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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교 -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닉 데이비스 지음, 이병곤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10년 전, 영국에서 불붙었다는 교육 논쟁. 우리 교육이란 잡지에서 간혹 보던 것이었는데...
10년 전이면 제3의 길 운운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몰고 오던 시기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찬란한 미래로 가자고 외치던 '라이온 킹'의 자파처럼 새 시대가 열리는 모양인데, 그 시대가 무지갯빛 초원이 아닌 검고 어두운 동굴 주변의 하이에나와 함께라는 기분이 들어 자못 꺼림칙하다.
영국의 학교가 가진 문제는 한국의 학교가 가진 문제에 비하자면 명쾌하다.
경제적 분화에 따른 실력차가 갈수록 심화된다는 것.
노동당의 정책도, 교원 노조의 노력도 한계가 있다는 것.
사립 학교의 우아한 발전이 공립 학교의 발버둥으론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그것이란 것.
한국에선 좌파의 정책이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 없고, 교원 노조는 빨갱이로 밑줄쳐진 후 백안시 당하는 일로도 너무 피곤하다.
사회의 후진성이 학교에도 그대로 남은 처지에서 사립 학교도 마찬가지로 가난한데 사립 학교는 교육청의 말을 전혀 들을 필요 없으니 성적 올리기가 훨씬 쉬운 실정이다. 이런 것은 왜 비슷한지...
교육청에서, 교육부에서 권장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의 허구성에 대하여 밝힌 책이다. 한국에서 이런 책을 냈다가는 아홉시 뉴스에 붉은 줄 치면서 등장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1년 쯤 전에 지리산에서 원혼 달래는 행사에 어떤 학교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지도 교사 중 한 명은 전교조 회원이고 나머지 5명은 교총 회원이랬던가 그랬는데, 전교조 회원은 최근에 구속되었다. 멀쩡한 교사를 웬 구속?
드디어 전교조 죽이기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이제 2월 말에 취임식을 마치면, 새학기 들어서는 무시무시한 <성적>의 광풍이 몰아칠 예정이다.
각 시도 교육청과 각 학교들은 자기 학교가 바보 학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적 올리기에 매진할 것이다.
특히 사립학교들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으니 시험치기 전에 시험지 누출도 불사할 것이고.
공립학교들은 다리 째지게 보충학습 자율학습 특강을 하라고 할 것이다.
새 정부는 <학교간 성적 비교> <잘난 아이 잘 가르치기>를 분명히 했다.
그건 교육 철학도 뭣도 아닌, 교육 파탄의 조종을 울리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사립 학교는 엄밀하게 사립이 아니다.
아이들의 등록금으로 교사 월급도 못주기 때문에 국가에서 엄청난 지원을 한다. 그러면서 교육청 말은 하나도 안 듣는다.
사립 학교 교사들은 공문 쪼가리를 제대로 보는 일도 없단다.
반면, 공립 학교 교사들은 장학사들과 손발을 맞춰서 교육청 평가, 학교 평가에 매진해야 한다. 공문은 교과서나 수능보다 교육의 본질에 가깝다.
그리고 공립학교 교사는 국가에서 공채로 뽑으므로 대부분 여교사가 진입한다. 학교의 이념과 상관없이 무조건 발령되어 3,4년마다 로테이션된다. 도저히 학교에 진득하게 경쟁력을 실어줄 수 없는 시스템이다.
반면 사립학교 교사는 재단에서 알아서 뽑으므로 여교사는 일단 배제된다. 밤 10시까지 남으라면 모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20년 같이 있다 보면 형제처럼 가까운 소속감도 갖게 된다. 무엇보다 공문서 처리에서 벗어나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물론 사립이라도 다 그런 것도 아니다. 내분이 이는 경우도 있고, 재단의 비리가 거지같은 교사를 돈받고 들이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닉 데이비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육 정책을 정치적인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 영국의 고질적 문제인 계급 사회 구조 타파와 계층간 격차 줄이기에 분발해야 한다는 것... 지역간 불평등과 재정 부족으로 인한 학교 현장 황폐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 교육전문가 집단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진정으로 학교의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살피라는 것... (15)
그의 메시지는 옳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맹바기 정권에선 '특목고 수백 개 양산'과 같은 맹목적 광신이 우선되어 '교육 정책'이나 '계층간 격차'같은 것은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다.
강남 학교가 공부 잘 하는 건 당연하다.
시골 학교가 공부 못 하는 건 당연하다.
특목고가 공부 잘 하는 건 당연하고,
실업고가 공부 못 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시골 학교나 실업 학교에도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명바기가 좋아하는 '인재'는 아닐는지 몰라도, 소중한 인간이다. 그들이 나중에 어떤 인물이 될는지, 누가 알랴. 공부 좀 못한다고, 그가 테레사 수녀나 달라이 라마보다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떤 아이를 받아들이느냐가 학교의 학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똑똑한 아이들은 주위 아이들의 성적도 끌어올린다. (62)
그렇다. 특목고를 만들면, 거기 보내야 옳다. 생각없는 아이들 속에선 무기력을 학습할 확률이 정말 높지 않은가. 군대처럼... 실업계 고교에서처럼...
교사들은 날마다 싸움을 말리고, 처벌을 위해 회의를 하고, 담배피우는 아이들을 제지하러 뛰어 다니며, 지각생과 무단 조퇴, 외출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녹초가 되는 학교와,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수업만 열정적으로 진행해도 존경받는 학교에서는 꼭같은 열정과 능력을 가진 교사라도 천만 배의 차이가 생김은 당연지사다.
장관의 감춰진 의도.
"나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전면 허용해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교들이 말 그대로 문 닫기를 바랐습니다."(79)
지금 새 정권이 하려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인재 아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문 닫기를 바라는 일.
7%가 다니는 영국의 사립학교. 그들은 대학 입학의 20%, 옥스포드 캠브리지 대학의 50%를 차지한다. 최상위 100개중 87개가 사립이었다. 사립학교의 80%가 받는 성적을 공립에선 43%만이 받는다. (109)
재산은 곧 성적을 만든다. 성적의 차이는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부모의 자동차의 차이다.
공문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교사. 이것이 영국 사립학교의 성공 요인이다.
교육자들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가르칠 자유.(129)
그런데, 영국의 사립 학교들은 특별한 케이스란다. 유럽의 대부분으 종교계이거나 '무료' 학교로 대개 학교운영비가 부족하여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고 한다. 한국의 사립도 부유층을 위한 학교가 아님은 분명하다. 아직은. 그러나 새 정부는 사립을 부유층을 위한 학교로 만들 계획을 명박하게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네덜란드의 교육을 칭찬하는데, 물론 명과 암은 있으리라.
학교에서 물건을 만드는 회사를 교사와 아이들이 운영한다. 직책도 있고 명함도 있고, 수익과 손실도 있다. 아, 좋은 학교다. 나도 아이들에게 주식을 가르치고 펀드도 가르치는 수업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걸 왜 가르치지 못하는지...
대체로 네덜란드에서는 학습 의욕이 낮은 학생들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특히 암산, 과학, 외국어 학습에서 영국보다 더 나은 학업 성취 결과를 기록하고 있으며 학교에 다니는 비율도 더 높다. 학교 교육을 즐기며 누리고 있는 것이다.(254)
네덜란드는 유급을 인정한다. 초등의 15%, 중등의 30%가 유급한다.(263)
남의 떡이 커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교육 정책이라도는 오로지 '경쟁'과 '낙오'라는 생각만을 가진 자들이 입안하는 교육의 틀 안에서 교육을 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더욱 커질 것만 같아 답답한 게 현실이다.
엊그제 읽은 사막의 여인이 생각난다.
온 사방이 사막이고 도와주는 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그대로 말라죽어선 안된다던 그녀이 말이. 풀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다 보면, 어디선가 도와줄 이도 만나게 되고, 숲도 만들 날이 올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