본이 걷는 체제의 길이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절묘하다. 이런 이유로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작가의 정치철학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시오노 나나미를 정치적으로 플라톤주의자에 가깝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플라톤주의자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그리스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해보자. <로마인 이야기>와는 달리 이 작품은 선뜻 손이 가질 않았는데,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제는 작가의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작품의 대강 전개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혼란을 잠재운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 356 ~ BC 323)가 카이사르 정도의 위치로 그려지고, 그 이전 역사는 영웅의 탄생을 위한 준비된 혼란(chaos)로 설정되지 않을까라는. 실제로, 이런 짐작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이 작품의 의의를 찾는다면, 카이사르 정신의 근원을 헬레니즘(Hellenism)으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제국의 정신에서 찾는다는 것이고, 이를 요약하면 민족을 초월한 포용과 혁신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주의 세계관을 보다 앞선 시대로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 세계관에서 <아이네이스>와 같은 위상을 차지한다 여겨진다. 이는 <대망 大望>의 작가 야마오카 소하지(山岡莊八, 1907 ~ 1953)가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근거를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1534 ~ 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 1537 ~ 1598)의 천하인(天下人)에서 찾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외 색채로망 3부작이 있지만, 역사철학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니 짚고 넘어가자.


 이제 길었던 페이퍼를 정리해보자.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을 이룬 남자(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제국을 꿈꾼 남자(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로망을 갖는다. 이들의 야망을 사랑한 작가는 작품 안에서 이들의 야망을 미화(美化) 시키고, 그들의 약점을 필멸의 인간이 갖는 본연의 한계로, 그들의 비극을 시대적 한계로 그려낸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 뻗아나간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와 발칸반도의 베네치아를 경계로 갈리아의 카이사르와 로마냐 지방의 체사레가 양분하는 지중해.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지중해임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즐겨본 만화 중 <은하철도 999>라는 작품이 있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의 마지막은 '안녕 은하철도 999... 안녕 소녕의 날이여..'라는 말로 끝난다. 청년 시절을 함께 했던 그의 작품들. 이 페이퍼를 마지막으로 뒤늦은 인사를 한다. 


 안녕, 시오노 나나미... 안녕, 나의 젊은 시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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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8-24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손절한 작가의 흥망성쇠를
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로마인 이야기>의 열혈 팬
으로 전권을 모두 읽었답니다.

읽으면서도 내내 유사 역사주의자
로 변신한 작가의 집필 의도가
영 내키지가 않더군요. 특히 카이사
르에 대한 열렬한 찬사 그리고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로마 멸망
의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도입이라는
전제로 한 전개가 특히 그랬습니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두 기초가 로마
와 기독교 문명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아빠 찬스로 영웅 행세를 하던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소설은 정말...
아빠 찬스가 사라지자 결국 팽당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요.

<그리스인 이야기>는 패스했습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책이지 않나 싶어
서요.

일찌감치 손절한 작가에 대한 페이퍼
훌륭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4 19:48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합니다.^^:) 한때 좋아하던 작가엿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제 생각이 치우친 생각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레삭매냐님과 저와 같은 이들의 생각이 모여, 이제는 작가의 진면목을 보고 바르게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2020-08-24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때 열광했으나 끝까지 읽어낼 동력을 잃어버린 작가,
더 이후에 보니 대망을 쓴 작가나 시오노나 결국은 일본 제일주의의 시각을 가진
극우주의자 들인게 점점 묻어나 보여 오만정이 떨어진데다 늙어가면서 점점 더 세계를 향한
시건방진 태도하며, 비전문인 이라는걸 코에 걸고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요리한 망발이라 할까요.
그런걸 다 인지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분량을 읽어내신 님이 놀랍다고 할까요, 네, 대단하십니다.

2020-08-24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텔게우스 2020-08-24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으니 저도 십여년 전에 카이사르편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작가가 묘사한 카이사르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도 꽤나 흥미롭군요. 그러나 세계관에 대해서 결코 동의하긴 어렵겠네요. .
정성껏 작성하신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4 23:15   좋아요 1 | URL
베텔게우스님 감사합니다. 다만, 제 페이퍼에 쓴 글은 주관적인 생각이라 작가의 세계관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나 문제점도 보인다 정도로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항상 즐거운 독서되세요!^^-)

AgalmA 2020-08-27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세에 영웅이 나오기도 쉽다는데 요즘 보면 영웅은 눈을 씻고봐도 안 보이는... 영웅이 나오기도 어려운 난세일까요, 고전적 영웅이 재현되기 어려운 시대인 걸까요. 100년 뒤쯤이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영웅이 보이게 될까요ㅎ;
100년이 뭐야 10년도 못 넘기는 작가의 한계 생각하면 지금까지 남아 호평받는 책은 정말 아끼고 사랑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7 14:27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AglamA님 말씀에 매우 공감하는 게 이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라 보다 검증된 책들에 손이 갑니다. 오랜 시간의 검증 속에서도 절판되지 않고 살아남는 책이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진정한 영웅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punster 2020-08-29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게의 추를 조금 옮겨놓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로마인이야기.
갈리아인을 바라보는 로마인의 시각이 마치 일본 식민지시대의 조선인을 바라보는 듯하여 불편하긴 하지만 서로마의 장대한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필력은 경탄할 만하지요..
잘 정리하신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세계를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9 21:42   좋아요 1 | URL
네 punster님 말씀처럼 낯선 서양 고대사의 세계를 한결 가깝게 그려낸 것은 뛰어난 작가의 역량이라 생각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사상에는 동감할 수 없지만, 말씀하신 부분은 인정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바다숭어 2021-02-07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깊이 공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7 08: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다숭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얼킁이 2021-07-12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니 나나미의 저서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이 돋보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7-12 23:08   좋아요 0 | URL
얼킁이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3.254. 나라는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시카리파라는 새로운 강도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한 대낮에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인을 일삼는 자들이었다. 255. 특히 그들은 축제일에 무리 가운데 섞여 있다가 옷 속에 숨겨둔 칼로 상대방을 찔러 살해했다. 적이 쓰러지면 살인자들은 군중 사이로 숨어들어가 무리의 일부인 것처럼 행세했다. 이런 뻔뻔한 행위가 도처에서 자행되었다.(p228)... 2.408. 이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던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마사다라고 불리는 요새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이곳을 급습하여 차지하고 로마 경비병들을 죽였으며 그곳에 자기편 소속의 군인들을 배치했다... 409.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아들로 당시 제사를 주관하던 자들을 감독하던 용감한 젊은이 엘르아살은 이방인으로부터 어떠한 예물이나 희생제물도 받지 말라고 명령했다. 로마와의 전쟁 시작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다.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1>, p258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 ~ AD 100 ?)의 <유대 전쟁사 The Wars of the Jews>는  AD 70년 경에 있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IV, BC 215 ~ BC 164)의 예루살렘 침공부터 마사다(Massada)에서의 최후의 저항까지의 역사를 다룬 역사책이다. 처음에는 유대 저항군의 입장에서 서 있다가 이후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 AD 9 ~ AD 79) 장군(후에 황제)에게 투항한 이후 로마군의 입장에서 예루살렘 함락까지를 지켜보게 요세푸스. 그는 유대 전쟁의 시작을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아들 엘르아살의 마사다(Massada) 요새 점령으로부터 잡는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유대 전쟁의 마지막도 바로 이 요새에서 장식하게 된다. 최초이자 최후의 항쟁지 마사다 요새. 그곳은 어떤 곳인가.


 1.252. 플라비우스 실바가 유대지역의 통치권을 물려받았다. 그는 모든 유대지역이 로마에 정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요새가 아직도 반역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고, 흩어져 배치되어 있던 병력을 모두 집결시켜 이 요새를 치러 갔다. 이 마지막 요새는 바로 마사다였다. 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p283

  

[사진] Massada(출처 : https://www.secrettelaviv.com/best/activities/massada)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의 초급 장교들이 임관 직전에 반드시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로마군의 공격으로 예루살렘(Jerusalem) 함락 후 최후의 저항을 한 곳으로 알려진 마사다 요새. 생존자 없이 전원 자결하여 비장함을 풍기는 이곳에서 이스라엘 청년 장교들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고 들었다. 이를 장교 임관 전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올라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되새기는 프로그램 중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와 같은 의미를 남한산성이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그보다는 한강대교에 가서 한국전쟁 당시 수뇌부의 수많은 피난민과 군인들이 건너고 있는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갔었던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편이 보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도 '마사다'는 비장한 장소로 여겨지지만, 당시의 상황을 지켜본 역사가 요세푸스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나 보다. 그의 눈에 마사다에 모인 이들은 광신도(狂信徒, zealot)에 불과하다.


 253. 마사다 요새를 지키던 시카리파 수장 엘르아살은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유다의 후손으로, 이 유다는 퀴리니우스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실시한 인구조사를 거부하라고 많은 유대인을 선동한 자였다. 254. 시카리파 유대인들은 로마에 항복한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재산을 강탕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255.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자유를 지키려고 투쟁해온 노력을 불명예스럽게 포기한 채 로마인의 속박 아래로 스스로 몸을 내던진 자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256. 왜냐하면 시카리파는 이들과 더불어 반란에 가담하여 로마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동족 유대인들에게 가장 지독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258. 더욱이 시카리인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드러나자 그들의 악행에 대해 정당한 비난을 퍼붓는 동족들을 더 가혹하게 다루었다... 260. 개인적이든 혹은 사회적이든 간에 모든 사람이 마치 전염병에 걸린듯이 범죄에 물들여 있었다... 262. 가장 일선에서 동족에게 불법과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바로 시카리인들이었다. 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p283


 처음에는 사두가이파에서 바리사이파로 개종하고, 다시 로마군에게 투항한 요세푸스. 동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세푸스는 변절자겠지만, 유대 전쟁 전체를 떨어져서 바라본 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그에게 메시아(Messiah)의 재림을 기대하며 전쟁을 주장한 시카리파와 젤롯당들은 예루살렘 파괴의 원인제공자에 지나지 않는다.


 268. 이들은 유대 사회의 모든 질서를 남김없이 파괴하고 온통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이른바 젤롯당으로 불리는 족속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 이들은 젤롯이라는 이름대로 행위에 열심을 다하는 자들이었다... 270. 그들은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뜻에서 스스로를 열심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열심'이라는 말의 뜻을 야만스러운 성품으로 간주했던지, 혹은 가장 흉악한 범죄를 선한 일이라고 여겼던지, 사실상 그들은 그 이름을 조롱거리로 삼을 만한 행위를 일삼았다.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p285


 광신도의 열정이 부른 마사다의 비극.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의 마지막 주제다. 이 사건 이후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기까지 2,000여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렇지만, 더 큰 비극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광신도들의 잘못된 믿음이 가져온 폐해는 어제 오늘날의 문제는 아니지만, 2020년 광화문 집회 이후 이 문제는 더욱 아프게 다가오고, 우리의 삶이 비극(悲劇)으로 가는 듯 하다.

 

훌륭한 플롯은 단일한 결말을 가져야지,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 이중의 결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행 때문이 아니고 중대한 하마르티아(hamartia 과실) 때문이어야 한다. _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3장 11 ~ 15, p38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3)의 <시학 peri Poietikes>에서는 훌륭한 비극의 플롯을 '중대한 과실에서 오는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전환'을으로 언급한다. 연일 쏟아지는 확진자 안내 문자를 보면서 얼마전까지 'K방역'의 성공이 또다른 시카리파에 의해 훼손받고 있음을 절감한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현실이 비극의 플롯요소를 잘 갖추고 있지만, 아직 극(劇)은 끝나지 않았기에 조용히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 누가 또 알겠는가.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 ~ 1906)의 <인형의 집 Et Dukkehjem >에서처럼 일반 대중들이 강력히 희망하면 작품의 결말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뀔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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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2020-08-3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글 잘읽고 갑니다...저도 꼭 사봐야겠네요...^^

겨울호랑이 2020-08-30 14: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마님 즐거운 독서, 건강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