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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명의 애인
김은형 지음 / 나라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은형 선생님과 교과교육 세미나를 하던 것이 전교조가 창립되기도 전이던 89년 봄이었다.
그때는 한 열 분 정도의 국어과 선생님들이 저녁나절에 만나서 지도안도 짜 보고, 이런 저런 읽기 자료들도 교환하고 하던 시절이었는데, 김은형 선생님은 사람들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참 잘 하셨던 것 같다.
김은형 선생님을 보고 있노라면, 에너자이저 배터리라도 직렬 연결로 수십 개 연달린 것 같다.
목청도 힘차시고, 말씀의 내용도 조리가 서서 질서 정연하여 감동을 준다.
재작년인가 일꾼 연수에서 한번 뵌 적이 있는데, 훨씬 원숙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의 글모음을 진작부터 읽어 봐야지... 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만난 책.
선생님의 글은 꾸밈이 없다.
그야말로 교실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사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적고, 솔직한 느낌과 소신 담긴 평설들을 쏟아 놓으신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에선 큰 감동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작위적이지 않은 이런 글들에서 선생님이 얼마나 학교와 학생을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라는 자리를 사랑하는지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학생들이 한 십여 년 만에 연락이 오면, 저, 선생님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는데요... 로 시작한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정말 많은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선생님들은 그렇다.
물론, 아이들 이름 같은 거야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교사들도 숱하리라만, 우리 학년 어떤 샘은 시험 감독 들어가서 아이들 얼굴 보면서 이름을 외우신단다.(모의고사 감독은 그냥 앉아서 책이나 읽는 시간이기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그 많은 아이들과의 추억담들을 책으로 펼친다면, 어느 교사인들 책 몇 권 쉽게 낼 수 없으랴마는, 김은형 선생님의 이야기들에선 <사랑과 인내>와 <올바른 길>에 대한 지도를 받을 수 있어 좋다.
교장 선생님께도 곡진한 편지를 쓸 줄 아는 선생님.
학부모들과도 힘을 합쳐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시는 선생님.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수업 시간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별로 기억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조금씩 활동하게 되는 학급 행사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많은 기억거리를 찾는다.
무엇보다도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클럽 활동 같은, 예를 들면 연극반같은 것이라도 경험한다면 아이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거기서 하게 된다.
나도 연극반을 한 두어 해 지도한 적이 있지만, 그때 정말 아이들과 혼연일체가 어떤 것인지를 새삼 배웠던 기억이 난다.
아, 나도 내년엔 연극반 지도 교사가 되어(그러려면 3학년을 안 해야 한다.ㅠㅜ) 아이들 데리고 연극제도 가고 하고 싶다.
또 상담실에 나이드신 분이 차지하고 앉아서 편히 쉴 곳을 찾는 분들이 가지 못하게 말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교의 후배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교사 역할도 해 보고 싶다.
내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업무는 도서관 담당 업무였는데,
20년간 해마다 그렇게 지원했건만, 내겐 그 업무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학교에는 사서 교사가 배정되어 있어 그 업무는 불가능하다.
독서 활동 동아리 활동 같은 걸 해볼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연극부처럼 꼴통들이 모여서 뭔가를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김은형 선생님같은 분들의 글을 읽으면 힘이 불끈불끈 난다.
늘 에너지 넘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더불어 힘이 나는 법이지.
나도 그런 선생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