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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교육특강 - 대한민국 학부모와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육필독서 ㅣ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 시리즈 1
이범 지음 / 다산에듀 / 2009년 8월
평점 :
어제 오후,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입학사정관제의 여파인지, 여느해와는 다르게 후보가 난립하여 뜨거운 선거전이 펼쳐졌다.
이웃 주민들이 항의 전화를 걸 정도로 추운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한 표를 호소하고,
메가폰과 북, 어깨띠까지 동원하고, 야구복, 인형복 등을 대여하여 경쟁을 했다.
결국 판가름은 선거 유세에서 일어났고, 가장 재치있고 재미있게 연설한 아이가 당선이 되었다.
오늘은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두 시간 넘는 축제가 열렸다.
아이들의 축제라고는 하지만, 공연 위주로 짜여진 무대였는데, 아이들의 숨겨진 재능들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지난 화요일까지 시험치고, 수요일부터 며칠간 준비한 무대치곤 정말 풍성했다.
특히 돋보였던 인형극,
남녀공학에 다니고 싶다는 꿈을 가진 한 남학생의 이야기가 배꼽을 잡게 했다.
평소에 공부에 열중하던 아이들이 우스개 대사와 멋쟁이 교관 역도 훌륭하게 소화했다.
연극반 아이들은 완전 꼴통들인데, 녀석들도 제멋대로인 대본으로 연극을 올렸다.
선생님들의 흉내는 정말 수준급이었다. 나머지 연기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얌전하기만 해보이는 아이들의 귀여운 소녀시대 춤과,
이웃 여학교를 떡실신시킨 댄스부 아이들.
완전 엉망인 음향시설 덕분에 관객이 귀를 틀어막았지만, 괴성이 주특기인 밴드부 아이들.
아이들은 오늘 그 1,20분 공연을 위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외의 시간엔 주로 교실에서 자거나, 졸거나, 멍하니 있었던 아이들이 주가 된 축제.
뒷맛이 떫떠름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뭔가 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이범은 메가스터디란 회사에서 돈을 잘 벌다가, 어느 날 교육평론가를 자처하고 글을 썼다.
심상정을 지원하고, 서울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의 활동과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뭐, 이렇게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것이 전교조가 담당하기엔 전교조란 집단의 정체성이 과장되게 모호하기 때문에, 그의 역할에 조금 기대를 걸어 보게 된다.
경기도 교육감을 검찰에서 수사한단다.
그게 교육 자치일까? 하긴,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은 죽이고, 총리는 잡아가는 세상인데, 교육감 정도야... 우습지 않겠나.
교육의 해법은 분명, 정치에 있다.
대한민국 교육의 난맥상은 이범의 말처럼, 일제시대의 답습, 평준화라는 환상, 불안감의 증폭으로 돈을 버는 대기업, 선발과 경쟁 일변도의 입시, 그리고 이상한 교장만들기 제도에 따른 획일적 교육과 무책임 교육의 면죄부, 학부모의 제자식만 출세시키기 욕망 등 한두 가지의 중요한 원인을 따지기 어려운 것이다.
쾌도난마란 말이 있다. 어지러이 얽힌 삼대를 썩 잘드는 칼로 단칼에 슥- 베어버리는 느낌이 시원한 말이다.
한국 교육처럼 어지러이 얽힌 난맥을 자를 쾌도는 '정치'와 '장기적 포석'에 있다.
지난 주, 청와대에서 주도한 2009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다.
교육부도, 교육과정 평가원도 왕따당한 교육과정인데, 한마디로 무식하기 짝이 없다.
쉽게 말하면, 학점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고등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학기별로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하여 각자 배우고 싶어하는 과목을 배우도록 하겠다는 것.
그렇지만, 그 교육과정은 이미 10년 전에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교육과정 자율화, 말은 쉽지만, 학교에 있는 철밥통 교사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교육부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말을 지껄인 것에 불과하다.
학생들에게 배우고 싶은 과목만 배우게 한다는 의도가 관철되는 것이 학생들의 행복을 담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생들에게 단 하나의 교육 지표, 수능을 5지 선다형으로 유지하면서, 어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더라도 결국 수능 이상의 지표를 개발할 사정관(그 발음 참 죽인다.)은 없다.
올해, 부산시만 해도 학교장 자율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라 했더니 '비수능교과목 교사'들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육청에서는 각 고등학교 교장실로 부랴부랴 전화를 넣었다. 비수능과목 교사들을 배분하는 작태를 벌인 것이다. 대통령 각하께서 신성하게 내린 '자율화의 특명'을 교육감이 거꾸로 역행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것이 현실이다. ㅋㅋ 청와대의 2009 교육과정 개정은 그저 문서 하나 발표한 걸로 끝이다.
국가가, 정치적으로 한국 학교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국 학교는 무너질까?
무너짐과 동시에 한국 학교도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을 치는 시기가 10년 안에 올 것이다.
아직은 특별하게 실시되는 '한가람고등학교'처럼 별난 학교만이 살아남을 시기가 곧 닥칠 것이다. 아이는 적고 학교는 많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고, 외국 학교까지 들어오게 된다면 한국 학교의 <업무중심 시스템>으로는 <경쟁>은 있지만 <경쟁력>은 없는 학교가 반복되는 행태를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범의 글은 교육의 핵심이 자본에 휘둘리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정치적인 활동을 많이 펼치는 데 비하면 그의 정치적 안목이 다소 편협한 것이 아닐까 하는... 그가 좀더 정치적인 학습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좌파, 우파 같은 말을 할 때 보면 그는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현실에 묻어가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분명한 의지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서늘한 금>이 말 속에서 묻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덧붙인 말이다.
한국의 교육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단위 학교부터 좀더 장기적으로 민주화시키고, 대화의 통로를 만들고, 교사도 학생도 고통을 감쇄시키는 과정을 부드럽게 진행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다.
그리고 교사들끼리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하던 80년대 전교협 시절의 열정들이 다시 불지펴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가득한 날들이다.
오늘 저녁, 학교 선생님들 5명이 한잔 하기로 했다.
모두 조합원이고 연배도 지긋하다. 열정은 뜨거운 이들이다.
그분들에게 더 배우고, 방학동안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모임도 꾸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은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에게 <분회원 선물>로 주면 좋을 책이다.
또는 조합원은 아니지만 의욕적인 젊은 교사에게, 힘든 이유를 같이 생각할 수 있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엔 해결책이 제시되어있지 않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개선이 강제적이고 외부적인 것에서 오기 전에 학교와 정치가 해결할 길을 찾는 행복을 학교에서 누리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긴 글을 쓰게 한다.
아, 이 글이 1900번째 리뷰다.
2000번째 리뷰는 좀 멋있게 써볼까하는 생각도 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