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3
정병호 외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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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의 학창 생활 속에서 오손도손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징그러웠던 과거마저도 추억처럼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나도 교사라는 직업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덜컥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교사로 살아온 21년. 참 많은 꼴을 당하고 보았다.
선배들이 '초임 시절이 가장 성공적인 교사 생활'을 한다던 말을 들을 때, '쳇, 배부른 소리 하시네~'하면서 속으로 투덜댔다.
내 시간엔 아이들이 떠들고 자기 표현을 막 하지만, 선배 교사들 시간엔 조용히들 있었기 때문이고, 옆의 선생님들 반은 자습 시간에 조용히도 지내는데, 우리반은 늘 난리부르스를 땡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가능성 덩어리>이면서 <엉터리 초보 교사>로 교직을 시작한다.
머릿속의 귀엽고 재치있는 제자들은 현실 속에서 대마왕 왕마녀로 둔갑해 버리고,
교실 속은 날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시끄럽고, 한마디로 엔트로피 법칙이 가장 잘 통하는 공간이란 것을 초보 교사때 실감하면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엉터리 선생때, 멋도 모르고 아이들과 나누었던 편지들(난 21년 전의 편지들을 아직도 창고에 가지고 있다. 간혹 예전 제자들에게 그거 가지고 있단 이야길 하면 엄청 보고 싶어한다. 유치찬란했던 그 아줌마, 아저씨들의 중학생 시절을...), 그리고 운동장 야영을 하면서 운동장에 큰대자로 누워 별을 바라보라고 했던 웃기는 나의 대사들... 소설쓰기반도 맡아서 애들도 써보고 내 소설도 읽어주기도 했던 정말 봉숭아학당같던 시절... 

10년쯤 지났을 때, 나는 드디어 베테랑 교사가 되기 시작했다.
내 수업 시간엔 아이들이 떠들지 않기 시작했고, 교과 내용은 큰 예습 없이도 쑥쑥 정리해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수업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학생부 선생이라 맨날 무서운 얼굴로 들락거렸지만, 아이들과 만들었던 문집 몇 권은 아직도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꽃이다. 

이제 20년이 지난 나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활지도부장이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아이들과 머리털때문에 싸우고, 학생의 자살 앞에서 망연자실 넋을 잃은 틈바구니로 기어든 브로커들과의 신경전으로 노이로제 생활도 몇 달 했다.
수업은 그야말로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1년을 가르쳤어도 아이들 이름이 혀끝에서 맴도는 게 아니라, 1년을 가르쳤는데 처음 만나는 것같은 얼굴의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정말 실패한 교직을 밟고 있는데, 두려운 것은 앞으로 남은 20년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 책은 위안을 준다. 마치 속미인곡의 보조적 화자가 "글란 생각마오"하는 위로를 주듯. 

나의 실패는 나만의 실패가 아니었다.
교사들의 식물화 현상(162)이란 낱말을 읽고, 히야, 기막힌 표현이다. 라 생각했다.
교사들은 빨리 공문 처리하기, 꼬투리 잡히지 않을 방식으로 처리하기, 대강 알아서 처리하기, 형식 잘 갖추기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며, 공고한 관료적 행정 구조 속에서 자율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명령, 시달, 침묵, 묵종, 순응 같은 부정적 미덕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높다(161)
아, 나는 책 속에 '죽은 영(靈)'으로 활자화된 나의 초상화를 읽으면서 눈물마저 나려고 했던 것이다. 김수영이 살아있는 글자(활자) 속에 죽은 정신을 한탄했듯이, 나도 살아있어 보이는 육신 속의 사령을 눈물겨이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교육> 앞에서 1997년 교육개혁 이후 교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교사는 성장하는 직업이다.
교학상장,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은 서로 상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의 성장판은 계속 자란다고 한다.(145) 교사의 성장판은 자부심이다.(148)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 성장판이 망실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영이 되어가면서...

꿈꾸는 자가 행복한 까닭 :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고 그래서 그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가득하기 때문이다.(26) - 글쎄, 대한민국 교육에 어떤 희망이 담긴 것일까? 이 책은 주로 '욕망' 또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고, 결국 희망찾기에 성공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적은 것처럼, 절망하고 있던 JM 교사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학부모들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촛불을 들고 밤에 지친 몸으로 들어가서도 학원 다녀온 자식 간식 챙겨준다는 역설처럼... 아동기로 집중되어가는 교육게임과 서열 경쟁을 통해 평생을 보장받으려는 지난 시대의 생존 전략이 모두 <낡은 환상>에 불과함을 함께 깨닫고 대안을 모색하여야할 필요성이 시급한 때임을 강조해 말한다.(124)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은 이런 것이다.
생명, 생태, 평화, 인권, 정의, 자유, 관용, 참여, 약자보호, 반차별 등...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가치들.(128)... 그러나... 이런 것들을 배제하는 영 교육과정(null curri)속에는 공교육이 <실패하기>를 희구하는 집단의 입김이 든 것이다.
그것은 교육과정 개발에서부터 적용까지 일관적으로 적용된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답을 찾는 훈련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가르쳐야 함을,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써 보는 일이 꼭 필요한 과정임을.
국가는 알면서 배제한다. 그저 이전 지식의 낡은 틀을 암기하라 강요한다.
그래야, 낙후된 자신들의 '본색'이, '벌거벗은 임금'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성공한 대안은 없다.
늘 실패한 대안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움트는 변화의 싹, 암기를 벗어난 사고력을 길러주는 동아리 훈련,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교사들의 힘.
공공의 실험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고, 그 길이 올바른 길의 하나일 수 있음을 보여줄 때, 교육 개혁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창의적 교양인으로서의 인재를 운운하면서, 경쟁만을 내세워선 안된다.
'존재하려는 용기'를 가르쳐야 하고,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인간 냄새나는 존재로서의 '휴먼웨어'를 발견하는 학교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사교육의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그리고 대학 입시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전문가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이웃들의 육성>을 통하여 '인류학적 연구방법'으로 기술되고 있기에 전혀 어렵지 않고, 이물감이 없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읽어보길 권할 만한 좋은 책. 

-- 

이 책에선 외래어표기법을 무시하려는 듯, '엘리뜨, 씨스템, 싸이버, 콘쎕트' 처럼 적고 있다.
뭐, 한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는 것도 좋지만, 엘리뜨...는 좀 아닌 듯. ^^
'버스'를 뻐쓰로 쓰는 등에는 난 찬성인 1인이지만,
암튼 맞춤법에 어긋나게 쓴 데는 뭔지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일러두기를 찾아가 봐도 그런 말은 없다. 음, 다음 판이 나오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일단 의견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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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9-12-17 11:29   좋아요 0 | URL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제소(?)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ㅎㅎ
뭘 적어 내라네요. 올해, 교육청에, 권익보호위원회, 경찰서, 법원 등에 다양한 채널로 많은 인맥을 넓혔네요. ㅎㅎ 한번 읽어 보세요.
 
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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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제목이 '우케테 미타 핀란드노 교이쿠'다.
받아 본 핀란드의 교육... 정도의 제목. 

일본의 고딩이 AFS 프로그램이란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핀란드에 1년간 체류하면서 학교를 경험한 이야기를 어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책으로 묶었다. 

물론 고딩의 시선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이었고, 범위도 좁았지만, 한국의 교육을 이대로 둘 수 없고, 어떤 방식으로든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가족과 함께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어떤 가정에 유숙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지만, 이 아이는 좋은 추억으로 핀란드를 기억한다. 

핀란드 교육의 핵심은 아무래도,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는 일본식 평가보다 에세이와 프레젠테이션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고 '읽는'다.  

일본의 교육을 그대로 이식받아 '교육'인 체 하고 있는 한국의 학교들이 보고배울 점들이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우선 '인생 선배'이자 '인격자', '수양인'으로서 '선생님'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지만, 삶의 속도가 무진장 빨르게 변화하고, 세상의 넓이가 점차 좁혀져 오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인생 선배이자 수양인으로서의 '앞서 난' 사람 정도로는 도무지 전문적 교육자로 취급받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핀란드의 경우, 교사는 철저하게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경우 학원 강사는 그 일에 가깝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이 교사들의 몸과 마음을 억제하고 있어서 학교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동양에서 간 이 고딩은 읽어내고 있다.  

'쉬운 단어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는 말하기를 공부하는 <요령>을 깨달은 이 아이가 원래 문과적 기질이 많아 언어에 관한 흥미도가 높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영어, 또는 외국어 교육이 지향해야할 바를 보여준다.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영어 자막 방송을 내보내는 핀란드와, 온갖 저질 토크쇼만 판을 치는 우리의 케이블 방송을 보면 확실히 국가가 의도한 바가 국가의 앞날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노동 인구의 70%가 정규직으로 일하고, 결혼하고도 80%의 맞벌이가 가능한 복지 국가. 그것을 만드는 데는 '국가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국 사이의 작은 나라, 특히 역사가 일천한 국가.(반만년 역사 어쩌구 하는 인간들은 눈을 감은 자들 아닐까?)
한국과 똑같은 조건이다. 그런데... 그들은 교육만이 살 길이라고 하고 있고, 한국은 교육으로 망하고 있는 판국이다. 한심하다. 

경쟁만 하고 경쟁력이 없는 한국의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요즈음 무척이나 비관적이다. 날씨 탓인가? 

경쟁은 없지만 경쟁력이 있는 핀란드의 교육.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는 나라.
진급보다는 알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학교.
아, 꿈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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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에 논술 가르치기 내가 한 국어 수업 1
최인영 지음 / 나라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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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논술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것도 왜 수업 시간에 가르쳐야 하는가. 

이런 문제 제기는 늘 있어왔다.
그렇지만, 논술은 항상 그렇지만, 학교 밖에서 불거지고 학교 밖에서 해결책을 찾고, 학교 밖에서 스러져 가곤 했다. 

입시의 중심에 논술이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중동 중심의 논술 시장은 신문을 활용한 수업과 함께 <신문 시장>의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다. 

요즈음엔 논술이 좀 사그라든 것 같지만... 

아무래도, 입학 사정관 제도와 연관짓는다면,
논술식 시험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선 논술 지도에 대한 세세한 부분을 짚어주진 않는다.
그런 것들은 이미 넘치도록 많은 자료들이 <대학원생 수준>의 논술 자료집으로 서점가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국어 시간 본연의 모습을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하고 맺을 수밖에 없다. 

하긴, <국어>라는 과목을 가진 나라가 몇이나 될까?
미국의 '잉글리시' 시간에는 영어 회화를 가르친다.
미국 학교에서는 '리딩'과 '라이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대동소이하다. 

독서와 작문을 분화하고 심화하지 않고,
국어란 과목 안에서 뭉뚱그려 '수능' 하나로 대학가는 제도는 좀 우습다. 

20년간 배운 국어를 80분 안에,
그것도 우스운 듣기 5문제와 독해 45문제로... 대학을 결정하다니... 

수업 시간에 '독서' 지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쓰기 지도를 위한 토론'도 엮을 수 있다. 
아, 그들이 요구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이라면, 당연히 이런 과정들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그런 것이 가능하리라 보는 교육전문가가 과연 몇이나 될는지... 

국어 시간에 필요한 가르침은 간명하다.
이 책에서 제시한대로 '독서' '토론' '쓰기' 이다.
낮은 수준부터 높은 수준까지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것이 국어 수업의 전부가 될 그날을 기다리는 책이 아니라, 학교에서 해보려는 시도의 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과 이런 시도를 엮기에는 많은 것들이 뒤얽혀 있다.
어려운 것을 풀어내는 것이 '길'이라면, 그 길을 한번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부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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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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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자녀를 사랑하지 마라>는 책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이호분, 팜파스 출판>

이 제목이 한국의 교육 문제의 질곡을 한마디로 압축한 듯 내 두개골을 쳤다. 

한국의 '교육열'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식민지, 한국을 거쳐오면서,
'지식인' 부류는 늘 '양지'에 설 수 있었다. 
그 교육열은 '인격의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입신양명'과 '밥벌이' 그리고 '망명도생'의 위인지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열렬한 교육열은 '자녀 사랑'이란 이름의 '치맛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사회적 토대는 '누구나 대학 나온 사람'으로서 교사를 얕잡아보는 현상까지 이끌었다.  

학부모의 눈높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동안,
일제 시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학교는 그 울타리를 바꾸지 못했고,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두어진 교육 정책은 그야말로 '치지도외'되었던 것이다.
소득이 올라가는 것은 <재벌>들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결국,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 여성들은 결혼을 거부했고, 이혼 러시를 이루었으며, 급기야 번식의 본능을 부정하기에 이르러... 세계 최저의 출산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문제에 대하여 국가적 합의를 이끌려는 시도는 늘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고식지계에 불과하여 입시 제도를 조금씩 바꾸는 외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아이들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고, 국가의 경제가 호기를 탔던 1990년대 중반,
제7차 교육과정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중학교를 4년, 고등학교 2년으로 바꾸고, 중학교를 두 배로 늘리는 등의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려 했건만... 그래서 학급 당 학생수도 줄이려는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긴 했건만...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이 교육과정의 변화는 오히려 고등학교를 10학년과 2,3학년이라는 불균형으로 몰아넣어 버리고 만 것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바뀌는 교육과정과, 국가만 발행할 수 있는 교과서.
이것이 한국의 학교에서 '다양한 모양의 수업'이 불가능한 한 가지 요인이요.
지나치게 많은 학생 수, 이것이 두 번째 요인이다. 

한국의 성적은 결코 '핀란드'의 그것보다 낮지 않다.
국가에서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위한 처치를 조금만 한다면... 핀란드보다 훨씬 높은 성적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성적이 2위라서 이런 책들이 고민하는 내용들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니다.
간혹, 일본인들이 쓴 이런 연구서들에서는 일본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적보다 큰 것은, <국가적 합의>라는 부분이다. 

국가가 교육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대로 가면 된다.
대통령 바뀌었다고 이상하게 뜯어고치는 교육과정은 학생들을 죽음으로 이끌 뿐이다.
그 청사진은 되도록이면 <미래형>이어야 한다.
그 미래에는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을 '평생 학생'을 그리고 교사가 수업할 수 있는 교재는 <무엇이든> 활용할 수 있다는, 그래서 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주문'할 필요가 없는 제도가 들어있어야 한다.  

수능을 <입학사정관제>로 바꾸는 일은... 조삼모사다.
아이들에게 공부도 하고, 봉사 활동도 더 하고, 특별 활동도 더 하라는 채찍이다.
SKY 대학을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데, 제도를 조금 고쳐봤자 점수 무한경쟁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은 기대하는대로 성장하기보다는 평가하는대로 성장한다. 

입시 교육을 욕하는데, 고등학교에서 입시 교육 말고 그럼 뭘 하는가?
어느 나라나 어느 학교나 입시 교육은 한다.
문제는 조금이라더 더 합리적인 입시를 만들어 놓고, 제발 '입시 교육을 잘 합시다' 해야 한다.
그 입시는 서울대 가는 입시가 아니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의 교육 정책도 일관성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수능 등급만 제시한 재작년의 경우 혼란만 가중시키기도 했다.
교육적 합의 없이, 3불만 외치는 것은 결국 지금처럼 무식한 정부가 들어서게 했고, 결국 학교별 수능 성적 공개라는 모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자들이 뻔뻔스럽게 국회의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6, 중3, 고1의 전수를 조사하여 성취도 평가를 하는 것이 어떻게 국가 수준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일이 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인데... 이런 것은 차치하더라도,
아이들을 죽음의 계단으로 몰아넣지 않으려면
정말 획기적인 학교의 개선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20년 전보다 더 목숨을 쉽게 버리는데,
전교조는 아직도 교원평가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다면... 버림받아 마땅한 집단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60페이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옥구슬이다.
"권한과 책임이 모두 학교에 부여되어 있어... 일선 학교의 의욕을 고취시켜 학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을... PISA의 성과 중 하나는 학생 개개인의 의욕과 동기가 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춘 교육이 가능하도록 핀란드에서는 교사를 전문가로 육성하고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학부모나 행정기관도 교사를 지원하게..." 

당연한 말이 왜 그렇게도 멀리서 울리는 것인지... 

64쪽에서 해설자가 '제도적인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더라도 교실 안에서는 교사가 자율성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물론 그는 공교육에 몸담은 자가 아니지만... 정말 씁쓸하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삶을 담은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학교의 온갖 행사에 녹초 강산이 되는 교사, 한 학급에 마흔 명이 오롯이 쳐다보는 교사가 정말 얼마든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신'이다. 해설자의 열정이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두 시에 당당하게 퇴근하는 핀란드 교사와, 5시에 퇴근하면서도 방학이면 맨날 놀고 촌지나 받아 처먹는다는 '9시 뉴스'의 지탄을 받는 한국 교사에게 그가 요구하는 자율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다. 교과서 문제도 그렇고, 매년 바뀌는 학년 배정과 업무 분장이란 것이 교사를 얼마나 볶아대는지... 교과서를 차근차근 익히도록 하는 '워크북'을 만드는 회사나 단체보다는 <온갖 잡동사니를 엮은 문제집>을 만드는 장삿속이 '학원'을 배불리는 시스템임을... 그가 뻔히 안다면... 핀란드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님을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다. 
핀란드 교사도 말한다.
아, 일본은 한 반이 40명이라고요? 20명이면 기다릴 수 있지만 40명은 기다리기 힘들겠네요. 음. 20명 이상은 무리예요.(213)

기회의 평등, 무상 교육, 협동 학습, 그리고 뒤처진 학생의 지도와 사회구성주의적 합의... 

물론 한국의 교육과 핀란드의 교육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핀란드의 제목들은 한나라당에서 보면 빨갱이들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다.
돈 많이 내는 아이들이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하겠다는 그들의 교육관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들의 공정택이가 오늘 벌금형을 받고 씁쓸하게 퇴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다. 그런 자를 교육감으로 뽑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화려한 촛불 정국 하에서 말이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 촛불 정국에서도 공정택이란 쓰레기통을 교육감으로 만든 그 이기심들이...
그리고, <과정은 잘못되었지만> 결과는 잘 되었다는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통과가 결국 사회구성주의적 과정을 무시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철학을 아름답게 공표한 것이다. 

한국은 핀란드보다 금세 나아질 수 있다. 평균을 깎아먹는 아이들은 뒤처진 아이들이다.
핀란드를 앞지르기 위해서는 뒤처진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야 한다. 한국에는 종교적 이유로 감옥에 보내는 청년들이 해마다 천 명 이상이다. 그들을 학교에 보내서 군대보다 좀더 긴 기간 대체복무 시킨다면 일석 이조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 한국 아이들이 2등을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우리 아이들을 1등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서는 <수준별 수업>이나 <교과 교실>보다는 뒤처진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한국판 <nclb>가 필요하다. no child left behind(아동 낙오 방지법, 미국) 

하지 못한 것을 '하지 않은' 것으로 둔갑시키는 데 대한민국은 너무도 능숙하고 익숙하다.(134)
왜 그것을 대한민국에 뒤집어 씌우나? 그건 앞에서 적은대로 역사가 만든 굴레다. 이제 그 질곡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배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수학 교사(206) 

이 말은 내 가슴을 쳤다.
다른 어떤 말도 대한민국이 가진 질곡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나는 문학을 가르치라고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문학을 배우도록 가르치는 것이 국가가 내게 월급을 주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이 문학을 배우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저 문학을 가르쳤다.
그것이 아이들 교육을 그리치고 있는 것임을... 과연 내가 몰랐던가... 생각해보면,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핑계로... 방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설자는 핀란드 배우기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복지 차원의 접근과 평등주의적 관점의 견지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등 교육 여건 개선에 주력
교육 과정의 자율성과 유연성 높이기
교사의 전문성 제고와 자율성 키우기 

아, 내년부터 교사 평가를 한다고, 그것으로 마치 교육개혁이 완성되는 양 날뛰는 관료들을 보면... 철학적 접근과 맹목적 정책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낳게 되는지... 한숨을 깊게 쉰다. 

1027페이지나 되는 <The Left>란 의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와 세계화된 시장 질서라는 작금의 극심한 보수적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유 같은 단어들은 그것들이 유래한 역사 자체를 몰수당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왜곡되고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결함과 배제가 지속되는 현재 속에서도 우리는 완전히 민주화된 유럽이라는 결실을 상상하면서 20세기 좌파가 추구했던 미래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다.
민주적 변화의 도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나머지 일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912) 

비록 좌파의 개혁적 실험이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는 땅이지만, 변화를 꿈꾸던 자들이 바라던 경제적 토대를 어느 정도는 갖춘 학교에서 우리는 숨쉬고 있다.
변화의 도전을 위해서 과거에 꿈꾸던 미래의 나머지를 지금 설계하고 또 다듬어야 할 때이다. 

------------------ 오타 1개

168. 곤혼스러워한다...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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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10-3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달에 꼭 사보겠습니다.

마냐 2009-11-0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 땡스투요 (^^)(__)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두 교사의 교실 기록으로 들여다 본 초등학교
박남기.박점숙.문지현 지음 / 우리교육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정년이 현재와 같다면... 발령받은 지 40년 반만에 정년퇴직을 맞게 될 것이고,
이제 20년 반을 넘겼으므로, 내가 걸어왔던 길보다 내려갈 길이 짧은 셈이다. 

박점숙, 문지현 교사의 교단 일기를 묶은 책이다.
문지현 교사는 기간제 교사를 거쳐 '진짜(?)' 교사로 발령을 받았고,
박점숙 교사는 25년 정도의 경력 교사다. 박남기 교수는 베테랑 교사라고 하는데,
나는 글쎄, 교사에게 베테랑이란 말이 통할까? 하는 편이다. 

내 책상 앞엔 '축 당첨' 쪽지가 하나 붙어있다.
그 당첨 쪽지를 보면, 불같이 화가 난다. 그래서 좀 전에 휴지통으로 보내버렸다.
원래 전국의 3%만 실시하던 성취도평가를 어떤 미친 놈때문에 경쟁일변도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전국의 초6, 중3, 고1의 전수를 시험쳤다.
이 시험은 학생들의 다양한 측면을 측정하기 위해 주관식 문항도 10문항 가까이 출제하는데,
그 채점은 해마다 큰 일이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전국의 초중고 교사를 지원받아 2박3일간 합숙채점하곤 했는데... 

올해는 각시도 교육청에 맡겨 두고 말았으니,
일단은 주관식 채점의 '기준'이 시도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걸 맞추라는 이야기는 시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멍청이의 말이다.
그래서 수능 마친 다음 날, 휴=3=3
13일의 금요일 오후 3시부터, 놀토와 일요일까지 낀
사상 최악의 출장을 부과한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차떼고 포떼고 4명이 추첨을 했는데, 내가 그만 '축 당첨'의 행운을...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며 알콩달콩 살던 초임 시절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10년 정도 경력 교사가 되면 아이들이 이렇게 까불지 않고 말발이 좀 먹혀들겠거니...
그때쯤 되면, 학교도 많이 민주화되고, 자율성이 부여될 수도 있겠거니... 

그러나 이제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올해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날이 갈수록 '교무업무시스템', '교무행정시스템', '온라인자료집계시스템', '전자문서시스템' 등 각종 시스템에 입력해야하는 아이디와 비번 기억하는 일조차 쉽지 않고,
신규때는 방학이 빨리 끝나고 아이들과 만나고 싶던 날들은 어디로 가고,
학기가 빨리 끝나고 아이들과 헤어지고 싶은 날들로 가득해 간다. 

그때나 이즈음이나 '언론의 교사 무시하기'는 변함이 없는데,
요즘엔 학생들마저 학교에 대한 불신과 무시가 커져만 간다. 

정권만 바뀌면, 마치 사교육이 무슨 '공산당이나 빨갱이'를 대체한 <이적단체>인 양 칼을 잡고 휘드르려는 꼴에 학교도 휘둘리곤 하는 모습은 슬프게도 아이들을 죽음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전투를 벌이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일기를 들여다 보면서,
초등학교는 전방위 교과 수업을 통해서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직도 있구나...
그리고 일기를 통하여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맛이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학급 공동 일기를 쓰고, 그것을 토대로 문집도 내고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일구덩이에 파묻히고 난 뒤론 물 건너 가버리고 말았지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만 깊어진다. 

교사는 과연 성장하는가?
교사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어떤 요인인가?
교사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장학이라면, 어떤 장학이 학교에 필요한가?
교사를 평가하고, 수업을 평가하고, 우리 담임에게 별점을 매기는 것이,
과연 교사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하는 답답한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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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쪽. 인사치레...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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