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 -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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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상봉 교수가 2004년에 쓴 '한국 학벌 사회 문제'에 대한 쓴소리다. 

조선 말, 정조 임금이 죽은 후 순헌철 3대 임금 60년간, '벌열 정치'가 판을 치게 되었고,
그 뒤에 권세를 잡은 세력들 역시 자기 권력을 지키려 외세를 들여와 동학군을 죽이곤 했던 나라.
결국 식민지로, 전쟁터로, 군사 독재의 싸움터로 수 세기를 살아온 특이한 섬나라, 한국.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경제적 발전을 이룬 나라의 하나지만,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것으로 보아, 삶의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나라 축에 들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교육비'로 성적을 무색케 하는 나라.
그 모순의 핵심에 들어앉은 문제로, <학벌 사회>를 들고 나섰다. 

학벌없는 사회... 만들기 운동을 펼친 김상봉 교수의 소회를 아주 두꺼운 책으로 써서, 강준만 교수보다는 좀 있어보이는 책이 되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왜 그런 걸까? 

책을 읽고 난 소회는, 결국 역사의 더께 속에서 형성된 <학벌 사회>의 현실을 타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민중의 저항으로, 결국 <의식화된 민중>의 연대로 깨부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서로 주체성이란 용어를 써가면서 역설하고 있는 것인데, 권영길,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등 진보적 세력조차도 서울대 출신임을 고려한다면, 학벌 타파란 과제가 정말 장구한 세월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번 주는 대학 입시를 위한 수시모집 원서 접수로 혼이 나간 일주일이었다.
그렇지만, 상담을 하면서도 참담한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은 '공부를 하는 학문의 요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한국 대학의 존재 이유는 <배움을 통해 얻는 이익> 중에서도 '전문적 지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스펙(경력)'으로서의 그것이고, 졸업 후 헤쳐 모일 때, 좀더 튼튼한 동앗줄 역할을 할 '신식 카스트 내지 문벌 가족'의 하나로서 <대학의 이익>을 구하는 것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학문의 구렁텅이 역시도 서울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의 <이명원이란 대학원생이 김윤식을 비판했다 매장당한 사건>에서도 학문의 내용보다 학벌은 우선됨을 보여주고 있다. 김윤식이란 대단한 존재가 길러낸 서울대 국문과 출신 교수들에게 김윤식 비판은 '사문난적'에 해당하는 괘씸죄였던 것이다.
교수 사회의 갑갑한 문벌 의식은 남다른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에서처럼 외국의 다양한 경험을 한 박사들을 개무시하는 풍토가 또 있을까? 그 대학의 학사, 석사, 박사를 주주룩 꿰어 차야만 그 대학의 교수 자리 하나 얻을지 말지라니...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야만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그리고 공부 하나 잘한다는 이유로 온갖 특권을 누리려는 1등병 아이들.
<학벌>은 불변성, 폐쇄성, 계급적 동질성으로 인해, 근대의 전통적 문벌 계급의 대체물이 되는 데 성공했다.
모든 아이들은 이 <학벌 사회>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인 바, 학벌의 타파가 한국 교육 개혁의 '화두'가 되어야 하고,
한국의 모든 정책은 그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어야 하는데,
<교육열>이란 이름으로 미화된 <제 새끼 학벌 사회에 편입시키기> 전략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여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붕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제거해 버려서, 돌이켜 생각하거나 더불어 생각하는 힘을 거세했다.
무소유가 아닌, 무사유만이 살 길이고, 도덕성을 생각할 이유조차 파탄의 경지로 몰아버렸다.
사유와 도덕성이 붕괴된 것과 긴밀한 것이 예술 교육의 실종이다.
'개별적 경험'도 소중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일반적 특성'을 외워서 집어내는 시험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생각하는 힘, 도덕성, 예술적 감수성을 고려한 교육을 실시하면, 과연 교육이 실패할 것인지...
지금 이 땅을 휩쓸고 있는 자율형~ 광풍은, 음미체와 기술가정, 제2외국어 등의 과목뿐 아니라, 사회 과학 등도 퇴출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오로지 국영수만이 살 길인 모양이다.
나도 몽둥이로 무장하고 아이들에게 언수외만을 열공하라고 강요하는 간수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한 현실을 슬퍼하면서도,
또 몽둥이를 들고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전문대에서 학생 모집의 일환으로 고교를 방문했는데,
일본인 원어민 교수도 한 분 같이 왔다. 교무실 탁자 위의 몽둥이를 잡더니 이게 뭐냐고 묻는다.
사랑의 회초리라고 옆자리 교수가 알려주자, 자기 남편도 좀 때려야 겠다고 농담을 한다.
하긴, 한국인 남편이라면 좀 맞아도 되겠지만... 일본에선 때리는 교사는 있을 수 없단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라면, 예술, 기술, 학술... 같은 것인데,
한국 교육에선 이런 것들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앞차 꽁무니만 물고 달린다.
어디로 달리는지, 앞차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 좌고우면하며 고심할 틈이 없다.
오로지 위로, 위로 올라가던 애벌레처럼, 고민하면 뒤처질 뿐인 사회. 

예술, 기술, 학술 같은 활동을 통하여 <종합> Synthesis에 도달하는 것이 인간 정신의 고양인데,
이런 종합이 인간 정신의 자발성과 능동성의 산물인데, 한국 학교에서 자발성, 능동성을 통한 종합적 발현은 학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입학사정관 제도는 이 종합적 활동을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고 하고, 실적도 없는 학생들이 오로지 경쟁률이 낮다는 이유로 원서 접수를 하고, 실적을 만들어 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대학의 서열화, 학벌이 인생의 큰 부분을 좌우하는 사회에서 사교육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
어느 정부나 '사교육 안정'을 정책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학벌 사회와 서울대 연고대의 서열이 튼튼하게 존재하는 한, 끝없는 제 살 뜯기는 반복된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학의 평준화, 서울대 학부의 폐지 등을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하지만, 이것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많은 반대자들과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정권이 바뀌고, 아이들만 혼란스런 사회가 반복될 것이 불 보듯 뻔 하여 답답하기만 하다. 

전교조 같은 진보적 성향의 집단과 깨어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기도 하지만,
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집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의견에 충분히 경청할 수 있는 귀를 가진 정치가가 없기에 이 일은 앞날이 암담하기만 한 것이다. 

무슨 경찰이나 교도관도 아닌데, 매일 밤 10시까지 시간외 수당을 타는 나는 엄청 월급이 많다.
한 달에 시간외 수당으로 5,60만원을 더 받는다.
학부모들은 제 자식의 카스트를 결정지을 대입 사업에 제각기 골몰하는 상황이다.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읽으면서, 노력은 가상치만,
그들의 노력이, 정말 '가상 현실'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수당만 타먹는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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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가르치기 -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핀켈 교수의 새로운 교육법
도널드 L. 핀켈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알묘조장이란 말이 있다.
揠苗助長(알묘조장)[揠:뽑을 알, 苗:싹 묘, 助:도울 조, 長:길 장] 성공을 도와준다는 것이 싹을 뽑아올려 자라게 해서 결과적으로 망치는 일. 

한국의 교육이란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성공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해! 이러면서 비교육적인 일을 자행하는 일, 그걸 교육이란 이름으로 덧칠한 역사.
그래서 과외를 하는 것이고,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촌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을 용인했던 것이다.
어른들의 가치관을 내세우면서 그대로 따라하라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 따른 가르침. 

서태지가, 됐어, 됐어 이제그런 가르침은 됐어~하고 소리지른 게 벌써 17년이나 지났는데, 매일아침 7시 30분까지 우릴 이 좁은 교실에 몰아 넣는... 어른들은 그대로를 넘어서, 아이들을 지옥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여고괴담과 고사 같은 영화도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내가 초중고대원까지 18년 반을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인상적인 수업은 딱 한 강좌 들었다.
대학원에서 깐깐하다고 소문난 교수님 강의였는데, 괜히 공부하고 싶단 생각에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국어학 강좌를 신청했다.
첫시간 갔더니 학부에서 갓 올라온 20대 중반의 남학생 하나, 여학생 둘, 그리고 노땅 나 하나... 이랬다.
교사 원생들은 절대로 신청하지 않는 강의인데 신청한 나를 교수님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듯...
뭐, 첫 시간 오리엔테이션 시간부터 빡셀 것으로 느껴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강의만큼 나를 단련시킨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매 시간 자료를 요약해서 발표해야 하고, 따로 제시한 과제도 레포트로 작성해서 내야 했는데,
내가 그 강의를 유독 인상깊게 여기는 것은, 그 교수님이 내 글을 참 좋아해 주셨다는 데 요인이 있다.
그 교수님이 공저자로 펴낸 책에 리뷰를 올리기도 했는데, 딱 내 글을 보시더니 정선생 글이 참 맛있다는 평을 해 주셨던 거다.
학부에서 갓 올라온 어린 원생들이야, 경험이 부족하니 교수님이 던져주는 과제를 버거워하기 바빴지만,
직장인인 나야 15년 이상의 경력자였으니 과제를 하는 일도 수월했다.
결국, 그 강의는 교수님과 나의 대화시간 비슷하게 흘렀고, 논문도 교수님 강의의 한 꼭지를 참고하여 쓰게 되었다.
불행히도... 그 교수님이 젊은 나이에 작고하셨다는 풍문을 술자리에서 듣고 말았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니 유감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교수님이 불현듯 그리워 눈물이 다 나려 한다.
고인이 되었단 소리 들었을 때야 뜨악해서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대학원의 한 강좌로 만난 인연이 이렇게 교수님 강의를 들은 지 7년이 지나서 눈물을 빼는 일도 있다.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는 법이다. 

이 책의 요점은, 교사나 교수는 지적인 쇼를 하기 쉬운 직업인데, 아무리 명강의라 할지라도 학생에게 바로 교육의 효과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핀켈 교수가 집착한 듀이와 삐아제에게서 '경험'을 통한 학습, 그리고 '인간 지능에 대한 신뢰'가 만든 것이 '마우스 셧'이란 도구로 가르치기,를 이 책의 제목으로 삼게 한 것이다. Teaching with your mouth shut! 

가르치는 일을 주로 입으로 나불대며 지식을 읊는 것으로 여기는데, 거기다 입을 다물라는 도구를 붙였으니, 한 문장에 모순된 두 주장을 담은 <역설>로 보여지지만, 책을 읽노라면, 결코 그 주장이 역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한국 교육의 맹점은 학교교육이 '잘못된 평가 방식'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고,
그 잘못된 평가 방식이 모든 학생을 '줄세우기'에 치우쳐, 불필요한 부가적 학습이 과잉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누구나 알지만, 손을 대는 일은 쉽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 '자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것은 등록금 자율화나 학생 선발, 수업의 양 같은 것을 자율로 한다는 데 있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입학사정관제의 미래가 자율화와 맞물려야 하는 것인데도, 그런 철학적 기초를 이해한 입학사정관이 얼마나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단적으로, 모든 학생을 입학사정관제로 입학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수능과 내신, 논술 등 평가에 학교 교육과정이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 활동을 할 수도 있고, 분명히 학교에는 이런저런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독서를 하고, 그 독서 내용을 토대로 토론과 글쓰기를 하고,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에 의견을 공유하는 선생님들도 세상에는 많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입시 지상주의>가 대세인데, 그런 활동들이 <입시에 지극히 도움>이 되었다는 논문이 나오기 전에는 그런 것들에 초점 맞추기 어렵겠지만, 변화는 언제나 밑에서 일어나야 하는 법이다. 

핀켈 교수는 <일리아드>같은 유명한 고전을 통하여 학생들이 독서, 토론, 작문, 편지쓰기 활동 등을 자발적으로 <세미나>형식으로 이끌어 내는 방식을 제시한다. 교사나 교수가 굳이 입을 열어 설명하는 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책은 교사의 설명 없이도 교육적 기능을 발휘한다.(73)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가치를 90%는 제시한다. 나머지는 그 좋은 책을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 교육적으로 활동하도록 학생들을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학생들의 세미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교사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권위'를 얻게 된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교사는 분명히 권력을 행사한다. 수업 방식을 결정하거나 수업 내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침묵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훨씬 '권위'를 얻는 말이 되어 인상적인 교육이 이뤄진다는 것. 

관심, interest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사이 +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사이에 있다, 곧 욕구와 충족 사이에 관심이 있다는 것.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소 습관을 바꾸고 행동 양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114)
글 속에 파묻혀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관심과 변화, 삶에서 놓치기 쉬운 덕목이 아닌가 싶어 남겨 둔다.
그래서 루소는 '현재의 관심이 배움의 가장 큰 동기이자 끝까지 이끌어줄 유일한 동기'라는 말이 유의미한 것이다. 

지도 교사는 사전에 충분히 자료를 검토하고 섭렵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지도자료를 제시하고, 침묵하면, 나머지는 학생들이 길을 찾아 간다.
그 길에서 지도자는 평가 제시도 하고, 편지를 통하여 정의적 충동질로 강화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빨간 펜을 들고 학생의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150)
학생들도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을 들여서 보고서를 읽는지 잘 안다.
편지를 통해 내가 자기 글을 진지하게 읽는다고 여겼다. 다음 번 보고선 더욱 진지해진다.
아, 성의없는 코멘트가 학습 의욕을 북돋우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다.  

글쓰기는 발견과 소통의 길로 이어진다고 가르친다.(159)
발견의 길에서는 진지한 질문에서 출발해서 질문을 마음 깊이 새긴 후 교재로 돌아와 형식과 문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쓰면서 생각을 발전 시킨다. 발견의 길의 최종 목적지는 논제를 찾는 것, 곧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배움의 최종 결과물이자 결과물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공동 탐구와 집단 탐구 과정으로 글쓰기를 쓰게 하여, 서로 돌려보기 위해 글을 씀으로써 결과를 공유하게 되었다.  

수업을 글쓰기 모임으로 운영하면 '조용한 학생'도 더이상 '이류 시민'으로 머물지 않게 된다.(166)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통해 배운 것이 더 많은 나로서도, 지금의 토론 능력이나 리뷰 작성의 틀 같은 생각은 모두 대학의 친구와 선배들에게서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발견과 소통을 통해 이류시민에서 '대자적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것을 고려하면서 성숙하게 대화하게 되는 자아 말이다. 

보통 회의, 라고 하면, 엄격한 절차적 구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회의는 절차보다는 발견과 소통에서 나오는 것인데 말이다.  

경험을 제공하고 생각을 불러 일으켜라!(287)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함축한 말이다. 교수는 말로 인기를 끌 것이 아니라, 유의미하다고 생각된 경험을 조직하에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생각을 불러 일으켜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의 교수법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교육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건설적인 과정(296)이라고 듀이가 말한 것이 1916년이라고 한다.
세계대전 이후의 진보주의 교육이 경험을 중시하게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에 집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미래 교육을 내다보게 하는 이론적 토대로서 듀이와 삐아제의 이야기들은 한국적 토양에서 상당히 유의미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50% 이상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그렇지만, 경쟁만 있고 경쟁력은 없는 교육. 

한국의 교육이 붕괴되는 것은,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이기 쉽다.
이미 한국의 교육을 거부한 사람들이 자식들을 외부로 내보내고 있지만,
외국 학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학교들은 스르르 사상누각의 붕괴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내년부터 자율형 공립고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철학적 토대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면 있긴 할 것이다.
철학적 논의가 제도적 실험으로 이어지도록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 현실에 안주하며 개인적 영달을 꿈꿀 것인가...
요즘 화두 하나 붙안고 잠을 못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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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2-08-04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의토론논술 연수를 듣고 있습니다. 강사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시네요. 읽고 저를 단련시켜 볼 작정입니다.
 
핀란드 교육혁명 - 39인의 교육전문가, 북유럽에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보다 한국교육연구네크워크 총서 1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총서기획팀 엮음 / 살림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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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인의 교육전문가가 핀란드를 찾아 갔다.
무제한 경쟁의 <자율화>만 허용되는 한국의 교육 제도는 급기야 한국을 세계 최저 출산율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로 학생들의 자살도 자율화되는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초딩부터... 

물론 핀란드는 한국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단점은 빠른 시간 내에 효과를 거두려는 생각으로만 가득하단 것인데,
핀란드의 성공의 밑바탕엔 기나긴 세월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물들이 축적된 것이 보인다. 

PISA 국제 학력 평가에서 주목할 만한 나라가 핀란드와 한국이다.
그러나 한국의 높은 성취도는 주목받기보다 욕듣기 십상이다. 과도한 과외 수업이 형성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여느 국가처럼 애들이 공부를 적게 하는데, 최상위권의 성적을 얻으니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각개약진에 골몰하는 부모들의 무능력과 무신경.
싹을 기르는 게 아니라, 싹을 뽑아내서 커보이게 만드는 알묘조장의 현실은 비참하다. 

유아 교육, 예술 교육, 통합 교육, 느림을 실천하는 취학전 교육...
수십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온 그들의 제도를 읽는 일은, 각박한 한국 사회를 살아온 나에게 고통이었다. 

교사들에게 교육 개혁의 의지를 심어주어 성공한 나라.
그리고 교사들에게 강한 자부심을 심어준 나라.
여느 나라처럼 '결과 통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꿋꿋하게 심지를 지키는 나라. 

핀란드 교육의 성공 비결을 Aho는 6가지로 요약한다.
1.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초교육 제공,
2. 우수한 교사와 교사 교육
3. 지속성있는 리더십
4. 교육혁신을 가치롭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
5. 유연한 책무성(시험 아닌 깊이있는 학습 강조)
6. 신뢰의 문화(투명한 거버넌스) 

한 마디로, 국민의 신뢰가 일구어낸 결과물이다.
불신으로 점철된 한국 교육이 각개전투와 약진만을 허용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
과연 그들에게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질보다는 양, 과정보다 결과, 내실보다 서열... 한국 교육의 자화상이란다. 
핀란드의 과정 중심, 목표와 철학 등을 배우기엔 돌아갈 길이 너무 먼 건지... 

1960년대 변혁의 물결을 타고 핀란드는 사회 개혁에 성공한다.
대한민국은 그 시대를 박정희 신드롬과 함께 군사독재 문화 속으로 고고씽했을 뿐이고... 

1. 우수한 교사의 양성과 제공
2. 석차 산출 없는 평가
3. 계열화 능력별 집단화 지양하고 이질집단 편성 등의 학생 요구 반영
이런 결과가 학교간 차이가 적고, 하위권 학생이 적은 결과를 낳은 교육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는 것. 

일본과 프랑스는 52, 53%가 수학에 불안을 느끼는 반면,
핀란드는 7%에 그친다. 교실의 테스트가 학습 기회 제공을 위한 평가로 제한되기 때문이며,
단순한 지식의 숙달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기술의 전수 차원에서 요청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핀란드에서는 최고의 건축가들이 학교를 짓는다.(235)
독일에서는 안 그런가요?  
ㅎㅎ 한국에서도 최고의 건축가들이 학교를 짓는다. 다만, 그 최고는 낙찰의 달인 면에서 최고란 점이 다를 뿐. 

핀란드 교육 과정의 초점은 재미있다.
1. 초기 단계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조기 조치를 중시한다.
2. 개별화 학습으로 제각기 다른 경로를 밟을 수 있다.
3. 학교의 공동체적 성격이 강해 즐거운 학습에 도움을 받는다. 

국제 학업 성취에서 점수가 높아서 핀란드를 배우자는 게 아니다.
교육은 개성에 맞는 학력 추구,
도덕과 예술적 심성 경시하지 않는 교육,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는 교육,
학생들의 삶과 자유 촉진... 모름지기 이런 것들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기 때문에 핀란드를 주목하는 것이다. 

핀란드 학교라고 해서 천국은 아니다.
거기도 문제가 있고, 사고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282쪽의 도표처럼,
OECD 국가들의 유아와 보육에 대한 투자를 볼 때,
한국과 호주의 공적 지출이 탁월하게 저조한 것을 읽는다면,
그리고 한국의 지출에는 공적 지출보다 민간 지출이 훨씬 많은 것을 본다면...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할 바가 무엇인지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이 이렇게 복지적 차원의 교육을 논하기에는 지극히 식민지 자본주의적 구성을 이루고 있어,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는 일 자체가 오리무중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일 학교에서 달음박질치는 나로서는 좌절할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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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8-1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획기적인 교육 개혁이 필요해요. 양보다는 질을 원해요. 간절히!
도덕과 예술적 심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독서도 포함한.
이 저자중에 혹시 석남초 백준수 샘도 있나요?
핀란도 관련해서 추천 받은 책이 이건지 헷갈려서요.

글샘 2010-08-12 11:47   좋아요 0 | URL
제가 정년까지 이제 꼬박 19년 남았걸랑요.
그 안에 교육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맘이 돼요.
21년 전에 전교조가 생겼는데도... 각개약진으로 달아나니 말입니다.
저자 중에 그런 분은 안 계신데요...
핀란드 교육을 보시려면... <핀란드 교실 혁명>이 조금 재밌던데요...

세실 2010-08-12 12:35   좋아요 0 | URL
전 17년 남았습니다. 12월이면 20년 되고.....아 오래도 했다.
그러고보면 퇴행하는거 같아요.

핀란드 교실 혁명. 넵^*^
님 덕분에 좋은 책 많이 소개 받네요.
좋은 사람도 소개해 주세요. ㅎㅎ (농담^*^)

글샘 2010-08-12 20:12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람 또 없습니다. ㅎㅎㅎ

저도 3월이면 22년이나 돼요. 발령받은 것이 엊그제같은데... 헐~ 22년 이 일을 했다니... 무섭네요.

마녀고양이 2010-08-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핀란드 교육을 보니, 우리나라의 몰드로 팍팍 찍어내는 듯한 교육이 더욱 심란해지는군요.
저는 솔직히 시험도 오픈 북인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외워서 하는 시험은 세부 사항에 집착하여 전체를 못 보는 결과를 낳으니 말이죠. 개인적 의견이랍니다.
한번 읽어보고픈 책이네요~

글샘 2010-08-12 20:1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한국 교육 정말 한심하고 답이 없죠. 그치만 거기 살고 있으니 적응하지 않을 수도 없구요.
정말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 책만 읽고 있습니다.
 
송승훈 선생의 꿈꾸는 국어 수업 - 고딩들의 저자 인터뷰 도전기
송승훈 엮고 씀 / 양철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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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란 무엇일까?
사회 문화 시간에 배우는대로, 기능론적 입장에서, 살아오면서 전승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사회화 과정일까? 아니면 갈등론적 입장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후대에 심어서 계급 재생산을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수업은, 
경쟁 구조 속에서 끝없는 딜레마의 체인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짜여진 틀 안을,
방향도 없이 유영하고 있는 지식의 쳇바퀴가 아닐까 한다.
합의된 내용도 없는데, 무작정 경쟁으로 내모는 자율의 쳇바퀴는 아이들에게 무한 지식 도전의 동기를 줄 따름인저.
그 무한 지식은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오로지 한 줄로 세우는 데만 목적이 있는 그것을 위해 수업이 형식적으로 존재한다.
교과서를 사지만, 수능에서 교과서는 필요없다.
아이들은 교과서와 문제집과, 그 이전에 학원에서 던져주는 온갖 정크 푸드에 물들어버려, 수업 시간에 신선한 야채를 맛보게 하거나, 색다른 메뉴를 소개할 시간을 갖기는 어렵다. 

고딩들에게
1. 책을 읽고, 
2. 저자와 연락을 하여 인터뷰를 하라.
3. 인터뷰의 기본은 기획-연락-질문-사진-인터뷰-예절- 등이다. 

아이들은 일단 책을 골라 읽는 것까지는 쉽게 한다.
지도하면 서평을 적어내는 것까지도 쉽다.
지금 세대는 그야말로 '논술 세대'다. 잘 쓴다. 까치 글짓기 덕분이라고 농담하듯... 

그러나, 저자와 연락을 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저자는 개인 정보를 책에 적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살고있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남양주다.(수도권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아이들은 성공적으로 연락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기록으로 남긴다.
정말 훌륭한 수업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업은 수도권에서나 가능하고, 모든 학교에서 이렇게 하라고 교육부에서 시키면, 봉사활동처럼 또 쓰레기 수업이 될 일이다. 

교사가 읽어야 할 만한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는 것부터가 첫 단추다.
만약에 판타지 소설 작가를 만나도 좋다거나 했다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
아이들은 인터뷰를 통해서 예절을 알고, 지리를 배우고, 협동을 깨닫는다.
혼자서는 죽어도 못할 일을 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그들은 몸으로 체득하게 된 것.
이것이 인터뷰 수업의 가장 큰 교훈이리라.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은 좋은 책들이 많다. 아이들 지도에 참고로 해야겠다. 

정희진을 인터뷰할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통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insight. 통찰은, 보지 않아야 된다는 말. 눈을 감아야 새로운 삶을 볼 수 있다는 것.
기존의 것, 보이는 것에 목숨 걸지 않는 일이 통찰력의 첫 걸음. 멋진 말이다. 

또 여성학에선 언어 사용에 굉장한 의미를 두는데,
성희롱 - 섹슈얼 해리스먼트 - 를 성희롱...이라 하니 무척 가벼운 느낌이 든단다.
언어는 중립적인 게 없는 것. 주체가 분명한 것. 

고상만의 '인권은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란 설명도 쉬우면서 정확하다. 

인터뷰를 위해 대구까지 발품을 팔았던 아이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하여 고문에 대하여 듣고 배우는 아이들.
이런 것이 참 교육이고, 참된 수업이 아닐까. 

오로지, 문제만 풀어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의 하나를 얻게 된 소중한 경험!
고맙습니다. 송승훈 선생님.
나중에 기회 되면 소주 한 잔 삽지요. (이렇게 리뷰 쓰면, 간혹 저자가 토를 달기도 하는데, ^&^ 부산 오시면 회 한 접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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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06-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훌륭한 스승을 만난 부러운 고딩들.. 글샘님! ThanksTo♥~~

글샘 2010-07-01 10:42   좋아요 0 | URL
송승훈 샘께 thants to를 날리셔야죠~ ^^

전호인 2010-06-2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식있는 선생님들은 많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교육환경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교육환경!
어쩌면 좋을까요?
가정교육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느냐 그것도 중요하겠죠!
쌩유^*^

글샘 2010-07-01 10:43   좋아요 0 | URL
한국의 교육환경은, 학교가 자율화되지 못한 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는데요.
정말 괜찮은 인간을 기르려는 학교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ㅠㅜ
협동학습 없는 개별적 자율화는 경쟁력없는 무모한 경쟁만 기를 뿐인데 말입니다.

구름배 2010-07-1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저자 여기 대령입니다. 글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학생들과 제가 함께한 수업을 담은 책을 공감하며 읽어주시고, 마음 담아 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침에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딘가에 글을 쓰면 그렇잖아요. 이 글이 세상사람 어느 분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거든요.
글샘님이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으면 여름에 부산에 갈 거리를 만들어둘 걸 그랬어요.
제가 부산에 소주 한잔 얻어먹으러 가서, 회 한 접시 사주세요 하면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

올해도 저자인터뷰 하기 수업을 합니다.
1학년 1,2반을 제가 가르치고, 3~10반은 다른 두 분 선생님이 가르치는데
이 셋이 마음을 모아서 열 개 반 전체 학생들을 데리고 2학기에 저자를 만나고 오기로 했지요.
한반이 40명이니까, 다섯 사람씩 모임을 만들면 한 반에 8개 모임이 나오고, 전체는 모두 80개 모임이
80명의 서로 다른 저자를 만나게 된답니다. 2학기에 일이 끝나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활동을 눈여겨 보아주셔서, 제 가슴이 뿌듯합니다.
이곳을 둘러보니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여러 편 있어서 앞으로 종종 들러서 글 읽게 되겠구나 싶어요.

- 송승훈 올림

글샘 2010-07-10 10:41   좋아요 0 | URL
아앗! 저는 대령이라고 해서, 웬 군인? 이랬다는...
구름배님이 선생님이셨군요. ^^
가끔 저렇게 저자분들이 낚이시더라구요. ㅎㅎㅎ
제가 다른 사람 글 읽고 욕도 잘 하는데 ^^(그래서 두근거리실 법도) 이 책은 참 좋더라구요.
아이들이 협동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잘 담겨 있어 좋았습니다. 물론 책에 담기지 않은 많은 모둠은 실패하고 보잘것없는 결과를 얻고 실망했겠지만, 정말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이 참된 교육이지 싶습니다.
올해도 좋은 소식 전해주시길...
종종 들러주시면 더 좋구요.
부산에 강의오실 일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
 
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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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의 출산율 저하,
국민의 행복 지수,
사교육 지옥,
입시 지옥,
온갖 학원으로 인한 학생의 스트레스 만빵, 
강제적 보충, 자율학습으로 인한 학생,교사 건강권 침해, 
경쟁만 있고 경쟁력은 없는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
가진자들의 사익만을 생각하는 정치권의 권력욕. 
그리고 조선 시대 - 일제 강점기 - 전쟁 - 자유당 정권 - 군사독재 30년

이런 모든 모순들은 한 덩어리로 얽혀있다.
도저히 '실마리'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모순들이 덩어리져 뭉뚱그려진 '혼돈' 같이 보인다.
그 혼돈에게 숨쉬는 구멍을 뚫으려고 힘쓰던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싸움은 늘 패배하도록 결과가 마련되어 있었다.
돈키호테가 용감해 보이지만 늘 패배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듯이...
조합을 만들어도 해직당했고, 사소한 시험에 저항해도 파면당했다.
평소에 밉보인 집단은 진보신당에 후원금 2만원 내고도 해임이란 중징계를 당하고 아이들 곁에서 분리당한다. 

학부모들은 내 자식은 살아 남아야 해.
그 밑바탕은 역사적인 것이라 해도, 부모의 머릿속에선 '지금-여기'서 게으른 내 새끼의 실존적인 몸뚱아리만 밉게 보인다.
줄 세우는 교육에선 결국 앞에 선 자와 뒤에 선 자가 생기게 되어있고, 뒤에 선 자는 늘 헐떡거리면서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아야 하는 '선착순'의 뼈아픈 기억을 남기게 되는 법.
네이버에서 유행한 웹툰처럼, '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같은 괴물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입장에서 몽둥이질하는 가엾은 교사와, 그 교사를 평생 증오하며 사는 가엾은 학생을 양산하는 것이 지금의 '정글고등학교'다.  

이 책은 슬프다.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암담한데, 전혀 밝은 쪽이라곤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또 이 책은 기쁨이다.
우리에게 '소금'이 될 것을, 소금이 된다면 세상이 썩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이고,
먼먼 훗날, 빛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좌절한 어둠의 원인은, 당대에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에 대한 무릎꿇음이었다.
지금 나에게 빛을 보이는 한 마디가, '당대 열매 기대 금지'란 표어였다. 

선생님들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이 책을 돌려보며 토론을 하고 싶다.
당장 내가 선 곳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희망의 싹이 있는 쪽으로 이끄는 길인지,
어떤 것을 바꾸고, 어떤 것을 계획하는 것이 희망스런 일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우학교 이수광 교감샘은 나도 좋아하는 분인데,
지식의 양*심도*지속성=지적 생성력
이런 공식은 참 쌈박하다.
우리는 지식의 양만 추구한다.
심도와 지속성이 약하면, 그건 젬병이다.
아니, 자칫하면 지속성이 '제로'인 교육을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라는 신을진 연구원의 이야기도 좋다. 어렵긴 하지만. 

국민 전체의 생각이 바뀌어야한다는 조기숙 교수의 발상은 어둡다.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구세주도 한국 교육의 실마리를 찾을 순 없다. 내가 해야 한다. 

돈키호테 허아람은 대단하다. 한 일도 대단하고 꿈도 대단하다.
돈키호테는 엉뚱하기만 하지 않다. 그의 꿈과 자유, 저항의 상징...을 읽어야 한다. 

침묵하는 정부, 절망하는 국민.
송인수의 이 말이 한국 교육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부만이 '개혁'의 칼을 뽑을 수 있는데, 정부는 '자율'만 내세운다.
가만히 있을 뿐. 

모든 글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움직일 힘이 맺히는 것 같다.
오래 가만 있었다.
이제 좀 움직이고 싶다. 죽지 않기 위하여...
아니, 죽어서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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