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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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일 발칙한 상상이다. 스스로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가진 자동차라니... 논리적으로 보아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주차 공간이란 당연히 차보다는 커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자동차 안에 그 공간을 가져야 하므로 자동차보다 작아야 하는... 이런 것을 역설이라고 하겠지.

이 소설집의 제목도 자유의 감옥이니, 그야말로 역설의 환타지라고 할 수 있다.

한용운 스님의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자유와 복종은 기실 전혀 반대의 개념인 듯이 보이지만, 그 상통하는 면에서는 다른 언어보다 아주 가깝다는 이야기. 그래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했던가. 사랑과 미움은 서로 감정을 가지고 교감해야 하는 것이므로...

삼순이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모모>가 왜 그토록 유명해졌는지를 알지 못하겠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천박한 인문학적 배경을 일깨워주는 <모모>가 아닐까 한다. 삼순이가 봤으면 나도 봐야 되는 독특한 나라. 성질 더럽고 급하고 잘 부딪히는 우리 나라 사람들을 주역 풀이한 어떤 책에서 <건>으로 보았다. 여섯 개의 작대기가 모두 <양>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다. 사랑을 하면 화끈하게 한다. <모모>도 그 영향을 입은 듯.

전에는 <모모>가 은근히 데워주는 군불처럼 읽히던 책이었는데, 삼순이가 뿌린 휘발유 덕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 되어버렸다.

미카엘 엔데의 자전적 소설까지 포함된 소설집이었다.

모모를 생각하고 읽었던 끝없는 이야기가 좀 지루했듯이, 마찬가지로 모모에 대한 환상을 가진 내가 읽기에는 이 책은 터무니없이 지겨웠다. 물론 환타지 소설 특유의 상상력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미하엘 엔데의 내면 세계를 여행하기에 내 영혼은 너무 통속적이거나 선입견으로 가득차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이야기, 길잡이의 전설이란 단편은 어떻게 엔데라는 작가가 탄생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원제목이 미하엘의 전설인 걸로 봐서 스스로도 자서전적 소설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읽는데 좀 지겨웠고,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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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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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이 같이 보러가야할 영화가 나왔다고 했다. 바로 이 책이 영화화 되었다는 것.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제목을 만났다.

다 읽고 난 느낌이라면... 뭐랄까, 초반부엔 정말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던 스토리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재미난 묘사 중심으로 바뀌면서 탄력을 잃게 된다는 느낌.

그래서 이 책을 나처럼 어른이 몇 시간만에 주루룩 읽어 버리면 아무 재미가 없다는 사실.

이 책은 찰리처럼 글을 더디게 읽을 나이의 아이가 느릿느릿 여유를 가지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매콤한 순두부 찌개 맛이 나는 껌을 씹으면서, 상큼한 배맛까지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은 오염된 먹거리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상상력을 유발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다소 도덕적인 편향을 가지고 있어서 인격을 모독하기도 하며, 안그래도 영양 과잉인 아이들에게 초콜릿이나 사탕에 대한 애정을 키워줄 수도 있는 단점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자라는 시절에 가장 필요한 영양소인 창의적 상상력을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절묘하게 연결시킨 점은 재미를 한껏 자아낼 수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소인국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바지런히 일하는 장면도 환타지 소설의 일면이지만, 해리 포터의 집요정처럼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특히 영국이라면 해가 지지 않던 태양의 제국이었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거라고도 보이고, 세계적인 대형 자본주의 시장의 사장이 된다는 현실감 없는 설정은 신자유주의 시대 아이들의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기엔 역부족인 듯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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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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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떠올리는 하루와, 그저 잠에서 깨어 눈 비비고 하루를 시작하는 하루는 몹시 다를 것이다.

여행을 떠난 날, 아침은 유난히 눈이 일찍 뜨인다. 어젯밤 늦게까지 떠들던 동료들은 아직도 코를 골아대는데, 조용한 산새소리가 잠을 깨우고, 멀리서 계곡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이런 아침, 일찍 나가서 대기를 호흡하는 일은 자못 상쾌함이 색다르다. 이런 날, 자연에 도취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매일 자는 잠자리에서 매일 울리는 알람 소리에 깨는 삶은 얼마나 단조로운가.

하루를 사는 것이 어차피 인생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나의 하루>로 오롯이 만들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가 종교거나, 명상이고, 이 책, 코엘료의 접근법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연금술사>, <오 자히르>보다는 사색적인 소설이다. 앞의 두 권은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 대신, 이 책의 주제는 자못 가슴 찡한 구석이 있다.

'죽음에 대한 자극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게 한다'는 가설은, 현대에는 <상술>이 되어 <장례 체험장>을 운영하는 사업도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도 수업 시간에 <묘비명 쓰기>, <유서 작성해 보기>를 해 보거나, 인생 곡선 그리기로 미래를 그리는 활동을 해 보면, 아이들이 상당히 고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 속의 베로니카는 삶을 치열하게 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작품 속에서 형상화된 인물은 나름의 생을 살아나가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베로니카는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삶의 중요함을 깨닫을 따름이지, 치열하게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우리를 <치열>로 내모는 구호들이 많은가... <아침형 인간> <바보들은 날마다 결심만 한다> <1억 모으기> <... 다이어트 성공기> <외국어, 한 달이면 된다>... 이런 책들을 보면, 얼마나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강권한다. 그래도 이런 책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서점에서 아예 넓찍한 코너를 차지한 초, 중등 학습법, 문제집 등을 보면 <이런 것을 알아야 자식을 올바로 기를 수 있다!!>는 책들이 정말 많다. 정말 뭔가를 알고, 실천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자식을 기를 수 있는 것일까? 예전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여러 식구 사는 데 떠들지 말 것과, 가난해도 도둑질하지 말 것과, 형제들끼리 생기는 알력에서 다투지 말 것을 가르치셨는데, 사실 그런 것들은 동물의 왕국에도 엄연히 등장하는 것들이다. 동물들도 자기 구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기 음식에 손대지 못하게 하므로...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온 거라고 볼 수 있다.

토요일 저녁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코너를 재미있게 본다. 몇 회를 보면 볼 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문제 아이에게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생각. 교직에 십칠 년 있다 보니, 골치 아픈 아이들을 만나도 그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부모 호출은 특별히 변상할 일이 있는 경우 아니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이 문제아면, 그 부모는 더욱 골치아픈 경우임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에게 생긴 문제는 대개 부모가 어느 시점에선가 잘못 대응한 것이 습성화 되어 고착화 된 것이란 것이 대부분의 경우 드러났다.

미쳤다는 게 뭐지? 아마 미친사람에게 물어보면 알까? 정신병은 오랜 동안 소설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만큼 독특한 정신 세계를 다루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사건들이 마치 동물원처럼 격리된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코엘료처럼 자기의 경험을 적는 소설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만큼, 코엘료의 소설 중에서 이 소설이 가진 <현실감> 내지는 <탁월함>이 여기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만의 것>을 쓰는 것보다 좋은 글은 없기 때문이다. 사막의 아내찾기, 오 자히르의 막연함과, 삶에 대한 우화 연금술사는 어쩐지 자기 이야기가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 자신이 미친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곳, 남에게 호의를 베출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자신들이 하던 재미있는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곳, 정신 병원>에 대한 그의 경험이 이 작품에 현실감을 불러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살 날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본 적도 없고 얼마 안 있으면 두번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의 이러쿵 저러쿵 소리에 매달릴 필요가 뭐람?> 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베로니카에게 삶의 <마지막 며칠>을 주는 것도 자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베로니카가 에뒤아르에게 자기의 모습을 가림없이 보여주었던 밤, 베로니카의 말은 <달마야 놀자>의 박신양과 주지스님의 대화를 떠오르게 했다.

   ..... 피아노에도 나 자신을 내 던졌어요...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가 온전한 나 자신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곳에서 그의 경험은 좋은 작품들로 녹아날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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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8-1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선생님 글을 읽으니 <거짓의 사람들>이 생각나요.
문제아에게는 "악한" 부모가 있더군요. 아이는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드러나지만,
그 아이의 부모들은 자기를 끊임 없이 합리화 시키며 사회에서는 정상인으로 살아가더라구요. 섬뜩했어요. 그 책 읽고....

아침에 자명종 소리를 듣고 기계적으로 일어나기...그렇게 살고 있네요.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기분 좋게 일어나면 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겠죠?
알면서도 못하는 일들이랍니다.^^

글샘 2005-08-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산다는 건, 기분 좋지만은 않은 일들과 만나서 투쟁하는 것같이 보인답니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게 되면, 조금만 떨어져서 보게 되면, 그 투쟁이 한없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거만해 지면, 병이라는 천사를 보내시어 나의 어리석음을 가르치시는 것인지도 모른답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멋진 신세계 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
A.헉슬리 / 범우사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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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일랜드라는 재미난 영화를 보았는데, 며칠 후, 황박사의 클론 실험 성공 발표가 있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아일랜드의 모티브가 이 작품이라는 걸 알겠다.

물론 아일랜드가 모작이란 것은 아니다. 모티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파, 베타 등으로 인종의 구분이 된다든지, 아일랜드로 보낸다든지...

이튼 스쿨을 다닌 영국인의 자부심이 가득한 소설이다.

물론 이 소설이나 영화 아일랜드처럼 미래 세계가 조절된 인간 세계로 갈 수는 없겠지만, 상상 속이나마 정말 끔찍한 세계였다.

다만, 옛날 책이라 그런지 번역이 앞뒤가 맞지 않고, 이야기 전개가 부드럽지 않다.

원래 소설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지 못하고, 소재의 흥미로움에 반해 마치 논문을 보는 듯한 지루함을 감출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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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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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O Zahir는 아랍어로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 탐닉, 미치도록 빠져드는 상태> 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라고는 <연금술사>밖에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문체나 취미에 대해서 별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그에게서 흥미를 잃었다고나 할까.

사실 이 책을 익기 전에도 별로 기대한 것은 없었지만, 읽고 나서는 역시 내가 생각했던 코엘료는 이정도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정신 분열의 경험이 잘 녹아 있는 부분, 그러니까 서술자가 사고로 쓰러지는 부분에서 정신을 잃고 며칠동안 혼수 상태를 겪는 부분은 역시 작가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이어서 신선한 체험으로 살아있다.

그러나 책이 마치 그의 자서전을 읽는 듯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추억이라든지(그래서 연금술사의 주인공이 산티아고였던지...), 얕은 경험들과 얽힌 이야기들은 왠지 쫄깃쫄깃한 <플롯>으로 응집되어있는 느낌을 주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에서처럼, 여러가지 경험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듯한 부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작가가 <사랑에 대한 오 자히르> 체험을 형상화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신비롭고 무속적인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논의하기에는 이야기 전개가 난삽하다는 느낌.

코엘료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장편 소설을 쓰지 말고, 수필집을 쓰거나 단편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분부분 신선하고 명쾌한 부분이 살아 있을 때, 그의 재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인 글에 녹아들어 하나로 숨쉬는 유기체가 된 소설이 되지 못한 걸 보면, 그 좋은 부분 조차도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어서 내가 메모까지 한 부분은 성당 이야기다. 보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성당을 보며, <성당. 그것은 나였다. 우리들 각자, 우리는 성장하면서 모습도 변화한다. 고쳐야할 단점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늘 최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르게 서려고 노력하며 계속 전진한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작가가 삶에 대한 통찰에서 이루고 있는 경지를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친구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다. 가짜 친구들도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굳은 얼굴로 나타나 안타까움과 연대감을 느끼는 듯 행동한다>는 글에서 인간이 얼마나 알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나더러 어떤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라면, 나는 참 힘들 것 같다. 우선 비평을 가하려면 3번 이상의 정독이 필요할 것인데,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면 모르되, 그닥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을 세 번 읽는 것은 고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올릴 수는 있되, 비평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가벼운 행복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표지다. 표지에는 왠지모를 우수가 담겨있다. 주황빛에서 노랑으로 번져가는 빛깔은 마치 부화중인 계란빛처럼 생동감이 느껴지고, 사막을 우러르고 섰는 여인의 비스듬한 실루엣은 아스라히 보일듯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신기루를 상징하는 듯, 그리고 삶의 막막함을 재촉하는 열사의 햇빛에서 치열하게 찾아나가는 <자아의 본질>에 대한 상징이라도 되는 듯 아름다운 느낌을 자아낸다.

달과 6펜스의 응집성, 열정적인 삶과 어긋남, 상징적 의미가 두고두고 읽히는 고전의 반열에 든다면, 저자의 명성에 <호의 은행> 역할을 하는 자본과 상업성, 베스트셀러라는 환경을 뺀다면, 이 책은 과연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는 작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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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7-1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면 사랑에 대해 수준급이지 않을까?

이 소설보다, 이 만화를 읽을 때 내 감성은 더 전율했던 것은...


파란여우 2005-07-1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이거 써야 하는데,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는 코엘료의 글빨 때문에 고민이 됩니다...